절세 미남 알랭 들롱 

 

 

절세의 미남 알랭 들롱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8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세대들은 이 배우를 잘 모를 것 같다. 알랭 들롱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린 것은 1970년대 후반까지였으니 말이다.

 

 

그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있어 가장 잊을 수 없는 영화는 아마도 “태양은 가득히”일 것이다. 그리고 나 호호당이 마지막으로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은 1977년 종로3가의 “피카딜리”(지금은 없어졌다)에서 상연한 “부메랑”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야말로 절세의 미모였다.

 

그리고 실로 엄청난 스타였다. 82편의 영화 주연을 맡았고 그를 주제로 해서 집필된 작가들의 책만 해도 거의 50여권은 된다. 그가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던 것은 2007년이었다. 전도연 씨가 칸영화제에서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그때 상패를 주고 또 전도연 씨와 가볍게 뽀뽀를 했던 알랭 들롱이었다.

 

 

1935년 11월 8일 오전 3시 25분에 태어났다. 따라서 乙亥(을해)년 丙戌(병술)월 戊子(무자)일 甲寅(갑인)시. 이에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는 1958 戊戌(무술)년이고 가장 화려하고 융성한 시기는 1965년부터 1975년까지의 10년간이다.

 

최근 사망한 날자와 시각을 보니 별 고통 없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88세의 일기였다. 하지만 사실 그는 2019년에 뇌졸중이 와서 고생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때로서 건강한 삶은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83년간 잘 살았고 그 이후 5년은 투병과 요양 생활.

 

그야말로 대단히 화려하고 요란한 삶이었다.

 

 

삶을 잘 마무리해야 할 터인데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 또한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 100세 시대라 떠들어대지만 사실 남성의 경우 80 중반 이후까지 건강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올 해 69세인 나 호호당 역시 이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세월은 절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특히 이번 여름의 살인적인 더위로 인해 집안에 갇혀 산책과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이른 아침 시간에도 밖에 나가면 습하고 더워서 힘들다. 그러다 보니 보름 사이 근력과 체력이 떨어져서 나름 좋아지던 건강이 다시 조금 나빠진 터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올 여름 더위에 정말이지 수명이 단축된 느낌이다. 그 바람에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염원하기로 죽기 석 달 전까지는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그간의 연구성과를 다 전해주고 가고픈 마음

 

 

그리고 그간 수 십 년간 연구해서 알아낸 자연순환운명학의 이치와 증시투자기법을 이젠 남김없이 다 알려주고 가르쳐줄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입으로 말해서 좀 민망하지만 두 가지 모두 거의 톨킨의 소설 속 “절대반지”라 자부한다.

 

자연순환운명학은 나 호호당 사후에 전 세계에 널리 퍼져서 글로벌 公共財(공공재)가 될 것이고 증시기법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전해지다가 서서히 전파될 것이고 좀 더 세월이 가면 ‘파동의 일반적인 원리’로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라 본다. 물론 개인적인 기대이긴 하지만 나 호호당이 남기고 갈 이 두 가지는 훗날 우리 대한민국을 빛내게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심장 수술의 대가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다니 

 

 

아침 뉴스에 심장수술의 대가인 분당서울대교수가 겨우 57세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사인이 심근경색이라 한다. 심장수술의 대가가 심장병으로 가다니 약간 어이가 없다 하겠지만 운명학의 견지에서 보면 그게 그렇지가 않다.  다만 생년월일을 확인할 수가 없는 관계로 구체적인 얘기를 해주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안타깝다.

 

그래서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본다. 가령 이빨이나 뼈의 경우 오행상 물의 기운, 즉 水氣(수기)의 응결인 바, 치과의사들을 보면 거의 모두가 물의 기운이 그 사람의 사주에 좋은 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은 치아가 튼튼하다, 관리를 잘 해서라기보다 타고난 치아가 좋은 것이다. 주변에 보시라, 치과의사 중에 치아가 부실한 사람 있는지.

 

 

2024년 여름은 악몽이었다

 

 

참으로 악몽과도 같은 2024년 여름이다. 며칠 전엔 새벽 1시에 31도를 찍고 있었는데 실로 어이가 없었다. 오늘이 處暑(처서), 더위가 무조건 물러간다는 때이건만 올 여름은 그보다 일주일을 더 여름이 이어질 판국이다. 내년에도 이렇게 더울 것 같으면 아예 대관령이나 강원도 산지로 보름 정도 피서를 가야지 싶다. 독자님들도 고생 많으셨을 것이다. 게다가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건강에 많이 유의하셔야겠다.

 

오늘 글은 그저 안부를 전하는 글이었다.

 

 

 

한 때는 지루하던 삶이었는데 

 

 

기억이 난다, 서른 중반 무렵의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하루하루가 무한정 이어질 것 같아서 야, 이거 언제 다 살고 죽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하는 얘기로 인생 반환점이란 개념이 있다. 80세가 기대수명이라면 마흔이 반환점이 된다. 어쩌면 당시 나 호호당이 아직 반환점을 돌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반복되는 직장 생활이 지루해서 그랬었나?

 

때가 대략 1980년대 말, 당시 남자들의 경우 70 후반이 보통의 수명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40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 세월이 너무 요원했다.

 

하루하루가 무한정 이어진다면 그 하루하루는 가치가 없다. 永生(영생)을 사는 자에게 시간과 세월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저번 글에서 덧이란 어휘가 시간적인 틈이나 사이를 뜻한다 했다. 따라서 덧없는 삶이란 말은 우리가 살아서 존속하는 시간이 짧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서른 중반의 나 호호당은 삶이 덧없다가 아니라 덧이 너무 많이 남았다고 느꼈던 셈이다.

 

 

젊어선 오만하게 멋이나 부렸을 뿐

 

 

당시 나이든 선배나 어른들께서 인생 순식간에 훅 간다, 쏜 살 같아, 살아보니 인생 참 아무 것도 아니야, 이런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겉으론 공손하게 네 그렇죠, 하고 답했지만 속으론 그다지 별로 공감하지 도 동의하지도 않았다.

 

중국 천재 시인 이태백이 강개한 어조로 삶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게 멋은 있었지만 솔직히 뭔 말인지 잘 몰랐다. 나 호호당은 독서를 좀 하다 보니 동서양의 수많은 시인들과 작가들의 시와 글을 두루 접했지만 그 또한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랬던 나 호호당이 어언 70이 되어 이제 남은 세월 얼마나 될까? 하고 어림해보고 있다. 이거 어쩌다 보니 다 살았네, 훅 갔네, 그간 즐거운 일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고생이 더 많았던 것 같고 먹고 사느라 세월 다 갔네, 이제 좀 진짜 놀아보려니까 몸도 아프고 남은 세월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운 생각만 든다.

 

게다가 세월 가는 속도는 더 빠르게 느껴진다. 한 해 지나가는 게 젊은 날 대여섯 달 정도 되는 느낌이다. 2024년도 내일 8월 7일이면 立秋(입추), 한 해의 반환점이다.

 

이거 정말 인생 덧없구나 싶은 것이다.

 

 

지금 70이 된 나 호호당이 서른 중반의 과거 호호당에게 들려주고픈 얘기

 

 

그러면서 옛날 선배들과 어른들의 말씀 빈말이 아니었음이야! 하는 생각에 절로 커-, 카- 하고 거칠게 한 숨을 내뱉게 된다.

이제 1955년생, 세는 나이 일흔이 된 나 호호당은 30년도 더 전, 사는 게 다소 지루했던 서른 중반의 새파랗게 젊은 호호당에게 얘기를 하나 해주려 한다.

 

이보시게, 젊은 친구, 사는 게 루즈(loose)하다면서? 매일 쳇바퀴 도는 삶이 지겹고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시는 모양인데 잠깐 들어보게나, 해줄 얘기가 하나 있으니 말일세.

 

젊은 자네의 시간, 하루, 그리고 한 달, 또 한 해는 그저 시간이 갈 뿐 그 자체로서 별 의미가 없다고 느끼지? 많이 남았으니 말이지. 그런데 말이지 시간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자는 궁극적으로 삶의 그 어떤 행위나 행동에서도 가치를 찾을 수가 없게 된다는 거 알고 있나?

 

하지만 이제 시간이 그러니까 자네가 이 세상에 머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 뭔가 많이 달라진다네.

 

 

有限(유한)함을 느끼면 애틋해지는 법

 

 

왜 그런 거 있잖아, 늘 보던 얼굴, 아내이거나 연인이거나 아니면 오랜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 암튼 늘 가깝던 사람이라면 때론 좀 지겹기도 하고 또 때론 시큰둥할 때도 있잖아,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상대가 이제 우리 보는 날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해오면 갑자기 애틋해지는 것 뭐 그런 거 말이야.

 

그래서 갑자기 미안한 마음도 들고 더 잘해줄 껄 하는 후회도 은근히 생기고 뭐 그렇잖아. 그래서 여기저기 그간 말로만 해오던 장소를 찾아가기도 하고 아니면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지. 이제 시간이 얼마 없으니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다짐도 생기고 말이야.

 

인생 산다는 것 또한 그래, 젊어서 날이 많이 남았을 때는 그저 그래, 심지어 지겹기도 하지. 그런데 이제 그 날이 확 줄어서 카운트가 되기 시작하면 아쉽고 애틋한 생각이 들어.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영원히 살고픈 욕심이 드는 것도 아니라네. 永生(영생)? 그 또한 어쩌면 永劫(영겁)의 지옥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 산다는 게 사실 그리 쉽고 만만한 게 아닌데 그걸 영원히 산다? 그건 싫지.

 

따지고 보면 인생 덧없다는 말도 틀린 얘기, 일생의 시간을 놓고 말하면 길다 하면 길고 짧다 하면 짧은 거지, 1분이 1시간 같을 때도 있고 하룻밤이 두어 시간 같을 때도 있으니.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은 오래가지 않는 법

 

 

그런데 잘 생각해보라고, 세상 예쁜 것들은 다 오래가지 않는다는 거. 정말 그래. 열흘 붉은 꽃은 없다,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싱싱하게 예쁜 꽃은 기껏해야 사흘이고 그 또한 잘 관찰해보면 한 나절에 불과하잖아.

 

아름답고 예쁜 것들은 절대 그냥 그대로 머물지 않아, 잠시 이 세상에 나타나서 그 고운 빛을 뿌리고는 어느새 사라져버려, 그래서 덧없다는 말을 하는 거야.

 

이 대목에서 하나 물어볼게, 아름답지만 덧없는 것, 그 지속 시간이 짧다고 해서 그게 다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야.

 

 

하지만 우리에겐 기억하는 힘이 있어서 

 

 

사실 불멸의 아름다움이란 건 세상에 없어. 진짜 아름다운 것은 싱싱한 과일이나 방금 피어난 꽃송이처럼 금방 시들거나 상해. 하지만 우리에겐 기억이란 게 있어서 그 아름다움을 가슴 속에 머릿속에 간직할 수가 있어.

 

오랫동안 사랑해온 연인 또는 배우자가 있다고 하자고. 아니면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헤어져서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고.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매력,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영혼을 다해서 홀딱 반했던 순간의 그 모습과 감정은 이미 온 데 간 데 없잖아, 하지만 그런 한 순간이 있었다는 기억 또는 추억만 간직하고 있어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다시 얘기지만 아름다운 것은 덧없어, 덧이 없지. 하지만 그 덧없는 아름다운 것을 우리의 모든 感官(감관)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어루만져서 그 감촉을 느꼈다면 그를 기억하면 그것으로서 충분하다고 봐.

 

그렇기에 어느 한 순간 빛을 뿌리고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이고 예쁜 것들이지만 그를 허망하다, 부질없다고 한스럽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어디 가지 않고 우리 저마다의 가슴 속에 있잖아, 간직하고 있으면 되는 일이잖아.

 

물론 우리의 기억은 카메라가 아니야, 이에 세월이 오래 되면 그 기억 또한 많이 희미해지고 변용되어 있겠지만 무슨 상관? 또렷하진 않아도 예뻤다는 인상만 남아 있으면 그로서 족한 일 아니겠냐고.

 

그러니 젊은 30년 전의 호호당 이 친구야, 이제 얘기를 정리해보자고.

 

 

인생 한 번 살아본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

 

 

인생 한 번 살아보는 거 정말 좋은 거야. 잘 사는 방법, 그런 거 정답 따윈 아예 없어. 그런 생각 버려. 어떻게 살든 또 살았든 다 좋은 거야.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나름 발버둥을 쳐왔다면 다 잘 산 거야.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 왜냐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과 만나면서 살잖아. 인생길에서 좋은 시간은 사실 많지 않아, 아니 별로 없어, 있어도 아주 짧아. 하지만 그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하면 되는 일이야.

 

이게 이제 70이 되어 몸도 노후화되고 탈도 좀 나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런 나 호호당이 과거의 호호당, 세월이 너무 많이 남아서 지루해하던 서른 중반의 호호당에게 해주고픈 얘기라네.

 

그럼 이제 지금의 나 호호당이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을 정리하면서 맺음을 짓는다.

 

야, 호호당아, 남은 시간 많지 않음을 알잖아, 그러니 하루하루의 시간을 음미해가면서 곱씹어 가면서 알차게 열심히 살아보라고. 지금부터라도 나중에 죽을 때 아무런 여한이 없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보자고. 브라보, 파이팅!

 

이것으로서 제 그간의 삶을 정리했으니 다시 힘을 내어 재미난 얘기들 많이 들려주려한다.

 

(알림: 작업실이 다음 주면 세팅이 끝난다. 이에 상담 재개 소식을 공지할 예정이다.)

 

속절없이 하락 중인 우리 증시. 공포 매도(Panic Sell)인데 이럴 땐 가지고 있는 주식을 절대 파는 게 아니란 점 알려드린다.

 

코스피 지수로 얘기하면 조만간 2600포인트까지는 최소한 반등할 것이며 2750포인트까지의 반등도 가능해보인다.

 

다만 이것으로서 우리 증시가 고점을 치고 하락으로 돌아섰느냐 아니면 다시 정비해서 원래의 상승 기조로 되돌아갈 것이냐의 여부는 현재의 하락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에 전혀 예단할 수 없고 예측해볼 필요도 없다고 본다.

 

자금 여유가 있는 분이라면 오늘과 내일 연이틀 대폭 저렴해진 우량주들을 조금 매수해도 된다고 본다. 설령 더 내린다고 한들 기다리면 복구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증시에서 늘 있는 일이다. 하루만에 세상 끝나는 법 없다는 생각으로 그냥 편하게 관망하시길...

 

그냥 해보는 얘기가 아니다. 1983년부터 증시를 시작해서 지금껏 폭락장을 정말이지 수십 번 겪은 터라 오늘 역시 전혀 놀라지 않고 있다. 금요일 선물 매수했던 것 오늘 아침 동시호가에 매도하고 이제 슬슬 사볼 생각을 해보고 있다.  

 

다시 한 번 얘기지만 패닉 셀에는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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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생각하는 아침이슬)

 

삶의 짧고 덧없음을 노래하는 글들, 정말이지 무수히 많다. 그 중에서 나 호호당이 깊이 새기고 있는 두 개의 표현이 있다.

 

 

성경 시편의 표현

 

 

하나는 성경 시편 103편 15-16절이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기독교 신앙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마흔 중반을 넘기면서 성경 시편의 글들을 자주 접하곤 하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산다는 게 한 철 피었다가 시드는 잡풀과 같고 좋은 영화의 세월이란 게 며칠 피었다가 지는 들꽃과 같다고 한다. 시편의 무대는 사막, 불어오는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에 풀과 꽃은 순식간에 말라버린다. 삶의 시간과 영화가 저처럼 짧고 덧없다는 말이다.

 

이에 살면서 문득문득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하는 구절이 떠오르곤 한다. 시편에선 그 허망함을 극복하는 방법을 바로 다음의 17절에서 제시하고 있다. 인자하신 여호와를 경외하면 영원의 삶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 호호당은 여호와나 주 예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 그냥 덧없는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채 살아간다.

 

 

이태백의 강개한 표현

 

 

또 하나 삶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그야말로 멋지게 노래한 이는 중국 당나라 시절의 천재시인 이백, 흔히 이태백이라 하는 양반이 남긴 구절이다.

 

시인의 노래는 이렇다.

 

봐라, 이 天地(천지)란 곳은 만물이 잠시 쉬었다 가는 여관이요 光陰(광음), 즉 시간은 百代(백대)를 지나가는 길손 아니겠니? 이에 浮生(부생) 즉 뿌리내리지 않고 물위에 떠서 흘러 다니는 부평초 같은 삶은 마치 꿈속 일과 같아서 즐겁다 한들 그게 얼마나 되겠니! 옛 사람들이 촛불을 밝히고 밤이 늦도록 놀았던 것은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음이야.

 

이 시는 이태백이 무르익은 늦봄에 친지들과 함께 ‘나이트 가든파티’를 열면서 지은 시다, 인생 뭐 없어, 짧아, 그러니 우리도 즐길 때 한껏 흥껏 즐겨보자면서 바람 잡았던 시이다. 시의 제목이 “봄밤에 桃花(도화)와 梨花(이화) 만발한 정원에서 파티를 열면서”,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이다.

 

성경 시편의 내용은 삶이란 게 정말 짧고 허망한 것이기에 인자한 여호와를 경외하고 따르면 영원을 얻을 것이란 구원의 메시지이다.

 

반면 이태백의 얘기는 인생 정말 짧은 것이고 한 때 잘 나간다 해도 그게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마침 이렇게 좋은 사람들끼리 늦은 봄 좋은 때에 복숭아꽃 배꽃 만발한 정원에 어렵사리 모여서 나이트 가든파티를 열었으니 밤을 새워서라도 정담을 나누고 흥겹게 술잔을 기울여보자는 얘기, 인생 뭐 없다, 그저 놀 때 놀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서 歡樂頌(환락송)이다.

 

시편의 메시지는 진지하기 그지없다. 이백의 메시지 또한 그렇다. 둘 다 아무런 꾸밈이 없고 진솔하다.

 

나 호호당이 저 두 개의 메시지를 모두 좋아한다는 것은 반은 종교적이고 반은 현세적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덧없다'는 말에 대해서 

 

 

아무튼 흔히들 덧없는 삶, 덧없는 영광, 덧없는 세월, 덧없는 마음 등등 어느새 지나가버리는 삶의 일들에 대해 우리들은 이런 표현을 쓴다.

 

덧이란 어떤 시간적인 틈이나 사이를 뜻한다. (틈새란 말은 틈과 새가 같은 의미이니 같은 뜻의 반복이다.) 따라서 덧없다, 덧이 없다는 말은 어떤 일이나 사물이 존속하는 시간이 짧다는 말이다. 가령 인생은 짧고 덧없다고 표현할 경우 그건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짧으니 덧이 없는 것이다.

 

시간의 길이, 절대적 길이나 물리적 길이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길이는 대단히 상대적이다. 때론 1분 60초가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사랑하는 이와의 하룻밤은 순식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황진이는 동짓달 긴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서 좋은 님 오시날 밤에 쫙-하고 펼쳐놓고 사랑놀이 길게 펼쳐보리라 하고 잔뜩 벼르는 시를 남겼다.

 

나 호호당은 며칠 전 7월 25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 69년을 살았다. 나름 긴 세월이었다, 분명. 그런데 돌이켜보면 살아온 날들이 그다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심리적 시간의 길이라는 것이 이렇게 상대적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때론 부질없는 삶이란 표현도 자주 쓴다. 부질없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가치가 없다는 뜻의 말인데 그게 살아볼수록 실감하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이나 청년들은 잘 살기 위해서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름의 철학자들이나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 해주는 얘기나 강연에 참가해서 뭔가 얻으려 한다.

 

그래서 너무 주변의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만 삶에 의미가 부여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제법 그럴 듯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원하는 것 자체가 살아가면서 또 겪어가면서 변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A 라는 장소에 가고 싶어서 갔더니 그곳에서 B 라는 다른 장소가 더 좋아 보인다, 이에 힘을 내어 B 라는 장소에 가봤더니 또 다른 것이 보이더라,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그게 바로 방황하는 삶이다. 이에 진리를 찾는 한 방황하리라 하는 유명한 말도 있다. 독일의 괴테였나, 파우스트?

 

돌아가서 얘기이다.

 

 

어떻게 살아도 다 좋은 삶인 것을 

 

 

사실 어떻게 살아도 되는 인생이란 생각을 한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고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삶만 아니라면 된다고 본다. 삶의 의미? 그건 젊었을 때의 생각이고 나이 들어보니 산다는 게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이 더 앞선다.

 

나 호호당이 살아온 69년, 긴 것 같기도 하고 순식간의 일인 것도 같다.

 

생각하는 아침이슬이 있다고 하자. 새벽녘에 응결되었다가 해가 뜨면 증발하거나 또는 풀잎에서 도르르 굴러서 땅으로 스민다. 길어야 서너 시간일 터인데 그 시간을 두고 아침 이슬은 길었다 여길까 너무 짧았다고 여길까?

 

찰나에 비하면 너무나도 긴 시간이요 영겁에 비하면 그야말로 덧없다. 그러니 나 호호당 또한 아무래도 생각하는 아침이슬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산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

 

 

덧없는 삶,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삶의 의미? 그런 거 잘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산다는 게 정말로 좋다는 생각은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져간다. 삶에는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있고 또 소중한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번 글은 사실 다음 글을 풀어나가기 위한 자락깔기였다. 삶은 멋진 것이다. 다음 글에서 왜 그런가에 대해 얘기하겠다.

 

(8월 18일에 증시 스팟 강좌를 하기로 공지를 올렸다. 기존 수강생들은 하반기 흐름 점검을 겸해서 그간 배운 기법을 다듬는 기회가 될 것이고 그간 나 호호당의 기법이 궁금했던 분이라면 직접 확인함으로써 증시 투자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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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이 가면 그 시대도 함께 간다

 

 

대학로의 상징이던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다. 그 며칠 전에는 트로트의 현철이 갔고 부채도사 장두석도 떠났다. 그런가 하면 1960년대 당시 국내에 홍콩 무협영화 붐을 일으킨 여배우 정페이페이도 며칠 전 떠났다.

 

오전 필라테스 시간, 1대1 지도해주는 젊은 여성 원장님에게 “김민기가 갔어요,” 라고 했더니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잘 모르시는구나, 김민기” 했더니 약간 계면쩍은 웃음과 함께 “처음 들었어요” 하는 것이었다. 숙녀의 나이를 물어보긴 그렇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

 

그렇다, 김민기나 현철, 장두석, 정페이페이, 최근 우리 젊은 세대들에겐 모두 낯선 이름일 수 있겠다. 저들 모두 올드 세대, 베이비붐 세대와 86세대의 아이콘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올드 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저들 또한 그저 역사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올드 아이콘의 消失(소실).

 

 

아이콘들의 운명 순환

 

 

저들 중에서 김민기와 현철의 운명순환을 槪括(개괄)해본다.

 

먼저 김민기. 양력 1951년 3월 31일이다. 辛卯(신묘)년 辛卯(신묘)월 庚午(경오)일이다. 그간의 프로필을 보면 2010 庚寅(경인)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위암으로 사망했는데 추정컨대 위암이 생긴 것은 6년 전인 2018 戊戌(무술)년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 6월 庚午(경오)월경에는 사실상 가망이 없어졌고 그 후 한 달 여를 버티다가 7월 21일 丙戌(병술)일, 일진 상으로 60일 사이클의 바닥일인 목요일 庚寅(경인)일 되기 나흘 전에 세상을 떠났다.

 

1980 庚申(경신)년이 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였다. 이에 그의 전성기는 1991년 학전 소극장을 열었을 때부터 대략 10년,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가지고 해외 순회공연을 했던 2001년까지의 세월이었다.

 

그리고 김민기의 운세가 바닥에 도달한 2010년 이후 공연시장의 중심이 대극장 뮤지컬로 바뀌면서 대학로 소극장은 위축되었고 적자 상태로 변해갔다.

 

그가 우리 문화 예술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끼친 엄청난 영향력에 대해선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 호호당은 1971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담긴 LP 판을 우연히 샀고 그 이후 줄곧 팬이었다.)

 

다음으로 현철. 1942년 음력 6월 17일, 壬午(임오)년 丁未(정미)월 癸未(계미)일이다.

 

운세순환을 보면 1973 癸丑(계축)년이 立秋(입추)였고 2003 癸未(계미)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연예인이나 가수의 경우 워낙 경쟁이 치열한 탓에 이른바 빛을 보는 시기가 훨씬 늦다. 탁월한 천재라거나 시대의 흐름이 받쳐주지 않는 한 입추를 지나고 다시 7-10년 정도는 되어야 빛을 보고 각광을 받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현철의 경우도 마찬가지, 1966년에 데뷔하였으나 그냥 반응이 없었고 입추인 1973년으로부터 무려 10년 뒤인 1983년, 그러니까 한로의 운에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히트시키면서 전성기를 열었다. 데뷔로부터 17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으니 그간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나.

 

(참고로 얘기하면 최근 인기 절정을 달리는 가수 임영웅도 입추는 2007년인데 2017년, 무려 10년이 지난 한로의 운에 미스터 트롯을 통해 인정을 받고 대성공을 했다. 이처럼 연예인의 경우 빛을 보는 시기가 늦을 때가 많다.)

 

현철의 경우 마지막 피날레는 입추로부터 15년 뒤, 1998년 立冬(입동)의 운에 가서 “사랑의 이름표”란 곡을 부르면서였다. 그 해 여론 설문조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 부분 선호도 1위를 기록하면서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그 이후 여전히 인기 많은 가수였으나 2003년 입춘 바닥을 지나 2007년 공연 중에 크게 부상을 당했고 그 이후로 뇌경색과 경추 디스크로 건강 면에서 고생의 연속이었다. 올 해 세상을 떠났으니 그간 무려 17년간 힘든 나날을 보낸 것이다. 무명가수의 고초가 17년, 크게 부상당한 후 몸 고생 17년의 현철이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사람들의 애환을 그 특유의 목소리로 위로해주면서 절정의 세월을 보낸 현철이었건만 알고 보면 저리도 딱하다.

 

장두석씨는 2006 丙戌(병술)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그가 부채도사란 개그 코너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 것은 1991년 무렵이었으니 운세가 마지막 빛을 발하던 立冬(입동)의 시점이었다. 그 이후 인기가 식어들고 또 당뇨가 심해지면서 명상과 같은 정신수양 쪽에 몰두하기도 했지만 끝내 당뇨합병증을 넘어서지 못했다. 66년을 세상에 머물다 갔으니 조금은 짧은 삶이었다.

 

홍콩의 액션 여배우 정페이페이,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굳이 소개하자면 1968년 수입되어 개봉된 “심야의 결투”에서 ‘금제비’란 이름의 여자협객으로 등장했다. 사실 영화의 원제목이 金燕子(금연자) 즉 금제비였다. 옛 얘기지만 나 호호당과 같은 베이비붐 세대에겐 굉장한 인기스타였는데 그런 그녀가 수년 전부터 파킨슨병으로 해서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는 하나이기에 

 

 

이쯤에서 오늘의 얘기를 정리해보자.

 

우리는 각자 개체이고 개인인 것이 분명하지만 달리 보면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나 개인은 ‘나’이기도 하지만 ‘우리’이기도 하다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저렇게 떠나가고 있는 올드 세대의 아이콘들은 올드 세대가 죽어가고 소실되는 하나의 상징이라 하겠다.

 

우리 각자는 그저 각자이고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주변의 누군가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소중하고 사랑스런 존재가 된다. 사실 별 것도 아닌 우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그리운 존재가 된다는 거, 이 대목이야말로 삶과 존재의 엄청난 신비라는 생각을 늘 한다.

 

 

잘 가시오, 당신들을 전송합니다.

 

 

김민기, 현철, 장두석, 정페이페이, 잘 가시오, 그리울 거요.

 

오늘 글은 죽음을 다루고 있는 터라, 특히 나 호호당의 마음이 무거운 터라 쓰면서도 망설였다. 올리지 말까? 하는 고민. 하지만 저들을 기꺼이 전송해야지 하는 생각에 힘을 내어 올려본다. 그런데 묘하게도 오늘 7월 25일은 나 호호당의 생일이다.

 

그런대로 몸이 좋아져서 8월에는 사무실을 열고 상담도 재개할 예정이다. 강좌도 시작할 것이고. 곧 공지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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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절은 없고 좋았던 시절만 있는 것 같다.

 

 

웰빙이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

 

 

2000년대 중반 무렵 ‘웰빙’이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 그냥 막 사는 게 아니라 좀 더 질, 즉 퀄리티 있는 삶으로 가보자던 그 시절이 돌이켜보면 우리 경제의 황금기였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마침내 극복해냈고 그 이후 가계 대출을 통한 통화량 증가는 아파트와 증시를 상승시켜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창출했다. 부자가 된 느낌에 젖어 소비가 늘었고 그에 따라 다시 투자가 늘어나면서 나름 선순환을 보였다.

 

어지간하면 무거운 명품 가죽 가방 하나 정도는 가지게 되었고 해외여행도 고급화되었으며 박세리 붐 이후 골프는 대중화되어갔다. 자녀들에 대한 스펙쌓기, 어학연수 등의 교육 투자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낡은 주택단지는 재개발, 기존의 복도식 아파트는 재건축을 통해 타워형 럭셔리 아파트로 변해갔다.

 

당시 크게 흥행을 한 영화제목으로서 2005년의 “달콤한 인생”, 2007년의 “우아한 세계”가 있었는데 영화 내용을 떠나서 당시 보통의 중산층은 그런 삶을 꿈 꿀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양극화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환율이 우리 경제 사정을 말해준다

 

 

우리 경제가 어떤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단 하나의 지표를 꼽는다면 그건 원달러 환율이다.

 

환율이 1200원 아래면 경제가 그래도 괜찮은 것이고 그 이상이면 어려워지는 것이며 1350원 이상이 되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 된다. (현재 1390원 대이니 진짜 어렵다.)

 

환율이 내려가면 생필품의 가격이 내려가고 그로 인해 일반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고환율은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전 국민을 가난하게 만든다.

 

이에 그간 환율의 변동 추이를 돌이켜보면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2-2007년 사이 저환율이었으며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순간적으로 환율이 급등했다가 2009년 하반기부터 급락해서 그런대로 대략 12년 간 1200원 밑에서 이어오다가 2022년 미국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서부터 다시 환율이 치솟은 상태이다.

 

 

2009년 이후 풍요의 시대는 사라졌다

 

 

하지만 웰빙 즉 풍요의 분위기는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나빠진 것이 컸다.

미국 금융위기는 당시 우리나라의 중국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빠른 시일 안에 극복되었다. 하지만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은 그 무렵부터 긴장의 끈을 풀지 않고 외형성장보다는 수익성을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 이에 상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공채 중단 등 많은 면에서 고용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자 당장 급해진 것은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이었다.

 

이에 청년실업이 늘어나더니 2011년 3포세대란 말이 등장했고 2014년부터 청년취업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2015년부터 N포세대란 말이 일반화되었다.

 

젊은 층은 현실을 자각하고 직업적 안정성을 중시하게 되면서 한때 공무원 붐이 일었다. (이에 노량진 학원들이 떼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 또한 잠시였다. 공무원 사회의 경직성과 민원처리, 저임금 등으로 공무원 붐은 급격히 식어버렸다. 9급 공채시험 경쟁률이 인기가 뜨겁던 2011년에 비해 1/4로 줄었다.

 

그러자 온라인 쇼핑몰 창업 붐이 일었고 또 유튜버 붐이 일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게 절대 쉽지 않다. 그 또한 “레드 오션”이다.

 

 

대졸 백수가 최고치라고 하니 

 

 

오늘 아침 뉴스에 보니 대졸 학력 이상의 비경제활동인구가 405만명을 넘어 1999년 통계집계 이후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란 내용이 있다.

 

역대 최고라 하니 걱정이지만 내용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구직에 나서는 35세 미만의 청년들 숫자 자체가 줄고 있어서 예전 같으면 취업 에 나름 여유가 있어야 하건만 일자리 공급 자체가 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청년창업을 강조하면서 한때 바람을 잡았던 것이 결국 별 성과를 보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기성층 또한 초조 불안

 

 

그런가 하면 40-50대의 기성층은 어떨까? 하면 그 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그리 좋지가 않다. 몇 년 전부터 이른바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 중에는 물론 20-30대도 있지만 언제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지 모르는 불안감과 초조감을 가진 기성층의 비중도 상당하다.

 

2019년 영화 “기생충”이 대박을 쳤고 2021년에는 “오징어게임”이 또 그랬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액면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말이다. 현 시국과 상황이 어렵다, 죽겠다 하지만 이 또한 나중에 더 어려워지면 지금의 세월 또한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어, 하고 그리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 약간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데 나 호호당이 그런 거 다 떠나서 가장 두려워하는 바는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결혼하지 않거나 짝이 없이 혼자 사는 젊은 세대들이 나중에 겪게 될 엄청난 외로움의 문제이다.

 

건강할 땐 괜찮다, 돈벌이가 되면 또한 괜찮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능력 떨어지고 병들었을 때 누가 그들을 붙들어줄 수 있을까? 누군가 곁에 있어서 병시중을 들어주는 것과 혼자 아무 소리도 못하고 끙끙 아픈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그런 힘든 경우가 앞으로 10년 후면 만연할 것 같으니 정말 걱정이 태산이다.

 

 

대한민국을 병문안해야 할 것 같아서 

 

 

이제 대한민국이 그다지 건강하지가 않다. 글을 통해서라도 아픔을 쓰다듬고 위로해주는 얘기를 많이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운명에 관한 얘기도 여전히 이어가겠지만 말이다.

 

학전의 김민기가 어젯밤 죽었다. 한 시대가 훅-하고 지나간다. 그와 함께 한 세월은 분명 좋았던 시절이었다. 哀悼(애도)의 마음을 올린다.

 

골든 타임이란 용어, 들을 때마다 기분이 상하네

 

 

어떤 무엇을 하거나 반대로 막기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이런 식의 말을 종종 듣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은근히 기분이 상한다. 대책마련을 강조하는 말인 줄은 알겠는데 여태껏 저런 얘기 들은 것 치고 나중에 일이 제대로 처리되었다는 소식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든타임 또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란 것이 어둡기 전의 황금빛 놀 같은 거구나 하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오늘 마약과 관련한 뉴스에 “전문가들은 더는 대한민국에 마약 안전지대는 없고, 지금이 마약 예방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마약이 일반화되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는가 싶어서 은근 불쾌하다. 그간의 경험이 그러하니 말이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이렇다. 우리의 경우 2015년도부터 마약 청정국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2016~2020년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때 당국에서 적극적으로 강하게 똘똘 뭉쳐야 했는데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과 맞물려 적기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18년 무렵 나 호호당도 고등학교 후배이자 경찰 고위간부로부터 그 비슷한 얘길 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이란 걸 하는 과정에서 검경 간에 갈등을 조장했고 그 바람에 마약단속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아무튼 “마지막 골든타임”이란 말을 들으면 그냥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출산, 골든 타임이 이미 지났으니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이다. 그간 저출산과 관련해서 골드 타임이란 말이 무수히 나왔고 결국 안 되더니 얼마 전 윤 대통령이 ‘인구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나름의 대책도 제시했다. 일종의 “저출산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인데 이에 기억나는 게 있다. 예전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게 그것이다.

 

 

예전 시절 범죄와의 전쟁은 성공을 했는데

 

 

그 시절 “범죄와의 전쟁”은 충분히 크게 성공을 했다. 사실 그 전쟁의 본질 또한 마약, 특히 필로폰과의 전쟁이기도 했다.

 

조폭들 또한 세를 불리고 커가기 위해서는 자금줄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필로폰은 부산 일대에서 생산되어 일본으로 밀수출되었는데 이게 당시 조직폭력배들의 중요한 이권사업이었다.

 

나 호호당은 1955년 부산 출생이고 1974년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 오기 전까지 부산에서 성장했다. 1960-1970년대 당시 늘 듣던 얘기가 어디에 가면 히로뽕 공장이 있다는 얘기, 경찰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해서 공장이 탈 없이 돌아간다는 얘기, 조폭들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얘기, 일본의 재일교포나 조총련을 통해 히로뽕을 밀수출해서 거액을 벌었다는 얘기 등등 그런 얘기들이 무성했다. 100퍼는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고 사실이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반의 한 급우는 기말 고사 때면 한의원을 개업 중인 아버지가 준 히로뽕을 복약하고 이틀 정도는 꼬박 밤을 새워서 공부하고 있다는 얘기를 자랑삼아 내게 해주기도 했다. 그 정도로 당시 부산에선 히로뽕이 넘쳐났다, 다만 국내 소비보다는 일본 밀수출로 외화벌이가 컸다. 늘 만성적인 무역적자로 허덕이던 우리나라였기에 사법 당국도 눈감아준 구석도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는 늘 해외공작자금 부족으로 허덕이던 안기부에서 히로뽕 밀수출에 관여한다는 소문도 나돌 정도였다.

 

1987년 우리산업이 급성장하고 3저 호황으로 엄청난 무역흑자가 발생하자 노태우 정부는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조폭들의 주요 자금줄인 필로폰 단속에 나선 것이 범죄와의 전쟁 이면에 놓인 본질이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충분히 신뢰할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들은 바 있다.

 

 

골든 타임, 이젠 듣기 싫은 말

 

 

아무튼 그때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란 말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골든타임이란 용어가 일반화되고 빈번히 쓰이면서부터 가령 어떤 일의 골든타임이다 하면 으레 되지 않는 일이 되고 말았다.

 

골드 타임이란 말은 일본식 표현이고 원래 용어는 골드 하워(Golden Hour)이다. 원래 군사용어로서 작전에 있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뜻하는 말인데 용례가 넓혀지면서 재난이나 사고 발생 시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대를 말하는 것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 하나는 사진예술가들이 많이 사용한다, 가령 어떤 풍경을 카메라로 가장 멋지게 포착할 수 있는 시간대는 생각보다 아주 짧은 데, 때로는 10분 이내일 때도 있는데 이를 골드 하워라 부른다.

 

 

저출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서 

 

 

다시 돌아가서 대통령이 저출산 비상사태를 선언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란 것은 여야 정치와 국민 모두 공감하겠지만 과연 우리가 저출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가능성이 커보이진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쩌면 저출산으로 인한 악영향을 최소화시키는데 진력을 다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저출산을 기본 흐름으로 받아들이면서 가야 하지 않나? 싶다.

 

 

도시화, 저출산의 근원적인 원인

 

 

저출산의 원인에 대해 수많은 주장과 설이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도시화(urbanization)에 있다. 너무나도 근원적인 이유라서 사람들이 종종 망각하기도 한다. 특히 거대 도시 또는 여러 도시들이 네트워크화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는 출산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우리로 치면 서울과 수도권에 해당된다. 태어난 지역이나 지방을 떠나 여러 이유에서, 즉 진학이나 직장, 또는 짝을 찾아서 일단 서울 수도권으로 진입하고 나면 벗어나기 힘들다. 어떻게 해서든 수도권에서 비비면서 살고자 몸부림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수도권의 모든 것, 특히 집값 또는 주거비가 엄청나게 비싸다. 그래서 연애도 어렵고 결혼은 더더욱 어려워지며 출산은 그야말로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수도권으로 올라와야한 하는 참으로 딱한 현실이다.

 

주요선진국들이 일반적으로 저출산 경향을 보이는 까닭도 결국 거대 도시들이 밀집된 메갈로폴리스 때문이라 하겠다.

 

 

선각자들의 앞선 경고

 

 

한 때 진지하게 탐독했던 책이 있으니 20세기 초의 독일 역사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남긴 “서구의 몰락”이다. 책에서 도시화는 문명의 출발점이자 완성이란 말을 했는데 저출산은 어떤 면에서 도시화가 가져온 문명에 있어서 나름 어떤 종말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하면 이븐 할둔이 남긴 “역사서설”에 보면 그 역시 도시화는 문명의 정점이자 해체의 시작이란 말을 남기고 있다.

도시에 살면 여러 면에서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인프라가 좋아서 많은 것들이 안락하고 편리하지만 사실 그 반대급부도 엄청나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 중에 하나가 오늘날엔 저출산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저출산은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든다

 

 

최근 논의되는 연금개편도 그렇다.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피라미드 구조를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연금제도인데 저출산으로 줄어들고 있으니 만족할만한 방안이 나올 수가 없다.

 

“나의 해방일지”란 드라마, 거대 도시에 붙어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몸부림과 노력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즐겁게 시청했지만 현실은 결국 저 드라마와 반대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저씨” 또한 대도시에서의 황폐한 삶을 견디게 하는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서울의 후미진 동네가 나오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동네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올 해 2024년부터 15년 동안 숱한 험로와 애로가 있을 것이란 점을 생각하면 그 어떤 분야도 이제 골든 타임은 다 지나간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정치는 날로 더 사나워질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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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유튜브 동영상에서 어느 경제 지식인이 우리나라 정치권과 정권들은 부동산 살리기 올리기 정책을 계속 쓰고 있는데 이렇게 나가면 정말 답이 없다는 지적을 하면서 한탄하고 있었다.

 

출산율 저하로 미래 성장률이 암담한 판국이고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절반 정도는 건설 방면의 투자다 보니 집값만 올라서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계속 이런 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밑에 댓글을 보니 대통령실에선 왜 이런 사람을 중용하지 않느냐? 하면서 격하게 공감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조금 얘기하면 이렇다.

 

정권이나 정치인들 또한 부동산 살리기 또는 유지하는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일반인들과 마찬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잘 알고 있다.

 

 

대중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인 탓에 

 

 

물론 야당인 경우라면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부동산 정책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할 순 있겠지만 가령 야당의 중진 이상이 되면 입을 조심하게 되고 더구나 정권을 잡게 되면 기존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정권이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정권을 유지하고 나아가서 재창출하려면 계속해서 유권자들의 눈치를 잘 살펴서 영합해야 한다. 그렇기에 정권 스스로 개혁을 추진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떤 정권도 개혁을 시도하긴 어렵다

 

 

개혁, 말이 쉽지 그게 실로 어렵다. 개혁을 추진한다, 당위성과 방향이 맞는지 검증하기 어렵다. 하지만 반발은 엄청나다. 소수 기득권의 반발이 아니라 다수 대중의 반발과 저항을 감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임기 내에 개혁이 효과를 나타낸다는 보장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개혁을 시도한다면 그 정권부터 당장 차기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다. 정당 또한 그렇다. 야당인 경우라면 지적질을 할 수 있지만 여당이라면 섣불리 나서기 어렵다.

 

그렇기에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만 정권이나 대통령실에선 앞서 유튜브의 경제지식인 같은 사람을 쉽사리 불러다 쓸 수가 없다, 중용하기가 어렵다. 이런 사람을 쓴다는 것은 改革(개혁)을 하겠다는 것이고 정권을 잃어버리는 패망의 지름길인 까닭이다.

 

가령 부동산 가격을 낮추는 정책을 쓴다.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건설투자를 줄이고 그 자금을 다른 방면의 연구개발에 쓰겠다고 하자.

 

집값은 떨어지는데 원금과 이자 부담은 그대로이다. 가계부채가 엄청난 판국에 경기가 나빠져서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커지고 자영업자들은 도산으로 내몰릴 것이다.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얼마 되지 않아 금융위기가 닥치거나 패닉이 벌어질 것이다. 집값 낮추기가 아니라 현 상태에서 안정화만 시켜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그런 정권을 유권자들이 차기 선거에서 용서해줄 것 같은가? 당연히 야당은 저런 엉터리를 뽑아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공세를 할 것이고 말이다.

 

 

때가 되면 절로 이루어지는 법이라서 

 

 

그렇다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정하는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개혁은 시도할 수 없는 것일까? 나 호호당의 답은 ‘거의 그렇다’ 이다.

 

다소 충격적일 것이다. 이에 저 친구, 호호당, 이상한 놈 아냐? 하겠지만 나 호호당 역시 민주주의를 믿고 신봉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때가 되면 개혁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답은 다른 데에서 찾아진다.

 

개혁이란 어지간해선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고 나중에 몰리고 또 몰려서 구성원 전체가 모두 죽을 지경이 되면 어떤 우연한 계기에 삽시간에 떠밀려서 하게 된다. 騎虎之勢(기호지세),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 되면 원하고 말고를 떠나서 가는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우리 국운 상 개혁은 2032년 

 

 

그리고 나 호호당은 우리나라에 개혁이 찾아드는 때를 알고 있다. 8년 뒤인 2032년에 시작되어 10년간 따라서 2042년에 마무리될 것이다. 우리 國運(국운)이 그러하다.

 

60년 순환에 있어 춘분의 때로부터 소만에 이르는 때가 바로 개혁의 기간이다. 한 해로 치면 3월 20일경부터 5월 20일에 이르는 두 달의 기간이다.

 

지금은 개혁을 준비하는 때, 따라서 뭔가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하지만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얽혀서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그러니 상황은 날로 어려워져 갈 것이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결국 어느 순간 개혁을 불러온다.

 

예전에 그 개혁을 박정희가 주도했고 이제 독재체제가 아니다. 하지만 가능하다. 이번에는 우리 국민 전체가 원하지 않아도 필요하면 다 함께 개혁을 시도하고 또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레벨 업이 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만 더 어려워져야 할 것이고 그러기까지 시간이 좀 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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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비중이 큰 나라들은 결국 고환율

 

제조업이 강하고 수출비중이 큰 나라들, 독일이나 일본, 타이완,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들은 경제가 어려워지면 자연스럽게 자국의 통화 가치를 낮추는 방식, 즉 고환율 쪽으로 간다.

 

최근 일본 엔화가 저처럼 초약세를 보이는 것도 결국 이런 까닭이고 우리도 이미 고환율로 가고 있다.

 

각 나라 정부는 채권 발행으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길 좋아하는 법이지 재정의 건전성에 그다지 신경을 쓰진 않는다, 그건 선거에서 패배하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각국 정부야말로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는 공장이자 물가를 올리는 으뜸 주범이다. 이에 대한 견제장치가 중앙은행, 우리로선 한국은행이다. 민주화되고 선거를 치르는 나라에 있어 중앙은행의 주목적은 정부가 만들어내는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해서 경제 전체가 망가지지 않도록 금리를 조절하는 일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한 법인데 현실에선 중앙은행의 장을 대통령이 지명하는 까닭에 중앙은행 역시 어느 정도 상호 타협적으로 눈치를 봐가면서 금리정책을 펼친다.

 

현재 미 연준(FED)의 파월 의장같은 경우 노골적으로 바이든 정부에 대해 협조적이다. 이로 인한 부정적인 효과가 아직 본격화되진 않았지만 나타날 경우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돌아와서 얘기이다. 결국 인플레이션은 지속되기 마련이고 고금리 정책 또한 유지될 수 없으니 나라 경제 특히 수출이 중요한 제조업 선진국의 경우 문제를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고환율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젠 의미가 없어진 '환율전쟁'이란 단어

 

 

그런데 우리만이 아니라 주요 경제국들이 다 함께 고환율을 택할 경우 즉각적으로 환율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환율전쟁은 이미 벌어져왔는데 다만 이번에 우리 역시 견디지 못하고 그 판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유로화는 2008년 유럽연합 출범 이후 줄곧 약세를 걸어왔고 중국 위엔화 역시 2014년 이후 약세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일본 엔화 역시 2011년 아베노믹스로 해서 약세로 전환되었는데 최근 더더욱 약세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 파운드화 역시 마찬가지로 꾸준히 약세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 원화가 최근 연일 약세, 즉 고환율 쪽으로 가고 있다.

 

따라서 미국 달러만이 유일하게 강세인 시국이 되고 말았으며 그 바람에 이젠 ‘환율전쟁’이란 말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 이상한 글로벌 경제가 되었다.

 

 

미국으로 전 세계의 돈이 다 몰려들었으니 

 

 

달러만 유일하게 강세, 이른바 “킹 달러”이다 보니 전 세계의 돈이란 돈은 죄다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 결과 미국이 잘 살게 되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미국은 현재 엄청난 양극화로 인해 상당수 사람들에겐 참으로 살기 어려운 곳이 되고 말았다.

 

주식 역시 이른바 “매그니피션트 세븐”이라 불리는 기술기업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파벳, 메타, 테슬라, 아마존과 같은 극히 일부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크다. 주가 역시 양극화란 얘기이다.

 

(우리나라 서학개미들 역시 미국 증시에 무려 800 억 달러 이상의 거금을 투자해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국민연금 쪽에서 국내증시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평가도 했다고 한다.)

 

 

고환율 또한 일종의 세금이다

 

 

다시 돌아와서 얘기이다. 인플레이션과 고환율은 일종의 세금과도 같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환율이 오르면 수입산 원자재나 소비재가 오르기에 그 또한 인플레이션과 그 효과가 동일하다. (조만간 바나나나 체리와 같은 수입 청과물을 쉽게 먹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우리 역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니 대다수 국민들의 살림은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정치 쪽에선 우리에게 표를 주면 더 많은 돈을 나누어주겠다는 선전공세를 더욱 펼칠 것이다.)

 

원달러 환율의 1년 이동평균값이 5월 둘째 주부터 2009년 금융위기 당시의 최고치인 1324원 70전을 위로 돌파해서 지금도 상승해가고 있다. 이번 주 들어 1335원 44전을 기록하고 있다. 외환당국은 1400원에선 필사적으로 막아보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 그건 모르겠다.

 

 

금년 미국 대선 이후를 주목하라

 

 

장차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쳐오고 생겨날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모든 것은 올 해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 벌어지기 시작할 것이란 점이다.

 

우리 국운으로 살펴보면 금년 10월부터 내년 1월 사이에 중요한 변수들이 나타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알림: 이제 어느 정도 몸이 나아서 8월부터 사무실을 열고 상담도 재개할 생각이다. 자연운명순환학 강의나 증시강의 또한 가을엔 열어볼 생각이다.)

 

 

운명을 연구하다 보면 과거 인물들에 대해 많이 찾아보게 된다. 그들의 생년월일 가능하다면 생시까지 찾아서 사주를 구성해보고 그를 바탕으로 그들의 인생 프로필과 비교 검토해가면서 운의 순환을 연구해본다.

 

위키피디어나 구글, 때로는 미국의 점성술 사이트나 기타 단체나 연구소의 문서 등등 그야말로 다양한 사이트들을 만나게 되고 또 들어가서 검색하게 되는데 그간 이런 식으로 찾아서 연구해본 사람이 대략 17 만 명 정도는 넘었을 것 같다.

 

뭐 그렇게 많은가? 그거 진짜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게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가령 미국의 국부라 할 수 있는 링컨 대통령을 검색해가다보면 그 아내나 부모, 주변 사람들, 심지어는 링컨을 암살한 사람까지도 연구해보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숫자가 많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일어나 일과 사건들까지 연구하는 과정에서 으레 수반되는 연월일시 검색은 17만 개가 아니라 아마도 100 만에 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여전히 수시로 이런 검색 작업을 한다. 그간 궁금증을 해결한 것이 많아서 예전보다야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해본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하다 보면 늘 좀 아쉽고 민망한 게 하나 있어서 얘기하고자 한다.

 

서구나 미국의 인물들에 관해 생년월일시를 알아보면 그를 밝히는 출처가 분명하거나 정확할 때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역시 오류가 거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서양의 경우 아주 오래 전 사람까지도 중요 인물인 경우 생년월일 때론 시까지 밝혀져 있다는 점이다. 가령 로마제국의 초대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경우 기원전 63년 9월 23일에 태어나서 서기 14년 8월 19일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고 그 소스도 분명히 밝혀져 있다. 무려 2 천 년 전의 사람인데도 그렇다.

 

(아쉬운 것은 그의 양부이자 영웅인 카이사르의 경우 출생이 밝혀져 있지 않아서 늘 아쉽긴 하다. 반면 카이사르의 부하이자 나중에 클레오파트라의 애인이 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경우 생년월일이 밝혀져 있다.)

 

운명과 사주를 연구함에 있어 서양의 자료들이 훨씬 풍부하고 정확하다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또한 우리에 비하면 훨씬 상황이 좋다. 한일중을 비교하면 우리가 가장 떨어진다. 그리고 오류 토성이이다. 그래서 민망하고 좀 아쉽다.

 

생년월일에 관한 것은 사주나 운명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본 데이터에 속하는 것인데 그게 우리의 경우 가장 부정확하고 오류가 많다는 점이다.

 

예로서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의 경우 위키를 보면 1502년 1월 3일에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출처가 아예 없다. 그러니 믿을 수가 없어서 다른 자료를 찾아본다. 다행히도 나무위키에 가면 1502년 1월 3일로 되어 있고 또 주가 붙어 있다. 그 내용인 즉 음력 1501년 11월 25일이고 한국은행권 천원권이나 대부분의 위인전기에는 음력 생일에 맞춰 1501년생으로 표기한다고 되어 있다.

 

친절하게 밝혀져 있어 정확할 것 같지만 이 또한 틀렸다. 1502년 1월 3일은 이른바 예전의 서양 달력인 율리우스력이지 오늘날 전 세계가 쓰는 그레고리력이 아니다. 그레고리력으로 변환하면 1502년 1월 13일이 된다.

 

위키나 여타 사이트에 생년월일이 밝혀져 있는 경우 자체가 적을 뿐 아니라 기재되어 있다 해도 거의 예외 없이 율리우스력으로 되어 있어 오히려 음력 날자를 확인해서 그레고리력 날자를 뽑아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이런 오류는 없다.

 

구글에 가면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 사이에 상호 바꿔주는 프로그램도 있건만 국내 쪽 사람들은 이런 기본 정보나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일반적인 것 같다. 알았다면 기왕지사 음력을 양력으로 바꿀 때 그레고리력으로 한 번 더 손을 봐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최근 보면 그래도 나무위키가 위키피디어보다 조금은 더 나은 것 같긴 하다.)

 

사주명리학이란 게 시중에 널리 퍼져있으니 사람들은 흔히 이런 운명학 방면에 있어서 우리 쪽의 깊이나 폭이 상당할 거라고 막연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사실 오해 또는 착각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을 떠나서 기초 데이터, 정보의 정확성 측면에서 우리는 아직 많이 後進(후진)이다.

 

포털에 가보면 툭 하면 유명인들의 사주분석 글이 올라온다. 정확한 생년월일시를 확인해보지 않은 채 ‘썰’을 풀고 있다. 도사 코스프레를 하는 나름의 대가들도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웃어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