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이들과 밖에서 뛰어노는 것도 즐거웠고 그림을 즐겨 그려서 동네에 소문이 났었고 초등학교 가서부터 내 그림은 언제나 교실 뒤편 벽에 붙어있었다. 별명이 학교 대표 화가였다.

 

하지만 가장 즐기는 것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언가 상상하거나 궁리하기였다. 당시엔 중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이라 학업에도 신경을 써야 했지만 여전히 시간만 나면 혼자서 상상놀이 그리고 골똘하게 궁리하길 즐겼다.

 

참으로 수백 수천의 궁리 항목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미래를 어떻게 미리 알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늘 되풀이해서 떠올리곤 했다.

 

궁리하길 좋아하다보니 자연히 독서도 많이 하게 된다. 책에서 지식을 얻고 또 그를 바탕으로 궁리와 추론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이에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졸업 직전까지 집 근처의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쳇말로 책방골목에서 죽을 쳤고 친구들도 나를 보고 싶으면 으레 책방골목으로 찾아왔다.

 

그러다가 저녁 7시가 되면 용두산 공원 아래 중국 무술 도장에 가서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한 다음 청소를 했고 8시 반이 되면 사부님 앞에 가서 1대1 방식으로 漢文(한문)을 배웠다.

 

그렇게 보수동 책방골목과 무술도장을 매일 오가던 어느 날 어느 책방에서 ‘사주비전’이란 책을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무렵이었다. 저게 뭐지? 싶어서 들춰보니 사람의 미래를 태어난 연월일시에 근거해서 귀신 같이 예측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음, 이게 바로 예전에 우리 엄마가 내 팔자를 보고 왔다는 것의 이론적 바탕을 적어놓은 책이구나 싶어서 얼른 샀다. 1971년이었다.

 

그런데 벌써 신뢰가 가질 않는 것이 秘典(비전)이라면 비밀리에 소수의 제자에게만 전수하는 것이어야 할 터인데 이렇게 책으로 나와?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공부해보기로 했다. 읽어보니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전혀 아닌 것도 같았지만 친구들 만났을 때 ‘썰’을 푸는 용도로 쓰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게 나 호호당이 운명학과 만나게 된 첫 시작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1971년이었다. 왜 이 연도를 강조하느냐 하면 그로부터 정확하게 30년이 흘러 2001년에 나 호호당이 사주 가게를 열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순환한다. 그렇기에 30년은 그 반환점인데 나 호호당이 명리학이란 것을 만난 지 30년 만에 본격적으로 운명학에 뛰어들었다는 얘기, 다시 말해서 30년 전에 맺은 緣(연)이 30년 뒤에 가서 業(업)이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0년은 60년의 절반, 한 바퀴 빙 둘러서 돌아오는데 60년이 걸리는 동그라미 즉 원이 있다고 해보자. 어떤 점에서 출발해서 30년이 지나면 그 동그라미의 출발점에서 가장 먼 지점, 즉 반대되는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선생님 저는 정말이지 죽을 지경입니다. 더 이상 어려울 수가 없습니다, 하고 누군가 상담 시에 하소연을 해오면 그 말이 진실이라면 30년 뒤에는 가장 행복한 때가 되가 되겠네요, 하고 얘기해준다.

 

나 호호당은 기존의 중국 사주명리학에서 출발했지만 그것들이 지닌 수많은 논리적 虛構(허구)들을 알게 되었고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전혀 새롭게 길을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이후 오랜 연구 끝에, 사실 본의 아닌 연구, 도중에 수없이 포기했던 연구 끝에 마침내 자연순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 작용하는 순환의 이치,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자연순환운명학이 된다.

 

다시 다음 글에서 이어간다. 눈이 너무 내려서 큰일이다. 죄다 얼어붙을 것이다. 큰 길이야 염화칼슘 때문에 괜찮겠으나 여느 동네 길이나 골목길은 넘어져서 다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니 걱정이다.

 

그런 일을 걱정하는 것, 나 호호당 또한 그런 것을 조심해야 할 나이인 까닭이다. 예전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