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일은 大雪(대설)인데 맹추위가 온다네



이번 금요일 7일은 영하 8도까지 내려가고 낮 최고기온 역시 영하 4도라고 하니 이번 겨울의 첫 추위가 세게 몰려올 참인가 보다. 마침 7일은 절기상 大雪(대설)이다. 말 그대로 눈이나 내릴 것이지 강추위는 전혀 반갑지 않은데 말이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



프랑스에선 ‘노란 조끼’ 시위가 한창이다. 첫날 시위에 참가한 사람은 경찰 추산으로 28만 명이라고 하나 프랑스 전역의 2000 여 곳에서 시위가 일어난 것을 보면 전국적 규모라 하겠고 여론 또한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먼 나라 얘기이긴 하지만 그곳 역시 ‘없는 자’들의 삶이 무척이나 팍팍한 모양이다. 11월17일부터 시작되었으니 오늘 12월 4일로서 18일이 된다. 이번 주말을 지나서도 시위의 기세가 누그러들지 않으면 장차 큰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이다. 


시위의 명분은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이지만 그건 표면적인 핑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류세 인상은 사실 마크롱 정부의 새로운 정책도 아니다. 이전의 올랑드 정부 때부터 이어온 환경정책, 즉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파리 외곽에서 출퇴근해야 하는 서민들에겐 부담이 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불경기와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누적된 프랑스 서민들의 불만과 짜증이 이번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폭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마크롱은 유류세 인상은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민 지지율이 현재 26%, 사실상 최악이란 점을 감안하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싶다.


 

내년이 더 어려울 것 같은 프랑스



프랑스 국운의 흐름을 보면 이번 사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진 않다. 프랑스의 경우 2011 辛卯(신묘)년이 국운의 입춘 바닥이었기에 올해 특히 내년은 프랑스에게 있어 정말로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 본다. 입춘으로부터 7.5년이 흐른 때는 春分(춘분)인 바, 사실 이때야말로 가장 至難(지난)한 때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스는 현재 나름의 개혁이 진쟁 중이다. 2012년 총선 당시만 해도 577석 중 279석을 차지했던 프랑스 사회당이었는데 작년 2017년 총선에선 놀랍게도 겨우 30석만을 얻으면서 풍비박산이 났다. 그간의 양대 정당 중에 하나였던 공화당 역시 2017년 총선에서 부진했다. 


그 대신에 마크롱 현 대통령이 2016년에 창당한 공화국 전진당, 즉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가 577석 중 310석을 얻어 60년 된 프랑스 정치의 판을 갈아치웠다. 


프랑스, 60년만의 변화



프랑스의 현 체제를 두고 제5공화국이라 한다. 1958년 샤를 드 골 장군이 알제리 전쟁을 배경으로 프랑스 제4공화국을 사실상 타도하고 대통령의 권한이 훨씬 강력한 현 체제를 만들었던 것이다. 


마크롱과 앙 마르슈가 또 다른 체제, 즉 제6공화국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1958년 이후 60년 만에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가 지금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마디로 해서 변화해간다.)


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올해 나이가 41세, 아직 혈기가 전혀 식지 않은 나이 사실상 청년에 더 가깝다. 프랑스 유권자들이 이런 젊은이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프랑스 사람들의 변화욕구가 얼마나 큰 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마크롱의 개혁 정책은 취임한 지 겨우 1년 반 만에 심한 반대에 직면하면서 지지율이 26%로 떨어지고 있으니 참 어렵다. 


나 호호당 생각에 지지율이 저조하다고 해서 개혁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라 여긴다. 개혁이란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가령 어떤 정부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개혁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사실 진정한 개혁이라기보다 무늬만 개혁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마크롱 정부는 개혁 정부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저처럼 지지율이 형편 없어서야 일을 하고 버텨낼 수 있겠는가 싶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와 비교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종전에 볼 수 없었던 괴팍한 대통령이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는 것 역시 미국의 국운과 관련이 크다. 



트럼프의 등장 역시 미국의 변화를 말해준다.



미국 역시 2013년이 국운의 立春(입춘) 바닥이었기에 그저 이미지 관리에만 몰두하는 기성 정치인들에게 미국 유권자들이 염증을 느꼈기에 저런 특이한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본다. 


글로벌 최강인 미국이었기에 그간 자유무역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여유가 사라지자 미국 역시 보호무역을 들고 나섰고 그런 체면 구겨지는 역할을 맡을 적임자는 역시 장사꾼 출신의 트럼프가 맞다 하겠다.

 

다만 트럼프의 경우 세월의 연륜이 있는 사람인지라 나름 그런대로 지지율을 맞추어가고 있으니 역시 젊은 마크롱보다는 老獪(노회)하다 하겠다.



유명무실해진 G 20 정상회의



프랑스야 어떻게 되건 간에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역시 미국이다. 이번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G 20 정상회의를 보라, 사실상 마비되고 말았지 않은가. 


공동성명이랍시고 내놓긴 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인해 무역 문제나 기후 문제는 언급하지도 못 하고 이민과 난민 문제에 대해 그저 공동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내용에 그쳤다. 형식적인 인사 치레였다. 그러니 있으나 마나한 G 20이 된 것이다. 


어쩌면 장차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면 G 20 재무장관및 중앙은행 총재들의 회의는 1999년부터 있었으나 정상회의는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협조 또는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부랴부랴 격상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조는 이제 물 건너가는 형국이라



미국이 이제 저처럼 체면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겠다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으니 걱정이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공조 또는 협력 체제는 사실상 물 건너가는 형국이다. 원래 협조가 이루어지려면 가장 강하고 많이 가진 자가 善心(선심)을 베풀고 양보도 가장 많이 해야만 되는 일인데, 지금의 미국은 그런 거 없어 이젠 똑같이 해야 해 하고 나서고 있으니 큰일인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물러가고 나면 달라지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너그럽던’ 미국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기에 하는 말이다. 내 코가 석자인데 어딜! 하면서. 


일본도 변하고 있고 미국도 변했으며 영국은 브렉시트, 이탈리아는 엉망진창이고 프랑스는 저 모양이고 독일 또한 메르켈의 사임으로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 그 사이에 힘을 키운 중국은 미국과 맞먹으려 들면서 우리 입장은 더 어려워졌다. 



달라도 많이 달라진 오늘의 세계



뭔가 예전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이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고달프고 힘들어졌음을 반영하고 있다. 


뭐니 해도 역시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시장이 되는 나라들이 저처럼 변해가고 있으니 장차 우리가 먹고 사는 것에도 많은 어려움이 생겨나고 또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얘기이다. 


최근의 글로벌 세계에 나타나는 兆朕(조짐)들을 보면 영 기분이 찜찜하기만 하다.



상담에서 흔히 겪는 사례



오랫동안 상담을 해오면서 정말이지 나로선 지겹고 신물이 날 정도로 흔히 겪는 몇 가지가 있다. 오늘은 그 중에 하나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독자들도 잘 새겨두면 나름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경우 가족 구성원들의 운세 흐름에 있어 그 시간적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없지 않지만 말이다.) 


실제의 사례를 약간 각색해서 들어본다. (미리 얘기하는 바, 자료가 약간 복잡한 관계로 간단하게 메모를 해가면서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긴 하다.) 


가령 1952년생인 아버지의 경우 60년 순환에 있어 입추의 때가 1986년이었고 1956년생인 어머니의 경우 입추의 때가 1989년인 경우이다. 이 경우 부부의 운세 흐름은 시차가 3년밖에 되지 않는다. 비슷한 운의 흐름이다. (부부의 경우 운세 흐름은 대부분 그렇다.)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1980년이었고 이에 1981년 첫째 딸이 태어났으며 1983년에 아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사주를 보니 딸은 입추의 때가 1989년이고 아들은 1990년이었다. 


따라서 이 가족에게 있어 저마다의 운세 흐름에 있어 입추의 때는 아버지가 1986년이고 어머니는 1989년, 딸 역시 1989년, 아들은 1990년이 된다. 이런 식으로 가족의 경우 운세 흐름은 대부분의 경우 시간적 차이가 크지 않다. 


1952년생 아버지의 경우 1986년이 입추이기에 그 반대인 입춘 바닥은 1956년이었다. 네 살 무렵이 운세의 바닥이었기에 없는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고생을 꽤나 많이 겪었고 그 바람에 단련이 된 결과 뭐든지 열심이고 성실한 것이 몸에 배었다. 


그러다 보니 마침내 모 재벌 그룹에 속한 대기업의 사장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시골 출신에 없는 집에 태어나 고생 끝에 크게 성공한 셈이다. 


아버지의 경우 몇 년 전에 퇴직했지만 그간에 받은 높은 보수와 함께 거액의 퇴직금, 또 스톡옵션을 통해 꽤나 많은 재산을 형성했다. 몇 백억 수준의 자산가인 것이다. 



전혀 부족한 것이 없을 것 같은 한 집안 내부의 심각한 갈등



남들 보기에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집안 같겠지만 실은 가정 분위기가 영 별로이다. 왜냐면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이 참으로 심각한 까닭이다. 


앞에서 얘기하길 1983년생인 아들의 경우 입추의 운이 1990년이었기에 그로부터 30년 후인 2020년, 내후년이 입춘 바닥이 된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경우에도 입춘 바닥은 2016년, 극히 최근의 일이란 점이다. 


아버지의 경우 재산은 많아도 은퇴 이후의 생활은 전혀 즐겁지가 않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돈은 많아도 운세가 바닥이라 재미없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인생을 잘 경영해왔기에 비록 재미는 없다 해도 돈 고생은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이 아버지의 경우 사실 스스로 지나온 삶에 대해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대기업 사장 자리가 아무나 할 수 일이 아닌 것이니 능히 그럴 법도 하다. 


문제는 아들과의 관계이다. 


1983년생 아들은 지금 나이가 서른 중반인데 좋은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요, 직장에 취업한 상태도 아니다.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만들어준 돈으로 서울 모처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지만 늘 자리를 비우고 놀라 다니는 바람에 장사는 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계속해서 어머니의 쌈짓돈만 들어가고 있다. 


아버지 역시 이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지만 정작 그간에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 어머니 말씀이 남편이 알면 큰일 날 것이란 얘기이다. 하지만 나 호호당은 그 아버지가 알고도 모른 척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 아버지와의 상담 또는 대화



답답한 나머지 부인이 부군더러 나를 찾아보게끔 설득하는데 성공을 했다. 그 바람에 그 아버지도 내 작업실에 한 번 다녀갔다. 


그 분 말씀인 즉 자신의 아들 녀석은 참으로 부끄럽지만 부잣집 출신의 전형적인 놈팡이 건달이란 얘기였다. 스스로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기에 밑바닥에서 입신출세를 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누굴 닮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란 푸념도 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얘기를 했다. 그게 지극히 정상 아니겠습니까? 부자 아버지를 둔 탓에 자제분이 건달이 되었으니 이건 사실 자제분이 피해자란 얘기입니다. 아버지 때문에 그런 거란 얘기지요. 


예상한 바대로 그 아버지는 대뜸 얼굴이 붉어지면서 언성을 높였다. 그게 왜 내 탓이란 말이오? 


잠시 그 아버지를 진정시킨 다음에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어려운 형편에 태어난 바람에 살아보고자 갖은 악을 써가며 자신을 단련한 끝에 성공한 것이고, 아들은 너무나도 유복한 가정에 태어난 탓에 능력을 발전시키고 의지를 단련시킬 기회가 없었으니 이게 누구 탓입니까? 따지자면 성공한 아버지 슬하에 태어난 것이 不運(불운)이라면 불운이지요. 


그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意志(의지)가 약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누군 태어날 때부터 의지가 굳은 줄 아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편할 수만 있다면 편한 쪽을 택하지 일부러 힘든 길을 택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잘 생각해보시지요. 


역경에 처했기에 힘을 내고 의지를 단련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렇지 않은 바엔 그럴 수 있는 사람, 천에 하나 만에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그게 예외란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집안의 경우 아들만이 영 그런 것이 아니라 큰 딸에게도 우환이 닥쳤다는 점이 있었다. 1981년생인 딸의 경우 역시 내년 2019년이 운세 바닥인 바, 3년 전인 2015년에 스위스에서 스키를 타다가 척추에 심한 상처를 입는 바람에 죽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뿐 지금까지도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집안의 아버지는 최근 정말 아무런 살맛이 없다면서 나중엔 울먹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인 또한 최근 들어 계속 이런저런 신병치레로 온 집안이 푹 가라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차근차근 얘기를 해주었다. 집안 자체가 현재 운세 흐름이 대단히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다는 얘기로부터 시작해서 부모와 자녀가 모두 운세 흐름이 비슷하다는 얘기, 건달 같은 아들도 다 때가 되면 씩씩하게 일어서는 날이 올 거란 얘기, 따님도 잘 치료하면 많이 좋아질 것이란 얘기를 두루 들려주었다.


 

부자간에 오해가 쌓이다 보면 자칫 돌이키기 어려우니



사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누구보다도 친하고 통해야 할 아버지와 아들 간에 그냥 원망만 하고 있으면 오해가 쌓여서 나중엔 돌이킬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해가면서 얘기해주었다. 


사실 털어놓지를 않아서 그렇지 부자간에 원수처럼 되는 바람에 불행해진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다. 부친도 운이 좋질 않아서 별 재미가 없는 마당에 아들마저 기대에 크게 미흡하다, 이에 서로 탓을 하고 원망만 하다가 나중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져서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를 나 호호당은 그간에 무던히도 보아왔기 때문이다. 


부모를 원망하다가 돌아가시고 한 세월이 지난 뒤에야 묘소를 찾아가 애통하게 뜨거운 눈물을 쏟아놓는 경우도 없지 않다. 살아계신 동안에 잘 지내지 못한 것이 못내 恨(한)이 되어서이리라. 


이처럼 세상에 잘못된 일의 많은 것들이 실은 운의 흐름 운의 장난 때문인 것이 많다. 


자수성가한 아버지 밑에 잘난 아들 보기 쉽지 않다. 이를 두고 흔히 아버지가 너무 센 탓에 아들이 치인 것이란 말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역경을 통해 단련된 바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바람에 유복하게 자란 아들은 의지를 단련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을 뿐인 경우이다. 


앞의 경우 요행히도 그 아버지가 직접 찾아오시는 바람에 많은 것을 얘기해줄 수 있었다. 당신이 성공한 것은 재능과 노력이 함께 했던 것이었지만 당신의 아들은 재능이야 아버지를 닮았겠으나 노력할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가질 계기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을 꽤나 긴 시간 동안의 얘기를 통해 납득시킬 수 있었으니 나로서도 적지 않은 보람이었다. 



그저 사랑해주면 되는 일이니



모든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자 한다. 하지만 실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많은 것을 해주고 물려주는 것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는 것 역시 별게 아니란 사실이다. 


아이들은 그저 내 부모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기억만 확실하게 잘 간직할 것 같으면 그 어떤 인생도 잘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성공하고 실패하고 그런 것들은 결국 운의 문제, 때의 문제인 것이고 말이다.


(참고로 이번 일은 실화로서 그 부친의 양해를 사전에 얻었기에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린다.)


차이나 프라이스, 공포의 표현



2000년대 초반 무렵 미국 산업계 전반을 공포로 몰고 갔던 표현이 있었으니 바로 ‘차이나 프라이스’였다. China Price, 중국 제품의 가격을 뜻하는 말이자 ‘저렴한 가격’이란 말의 동의어였다. 


“당신네 납품가격을 당장 30% 인하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거래할 수 없게 될 것이오, 우린 중국산 물건을 사게 될 것이니” 하는 최후통첩에 해당되는 말이 바로 차이나 프라이스였던 것이다. 


중국산 물건의 이른바 ‘가성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미국의 산업은 그 이후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변모하고 말았다. 수없이 많은 제조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그렇지 않으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 또는 중국 업체에 위탁생산을 맡겨야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가장 고가의 애플 아이폰 역시 생산은 중국에서 하고 있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의 차이나 프라이스로 인해 글로벌 산업 구조 전체가 완전히 변모하고 말았다. 이에 미국을 포함한 선진경제국의 일자리, 특히 제조업 일자리가 심각하게 축소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차이나 프라이스의 기본적인 힘은 저렴한 인건비



저가의 그런대로 쓸 만한 중국산 제품의 공세에 당황한 미국 산업계는 2005년 경 중국이 어떻게 해서 저토록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학자들에게 연구용역을 맡긴 적이 있다. 


연구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차이나 프라이스를 가능케 만든 가장 큰 요인은 39.41%의 비중을 차지한 인건비, 즉 중국 노동자들의 저렴한 인건비였다. 


그 내용을 볼 것 같으면 이렇다.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보수는 23.17 달러였는데 중국의 경우 0.57 달러, 미국 노동자들의 보수에 비하면 1/40 수준이었다. 


하지만 생산성 자체가 미국이 훨씬 높다. 생산성을 볼 것 같으면 미국을 100으로 할 때 중국은 13.7로 나왔다. 따라서 시간당 보수와 생산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비교해보면 시간당 보수가 미국의 23.17 달러에 비해 중국은 4.16 달러였다. 중국이 인건비 부문에 있어 미국의 18%에 불과하다. 


제품 생산에 있어 인건비만 놓고 보면 중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얘기이다. 중국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낮다 해도 보수 자체가 워낙 낮은 관계로 종합적으로 보면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미국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관계로 애플 역시 아이폰의 생산만큼은 중국 공장에 위탁하고 있다. 


물론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중국 역시 인건비가 대단히 높아졌다. 2000년 초반에 비해 지금까지 인건비가 4.5배 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물론 그 사이에 중국 노동자들의 생산성도 많이 향상되었다.) 


오늘에 이르러 공포의 표현이었던 ‘차이나 프라이스’가 예전만큼의 파괴력을 지닌 것은 아니라 하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산 물건의 가격은 저렴한 것 또한 사실이다. 



철저하게 변모한 글로벌 산업구조와 줄어든 일자리



2000년대 이후 차이나 프라이스로 인해 미국을 포함한 선진경제권만 일자리, 특히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 2000년대 중반부터 엄청난 일자리의 축소 그리고 일자리 질의 저하를 겪어왔다. 그 바람에 ‘정규직’이란 말은 일종의 사회적 신분이 되었다. 


삼성이나 엘지와 같은 대기업들만 중국에 공장을 세운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중소제조업체들 역시 과거의 국내생산을 멈추고 중국에서의 위탁 생산 또는 공장 가동을 통해 국내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기에 일자리 축소와 질의 저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경제는 수출 없이는 지탱하지 못하는 경제 구조로 되어있다. 그런데 수출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차이나 프라이스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이나 성능, 가격 면에서 끊임없이 차이나 프라이스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입에 의존하는 개방경제라서



우리 경제는 수출입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만큼 사실상 개방된 경제구조라 하겠다. 즉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은 그만큼 치열한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 놓여있다. 


현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과 주52시간 근무제를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 이런 소식을 접했을 때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컸지만 우려되는 바도 상당히 많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우려는 자영업자들이 견디기 힘들 것이란 점이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니 말이다. 그런 우려는 공연한 것이 아니었고 최저임금 문제는 금년 들어 일자리 문제와 소득 분배에 있어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하지만 사실 더 우려되는 것은 다른 데 있었다. 그간 우리 수출 기업들과 그 협력업체들의 커다란 장점으로서 기술 수준이나 가격 문제도 있었지만 또 하나의 장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신속한 대응 능력이었다. 


해외 바이어로부터 긴급한 주문을 받게 되면 그 순간부터 모든 당사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대응해왔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런데 주52시간 근무제가 확산되고 정착될 것 같으면 종전까지의 신속한 대응 체제를 유지함에 있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른바 ‘워라벨’이라 하는 것, 저녁이 있는 삶이란 개념 등은 사실 대단히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치열한 글로벌 경쟁구도, 특히 차이나 프라이스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 수출 기업들이 주52시간 근무가 정착될 경우 과연 예전과 같은 신속한 대응 태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수출 대기업이야 또 나름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 협력업체들 즉 중소기업의 경우 주52시간 근무로 인한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것이니 그게 더 걱정이다. 


다시 돌아가서 최저임금의 인상은 결국 생산비용을 높임으로써 전체적인 가격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수출 가격에 있어선 인상 요인이 될 것이고 동시에 수입품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져서 더욱 더 국내생산업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환율을 조정하는 방법, 즉 원화 가치를 절하하는 방법이 있었으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그런 조정이 사실상 봉쇄되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환율조작국 혐의를 받게 되면 그 자체로서 큰 부담이 되니 말이다.

 

우리 수출 대기업들이 중간 제품 생산을 위해 중국 현지 생산 비중을 높였던 이유 역시 수출 경쟁력 확보 차원이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는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해외 현지 생산이 늘어나면 당연히 국내 제조업의 일자리는 반대로 줄어들 것이니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가 가져올 수 있는 역기능이라 하겠다. 


작년에 인상된 최저임금만으로도 올 해 공무원 증원 등을 뺀 나머지 분야의 일자리에 대해 적지 않은 부작용을 유발했다. 그런데 이미 결정된 내년도 인상분이 반영될 경우 국내 내수시장이나 자영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수출과 수입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올 해는 그나마 반도체 호황 덕분에 수출실적이 좋았으나 반도체 호황이 가시고 나면 여기에 더불어 앞에서 얘기된 문제점들이 나타날 것 같으면 그야말로 우리 경제는 내수도 수출도 다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중국 역시 올 데까지 다 왔다는 점이다. 내년엔 올 해보다 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고 내후년이면 더욱 그럴 것이란 점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이 침체될 경우 당장은 우리에게도 부담이 되겠지만 긴 안목에서 볼 것 같으면 그나마 우리 경제에게 숨통을 틀 수 있는 작은 여유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글로벌, 리더의 품격이고 체면이고 다 벗어던지고 길길이 날뛰고 있는 트럼프의 미국을 보라. 오죽하면 저렇게까지 가고 있겠는가 말이다. 그야말로 살벌한 글로벌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미중간의 무역 전쟁은 단순히 교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인 차원에서도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그럼 와중에도 중국은 제조기술과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높여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겠는가.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 또 하나의 가공할 리스크



지금까지 차이나 프라이스가 야기한 살벌한 글로벌 세상과 우리 경제에 대해 얘기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또 하나 두려운 조짐이 이미 나타났다. 그야말로 雪上加霜(설상가상)이다. 


그 두려운 조짐이란 다름이 아니라 양적완화로 인해 전 글로벌에 걸쳐 자산가격의 엄청난 거품이 생겨나고 말았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진 자산거품이 붕괴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붕괴가 시작될 경우 글로벌 전체에 불어 닥칠 또 하나의 엄청난 平地風波(평지풍파)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자산 거품 그 자체만으로도 자산의 양극화를 불러 왔을 뿐 아니라 그것이 소멸되기 시작할 경우의 파괴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그 거품의 소멸을 촉발할 수 있는 방아쇠는 착실하게 진도를 나가고 있는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이다. 


물론 미국 연준은 ‘금리 정상화’란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금의 형국에서 그것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2019년부터 10년간 우리 경제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그간 차이나 프라이스 때문에 우리의 삶이 엄청나게 힘든 지경으로 내몰려 왔는데 이제 연준의 금리 인상, 즉 세계 전체적인 금리인상이란 또 하나의 수퍼 강적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내년 2019년부터 우리 경제는 참으로 힘든 시험대에 오르게 되지 않겠는가 한다.


왜 어떤 이는 성공하고 어떤 이는 실패하는가?



어떤 이는 성공하고 어떤 이는 실패한다. 그렇다면 그 성공과 실패는 어떤 대목에서 어떤 까닭으로 인해 나뉘는 것일까? 성패의 갈림길은 무엇일까 하는 얘기이다. 오늘은 이 점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늘 60년에 걸친 運(운)의 循環(순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 순환은 마치 우리가 해마다 겪는 사시사철, 즉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과 동일한 것이란 얘기도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 계절이 15년으로 이루어지고 합쳐서 60년을 보내면 그게 한 해를 보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농사는 자연의 때에 맞추어 짓는 법이니



농부는 자연의 순환에 때를 맞추어 농사를 짓는다. 자연의 순환에 따라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기르며 가을에 거두며 겨울이면 비교적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농사에 관한 얘기를 한다고 해서 오늘날과 맞지 않는 얘기로 받아들이지는 마시길, 오늘날이 정보의 시대이지만 사람이 먹고 사는 이치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


농사를 잘 짓고자 한다면 봄철, 정확히 말하면 4월 20일 경에 볍씨를 뿌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런 다음에 5월 중순 또는 하순에 모내기를 한다. 가뭄이 들어 모내기가 어려울 경우 늦어도 6월 22일 경의 夏至(하지)까지는 모내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까닭에 옛날 가뭄이 들었을 때 하지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간절한 마음을 모아 기우제를 지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때에 씨를 뿌리는 일이다.



그렇기에 가을의 수확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여름이나 가을이 아니라 실은 늦은 봄, 즉 씨를 얼마나 잘 뿌렸는지 그리고 얼마나 순탄하게 모내기를 했는지에 달린 일이라 하겠다.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씨를 뿌리고 모를 낸다는 것은 때의 흐름, 즉 時運(시운)에 맞추어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가 된다. 


시작하는 일이 사업이든 공부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성공을 하려면 그 시작하는 시기가 어떤 사람의 운세 흐름에 있어 바로 늦은 봄과 초여름이 되어야만 성공을 한다. 



입춘 시작점으로부터 12.5-22.5년 사이에 시작해야



이를 60년 운의 흐름에 대입해보면 입춘 시작점으로부터 12.5년에서 22.5년에 이르는 시기 즉 그 10년간의 세월 안에 시작해야만 그 일이 성공을 한다는 말이다. 


이 시기에 시작하는 사람은 훗날의 성공을 기약했다고 말해도 절대 무방하다. 물론 어느 정도의 성공을 하고 성취를 하느냐는 그 사람의 타고난 자질, 운명학적으로 말하면 타고난 命(명)에 달렸다고 하겠으나 사실 그거야 무슨 상관이 있으랴, 分數(분수)만큼 가져가면 되는 세상인 것을.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며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는 1952년이 입춘 시작점이었는데 그로부터 22.5년이 경과한 1975년에 창업을 했다. 節氣(절기)로 말하면 운명의 夏至(하지)에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고 타고난 자질과 더불어 엄청난 성공을 했다. 


미국이 급격히 산업화하던 19세기 후반의 대부호 존 D. 록펠러는 입춘 시작점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에 석유 정제업에 뛰어들었고 18년이 흐른 시점, 절기로 말하면 양력 5월 하순인 小滿(소만) 무렵에 ‘스탠다드 오일’을 창업했다. 


삼성 그룹을 만들어낸 이병철 회장은 1938년이 입춘 시작점이었는데 13년이 흐른 1951년에 삼성물산을 창립하면서 재벌의 길을 닦았다. 60년 운세 흐름을 절기로 말하면 4월 하순 경 즉 씨를 뿌리는 시기에 씨를 뿌렸던 셈이다.


입춘 시작점으로부터 12.5-22.5년 사이에 시작해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이보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해서 성공하는 경우도 드물긴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 초기에 상당한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해간다. 


예를 들자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1972년이 입춘 시작점인데 1983년 반도체 사업이 유망하다고 부친 이병철 회장을 설득한 결과 하다고 졸라서 시작했다. 절기로 말하면 4월 초의 淸明(청명)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그런 까닭에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처음 몇 년간 상당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런 연유로 이병철 회장은 1987년 임종 시에도 반도체 사업을 걱정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사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성공 스토리이지만, 사실 그것과 상관없이 누구든지 입춘 시작점에서 12.5-22.5년 사이의 10년 동안에 어떤 일을 시작하면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는 얘기를 드린다. 



사업만이 아니라 모든 일이 다 그렇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상관이 없고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가령 앞에서 말한 시기 안에 직장에 들어갔다면 그 사람은 직장인으로서 분명히 충분한 성공을 보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결혼 또한 마찬가지이다. 결혼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차대한 비즈니스가 아니겠는가. 이 또한 입춘 시작점으로부터 12.5-22.5년 사이에 결혼을 할 경우 대단히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결혼 이후에 집안도 번창하게 되고 자식 농사도 잘 짓게 되며 부부 사이도 화목하다. 


나아가서 이 이치는 사람의 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 대한민국은 제2차 대전 이후 가장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에 속한다. 그렇다면 무슨 까닭으로 우리가 그런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 또한 간단하다. 


우리 대한민국의 입춘 시작점은 1964년이었다. 따라서 그로부터 12.5-22.5년 후는 1976-1986년 사이의 기간이 된다. 바로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중화학 공업 육성에 모든 것을 걸고 투자했기에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누가 뭐라 해도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불멸의 功業(공업)이 아닐 수 없다. 



왜 그 시기여야 할까? 그 이유는?



이처럼 사람이든 나라든 앞에서 말한 기간 사이에 시작한 자만이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렇다면 이런 궁금증이 생겨난다, 왜 그 기간에 시작해야만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궁금증이 그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古典(고전)속에 잘 설명이 되어 있는데 대표적으론 孟子(맹자)가 그것이다.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 사람의 筋骨(근골)을 수고롭게 하며, 그 사람의 몸을 굶주리게 하며,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면서 하고자 하는 일을 어렵게 흔들어대느니라, 이로서 그 사람의 인내심을 길러서 그 이전엔 불가능하던 일도 능히 할 수 있게끔 하느니라.”


뿐만 아니라 성서에도 이와 유사한 구절이 있다. 


큰일, 즉 큰 성취를 보기 위해선 그 이전에 그 사람을 바짝 조이고 힘들게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인데, 60년 순환에 있어 가장 힘든 고난의 시기는 입춘 시작점으로부터 대략 12.5년까지의 기간이다. 


따라서 큰 고난을 겪고 크게 고생한 사람이어야만 그 마음이 懇切(간절)해져서 그 다음에 어떤 일을 시작하든 상관없이 열과 성을 다해서 그 일을 해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알고 보면 성공의 이유는 간단하다. 큰 어려움 속에서 意志(의지)가 강하게 단련된 자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1964년 국운의 立春(입춘) 무렵 전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였다는 사실, 그렇기에 전 국민이 고난과 결핍 속에서 단련되었고 그 바람에 鐵拳(철권)의 독재자 박정희를 만나서 훗날의 대성공을 기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의지가 단련된 자만이 성공을 기약한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연하다, 人之常情(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 큰 고생 없이 유복하게 성장한 아이들은 다소 뜻밖의 얘기이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 놀라운 얘기가 아닐 수 없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 세상은 참으로 치열한 경쟁의 마당이기에 헝그리 정신이 없는 사람은 제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자질이 뛰어나다 해도 나중에 그 성취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은 인생의 어느 시기에 크게 바닥을 쳐야만 大悟覺醒(대오각성), 크게 깨닫게 되고 그로서 분발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2002년 이후 사실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 그저 그간의 것을 바탕으로 해서 지내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내년부터 큰 어려움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바닥을 치고 그로서 크게 고생을 하고 나면 또 다시 분발해서 힘차게 약진해갈 것이다. 


2주 동안 이상한 감기에 걸려 몸 고생 좀 하고 있다. 열이 크게 나지는 않으면서도 몸이 힘들고 맥이 없다, 그 바람에 글쓰기가 다소 뜸하다. 독자들의 양해가 있기를.


마블 코믹스의 스탠 리, 소오강호의 김용, 세상을 떠나다.



마블 코믹스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미국의 스탠 리, Stan Lee가 11월 12일자로 사망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 무협소설의 대가인 金庸(김용)이 10월 30일자로 사망했다. 


환타지 세계를 대표하는 동서양의 두 거물이 거의 동시에 세상을 떠난 셈이다. 두 사람 모두 오래 살았다. 스탠 리는 1922년생이니 거의 96년을 살았고 1924년생인 김용 또한 근 95년을 살았다. 


한 사람은 만화책이고 한 사람은 소설책이지만 근본은 멋진 환타지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제공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이에 두 사람의 생년월일을 통해 그들의 행적을 살펴보는 것도 나름 흥취가 있을 것으로 본다.



스탠 리의 삶



스탠 리는 1922년 12월 28일 생이고 생시는 알려져 있지 않다. 壬戌(임술)년 壬子(임자)월 庚午(경오)일이 된다. 생시를 모르지만 그간의 행적이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으니 운세 흐름에 있어 立秋(입추)는 1960년 庚子(경자)년인 것을 알 수 있다. 


스탠 리는 동료들과 함께 1960년대 내내 환타스틱 포, 인크레더블 헐크, 스파이더 맨, 엑스 맨, 아벤저스,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의 인기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의 영화 수십 편에 카메오로 출연해서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1960년이 입추였으니 1930년은 입춘 바닥이었을 터인데 그가 태어난 것은 1922년이었다. 그 바람에 어린 시절의 스탠 리는 무척이나 빈곤하게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늘 갖은 공상을 하고 얘기를 꾸며보는 즐거움을 가졌다고 한다. 


1947년에 동갑내기와 결혼을 했는데 필경 좋은 짝을 만났음이 분명하다. 입춘 바닥으로부터 17년이니 이 무렵에 짝을 만나면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커플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루마니아 이민자의 후손이고 유태인이었던 그는 평생을 부인과 함께 잘 살았는데 부인은 작년에 세상을 떴고 그러자 스탠 리 역시 금방 아내를 쫓아간 셈이다.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하니 사실상 자연사. 


60년대 대성공을 거둔 뒤 다른 방면에 한 눈 팔지 않고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 1990년이 또 한 번의 입춘 바닥이었건만 아무런 힘든 티나 자국도 내지 않고 무난하게 지내온 것을 보면 ‘삶의 도사’임을 엿볼 수 있다. 



김용의 삶



이제 김용에 대해 살펴본다. 


1924년 3월 10일이고 생시는 알려져 있지 않다. 甲子(갑자)년 丁卯(정묘)월 戊子(무자)일이다. 


1958년 戊戌(무술)년이 氣(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올 해 또한 戊戌(무술)년이니 또 한 번 입추의 운에 세상을 편히 떠난 것이다. 


(운세가 좋을 때 죽으면 거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 스탠 리 역시 2020년이 입추인데 2년 전에 죽었으니 전혀 고생하지 않고 떠났다.)


김용 또한 입추의 운인 1958년을 전후하여 1955년부터 1972년까지 15 개의 장편 무협 소설을 집필했으며, 1959년엔 자신의 신문인 明報(명보)을 창간했다. 자신의 신문에 자신의 소설을 연재했는데 아마도 신문 독자층을 늘리기 위한 동기가 컸을 것이다. 


나 호호당은 중고등학교 시절 중국 무협소설을 족히 수천 권을 읽었다. 김용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笑傲江湖(소오강호)를 꼽는다. 


무협의 세계는 존재했던 적이 없다, 순수한 환타지이다. 武(무)를 통해 俠(협)을 행한다는 것이 武俠(무협)인 바, 역대로 文(문)을 숭상했을 뿐 武(무)를 높인 적은 없던 중국에서 나온 것이니 참으로 흥미롭다. 


스탠 리의 만화와 캐릭터들은 미국 대중의 정서와 소망을 반영하고 있고, 김용의 무협소설은 중국인들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다. 현실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꿈이기에 환타지인 것이다. 



아비는 중국 무협, 아들은 마블 코믹스



중국 무협소설에 대해선 족보를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줄줄 꿰고 있는 나 호호당이다. 김용만이 아니라 와룡생, 양우생, 사마령, 진청운 등등 모르는 작가가 없고 읽어보지 않은 소설이 거의 없다. 


중국 무협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이 1960년대 중반부터였고 그 무렵 나 호호당은 십대 청소년이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스탠 리에 대해선 나 호호당은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물론 미국에 마블 코믹스라고 하는 인기 좋은 만화책 회사가 있고 그곳에서 엄청난 힘과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그것으로 전부였다. 


그런데 스탠 리에 대해 내게 알려준 이는 다름 아닌 아들 녀석이었다. 아들은 1982년생이고 마블 코믹스와 그 캐릭터 그리고 영화에 대해 전부 꿰차고 있다. 내가 스탠 리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거의 모두 아들 녀석이 들려준 것들이다. 


1955년생인 아비는 중국 무협으로 십대를 보냈고 1982년생인 아들은 게임과 마블 코믹스와 그 영화들로 십대를 보냈다는 사실. 중국 환타지는 나 호호당의 정신세계에 녹아들었고, 미국 환타지는 아들의 정신세계에 들어가 일부가 된 것이다. 


환타지의 세계, 서양엔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이 있고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 있다. 중국엔 무협소설과 그 원류라 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 책들이 있다. 그리고 중동엔 ‘아라비안 나이트’가 있다. 옆 나라 일본은 그야말로 귀신과 요괴의 천국이니 수많은 책과 얘기들이 전해온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전래 그리고 현대의 환타지가 질과 양에서 다소 부족한 편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서포 김만중이 남긴 ‘구운몽’이란 걸작이 있어 천만다행이라 여긴다. 


주어진 인생의 시간들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잘 보낸 스탠 리와 김용이다. 김용의 경우 1991년에 은퇴한 후 영국 캐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역사학 석사와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용의 경우 입춘 바닥이 1988년이었으니 바닥 이후 10년 동안 공부하면서 시간을 잘 보냈다고 하겠다. 따라서 김용 역시 스탠 리와 함께 ‘삶의 도사’라고 하겠다. 


아무튼 오늘의 글은 환타지 세계를 이끌어온 동서양의 두 거물이 사실상 같은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주윤발 역시 삶의 도사인 것이 확실해



아울러 최근 즐거운 소식도 하나 들었기에 덧붙인다. 


‘영웅본색’의 주인공 주윤발에 관한 얘기이다. 


이 양반 역시 인생 즉 ‘삶의 마스터’인 것이 분명하기에 소개한다. 


주윤발은 1955년 5월 18일생이다. 역시 생시를 모른다. 乙未)을미)년 辛巳(신사)월 己卯(기묘)일이다.


태어난 뒤 4년 뒤인 1959년 己亥(기해)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어려서 무척이나 곤궁한 유년을 보냈다. 그 바람에 늘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 습관이 몸에 배었다고 한다. 


運氣(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의 운은 1959년으로부터 30년 후인 1989년 己巳(기사)년인데 그 3년 전인 1986년에 상영된 영화가 ‘영웅본색’이다. 그 이전에도 홍콩 등지에선 꽤 알려진 배우였지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바로 ‘영웅본색’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찍으면서 거액의 재산을 모았으니 무려 8천억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주윤발은 최근 전 재산의 1%만 남기고 나머지 99%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살아가는데 큰돈이 필요 없기 때문이란 것이고, 그간의 재산은 잠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말을 했다. 


주윤발의 생일을 검색해보고 나서 나 호호당은 즉시 주윤발이 왜 그런 발표를 했는지 그 동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내년 2019년은 己亥(기해)년이니 1959년 바닥 이후 또 한 번의 입춘 바닥이 된다. 이제 의욕도 떨어지고 결핍에 대한 갈증도 충분히 채웠으니 그간 모아둔 돈은 노름판에서 딴 셈 치고 다 돌려주고 게임 판을 떠나겠다는 얘기이다. 이 역시 삶의 도사, 삶의 마스터들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멋지다, 정말. 


이제 주윤발은 돈에서 해방된 사람, 물욕과 결핍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저렇게 필요 없는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니 분명 長壽(장수)를 누릴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중국, 물질만능의 시대로 도배되고 있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극한으로 치닫지 않는 中庸(중용), 또 逍遙(소요)하며 노니는 道家(도가)적인 지혜를 여전히 잃지 않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주윤발 역시 그런 하나의 예라 하겠다.


분식집에서 엿들은 젊은이들의 대화



며칠 전 저녁 날씨가 스산해서 라면 생각이 났다. 치즈라면. 칼칼한 라면에 느끼한 치즈가 아주 배합이 좋다. 작업실 길 저편의 작은 분식집의 3,500원 짜리 치즈라면. 


라면을 거의 다 먹어갈 즈음 옆 테이블의 대화 내용이 귓전에 들려왔다. 


“월 300에 여자 친구 안 사귀면 월 100은 저축할 수 있거든요, 그게 가장 속 편해요. 고민할 것도 없고 집세 내고 조금은 놀 수 있고...”

먹으면서 슬쩍 쳐다보니 건장한 젊은이, 나이가 30대 후반 정도는 되어보였다. 


그러자 내게 등을 돌린 채 앉은 일행, 역시 젊은 친구, 대화 내용으로 봐서 앞서의 젊은이보다 나이가 조금은 더 많은 것 같은 젊은이가 응수했다. 


“맞아, 전에 연봉 1,800할 때 여자 친구가 있었거든, 도저히 생활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그냥 일만 하면서 지내고 있어.”

그러자 다시 앞서의 후배가 말했다. 


“형은 디자인이잖아, 그런데 1,800은 야, 너무 짜다, 그래도 1년만 버티면 많이 오르지 않나? 디자인이?” 


그러다가 음식이 나왔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제육볶음밥이었다. 두 사람은 맛있게 먹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고, 나는 귀를 쫑긋 기울였다. 


선배 말하길 우린 결혼 같은 거 할 수 있을까?. 그러자 후배는 에이, 일단 젖혀놓자고요, 하기야 집에선 눈치를 주고 있지만 솔직히 자신 없어요, 엄두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느라 라면 국물까지 깨끗이 다 비운 연후에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 공기는 여전히 썰렁했지만 라면을 먹은 터라 약간의 더위마저 느끼며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막연하기만 한 젊은이들의 결혼관



일요일 오후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결혼에 관한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미혼 남성 가운데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중은 2010년 62.6%에서 올 해 들어 36.3%로 곤두박질쳤으며, 미혼 여성들은 결혼에 대해 더 부정적이어서 2010년 46.8%에서 올 들어 22.4%로 곤두박질쳤다는 기사였다. 여성의 경우 시집살이에 대한 부담 때문이리라. 


결혼 대신에 동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이 동거인데, 부담도 적고 언제든지 정리할 수도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서구 나라들을 따라서 조만간 결혼 제도가 사실상 없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꽤나 살다 온 후배의 얘기가 생각이 난다. 미국의 아내들이 생일 선물로서 가장 받고 싶은 것은 결혼신고필증이고, 남편들이 가장 기피하는 것 또한 결혼신고필증이라는 얘기. 


아직 우리 사회에선 동거를 통해 나은 아기는 여전히 私生兒(사생아)란 관념이 대단히 강하다. 이런 마당에 앞서의 통계처럼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에 대해선 부정적이어도 향후의 그런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확고한 태도를 정한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동거는 해볼 수 있다는 생각, 그러다가 헤어지고 또 한동안 혼자 지내다가 다시 동거하고, 이런 식으로 지내보자는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냥 막연히 독신으로 지내면서 여유가 되면 연애 좀 하고 골치 아픈 문제는 나중에 결정하자는 생각인 것 같다. 



역시 경제적인 문제



우리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 현상에는 서구적 영향도 크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제적 문제가 아닌가 싶다. 청년 실업, 낮은 보수의 비정규직, 이런 이유가 가장 클 것 같다는 얘기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신생아 감소라든가 인구 절벽과 같은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떠나 나 호호당이 보기에도 현 상황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감히’ 결혼을 시도할 여건은 분명 아닌 것 같다. 그야말로 焉敢生心(언감생심), 어떻게 감히 생각을 낼 수 있으리오!



취업과 관련된 최근의 걱정되는 상황



운명과 관련해서 최근의 현상을 봐도 그렇다. 최근 몇 년 사이 대기업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들의 사주팔자를 보다 보면 정말 놀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괜찮은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젊은이들의 사주를 보노라면 그야말로 한숨이 나온다. 그런 곳에 취업된 젊은이들의 운세를 확인해보면 거의 예외가 없이 취업된 시점이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최고 절정의 때라는 사실이다. 


한 번 더 되풀이한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업된 시점이 그 젊은이 전체 인생에 있어 가장 좋은 때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란 얘기이다. 취업한 시점이 인생 최고의 때라면 그 이후 10년만 지나면 운세는 하락세로 접어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취업 자체가 삶의 가장 큰 성취란 얘기이기도 하다. 


취업은 그저 훗날의 성취를 향한 하나의 작은 시작점이고 출발점이어야 할 터인데 취업 자체로서 그 뒤가 없는 최고의 때가 되고 있으니 솔직히 한숨이 나온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직 발전의 여력이 남아있는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사실상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고 취업하는 시점이 절정의 때가 되고 있으니 이건 그 개인은 물론이고 그런 젊은이들을 뽑은 기업 역시 미래가 없을 것이며 크게는 나라 전체의 미래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왜냐면 한 개인에게 있어 운이 아직 남아있다는 말은 아직 열정이 살아있다는 얘기와 같은 말인데, 취업 시점이 절정이란 말은 이제 열정은 없고 대기업들이 선호하는 것,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스펙만 남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영어 따위 다소 부족하고 학벌이나 실력이 다소 떨어져도 열정이 살아있는 젊은이가 발전을 하고 훗날 성취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공기업이나 대기업들은 그런 미완성의 젊은이들은 뽑지 않는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결국은 누구나 긍정할 수 있는 스펙 좋은 젊은이들만 채용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란 생각이다. 



예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오늘날의 취업



예전의 기업들 역시 학벌 좋고 실력 좋은 응시자를 채용하고자 했지만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젊은이들에게도 그런대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 그런 일은 아예 없는 것 같다. 소위 ‘짤’이 없는 오늘이다. 


예전엔 야간 상고를 나왔어도 기업이나 은행에 취업할 수 있었고 그러다가 본인의 노력으로 야간대학을 마치는 등의 코스를 통해 나중에 임원이나 사장으로까지 승진 출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엔 그런 일은 아예 원천 봉쇄되고 있다. 


최근엔 그만 둔 김동연 경제부총리 같은 사람은 바로 그 대표적인 케이스, 이른바 立志傳(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하겠는데 이젠 그런 일이 출발에서부터 막히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월 300만 되면 여친 사귀지 않고 월 100 저축할 수 있다면 심경이 편하다는 말을 하던 분식집의 그 젊은이 얼굴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 친구의 경우 당분간은 동거든 결혼이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나라 운이 바닥에 접근해가고 있다 보니 젊은이들이 둥지를 만들지 못한다, 둥지를 틀지 못하니 아기를 낳지 못한다. 혹여 아기를 낳고 나면 그 날부터 젊은 부부는 전쟁을 시작해야 하니. 


겨울은 不姙(불임)의 계절이어서



그야말로 겨울은 不姙(불임)의 계절인 것이 확실하다. 한 해를 통해 늘 맞이하는 겨울이 아니라 국운의 겨울은 정말 그렇다.

너 나 할 것 없이 합심해서 부동산 가격만 잔뜩 높여놓은 바람에 자영업자들은 임대료가 부담이고 젊은이들은 둥지를 틀지 못해서 아기를 낳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본 게임은 내년 2019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징글맞을 정도로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월요일 새벽 시각 나 호호당은 그저 눈알만 말똥말똥해져온다.



입동엔 춥지가 않다.



현재 시각은 11월 7일이고 저녁 8시 20분이다. 앞으로 두 시간이 흘러 10시 32분이 되면 立冬(입동)이다. 


아침 뉴스에서 ‘입동인데도 춥지가 않습니다’ 하는 멘트가 들려왔다. 실은 입동이기에 추울 까닭이 없다. 입동의 立(입)은 ‘일어난다는 뜻’이니 이제 겨울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입동은 언제나 늦가을과 같다. 


하지만 입동으로부터 보름이 지나 小雪(소설)이 되면 아, 이젠 겨울이네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니 입동은 이제 얼마 안 있어 추운 겨울이 시작될 것입니다 하는 예보와 같은 것이고 몸으로 느끼는 겨울은 11월 22일의 小雪(소설)부터이다. 


늦은 오후 작업실 창밖으로 내다보니 흐린 하늘 아래 마지막 가을의 情趣(정취)가 완연했다. 창 아래 목련의 커다란 잎사귀의 색깔이 희끗한 녹색에서 황갈색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나타내고 있었다. 


떨어진 잎이 절반이고 아직 붙어있는 것이 절반이다. 모양새가 모나지 않고 둥그렇다. 끝부분이 조금 뾰족하긴 하나 전체적으로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착하고 선량한 인상이다. 


입동을 맞은 저 목련은 나 호호당이 2005년 봄 현재의 서초동 작업실로 들어온 이래 좋은 친구로 지내왔다. 해마다 3월 하순이면 어김없이 우유 빛깔의 환한 꽃망울을 터뜨려주었으니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다. 그런 목련이 입동을 맞이하여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 이제 쉴 때가 되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겨울이면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니



사람 또한 겨울이 되면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우리 대한민국 또한 2009년으로서 60년 순환에 있어 겨울을 맞이했고 2024년이 되어야만 새 봄을 맞이한다. 그렇기에 국운의 겨울이 되자 과거 세월을 되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역시 그렇다. 


한동안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가 2012년부터 2016년에 걸쳐 인기리에 방영되었는데 과거를 되돌아보는 내용이었다. 2014년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국제시장’ 역시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내용이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것을 ‘회고’라고 한다. 회고는 주로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하게 되고 또 그게 정상이다. 그렇기에 응답하라 시리즈는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이 사계절 중에 마지막 계절인 겨울로 접어들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겨울엔 환타지와 몽상도 잦아지나니



그리고 또 겨울이 깊어지면 낮은 짧고 밤은 길어진다. 이에 사람들은 길고 긴 겨울 밤 동안 이불 속에서 환타지 또는 몽상에 잠기기도 한다. 현실적이지 않은 일, 현실에선 불가능한 꿈과 같은 일들을 공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에 2009년부터 시작된 겨울이 점점 더 본격 겨울로 접어들자 ‘시크릿 가든’이나 ‘별에서 온 그대’, 그리고 최근의 ‘도깨비’와 같은 환타지 로맨틱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작년 올 해의 빅 히트 영화 ‘신과 함께’ 역시 그런 흐름이라 하겠다. 



겨울은 생산의 계절이 아니라서



겨울은 생산과 발전의 계절이 아니다. 땀 흘려 일하고 투쟁하는 때도 아니다. 


겨울은 가을에 거두고 저장한 수확을 소비하는 때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역시 2009년 이후 특히 국운의 小雪(소설)인 2012년부터 경제성장률이 현저하게 둔화되었다. 사실 그건 성장도 아니다, 일종의 통화량 증가에 따른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겨울을 날 때 신경을 쓰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요점은 가을 수확으로 겨울만이 아니라 봄까지 나야 한다는 점이다. 초여름 보리 수확 철이 올 때까지 말이다. 


예전엔 보릿고개란 것이 있었으니 비축된 식량이 떨어져서 햇보리가 나는 철까지 배를 굶주려야 했던 시기를 말한다. 


물론 오늘날은 농사가 大本(대본)이 아니지만 자연의 이치는 변함이 없다. 우리 주력산업들이 최근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데 바로 이 주력산업이 다음 번 국운의 여름이 오기 전까지 우리가 먹고 살아갈 식량인 셈이다. 


현재 우리의 주력산업인 철강과 조선,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등의 기업들은 대부분이 1970년대 초중반에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36년이 경과한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들어서면서 노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 만물은 시작으로부터 36년이 흐르면 어떤 브레이크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비교적 늦게 1983년에 시작한 반도체 또한 내년 2019년으로서 36년이 된다. 


반면에 이른바 ‘미래 먹거리’ 산업은 구체적인 성장궤도에 들어서기까지 좀 더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의 기간, 국운의 겨울 동안 우리 모두 장차 어떤 어려움이나 위기가 닥쳐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복지 논쟁



사실 이미 2012년부터 전 국민이 어떤 불안감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2012년 말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의 이슈가‘ 복지 논쟁’이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의욕과 욕심이 많고 부지런하던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2012년 무렵이 되자 갑자기 복지에 관심이 높아졌으니 무슨 연유이고 까닭이었던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아주 간단하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급속도로 떨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랴! 


그 무렵이 되자 이른바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지고 성공의 기회도 극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 지나갔다는 불안감, 부와 성취를 향한 게임이 이젠 끝이 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젠 발전이나 상승보다도 노후를 걱정하기 시작한 대한민국이 되었기에 복지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미래의 세월이 과거와는 달리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감지했던 우리 국민들이었던 셈이다. 



나라는 부강해졌으나



2012년에 이르러 나라 자체는 세계적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음에도 그 구성원의 대다수는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逆說(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그 불안감이 전혀 막연하거나 근거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몇 년 사이 흔히 듣게 되는 얘기로서 ‘이제 우리가 올 수 있는 데까지 왔다, 이제 더 앞으로 나아가긴 어렵다’는 말이 그것이다. 


겨울은 생산과 발전의 때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국운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대한민국이 한창 신명을 내던 시절도 있었으니



다소 부족하고 미흡한 것이 있어도 시간이 가면서 하나 둘씩 생겨나고 얻는 것이 있는 세월이 훨씬 재미가 있고 즐겁다. 우리 대한민국에게 있어 그런 시절은 바로 1987년부터 2002년에 이르는 세월이었다. 한 해로 친다면 여름의 하지에서 가을의 추분에 이르는 시기였다. 


1987년 갑자기 경제가 급성장하고 무역 흑자가 정착되었으며 동시에 감격스런 민중화가 이루어졌던 한 해, 그 한 해 GDP 성장률만 해도 무려 12.5%였다.


그렇게 우리 대한민국 약진의 세월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열심히 하고 잘 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널리 보편화되던 시절이 열렸던 것이다. 비로 그 도중에 외환위기라고 하는 國難(국난)이 있긴 했으나 1987-2002년 사이의 세월은 발전과 전진의 세월이었음이 분명하다. 



돌이켜본다는 것은 노인의 일이니



글의 앞에서 우리 국운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되돌아보고 回顧(회고)하는 일은 사실 젊은이의 일이 아니라 나이든 노인의 일이란 점이다. 


따라서 우리 국운이 2009년부터 겨울로 접어들었다는 말은 우리 대한민국이 늙었다는 말과도 같다는 뜻이다. 늙어가다 보니 신생아 출생률도 급감하고 활력 또한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계속 이대로 줄곧 늙어만 갈 것인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는 말씀을 드린다. 2024년이 되면 늙은 대한민국은 죽고 그와 동시에 新生兒(신생아) 대한민국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2024년에 태아가 만들어지고 다시 10년이 흘러 2034년이 되면 세상 밖으로 나갈 대한민국이라 하겠다.) 


저녁 무렵 글을 시작해서 도중에 쉬었다가 이제 마무리한다. 시각을 보니 11월 8일 새벽 1시 57분이다. 그 사이에 立冬(입동)점을 넘어섰고 그러니 이젠 겨울이 시작되었다. 아직은 춥지 않은 겨울이지만. 


미국 트럼프가 중국을 때리자 중국은 총력 체제로 돌입해서 생산을 풀(full) 가동하고 있다. 그러자 중국 북방의 산업단지들이 석탄을 마구 써가며 사정없이 매연과 미세먼지를 뿜어내고 있다. 이에 그 탁한 먼지들이 서풍을 타고 서해를 건너 우리나라로 죄다 몰려들고 있다. 올 겨울 우리 한반도의 하늘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탁해질지 당장은 그게 걱정이다.



낙엽 분분한 계절을 맞이하여 되돌아보니



단풍은 이제 절정을 넘겼고 落葉(낙엽) 紛紛(분분)한 계절이다. 수요일 7일이 立冬(입동)이니 이제 쓸쓸한 겨울로 넘어갈 참이다. 


아직 해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 무렵이면 올 한 해를 되돌아보기에 빠른 시점 또한 아니다. 한 해의 성과는 9월 하순의 秋分(추분)이면 윤곽이 드러나고 가을 추수철인 10월 하순이면 사실상 정해져서 不動(부동)인 까닭이다. 



아쉬웠던 북한의 비핵화



생각해보면 올 한 해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북한의 비핵화였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만나서 서로 비핵화에 관해 약속을 하고 평화롭게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보자고 했을 때 정말 크게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9월 하순의 추분 무렵이면 보다 구체적인 진척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소중한 불씨를 살려보려는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있었을 뿐이다. 당초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몰라도 아쉬운 바가 크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소득주도성장 정책



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소득주도 성장정책 역시 그렇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기업의 수익은 크게 증가한 반면 가계소득의 증가가 많이 부진해진 구조가 정착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가계소득을 늘려보려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해왔고 나름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어렵다. 


가계소득 증가는 역시 양질의 일자리 공급과 직결되는 문제라 하겠다. 하지만 현실은 일자리 질의 양극화로 인해 전체 직장 근로자의 10%만이 대기업 정규직일 뿐, 나머지 90%는 비정규직이거나 중소기업 근로자라는 점이다. 아울러 무려 560만에 달하는 자영업자가 있는 구조이다.


그러니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52시간 근무 정책은 가계소득을 늘리기보다 오히려 영세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라 하겠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역시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9월 추분 무렵이면 윤곽이 나오기 마련인데 최근의 결과는 많이 실망스럽다 하겠다.


박근혜 전 정권이 추진했던 노동시장의 유연성 개선 정책 역시 일자리의 양극화를 해소해보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기득권 노조의 저항에 부딪쳐서 실패했다. 


이에 현 정권의 가계소득을 늘려서 성장 탄력을 되살려보려는 노력 역시 실패한다면 과연 우리가 해볼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것이 남아 있을까? 하는 회의가 생긴다. 



한은의 금리정책, 진퇴양난에 처했으니



최근 난데없는 서울과 경기권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한은의 장기 저금리 정책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사실 한은으로선 나름 억울할 것이다. 전 정권과 현 정권에 걸쳐 경기를 살리고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했던 저금리 기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성과가 나지 않고 부작용만 불거졌으니 한은으로선 많이 서운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장차 경제에 충격이 왔을 때 추가적인 금리인하 수단을 이미 상실해버렸다는 점과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와 거꾸로 가고 있는 점에서 오는 모든 리스크와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갈 수밖에 없는 답답한 실정이라 하겠다. 



밀려오는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



게다가 7월 초 우려하던 미중간의 무역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미중 양국이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보고자 나서고 있지만 역시 엄연한 한계가 있다. 


저번 10월에 우리 증시가 유독 많이 하락한 배경에는 9월27일의 연준 금리 인상도 있지만 더불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 있어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 또한 상당히 작용했다고 본다. 올 해 중국의 성장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자 그로 인한 악영향을 우리 수출이 많이 받게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올 한 해 戊戌(무술)년은 반가운 소식이나 흐름보다는 그 반대의 일들이 많았다고 여겨진다. 



아직은 요원한 선진사회로의 길



수치상으로만 보면 우리 대한민국은 선진국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우리나라가 선진사회냐고 물어볼 것 같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 호호당도 동감이다. 


그 이유로서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달리 말하면 사회적 상호 신뢰가 그다지 많이 쌓여있지 않은 것이 우리가 선진사회가 되기엔 많이 부족한 원인이 아닌가 싶다. 


오늘 일요일 저녁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데 옆 차선에서 SUV 차량 한 대가 날카로운 각도로 차선을 치고 들어왔다. 택시 기사도 꽤나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끼어든 차 뒷면 창에는 ‘Baby In Car’ 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저렇게 위험하게 운전하면서 ‘아기가 타고 있어요’ 라고 붙이고 다니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싶었다. 하기야 애 아빠라면 피 끓는 30-40대일 것이니 저렇게 운전할 법도 하지 싶었다. 


아기가 타고 있으니 당신은 양보하시고 나는 마음대로 차선을 변경하겠어, 이런 식이니 스티커가 담고 있는 상호 신뢰와 양보의 메시지가 그저 무색할 따름이었다. 


저녁 들어 뉴스를 검색하다 보니 유기된 강아지 보호소에선 강아지를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지원금만 착복하고 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사회적 신뢰가 없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일면이다. 저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저 사람들도 참 딱하지 싶기도 하다. 


최근의 사립유치원 문제 역시 그렇다, 내 생각에 모든 사립 유치원이 그렇진 않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일부가 저처럼 문제를 만들고 있으니 전체적인 신뢰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몇 년 사이 유난히 아프리카 등지의 어린이들을 도와달라는 텔레비전 광고를 많이 접한다. 나름 후원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과연 제대로 하고는 있을까 의심이 앞서는 바람에 늘 그만 두곤 한다. 


믿는 것이 어리석거나 심지어는 위험할 수도 있는 우리 사회의 말과 약속들이다. 우리가 이처럼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니 따라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선진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작은 약속이라도 믿을 수 있고 지켜지는 사회, 경제적으로 윤택하냐 아니냐를 떠나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는 그런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시작된 동작동 뒷산의 동계 보급 작전



이제 상강 지나고 입동을 앞두고 있으니 겨울철 뒷산 새 모이 주는 일을 시작했다. 


매일 뒷산으로 아들과 함께 강아지 두 마리를 이끌고 산책을 나선다. 매일 밤 산책길에 동네 고양이들 밥을 준 지 벌써 9년이다. 2010년 초부터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새들 모이도 겨울이 되면 주게 되었다. 쌀과 잡곡, 땅콩 등등을 섞어서 준다. 한 겨울 새벽 참에 나가보면 거의 수백 마리, 어쩌면 천 마리 정도 되는 새들이 모이를 먹고 있는 광경, 대단한 壯觀(장관)을 볼 수 있다. 


재미난 점은 새들이 종류 별로 순번을 정해서 먹는다는 점이다. 까치가 제일 사납다, 그 바람에 가장 먼저 먹는다. 새들은 행동반경이 커서 동작동 뒷산 새들은 물론이고 국립묘지 새들과 반포 일대의 새들도 죄다 날아오는 모양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먹인다는 것은 정말 그야말로 즐거운 일이다. 어쨌거나 일해서 번 돈으로 고양이 밥을 마련하고 새들 모이를 준비해서 먹일 수 있으니 마음이 흡족하다. 이에 나 호호당 스스로 동작동 국립묘지 뒷산의 산신령을 자처하고 있다. 


(작년까진 독자들에게 묵은 쌀 남은 것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글에 올린 적도 있지만 올 해 그게 좀 미안하고 구차한 것 같아서 그냥 마련하기로 했다.)


올 겨울은 엄청 추울 수도 있다는 기상청의 얘기가 있다. 우리 부자의 야간 산책 시간이 주로 밤 11시 경인데 겨울이 엄청 추울 것 같으면 고생 좀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주로 틀리는 기상청이라서 아직은 큰 걱정 하지 않기로 한다.


9월 27일 연준 금리 인상으로 시작된 증시 하락



9월 27일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2.25%로 인상했다. 그러자 1.50%인 한은 기준금리에 비해 대다수 전문가들이 한계라고 진단하고 있던 0.75%의 격차가 생겼다. 


9월 27일의 코스피 지수는 2,355포인트였는데 다음 날인 9월 28일부터 코스피 지수가 하락하기 시작해서 10월 26일 금요일엔 2,027포인트까지 줄곧 하락했다. 한 달 동안 328포인트나 급락하는 장세가 나온 것이다. 


이번 주 월요일 추가 하락할 것인지 아니면 바로 반등할지 그거야 모르겠으나 단기간에 하락이 다소 과다했다고 본다. 


이번 하락의 원인은 따라서 너무나도 그 이유가 명백하다. 연준의 금리인상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금융긴축의 시대, 증시 하락은 당연한 일이다.



글로벌 대표 투자은행인 미국의 골드만삭스는 미국 연준이 내년 2019년 말까지 금리를 3.50%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추정을 하고 있다. 지금보다 1.25%를 더 올릴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이번 우리 증시의 급락을 떠나 이제 전 세계적인 금융긴축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금융긴축의 시대를 증시에선 逆(역)금융장세라고 부른다. 유동자금이 늘어나면서 증시로 돈이 유입되고 그로서 주가를 위로 밀어 올리는 금융장세의 반대 흐름, 즉 돈이 회수되면서 증시로부터 돈이 빠져나가고 주가가 하락하는 흐름, 간단히 말하면 증시의 추세적인 하락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 증시의 최고점은 금년 1월 29일의 장중 2607 포인트로 확정이 되었다. 이제 오랫동안 그 수치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하락이 다소 과했기에 조만간 반등이 나오겠지만 그 반등이 9월 27일의 코스피 종가인 2,355 포인트까지 이어지는 일 역시 없을 것이다. 반등이란 내린 폭을 어느 정도 줄이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증시 하락의 징후들



나 호호당은 이제 우리 증시의 하락 징후를 금년 5월 4일에 있었던 삼성전자의 액면분할에서 처음 감지했다. 


주가를 1/50로 줄인 조치가 그것이다. 주당 가격이 너무 비싸서 일반 투자자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던 주식을 보다 거래가 잘 되도록 한 조치였지만 실은 그로서 어떤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삼성전자는 코스피 증시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한다.) 


그리고 9월 27일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한미간 금리 격차가 임계점을 넘은 것이 두 번째로 나온 가장 확실한 징후였고 마지막으론 10월 16일자 뉴스 기사였다. 그 날 뉴스에 패시브 펀드의 설정액이 25조원을 넘기면서 24조 규모의 액티브 펀드 설정액을 넘어섰다는 소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옆으로 기는 횡보장세라든가 하락장에선 전문가의 능력에 따라 시장초과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액티브 펀드가 선호되고 상승장에선 시장 수익율을 그대로 따라가는 패시브 펀드가 더 나은 경향이 있다. 


그러니 시장 수익율만큼 수익을 올리는 패시브 펀드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증시 전망에 대해 낙관적인 사람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장이란 으레 낙관적인 견해가 우세해질 무렵이면 하락세로 접어든다. 참으로 불변의 逆說(역설)이다! 


9월27일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우리 금리와의 격차가 0.75%까지 벌어지면서 하락이 시작된 마당에 패시브 펀드가 더 많아졌다는 내용의 뉴스를 접한 나는 이제 증시가 진짜 하락세로 들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


 

양적완화로 인해 猶豫(유예)된 증시하락



사실 우리 증시의 경우 진작부터 내렸어야 했었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발생과 함께 말이다. 늦어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2012년부터는 하락세로 접어들어야 했다. 


그런데 역사상 초유의 양적완화라고 하는 희한한 조치 때문에 2011년 초부터 작년 초까지 만 6년에 걸쳐 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르지도 못하는 이상한 횡보장세에 갇혀 지냈다. 


코스피 지수 1,800을 하단으로 하고 2,200을 상단으로 하는 초장기 박스권에 갇히게 되었다. 이 모두 양적완화로 인해 글로벌 경제가 엄청난 유동성과 부채의 일대 홍수에 잠겼기 때문이었다. 


목하 우리 경제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라, 금년 들어서면서 좋은 소식이라곤 들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일자리, 실업률, 자영업의 위기, 전반적인 설비투자 감소, 경기지표 하락 등등 무엇 하나 긍정적인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런 상황을 냉정히 살필 때 증시가 오를 이유는 萬無(만무)한 상황이라 하겠다. 


그저 진작부터 하락세로 접어들었어야 할 증시가 양적완화로 인해 길게는 10년, 짧게는 6년에 걸쳐 지연되고 유예되었을 뿐이다. 


사실 내막을 알고 나면 미국 연준 역시 어쩔 수 없이 금리 인상을 지속하고 있고, 분기마다 한 번씩 시장에서 직접 돈을 회수하는 양적 축소를 진행해가고 있다. 달러가 글로벌 기축 통화이기에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할 경우 기축 통화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향후 글로벌 경제 역시 어려울 것 같으니



양적완화 자체가 극단적인 비정상적 조치였기에 금리인상과 함께 양적축소가 이루어지면 어떤 후유증을 가져올 것인지 현 시점에서 그를 미리 알고 있는 경제학자는 없다. 전례가 없는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성장을 이끌어온 것은 중국이었는데, 이제 중국마저 과다한 부채로 인해 급격하게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으니 당분간 글로벌 경제를 견인할 주체는 없어 보인다. 


미국 경기상승이 오래 이어져온 만큼 내년부터 하강 또는 급강하할 수 있다는 얘기들이 무성한 마당이다. 유로존은 아예 어떤 기대조차 하지 못한다, 현상 유지라도 하면 최선이고 이탈리아가 사고를 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 마당에 글로벌 전체적으로 돈의 회수가 시작되고 있다. 게다가 금년에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도 모른다.



2017년부터의 우리 증시 상승은 마지막 거품이었다.



돌이켜보면 작년 초 새 정부 출범을 분위기로 깔고 증시가 오르기 시작한 것 자체가 실은 마지막 거품이었다. 오를 이유가 전혀 없는 우리 경제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지속적인 저금리로 인해 만들어진 유동성이 새 정권 출범에 어떤 기대를 걸었던 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 면에서 금년 여름의 부동산 상승과 같은 맥락,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과잉 유동성이 원인이었다. 


우리 코스피 시장의 시가총액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역시 최근엔 하락세이고 반도체 정점론이 무성한 판국이다. 게다가 최근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 역시 3분기 실적이 쇼크 수준으로 나왔다.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으니 



우리 경제는 이미 개방 경제라는 면에서 한은의 금리 결정은 현 시점에 이르러 실로 진퇴양난을 맞이하고 있다. 다소 무리가 따를 수 있었어도 한은의 기준금리는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2016년 말부터 연동해서 올렸어야 했다고 본다. 


국내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미루다 보니 어느새 금리가 역전되기 시작했고 이제 와선 미국이 우리보다 0.75%나 더 높은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최근 한은 이주열 총재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발언을 했지만, 이미 국내 경기 사이클이 금년 들어 하강세로 접어든 마당이라 더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다. 경기가 더 나빠지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수 있는 판국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앞에서 얘기한 바처럼 개방 경제란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을 비롯하여 글로벌 전체적으로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고 있는 마당에 가령 일본의 제로 금리처럼 저금리 상태를 유지해갈 수 있는 경제적 체력이 우리에겐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오늘에 이르러 한은은 실로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되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증시 하락은 이미 예고된 일이다.



올 여름 7월 24일자 “2019년 5월, 우리 경제의 변곡점”이란 글의 말미에 써놓은 글이 있다. “나 호호당이 읽고 있는 운세의 흐름으로 볼 때 금년 10월이면 우리 경제에 좋지 않은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내년 5월은 어떤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 증시가 추세적으로 하락해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 하겠다. 


(추신:자연순환운명학 심화반 강좌를 공지했다. 올렸어도 미처 못 보시는 분들도 있고 해서 글의 본문에 올린다. 많은 참강 있으시길 바란다.)




상강, 서리의 계절에 雷雨(뇌우)가 들이치니  



오늘은 10월 23일, 저녁 8시 22분으로서 霜降(상강)이었다. 지금 시각은 밤 10시 21분. 상강은 서리 霜(상)에 내릴 降(강)이니 서리가 내릴 때란 뜻이다. 가을이 참으로 깊었으니 深秋(심추)의 계절이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건만 오늘 점심 무렵엔 제법 거센 雷雨(뇌우)가 한 바탕 지나갔다. 거리는 삽시간에 젖은 낙엽 천지가 되었다. 그야말로 스산한 罷場(파장) 분위기. 


가을 추수는 상강 무렵이면 절정을 이룬다. 옛 사람들은 이 무렵에 국화주를 빚고 국화전을 부쳐 먹었다고 한다. 가을의 대표과일인 감도 이 무렵에 본격 출하가 된다. 


이제 보름 동안은 낙엽의 때이고 풀벌레들은 겨울잠을 자기 위해 어디론가 들어갈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죽고 風化(풍화)되어 가루로 바스라지고 날릴 것이니 그러면 죽음 혹은 주검의 계절인 겨울로 접어든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복닥거리는 대도시에 살아가는 이유



서울을 비롯하여 대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이유가 뭘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야말로 벌어먹고 살기 좋아서 그렇다. 교환이 빈번하고 시장이 크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 살려면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오만 가지 스트레스. 서울과 같이 천만의 대도시에서 한 개인의 존재는 참으로 미미하다, 스스로 보기에도 보잘 것이 없다. 


하지만 대도시를 떠나긴 정말 어렵다, 열심히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하니. 서울 인근의 아파트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삶은 정말로 고달프다.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훗날 돈 좀 모아서 은퇴하면 조용한 전원에 나가 아담한 집을 짓고 유유하게 살아보리라 하는 생각, 사실 이런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다 해보게 된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싸우면서 살다 보면 우리 누구나 가끔씩 쉬고 싶어진다. 아쉽기만 한 휴가 정도가 아니라 몇 년 정도 푹 쉬고 싶어진다. 하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는 이는 거의 없다. 몇 년 쉬고 나면 여간해선 되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에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갈 뿐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현장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는다. 


이처럼 現役(현역)의 삶은 치열하고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섣불리 현역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은퇴는 일종의 사회적 죽음인 것이니



현역을 그만 두는 것, 이를 은퇴라고 한다. 그런데 은퇴란 것은 한 개인에게 있어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란 사실이다. 은퇴란 그 사람이 머물던 세계 혹은 그 바닥에서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사라진 거나 죽은 거나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렇기에 사람들은 좀처럼 현역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게 죽음이란 것을 은연중에라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 호호당이 하고자 요지는 사람이 죽으면 무덤에 들어가 묻히거나 납골당에 안치되듯이 은퇴 시점을 고려해서 마련한 전원의 아담한 주택은 사실 그 사람의 무덤이나 납골당과 같다는 얘기이다. 


줄여 말하자면 사회적 죽음을 맞이한 자가 사는 집이 그런 전원주택일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은퇴한 뒤에도 작은 전원주택 한 채도 마련하지 못하는 딱한 경우도 허다하지만 말이다.)


은퇴하면 죽음이라니 다소 과격하고 지나친 주장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정말로 그러하다. 은퇴 후의 전원주택 또한 제 아무리 아담하고 살기 좋아도 그곳은 결국 무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친지나 손님들을 초대해서 집과 주변의 좋은 환경을 구경시켜주면 정말 좋네요! 하는 부러움을 잠시 살 순 있겠으나 잠시 들렀던 그들이 떠나고 나면 역시 무덤에 불과하다. 



가장 화려한 때 직후에 바로 죽음의 계절이 시작되나니



대목에서 잠깐 60년 순환에 대해 얘기할 까 한다. 60년 순환은 사계절로 나눌 수 있으니 순환의 시작점인 입춘으로부터 42.5년이 경과한 때가 상강이고 45년이 경과하면 입동이고 그로서 15년의 겨울이 시작된다. 


오늘의 주제인 霜降(상강)은 입동이 오기 전, 겨울이 시작되기 전의 마지막 가을의 때이다. 상강의 산과 들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한창이다. 자연이 죽음의 계절인 겨울 직전에 마지막으로 최고의 ‘꽃단장’을 하는 때인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잿빛으로 물들어가는 겨울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상강 무렵의 화려한 단풍은 하루로 치면 해가 서산에 지기 직전에 보여주는 황홀한 저녁놀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절정의 때는 죽음 직전에 온다.



이담에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편히 살겠다는 생각, 절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때가 되었다면 그 자는 60년 순환에 있어 상강을 맞이한 자라고 봐도 절대 무방하다. 


예를 하나 들겠다. 이젠 벌써 꽤나 오래 된 일이지만 현대 그룹의 창건자이자 한국 경제의 거인이자 영웅이었던 고 정주영 회장의 얘기이다. 


정주영 회장은 1970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추였고 1983년은 상강의 운이었다. 이때 정회장이 지은 건물이 서울 종로구의 계동 사옥이다. 겉멋보다는 실익을 중시하던 정주영 회장이 나름 최대한 멋을 부린 사옥이었다. 왜냐? 본인의 무덤이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계동 사옥에 들어가 집무실에 앉는 순간 정주영 회장의 운은 사실상 끝이 났던 것이다. 더 이상 현역이 아니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정주영 회장은 그런 다음 1992년 난데없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실패한 뒤 많은 곤욕을 치렀는데,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세간에 한때 설이 분분했지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무덤 속에서 너무나도 적막했기에 상실감을 견디지 못했던 까닭이다. 


정주영 회장만 그런 것인 아니다. 기업인들이 성공한 뒤에 멋진 사옥이나 저택을 짓는 일이 많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 기업인의 운이 상강 무렵 즉 이제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몇 년이 지나면 모 기업이 흔들리거나 고난을 겪는다. 


기업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반 보통의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가령 여유가 있어서 도심에서 벗어난 교외나 전원에 나름 좋은 집을 마련하거나 특히 집을 짓게 되면 그건 그 사람의 운세 순환에 있어 상강이나 입동 근처라 보면 된다. 나름 성취하고 성공한 사람의 마무리 작업이라 봐도 좋겠다. 



나라의 운세 흐름도 그렇다.



과거 일본이 1991년 거품 붕괴 직전에 도쿄나 오사카 도심에 멋진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들을 많이 지었다. 1987년은 일본 국운의 상강이었고 1990년이 입동이었던 까닭이다. 


우리나라 역시 2006년이 상강, 2009년이 입동이었는데 그 때를 전후해서 서울 도심이나 외곽, 부산의 경우엔 해운대 센텀 시티 같은 멋진 단지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국운의 상강을 맞이한 단풍놀이였던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 꾸미기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 


흔히 기념비적인 건물이란 말을 쓴다. 한 시대를 기념할 만한 건물이란 뜻이니 그건 보통 그 시대의 운세 순환에 있어 마무리 단계인 상강과 입동 무렵에 건축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증권계에선 높은 건물이 많이 올라가면 경제가 조만간 어려워질 하나의 지표로 삼는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이제 글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상강의 逆說(역설)



10월 그리고 霜降(상강) 무렵은 자연이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때이다. 그러니 참으로 逆說(역설)이다. 곧 잿빛의 겨울, 죽음의 겨울이 다가올 것이니 말이다. 


마지막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것, 한편으론 맞다, 행사 중에선 피날레가 가장 화려한 것과 같으니. 하지만 또 한편으론 슬프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면 바로 끝이고 죽음이라니 말이다. 


오늘도 치열한 경쟁의 마당에서 하루하루 힘들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그대가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서 우아하게 은퇴한 다음 아름다운 전원에 나가 느긋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삶을 보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좋다. 일종의 목표로 삼은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現役(현역)이기에 해보는 생각이란 사실이다. 정작 은퇴하고 나서 한가롭게 되면 사실 좋은 것이 별로 없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화려한 상강의 때가 지나면 바로 잿빛의 겨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가 실은 전성기란 사실



한 마디 더 첨가한다, 더 벌어 보겠다고 또는 더 성취해보겠다고 욕심내고 씩씩대면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현역의 세월이야말로 실은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이고 전성기란 점이다. 


글을 마치고 나니 새벽 2시,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글을 쓰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제 잠에 들 시간이 되었다. 굿 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