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동백 그리고 진달래



내일이면 4월인데 차가운 날씨. 작업실 창 아래로 목련 하얀 꽃이 바람에 살랑대고 있다. 추운 걸까 싶어 창가로 다가가 문을 여니 눈이 부셔온다. 고결한 품격의 목련, 그런데 질 때의 목련은 유난히 누추하다. 그러자 생각은 자연스럽게 동백꽃에 미친다, 동백은 질 때에도 도도한 모습이니. 


얼마 안 있어 진달래가 필 것이다. 소나무 그늘 아래 피는 연분홍의 진달래는 슬픈 꽃이다. 멀리서 보면 산 중턱에 분홍의 안개 서린 것 같은 진달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으레 진달래를 떠올린다. 연분홍 치마의 새색시와 진달래는 어쩐지 맥락이 통한다. 갓 시집온 터라 자기를 내세우지 못하는 연분홍 치마의 각시와 나무 그늘 아래 숨어 피는 진달래, 통한다. 



소외란 슬픈 것이어서



살아있으되 그 살아있음을 세상을 향해 주장하지 못하는 자는 슬퍼할 수밖에 없다. 이에 큰 소리로 울어도 들어주는 이가 없으면 이를 疏外(소외)된 자라 한다. 소외가 무엇인가? 주변에서 꺼리면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다. 시쳇말로 ‘따’를 당한 것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도 따를 당한다. 가령 옆 나라 일본은 2005년이 국운의 입춘 바닥이기에 그 5년 전인 2000년부터 국제사회에서 따를 당했다. 딱 30년 전인 1989년 일본은 가히 온 세계를 모두 집어삼킬 기세였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미국에 이어 일본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주장했다. 


그런데 1990년이 되자 일본은 침몰했고 미국이 또 다시 부상했다. 내년 2020년은 일본이 사라진지 즉 소외 당한지 20년이 되는 해, 도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세상으로의 복귀 신고를 치를 셈이다. 당장 일본이 예전의 기세를 찾는다는 것은 아니고 이제 일본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말이다. 2020년은 일본 국운의 여름이 시작되는 立夏(입하)의 운인 까닭이다. 


얼마 전 글에서 立夏(입하)의 운이야말로 가장 가난하다고 했다. 하지만 내적 힘이 다시 솟아나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입하인 것이다. 그러니 다시 힘차게 되돌아온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일본의 현 인구 피라미드를 볼 때 일본의 신생아 출산율이 극적으로 반전되지 않는 한 이제 다시 일어선다 해도 예전과 같은 파괴력을 발휘하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사실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 이른바 선진국이란 나라들의 장래는 죄다 어둡다. 인구 구조가 엉망인 까닭이다. 나라의 미래 경제를 이끌어갈 60대에서 20대 사이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미국만 예외이다. 따라서 선진국 중에서 미국만이 희망이 있다. 영국도 그다지 나쁘지가 않다.)



저출산이 대세일 수밖에 없어서


런데 놀라운 사실은 OECD 국가 중에서 장차 가장 심한 인구감소가 일어날 나라는 다름 아닌 우리 대한민국이란 점이다. 어쩌면 올 해부터 신생아수가 30만을 밑돌 것이라 본다. (참고로 중국 또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지만 다만 OECD 국가는 아니다.)


왜 저출산인가? 


이유는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아기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사치품을 장만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독일제 승용차를 한 대 장만할 경우 할부기간만 끝나면 비싸긴 해도 유지비 정도면 되지만 아기는 갈수록 더 많은 돈이 든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돈이 많이 든다. 


그 돈을 마련하려면 두 부부가 죽도록 열심히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육아에 충분한 정성을 쏟을 수도 없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부부의 경우 사람을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육아 비용이 아기 엄마가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더 큰 경우도 허다하다. 


결혼한 부부의 경우 세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 부부가 짊어질 부담이 적은 순부터 얘기해보자. 출산은 하지 않고 저축도 하지 않고 그냥 둘이 버는 수입으로 즐기면서 사는 방법이다. 당장은 가장 편하고 즐겁다. 다음으론 출산을 뒤로 미루거나 포기하고 미래의 풍요를 위해 저축을 하는 방법이다. 물론 즐길 수가 없다, 하지만 가장 부담이 큰 선택은 출산을 감행하는 것이다. 


출산하고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두게 되면 소득은 줄고 지출은 늘어난다. 사실상 최악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엔 둘이 벌면서 눈앞의 시간을 즐기자는 욜로족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그나마 결혼을 할 수 있었던 부부의 얘기였다. 가정을 꾸릴 소득이 되지 않는 커플들은 그냥 연애만 하다가 때가 되면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되풀이한다. 연애에 충당할 비용도 되지 않는 소득일 것 같으면 그냥 홀로 지내는 경우도 엄청나게 많다. 


그러니 소확행이 대세가 되는 것이고 저출산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이제 아파트나 주택을 장만하는 것은 엄청난 대출을 받지 않은 이상 넘사벽이 되었다. 물론 원리금을 갚아나가는 것 역시 평생을 벌어서 갚아야 하는 무거운 짐이 되겠지만 아무튼 거액의 대출을 끼지 않는 한 집을 사는 일은 어렵다. 둥지를 틀지 못하는 새는 알을 낳을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오늘날 당연시되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 즉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 역시 혼인율을 낮추는 커다란 요인 중에 하나이다. 결혼을 하지 않으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소비수준이 높아진 것 역시 결혼을 기피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의 하나이다. 일반화된 해외여행과 럭셔리 풍조가 그것이다. 


반면 정규직으로의 진입이 좁아지고 차단되면서 젊은 층에게 좋은 직장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고 비정규직 젊은이들의 소득 저하 현상 역시 혼인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러니 공시족으로 내몰릴 수밖에. 



누적된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으니



이에 젊은 층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보기 위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정책과 주52시간제는 외환위기 이후 양산된 40-50대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조이는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자영업자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난히 많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서 문제였으나 외환위기 이후 당분간은 그게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12년 전인 2007년경부터는 이미 해법이 아니라 부담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동산 가격 역시 2008년 미국 금융 위기를 계기로 연착륙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미국 연준이 돈을 마구 살포하는 양적완화를 단행하면서 그럴 수 있는 있는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다. 


자영업 문제, 일자리 문제,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가격의 고공행진, 가진 자의 럭셔리 풍조 등등 이 모든 문제점들은 외환위기 이래로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누적되어왔고 그것들이 오늘에 이르러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저출산 현상은 그런 흐름의 부분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자들의 구고조정을 유발할 것이고 일자리 문제는 기업들의 투자 확대만이 해법인데 내수는 정체 일로이고 글로벌 무역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어 어렵다. 비정규직 문제는 기존 거대 노조의 거부로 인해 막혀있고, 부동산 가격이 내릴 경우 중산층의 상당수가 희생당한다. 


친노조 진보성향의 현 정부이기에 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은 사실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보수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편향성만 반대로 바뀔 뿐 문제 전반을 개혁할 수 있는 역량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정치란 결국 ‘진영 싸움’이기 때문이다. 



길을 잃은 우리 대한민국



그렇기에 우리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판단을 내린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으로 보면 2024년의 입춘 바닥 5년 전이기에 絶(절)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絶(절)이란 무엇인가? 하면 앞에서 말한 소외의 흐름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서로가 서로로부터 소외되는 단계, 나라의 에너지가 양력 1월 초의 小寒(소한)의 때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취약해진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올 해가 시작인 것이고 장차 20년이 흘러서 2039년 우리 국운의 立夏(입하)가 될 때까지 더욱 어려워지면서 지루하리만큼 길게 진행되어갈 것이다. 매 5년마다 내용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그 과정 속에서 역경 속에서 당연히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이란 정말로 길이 막혔다 싶으면 길을 창출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개혁이란 몇 년 안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개혁이 이루어진 뒤에도 많은 시간과 난관을 돌파한 뒤에 비로소 그게 개혁이었음을 뒤늦게 느낄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에 개혁은 어렵다. 하지만 하게 될 것이다, 때가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