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겨울밤 울적해서 지인과 함께 집 근처의 맥도날드 24시 가게를 찾았다. 일동제약 사거리 근처 매장이다. 2층에서  치즈스틱과 커피를 마시면서 내려다본 경치가 예뻐서 찍었다. 건너편의 헤어샵과 콩나물 국밥의 불빛이 아름답다. 저 바깥은 영하 12도, 엄동이다. 젊은 날엔 추위를 무시했는데 이젠 겁이 난다. 다시 건강해지고 몸이 뜨거워져서 추위를 비웃을 날이 왔으면. 

어제 오후 나절 날도 푸근했다. 산책을 하다가 남쪽 하늘을 올려보니 앙상한 가지 위 푸른 색이 차갑지가 않았다. 어쭈, 제법 포근한 맛이 있네, 아직 겨울이 한창이지만 그래 가끔은 저런 색깔도 보여줘야지! 하면서 흥겨워했다. 하지만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영하 10도를 오르내린다 하니   겨울은 겨울이네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겨울이 싫어졌다. 옛 사람들이 봄을 기다렸던 심정, 이제 십분 납득이 된다. 성남 비행장에서 군용기가 한 대 빠르게 지나갔나 보다. 비행운이 길게 드리워져있다. 

 

시각은 5시 46분, 일몰 후 15분이다. 어두워지고 있지만 아직 밤은 아닌 저 광경, 눈에 덮힌 지붕들과 나무 우듬지 위로 빠르게 밤이 내리고 있다. 어둑어둑, 곧 중간의 빛은 사라지고 빛과 어둠으로 나뉘리라. 이 애매한 시각, 일몰 후 밤이 되기 전의 짧은 이 애매한 중간의 빛과 풍경을 사랑한다, 사랑해왔다. 새들은 오늘 먹지 않았으니 배가 고프려나? 아니면 하루 이틀 못 먹는 것은 자연에선 그냥 일상의 일일까?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가고 있다. 내 삶도 마찬가지. 

 

강아지가 숨을 거두었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鳳(봉), 김봉. 예전 동작동 살 때 길에서 데려온 유기견이라 나이를 모르지만 2010년 5월5일 우리에게 와서 2023년 12월31일에 내 품을 떠났다. 13년여의 세월이었다. 이번의 봉이까지 그간 3마리의 강아지를 떠나보냈고 미니 토끼 한 마리 그리고 초겨울 동작동 뒷산 공원에서 봉이가 발견한 버려진 고슴도치 한 마리, 모두 다섯 마리를 떠나보냈다.

 

이번 봉이를 보낼 때에도 여러 차례 嗚咽(오열)했고 많은 눈물을 쏟았다. 그 바람에 1월1일 새해 첫날 나는 아내와 함께 경기도 광주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저녁엔 아들과 함께 강아지 뼛가루를 들고 나가서 녀석이 늘 다니던 산책길을 따라 조금씩 뿌려주었고 일부는 양재천에 걸린 다리 위에서 흐르는 물위에 뿌렸다. 흰 가루가 물속에서 안개처럼 퍼지면서 한강 쪽으로 흘러갔다.

 

이제 중년의 강아지 한 마리만 남았는데 이젠 나도 나이가 70인 탓에 마지막 강아지가 될 것 같다. 2003년부터 20년간 강아지들과 많은 즐거움을 누렸고 또 가슴 아프게 떠나보냈다. 한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사진은 마지막 잠든 모습이다. 또 만나자.

내린 눈이 녹으면서 안개 진하게 피어오른다. 새해 첫 아침의 풍경이다. 8시 58분이었다. 온도가 올라가면 곧 저 안개는 걷혀지지라. 새해 전망이 흐리다가 아니라 저 안개 속에 어떤 즐겁고 또 신기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고 공상해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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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지난 아침 일출시각, 동남쪽 창이 눈부시다. 내가 글을 쓰는 방이다. 문이 얼어서 열리지 않았다. 보다가 창위에   Baby  Sun ! 이라고 손가락으로 썼다. 그래 이제 새해가 시작되고 있잖아, 다시 한 번 열심히 달려보자고, 하면서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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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동지, 7시 43분에 베이비 햇님이 떠오르고 있다. 그 여린 빛이 거실 벽에 와 닿고 있다. 벽시계는 8시 4분. 오른쪽 그림은 오래 전에 그린 그림이고 그림자는 당연히 사진을 찍는 나 호호당이다. 새빛이 내게 새삶을 준비하라고 권유해오고 있다. 그래 또 살아봐야지, 힘을 내야지 한다. 

 

 

지난 밤 자정 넘은 시각, 거실에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게 동지 전날의 밤이다. 동지는 죽음의 가장 깊은 곳 즉 深淵(심연)이니 2023년의 호호당은 이제 죽었고 2024년의 호호당을 준비해야 하겠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존재가 비정상이고 無(무)가 정상으로 느껴지니 내 살아있음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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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기 전부터 내리는 눈. 이번 겨울 첫눈이다. 눈 내리는 거야 좋지만 오후부터 기온이 급강하해서 근 열흘간 강추위라는데 저거 다 얼어버리면 골치 아프다. 반갑지 않은 눈인 셈이다.  그레도 첫눈이라 예쁘긴 하다. 마음이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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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짓달 해는 동남쪽에서 올라온다. 사진 속 건물의 아주 오른 쪽이다. 여름 하지 때엔 해가 건물의 아주 왼쪽에서 오르는데 말이다. 해뜨는 하늘 높이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방향은 동해쪽. 일본이나 테평양 방향. 저 비행기는 화물기일까 아니면 중국이나 더 서쪽에서 날아오는 여객기일까? 를 보면서 비행하는 기분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이제 곧 2023년의 묵은 해를 보낼 참이다. 올 해 여러 모로 부진했다, 담배 금단 증세가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독자님들의 많은 성원이 있었기에 이 정도로 지낼 수 있었다, 진심 감사 인사 올린다. 고마웠습니다! 새 해에는 훨씬 활발하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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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를 다녀왔다. 장소는 일반 관광객들이 몰라서 찾아가기 어려운 화양면 서쪽 여자만 쪽 포구이다. 해가 서쪽 바다로 떨어진 직후, 5시21분이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며 돌아오는 나 호호당의 실루엣을 여수의 지인이 순간 멋지게 포착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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