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기 경 중국에서 성리학이 등장하자 그에 발을 맞추어 새로운 명리가 등장했다. 그 내용은 기본적으로 균형 즉 발란스(balance)였다. 이는 성리학 그리고 주자가 중시한 中庸(중용)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중용은 흔히 말하는 사서삼경의 四書(사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그 중용이다. 대학과 중용은 원래 별도로 있던 것이 아니라 무척이나 오래된 서적 禮記(예기) 안에 들어있던 일부 내용인데 주희가 이를 신유학, 성리학의 핵심 사상으로 세웠다.
중용이란 간단히 말해서 치우지지 않는 것, 그리고 어떤 선을 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가령 조선시대 학문을 열심히 닦았던 정조는 활을 대단히 잘 쏘았다.
살이 과녁에 꽂히면 그를 的中(적중) 또는 中(중)이라 한다. 서른 발을 쏘는 과정에서 스물아홉 발이 다 과녁에 들어갔을 때 정조는 마지막 화살을 일부러 허공으로 쏘았다. 다 맞히는 것은 중용에 어긋난다고 여긴 것이다.
중용이란 퍼펙트한 거, 즉 완벽함이라든가 백점 만점을 좋게 여기지 않는 정신이다.
정성을 다하는 것은 좋으나 완벽한 것에 집착하다 보면 지나치기 마련, 즉 오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변태가 되기 때문이다. 才勝德(재승덕), 재주가 덕성을 넘어서는 것을 경계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신명리학 또한 중용의 정신에 따라 균형을 중시했다. 적당해야 좋다는 사상이다. 너무 튀지도 그렇다고 너무 평범한 것도 다 좋지 않다. 약간은 튀는 구석이 있되 모든 면이 그러면 좋지 않다, 대충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새로운 명리였다.
균형을 중시하는 것, 오행의 균형 그리고 상생상극의 적절함이 있어야 좋은 팔자라는 것인데 이런 방식의 사주보는 법, 즉 看命(간명)법을 子平(자평)법이라 한다. 지금의 명리학은 이 자평법을 근간으로 조금씩 발전해왔다.
오늘은 설날이기에 좀 더 가벼운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이에 중용과 오행의 상생상극에 대해선 나중에 별도의 글을 마련하고자 한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한 해 身數(신수), 운세를 보고자 찾는 것이 있으니 土亭秘訣(토정비결)이다. 이 책에 대해 조금 얘기 드릴까 한다.
토정 이지함은 조선시대 당시 좀 튀던 인물이다. 1500년대 사람이고 명문 출신이었지만 당시 주류 학문인 성리학보다는 의약·복서·천문·지리·음양 등 다소 사이드 계통의 학술에 관심이 더 많았으며 부귀와 출세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토정비결은 이지함이 지은 책이 결코 절대 아니다. 사람들로부터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이지함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토정비결이 만들어진 시기 또한 1910년 한일합병 이후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지함의 이름을 팔면서 꽤나 인기가 있었다. 지금도 시중에 책이 있고 또 팔려나간다.
얘기가 나온 김에 이른바 무슨무슨 秘訣(비결)이란 것에 대해 좀 얘기할 까 싶다.
지금도 유튜브에 가면 중국에서 나온 推背圖(추배도), 즉 등을 밀어주는 그림이란 예언서에 관한 영상들이 많이 있다. 당나라 시절 7세기 경의 奇人(기인)이었던 이순풍과 원찬강이 공동저자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내용을 보면 측천무후의 등장에서부터 등소평의 등장까지 기가 막히게 예언하고 있고 정확하다. 마지막으로 제3차 세계대전까지 예언하고 있다.
개뻥이다! 등소평의 등장을 예언하고 있다면 이 책이 만들어진 시기는 등소평의 집권 이후, 즉 1980년대 이후라고 보면 된다. (나 호호당이 중국의 지인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이다.)
여기에 적당히 3차 대전 운운하면서 겁을 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책이 꽤나 팔렸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도 松下秘訣(송하비결)이란 책이 나와서 한동안 이목을 끌었다. 조선 시대 말기, 즉 19세기 사람인 송하노인이 썼다고 하는데 2003년에 출판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2 FIFA 월드컵, 노무현 대통령 당선 등을 예언하고 있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예언내용은 출판된 이후인 2004년부터는 죄다 틀린다. 따라서 이 책은 2003년에 누군가 지어서 바로 출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직도 개정판이 나오고 여전히 조금씩은 팔려나간다는 점이다. 몽땅 틀려도 그게 오히려 연막이고 언젠가는 기가 막히게 맞을 거야! 하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이런 종류를 圖讖(도참)이라 한다. 대부분의 도참은 오래 전에 어떤 기인이나 유명인사가 남겼다는 식으로 소개되지만 실은 바로 그 시대에 만들어지는 것이 기본이다. 또 때가 되면 그리고 사회가 혼란해지면 또 나올 것이다. 기대가 된다.
중국 사람들이 예로부터 가짜 만드는 일에 대단히 능숙하고 재주가 있다. 설날 잘 보내시길. 이동 중에 조심하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