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집에서 엿들은 젊은이들의 대화



며칠 전 저녁 날씨가 스산해서 라면 생각이 났다. 치즈라면. 칼칼한 라면에 느끼한 치즈가 아주 배합이 좋다. 작업실 길 저편의 작은 분식집의 3,500원 짜리 치즈라면. 


라면을 거의 다 먹어갈 즈음 옆 테이블의 대화 내용이 귓전에 들려왔다. 


“월 300에 여자 친구 안 사귀면 월 100은 저축할 수 있거든요, 그게 가장 속 편해요. 고민할 것도 없고 집세 내고 조금은 놀 수 있고...”

먹으면서 슬쩍 쳐다보니 건장한 젊은이, 나이가 30대 후반 정도는 되어보였다. 


그러자 내게 등을 돌린 채 앉은 일행, 역시 젊은 친구, 대화 내용으로 봐서 앞서의 젊은이보다 나이가 조금은 더 많은 것 같은 젊은이가 응수했다. 


“맞아, 전에 연봉 1,800할 때 여자 친구가 있었거든, 도저히 생활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그냥 일만 하면서 지내고 있어.”

그러자 다시 앞서의 후배가 말했다. 


“형은 디자인이잖아, 그런데 1,800은 야, 너무 짜다, 그래도 1년만 버티면 많이 오르지 않나? 디자인이?” 


그러다가 음식이 나왔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제육볶음밥이었다. 두 사람은 맛있게 먹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고, 나는 귀를 쫑긋 기울였다. 


선배 말하길 우린 결혼 같은 거 할 수 있을까?. 그러자 후배는 에이, 일단 젖혀놓자고요, 하기야 집에선 눈치를 주고 있지만 솔직히 자신 없어요, 엄두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느라 라면 국물까지 깨끗이 다 비운 연후에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 공기는 여전히 썰렁했지만 라면을 먹은 터라 약간의 더위마저 느끼며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막연하기만 한 젊은이들의 결혼관



일요일 오후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결혼에 관한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미혼 남성 가운데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중은 2010년 62.6%에서 올 해 들어 36.3%로 곤두박질쳤으며, 미혼 여성들은 결혼에 대해 더 부정적이어서 2010년 46.8%에서 올 들어 22.4%로 곤두박질쳤다는 기사였다. 여성의 경우 시집살이에 대한 부담 때문이리라. 


결혼 대신에 동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이 동거인데, 부담도 적고 언제든지 정리할 수도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서구 나라들을 따라서 조만간 결혼 제도가 사실상 없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꽤나 살다 온 후배의 얘기가 생각이 난다. 미국의 아내들이 생일 선물로서 가장 받고 싶은 것은 결혼신고필증이고, 남편들이 가장 기피하는 것 또한 결혼신고필증이라는 얘기. 


아직 우리 사회에선 동거를 통해 나은 아기는 여전히 私生兒(사생아)란 관념이 대단히 강하다. 이런 마당에 앞서의 통계처럼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에 대해선 부정적이어도 향후의 그런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확고한 태도를 정한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동거는 해볼 수 있다는 생각, 그러다가 헤어지고 또 한동안 혼자 지내다가 다시 동거하고, 이런 식으로 지내보자는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냥 막연히 독신으로 지내면서 여유가 되면 연애 좀 하고 골치 아픈 문제는 나중에 결정하자는 생각인 것 같다. 



역시 경제적인 문제



우리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 현상에는 서구적 영향도 크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제적 문제가 아닌가 싶다. 청년 실업, 낮은 보수의 비정규직, 이런 이유가 가장 클 것 같다는 얘기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신생아 감소라든가 인구 절벽과 같은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떠나 나 호호당이 보기에도 현 상황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감히’ 결혼을 시도할 여건은 분명 아닌 것 같다. 그야말로 焉敢生心(언감생심), 어떻게 감히 생각을 낼 수 있으리오!



취업과 관련된 최근의 걱정되는 상황



운명과 관련해서 최근의 현상을 봐도 그렇다. 최근 몇 년 사이 대기업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들의 사주팔자를 보다 보면 정말 놀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괜찮은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젊은이들의 사주를 보노라면 그야말로 한숨이 나온다. 그런 곳에 취업된 젊은이들의 운세를 확인해보면 거의 예외가 없이 취업된 시점이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최고 절정의 때라는 사실이다. 


한 번 더 되풀이한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업된 시점이 그 젊은이 전체 인생에 있어 가장 좋은 때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란 얘기이다. 취업한 시점이 인생 최고의 때라면 그 이후 10년만 지나면 운세는 하락세로 접어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취업 자체가 삶의 가장 큰 성취란 얘기이기도 하다. 


취업은 그저 훗날의 성취를 향한 하나의 작은 시작점이고 출발점이어야 할 터인데 취업 자체로서 그 뒤가 없는 최고의 때가 되고 있으니 솔직히 한숨이 나온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직 발전의 여력이 남아있는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사실상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고 취업하는 시점이 절정의 때가 되고 있으니 이건 그 개인은 물론이고 그런 젊은이들을 뽑은 기업 역시 미래가 없을 것이며 크게는 나라 전체의 미래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왜냐면 한 개인에게 있어 운이 아직 남아있다는 말은 아직 열정이 살아있다는 얘기와 같은 말인데, 취업 시점이 절정이란 말은 이제 열정은 없고 대기업들이 선호하는 것,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스펙만 남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영어 따위 다소 부족하고 학벌이나 실력이 다소 떨어져도 열정이 살아있는 젊은이가 발전을 하고 훗날 성취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공기업이나 대기업들은 그런 미완성의 젊은이들은 뽑지 않는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결국은 누구나 긍정할 수 있는 스펙 좋은 젊은이들만 채용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란 생각이다. 



예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오늘날의 취업



예전의 기업들 역시 학벌 좋고 실력 좋은 응시자를 채용하고자 했지만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젊은이들에게도 그런대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 그런 일은 아예 없는 것 같다. 소위 ‘짤’이 없는 오늘이다. 


예전엔 야간 상고를 나왔어도 기업이나 은행에 취업할 수 있었고 그러다가 본인의 노력으로 야간대학을 마치는 등의 코스를 통해 나중에 임원이나 사장으로까지 승진 출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엔 그런 일은 아예 원천 봉쇄되고 있다. 


최근엔 그만 둔 김동연 경제부총리 같은 사람은 바로 그 대표적인 케이스, 이른바 立志傳(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하겠는데 이젠 그런 일이 출발에서부터 막히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월 300만 되면 여친 사귀지 않고 월 100 저축할 수 있다면 심경이 편하다는 말을 하던 분식집의 그 젊은이 얼굴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 친구의 경우 당분간은 동거든 결혼이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나라 운이 바닥에 접근해가고 있다 보니 젊은이들이 둥지를 만들지 못한다, 둥지를 틀지 못하니 아기를 낳지 못한다. 혹여 아기를 낳고 나면 그 날부터 젊은 부부는 전쟁을 시작해야 하니. 


겨울은 不姙(불임)의 계절이어서



그야말로 겨울은 不姙(불임)의 계절인 것이 확실하다. 한 해를 통해 늘 맞이하는 겨울이 아니라 국운의 겨울은 정말 그렇다.

너 나 할 것 없이 합심해서 부동산 가격만 잔뜩 높여놓은 바람에 자영업자들은 임대료가 부담이고 젊은이들은 둥지를 틀지 못해서 아기를 낳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본 게임은 내년 2019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징글맞을 정도로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월요일 새벽 시각 나 호호당은 그저 눈알만 말똥말똥해져온다.



입동엔 춥지가 않다.



현재 시각은 11월 7일이고 저녁 8시 20분이다. 앞으로 두 시간이 흘러 10시 32분이 되면 立冬(입동)이다. 


아침 뉴스에서 ‘입동인데도 춥지가 않습니다’ 하는 멘트가 들려왔다. 실은 입동이기에 추울 까닭이 없다. 입동의 立(입)은 ‘일어난다는 뜻’이니 이제 겨울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입동은 언제나 늦가을과 같다. 


하지만 입동으로부터 보름이 지나 小雪(소설)이 되면 아, 이젠 겨울이네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니 입동은 이제 얼마 안 있어 추운 겨울이 시작될 것입니다 하는 예보와 같은 것이고 몸으로 느끼는 겨울은 11월 22일의 小雪(소설)부터이다. 


늦은 오후 작업실 창밖으로 내다보니 흐린 하늘 아래 마지막 가을의 情趣(정취)가 완연했다. 창 아래 목련의 커다란 잎사귀의 색깔이 희끗한 녹색에서 황갈색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나타내고 있었다. 


떨어진 잎이 절반이고 아직 붙어있는 것이 절반이다. 모양새가 모나지 않고 둥그렇다. 끝부분이 조금 뾰족하긴 하나 전체적으로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착하고 선량한 인상이다. 


입동을 맞은 저 목련은 나 호호당이 2005년 봄 현재의 서초동 작업실로 들어온 이래 좋은 친구로 지내왔다. 해마다 3월 하순이면 어김없이 우유 빛깔의 환한 꽃망울을 터뜨려주었으니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다. 그런 목련이 입동을 맞이하여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 이제 쉴 때가 되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겨울이면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니



사람 또한 겨울이 되면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우리 대한민국 또한 2009년으로서 60년 순환에 있어 겨울을 맞이했고 2024년이 되어야만 새 봄을 맞이한다. 그렇기에 국운의 겨울이 되자 과거 세월을 되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역시 그렇다. 


한동안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가 2012년부터 2016년에 걸쳐 인기리에 방영되었는데 과거를 되돌아보는 내용이었다. 2014년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국제시장’ 역시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내용이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것을 ‘회고’라고 한다. 회고는 주로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하게 되고 또 그게 정상이다. 그렇기에 응답하라 시리즈는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이 사계절 중에 마지막 계절인 겨울로 접어들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겨울엔 환타지와 몽상도 잦아지나니



그리고 또 겨울이 깊어지면 낮은 짧고 밤은 길어진다. 이에 사람들은 길고 긴 겨울 밤 동안 이불 속에서 환타지 또는 몽상에 잠기기도 한다. 현실적이지 않은 일, 현실에선 불가능한 꿈과 같은 일들을 공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에 2009년부터 시작된 겨울이 점점 더 본격 겨울로 접어들자 ‘시크릿 가든’이나 ‘별에서 온 그대’, 그리고 최근의 ‘도깨비’와 같은 환타지 로맨틱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작년 올 해의 빅 히트 영화 ‘신과 함께’ 역시 그런 흐름이라 하겠다. 



겨울은 생산의 계절이 아니라서



겨울은 생산과 발전의 계절이 아니다. 땀 흘려 일하고 투쟁하는 때도 아니다. 


겨울은 가을에 거두고 저장한 수확을 소비하는 때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역시 2009년 이후 특히 국운의 小雪(소설)인 2012년부터 경제성장률이 현저하게 둔화되었다. 사실 그건 성장도 아니다, 일종의 통화량 증가에 따른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겨울을 날 때 신경을 쓰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요점은 가을 수확으로 겨울만이 아니라 봄까지 나야 한다는 점이다. 초여름 보리 수확 철이 올 때까지 말이다. 


예전엔 보릿고개란 것이 있었으니 비축된 식량이 떨어져서 햇보리가 나는 철까지 배를 굶주려야 했던 시기를 말한다. 


물론 오늘날은 농사가 大本(대본)이 아니지만 자연의 이치는 변함이 없다. 우리 주력산업들이 최근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데 바로 이 주력산업이 다음 번 국운의 여름이 오기 전까지 우리가 먹고 살아갈 식량인 셈이다. 


현재 우리의 주력산업인 철강과 조선,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등의 기업들은 대부분이 1970년대 초중반에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36년이 경과한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들어서면서 노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 만물은 시작으로부터 36년이 흐르면 어떤 브레이크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비교적 늦게 1983년에 시작한 반도체 또한 내년 2019년으로서 36년이 된다. 


반면에 이른바 ‘미래 먹거리’ 산업은 구체적인 성장궤도에 들어서기까지 좀 더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의 기간, 국운의 겨울 동안 우리 모두 장차 어떤 어려움이나 위기가 닥쳐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복지 논쟁



사실 이미 2012년부터 전 국민이 어떤 불안감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2012년 말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의 이슈가‘ 복지 논쟁’이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의욕과 욕심이 많고 부지런하던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2012년 무렵이 되자 갑자기 복지에 관심이 높아졌으니 무슨 연유이고 까닭이었던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아주 간단하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급속도로 떨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랴! 


그 무렵이 되자 이른바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지고 성공의 기회도 극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 지나갔다는 불안감, 부와 성취를 향한 게임이 이젠 끝이 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젠 발전이나 상승보다도 노후를 걱정하기 시작한 대한민국이 되었기에 복지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미래의 세월이 과거와는 달리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감지했던 우리 국민들이었던 셈이다. 



나라는 부강해졌으나



2012년에 이르러 나라 자체는 세계적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음에도 그 구성원의 대다수는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逆說(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그 불안감이 전혀 막연하거나 근거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몇 년 사이 흔히 듣게 되는 얘기로서 ‘이제 우리가 올 수 있는 데까지 왔다, 이제 더 앞으로 나아가긴 어렵다’는 말이 그것이다. 


겨울은 생산과 발전의 때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국운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대한민국이 한창 신명을 내던 시절도 있었으니



다소 부족하고 미흡한 것이 있어도 시간이 가면서 하나 둘씩 생겨나고 얻는 것이 있는 세월이 훨씬 재미가 있고 즐겁다. 우리 대한민국에게 있어 그런 시절은 바로 1987년부터 2002년에 이르는 세월이었다. 한 해로 친다면 여름의 하지에서 가을의 추분에 이르는 시기였다. 


1987년 갑자기 경제가 급성장하고 무역 흑자가 정착되었으며 동시에 감격스런 민중화가 이루어졌던 한 해, 그 한 해 GDP 성장률만 해도 무려 12.5%였다.


그렇게 우리 대한민국 약진의 세월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열심히 하고 잘 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널리 보편화되던 시절이 열렸던 것이다. 비로 그 도중에 외환위기라고 하는 國難(국난)이 있긴 했으나 1987-2002년 사이의 세월은 발전과 전진의 세월이었음이 분명하다. 



돌이켜본다는 것은 노인의 일이니



글의 앞에서 우리 국운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되돌아보고 回顧(회고)하는 일은 사실 젊은이의 일이 아니라 나이든 노인의 일이란 점이다. 


따라서 우리 국운이 2009년부터 겨울로 접어들었다는 말은 우리 대한민국이 늙었다는 말과도 같다는 뜻이다. 늙어가다 보니 신생아 출생률도 급감하고 활력 또한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계속 이대로 줄곧 늙어만 갈 것인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는 말씀을 드린다. 2024년이 되면 늙은 대한민국은 죽고 그와 동시에 新生兒(신생아) 대한민국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2024년에 태아가 만들어지고 다시 10년이 흘러 2034년이 되면 세상 밖으로 나갈 대한민국이라 하겠다.) 


저녁 무렵 글을 시작해서 도중에 쉬었다가 이제 마무리한다. 시각을 보니 11월 8일 새벽 1시 57분이다. 그 사이에 立冬(입동)점을 넘어섰고 그러니 이젠 겨울이 시작되었다. 아직은 춥지 않은 겨울이지만. 


미국 트럼프가 중국을 때리자 중국은 총력 체제로 돌입해서 생산을 풀(full) 가동하고 있다. 그러자 중국 북방의 산업단지들이 석탄을 마구 써가며 사정없이 매연과 미세먼지를 뿜어내고 있다. 이에 그 탁한 먼지들이 서풍을 타고 서해를 건너 우리나라로 죄다 몰려들고 있다. 올 겨울 우리 한반도의 하늘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탁해질지 당장은 그게 걱정이다.



낙엽 분분한 계절을 맞이하여 되돌아보니



단풍은 이제 절정을 넘겼고 落葉(낙엽) 紛紛(분분)한 계절이다. 수요일 7일이 立冬(입동)이니 이제 쓸쓸한 겨울로 넘어갈 참이다. 


아직 해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 무렵이면 올 한 해를 되돌아보기에 빠른 시점 또한 아니다. 한 해의 성과는 9월 하순의 秋分(추분)이면 윤곽이 드러나고 가을 추수철인 10월 하순이면 사실상 정해져서 不動(부동)인 까닭이다. 



아쉬웠던 북한의 비핵화



생각해보면 올 한 해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북한의 비핵화였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만나서 서로 비핵화에 관해 약속을 하고 평화롭게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보자고 했을 때 정말 크게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9월 하순의 추분 무렵이면 보다 구체적인 진척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소중한 불씨를 살려보려는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있었을 뿐이다. 당초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몰라도 아쉬운 바가 크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소득주도성장 정책



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소득주도 성장정책 역시 그렇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기업의 수익은 크게 증가한 반면 가계소득의 증가가 많이 부진해진 구조가 정착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가계소득을 늘려보려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해왔고 나름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어렵다. 


가계소득 증가는 역시 양질의 일자리 공급과 직결되는 문제라 하겠다. 하지만 현실은 일자리 질의 양극화로 인해 전체 직장 근로자의 10%만이 대기업 정규직일 뿐, 나머지 90%는 비정규직이거나 중소기업 근로자라는 점이다. 아울러 무려 560만에 달하는 자영업자가 있는 구조이다.


그러니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52시간 근무 정책은 가계소득을 늘리기보다 오히려 영세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라 하겠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역시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9월 추분 무렵이면 윤곽이 나오기 마련인데 최근의 결과는 많이 실망스럽다 하겠다.


박근혜 전 정권이 추진했던 노동시장의 유연성 개선 정책 역시 일자리의 양극화를 해소해보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기득권 노조의 저항에 부딪쳐서 실패했다. 


이에 현 정권의 가계소득을 늘려서 성장 탄력을 되살려보려는 노력 역시 실패한다면 과연 우리가 해볼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것이 남아 있을까? 하는 회의가 생긴다. 



한은의 금리정책, 진퇴양난에 처했으니



최근 난데없는 서울과 경기권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한은의 장기 저금리 정책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사실 한은으로선 나름 억울할 것이다. 전 정권과 현 정권에 걸쳐 경기를 살리고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했던 저금리 기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성과가 나지 않고 부작용만 불거졌으니 한은으로선 많이 서운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장차 경제에 충격이 왔을 때 추가적인 금리인하 수단을 이미 상실해버렸다는 점과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와 거꾸로 가고 있는 점에서 오는 모든 리스크와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갈 수밖에 없는 답답한 실정이라 하겠다. 



밀려오는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



게다가 7월 초 우려하던 미중간의 무역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미중 양국이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보고자 나서고 있지만 역시 엄연한 한계가 있다. 


저번 10월에 우리 증시가 유독 많이 하락한 배경에는 9월27일의 연준 금리 인상도 있지만 더불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 있어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 또한 상당히 작용했다고 본다. 올 해 중국의 성장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자 그로 인한 악영향을 우리 수출이 많이 받게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올 한 해 戊戌(무술)년은 반가운 소식이나 흐름보다는 그 반대의 일들이 많았다고 여겨진다. 



아직은 요원한 선진사회로의 길



수치상으로만 보면 우리 대한민국은 선진국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우리나라가 선진사회냐고 물어볼 것 같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 호호당도 동감이다. 


그 이유로서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달리 말하면 사회적 상호 신뢰가 그다지 많이 쌓여있지 않은 것이 우리가 선진사회가 되기엔 많이 부족한 원인이 아닌가 싶다. 


오늘 일요일 저녁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데 옆 차선에서 SUV 차량 한 대가 날카로운 각도로 차선을 치고 들어왔다. 택시 기사도 꽤나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끼어든 차 뒷면 창에는 ‘Baby In Car’ 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저렇게 위험하게 운전하면서 ‘아기가 타고 있어요’ 라고 붙이고 다니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싶었다. 하기야 애 아빠라면 피 끓는 30-40대일 것이니 저렇게 운전할 법도 하지 싶었다. 


아기가 타고 있으니 당신은 양보하시고 나는 마음대로 차선을 변경하겠어, 이런 식이니 스티커가 담고 있는 상호 신뢰와 양보의 메시지가 그저 무색할 따름이었다. 


저녁 들어 뉴스를 검색하다 보니 유기된 강아지 보호소에선 강아지를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지원금만 착복하고 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사회적 신뢰가 없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일면이다. 저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저 사람들도 참 딱하지 싶기도 하다. 


최근의 사립유치원 문제 역시 그렇다, 내 생각에 모든 사립 유치원이 그렇진 않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일부가 저처럼 문제를 만들고 있으니 전체적인 신뢰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몇 년 사이 유난히 아프리카 등지의 어린이들을 도와달라는 텔레비전 광고를 많이 접한다. 나름 후원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과연 제대로 하고는 있을까 의심이 앞서는 바람에 늘 그만 두곤 한다. 


믿는 것이 어리석거나 심지어는 위험할 수도 있는 우리 사회의 말과 약속들이다. 우리가 이처럼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니 따라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선진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작은 약속이라도 믿을 수 있고 지켜지는 사회, 경제적으로 윤택하냐 아니냐를 떠나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는 그런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시작된 동작동 뒷산의 동계 보급 작전



이제 상강 지나고 입동을 앞두고 있으니 겨울철 뒷산 새 모이 주는 일을 시작했다. 


매일 뒷산으로 아들과 함께 강아지 두 마리를 이끌고 산책을 나선다. 매일 밤 산책길에 동네 고양이들 밥을 준 지 벌써 9년이다. 2010년 초부터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새들 모이도 겨울이 되면 주게 되었다. 쌀과 잡곡, 땅콩 등등을 섞어서 준다. 한 겨울 새벽 참에 나가보면 거의 수백 마리, 어쩌면 천 마리 정도 되는 새들이 모이를 먹고 있는 광경, 대단한 壯觀(장관)을 볼 수 있다. 


재미난 점은 새들이 종류 별로 순번을 정해서 먹는다는 점이다. 까치가 제일 사납다, 그 바람에 가장 먼저 먹는다. 새들은 행동반경이 커서 동작동 뒷산 새들은 물론이고 국립묘지 새들과 반포 일대의 새들도 죄다 날아오는 모양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먹인다는 것은 정말 그야말로 즐거운 일이다. 어쨌거나 일해서 번 돈으로 고양이 밥을 마련하고 새들 모이를 준비해서 먹일 수 있으니 마음이 흡족하다. 이에 나 호호당 스스로 동작동 국립묘지 뒷산의 산신령을 자처하고 있다. 


(작년까진 독자들에게 묵은 쌀 남은 것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글에 올린 적도 있지만 올 해 그게 좀 미안하고 구차한 것 같아서 그냥 마련하기로 했다.)


올 겨울은 엄청 추울 수도 있다는 기상청의 얘기가 있다. 우리 부자의 야간 산책 시간이 주로 밤 11시 경인데 겨울이 엄청 추울 것 같으면 고생 좀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주로 틀리는 기상청이라서 아직은 큰 걱정 하지 않기로 한다.


9월 27일 연준 금리 인상으로 시작된 증시 하락



9월 27일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2.25%로 인상했다. 그러자 1.50%인 한은 기준금리에 비해 대다수 전문가들이 한계라고 진단하고 있던 0.75%의 격차가 생겼다. 


9월 27일의 코스피 지수는 2,355포인트였는데 다음 날인 9월 28일부터 코스피 지수가 하락하기 시작해서 10월 26일 금요일엔 2,027포인트까지 줄곧 하락했다. 한 달 동안 328포인트나 급락하는 장세가 나온 것이다. 


이번 주 월요일 추가 하락할 것인지 아니면 바로 반등할지 그거야 모르겠으나 단기간에 하락이 다소 과다했다고 본다. 


이번 하락의 원인은 따라서 너무나도 그 이유가 명백하다. 연준의 금리인상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금융긴축의 시대, 증시 하락은 당연한 일이다.



글로벌 대표 투자은행인 미국의 골드만삭스는 미국 연준이 내년 2019년 말까지 금리를 3.50%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추정을 하고 있다. 지금보다 1.25%를 더 올릴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이번 우리 증시의 급락을 떠나 이제 전 세계적인 금융긴축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금융긴축의 시대를 증시에선 逆(역)금융장세라고 부른다. 유동자금이 늘어나면서 증시로 돈이 유입되고 그로서 주가를 위로 밀어 올리는 금융장세의 반대 흐름, 즉 돈이 회수되면서 증시로부터 돈이 빠져나가고 주가가 하락하는 흐름, 간단히 말하면 증시의 추세적인 하락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 증시의 최고점은 금년 1월 29일의 장중 2607 포인트로 확정이 되었다. 이제 오랫동안 그 수치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하락이 다소 과했기에 조만간 반등이 나오겠지만 그 반등이 9월 27일의 코스피 종가인 2,355 포인트까지 이어지는 일 역시 없을 것이다. 반등이란 내린 폭을 어느 정도 줄이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증시 하락의 징후들



나 호호당은 이제 우리 증시의 하락 징후를 금년 5월 4일에 있었던 삼성전자의 액면분할에서 처음 감지했다. 


주가를 1/50로 줄인 조치가 그것이다. 주당 가격이 너무 비싸서 일반 투자자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던 주식을 보다 거래가 잘 되도록 한 조치였지만 실은 그로서 어떤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삼성전자는 코스피 증시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한다.) 


그리고 9월 27일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한미간 금리 격차가 임계점을 넘은 것이 두 번째로 나온 가장 확실한 징후였고 마지막으론 10월 16일자 뉴스 기사였다. 그 날 뉴스에 패시브 펀드의 설정액이 25조원을 넘기면서 24조 규모의 액티브 펀드 설정액을 넘어섰다는 소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옆으로 기는 횡보장세라든가 하락장에선 전문가의 능력에 따라 시장초과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액티브 펀드가 선호되고 상승장에선 시장 수익율을 그대로 따라가는 패시브 펀드가 더 나은 경향이 있다. 


그러니 시장 수익율만큼 수익을 올리는 패시브 펀드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증시 전망에 대해 낙관적인 사람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장이란 으레 낙관적인 견해가 우세해질 무렵이면 하락세로 접어든다. 참으로 불변의 逆說(역설)이다! 


9월27일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우리 금리와의 격차가 0.75%까지 벌어지면서 하락이 시작된 마당에 패시브 펀드가 더 많아졌다는 내용의 뉴스를 접한 나는 이제 증시가 진짜 하락세로 들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


 

양적완화로 인해 猶豫(유예)된 증시하락



사실 우리 증시의 경우 진작부터 내렸어야 했었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발생과 함께 말이다. 늦어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2012년부터는 하락세로 접어들어야 했다. 


그런데 역사상 초유의 양적완화라고 하는 희한한 조치 때문에 2011년 초부터 작년 초까지 만 6년에 걸쳐 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르지도 못하는 이상한 횡보장세에 갇혀 지냈다. 


코스피 지수 1,800을 하단으로 하고 2,200을 상단으로 하는 초장기 박스권에 갇히게 되었다. 이 모두 양적완화로 인해 글로벌 경제가 엄청난 유동성과 부채의 일대 홍수에 잠겼기 때문이었다. 


목하 우리 경제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라, 금년 들어서면서 좋은 소식이라곤 들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일자리, 실업률, 자영업의 위기, 전반적인 설비투자 감소, 경기지표 하락 등등 무엇 하나 긍정적인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런 상황을 냉정히 살필 때 증시가 오를 이유는 萬無(만무)한 상황이라 하겠다. 


그저 진작부터 하락세로 접어들었어야 할 증시가 양적완화로 인해 길게는 10년, 짧게는 6년에 걸쳐 지연되고 유예되었을 뿐이다. 


사실 내막을 알고 나면 미국 연준 역시 어쩔 수 없이 금리 인상을 지속하고 있고, 분기마다 한 번씩 시장에서 직접 돈을 회수하는 양적 축소를 진행해가고 있다. 달러가 글로벌 기축 통화이기에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할 경우 기축 통화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향후 글로벌 경제 역시 어려울 것 같으니



양적완화 자체가 극단적인 비정상적 조치였기에 금리인상과 함께 양적축소가 이루어지면 어떤 후유증을 가져올 것인지 현 시점에서 그를 미리 알고 있는 경제학자는 없다. 전례가 없는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성장을 이끌어온 것은 중국이었는데, 이제 중국마저 과다한 부채로 인해 급격하게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으니 당분간 글로벌 경제를 견인할 주체는 없어 보인다. 


미국 경기상승이 오래 이어져온 만큼 내년부터 하강 또는 급강하할 수 있다는 얘기들이 무성한 마당이다. 유로존은 아예 어떤 기대조차 하지 못한다, 현상 유지라도 하면 최선이고 이탈리아가 사고를 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 마당에 글로벌 전체적으로 돈의 회수가 시작되고 있다. 게다가 금년에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도 모른다.



2017년부터의 우리 증시 상승은 마지막 거품이었다.



돌이켜보면 작년 초 새 정부 출범을 분위기로 깔고 증시가 오르기 시작한 것 자체가 실은 마지막 거품이었다. 오를 이유가 전혀 없는 우리 경제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지속적인 저금리로 인해 만들어진 유동성이 새 정권 출범에 어떤 기대를 걸었던 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 면에서 금년 여름의 부동산 상승과 같은 맥락,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과잉 유동성이 원인이었다. 


우리 코스피 시장의 시가총액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역시 최근엔 하락세이고 반도체 정점론이 무성한 판국이다. 게다가 최근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 역시 3분기 실적이 쇼크 수준으로 나왔다.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으니 



우리 경제는 이미 개방 경제라는 면에서 한은의 금리 결정은 현 시점에 이르러 실로 진퇴양난을 맞이하고 있다. 다소 무리가 따를 수 있었어도 한은의 기준금리는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2016년 말부터 연동해서 올렸어야 했다고 본다. 


국내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미루다 보니 어느새 금리가 역전되기 시작했고 이제 와선 미국이 우리보다 0.75%나 더 높은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최근 한은 이주열 총재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발언을 했지만, 이미 국내 경기 사이클이 금년 들어 하강세로 접어든 마당이라 더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다. 경기가 더 나빠지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수 있는 판국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앞에서 얘기한 바처럼 개방 경제란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을 비롯하여 글로벌 전체적으로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고 있는 마당에 가령 일본의 제로 금리처럼 저금리 상태를 유지해갈 수 있는 경제적 체력이 우리에겐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오늘에 이르러 한은은 실로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되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증시 하락은 이미 예고된 일이다.



올 여름 7월 24일자 “2019년 5월, 우리 경제의 변곡점”이란 글의 말미에 써놓은 글이 있다. “나 호호당이 읽고 있는 운세의 흐름으로 볼 때 금년 10월이면 우리 경제에 좋지 않은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내년 5월은 어떤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 증시가 추세적으로 하락해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 하겠다. 


(추신:자연순환운명학 심화반 강좌를 공지했다. 올렸어도 미처 못 보시는 분들도 있고 해서 글의 본문에 올린다. 많은 참강 있으시길 바란다.)




상강, 서리의 계절에 雷雨(뇌우)가 들이치니  



오늘은 10월 23일, 저녁 8시 22분으로서 霜降(상강)이었다. 지금 시각은 밤 10시 21분. 상강은 서리 霜(상)에 내릴 降(강)이니 서리가 내릴 때란 뜻이다. 가을이 참으로 깊었으니 深秋(심추)의 계절이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건만 오늘 점심 무렵엔 제법 거센 雷雨(뇌우)가 한 바탕 지나갔다. 거리는 삽시간에 젖은 낙엽 천지가 되었다. 그야말로 스산한 罷場(파장) 분위기. 


가을 추수는 상강 무렵이면 절정을 이룬다. 옛 사람들은 이 무렵에 국화주를 빚고 국화전을 부쳐 먹었다고 한다. 가을의 대표과일인 감도 이 무렵에 본격 출하가 된다. 


이제 보름 동안은 낙엽의 때이고 풀벌레들은 겨울잠을 자기 위해 어디론가 들어갈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죽고 風化(풍화)되어 가루로 바스라지고 날릴 것이니 그러면 죽음 혹은 주검의 계절인 겨울로 접어든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복닥거리는 대도시에 살아가는 이유



서울을 비롯하여 대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이유가 뭘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야말로 벌어먹고 살기 좋아서 그렇다. 교환이 빈번하고 시장이 크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 살려면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오만 가지 스트레스. 서울과 같이 천만의 대도시에서 한 개인의 존재는 참으로 미미하다, 스스로 보기에도 보잘 것이 없다. 


하지만 대도시를 떠나긴 정말 어렵다, 열심히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하니. 서울 인근의 아파트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삶은 정말로 고달프다.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훗날 돈 좀 모아서 은퇴하면 조용한 전원에 나가 아담한 집을 짓고 유유하게 살아보리라 하는 생각, 사실 이런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다 해보게 된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싸우면서 살다 보면 우리 누구나 가끔씩 쉬고 싶어진다. 아쉽기만 한 휴가 정도가 아니라 몇 년 정도 푹 쉬고 싶어진다. 하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는 이는 거의 없다. 몇 년 쉬고 나면 여간해선 되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에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갈 뿐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현장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는다. 


이처럼 現役(현역)의 삶은 치열하고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섣불리 현역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은퇴는 일종의 사회적 죽음인 것이니



현역을 그만 두는 것, 이를 은퇴라고 한다. 그런데 은퇴란 것은 한 개인에게 있어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란 사실이다. 은퇴란 그 사람이 머물던 세계 혹은 그 바닥에서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사라진 거나 죽은 거나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렇기에 사람들은 좀처럼 현역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게 죽음이란 것을 은연중에라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 호호당이 하고자 요지는 사람이 죽으면 무덤에 들어가 묻히거나 납골당에 안치되듯이 은퇴 시점을 고려해서 마련한 전원의 아담한 주택은 사실 그 사람의 무덤이나 납골당과 같다는 얘기이다. 


줄여 말하자면 사회적 죽음을 맞이한 자가 사는 집이 그런 전원주택일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은퇴한 뒤에도 작은 전원주택 한 채도 마련하지 못하는 딱한 경우도 허다하지만 말이다.)


은퇴하면 죽음이라니 다소 과격하고 지나친 주장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정말로 그러하다. 은퇴 후의 전원주택 또한 제 아무리 아담하고 살기 좋아도 그곳은 결국 무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친지나 손님들을 초대해서 집과 주변의 좋은 환경을 구경시켜주면 정말 좋네요! 하는 부러움을 잠시 살 순 있겠으나 잠시 들렀던 그들이 떠나고 나면 역시 무덤에 불과하다. 



가장 화려한 때 직후에 바로 죽음의 계절이 시작되나니



대목에서 잠깐 60년 순환에 대해 얘기할 까 한다. 60년 순환은 사계절로 나눌 수 있으니 순환의 시작점인 입춘으로부터 42.5년이 경과한 때가 상강이고 45년이 경과하면 입동이고 그로서 15년의 겨울이 시작된다. 


오늘의 주제인 霜降(상강)은 입동이 오기 전, 겨울이 시작되기 전의 마지막 가을의 때이다. 상강의 산과 들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한창이다. 자연이 죽음의 계절인 겨울 직전에 마지막으로 최고의 ‘꽃단장’을 하는 때인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잿빛으로 물들어가는 겨울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상강 무렵의 화려한 단풍은 하루로 치면 해가 서산에 지기 직전에 보여주는 황홀한 저녁놀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절정의 때는 죽음 직전에 온다.



이담에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편히 살겠다는 생각, 절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때가 되었다면 그 자는 60년 순환에 있어 상강을 맞이한 자라고 봐도 절대 무방하다. 


예를 하나 들겠다. 이젠 벌써 꽤나 오래 된 일이지만 현대 그룹의 창건자이자 한국 경제의 거인이자 영웅이었던 고 정주영 회장의 얘기이다. 


정주영 회장은 1970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추였고 1983년은 상강의 운이었다. 이때 정회장이 지은 건물이 서울 종로구의 계동 사옥이다. 겉멋보다는 실익을 중시하던 정주영 회장이 나름 최대한 멋을 부린 사옥이었다. 왜냐? 본인의 무덤이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계동 사옥에 들어가 집무실에 앉는 순간 정주영 회장의 운은 사실상 끝이 났던 것이다. 더 이상 현역이 아니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정주영 회장은 그런 다음 1992년 난데없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실패한 뒤 많은 곤욕을 치렀는데,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세간에 한때 설이 분분했지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무덤 속에서 너무나도 적막했기에 상실감을 견디지 못했던 까닭이다. 


정주영 회장만 그런 것인 아니다. 기업인들이 성공한 뒤에 멋진 사옥이나 저택을 짓는 일이 많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 기업인의 운이 상강 무렵 즉 이제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몇 년이 지나면 모 기업이 흔들리거나 고난을 겪는다. 


기업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반 보통의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가령 여유가 있어서 도심에서 벗어난 교외나 전원에 나름 좋은 집을 마련하거나 특히 집을 짓게 되면 그건 그 사람의 운세 순환에 있어 상강이나 입동 근처라 보면 된다. 나름 성취하고 성공한 사람의 마무리 작업이라 봐도 좋겠다. 



나라의 운세 흐름도 그렇다.



과거 일본이 1991년 거품 붕괴 직전에 도쿄나 오사카 도심에 멋진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들을 많이 지었다. 1987년은 일본 국운의 상강이었고 1990년이 입동이었던 까닭이다. 


우리나라 역시 2006년이 상강, 2009년이 입동이었는데 그 때를 전후해서 서울 도심이나 외곽, 부산의 경우엔 해운대 센텀 시티 같은 멋진 단지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국운의 상강을 맞이한 단풍놀이였던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 꾸미기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 


흔히 기념비적인 건물이란 말을 쓴다. 한 시대를 기념할 만한 건물이란 뜻이니 그건 보통 그 시대의 운세 순환에 있어 마무리 단계인 상강과 입동 무렵에 건축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증권계에선 높은 건물이 많이 올라가면 경제가 조만간 어려워질 하나의 지표로 삼는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이제 글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상강의 逆說(역설)



10월 그리고 霜降(상강) 무렵은 자연이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때이다. 그러니 참으로 逆說(역설)이다. 곧 잿빛의 겨울, 죽음의 겨울이 다가올 것이니 말이다. 


마지막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것, 한편으론 맞다, 행사 중에선 피날레가 가장 화려한 것과 같으니. 하지만 또 한편으론 슬프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면 바로 끝이고 죽음이라니 말이다. 


오늘도 치열한 경쟁의 마당에서 하루하루 힘들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그대가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서 우아하게 은퇴한 다음 아름다운 전원에 나가 느긋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삶을 보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좋다. 일종의 목표로 삼은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現役(현역)이기에 해보는 생각이란 사실이다. 정작 은퇴하고 나서 한가롭게 되면 사실 좋은 것이 별로 없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화려한 상강의 때가 지나면 바로 잿빛의 겨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가 실은 전성기란 사실



한 마디 더 첨가한다, 더 벌어 보겠다고 또는 더 성취해보겠다고 욕심내고 씩씩대면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현역의 세월이야말로 실은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이고 전성기란 점이다. 


글을 마치고 나니 새벽 2시,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글을 쓰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제 잠에 들 시간이 되었다. 굿 나잇!




흐르지 않는 강의 세월이 있으니



갖은 용을 쓰고 애를 끓여도 눈앞의 상황은 별 진척이 없고 그나마 현상 유지라도 되면 다행인 시간 혹은 세월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이거야말로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싶어 때론 그 자리에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지만 눈앞의 현실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또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물론 그 사이에도 때론 작으나마 좋은 일도 있고 또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숨이 턱에 차서 헐떡대고 있을 때 때마침 쉬어갈 만한 휴식처를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세월을 두고 ‘흐르지 않는 강’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을 한다. 흐르지 않는 강과 같은 세월 또한 익숙해지다 보면 나중엔 으레 그렇거니 하면서 엄살이나 투정 따윈 아예 부리지 않게 된다. 


길의 끝에 도달한다는 생각도 버리게 되고 그냥 끝이 없는 길로 받아들인다. 나그네 고생은 끝이 없으니 그를 宿命(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누구나 예외가 없이 맞이하는 세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모든 이가 이런 세월을 겪는다. 60년의 순환 속에서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은 15년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어떤 이는 이미 지나왔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장차 그런 세월을 겪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맞이하게 되어 있다. 


한 개인의 삶만이 그런 게 아니라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운의 순환엔 그 어느 것도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잠깐 예로 들면 1971년 여름부터 1986년 여름에 이르는 15년의 세월이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시기였다. 이젠 먼 과거의 일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상당수는 그 시절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서든 좀 더 나은 사회와 생활을 위해 엄청난 악전고투를 겪었다.


 1972년의 유신헌법으로 시작된 그 시절, 외화를 벌기 위한 필사의 노력으로 달려간 중동 건설 현장, 조세 확보를 위한 부가세와 유류세, 교육세 등등의 각종 간접세의 연이은 신설과 강행과 그로 인한 서민경제의 부담, 엄청난 비난과 반대 속에 추진된 중화학 공업 정책 등등. 


하지만 무역은 늘 적자를 면치 못했으며 거기에 두 번에 걸친 오일 쇼크가 우리 경제의 숨통을 짓눌렀고 마침내 국가 부도 일보 직전에까지 갔다. 


이에 미국은 당시 최고의 글로벌 은행인 시티 은행을 내세워 보증을 해주는 한편으로 일본에게 압력을 넘어 당시 40억 달러라고 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우리에게 장기 저리로 빌려주도록 주선했다. 정말 그 때는 국가의 명운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부마사태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런 사망, 또 광주에서의 엄청난 비극이 있었다.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독재를 규탄했고 또 절망했다. 



그 어떤 길도 종착역에 도달하기 마련이니



그런데 1987년이 되자 갑자기 거짓말처럼 그토록 염원하던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현실의 일이 되었다. 만년 적자의 중화학 기업들이 엄청난 수출을 통해 단숨에 우리는 무역 흑자의 건강한 나라가 되었고 그 소중하던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증시는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주었고 절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아연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확장에 바빠서 신입 직원들을 정신없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채용했다. 대학만 나왔다 하면 성적에 관계없이 취업은 ‘자동 빵’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1987년 헌법이 만들어졌고 그로서 우리는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다. 


사실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과거 15년간의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힘든 길,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던 그 길고 지루한 세월이 갑작스럽게 어떤 종착역에 도달했던 것이다. 


당시의 감격은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참으로 먼 과거의 일이다. 벌써 30년 하고도 1년이 더 지났으니. 


이에 오늘의 젊은이들은 길고 긴 인고의 세월 끝에 우리 대한민국이 맞이했던 당시의 기적에 대해 별다른 추억이나 기억이 없을 것이다. 말로 전하고 듣는 것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 섭섭할 것 없다, 오늘의 젊은이들 역시 장차 29년이 지나 2047년이 되면 또 다시 어김없이 경험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우리 주변에도 흐르지 않는 강의 세월을 보내는 이가 실로 많다.



우리 대한민국을 예로 들었지만 지금 현재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숙명처럼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무수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 숫자를 말하면 우리나라의 인구가 최근 5,180만 명이라고 하니 그 1/4인 1,295만 명은 그런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흐르지 않는 강의 세월이야말로 위대한 창조의 때



그런데 말이다,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세월의 길이야말로 실은 위대한 창조의 시기란 사실이다. 


글의 머리에서 얘기했다. 갖은 용을 쓰고 애를 끓인다고 말이다. 실력이 늘고 내공이 쌓이려면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서든 해보고자 하고 살아남고자 한다면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짜내고 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부족해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또 다시 도전해간다. 그러니 스스로는 몰라서 그렇지 그 사이에 엄청난 발전이 있을 것은 물론이다. 


쉽게 되면 실력이나 내공은 거기까지로 그친다.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힘들고 버거워야만 지속해서 힘이 세지고 내공이 단련된다. 되지가 않으니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서야만 할 때 사람은 극도로 창조적으로 변한다. 


창조란 본시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따라서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 속에서 사람의 잠재된 위대한 창조성이 발휘된다. 


그렇기에 1971년 여름에서 1987년 여름에 이르는 15년간의 세월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최고의 창조성을 발휘했던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1975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가 생산되었고 반도체 역시 1983년 삼성전자가 시작했다. 조선의 경우 1972년 울산의 미포만에 현대 조선소가 설립되면서 조선강국의 길을 열기 시작했으며 석유화학 역시 그 무렵에 시작되었다. 포항제철 역시 1976년부터 본격 확장에 들어섰다. 


기술도 없고 돈도 없던 우리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죽어라 악을 쓰면서 현실에서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될 때까지 들러붙었던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니 그 모든 것은 결국 창조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를 가도 선진국 대접을 받는다. 세계 유수의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 여권은 글로벌 암시장에서 대단히 고가로 거래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면 그 출발은 바로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았던 1971-1986년이 이르는 15년간의 힘든 세월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 이후 우리는 궤도에 올랐고 탄력을 받아 비록 여러 어려움을 겪긴 했어도 무너지지 않고 줄곧 성장을 거듭해올 수 있었다. 



창조는 악조건 속에서



창조란 것은 좋은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창조의 바탕은 오히려 갖은 惡條件(악조건)이라 하겠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비빌 언덕이 없는 소가 등이 가렵고 답답한 나머지 스스로 흙을 모아서 언덕을 만든다면 바로 그것이 창조인 까닭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 또한 때가 있어서 창조의 때가 있는가 하면 나태와 태만의 때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1년 가을부터 2016년 가을까지 15년간 실로 풍족과 번영을 만끽했다. 그러자 정치는 날선 이념 공방에 빠지거나 아니면 스스로 연예인처럼 변해갔다. 사람들은 이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나를 위해 무얼 해줄 수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국가에선 열심히 복지 항목을 챙기고 예산을 편성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주변엔 힘든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이상한 현실, 이게 바로 국가적 나태와 태만의 세월이다. 



이제 어려워지겠지만 그 또한 꼭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하여 저 바닥에 도달하고 나면 어느새 또 다시 일어서려는 탄력이 되살아나고 다시 한 번 힘겹지만 위대한 창조의 세월을 맞이할 것이니 말이다. 


한 개인의 삶도 그렇다. 어려운 창조의 때가 있는가 하면 나태와 태만으로 보내는 세월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몰락하면 또 다시 일어서는 법이니 그게 바로 순환이다.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세월이야말로 실은 위대한 창조의 기간이란 사실. 그리고 그 세월은 운명의 사계절로 말하면 봄의 春分(춘분)에서 여름의 夏至(하지)에 이르는 기간이란 점도 밝혀둔다.


노래에 얽힌 사연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하는 노래, 전인권 씨가 부른 이후로 거의 국민가요라 할 정도로 모르는 이가 드물다.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가 늘 감동을 준다. 물론 이젠 나이가 든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이다, 가끔 유튜브를 통해 듣곤 한다.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하는 대목을 특히 좋아한다. 


이 노래의 오리지널은 ‘쟈니 리’란 가수였다. 지금은 작고한 길옥윤 선생이 작곡한 노래로서 1966년에 음반으로 나왔다. 그런데 당시는 제3공화국 시절, 가사 내용이 어둡다는 이유로 다음 해인 1967년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노래는 대중의 심금을 흔드는 매력이 있었던 터라 1980년대 초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게 되면서 ‘운동가요집’에 ‘사노라면’이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었다. 


세월이 흘러 그저 작자 미상, 혹은 구전 가요 등으로만 알려졌던 이 노래는 1987년 들국화의 전인권 씨가 새롭게 취입하면서 크게 히트를 쳤다. 1987년 민주화 바람과 함께 새롭게 되살아난 것이다. 그 이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면서 더욱 더 알려졌다. 


국민 애창곡이 되었으나 여전히 작자 미상의 곡으로만 전해지던 이 노래는 결국 2004년에 이르러 오리지널이 밝혀졌다. 모 가요 평론가가 소장한 원래의 음반이 공개하면서 노래의 원작자와 가수가 명백하게 밝혀진 것이다. 



36년이라고 하는 시간의 試金石(시금석)



운명학적 관점에서 이 사연은 정말 흥미가 있다. 


세상 모든 일은 36년이 흐르면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된다. 가려졌던 것이 밝혀지기도 하고 아닌 것이 결국 탄로 나기도 하고 사실이지만 묻혔던 것이 드러나기도 한다. 


36년이란 시간 간격은 사물의 커다란 試金石(시금석)인 까닭이다. 


노래가 금지곡이 된 것은 1967년이었다. 사실 금지될 노래가 아니었다.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는 지극히 건전한 노래였으니. 그런데 그 시절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빈곤하고 우울했던 탓인지 심사하는 양반들은 그 노래를 부정적으로 느꼈던 모양이다. 아니면 권력을 휘두르는 맛에 우쭐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죽지 않고 살아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던 학생들 사이에서 희망의 노래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36년이 흐른 시점은 2003년이었다. 이제 묻혔던 진실이 밖으로 나올 시점이 되었던 것이다. 다음 해인 2004년 드디어 원 작자와 노래의 사연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결정적인 가교 역할을 한 것은 전인권 씨의 리메이크였다. 그 또한 시간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 20년이다. 그 어떤 것이든 18년이 넘어가면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고 20년이면 급기야 결정적인 무언가가 생겨난다. 


1967년 금지곡에서 20년이 흘러 전인권 씨가 기가 막히게 불렀고 그로서 전 국민애창가요가 되었다. 


전인권이란 시대의 絶唱(절창)을 통해 20년 만에 다시 각광을 받게 되고 36년이 흘러 원 작자와 사연이 밝혀졌으니 이 노래 ‘사노라면’은 이로서 추가로 36년 즉 72년간을 이어가는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연장에 들어간 것이다. 


72년은 36년이 두 번 흐른 시점으로서 그 때가 되면 또 하나의 커다란 시간의 관문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이 노래는 2039년까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즐겨 부르는 노래로 남아있을 것이다. 2039년에 가야만 좋은 옛 노래 정도로 남을 지 아니면 역사의 망각 속으로 묻히게 될 지 결정 날 것이란 얘기이다. 


일제가 우리를 강점하고 통치한 것도 결국 36년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사실. 이는 결국 유구한 역사 전통을 지닌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과 합쳐질 운명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하기에



36년이면 기존에 존재하던 어떤 흐름에 큰 변화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 근본적인 이유는 이 세상이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변화해가기 때문이다. 60년에서 30년이면 그 절반으로서 전환점이 되고 그 전환이 확실해지는 시점은 36년인 까닭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최근 수년 사이 엄청난 호황국면이다. 그런데 내년이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지 36년이 된다. 1983년에 시작했으니 2019년은 36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물론 삼성의 반도체 사업이 앞으로도 지속되고 더욱 변화와 발전을 이어가겠지만 일단은 어떤 反轉(반전)이 시작될 것이다. 일종의 調整期(조정기)로 접어든다는 말이다. 



36개월 역시 강도가 다를 뿐 마찬가지



앞에서 36년이라 했지만 36개월도 사실은 그렇다. 다만 그 강도와 무게가 다를 뿐이다. 36개월은 3년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하든지 또는 시작하든 36개월이면 어떤 전환점을 확인하게 된다.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할 때 3년, 즉 36개월이면 성패가 확연히 드러난다. 창업 후 3년의 고비가 그것이다. 창업한 지 3년이면 절반 정도가 도태되거나 문을 닫는다. 절반이 남는 것이다. 


1년 만에 사업을 접는 경우도 많다. 이는 준비가 태부족인 까닭이다. 기본에서부터 틀려먹었던 셈이다. 3년도 버티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고 달리 말하면 3년은 버틸 힘이 있어야 무얼 해도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사실 연애나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3년을 함께 지내봐야 일생을 함께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최근 젊은이들은 결혼을 꿈꾸지도 못하고 이 연애에서 저 연애를 전전하며 지내고 있지만 말이다. 젊은이들의 현실은 감히 일생을 설계할 정도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 하겠다. 



끊임없이 변해가지만 다시 돌아오는 自然(자연)



이처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어떤 흐름도 또 어떤 물결도 곧이곧대로 이어져가는 법은 없다. 


끊임없이 변해가고 또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것이 바로 自然(자연)이다. 멀리 떠나가는 것 같지만 다시 돌아오고 돌아왔다 싶으면 다시 떠나가는 자연이다. 그렇기에 사계절의 변화가 곧 자연이다. 


바닥에서 안간힘을 쓰고 용을 쓰면서 또 다시 올라가는 것이 봄이고 열을 받고 탄력을 받아 거침없이 오르는 계절이 여름이다. 그런가 하면 어느덧 열이 식어들고 마르면서 수확을 보는 가을이고 그러고 나면 차갑고 드라이하게 식어드는 겨울이다. 


사계절은 한 해를 통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만 60년의 순환 역시 15년씩 한 계절로 해서 四季(사계)를 지나간다. 


36년은 60년의 6/10 즉 6할이고 한 해로 치면 7.2개월이 경과했다는 뜻이 된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 4월 초에 시작되었다면 11월 10일 경이 되는 것과 같다. 이에 4월 초의 밝은 봄기운은 간 곳이 없고 이제 가을도 아니라 초겨울의 풍경을 마주하게 되는 것과 같다. 


계절이 변해도 아주 많이 변한 것이다. 그렇기에 36년의 試金石(시금석)은 누구에게나 확연하게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 


점심 무렵 아내가 모는 차를 타고 작업실에 나오는데 뚜껑 없는 무개차, 외제차를 마구 거칠게 모는 젊은이를 보았다. 아내가 한 마디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이가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그저 속으로 생각하길 저 친구 인생 말년에 고생 좀 하겠지만 아무튼 지금이 당신의 헤이데이(heyday), 많이 즐기시게나, 했다. 



세월이 흘러 得道(득도)한 홍콩 배우 주윤발



영화 ‘영웅본색’의 주인공이었던 주윤발이가 자신의 전 재산 8000억 중에서 1%만 남기고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생일을 검색해서 운세를 확인해보니 2019년 내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이에 금방 이해가 갔다, 운세가 바닥에 이르니 돈이란 것이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구나 싶다. 이제 주윤발은 道人(도인)이 되었다.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性眞(성진)처럼 도를 깨친 것이다. 오래 살고 행복하게 살다가겠지. 


1986년 ‘영웅본색’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성공 가도를 달려왔는데 30년을 넘기고 나니 그 또한 싫증이 나서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1986년에 36년을 더하면 2022년, 아마도 그 무렵에 가서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을까 싶다. 



가진 게 없어도 새파랗게 젊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한 밑천이다.



그렇기에 가진 것 없어도 나이가 아직 젊다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오게끔 되어있는 세상이다. 30년이 흐르면 성공해있을 것이고 36년이 지나면 힘겨웠던 젊은 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무조건 그렇다. 그러니 새파랗게 젊다는 것은 그야말로 밑천 중에 밑천이다. 그러니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이여, 가슴을 쫙 펴고 살아도 된다.


2012년부터 글로벌 평균 성장률에 미치지 못한 우리 경제



우리나라도 한 때 고속 성장하던 때가 있었다. 신흥 경제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략 2002년 무렵부터 글로벌 평균 성장률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와의 동조화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우리가 수출 주도형 경제라서 그렇다는 해설을 했다. 


그런데 글로벌 성장세와의 동조현상은 2012년부터 깨어지고 말았으며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줄곧 글로벌 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5년부터는 그 괴리가 더 확대되고 있다.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 2017년의 경우 글로벌 성장률은 3.4%였는데 우리는 2.8%에 그쳤다. 몇 년간 거의 0.6%의 차이가 유지되고 있다. 



빗나가버린 연초의 낙관적인 전망



그런데 나로선 정말 뜻밖의 일로서 올해 1월엔 금년 우리 경제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인 전망이 많았었다. 


미국 경제가 호황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북핵 문제라고 하는 돌발 변수만 없다면 3~3.5%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는 국내 전문가도 있었고, 골드만삭스와 JP모건과 같은 외국은행들도 우리 경제가 3% 정도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초의 낙관은 올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최근 IMF라든가 OECD 역시 우리의 성장률 예상치를 낮추었다. 뿐만 아니라 내년엔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고 있다. 


그러자 세계경제 호황에도 한국 경제 ‘역주행’, 세계경제 ‘훨훨’ 나는데, 끝없이 추락하는 한국 경제…,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내수가 쪼그라들면서 투자, 소비, 고용 등에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이제 나 호호당의 설명을 제시해보자.


 

글로벌 성장세에 미치지 못하게 된 이유



2002년부터 10년간의 동조화 현상은 사실 과소비를 통한 성장,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파트 붐으로 인한 가계대출 급증으로 인한 성장이었을 뿐 그렇지 않았다면 글로벌 동조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결국 2012년에 이르러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더 이상의 소비여력이 없어지면서 글로벌 평균성장률에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2012년부터였는가? 하면 묻는다면 그 대답은 이렇다. 2012년은 우리 대한민국의 國運(국운)으로 말하자면 60년 순환에 있어 小雪(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한 해로 말하면 양력 11월 20일 경에 찾아드는 節氣(절기)로서 그때부터 우리 국운이 사실상 겨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이에 올 해 초 3% 이상 성장이란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을 때 나 호호당은 그저 피식-하고 웃고 넘겼다. 올 2018년의 경우 정부가 최대한 재정지출을 늘려야만 겨우 2.6% 대의 성장률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지금도 2.8%대를 얘기하고 있지만 연말까지 시일이 좀 남았다는 점에서 장담하긴 어렵다 본다. 



내년 2019년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국면이 전개될 것이니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내년이다. 


내년 2019년은 우리 국운의 小寒(소한), 한 해로 말하면 엄동설한의 때인 양력 1월 초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년 성장률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또 달라질 것이라 본다. 2012년부터 초겨울이었다 한다면 내년부터는 늦겨울, 본격 추위가 찾아드는 때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이에 성장률이 2.5%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돌발 변수가 없을 때의 이야기이다. 내년 5월경이면 우리 경제에 어떤 쇼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떤 문제가 터져 나올지는 모르겠다. 


첫째, 터키나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같은 나라의 문제가 글로벌 전체적으로 전이될 가능성, 둘째, 우리 경제 자체의 문제, 셋째, 예상 밖으로 현재 잘 나가고 있는 미국 경제가 급격한 침체로 빠져들 가능성도 실은 꽤 높다는 점이다. 



미국이 잘 나가도 문제, 그렇지 않아도 문제



사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미국 변수이다. 미국 경제가 호황을 유지해도 우리에겐 문제가 되고 불황으로 들어가도 역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이 당분간 호황을 유지하게 될 경우 연준은 별 무리 없이 기준금리를 높여가게 될 것이니 그로 인한 글로벌 금리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고 우리 역시 금리 격차를 줄여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그 결과 우리 경제에는 급격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미국 경제가 부진 또는 침체로 간다 해도 우리에겐 큰 문제가 된다. 미국 경기의 부진은 우리 수출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고 경쟁국과의 치열한 수출경쟁이 불가피하게 되니 그렇다. 


따라서 현 시점 이후로 미국 경제가 호황을 이어가도 문제인 것이고 부진으로 들어서도 문제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저금리 기조를 너무 오랫동안 이어왔기 때문이다. 환율이나 금리와 같은 거시적인 대응 수단이 사실상 없어졌다는 말이다. 


이처럼 어디에서 어려움이 닥쳐올는지 그건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경우에 따라선 우리 경제가 경우에 다라 내년부터 10년에 걸쳐 사실상 제로성장 내지는 마이너스 성장세를 유지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 내부의 어려움



우리 내부의 문제를 얘기할 것 같으면 1500조의 가계부채도 문제지만 그보다 최근 수 년 사이 가파르게 늘어난 자영업자 부채가 더 위험하다. 가계부채와 자영업자 부채는 사실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아무튼 최근 자영업자들의 부채 규모는 600조원에서 7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영업자의 대출 중에는 약 30% 정도가 제2금융권의 대출이기에 사실 고금리 대출에 속한다는 점에서 더욱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물론 한국은행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출 건전성은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현재와 같은 1.5%의 저금리 수준에서의 얘기인 것이고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려가야 할 땐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금리 상승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자영업자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근 30%에 달할 정도로 높다. 우리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터키, 브라질, 멕시코, 그리스 등이니 솔직히 우리 역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영업자끼리의 치킨 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수익성이 괜찮을 까닭이 없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최근 크게 문제가 된 까닭 역시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거의 한계선까지 내몰리고 있는 자영업자들에 대해 또 하나의 부담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알바를 두지 않은 자영업자와 가게가 크게 늘어나면서 고용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더불어 주52시간 근무로 인한 문제는 올 연말부터 더 커질 것으로 본다. 결국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비용 상승을 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투자 부진과 해외 이전, 그리고 국내 고용 부진이란 역효과는 비교적 빨리 나타나는 반면 당장 생산성을 높일 방도는 없기 때문이다. 



향후 수출 전망 또한 어둠이 밀려오고 있으니



우리 대한민국 경제는 여전히 수출을 통해 돌아가는 경제인 점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수출이 되어야 그만큼의 수입을 해올 수 있고 그로서 내수가 돌아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향후 수출 전망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겠다. 



몇 년 안에 중국이 문제가 될 것이니



내년이 아니라 조금 더 장기적으로 내다보면 중국 경제가 조만간 어려워질 것이란 점이다. 지금도 말이 무성하지만 공산당 통제력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여느 시장경제 국가와는 다르다 하겠다. 하지만 결국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과 선택이 누적될 경우 문제가 생기면 더욱 더 파괴적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중국의 경우 국운의 흐름이 우리보다 4년이 늦다. 중국의 2018년은 우리의 2014년과 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내년 2019년으로서 국운의 小寒(소한), 본격 추위가 찾아온다고 지금 말하고 있으니 중국의 경우 2023년이 된다. 


하지만 현 시진핑 체제는 과거 등소평이 만들어놓은 공산당 집단지도체제가 아니라 1인 독재란 점에서 중국의 붕괴가 더 빨라질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빠르면 2020년부터 중국이 붕괴 국면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전체적인 어려움도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어쨌거나 중국에 문제가 생기면 그 또한 우리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은 물론이다. 더 큰 국면에서 얘기하면 내년부터 향후 10년간은 글

로벌 전체가 어려운 국면을 다시 맞이할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양적완화라고 하는 유례없던 정책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긴 했지만 결국 그 부담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문제가 있으니 바로 이탈리아이다. 그렇기에 최근 이탈리아는 급격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는 2021년이 이탈리아에게 있어 국운의 입춘 바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로존 전체가 무사할 까닭이 없다고 본다. 물론 우리에게 직접 미치는 파급력은 다소 약하다 하더라도 그 역시 부담이 된다는 점은 사실이다.



반도체 문제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얘기할 것은 반도체 문제이다. 반도체하면 삼성전자이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반도체 메모리를 시작한 것은 1983년이었다. 그렇기에 내년이면 36년이 되는 해이고 이에 모종의 브레이크가 들어온다는 점이다. 모든 사물은 36이란 숫자가 지나가면 그간의 흐름과 반대되는 현상, 일종의 障碍(장애)를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 수출에 있어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금년 들어 실로 절대적이라 하겠는데 그 또한 내년엔 부정적인 변수가 생길 것이란 점에서 걱정이다. 


앞의 글에 대해 제목을 “국운의 10년 엄동설한을 앞에 두고”라 붙였는데 몇몇 독자들이 너무 추상적이란 말과 함께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반가운 내용이 아닌 터라 며칠 고민 좀 했다. 그 바람에 다른 글도 잘 손이 나가질 않았다. 그러다가 어차피 얼마 안 있으면 눈앞의 현실이 될 일들이라 싶어서 속내를 어느 정도 털어놓았다.


세상 이치는 참으로 아이러니.



세상의 이치는 참으로 놀라운 逆說(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수 십 년에 걸쳐 자연의 순환과 운명의 이치를 연구해온 끝에 얻은 결론이다. 


‘고생 끝 행복 시작’, 이런 말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행복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 움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전 국민이 열심히 일하고 고생한 끝에 정말이지 예기치 않은 큰 성공과 富(부)를 이룩했으니 그 때가 2002년이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글로벌 1류 기업’이 등장하고 있었으니 삼성전자가 바로 그것이다. 그 이전까지의 우리 모든 기업은 도전자일 뿐이었다. 


2002년 삼성전자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에서 글로벌 1위, 반도체에서 2위를 차지했고 그로서 글로벌 삼성이 등장했다. 그 이후 철강의 포스코와 산업장비의 현대중공업 등 여러 기업들이 미국 포춘 지의 글로벌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2002년부터 시작된 우리 대한민국의 전성기



2002년부터 우리 대한민국의 전성기가 시작된 셈이었다. 


나 호호당이 창안해낸 자연순환운명학의 이치에 따르면 2002년은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秋分(추분)의 때였다. 


추분이 어떤 때인가? 양력으로 9월 23일 경에 맞이하는 절기로서 이 무렵이면 들판의 곡식이 무르익고 또 출하되기 시작하는 때이다. 그렇기에 우리 대한민국은 2002년 국운의 추분을 맞이하여 풍성한 수확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이란 명칭이 자리 잡은 것 역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였다. 그 이전엔 우리 스스로도 ‘한국’이라 했지 대한민국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 무렵 우리 스스로의 성취에 대해 자부심과 자존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에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란 말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2002년은 1964년부터 시작된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추분의 때였음이 확실하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로만 알았는데



풍성한 수확을 보았으니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셈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부터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으니 ‘양극화’였다. 동시에 비정규직이란 말이 자주 귓전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파트 역시 2002년을 경계로 차별화가 이루어졌다. 서울 강남의 타워 팰리스를 시작으로 종전의 수평 형 복도식 아파트는 하나 둘 씩 재건축을 통해 수직의 타워 형 고층 아파트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수평이 평등이라면 수직은 계층화였다. 이에 수십 층의 고층 럭셔리 아파트는 신분의 상징물이 되어갔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이 있는 차별의 시대 양극화의 시대가 시작된 셈이었다. 


그 이전엔 ‘갑질’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우리 사회는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갑의 신분이 되고자 했다. 


고생이 끝나고 나니 모두가 행복한 시대가 된 게 아니라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한 시대가 활짝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갑과 을로 나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 병과 정, 무와 기, 경과 신, 이런 식으로 무한 차별화와 양극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해를 같이 하는 무수한 조합이 만들어졌고 이익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치만 해도 예전에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문제였다면 지금에 이르러선 온 세상이 무슨 조합 무슨 협회, 무슨 단체 식으로 무수히 분화된 오늘이다. 


대한민국은 2002년으로서 성공했고 또 그 때부터 분열되기 시작했다. 


경제가 흥기하려면 역시 산업이 일어나야 한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가들이 앞장을 서야 한다. 우리의 경우 2002년까진 산업가 기업가의 시대였다. 



2002년부터 시작된 소비를 통한 경제 성장



산업으로 기초를 다지고 나면 그 다음엔 소비의 시대가 온다. 소비에 동력을 공급하는 원동력은 역시 돈의 공급이다. 


이에 2002년부터 소비를 위한 돈의 공급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리테일 뱅킹, 소매 금융이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요는 럭셔리 아파트의 공급과 교육열을 통해 만들어졌다. 비싼 럭셔리 아파트를 사려면 뭉칫돈이 필요했는데 은행들은 갑자기 싹싹하게 그 뭉칫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일반인도 큰돈의 대출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1,500조의 가계대출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돈은 대출을 통해 만들어지고 시중에 공급된다. 돈은 그 자체로서 누군가의 빚이고 누군가의 채권이다.)


대출이 늘어나니 은행의 수익이 늘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금융업종은 신이 내린 직장이 되었다. 또 대출로 해서 만들어진 돈이 경제에 투입되자 경기는 더욱 흥청망청 잘 돌아갔다. 호황이 찾아왔다. 호황이 오자 사치성 소비가 급증했다. 


교육도 사치성 교육이 주류를 이뤘다. 영어 붐을 타고 해외 어학연수는 물론이고 거금을 필요로 하는 해외 유학이 성시를 이뤘다. 그리고 스펙 붐이 들끓었다.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좋은 시절, 즉 전성기는 추분부터 동지까지 15년의 세월이 된다. 우리 국운으로 치면 2002년부터 2006년까지의 15년이다. 


그 기간 동안 우리 경제는 돈이 기업 대출을 통해 투자 쪽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가계 소비, 즉 가계대출을 통해 돌아갔다. 반면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 기업들은 투자할 대상이 마땅치 않아졌고 그러다보니 사람 채용에 대해서도 보수적으로 변해왔다. 이에 비정규직과 외주, 아르바이트와 같은 임시직이 대세를 이루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은 떨어져갔음에도 가계 대출의 급증으로 인해 시중에 돈이 늘어났기에 경기는 호황이었던 것이다. 


수출 대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왔고 그에 힘입어 수입 또한 경기 호황으로 그만큼 늘어났고 다양해졌으니 가계 소비 또한 선택이 다양해졌고 윤택해진 것은 물론이다. 


수출의 지속적인 성장, 가계대출을 통한 통화 창출, 이 두 가지가 2002년 이후 우리 경제를 끌어온 양대 버팀목이었다. 



과소비의 결과 생겨난 문제점들



그런데 그 결과 몇 가지 문제점이 생겨났다. 안정적인 고용직 일자리 창출의 부진으로 인한 청년 일자리 문제와 함께 자영업자의 지속적인 증가, 부동산 시세의 고공행진으로 인한 높은 임대료 부담과 청년들의 결혼 기피, 출산율 저하, 여기에 결정적으로 가계소비 여력의 소진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수가 계속 증가하자 그간의 모든 정부들은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시중 통화 공급에 크게 기여했다. 



가을 잔치가 끝나고 나니



그러다가 과소비로 일관되어온 이 모든 것이 2017년 국운의 冬至(동지)를 맞이하자 갑자기 어려워졌다. 순식간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간 사실상의 제로 금리를 유지하던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해서 급기야 우리보다 높아지더니 최근의 인상을 통해 이제는 0.75%까지 차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미국 연준은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까지 3.50% 정도까지 올릴 생각인 것으로 추정이 된다. 아시다시피 미국 연준 금리는 글로벌 세계에 돈을 공급하는 水門(수문) 역할을 한다. 금리가 높아지면 수문을 조인다는 의미이고. 


이제 그간 풀려난 방만한 돈, 생산성 없는 돈을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글로벌 세계는 기본이 各自圖生(각자도생)이다. 협력이나 협조를 통해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치킨 게임의 양상이다. 무역전쟁과 환율 전쟁이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외교역환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했다. 


게다가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로 인해 글로벌 전체적으로 돈은 회수될 것인 바, 개방 경제인 우리가 마냥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환율을 조정하는 것 역시 예전과는 달리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은 보이지 않고 그간의 과소비로 인한 부담만 고스란히 남은 지금이다. 



잔치는 끝이 났고 이제 곧 청구서가 날아들 것이니



우리 국운으로 볼 때 2017년부터 2032년에 이르는 15년은 대단히 힘든 기간이 될 것이다. 국운의 엄동설한과 쌀쌀한 봄추위가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내년 2019년부터 2028년까지의 10년은 어려운 15년 중에서도 그 가운데 토막에 해당되기에 더더욱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 본다. 내년 2019년은 국운의 小寒(소한), 즉 양력 1월초에 해당되는 때이기에 嚴冬(엄동)이 찾아들 것이고 이는 2029년 국운의 驚蟄(경칩) 직전까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10년, 참으로 어려운 세월이 될 것이다. 그 구체적인 신호는 내년 2019년 5월이면 보다 뚜렷해질 것이다. 2002년부터 15년간 이어져온 우리 국운의 가을잔치는 2016년 말로서 벌써 끝이 났다.


10년에 걸친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으니



나 호호당은 우리 대한민국이 내년 2019년부터 2028년까지 10년에 걸쳐 혹독한 시련을 맞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운의 흐름을 살피기에 앞서 왜 그런 시련과 난국이 찾아올 것인지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各自圖生(각자도생)으로 들어선 글로벌 세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세계는 각자도생의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돈을 엄청 풀어대는 바람에 문제의 심각성을 가리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문제 자체가 해결된 것은 아닌 까닭이다. 


各自圖生(각자도생)이란 말을 썼다. 저마다 살 길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제2차 대전 이후 글로벌 세계의 번영을 이끌어온 미국부터가 시쳇말로 ‘쌩까고’ 있다. 트럼프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생긴 바람에 트럼프와 같은 사람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후협약, 달리 ‘2015 파리협정’이라 부르는 이 국제적 합의는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 폭을 제한하겠다는 것이고 좀 더 구체적으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약속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합의한 전 세계 국가들의 엄청난 협력과 참여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최근 정부가 안전벨트 의무화에 나서고 있는데, 이것만 해도 제대로 지켜지려면 국가의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공권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개 시민이 아니라 협정에 찬성을 표한 전 세계 195개 국가를 상대로 이행을 강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다. 


그런데 오늘날 글로벌 전체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미국부터가 작년 6월 협정에서 탈퇴했다. 국제법의 효력을 갖는 기후협약이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제2차 대전 이후 오늘날의 틀을 만든 미국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그런 건 나 모르겠오 하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자유무역? 과거 대영제국에 이어 줄기차게 자유무역을 주장해온 미국이 이제 관세부과를 통한 무역전쟁에 나섰다. 당장은 중국이 타겟이지만 기본적으론 전 방위적이다.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태평양 연안의 12개국이 참여하는 광역 자유무역협정(FTA)이다. 2015년에 타결되었으나 2017년 1월 트럼프가 집무를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탈퇴 선언이었다. 사실상 깨졌다. 



글로벌 錢主(전주)가 사라졌으니



미국 우선주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간단히 말해서 글로벌 리더인 스스로가 제 살 길부터 찾겠다는 것이다. 돈 되지 않는 리더 따윈 할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그로서 사실상 글로벌 세계는 이제 더 이상 글로벌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니 각자도생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세계의 物主(물주) 또는 錢主(전주)가 판을 팽개친 것이다. 


전주가 떠나면 협회나 모임은 깨진다. 만고의 법칙이다. 


일례로 최근 한국기원을 보면 자중지란에 빠졌다. 프로기사들이 한국기원의 행정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없던 일이다. 왜 그런 것일까? 하고 이유를 따져보면 간단하다. 스폰서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돈의 문제이다. 


오늘날의 글로벌 역시 스폰서가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니 위축될 수밖에 없고 또 각자도생의 길에 나설 수밖에 없다. 


국제간의 협약이나 합의는 정치지도자들이 가장 즐기는 일이다. 거창할수록 지도력을 돋보일 수 있고 서명식 같은 것을 통해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니 즐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트럼프와 같은 이는 그런 멋진 쇼를 마다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존의 것도 죄다 탈퇴하고 판을 깨고 있으니 옳고 그름을 떠나 그 배짱 하나만은 정말이지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 그러고도 지지율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 


그런 트럼프라면 전통의 맹방이자 우방인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오로지 미국의 이익에 따라 주고 받을 뿐 무슨 의리 따위를 따질 인물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또 다른 惡役(악역)



게다가 이런 악역을 자처하고 나선 또 하나의 거물이 있으니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줄여서 연준(Fed)이다. 


얼마 전에도 얘기했지만 연준이 정하는 기준금리, Fed Rate 는 전 세계에 대해 돈의 수압을 조절하는 水門(수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연준은 금리를 올리는 추세이다. 말로는 인플레이션 조절이라 하지만 실상은 의도적인 불경기 또는 불황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경제 전체에 대한 불황을 인위적으로 유발하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풀려나간 엄청난 돈 즉 부채, IMF 통계로 247조 달러의 돈(부채)를 대략 그것의 2/3 수준인 160조 달러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모양이다. 어느 정도의 기간에 걸쳐 줄이려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런 목표를 세운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향후 10년간 전 세계 경제는 불황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대략 80조 달러의 돈(부채)를 흡수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80조 달러, 감이 잡히질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의 연간 GDP가 2조 달러이니 그 40배 정도 되는 돈(부채)를 흡수할 것 같으면 세계 경제가 무사하게 무난하게 넘어갈 턱이 없다고 본다. 


당연히 모든 나라가 감을 잡고 있다. 국제 사회가 하나의 정부 아래 있지 않은 이상 공평하게 부담을 나눌 가능성은 만무하다. 그런 국제협약은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니 네가 죽어라, 나는 살란다 하면서 펼치는 치킨 게임이고 그를 통해 각자도생의 길로 치달리고 있다. 그 결과 어디선가는 난리가 날 것이고 어디선가는 지옥이 연출될 것이 뻔하다. 


이것이 내년부터 우리 경제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첫 번째 조건이다. 


한계에 봉착한 우리의 대응 역량



이제 두 번째 조건에 대해 얘기하겠다. 


우리 스스로의 대응 역량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바 국제환경은 이미 잔뜩 어려워져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능히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 와서 우리의 대응 능력 역시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는 다른 국면이다.



2008년 금융위기 발발 당시 우리는 모든 면에서 상당한 여유가 있었다. 그 바람에 거의 다른 나라들이 불황 국면에서 제로금리는 물론이고 양적완화를 통해 긴급 수혈에 나섰으나 우리는 그저 금리를 조금 낮추고 재정을 확대하는 선에서 견뎌나갈 수가 있었다. 그런 탓에 미국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있어 그렇게 큰 시련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두 가지 수단인 금리와 환율 모두 어렵다.



3년 이상 초저금리를 이어온 터라 시중 유동자금이 늘어나는 부작용만 초래했을 뿐 경기회복의 효과는 대단히 미미했다. 그렇기에 현 시점에서 추가로 금리를 더 낮추는 것도 반대로 올리는 것도 모두 어려운 난국에 봉착하고 말았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은 여전히 수출이다. 그렇기에 우리 경제는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환율을 절하하는 것이 傳家(전가)의 寶刀(보도)였다. 그런데 이제 환율을 우리 뜻대로 설정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대외 환경이 악화될 경우 쓸 수 있는 금리와 환율이라는 두 가지 수단이 모두 현재로선 어려워지고 말았다.



수출 경쟁력의 약화



또 하나 상황이 어려워진 점은 우리 수출 경쟁력의 약화이다. 


주력수출상품의 경쟁자인 중국의 역량이 10년 전과는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여전히 몇 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긴 하지만 그 차이가 예전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로 좁혀진 것 또한 사실인 것이고 이로서 수출경쟁력에도 상당한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고갈되어 버린 가계 소비여력



내수 분야는 사실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저금리로 인한 가계부채의 지속적인 증가에 따라 작년 3월 말 자료에 의하면 우리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DSR)이 무려 26.6%였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우리 경제는 이미 빠져나오기 힘든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미국을 보면 그 비율이 12-10%선을 오르내리는 정도였고 금융위기 발발 당시에 특히 높아서 13%를 넘겼다가 그 이후 다시 낮아져서 지금은 10% 초반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결국 2000년대 중반에 시작된 모기지 대출 제도가 애당초 무리하고 방만하게 운영된 결과 오늘날 내수경제를 철저하게 얼붙게 만든 것이다. 금융당국의 실패였다. 


이에 현 정부 들어 가계소득을 높여보고자 실시된 소득주도성장정책이지만 오히려 악화된 우리 내수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10년 전에 실시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재정지출 확대가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재정적 여력에 관해 얘기하면 당장은 세수증가로 인해 재정확대가 이어지곤 있지만 이제 곧 경기침체가 시작되면 그 역시 상황이 호전되기보다는 어려워질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어려워진 우리의 내부 역량



밖으로는 수출의 어려움이 예상되고 안으로는 심한 양극화와 소비여력의 상실, 완고한 분배동맹의 존재로 인해 우리 경제는 이미 구조적 저성장 또는 침체의 길을 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안팎으로 모든 것이 어려워진 것은 수 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려움이 닥칠 것은 사실 자명한 일이라 하겠다. 


다음의 마무리 글을 통해 자연순환의 이치에 근거하여 우리 국운의 향후 상황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