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 중요하고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가치관”이라는 것이고 속말로 하면 “무엇이 중한디?”이다.
잘 살려면 가치있는 것을 잘 구분해야 하겠는데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는지 아주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 또는 어떤 대상은 그게 실로 어려울 때가 많다.
가령 천만 원이 백만 원보다 가치가 큰가, 이는 셈법을 익히고 나면 누구나 그 정도 판단은 할 수 있다. 아주 쉽다.
그런데 가치를 판단하기가 애매하고 어려운 것도 많다. 특히 시간이 지나야만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경우 정말 어렵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나름 감안하고 고려하고 계산해가면서 그 무엇을 판단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가령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절 대학을 마치고 일단 사회에 나가서 원치 않는 직장일지라도 취업을 하고볼 일인지 아니면 좀 더 공부를 해서 본인의 몸값을 높여가면서 기회를 엿볼 것인지, 이런 경우 미래의 일을 나름대로 계산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혼을 한다, 이 또한 미래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홧김에 결혼이란 계약을 파기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해보고 또 결정한 이상 미래의 결과에 대해 감당하거나 또 대처하겠다는 각오도 있어야 한다.
괜찮은 직장을 다니면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해도 다 지출할 게 아니라 미래에 대비해서 주식투자를 하거나 아니면 펀드에 가입해야 할 것이며 또는 부담이 되는 거액 대출을 안고서라도 아파트를 살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 산다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다. 끊임없이 불확실한 결정을 해가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게 더 나은 것인지 평소에도 부지런히 정보를 수집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살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미래가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정확하고 확실한 판단이나 결정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저 어떤 결정을 내린 다음 훗날 그 결과가 좋다면 과거의 그 결정이 좋았던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게 있다. 훗날의 결과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좋았다가 말았다가 하면서 변한다는 점이다.
바로 塞翁之馬(새옹지마)의 얘기가 그렇다. 처음엔 나쁜 일이었는데 나중에 복이 되고 또 복이 다시 화가 되고 이런 식으로 변해간다.
새옹지마란 말의 출처는 나 호호당이 너무나도 많이 읽어서 익숙한 중국 고전 淮南子(회남자)의 人間訓(인간훈) 편에 나오는 구절들을 압축한 말이다.
변방의 노인이 기르던 말을 잃었다가 찾았다가 하면서 화와 복이 번갈아드는 얘기를 곁들이면서 원 취지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잠깐 소개하고 싶다, 제법 흥미롭기 때문이다.
화와 복은 서로 바뀌어가면서 생겨나기에 그 변화를 내다보기가 어렵다. 禍福之轉而相生(화복지전이상생), 其變難見也(기변난견야).
이에 복은 화가 되고 화는 오히려 복이 되기도 하니 그 변화가 끝이 없으며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故福之爲禍(고복지위화), 禍之爲福(화지위복), 化不可極(화불가극), 深不可測也(탐불가측야).
이에 나 호호당이 하고픈 말, 드리고픈 말이 있다.
어느 날 때늦은 생각이 들고 이에 후회와 탄식을 할 때가 있다. 흔히 晩時之歎(만시지탄)이라 하는 거 말이다.
이는 삶에서 소중한 어떤 것을 나중에서야 알고 깨닫게 되었을 때 생기는 후회 또는 아쉬움이다. 그 바람에 아, 내가 이것을 조금만 더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실로 착각이다. 정확히 말하면 알아야 할 때 알게 된 것이고 깨달아야 할 때 깨달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늦게 깨달았다고 한탄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헛된 아쉬움 또는 헛된 욕심이란 얘기이다.
건강한 젊은이에게 건강이 소중하다고 얘기해주면 그 말을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까? 건강한 젊은이에게 소중한 것은 돈과 출세인 것이지 건강? 왜 그게 중요해? 그건 대부분이 가진 것이고 따라서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을 것이다.
사람은 어쨌거나 자신에게 모자라고 결핍된 것에 연연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건강을 다소 해칠지언정 무리해가면서 살을 빼는 처녀가 있기 마련이고 예뻐지기 위해서 성형외과를 찾는다. 심지어는 살을 빼는 과정에서 거식증에 걸려서 심할 경우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무엇에 대해 아차, 진작 그랬어야 했는데 하면서 때 늦은 감이 들었다 하자.
그랬을 때 당황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가령 건강을 다소 잃었다고 하자. 그간 건강했기에 그간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젠 예전만큼 몸이 성하지 않으니 건강을 잘 챙겨야 하겠네 하고 새기면 되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건강을 잃었기에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이지 잃기 전에 그러니까 성한 몸이라면 그냥 그렇게 계속 건강할 거라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고 아니야,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해, 하고 미리부터 대비하기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안전비용”이란 개념이 있다. 평소에 안전비용을 지출 또는 지불할 적엔 아깝다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때론 안전비용을 강제적으로 의무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경우나 제도도 많다.
대표적으로 “건강보험”이 그렇다. 국가가 강제가입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비용을 잘 내지 않을 것이니 그렇다. 이런 제도야말로 만시지탄, 때늦은 후회를 사전에 막는 좋은 제도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들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안전비용을 지불해가면서 살지는 않는다. 등한시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또 사실 굉장히 많고 다양하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게 더 정상이다.
모든 것과 모든 일에 만반의 준비를 철저히 하면서 산다? 그건 신경과민, 노이로제 히스테리가 되어 오히려 명줄 재촉한다.
그러니 늦었다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들면 그럴 필요 전혀 없다는 얘기를 드린다. 늦은 것이 아니요 적절한 때에 적절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 시점부터 잘 하면 되는 일이다.
현재를 즐겨라 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나온 말이다. Carpe Diem, 영어로는 seize the day 정도가 된다. 오늘의 해를 붙잡아라, 이런 말인데 무엇보다 어쨌거나 지금 눈앞의 이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만시지탄 그런 거 하지 말자.
호라티우스의 시를 통해 그가 읊은 것을 옮겨보자.
미래에 대한 믿음(또는 기대)은 최소한으로 해두고 눈앞의 지금을 붙잡아야 할 것이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훗날 니체가 말한 운명에 대한 사랑, 즉 運命愛(운명애), amor fati 또한 이미 호라티우스의 같은 시에 “주어진 대로 겪어내어야 한다”는 구절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를 즐기라는 말과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의미라 하겠다.
나 호호당, 운명학을 연구해온 사람이고 또 운명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주어진 시점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운명을 사랑하기 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입춘이 지나 乙巳(을사)의 해가 되었다. 바깥은 여전히 孟冬(맹동)이지만 봄의 기운이 일어서고 있다. 무엇보다 해가 길어지고 있지 않은가.
새해에 덕담 비슷한 거 하지 않았기에 늦었지만 오늘 이 글로 새해 열심히 잘 살아보자는 말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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