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속초 산불 소식이 들려오는 오늘 4월 5일은 호호당 블로그가 시작한 지 만 10년이 되는 날이다. 열 번째 생일인 셈이다. 이에 10주년 기념 겸 해서 약간 색다른 시리즈 글을 올려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2014년 5월 25일자로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새로운 학문이 성립되었다고 이 블로그에 알린 바 있다. 이제 다음 달이면 그로부터 다시 만 5년이 된다. 그 사이에 연구를 통해 전혀 새롭게 알아낸 것도 많았으며 보다 폭 넓고 깊은 이치에까지 알게 되었다. 


연구는 끝이 없겠지만 문득 이 시점 정도에서 자연순환운명학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져 나왔는지 그 경과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과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것이 무엇인지, 기존의 사주명리학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 독자들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자연순환운명학



연순환운명학은 기존의 사주명리와는 사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별도로 이름을 붙였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면 그냥 좀 더 독특한 사주명리라는 정도로 소개했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기존의 사주명리를 포함한 모든 운명학은 운의 흐름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하거나 설명해줄 수 없지만 나 호호당의 이 학문은 문자 그대로 운명의 법칙이다. 변화해가는 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지극히 엄밀하고도 정확하게 예측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법칙을 발견했기에 그렇다. 



자연순환운명학의 첫 발상에 대해



자연순환운명학의 첫 발상이 시작된 것은 1982년 말 아니면 1983년 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36년 전의 일이고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그다지 정확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확실한 시점은 잘 모르겠다. 


1983년 초라고 하면 나 호호당의 나이 서른도 되기 전의 일이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 예순하고도 다섯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紅顔(홍안)이 白髮(백발)이 된 셈이다. 거 참!


당시 나 호호당은 사주명리를 포함해서 운명학 전반에 대해 관련된 서적이나 이론을 두루 충분히 접한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대개의 운명학이란 것이 지나온 과거에 대해선 그런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선 사실 전혀 신빙도가 없다는 점에 대해 많이 실망하기도 한 상태였다. 


그런 까닭에 당시 나는 운명학의 신빙성과 진위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했다.


운명학이란 것이 결국 근거 없는 것으로 단정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 발전시켜온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상태에 머물고 있기에 신빙도가 여전히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앞에서 말한 1982년 말 혹은 1983년 초의 어느 겨울날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을 산책하다가 하나의 발상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아마도 그 날은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原點(원점)에서부터 새롭게 시작된 연구



헛된 엉터리라고 단정을 짓기엔 사주명리란 것이 나름의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까닭에 아직 밝혀내지 못한 운명의 이치가 있을 것이니 내가 그것을 알아내고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발상이었다. 


사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대단히 엉뚱하고 무리한 발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떤 식으로 연구 방법론을 세울 수 있는 지부터 당장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운명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그런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부터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데이터를 수집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의 사주명리 책에 소개된 사람들의 사주 즉 생년월일시를 기준으로 그 사람의 운명에 대한 설명은 적지 않았지만 그를 무턱대고 신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가능하다면 운명학에 대해 그야말로 原點(원점)에서부터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연구하고 검증해보자는 발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니 당시 내 생각이 터무니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말이다. 


이 대목 정도에서 나 호호당이 운명학과 그 이전에 맺었던 인연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운명학과의 처음 遭遇(조우)



따라서 그 얘기부터 먼저 시작해본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나는 사주팔자 보는 책 한 권을 샀다. 이유는 궁금해서였다. 운명이란 것이 정말 있는 것일까?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정말일까? 하는 궁금증. 초등학교 무렵 어머니가 내 사주를 보고 왔다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뒤로 호기심이 생긴 터였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더더욱 다양한 호기심이 생겼는데, 최면술에 관한 것, 심령현상에 관한 것, UFO에 관한 것, 히틀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일까? 귀신이란 것이 정말 있을까 하는 것, 또 사람이 죽은 뒤 다른 세상에 간다는 말이 진짜일까? 하는 등등 실로 무수히 많은 궁금증이 생겼는데 운명이나 팔자에 관한 것도 그 중에 하나였다. 


나 호호당에게 있어 호기심과 궁금증이야말로 삶의 큰 원동력이 되어왔다. 


학업에 대한 관심은 사실 크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이 못 살게 군다는 것 때문에 적당히 하는 정도, 즉 ‘면피’ 정도만 했을 뿐 내겐 여러 궁금증을 파고들어 알아보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었다. 


가령 어느 날 바람을 왜 바람이라 하는 거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면 한동안 거기에 몰두해서 지내곤 했다. 말의 생성과정과 語源(어원)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도 나 호호당의 커다란 즐거움이 되고 있다. 평생 다양한 방면에 걸쳐 수많은 책을 읽어온 것 역시 학구적이어서가 아니라 호기심이 많은 탓이다. 


그런 까닭에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주팔자 보는 책을 산 것은 내게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때 샀던 책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나는 책을 사면 으레 책을 구입한 연도와 일자, 그리고 간단한 소감을 책 빈 여백에 적어놓는 습관이 있어서 그게 고등학교 1학년인 1971년에 구매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고 하니 궁금한 것이 많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부자로 살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하게 살 게 될까? 나는 이 담에 뭐가 될까? 등등 그런 의문이 치솟았고 이에 사온 책을 단숨에 읽어보았다. 그 바람에 사주팔자를 뽑는 만세력도 한 권 샀다. 


내 사주를 뽑은 뒤 책에 적혀있는 내용에 의거해서 살펴보니 가장 먼저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대단히 우려되는 내용이었다. 내 팔자에 空亡(공망)이란 것이 무려 두 개씩이나 있다는 점이었다. 


‘공망’에 대해 자세히 읽어보니 한 마디로 말해서 평생의 모든 일들이 헛되고 실패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뭐 이런 따위가 다 있어! 하고 책을 한 쪽 구석으로 휙-하고 던져버렸다. 


나중에 다시 궁금해서 살펴보니 승려나 성직자가 되면 괜찮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런 방면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아니 내 팔자가 겨우 중 팔자란 말인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한창 사춘기, 이성에 대해 관심이 폭증하고 있던 나에게 성직자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만일 사주보는 책이 정말 옳다면 내 인생의 앞길에 두터운 먹장구름이 잔뜩 드리운 터였다. 이럴 때의 해법은 간단하다, 사주란 것은 한 마리도 어리석은 迷信(미신)이 되어야 했다. 그럼 그렇지,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고 하면서 나는 사주책을 어디론가 던져놓았다. 


이렇게 해서 나 호호당은 운명학과 최초로 遭遇(조우)했다. 



처음 만남은 실망이었지만 연애작전엔 유용했으니



첫 만남은 대단히 불쾌했으나 며칠 가지 않아 영악한 머리를 쓰게 되었다. 고1 겨울방학을 지내면서 사주를 가지고 또래 여자애들을 유혹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당시 1971년 무렵만 해도 고등학생 신분으로 여고생들을 만나서 사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소나마 좀 ‘까진’ 애들이 아니면 어떻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도 단칼에 무시당하곤 했다. 급우들은 교회 나가는 것이 연애작업에 가장 상책이란 얘기를 해주었지만 신앙심이라곤 한 점도 없는 내가 그러기엔 양심에 걸렸다. 


그래도 누군가 주선을 해서 빵집 같은 곳에서 미팅을 할 때 나가서 사주 볼 줄 안다고 사기를 치면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내 구상은 그런대로 멋지게 먹혀들었다. 아무래도 사주만으론 부족한 것 같아서 손금 보는 책도 사서 읽고 공부한 뒤 충분히 ‘무장(?)’한 상태로 여고생들과 단체 미팅을 몇 번 할 수 있었다. 


일단은 그게 전부였다. 고2 여름방학이 지나면서 공부에 신경을 써야 했다. 사실 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자의반 타의반으로 매일 중국무술도장에 다니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 바람에 학원갈 시간도 없었지만 무술도장의 사부님을 만난 덕분에 평생의 ‘무기’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漢文(한문)과 중국말 회화 능력이었다. 중국 공산화 이후 부산으로 피난오신 사부님의 엄격한 지도 아래 나는 억지로라도 한자와 한문 공부를 매일 해야 했던 것이다.

 

도장에 다녀오면 늦은 밤이었고 덕분에 졸리는 눈을 비벼가며 학업 진도를 따라가야 했다. 당시 다니던 학교가 이른바 명문고등학교, 공부 열심히 하는 무서운 놈들이 많았던 터라 좋은 성적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체면치레를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아무튼 나중에 고려대학교 법대에 입학했으니 그런대로 성공한 셈이었다. 


분량이 제법 되었기에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이번 시리즈 글은 분량이 상당할 것 같다, 그렇기에 줄곧 이번 주제에 고나한 글만 올릴 생각은 아니고 도중에 다른 글도 써가면서 이어가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