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語(시어)는 침이 되어 가슴을 찔러오니

 

 

최근 시집을 한 권 받았다. 읽다 보니 가슴에 가시가 몇 개 푹-하고 찔러 들더니 깊이 박혔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본 이는 알겠지만 가늘고 예리한 침 끝이 피부와 근육 속으로 들어올 때 찌릿하고 새큰거린다. 굵은 침은 당연히 조금 더 묵직하다.

 

묘한 것은 그럼에도 그 부위가 시원하다는 점이다. 피부가 가려운 것은 긁으면 되지만 피부 아래 어딘가가 근질대거나 불편하면 방법이 없다. 그럴 때 침이 들어오면 그래, 거기야, 찔러주니까 아프지만 시원하네! 한다. 이번 시집의 느낌 또한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詩(시)를 즐겼다. 중학교 때 우연한 계기로 한문을 배웠고 암기력이 좋았던 까닭에 대학 시절엔 중국 당나라 시절의 시, 이른바 唐詩(당시)를 몇 백 수와 英詩(영시) 수 십 편을 암송할 정도였다.

 

하지만 뭘 알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시라고 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조금씩 그 맛과 깊이를 알아가는 것임을 지금에 와서 느낀다.

 

 

詩興(시흥)을 다시 일깨워준 시인 안상학 

 

 

자연순환운명학을 다듬어갈 무렵 한 시인을 만났다. 안상학, 공부하러 왔는데 강의 후 회식자리를 통해 많이 친해지게 되었고 또 그 분의 시가 너무 훌륭해서 매료되었다. 杜甫(두보)의 시를 연상케 하는 그의 시가 너무 좋아서 읽고 또 읽었다. 나는 그에게 자연순환의 이치를 알려 주었고 그는 내게 한동안 잠들어 있던 내 안의 詩興(시흥)을 강렬하게 일깨워주었다.

 

안상학 시인은 경상북도 안동 사람인, 그 바람에 안동 가송리란 곳, 그야말로 안동의 絶景(절경)을 안내해주었고 밤을 꼬박 새우면서 함께 술을 마셨다.

 

그 이후 나는 다시 맘껏 시를 즐기기 시작했고 지금껏 즐겨오고 있다. 중국 고금의 시인들과 우리와 일본의 시들, 멀리 서구의 시인들, 최근엔 릴케가 남긴 “두이노의 비가”에 흠뻑 빠져들기도 했다. 릴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독일어를 다시 공부하기도 했다. 일본어도 한동안 공부했는데 그 역시 일본의 시를 제대로 읽어보기 위함이었다.

 

詩人(시인), 그들은 우리가 평소 잘 거들떠보지도 않는 물건들, 사람들, 사물들을 갑작스럽게 神靈(신령)한 그 무엇으로 소개시켜주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오늘날의 진정한 靈媒(영매)인 셈이다.

 

 

오래 전이 詩語(시어)들이 다시 생각나서 

 

 

시적 감수성이 되살아나자 오래 전에 내다버린 많은 시집들, 특히 꽤나 심취했던 오규원 시인의 詩語(시어)들이 귓전에 다시 들려왔다. (여전히 망각하지 않고 있었으니 들렸으리라.)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空想(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 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제목을 다시 찾아보니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이다.)

 

나 역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런 잠 이루지 못하는 밤 아니 새벽에 이 말들이 귀에 들리고 울렸다.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하는 저 말, 그래 그게 맞다, 조진 몸이면 더 조진다 한들 뭔 상관?, 그러자 또 들려왔다, “詩(시)는 敗北(패배)이니 승리여 오해말라”는 시인의 통쾌한 말도 들려왔다.

 

오규원 시인의 시들은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생밖에”라고 일러 주었다.

 

그랬다, 나 호호당의 삶 역시 여느 사람처럼 조금도 근사하지 않다, 근사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내가 시를 좀 즐기며 산들 더 밑질 일도 없을 것이고 그렇기에 앞으로 승리란 명패가 붙었다고 해서 크게 관심 두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

 

산다는 것, 삶이라고 하는 것은 승리라든가 패배라든가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 다짐은 일종의 해방, 나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수십 억 인간들 중에서 나 호호당이 겨우 내가 나라는 전혀 근거 없는 이유만으로 승리할 필요도 없고 그러니 패배할 것도 없다. 그냥 살다 가는 것, 그게 그냥 가장 좋다, 하고 다짐했다.

 

오규원 시인의 시들을 한참 좋아하던 시절은 1980년대 전후였는데 그게 30년이 흘러 내 속에서 되울림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편해졌고 다시 많은 시인들을 시집을 통해 만났지만 시흥을 다시 촉발한 계기는 안상학 시인과의 만남이었다.

 

그 이후 나는 그냥 시를 즐겼다. 편히, 거리낌 없이.

 

 

거들떠 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하여 

 

 

그러다가 며칠 전 또 한 권의 좋은 시집과 만났다. 시인의 이름은 박인숙, 시집의 제목은 “침엽의 생존방식”이었다. 작년 8월에 나온 시집이다.

 

시집 제목이자 그 안에 실린 시 “침엽의 생존방식”을 여기에 옮겨본다.

 

활엽을 꿈꾼 시간만큼 목마름도 길어

긴 목마름의 절정에서 돋아난 가시들

침엽은 햇살도 조금 바람도 조금

마음을 말아 욕심을 줄인다

대리운전하는 내 친구 금자

밤마다 도시의 휘청임을 갈무리하는 사이

보도블록 위에 포장마차로 뿌리내린 민수씨

그들은 조금 웃고 조금 운다

바람 속에 붙박여 시간을 견디는 일이

침엽의 유전자를 가진 자들의 몫이므로

뾰족이 가둔 눈물이 침엽의 키를 늘이고

세월을 새겨나가는 것

그들의 계절에는 극적인 퇴장

화려한 등장 따위는 없다

한가한 날 고작 흰 구름 몇 가닥

바늘 끝에 걸쳐두거나

흐린 겨울 하늘이 너무 시릴 때

눈꽃으로 피사체를 만들어보거나

혹한의 계절에도 홀로

숲의 푸른 내력을 지키는 건 침엽이다

그들의 날카로운 생존방식이 숲을 깨우고

바람의 깃털을 고른다

햇살도 이 숲에선 금빛으로 따끔따끔 빛난다

 

그렇다, 우리 모두 넓적하고 두툼한 활엽을 매달고 햇빛을 듬뿍 받으며 살았으면 한다. 하지만 현실은 기껏해야 가느다란 침엽이 고작인 경우도 있다. 아니 흔하다. 이에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고 살긴 살아야 하니 방법은 욕망을 안으로 말아 들인 뒤 시간을 忍苦(인고)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내 팔자지 뭐 하면서.

 

침엽을 매달고 태어난 그들은 박수갈채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일도 또 짜잔-하고 멋지게 나서는 일은 없다, 관심의 바깥이다. 하지만 온 천지에 엄혹한 겨울이 찾아들었을 때 숲의 푸름을 지켜가는 이들은 오히려 침엽, 침엽수들이다. 겨울 빈 숲에 찾아든 바람도 재우고 햇빛도 침으로 찔러서 따끔따끔 광채를 더한다, 침엽수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게 된다고 본다. 그런 까닭에 나 호호당은 왜 모기가 존재해야 하는지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왜 지구상에 있어야 하는지 늘 묻게 된다.

 

물론 이런 생각은 인간의 입장이다. 그런 인간의 처지에서 볼 때 창조주가 있다면 그 분의 失手(실수)라 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실수를 가장한 더 깊은 뜻이 담겨있을 수도 있겠다. 반대로 창조주의 ‘있음’을 부정하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도 있겠다.

 

 

우리 모두에겐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 

 

 

그런데 사실 이런 질문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들에겐 존재하는 어떤 것에 대해 존재의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그런 게 있었어? 하고 궁금해 하실 것도 같다. 그래서 알려드린다. 그 능력의 이름은 바로 ‘사랑’이라고.

 

방금 소개한 시 한 편은 평소 우리 눈에 밟히는 않는 주변의 존재들도 좀 보아주기도 하고 만져주기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침엽으로 찔러오고 있다. 찔렸으면 당연히 아파야 한다. 그래야만 신경이 살아있고 그로서 죽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겠다.

 

이제 마무리를 한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작고한 오규원 시인이다.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생밖에”

 

하지만 그 말을 이렇게 정정해야 하겠다.

 

詩(시)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저 우리의 오롯한 삶만이 담겼다고.

 

(그저께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안상학 시인이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안상학 시인이 카톡으로 알려왔다. 너무 반가워서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최근 이석증으로 몸이 불편한 탓에 당장은 참는다, 다 나으면 올 겨울 쯤 안동 가송리로 내려가서 안동소주를 놓고 또 다시 밤을 새워 고금의 일을 얘기하고 시에 대해 맘껏 풀어볼 생각이다.)

 

글 한 편 쓰고나니 다시 조금 어지럽다. 쉬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