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 구도를 가져왔다. 사진은 흐린 바다였으나 난 고용한 아침의 해변을 그렸다. 아침의 밝고 투명한 공기와 맞은 편 산 중턱의 물안개, 바람에 일렁이는 차가운 초록의 바다와 파도, 그리고 강아지 두마리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넣었다. 물론 나 호호당이고 아들이다. 붉은 색의 모래사장과 차가운 바다, 투명한 공기, 뭐 이런 것들의 대조가 그림의 의도였다. 산을 좀 더 푸른 색조로 깔았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되었을 것이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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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에 나오는 사진을 캡쳐해서 그렸다. 명암 대비에 마음이 매료되었다. 당초 의욕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의도는 달성했다. 광활한 사막과 그 사이의 강 위로 빛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모습이 얼추 나왔으니 말이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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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연밭은 처량해진다. 

 

 

가을장마 제법이더니 어제는 약간 흐렸고 오늘 역시 가는 비가 조금 내린다. 빨래가 마르지 않아 마나님께서 툴툴댄다.

 

이번 비가 신기한 것은 북태평양에서 들어오는 비구름이 아니란 점이다. 인도와 미얀마 사이의 벵골 만에서 펌프질이 된 비구름이 중국의 운남, 보이차로 유명한 그곳을 지나 쓰촨성의 충칭, 그리고 양자강 남안으로 흘러와선 상하이 부근에서 서해로 들어와 비를 뿌리고 있다. 동남풍이 아니라 서남풍인 것이다.

 

초가을 비가 내릴 때면 으레 시든 연밭이 생각난다. 처서가 지났으니 이제 연꽃도 지고 연밭도 시들 때가 되었을 것이다. 꽃과 잎 다 지고 물위로 뻗은 가지만 남은 연밭은 참으로 처량하다. 비가 약간 거셀 것 같으면 수면 위로 빗방울이 다시 튀어 오르면서 희부연 물안개가 서린다. 볼 만 하다.

 

 

시절의 영화를 뽐내는 물가의 풀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연못 주변의 풍경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물가의 풀들을 모두 애호한다. 약간 소개한다.

 

떠다니는 놈들이 있으니 뿌리도 물 안에서 떠다닌다. 흔히 부평초라 불리는 개구리밥, 생이가래, 부레옥잠, 자라풀 같은 놈들이다.

 

그런가 하면 뿌리는 물속 땅에 내리고 물위로 떠있는 아이들도 있다. 수련이나 마름, 가래, 순채, 이런 아이들인데 수련은 정말이지 사람을 매혹시킨다. 모네의 그림을 연상해보라, 환상이지 않은가.

 

물가에서 자라는 놈들 중엔 창포와 갈대, 부들, 물억새가 있다. 그 중에서 창포와 부들을 유난히 좋아한다. (부들을 말려서 방석을 만들면 그게 바로 부들방석이니 그야말로 부들부들하다, 쿠션이 아주 좋다.) 물가 근처엔 더러 수선화도 보인다.

 

물가나 연못 위엔 연꽃만 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놈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 계절을 치장한다. 時節(시절)의 榮華(영화) 아니겠는가!

 

비오는 날의 연못이 운치로는 으뜸이지만 밝고 화창한 여름날의 연못 역시 대단히 멋지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수면 위에 어려서 환상적이다.

 

꽃 지고 잎사귀 말라서 비틀어지거나 떨어지고 그저 물 위로 솟은 가지만 남은 연밭은 그 시절이 지났음을 알린다. 感傷(감상), 보노라면 마음이 슬퍼진다. 물론 늦가을에도 석양빛을 받아 은빛 광채를 뿌리는 억새와 갈대가 있지만 그건 사실 게임 끝난 뒤의 여흥을 위한 갈라쇼(gala show)일 뿐이다.

 

 

좋아하는 시 한 수 

 

 

연밭 얘기로 시작했으니 나 호호당이 좋아하는 漢詩(한시) 한 수를 소개해볼까 한다.

 

사실 詩(시)란 물건은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가 없다. 그 언어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그걸 그대로 느껴야지 번역하게 되면 그건 시의 魂(혼)이 날아가고 그저 유해만 남는다.

 

하지만 유해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나 호호당이 번역한 것부터 들려드린다. 제목은 水閣(수각)이고 중국 송나라 시절의 張耒(장뢰)라고 하는 문인이 썼다.

 

장맛비 길게 이어지니 연못물 찰찰 넘쳐나려 하고

긴 여름 처마 밑 창가엔 서늘한 공기 넉넉하여

근무 중 잠시 눈을 붙였더니 창랑의 꿈을 꾸었는데

누운 채 연밭에 이는 바람소리 빗소리를 듣노라.

 

원문은 이렇다.

 

積雨荒池水欲平,軒窗長夏有餘清. (적우황지수욕평 헌창장하유여청)

公餘一枕滄浪夢,臥聽風荷受雨聲. (공여일침창랑몽 와청풍하수우성)

 

풀이해보면 이렇다.

 

장맛비 길게 이어지니 말랐던 연못에 물이 넘치려하고 창가에 다가가니 서늘한 바람 넉넉히 일고 있구나, 근무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낮잠을 잤더니 창랑의 꿈을 꾸었다네, 깨어났지만 딱히 바쁘지도 않고 해서 게으름을 피우면서 그냥 누워 있는데 창밖 저편 연밭에는 바람이 스치고 못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려오네, 이런 내용이다.

 

일곱 자로 된 구절의 마지막 소리가 平(평), 淸(청), 夢(몽), 聲(성)이니 받침소리가 모두 ‘이응’으로 맺고 있어 운율이 좋다.

 

 

滄浪(창랑)이란 단어

 

 

사실 滄浪(창랑)이란 단어는 중국 문학사에서 너무나도 유명하다. 詩經(시경)과 함께 중국 고대문학의 쌍벽을 이루는 楚辭(초사)에 실린 굴원의 漁父詞(어부사) 속에 ‘창랑의 물’이란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다.

 

창랑물 깨끗하면 갓끈을 씻고 창랑물 더러우면 발이나 닦으렴 하는 표현이 그것이다. 혼자 고고하게 놀다보면 인생 피곤해진다, 너!, 하는 경고성 멘트이다. 굴원은 그 점을 잘 알면서도 에이 더럽다! 하면서 강물에 몸을 던졌다. 절개이고 지조이다.

 

어부사에서 굴원이 말한 창랑의 물은 오늘날 중국 후난성의 강인 바, 세월과 함께 점점 먼 거리로 나가서 중국 동해 바다, 즉 우리나라로 치면 서해 그리고 남중국해의 멀고 먼 섬으로 바뀌고 그 섬엔 신선이 살고 있다는 식으로 바뀌어왔다. 滄浪洲(창랑주)가 그것이다. 서해 바다의 三神山(삼신산)과 유사한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滄浪(창랑)이라 하면 중국인들에게 바다 멀리 푸른 물결 흰 파도가 이는 이상향을 뜻한다.

 

또한 창랑은 滄浪亭(창랑정)으로 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창랑정은 약 3천평 정도의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저택이다. 상하이 서쪽에 있는 쑤저우에 있다. 쑤저우는 청나라 시절부터 이른바 번화로운 江南(강남)을 대표하던 도시로서 운하가 사통팔달되어 있다. 쑤저우는 청나라 시절의 뉴욕이었다.

 

庭園(정원), 중국식 표현으론 園林(원림)을 갖춘 대저택들이 쑤저우에 가면 참으로 많은데 졸정원, 유원, 사자림과 더불어 창랑정은 쑤저우 4대 정원으로 손꼽힌다.

 

창랑정이 더 유명해진 것은 바로 중국 수필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浮生六記(부생육기) 속에 언급된 때문이기도 하다.

 

관련해서 나 호호당은 어쩌다가 중국 문학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으면 “부생육기”를 읽어보신 적이 있냐고 물어보곤 한다. 아니오, 모르는데요, 하면 속으로 저 양반 허세를 부리네, 하고 생각한다. 읽었다고 답하는 이가 있으면 음- 좀 그렇군 하고 여긴다. 그러다가 혹시 원문으로도 읽으셨는지요? 하고 물어본 뒤, 예-하는 답을 들으면 중국문학 전문가로 인정해준다.

 

그 정도쯤 되면 唐詩(당시)나 宋詞(송사) 역시 익히 알고 있을 것이며 唐宋傳奇(당송전기)에도 밝을 것으로 생각해도 별 문제가 없다.

 

오늘날의 중국은 대국주의를 내세우는 탓에 시쳇말로 ‘어그로’를 끌고 있고 그 결과 우리들에게 영 별로인 나라가 되고 말았다. 모두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의 잘못이다. 하지만 청나라 중기까지의 중국은 그야말로 문화대국으로서 우리에게도 좋은 영향을 많이 끼쳤다. 事大(사대)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나 호호당은 현대 중국에 대해 별로 얘기하지 않는다. 시시한 나라로 보기에 관심이 없다.

 

창랑이란 단어는 국내의 경우 유진오 선생이 남긴 “창랑정기”란 단편소설이 있다. 소설 속의 창랑정은 오늘날 마포구 당인동에 있는 서울화력발전소에 있었던 조선말 고급 관리의 저택이다. 물론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유진오, 대단히 명석한 분으로서 젊을 땐 맑시스트였고 법학자였으며 일제 말기엔 친일 문학인이었으며 해방 이후엔 우리나라의 제헌 헌법을 기초했으며 이승만 정권 당시의 토지개혁에 큰 공을 세웠다. 아울러 나 호호당의 모교인 고려대학교 총장을 지낸 분이며 박정희 시절엔 신민당 총재를 지냈으니 그게 참 복잡하다.

 

(이처럼 우리 근현대사는 한마디로 진흙탕이라 명료하게 정리하고 평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공부하고 연구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이제 슬슬 마칠 때가 되었는데 조금만 더 얘기해본다.

 

 

주돈이의 애련설

 

 

흔히 성리학이란 불리는 신유학의 주요 창시자이자 “태극도설”을 남긴 “주돈이”는 연을 몹시 사랑한다 해서 愛蓮說(애련설)이란 시를 남겼다. 유교의 가치관을 연꽃을 통해 표현한 시이다. 나 역시 연꽃을 좋아하지만 물가의 모든 풀은 다 사랑한다.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젊은 시절엔 돈을 많이 벌어서 멋진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 다양한 풀과 꽃을 심고 멋진 정자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나 호호당의 중요한 인생 목표였다. 그 바람에 남원 광한루의 연못도 봤고 부여 궁남지도 구경했으며 기타 여러 곳의 연못과 삼신산을 구경했다. 나 호호당도 화가이니 만일 그게 성취되었다면 한국의 모네가 될 수도 있었겠다 싶다. (물론 내 그림 수준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연꽃, 그냥 蓮(연)이라 하자.

 

조선왕조가 남긴 아름다운 궁전인 창덕궁의 안쪽 정원에 가면 무엇보다 뛰어난 부용지와 부용정이 있다. 더 깊숙한 곳에 가면 단아하고 아름다운 연못과 정자가 또 하나 있다. 연못 이름은 애련지이고 정자 이름은 애련정이다. 이 정자는 조선 숙종, 장희빈의 남편이었던 그 유명한 양반이 지었다. 애련지, 애련정, 모두 주돈이의 애련설에 따왔다고 한다.

 

창덕궁엔 그리고 관람지도 있다. 묘한 것은 춘당지는 창경궁 영역이란 점이다.

 

그리고 경복궁엔 가면 향원지와 향원정이 있는데 이 역시 주돈이의 애련설 중에 “향기가 멀리 간다”는 문구에서 따왔다. 경복궁엔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경회루가 있는 연못이 있다. 합쳐서 6개의 연못, 그 주변의 누각과 정자는 조선 왕조 시절 정원 양식의 白眉(백미)라 하겠다.

 

 

연못이란 연꽃이 있는 못을 뜻한다. 

 

 

그리고 참! 잊을 뻔 했다. 연못이란 말 자체가 연을 심어놓은 못, 한자론 蓮池(연지)가 된다는 점 알려드린다. 연못에 연꽃이 없다면 그건 연못이 아니라 그냥 못인 셈이다.

 

이제 파란 하늘 흰 구름도 보고 싶다. 장마 지겹다. 

꽤나 전에 정선 동강의 가수리를 막 지나 언덕 길에서 이런 사진을 찍었다. 여름 끝자락의 하늘은 화창했다. 늦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그곳은 전혀 덥지 않았다. 강원도는 커다란 냉장고와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강물은 비가 와서 불어나 있었고 물살도 제법 거셌다. 최근 재미가 난 가로가 긴 그림이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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