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전에 맺은 인연

 

아주 오래 전에 어떤 수학자가 쓴 “유한 속의 무한”이란 책을 만나서 한 3년 정도 흥미롭게 읽고 또 공부한 적이 있다. 원 제목은 The Infinite in the Finite, 구글로 검색하니 1995년 1월 1일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라 되어 있다. 524페이지나 되는 제법 두툼한 책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난 그 책을 그 해 가을에 사서 읽었다. 그러니 26년 전의 일이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단박에 매료되었다. 유한한 것, 즉 한정이 있는 것 속에 무한, 즉 한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니 나름 섹시(sexy)하지 않은가! 해마다 책을 정리하는 탓에 언제 처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그 책을 통해 나는 圓(원)이라는 것과 파이란 놈을 새롭게 만났다.

 

원주율, 원의 지름에 비해 원의 둘레가 갖는 비율을 파이라고 한다. 그리스 문자 Π의 소문자 π로 적는다. 원주율은 보통 3.14로 외우게 되지만 사실 그 값은 소수점 다음으로 무한히 이어지는 無限小數(무한소수)이다.

 

가령 3.141592653589...가 그것인데 여기에서 숫자 뒤의 ‘...’은 무한히 이어진다는 뜻이다. 즉 무한소수이자 無理數(무리수)이다.

 

무리수는 irrational number를 번역한 말이다. 이성적이지 않은 수, 처음 발견했을 때 너무나도 이상해서 말도 되지 않는 해괴한 수란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자연은 곡선과 원을 좋아한다. 

 

 

圓(원), 영어로 circle, 이 녀석은 참으로 재미난 놈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체나 물건들은 직선보다는 곡선(curve)으로 되어 있다. 자연 속의 운동하는 것들도 대부분 직선보다는 곡선을 그린다.

 

어린 시절 야구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시절엔 투수가 던지는 直球(직구)가 진짜 직선을 그리는 줄로 알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직구가 직선으로 날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꽤나 놀랐다. 직구라는 말은 따라서 당연히 틀린 말이지만 그래도 흔히 사용한다. 돌직구, 뭐 이런 식으로. 영어론 fastball, 速球(속구)라고 하는데 그게 훨씬 맞는 말이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놈들은 스트레이트하거나 선형(linear)을 그리지 않는다. 직선을 찾아보긴 어렵고 곡선 또는 포물선을 그린다. 중력이나 공기 등등 일직선 운동을 방해하는 놈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렇다. 자연은 복잡하다, 그래서 직선을 보기 어렵다.

 

 

문명은 기하학과 함께 발전해왔다. 

 

 

이 대목에서 시작해보자. 약간 에둘러 가긴 하지만 인류의 문명은 농업경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농업은 땅이 중요하다. 땅이 크면 산출량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땅의 크기를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으니 그게 바로 기하학이다.

 

가령 왕이나 권력자들은 신하와 관료들에게 이렇게 명령했을 것이다. 야, 이놈들아, 어서 빨랑 전국의 농지들을 측량해서 내게 보고해라, 그래야 가을에 가서 얼마나 세금으로서 곡식을 얼마나 거둘 것인지 알게 아니겠냐고, 냉큼 실시!

 

기하학을 영어로 geometry 라 한다. geo-는 땅, metry 는 측정한다는 뜻이니 땅의 길이와 넓이를 측정하는 기술로 시작되었다. 가장 재기 쉬운 땅은 사각형의 땅이다. 그렇기에 square 란 영어단어는 사각형이란 말도 되고 제곱하다는 동사형도 된다. 정사각형은 한 변의 길이만 알면 그것을 제곱하면 되니 그렇다.

 

정사각형의 땅, 얼마나 좋은 땅인가, 흔히 말하는 네모반듯한 땅이니.

 

 

井田(정전)법

 

 

고대 중국 周(주)나라 시절 실시되었다고 전해지는 전설 중에 井田(정전)법이 있다. 정사각형의 땅을 우물 井(정)자 형태로 9등분한 다음 8가구에게 1/9씩 나누어준다. 나머지 1/9에 해당되는 땅은 8가구가 공동 경작해서 그 산물을 세금으로 바친다. 정전법이 과연 실시되었느냐의 여부는 여전히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아무튼 이상적인 토지분배제도의 모범으로서 전해져온다.

 

땅을 정사각형으로 측정하고 다시 그 땅을 1/9씩 정사각형으로 나누어준다, 그러니 당연히 기하학이 필요했을 것이다.

가령 9개로 나뉜 네모반듯한 땅에서 밀을 90포대 생산했다고 가정해보자. 10포대는 나라의 세금으로 바친다. 그러면 세율은 어떻게 될까? 하고 계산해보면 1/9, 즉 11.11%가 세율이다.

 

(물론 이것 말고도 나라에선 인력을 동원하고 특산물을 가져가는 등등 여러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오늘날보다 세율이 훨씬 낮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국가는 세금을 더 많이 받아서 복지나 교육 등등에 쓰고 있다. 큰 정부가 그것이다.)

 

 

삼각형을 다루다 보니 발생한 대형 사고 

 

 

돌아와서 얘기이다. 기하학에서 가장 편한 것은 사각형이다. 즉 사각형을 측정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땅이 다 사각형으로 잘라지진 않는다. 그러니 삼각형을 다룰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피타고라스 선생이 등장한다.

 

직각 삼각형일 경우 빗변의 제곱이 두 직각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고 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그것이다. 그러자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직각변이 각각 1이라 할 때 그 제곱의 합은 2가 되는데 그게 빗변의 제곱과 같으니 그 제곱근을 구할 것 같으면 이상한 숫자가 나온다. 말도 되지 않는 수, 비이성적인 수, 즉 無理數(무리수)가 등장한다.

 

2의 제곱근은 無限小數(무한소수)로서 가령 1.4142135..., 식으로 무한히 이어져간다. 만물이 整數(정수)의 비례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했던 피타고라스인지라 그 제자들은 이 이상한 숫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비밀로 했고 심지어 외부에 발설하는 자는 죽였다고 하는 전설마저 전해진다.

 

측정을 위해 기하학이 만들어지고 발전했는데 가장 단순한 도형인 삼각형, 오각형이나 육각형도 아닌 겨우 삼각형에서에서부터 無理(무리)한 일이 발생했으니 이를 어쩐다! 인류의 지혜는 엄청난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無理(무리)를 뛰어넘은 인간

 

 

그런데 말이다, 우리 인간이 어떤 동물인가? 가령 1 만 명을 모아놓으면 그 중에 반드시 고지능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자가 한 놈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를 천재라고 부른다. 하늘이 부여한 재주란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돌연변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인데 바로 그들이 문명을 발전시켜온 주역들이다.

 

그 결과 말이 되는 수(유리수), 말이 되지 않는 수(무리수)를 떠나서 우리 인간들은 꾸역꾸역 기하를 포함해서 학문과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론 천재님들 덕분이다.

 

삼각형의 경우 골 때리는 문제와 봉착하긴 했어도 결국 삼각법을 개발했다. 바로 trigonometry, 삼각형에 관한 기하학이 그것이다. 이는 또 나중에 아서 그러니까 오늘날에 이르러 평범한 수준의 고등학교 학생들을 사정없이 괴롭히는 ‘삼각함수’로까지 발전했다.

 

 

원(circle)이란 놈, 최대의 난제

 

 

그런데 말이다, 기하학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조상들은 급기야 최대의 난관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바로 원(circle)에 관한 측량 또는 문제가 그것이다.

 

원이란 놈, 이거 알고 보면 엄청난 怪物(괴물)이다.

 

삼각형을 비롯해서 다각형은 어찌어찌해서 그 넓이를 그런대로 잴 수 있게 되었지만 정말 골 때리는 놈은 동그라미 모양이었다. 원 또는 동그라미는 우선 변(side)이 없다는 점에서부터 다른 도형과는 차이가 난다. 가령 팔각형의 경우 변이 8개이다. 그런데 원 또는 동그라미는 변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예 없다.

 

변이 있어야 그 놈을 재어서 뭘 어떻게 해볼 터인데 아예 변이 없으니 그걸 어떻게 잰단 말인가? 하는 문제에 우리 조상들이 봉착한 것이다.

 

영리한 우리 조상들은 일단 원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원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타원, ellipse 가 아니라 그냥 원, 퍼펙트한 서클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참고로 타원의 영어단어 ellipse 에 대해 잠깐 얘기하면 뭔가 모자란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왔다는 점 알려드린다. 타원은 중심에서 원주까지가 일정한 원이 아니라 ‘삐꾸’가 나서 일그러진 원이라 보면 된다.)

 

 

자연 속에선 원이 아주 흔하다는 놀라운 사실! 

 

 

그런데 자연은 놀라운 현상을 보여준다. 자연 속에선 삐꾸가 난 타원보다 오히려 완벽한 형태의 원을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빗방울이 수면 위에 떨어지면 동심원을 그려낸다. 완벽한 원이다. 무지개가 떴다, 안벽한 원의 반쪽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전자신호나 빛, 그리고 소리가 퍼져나갈 땐 원을 그린다. 바닷가에 나가 자세히 보면 파도 역시 끊임없이 원을 그리면서 밀려온다. 그런가 하면 우주 속의 별이나 행성들도 거의 원의 입체형인 球(구)에 가깝다.

 

자연계에서 도형을 보고자 할 것 같으면 정사각형, 정삼각형 등등 ‘정’자가 붙는 도형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보면 원은 흔히 보인다. 뿐만 아니라 타원보다 원이 더 흔하다는 점, 이거 놀랍지 않은가!

 

바로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은 1995년 가을 앞에서 소개한 책을 만났을 때 어쩌면 자연과 절대의 세계는 원이란 놈 안에 감추어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얘기는 짧게 쓸 생각이 아니다. 편하게 그리고 나름 흥미롭게 써볼 생각이다. 시리즈 글이란 얘기이다. 물론 도중에 다른 글도 올릴 생각이다.

 

11월에 수채화 전시회를 한다. 그 바람에 작품 마무리에 바빠서 일주일간 글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제 행정처리만 하면 되는 터라 편하게 글을 쓰게 되었다.

8월에 그린 드로잉이다. 다시 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 올린다. 작업실 에서 교보 쪽으로 걷다 보면 만나는 이면 도로이다. 현장에서 펜으로 스케치를 한 후 나중에 담채를 올렸다. 트럭은 사진을 찍은 뒤 나중에 확인하고 그려넣었다. 자주 가게 되는 골목이고 내가 잘 가는 일식집이 내 눈엔 보인다. 뒤쪽의 높은 아파트는 대우 푸르지오 써밋 아파트이다. 몰랐지만 써밋이란 이름이 붙으면 푸르지오 중에서도 럭셔리 아파트라고 한다. 그래 정상에 올랐으니 떨어지지 말고 잘 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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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다, 산책을 했다. 맑고 투명한 빛이 찻길에 쏟아지고 있다. 한낮의 기온은 아직 약간 덥다. 나는 그늘 아래로 걸었다. 이것을 뭐라 불러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김춘수 시인이 떠올랐다. 그가 말하길 '이름을 불러 주기 전까진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 눈앞에 있고 내가 그 속에 있는 이것을 뭐라 불러야 하지 싶었던 것이다. 셔터를 누르면서 떠올랐다. 아, 이건 그냥 늦가을이야! 하고. 나는 늦가을 속을 걸어갔다. 

 

늦가을 속을 걷다가 언덕 위의 하늘과 소나무들을 만났다, 아니 작은 나무들과 풀과도 만났다. 어느 누가 나를 유혹하는 거지? 궁금했다. 하늘일까? 저 소나무들의 늘씬한 허리춤일까? 그냥 그늘 속의 풀들일까?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멋진 놈은 그냥 늦가을이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월은 멋지다. 

 

바깥이 아니라 서울 안인데 벌써 담쟁이들도 예쁜 색을 드러내고 있다. 눈길이 갔다. 그래 늦가을의 정취는 역쉬! 빨갛고 노란 담쟁이지, 하다가 아니 콘크리트 벽에 서린 이끼 역시 빠지면 섭하지, 암 그렇지, 했다. 그래 너도 굳이 담쟁이 이끼 콘크리트 하지 말고 그냥 모두 늦가을이라 하지 뭐. 거리에 쏟아지는 늦가을 햇살과 그늘, 소나무와 하늘, 풀잎들, 담쟁이와 이끼, 모두 늦가을이라면 나 호호당 역시 다른 이의 눈에 늦가을로 보일까? 그게 궁금해졌다. 늦가을 남자, 또는 늦가을 영감.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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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머리가 무거워도 약간만 미열이 있어도 혹시 그 놈일까? 하며 신경을 곤두 세운다. 누굴 만났더라? 하고 며칠 사이의 접촉을 되돌아본다. 이런 이게 참 힘들다. 백신을 두 번이나 접종했지만 그럼에도 담배와 시가를 피우는 나 같은 사람은 걸리면 골치 아프다. 바깥 나들이도 잘 하지 못한다. 늙은 탓에 힘이 든다. 몇 년전 다녀온 풍경이다. 35번 국도를 타고 낙동강 지류를 따라가면 청량산을 만난다. 늦은 가을이었고 온 산은 단풍, 물가는 억새와 갈대 등 수초들로 가득했다. 언젠가 그려봐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었다. 다시 가봐야지 하고 다짐한다. 가게 되면 차를 세우고 얘기해야지, 아, 오랜 만이야, 잘 있었어? 아, 참, 신령님도 잘 계셨구요, 하고.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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