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타버린 프랑스의 상징

 

 

노트르담 성당이 불에 탔다. 건물 중앙의 드높은 90 미터짜리 첨탑이 불길에 휩싸여 와르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첨탑을 밑에서 받치고 있던 12 사도의 동상도 함께 불에 녹아서 쓰러졌다.

 

에펠탑, 개선문과 함께 파리의 상징이자 프랑스의 상징이기도한 성당이 불에 타버렸으니 프랑스로선 일대 참변이 아닐 수 없다. 다행인 것은 건물의 얼굴, 파사드가 건재하고 또 많은 성유물(relic)들을 구했다는 점이다.

 

 

사건 사고가 그치는 않는 수난의 프랑스, 그 이유는?

 

 

프랑스의 그간 흐름을 살펴보면 이미 이전에도 적지 않은 일들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2005년 10월의 파리 소요사태로 인해 3개월에 걸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했던 일이 그것이다. 다시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2015년엔 엄청난 파리 테러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면 물론 많은 설명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운세로 말할 것 같으면 2011 辛卯(신묘)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순환의 시작점인 까닭이다.

 

입춘 바닥을 지나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렇기에 프랑스는 나름의 개혁을 이미 진행해가고 있으니 2017년의 선거혁명이 그것이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39세의 마크롱이 당선과 함께 총선에선 마크롱이 급조한 ‘전진’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으며 반면 기존의 거대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은 참패했다.

 

(과거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61년전인 1958년 드골 대통령에 의한 제5공화국 등장과 2017년의 마크롱 등장은 같은 맥락인 셈이다.)

 

 

개혁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어서

 

 

국운이 바닥에 이르자 등장한 새 물결인 마크롱과 전진당은 사회적으론 좌파, 경제적으론 우파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도 아니요 결국은 사회 전체가 어쩔 수 없이 양보를 하고 타협을 해야만 가능하다. 당연히 시일이 걸린다. 이에 거센 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얼마 전 프랑스 전체를 뒤흔든 노란조끼 운동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화재사고는 프랑스더러 쇄신 혹은 혁신을 하라는 일종의 계시이자 警鐘(경종)이라 보면 되겠다.

 

 

일본의 사례

 

 

일본의 경우 2011년 동북지방 대지진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을 일으켜 원자로 뚜껑이 날아갔다.

 

이 역시 일본의 국운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의 경우 2005 乙酉(을유)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그로부터 6년 뒤 재해가 발생한 것이다. 자연재해야 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으나 문제는 원자로 뚜껑이 날아갔다는 점이고 이는 사람으로 인한 災殃(재앙)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과거 1970-1980년대 동안 그야말로 정교한 첨단기술의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원전 사고 발생에 따른 매뉴얼이 엉망진창이었음을 드러낸 것이고 그로서 일본의 이미지는 철저하게 실추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개망신을 당한 셈이다.

 

그간 일본은 나름 절치부심하면서 적지 않은 분야에서 개혁을 진행해왔다. 물론 아직은 그 개혁이 성공적이었는지 그 여부를 판단하긴 이른 시점이다. 하지만 내년 2020년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일본의 중흥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0년은 일본 국운에 있어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立夏(입하)의 운인 까닭이다.

 

 

국제적 망신을 당한 독일의 신공항

 

 

그런가 하면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사한 사례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독일 베를린의 신공항 사건이다.

 

당초 2011년 10월에 개항할 예정이었던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공항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엉터리 공사, 무리한 설계 변경과 부실 공사, 감리 부실, 부정부패 등으로 인해 건설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개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내년 2020년 10월까진 개항할 것이라 하지만 현재 상태로선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아예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독일하면 그 역시 정밀 기술과 신뢰의 상징이다. 특히 공사 감리 면에서 최고로 알려져 있던 독일이 수도 베를린의 관문으로서 나름 야심차게 추진했던 신공항이 돈 먹는 쓰레기 꼴로 전락했으니 이야말로 엄청난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디젤 엔진 조작 사건과 함께 독일의 글로벌 위신도 크게 금이 간 상태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면 역시 독일의 국운과 관련이 된다는 얘기이다. 독일 역시 2010 庚寅(경인)년이 국운의 입춘 바닥인 것이다.

 

그 바람에 흔히 EU의 사실상 맹주로서의 독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현재 독일 역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특히 영국의 EU 탈퇴는 독일의 위상에 커다란 타격을 가한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그간 독일을 지탱해온 많은 미덕들이 무너져가고 있기도 하다. 정직한 독일이 디젤 조작으로 정직하지 못함이 드러났고 신공항 감리 부실로 독일의 기술적 신뢰성이 무너졌다.

 

 

체면불구의 미국이 된 까닭

 

 

미국의 경우 2013 癸巳(계사)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무너진 이후 비록 양적완화라고 하는 이상한 방법으로 일단 문제를 봉합하긴 했으나 사실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미국이다. 이제 체면불구의 미국이 된 것이다.

 

나 호호당은 미국이 올해 2019년부터 내년 사이에 전혀 예기치 못한 커다란 일이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해보고 있다.

 

 

입춘으로부터 10년, 시련과 쇄신의 기간

 

 

사람의 경우에도 입춘 바닥으로부터 10년 사이엔 많은 어려움이 닥친다.

 

어린 시절에 이런 운을 맞이하면 몸이 아프거나 기타 여러 사정이 생겨서 성장기를 어두운 기억으로 물들인다. 청년기에 이런 운이면 사회 진출에 많은 애로가 있기 마련이고, 중년에 이런 운이 찾아들면 실로 엄청난 고생을 겪게 되며 나이든 노인의 경우 사망하는 시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이나 사회, 국가를 떠나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으로부터 10년 사이엔 갖은 어려움이 생겨나고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는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인 까닭이다.

 

나 호호당이 판단하기로 글로벌 경제는 향후 15년 정도 동안 침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그 근거는 주요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이 운세 흐름 상 이미 바닥권에 들어서 있고 이탈리아는 2021년으로 예정된 입춘 바닥을 향해 접근해가고 있으며 중국 또한 이미 탄력을 잃고 한창 겨울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 또한 그런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 대한민국 경제의 경우 탄력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이다. 올해로서 해마다 양력 1월 초의 때, 추위가 몰아닥치는 小寒(소한)의 운이다.

 

그렇기에 올해 하반기부터 더욱 어려워져서 내년 2020 庚子(경자)년이 되면 본격 침체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수출이 결정적인 버팀목인바, 글로벌 경기가 침체할 경우 그로 인한 악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 역시 2024년 국운의 입춘을 맞이하게 되면 그로부터 10년간 숱한 시련과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낡은 가죽을 벗겨내고 새 가죽을 씌우는 것이 바로 改革(개혁), 즉 가죽 바꾸기인 까닭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무너져 내렸다. 충격적인 모습은 파리의 시민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모양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단순히 우연일까?


재미있게도 국운의 바닥에선 국가마다 상징적인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다. 2011년이 프랑스 국운의 바닥이었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크나큰 사건이 터진 것이다. 


비슷하게도 일본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있다. 일본은 2005년이 바닥이었고 동일본 대지진은 2011년에 있었다. 정교한 기술이 뛰어나다고 평가 받던 일본의 자부심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와 함께 박살나 버린 것이다.


이처럼 국운의 바닥즈음에는 상징적인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다. 이는 새로운 국운의 흐름속에서 낡은 것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강의해 보았다.

건강 문제로 글을 올리지 못했으니



한 주 내내 글을 올리지 못했다. 요추 이상으로 인해 걷기 어려울 정도의 통증이 왔다.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도 찍어보고 다른 경로를 통해 척추교정을 받게 되었는데 마치고 집에 오면 몹시 노곤하고 또 약간의 몸살 증세로 해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늘 건강한 몸이었기에 꽤나 뜻밖이었지만 이제 내 나이 예순하고도 다섯, 눈앞의 문제부터 잘 해결하고 또 앞으론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겠구나 싶다. 



운과 노력의 관계에 대하여



먼저 얘기할 것은 운이란 것과 노력이란 것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재능이나 능력에 대해선 글 말미에 얘기하겠다.)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노력하면 되는 것이지 운이 무슨 소용? 또 이런 말도 있다. 결국 운이더라 하는 말. 


나 호호당은 운명에 대해 연구해온 결과 마침내 운명의 법칙을 발견하고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새로운 학문을 정립한 바 있다. 그런 과정에서 운이란 것의 정체 또는 본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타고난 명이 있고 운의 흐름이 있으며 거기에 철저한 법칙이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 다음에도 정작 운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대해 알아내기까진 더 많은 사색과 연구 그리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운의 실체와 본질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기 된 것은 사실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최근 1년 사이의 일이다. 


이제 운과 노력의 관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해보자. 



운과 노력은 함께 가는 것이어서



나 호호당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운이 상승할 적엔 그 사람이 진지한 노력을 할 때란 점이고 운이 하락할 적엔 그 사람이 더 이상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더란 점이다. 


간단히 말하면 운의 상승과 노력의 진지성 또는 세기가 함께 한다는 점이다. 



운의 상승과 하강은 등산과 하산과 같은 것



따라서 운의 상승과 하강이란 것은 마치 登山(등산)과도 같다.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고 고된 일이다. 산 초입을 지나 어느 정도 오르다 보면 숨이 차고 걸음도 무거워진다. 그러는 와중에 멀리 있는 산 정상을 바라보면 한심한 나머지 그만 두고도 싶다. 일종의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고비를 지나 계속 어렵게 발걸음을 떼어놓다 보면 어느 순간 이른바 8부 능선을 넘어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갑자기 힘이 나고 발걸음에도 힘이 들어간다. 힘들지만 이제 사실상 다 오른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야호-하고 함성도 질러보고 멀리 산 밑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만끽한다. 고된 산행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운이 상승하는 사람이 심적으로 느끼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러다가 하산을 시작한다. 운이 하강하는 것이다. 


산의 등줄기를 따라 내려오면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가벼운 발걸음도 즐긴다. 이 시간이 정작 정상에 힘들게 올랐던 때보다 더 즐거운 때가 된다. 이것이 운의 하강 초기와 비슷하다. 


그런 연후에 산 중턱 정도까지 내려오면 피곤함도 몰려오고 목도 컬컬해진다. 이제 좀 쉬고 싶어진다. 하루의 산행은 이것으로서 충분하기에 더 이상 갑자기 다시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은 없고 그냥 산 아래 식당을 찾아서 막걸리 한 잔 걸칠 생각밖에 없다. 이것이 운의 하강에 있어 마무리 국면이다. 


산을 오르는 것이 바로 운의 상승이자 노력하는 때이다. 산을 내려오는 것이 운의 하강이자 동시에 더 이상의 노력이 없는 때이다, 그저 무사히 하산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에 대해 4개의 국면으로 나누어 얘기했다. 


이 4개의 과정이 바로 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순환이라 한다면 초기 등산 과정은 15년에 걸친 봄이 되고 중턱 이후의 산행은 여름이 된다. 다시 정상에서의 초기 하산 과정은 15년에 걸친 가을인 것이고 중턱 이후의 하산까지의 과정은 겨울이라 보면 된다. 


가장 힘든 때는 산을 오르는 초반 과정이니 봄의 때이다. 그리고 이때가 가장 힘겨운 때라 하겠다. 


정리해보면 운과 노력은 사실상 동의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상황은 으레 착각하기 마련인 것이니



그런데 실제 상황에 들어가서 보면 그리고 개개인의 경우를 따져볼 것 같으면 노력을 해도 운이 없어서 되지 않았다거나 어떤 이는 별로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잘 되는 경우가 있다. 운이란 것과 노력이란 것이 마치 따로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 문제는 사람마다 태어나는 때가 60년에 걸친 운의 순환에 있어 저마다 다른 때에 태어나기 때문이라 하겠다. 


가령 태어난 때가 60년 순환에 있어 운세가 한창 상승 중인 여름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태어나는 때가 바로 산을 오르는 과정의 중반 이후에 태어난 것과 같아서 대단한 탄력으로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접근해간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하고 열심인 경우이다. 


운세의 가을에 태어난 사람은 어린 시절 똑똑하고 재능이 있어 보이지만 스무 살 무렵 근처가 되면 지지부진해지고 탄력을 잃어서 경쟁에서 뒤처진다. 그러다가 힘들게 30-40대를 보낸 이후 중년 이후 또 다시 진지한 노력을 통해 발전해간다. 


또 어떤 이는 태어난 때가 하산의 마무리 과정인 겨울인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 끝나고 여기에 다시 힘겨운 봄의 시간, 즉 등산의 초반 과정을 보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린 시절엔 내성적인 성향이다가 10대 무렵 대단히 힘겨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더 퇴보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운세 순환의 봄에 태어난 사람은 어린 시절 병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고 가정환경도 불우한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타고난 능력 자체가 부족해보이기도 하지만 중년 무렵에 가서 큰 성취를 하기도 한다. 


운과 노력의 관계는 이런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로 헷갈릴 정도로 대단히 복잡하다. 



노력한 만큼 보답은 있는 것일까?



가령 진지하게 노력을 해도 끝내 되지 않아서 결국 포기하고 방향을 바꾸게 되고 이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결과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기에 노력은 반드시 그만큼의 보답을 가져다준다는 말을 하지만 그게 꼭 들어맞는 얘기도 아닌 것이고 반대로 틀린 말이라 하기도 그렇다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운이 상승할 적엔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인 것이고 노력의 방향이 틀렸을 경우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모색 또는 방향 전환 또한 일종의 노력에 속한다고 하겠다. 



재능이야말로 운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까지 운과 노력의 관계에 대해 얘기했으니 이제 재능에 대해 얘기할 차례이다. 


재능이나 능력이란 것은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것이 아니며 동시에 고정불변한 것도 아니란 얘기이다. 동시에 재능이란 운의 흐름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가령 프로야구를 들어 얘기한다. 시즌 초반에 어떤 선수가 홈런을 잘 치고 고타율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 상태가 시즌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아가서 한 시즌에 잘 한다 하더라도 계속되는 시즌을 통해 줄곧 잘 하는 이는 드물다. 그렇기에 선수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시즌 전체를 통한 평균 타율이나 수치를 가지고 판단하게 되고 또 여러 시즌의 흐름을 보아 판단한다. 


이 대목에서 한 시즌을 인생 전체로 확장해보자. 어린 시절 어떤 방면에 재능이 특출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어린 시절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던 사람도 중년 이후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면서 크게 성취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재능의 발휘 여부는 바로 운의 흐름과 직적접인 관련을 갖는다. 


음악이나 스포츠, 또 바둑과 같은 분야의 경우 어린 시절에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스킬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분야는 어린 시절에 이미 관련 뇌세포의 신경조직이 만들어지는 까닭에 그렇다. 나이가 들면 회로 형성이 느려지기에 스킬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어린 시절의 재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가령 비즈니스의 경우라면 어떤 사람이 그 방면에 능력이 있을 것인지 없을 것인지를 확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본인 스스로도 정작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것이고 그런 까닭에 주변 사람이라면 더더욱 알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이제 정리하자. 운의 상승 과정이 바로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재능이란 것은 그 사람이 운의 순환에 있어 어떤 시기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객관적인 측정은 물론이고 주변의 섣부른 판단 또한 틀릴 공산이 대단히 높다고 하겠다. 


나아가서 능력이란 어느 한 시기의 능력인 것이지 평생을 두고 뛰어난 능력을 지녔거나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고 지극히 드물다고 하겠다. 그런데 물론 그런 탁월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란의 경우 타고난 유전적 소양에서 온다고 하겠으니 이를 일러 命(명)이라 한다. 


오는 27일 토요일부터 자연순환운명학 기초강좌를 개최한다는 공고를 올렸다. 인생과 운명의 과학적인 이치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라는 마음이다.




영국의 아름다운 시골지역인 코츠월즈의 마을 브로드웨이의 거리 풍경이다. 날이 다소 흐리다. 그림자가 뚜렷하지 않다. 그냥 영국의 보통 날씨라고 보면 되겠다. 글을 쓰던 중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게 된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그만이다. 흰 종이 위에 연필로 스케치하지도 않는다, 그냥 선을 그어나간다. 뼈가 생기면 색을 입힌다. 그러면 그림이 된다. 최근 우리나라 돌아가는 모습이 편하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도 때론 지친다. 시국 얘긴 하지 않으련다. 이번 그림은 쓰던 글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그렸다. 내일 다시 다른 주제로 글을 써볼 생각이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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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 중의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Talinn)의 성 울라프 교회가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가본 적은 없으나 영상으로 여러 번 보았다. 나이가 드니 굳이 가고싶진 않다. 유튜브 바람에 충분히 구경할 수 있으니 그만으로도 고맙고 즐겁다. 유튜브 영상 중에서 한 장면을 마우스로 정지를 누르고 그렸다. 실제 모습보다 더 음영을 넣어 좀 더 이른 아침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최근 외교부가 발트 3국을 발칸 3국이라 표기해서 망신을 했다는데 참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홈피 만드는 일을 알바를 시켜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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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속초 산불 소식이 들려오는 오늘 4월 5일은 호호당 블로그가 시작한 지 만 10년이 되는 날이다. 열 번째 생일인 셈이다. 이에 10주년 기념 겸 해서 약간 색다른 시리즈 글을 올려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2014년 5월 25일자로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새로운 학문이 성립되었다고 이 블로그에 알린 바 있다. 이제 다음 달이면 그로부터 다시 만 5년이 된다. 그 사이에 연구를 통해 전혀 새롭게 알아낸 것도 많았으며 보다 폭 넓고 깊은 이치에까지 알게 되었다. 


연구는 끝이 없겠지만 문득 이 시점 정도에서 자연순환운명학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져 나왔는지 그 경과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과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것이 무엇인지, 기존의 사주명리학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 독자들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자연순환운명학



연순환운명학은 기존의 사주명리와는 사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별도로 이름을 붙였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면 그냥 좀 더 독특한 사주명리라는 정도로 소개했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기존의 사주명리를 포함한 모든 운명학은 운의 흐름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하거나 설명해줄 수 없지만 나 호호당의 이 학문은 문자 그대로 운명의 법칙이다. 변화해가는 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지극히 엄밀하고도 정확하게 예측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법칙을 발견했기에 그렇다. 



자연순환운명학의 첫 발상에 대해



자연순환운명학의 첫 발상이 시작된 것은 1982년 말 아니면 1983년 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36년 전의 일이고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그다지 정확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확실한 시점은 잘 모르겠다. 


1983년 초라고 하면 나 호호당의 나이 서른도 되기 전의 일이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 예순하고도 다섯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紅顔(홍안)이 白髮(백발)이 된 셈이다. 거 참!


당시 나 호호당은 사주명리를 포함해서 운명학 전반에 대해 관련된 서적이나 이론을 두루 충분히 접한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대개의 운명학이란 것이 지나온 과거에 대해선 그런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선 사실 전혀 신빙도가 없다는 점에 대해 많이 실망하기도 한 상태였다. 


그런 까닭에 당시 나는 운명학의 신빙성과 진위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했다.


운명학이란 것이 결국 근거 없는 것으로 단정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 발전시켜온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상태에 머물고 있기에 신빙도가 여전히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앞에서 말한 1982년 말 혹은 1983년 초의 어느 겨울날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을 산책하다가 하나의 발상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아마도 그 날은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原點(원점)에서부터 새롭게 시작된 연구



헛된 엉터리라고 단정을 짓기엔 사주명리란 것이 나름의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까닭에 아직 밝혀내지 못한 운명의 이치가 있을 것이니 내가 그것을 알아내고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발상이었다. 


사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대단히 엉뚱하고 무리한 발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떤 식으로 연구 방법론을 세울 수 있는 지부터 당장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운명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그런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부터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데이터를 수집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의 사주명리 책에 소개된 사람들의 사주 즉 생년월일시를 기준으로 그 사람의 운명에 대한 설명은 적지 않았지만 그를 무턱대고 신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가능하다면 운명학에 대해 그야말로 原點(원점)에서부터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연구하고 검증해보자는 발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니 당시 내 생각이 터무니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말이다. 


이 대목 정도에서 나 호호당이 운명학과 그 이전에 맺었던 인연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운명학과의 처음 遭遇(조우)



따라서 그 얘기부터 먼저 시작해본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나는 사주팔자 보는 책 한 권을 샀다. 이유는 궁금해서였다. 운명이란 것이 정말 있는 것일까?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정말일까? 하는 궁금증. 초등학교 무렵 어머니가 내 사주를 보고 왔다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뒤로 호기심이 생긴 터였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더더욱 다양한 호기심이 생겼는데, 최면술에 관한 것, 심령현상에 관한 것, UFO에 관한 것, 히틀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일까? 귀신이란 것이 정말 있을까 하는 것, 또 사람이 죽은 뒤 다른 세상에 간다는 말이 진짜일까? 하는 등등 실로 무수히 많은 궁금증이 생겼는데 운명이나 팔자에 관한 것도 그 중에 하나였다. 


나 호호당에게 있어 호기심과 궁금증이야말로 삶의 큰 원동력이 되어왔다. 


학업에 대한 관심은 사실 크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이 못 살게 군다는 것 때문에 적당히 하는 정도, 즉 ‘면피’ 정도만 했을 뿐 내겐 여러 궁금증을 파고들어 알아보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었다. 


가령 어느 날 바람을 왜 바람이라 하는 거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면 한동안 거기에 몰두해서 지내곤 했다. 말의 생성과정과 語源(어원)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도 나 호호당의 커다란 즐거움이 되고 있다. 평생 다양한 방면에 걸쳐 수많은 책을 읽어온 것 역시 학구적이어서가 아니라 호기심이 많은 탓이다. 


그런 까닭에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주팔자 보는 책을 산 것은 내게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때 샀던 책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나는 책을 사면 으레 책을 구입한 연도와 일자, 그리고 간단한 소감을 책 빈 여백에 적어놓는 습관이 있어서 그게 고등학교 1학년인 1971년에 구매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고 하니 궁금한 것이 많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부자로 살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하게 살 게 될까? 나는 이 담에 뭐가 될까? 등등 그런 의문이 치솟았고 이에 사온 책을 단숨에 읽어보았다. 그 바람에 사주팔자를 뽑는 만세력도 한 권 샀다. 


내 사주를 뽑은 뒤 책에 적혀있는 내용에 의거해서 살펴보니 가장 먼저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대단히 우려되는 내용이었다. 내 팔자에 空亡(공망)이란 것이 무려 두 개씩이나 있다는 점이었다. 


‘공망’에 대해 자세히 읽어보니 한 마디로 말해서 평생의 모든 일들이 헛되고 실패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뭐 이런 따위가 다 있어! 하고 책을 한 쪽 구석으로 휙-하고 던져버렸다. 


나중에 다시 궁금해서 살펴보니 승려나 성직자가 되면 괜찮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런 방면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아니 내 팔자가 겨우 중 팔자란 말인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한창 사춘기, 이성에 대해 관심이 폭증하고 있던 나에게 성직자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만일 사주보는 책이 정말 옳다면 내 인생의 앞길에 두터운 먹장구름이 잔뜩 드리운 터였다. 이럴 때의 해법은 간단하다, 사주란 것은 한 마리도 어리석은 迷信(미신)이 되어야 했다. 그럼 그렇지,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고 하면서 나는 사주책을 어디론가 던져놓았다. 


이렇게 해서 나 호호당은 운명학과 최초로 遭遇(조우)했다. 



처음 만남은 실망이었지만 연애작전엔 유용했으니



첫 만남은 대단히 불쾌했으나 며칠 가지 않아 영악한 머리를 쓰게 되었다. 고1 겨울방학을 지내면서 사주를 가지고 또래 여자애들을 유혹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당시 1971년 무렵만 해도 고등학생 신분으로 여고생들을 만나서 사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소나마 좀 ‘까진’ 애들이 아니면 어떻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도 단칼에 무시당하곤 했다. 급우들은 교회 나가는 것이 연애작업에 가장 상책이란 얘기를 해주었지만 신앙심이라곤 한 점도 없는 내가 그러기엔 양심에 걸렸다. 


그래도 누군가 주선을 해서 빵집 같은 곳에서 미팅을 할 때 나가서 사주 볼 줄 안다고 사기를 치면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내 구상은 그런대로 멋지게 먹혀들었다. 아무래도 사주만으론 부족한 것 같아서 손금 보는 책도 사서 읽고 공부한 뒤 충분히 ‘무장(?)’한 상태로 여고생들과 단체 미팅을 몇 번 할 수 있었다. 


일단은 그게 전부였다. 고2 여름방학이 지나면서 공부에 신경을 써야 했다. 사실 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자의반 타의반으로 매일 중국무술도장에 다니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 바람에 학원갈 시간도 없었지만 무술도장의 사부님을 만난 덕분에 평생의 ‘무기’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漢文(한문)과 중국말 회화 능력이었다. 중국 공산화 이후 부산으로 피난오신 사부님의 엄격한 지도 아래 나는 억지로라도 한자와 한문 공부를 매일 해야 했던 것이다.

 

도장에 다녀오면 늦은 밤이었고 덕분에 졸리는 눈을 비벼가며 학업 진도를 따라가야 했다. 당시 다니던 학교가 이른바 명문고등학교, 공부 열심히 하는 무서운 놈들이 많았던 터라 좋은 성적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체면치레를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아무튼 나중에 고려대학교 법대에 입학했으니 그런대로 성공한 셈이었다. 


분량이 제법 되었기에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이번 시리즈 글은 분량이 상당할 것 같다, 그렇기에 줄곧 이번 주제에 고나한 글만 올릴 생각은 아니고 도중에 다른 글도 써가면서 이어가볼 생각이다.




영국의 시골 마을 풍경이다. 마을 중앙인 모양이다. 차 몇 대가 한가롭게 주차해있고 동네는 한산하다. 저런 마을에서 느리고 게으르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예전에 꽤나 고생을  하고 나니 절로 부귀공명에 대한 관심은 싹 사라지고 그저 마음 편히 사는 게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고생은 사람을 수양시키는 데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전원풍의 경치에 더 관심이 간다.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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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올린 캐슬 콤 풍경을 약간 비튼 풍경이다. 나름의 구도가 좋아서 다시 그려보았다. 영국  중남부 지역의 코츠월즈에 있는 마을인데 이 지역은 돌집과 아름다운 정원,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참으로 아름다운 지역이다. 즐겨주시길...검색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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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號(연호)란 무엇인가?



오는 5월 1일 일본의 새 천황이 즉위한다. 이에 따라 그간의 平成(평성)이란 연호 대신에 令和(영화)라고 하는 새 연호를 사용하게 된다. 


年號(연호)란 한문을 사용하는 동양의 군주국가에서 쓰던 기년법, 즉 햇수를 세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고 우리와 일본이 사용하였으나 오늘날 우리와 중국은 군주제가 아닌 까닭에 일본만 사용하고 있다. 그 바람에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다. 


일본 천황은 일종의 종교적 首長(수장)이기에 실제 통치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인들은 천황의 교체를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새 연호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는 것은 이웃인 우리로서도 관심을 가져볼 만한 사안이라 본다. 



연호는 새 군주의 소망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연호는 새로운 군주가 지향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이번의 레이와라고 하는 연호 역시 새 일황이 자신의 재임 중에 어떤 일본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지 그 소망을 담고 있기에 이웃 일본의 장래를 점쳐보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호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본다. 


삼국지연의의 대표 연호 建安(건안)



삼국지연의를 읽다 보면 建安(건안)이란 연호가 자주 보인다. 건안이란 연호, 平安(평안)한 세상을 세운다는 뜻이다. 이는 조조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를 옹립함과 동시에 수도를 피폐한 낙양을 버리고 허창으로 이전한 뒤에 내건 연호이다. 


이후로도 전쟁은 이어졌으나 조조가 건안 5년 북방의 강대 세력인 원소를 제압하면서 당시 중국의 중심 지역이었던 화북 지방은 평정이 되었다. 그 이후로 적벽대전 등등 많은 전쟁이 있었으나 모두 변두리에서의 싸움이었기에 나름대로 建安(건안)했던 셈이다. 



자립을 강조하고 있는 새 연호라 하지만.



일본은 그간 연호를 택할 때 주로 중국의 문헌에서 따왔으나 이번의 令和(영화)는 처음으로 일본의 고문학인 萬葉集(만엽집) 속의 글귀에서 채택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진정한 自立(자립)을 소망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왜냐면 일본은 아직 자립의 나라가 아닌 까닭이다. 특히 군사 방위 면에서 사실상 미국의 속국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은 제2차 대전 이후 평화헌법을 채택하면서 이런저런 이유에서 방위를 사실상 미국에게 위임해왔는데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를 이번 연호에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개헌 건과도 즉각적으로 맥락이 닿는다. 이번에 물러나는 아키히토 천황은 그간 아베와 무척이나 불편한 관계였는데 새 천황이 아베의 스탠스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번 연호의 제정 배경과 관련해서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연호가 일본의 옛 문헌인 ‘만엽집’에서 채택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 문학과의 연관이 전혀 없지는 않다. 우리나 일본의 고문학 특히 지배계급의 문자이던 한자로 된 시가 속엔 중국 문학의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만엽집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于時、初春令月、氣淑風和.

(초봄의 달이 되니 공기는 맑고 바람은 부드럽다.) 


그리고 이 문장의 원형은 중국 後漢(후한)대의 사상가인 張衡(장형)이 지은 歸田賦(귀전부), 즉 논밭으로 돌아갈 것을 노래한 시가 속에 있으니 다음과 같다. 


於是仲春令月時和氣凊.

(중춘의 달에 이르러 날은 따듯하고 하늘은 맑다.)


장형의 귀전부는 훗날 중국 시문학의 중요한 장르를 이룬 田園詩(전원시)의 원형이라 하겠으며 특히 도연명의 絶唱(절창)인 歸去來辭(귀거래사)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이번의 새 연호인 令和(영화)는 새 천황의 치세는 부드럽고 맑은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물러나는 아키히토의 치세 즉 1989년부터 올 해까지의 30년간 일본의 현실은 무척이나 어둡고 힘든 시절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1990년 말 저 유명한 거품 붕괴가 시작되었고 그 이후론 한 때 전 세계를 삼킬 것 같던 일본의 경제적 위세는 오늘에 이르러 그저 먼 옛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신의 치세 동안 일본이 몰락했다는 점에 대해 이번에 물러나는 아키히토는 대단히 유감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치세가 좋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키히토는 자신에게 덕이 없는 탓, 즉 不德(부덕)의 소치로 여겼을 것이고 이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상당한 염증을 느끼고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바람에 천황의 자리는 대개 사망한 후에 넘겨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번의 경우 고령이긴 하지만 아직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물려주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키히토의 경우 천황에 오른 1989년부터 올 해까지 30년인 바, 30년은 一世(일세)라는 점에서 물러나기에 적절하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의 새 연호에 대한 나 호호당의 생각은 조금 달라서



그런데 레이와, 令和(영화)라고 하는 새 연호에 대해 나 호호당이 나름 해보는 되는 생각 또는 기대가 있어 얘기해본다. 


만엽집에 실린 시가의 원형이 중국 장형의 귀전부이고 그 시는 이른바 田園詩(전원시)란 점 때문이다. 전원시는 단순하게 전원의 풍경과 소박한 생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중국 역사를 통해 지배계층이었던 사대부나 문인들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권력에서 밀려나거나 염증을 느낀 자들이 나중에 욕심을 버리고 고향 마을인 전원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어가며 편안하게 살아보리라 하는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전원시이다. 


사실 이런 과거 지배계층의 정서는 유교적 영향이 강한 우리나 일본 중국의 경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널리 유포되기도 했으니 노력해보다가 정 안 되면 시골로 돌아가 땅이나 파면서 살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생각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50대 이하의 사람들에겐 돌아갈 시골이 사실상 없다, 돌아가서 농사지을 땅이 없기에 앞서의 귀거래사 풍의 감정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각설하고 요지를 얘기해보면 이번 레이와란 연호가 연호 제정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원시적 감성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 나 호호당은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군국주의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다가 미국을 만나 좌절했고 그 이후 경제적으로 확장하면서 패권을 노리다가 그 역시 1990년 거품 붕괴로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에 오늘날 일본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그냥 평범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주어진 처지에 만족하면서 살고픈 소망이 강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또한 일종의 전원시적인 감정이라 할 것인 바, 이에 나 호호당은 이번 연호 레이와를 볼 때 당초 의도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일개 국가로서의 일본이 장차 또 다시 글로벌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기 보다는 이제 나름의 田園(전원)으로 물러가 그냥 조용히 지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최근 우리와 일본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갈등관계이다. 하지만 경제 측면이나 민간 교류 차원에선 사실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 호호당은 멀지 않아 우리와 일본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해갈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인근의 일본이 우리의 좋은 이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런데 이번 연호를 보니 문득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고 또 올린다.


살다보면 운명을 느끼게 된다.

 

 

저마다의 運命(운명)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젊은 시절엔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생살이 좀 겪다 보면 운명이란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거의 모든 이가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연구와 검증을 거쳐온 저 호호당에게 있어 운명이란 것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해와 같이 너무나도 명백하고 당연할 뿐입니다.

 

命(명)이란 부모로부터 받아서 타고난 저마다의 자질이고 바탕이며 性情(성정)인 것이고 運(운)이란 것은 결국 인생의 四季節(사계절)을 거쳐 가는 과정입니다.

 

 

한 인생 살다 간다는 것, 실로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니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얼마나 많은 고비를 견디고 또 버텨내어야 하며 또 얼마나 많은 굽이를 돌아가야 합니까. 이에 누군가는 한창 풍성한 가을을 보내고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이는 인고의 세월인 봄을 견뎌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세상 다 삼킬 기세로 왕성한 여름을 보내고 있으며 반대로 어떤 이는 만물이 시든 겨울과 같이 시들시들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생의 계절, 즉 운도 변해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뜨거운 여름도 어느새 서늘한 가을로 바뀌듯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드는 인생의 계절 역시 조금치도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인생의 사계절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변해가는 너무나도 유장한 흐름이기에 보통의 사람들은 그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감히 자신하는 바, 대략 50만 가지의 유형으로 구분이 되는 저마다의 命(명)과 그에 따른 운세의 변화를 조금치의 오차도 없이 짚어낼 수 있는 학문이 제가 30년의 연구와 검증 끝에 정리하고 틀을 세운 ‘자연순환운명학’입니다.

 

자연순환운명학은 사람의 일만이 아니라 세상 그 어떤 일이든 그 추이를 점검하고 장차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조직, 더 크게는 나라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놀라운 도구이기도 합니다.

 

 

자연순환운명학의 원리를 알게 됨으로써 얻는 근본 효용

 

 

우리가 살면서 갖게 되는 모든 불안과 불만은 미래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未知(미지)에 대한 不安(불안)인 것입니다. 언제 이 힘들고 어두운 터널이 끝이 날 것인지, 또는 지금 모든 것이 좋긴 하지만 불현듯 막을 내릴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등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자연순환운명학을 배우고 이해할 경우 무엇보다도 그런 불안감을 씻어낼 수 있다고 감히 자신합니다. 성공도 성취도 그와 반대로 역경과 고난도 사실 각자의 주어진 命(명)과 運(운)에 따라 다 때가 있기 때문에 미리 알고 대비한다면 적어도 막연한 불안감과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모든 것에 ‘당신의 때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더불어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도구 혹은 무기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얻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에 시작하는 자연순환운명학 기초이론 강좌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12회에 걸쳐 이어지는 기초과정의 회별 주요 강의 내용

 

 

제 1회. Introduction, 자연순환운명학의 전체적인 원리와 이론

제 2회. 생년월일시에 의거하여 사주를 추출하는 기본 방법과 陰陽五行(음양오행)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

제 3회. 운명이 통과해 가야 하는 24개의 관문에 대한 이해 #1

제 4회. 운명이 통과해 가야 하는 24개의 관문에 대한 이해 #2

제 5회. 60년 순환의 기산점 즉 立春(입춘)점을 파악하는 방법

제 6회. 60진법 속에 숨어있는 數(수)의 법칙에 대한 이해 #1

제 7회. 60진법 속에 숨어있는 數(수)의 법칙에 대한 이해 #2

제 8회. 운명에 작용하는 어길 수 없는 因果(인과)의 법칙

제 9회. 518,400개에 달하는 四柱(사주)의 개성과 특징 파악법 #1

제10회. 518,400개에 달하는 四柱(사주)의 개성과 특징 파악법 #2

제11회. 실제 사례를 통한 이론의 종합적 적용 방법 #1

제12회. 실제 사례를 통한 이론의 종합적 적용 방법 #2

 

 

 

 

강좌 개요

 

 

강좌 개최

- 2019 년 4월 27일 토요일 오후 4시 30 분부터 8시까지. 

 

강좌 기간

- 매주 토요일 1회, 총 12번의 강좌

 

강좌 시간

- 3 시간 30 분이고 중간에 간식 시간을 가집니다.

 

강좌 장소

- 강남역 근처 CNN the Biz 강남교육연수센터 강의실 (Tel. 02-564-4172) 

-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400 미터, 도로로 5분 거리

 

수강료

- 12회분 66 만원 (분납도 가능합니다.)

 

신청 방법

- 제 메일(1tgkim@hanmail.net)로 신청을 하시면 제가 참강 확인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 Tel. 02-534-7250로 오후 3시 이후에 전화주셔도 됩니다.

 

사전에 준비할 것은 없으며 더러 한자를 몰라서 망설인다는 분들의 문의가 있는데 아무런 애로가 없다는 점 알려 드립니다.



 

 

 

2019.4.2. 호호당 김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