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집에서 엿들은 젊은이들의 대화
며칠 전 저녁 날씨가 스산해서 라면 생각이 났다. 치즈라면. 칼칼한 라면에 느끼한 치즈가 아주 배합이 좋다. 작업실 길 저편의 작은 분식집의 3,500원 짜리 치즈라면.
라면을 거의 다 먹어갈 즈음 옆 테이블의 대화 내용이 귓전에 들려왔다.
“월 300에 여자 친구 안 사귀면 월 100은 저축할 수 있거든요, 그게 가장 속 편해요. 고민할 것도 없고 집세 내고 조금은 놀 수 있고...”
먹으면서 슬쩍 쳐다보니 건장한 젊은이, 나이가 30대 후반 정도는 되어보였다.
그러자 내게 등을 돌린 채 앉은 일행, 역시 젊은 친구, 대화 내용으로 봐서 앞서의 젊은이보다 나이가 조금은 더 많은 것 같은 젊은이가 응수했다.
“맞아, 전에 연봉 1,800할 때 여자 친구가 있었거든, 도저히 생활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그냥 일만 하면서 지내고 있어.”
그러자 다시 앞서의 후배가 말했다.
“형은 디자인이잖아, 그런데 1,800은 야, 너무 짜다, 그래도 1년만 버티면 많이 오르지 않나? 디자인이?”
그러다가 음식이 나왔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제육볶음밥이었다. 두 사람은 맛있게 먹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고, 나는 귀를 쫑긋 기울였다.
선배 말하길 우린 결혼 같은 거 할 수 있을까?. 그러자 후배는 에이, 일단 젖혀놓자고요, 하기야 집에선 눈치를 주고 있지만 솔직히 자신 없어요, 엄두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느라 라면 국물까지 깨끗이 다 비운 연후에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 공기는 여전히 썰렁했지만 라면을 먹은 터라 약간의 더위마저 느끼며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막연하기만 한 젊은이들의 결혼관
일요일 오후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결혼에 관한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미혼 남성 가운데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중은 2010년 62.6%에서 올 해 들어 36.3%로 곤두박질쳤으며, 미혼 여성들은 결혼에 대해 더 부정적이어서 2010년 46.8%에서 올 들어 22.4%로 곤두박질쳤다는 기사였다. 여성의 경우 시집살이에 대한 부담 때문이리라.
결혼 대신에 동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이 동거인데, 부담도 적고 언제든지 정리할 수도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서구 나라들을 따라서 조만간 결혼 제도가 사실상 없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꽤나 살다 온 후배의 얘기가 생각이 난다. 미국의 아내들이 생일 선물로서 가장 받고 싶은 것은 결혼신고필증이고, 남편들이 가장 기피하는 것 또한 결혼신고필증이라는 얘기.
아직 우리 사회에선 동거를 통해 나은 아기는 여전히 私生兒(사생아)란 관념이 대단히 강하다. 이런 마당에 앞서의 통계처럼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에 대해선 부정적이어도 향후의 그런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확고한 태도를 정한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동거는 해볼 수 있다는 생각, 그러다가 헤어지고 또 한동안 혼자 지내다가 다시 동거하고, 이런 식으로 지내보자는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냥 막연히 독신으로 지내면서 여유가 되면 연애 좀 하고 골치 아픈 문제는 나중에 결정하자는 생각인 것 같다.
역시 경제적인 문제
우리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 현상에는 서구적 영향도 크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제적 문제가 아닌가 싶다. 청년 실업, 낮은 보수의 비정규직, 이런 이유가 가장 클 것 같다는 얘기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신생아 감소라든가 인구 절벽과 같은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떠나 나 호호당이 보기에도 현 상황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감히’ 결혼을 시도할 여건은 분명 아닌 것 같다. 그야말로 焉敢生心(언감생심), 어떻게 감히 생각을 낼 수 있으리오!
취업과 관련된 최근의 걱정되는 상황
운명과 관련해서 최근의 현상을 봐도 그렇다. 최근 몇 년 사이 대기업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들의 사주팔자를 보다 보면 정말 놀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괜찮은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젊은이들의 사주를 보노라면 그야말로 한숨이 나온다. 그런 곳에 취업된 젊은이들의 운세를 확인해보면 거의 예외가 없이 취업된 시점이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최고 절정의 때라는 사실이다.
한 번 더 되풀이한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업된 시점이 그 젊은이 전체 인생에 있어 가장 좋은 때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란 얘기이다. 취업한 시점이 인생 최고의 때라면 그 이후 10년만 지나면 운세는 하락세로 접어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취업 자체가 삶의 가장 큰 성취란 얘기이기도 하다.
취업은 그저 훗날의 성취를 향한 하나의 작은 시작점이고 출발점이어야 할 터인데 취업 자체로서 그 뒤가 없는 최고의 때가 되고 있으니 솔직히 한숨이 나온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직 발전의 여력이 남아있는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사실상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고 취업하는 시점이 절정의 때가 되고 있으니 이건 그 개인은 물론이고 그런 젊은이들을 뽑은 기업 역시 미래가 없을 것이며 크게는 나라 전체의 미래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왜냐면 한 개인에게 있어 운이 아직 남아있다는 말은 아직 열정이 살아있다는 얘기와 같은 말인데, 취업 시점이 절정이란 말은 이제 열정은 없고 대기업들이 선호하는 것,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스펙만 남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영어 따위 다소 부족하고 학벌이나 실력이 다소 떨어져도 열정이 살아있는 젊은이가 발전을 하고 훗날 성취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공기업이나 대기업들은 그런 미완성의 젊은이들은 뽑지 않는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결국은 누구나 긍정할 수 있는 스펙 좋은 젊은이들만 채용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란 생각이다.
예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오늘날의 취업
예전의 기업들 역시 학벌 좋고 실력 좋은 응시자를 채용하고자 했지만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젊은이들에게도 그런대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 그런 일은 아예 없는 것 같다. 소위 ‘짤’이 없는 오늘이다.
예전엔 야간 상고를 나왔어도 기업이나 은행에 취업할 수 있었고 그러다가 본인의 노력으로 야간대학을 마치는 등의 코스를 통해 나중에 임원이나 사장으로까지 승진 출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엔 그런 일은 아예 원천 봉쇄되고 있다.
최근엔 그만 둔 김동연 경제부총리 같은 사람은 바로 그 대표적인 케이스, 이른바 立志傳(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하겠는데 이젠 그런 일이 출발에서부터 막히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월 300만 되면 여친 사귀지 않고 월 100 저축할 수 있다면 심경이 편하다는 말을 하던 분식집의 그 젊은이 얼굴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 친구의 경우 당분간은 동거든 결혼이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나라 운이 바닥에 접근해가고 있다 보니 젊은이들이 둥지를 만들지 못한다, 둥지를 틀지 못하니 아기를 낳지 못한다. 혹여 아기를 낳고 나면 그 날부터 젊은 부부는 전쟁을 시작해야 하니.
겨울은 不姙(불임)의 계절이어서
그야말로 겨울은 不姙(불임)의 계절인 것이 확실하다. 한 해를 통해 늘 맞이하는 겨울이 아니라 국운의 겨울은 정말 그렇다.
너 나 할 것 없이 합심해서 부동산 가격만 잔뜩 높여놓은 바람에 자영업자들은 임대료가 부담이고 젊은이들은 둥지를 틀지 못해서 아기를 낳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본 게임은 내년 2019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징글맞을 정도로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월요일 새벽 시각 나 호호당은 그저 눈알만 말똥말똥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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