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에 고아가 되어 세상을 버리고 수녀가 되고자 했던 처녀



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2회에 나누어 글을 쓰고자 한다. 


보통의 가정에 태어난 마리아란 이름의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10살 때 불행하게도 양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8세에 교사 과정을 이수한 뒤 정식 수녀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갔다. 우리로 치면 머리를 깎고 행자가 된 셈이다. 


그녀의 생년월일은 1905년 1월 26일, 甲辰(갑진)년 丁丑(정축)월 乙丑(을축)일이 된다. 丑(축)월에 태어난 乙木(을목)인 바, 그녀의 일생을 돌이켜볼 때 그녀의 입춘 바닥은 1925 乙丑(을축)년이었고 입추는 1955년임을 알 수 있다. 


부모를 모두 잃은 불상사가 그녀의 나이 10살이 되던 해였으니 1915년의 일이었다. 乙卯(을묘)년이고 운세 흐름은 입춘 바닥이 되기 10년 전인 大雪(대설)의 운이었다. 큰 눈이 펑펑 내린다는 대설 말이다. 10세의 어린 소녀가 눈 내리는 벌판에 혼자 내버려진 셈이었다. 얼마나 가련한가!


수도원에 들어간 것은 1923년이었으니 입춘 바닥 2년 전이다. 교사과정을 이수하긴 했으나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에 세속을 버리고 수녀의 길을 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의 품안에서 안식을 찾은 것이다. 



전설의 시작



그녀는 수도원에 적을 두고 학교 선생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입춘 바닥 다음 해인 1926년에 한 아이의 가정교사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부잣집이었다, 그런데 그 집은 자녀를 일곱이나 낳은 엄마가 홍역을 앓던 중 그만 먼저 제 세상으로 떠난 집이었다. 


마이라는 처음에 한 아이만을 맡았으나 결국 어쩌다보니 일곱 자녀를 모두 돌보게 되었다. 고아로 자란 터라 아이들을 돌보게 된 것이 마리아에겐 커다란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외로운 사람은 누군가를 돌보게 되면 책임감도 생기고 살아갈 의욕도 생기면서 위로도 받는 법이다. 


마리아가 진심으로 자녀들을 아끼고 잘 돌보는 것을 지켜보던 그 집 아버지, 홀아비는 어느 날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홀아비 남자는 마리아보다 나이가 무려 25살이나 많았다. 하지만 마리아는 수녀의 길을 포기하고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훗날 회고에 따르면 부잣집 홀아비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다 보니 청혼을 받아들였다고 심중을 밝히고 있다. “나는 아이들과 결혼한 셈이지요, 하지만 세월이 가다 보니 서서히 남편도 사랑하게 되었어요.”


나 호호당은 그녀의 저런 말이 액면 그대로의 진심일 것으로 확신한다. 왜냐면 결혼한 때는 1927년 11월인 바, 그녀의 운세로 보면 1925년 입춘 바닥에서 겨우 2년이 지난 때, 그러니 미래에 대해 그저 막막한 심정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을 부비고 살아가는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라 본다. 



마리아의 남편 이야기



여기에서 잠깐 마리아가 결혼한 남자, 무려 25살이나 연상인 사람에 대해 알아보자. 


마리아의 남편은 오스트리아의 기사 계급 출신으로서 이름이 게오르크 폰 트라프, 오스트리아 제국의 해군 장교였다. 


제1차 대전이 터지기 전 게오르크는 영국 해군 제독들과 교분을 쌓았고 그러다가 영국의 부유한 귀족 집안의 딸과 1912년에 결혼을 하면서 크게 부자가 되었다. 아내가 가져온 거액의 지참금 때문이었다. 


그런데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잠수함 함장으로서 무려 11척의 영국이나 프랑스 함선을 격침시키는 혁혁한 무공을 세웠고 최고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런데 막대한 지참금과 함께 아들 둘과 딸 다섯을 낳아준 고마운 아내가 1922년에 사망했던 것이고 이에 졸지에 애 일곱의 홀아비가 된 그는 어쩌다가 마리아와 인연이 닿게 되었던 것이다.


 

영원히 이어지는 것은 없어서



아무튼 마리아 남편의 입장에선 정말 그야말로 대박이었을 것이다. 일곱 자녀를 끔찍이 아껴줄 뿐 아니라 나이 또한 25살이나 연하의 젊은 색시를 얻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냥 그래도 잘 살면 되는 일이었는데 세상사가 그렇지가 않다. 세월이 가면 반드시 변동이 생기는 법. 


남편 게오르크는 당초 재산을 글로벌 금융 센터인 영국 런던의 은행에 맡겨두었는데 한 친구의 권유로 오스트리아 은행으로 옮겨오게 되었으니 이게 화근이 되었다. 


1929년 미국에서 공황이 터지자 온 세계로 파급이 되었는데 그러다가 1935년 어느 날 오스트리아 금융 전체가 공황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게오르크는 막대한 금융자산을 몽땅 날려먹고 말았다. 청천 하늘에 날 벼락 격이었다. 


사실 게오르크의 운세 흐름에 대해선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간단히 말하면 그의 운명으로 볼 때 처가로부터 얻은 자산을 지킬 팔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또 마리아의 운으로 보면 1935년은 이제 입춘 바닥에서 10년이 흐른 淸明(청명)의 운이었기에 마리아 또한 부잣집 마나님 팔자는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큰 저택 한 채는 남아있었기에 게오르크는 부랴부랴 저택의 꼭대기 층으로 살림을 옮기고 밑의 층엔 임대를 주는 방식으로 생활비를 마련했다.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운명, 그 신비함



그런데 운명의 일은 참으로 신비하기까지 하다. 이 무렵 오스트리아 대주교가 음악에 밝은 신부 한 분을 부부 집에서 기거하도록 했는데, 두 부부는 이 신부로부터 음악과 합창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또 그 바람에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가족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을 했다. 


이처럼 운명은 가장 암담한 때에 훗날 가족이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끊임없는 고난의 길



그러나 고난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히틀러가 광기를 내비치면서 파시즘의 물결이 오스트리아를 뒤덮어왔다. 


그 사아에 마리아는 남편과의 사이에 세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 부부는 모든 아이들을 이끌고 오스트리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갔고, 다시 영국으로 갔다가 마침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나치 독일은 부부의 저택을 나중에 히틀러의 실세 막료이자 유태인 학살을 진두지휘했던 하인리히 힘러의 사령부 건물로 사용했다.)


미국으로 간 것은 1940년이었다. 그녀의 운세에 있어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立夏(입하)의 운이었다. 여전히 고달프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일은 없어진 것이다. 


부부가 미국으로 가서 정착한 곳은 미국의 ‘깡촌’ 버몬트 주의 한 시골마을이었다. 버몬트, 메이플 시럽의 생산지이자 수려한 자연풍광으로 유명한 곳이고 반대로 인구는 엄청 적다. (구론산 바몬드의 바몬드는 버몬트이고 바몬드 카레 또한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사실 일본 기업이 만든 제품일 뿐 버몬트 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 


부부는 미국에서 가족합창단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또 불행이 닥쳤으니 1947년 남편 게오르크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夏至(하지)의 운, 사람이 분발하는 때



하지만 마리아는 더욱 분발했다. 홀몸이 되어 열 아이의 장래를 책임지고 나선 것이었다. 


1925년이 입춘 바닥이었으니 1947년은 22년이 경과한 시점, 즉 夏至(하지)의 운이었다. 하지의 운이 되면 사람은 일생에 걸쳐 가장 용맹해진다. 마리아 역시 그랬을 것이다. 



책 한 권이 열어준 행운의 길



마리아는 자신과 가족의 얘기를 책으로 써서 출판했는데 1949년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책은 이른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능히 그럴 법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수녀를 지망했던 처녀가 홀아비의 일곱 자녀와 함께 지내기 위해 25살 연상의 홀아비와 결혼을 했고, 그러다가 다시 집안이 파산을 하고 또 나치의 마수를 피해 이국 만리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가족 합창단을 하던 중 남편까지 잃게 된 과부의 인생 얘기였으니 얼마나 실로 구구절절한 스토리인가 말이다. 


책의 제목은 트라프 가족 합창단의 이야기, The Story of the Trapp Family Singers 였다. 


책이 많이 팔려나가면서 마리아와 가족에겐 큰 경제적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공연 투어도 일정이 바빠졌다. 음반도 미국 대형 음반사에서 제작되었다. 이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게 되면서 급기야 1956년과 1959년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마리아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후속편을 책으로 출판했는데 역시 판매가 잘 되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등장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으니 1959년에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이란 제목의 뮤지컬로 만들어져 엄청난 성공을 했다. 


그러자 1965년에는 급기야 줄리 앤드류스가 마리아 역을 맡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바로 그 도레미 송이 들어간 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빅 히트를 쳤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82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박스 오피스 실적이 무려 2억8천6백만 달러, 제작비 대비 무려 35배나 되는 흥행을 기록했으니 실로 엄청나게 성공한 뮤지컬 영화, 실로 전설적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에서 일단 끊고 다음 회에서 마무리하겠다.


영원히 변해가면서 영원히 되돌아오는 시간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 시간의 걸음만큼 세상과 사물은 변해간다. 


그런데 세상은 신기하게도 죽었던 것이 때가 되면 되살아나고 팔팔하던 것들 또한 때가 되면 시들고 삭아서 사라진다. 끊임없이 변해가면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 이를 순환이라 한다. 


이런 순환에 대해 동아시아 세계에선 예로부터 運(운)이란 명칭으로 불러왔다. 운이란 말은 그냥 움직인다는 뜻만이 아니라 되돌아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운이란 바로 순환이란 말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서양의 경우 일례로서 고대 로마 시절엔 운을 포춘(Fortune)이라 불렀다. 


옛 사람들은 그런 운이나 포춘에 대해 그것을 결정하는 더 높은 존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그 존재를 동아시아 세계에선 하늘 즉 天(천)이라 여겼고 서양에서 여신인 포르투나(Fortuna), 그리스에선 여신 티케(Tyche)라고 여겼다. (특히 재미난 점은 고대 로마인들은 그 순환을 포르투나가 돌리는 수레바퀴로 여겼다는 점이다. 바로 운명의 수레바퀴 말이다.)


고대 사람들은 운 그리고 명은 하늘이, 그리스 로마에선 여신 포르투나가 사람이 태어날 때 이미 정해 놓았다고 여겼기에 운의 좋고 나쁨은 사람의 영역 밖의 일이라 여겼다. 


서양의 경우 운명을 여신 포르투나가 관장한다는 생각은 그 이후 기독교가 주된 도그마로 자리 잡으면서 일종의 하위문화로 전락했고, 동양의 경우 운명을 하늘이 관장한다는 생각은 사람의 심성을 강조하는 유교적 가르침 앞에서 역시 하위문화로 전락했다. 



호호당은 새로운 타입의 순환론자



나 호호당은 순환론자이다. 다만 과거의 슨환론자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순환론자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과거 역사를 보면 세상사에 순환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얘기한 사람은 동서양에 걸쳐 실로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환에 있어 치밀하고 엄밀한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해낸 것은 아마도 나 호호당이 최초가 아닌가 싶다. 


현대판 순환론자인 나 호호당의 눈에 운명을 점지하는 것은 하늘도 아니요 여신 포르투나도 아니다. 사람의 命(명)이란 결국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소양인 것이요, 운이란 것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어떤 흐름이 어떤 사람의 탄생과 더불어 반영되는 것이라 여긴다. (태어나는 것은 따라서 우연이 아니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볼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어떤 유전적 소양을 가졌는지 그리고 순환의 시작점이 언제인지를 정확히 알아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밝혀둘 것은 사람의 생년월일시만 가지고 그 사람의 유전적 소양에 대해 예견할 수 있는 것에는 역시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순환 주기와 시작점, 흐름에 대해서만큼은 놀라울 정도의 정확성을 가지고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시대를 잘 만난 덕분에



나 호호당이 순환의 규칙성 또는 법칙성을 많은 시행 착오을 거친 끝에 용케 발견해낼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잘 타고난 덕분이라 여긴다. 


간단히 말하면 인터넷 덕분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위키피디아와 구글 검색을 통한 자료검증이 거의 무한정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어나 중국어 등의 외국어 자료를 해독할 수 있는 교육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순환의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정보기술(IT)의 혁신 덕택이라 하겠다. 



나라들도 순환이 있으니



더불어 역사에 관한 흥미는 나 호호당의 평생에 걸친 것이었기에 역사자료가 잘 정비되어 있는 나라들의 경우 순환의 법칙과 틀을 적용한 결과 나라마다의 순환이 시작되는 시점, 블로그를 통해 내가 흔히 立春(입춘)이라 부르는 시점을 알아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순환에도 여러 레벨에서의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알아내었다. 단기적으론 하루 24시간에서 5일의 주기, 60일의 주기, 365일 1년의 주기, 60개월 5년의 주기, 60년의 주기, 더 장기적으론 360년의 주기와 2,160년의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검증해낼 수 있었다. (그 이상은 사실 천문학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사실 더 이상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나라의 순환에 관한 것, 즉 國運(국운)에 관해서 잠깐 얘기해보자.


사람이나 나라나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주기는 60년 순환이다. 왜냐면 우리의 삶이 100년을 넘지 못하기에 그렇다. (나라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60년 주기보다 그 상위의 주기인 360년 주기가 실은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순환을 통해 알아보는 나라별 영고성쇠의 실례



내가 검증을 통해 알아낸 나라들의 운세 순환, 즉 국운을 통해 각 나라의 상황을 볼 것 같으면 그 나라의 영고성쇠와 흥망을 알 수 있다. 


가령 나라별 순환의 시작점인 입춘 시점을 알 것 같으면 쉽게 예측이 가능해진다. 입춘 시점으로부터 5년 전이 되면 급속하게 쇠락해서 입춘 후 5년까진 실로 고난의 세월을 거친다. 


가령 미국의 경우 癸巳(계사)년이 입춘점인데 2013년, 1953년, 1893년, 1833년, 1773년이 그렇다. 가까운 시점을 보면 2013년의 5년 전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당히 어려운 시간을 보낸 미국이다. 트럼프는 바로 그런 어려움 때문에 등장할 수 있었던 이단아라 하겠다. 


일본의 경우 乙酉(을유)년이 입춘 시점이다. 2005년, 1945년, 1885년 등이 그렇다. 2005년의 5년 전부터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 지속되면서 철저하게 무기력해졌고, 1945년의 5년 전엔 1940년엔 미국으로부터의 압박을 받아 1941년 태평양 전쟁이란 무모한 도박을 했다가 철저하게 실패했다. 


프랑스의 경우 辛卯(신묘)년이 입춘 시점으로서 가깝게는 2011년이 그렇다. 프랑스는 2005년 10월에 파리 교외의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엄청난 폭동이 20여일에 걸쳐 발발했다. 그 이후 프랑스는 사회적 약자들에 의한 끊임없는 시위와 테러, 최근의 노란조끼 시위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영국의 경우 壬午(임오)년이 입춘 시작점인데 2002년이다. 영국의 경우 1997-2007년 기간 중에 일종의 커다란 변혁을 거쳐야 했으니 바로 토니 블레어 총리에 의한 ‘제3의 길’이 그것이다. 


노동당으로 집권한 블레어 총리였지만 그는 노동당의 전통적인 좌파 정책으로선 더 이상 길이 없음을 설파한 끝에 국유화 정책을 버리고 시장경제로 전환했다. 그 바람에 영국 노동당은 ‘신 노동당’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입춘을 전후한 5년은 至難(지난)한 때이기에



나라 역시 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을 전후한 10년은 대단히 至難(지난)한 기간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360년 흐름에 있어 그것이 몇 번째 60년 순환에 해당되느냐에 따라 그 고난의 강도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지만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선 언젠가 본격적인 설명을 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예외가 아닌 것이니



오늘 이런 나라별 운세 흐름, 즉 국운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는 까닭이 있으니,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바로 그런 어려운 때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 입춘 시점은 甲辰(갑진)년이다. 1964년과 1904년이 그러했으며 앞으로 오는 2024년이 입춘이란 얘기이다. 


그렇기에 올 해 2019년부터 10년에 걸쳐 참으로 많은 어려움들을 우리가 겪고 또 감내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으로 여긴다. 일종의 ‘탈태환골’과 같은 변화를 겪게 된다는 얘기이다. 


어제 신문에 보니 이헌재 전 부총리가 말하길 2019년은 우리이게 있어 各自圖生(각자도생)의 해라고 한다. 1998년과 같은 고통에 직면해 있다는 말과 함께 현재의 문제를 적당히 타협하다간 고통이 5년 갈지 10년이 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적당히 타협하려 들 것이고 따라서 10년에 걸친 衰落(쇠락)이 시작될 것으로 나 호호당은 보고 있다. 우리가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당시 국민들의 氣(기)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던 것이 가장 컸다고 본다. 


이헌재 전 총리는 당시 어려움을 극복할 때 큰 역할을 했던 분이니 지금 역시 또 한 번 국민들이 뜻을 모으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개 또는 희망을 가지시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오늘날의 우리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공고해진 기득권 때문에 조금치의 양보를 통한 대타협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우리에겐 당시와 같은 탄력이 없다는 얘기이고 이에 쇠락의 길로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우리가 쇠락의 길로 가면서 어떤 문제점들이 생겨날 것인지 사실 그런 점에 대해선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약간 변명조로 말할 것 같으면 미래는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나 호호당이 장차 우리가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그런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 보기 때문이다. 


우리니라는 2019년이 되면 10년에 걸쳐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것이란 생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우리 국운의 입춘 시점이 甲辰(갑진)이란 것을 알아낸 것은 이미 10년도 더 된 얘기인 까닭이다. 


따라서 우리 역시 장차 10년에 걸친 衰落(쇠락)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 쇠락에 따른 고통이 장기적인 관점에선 결코 무의미하진 않을 것이라 여긴다. 


쇠락의 과정은 다름 아닌 현존하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강고해진 기득권들이 해체되는 과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가 자각하고 각성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우리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해서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마침내 갖추어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국운의 360년 흐름에 대해 조금만 언급하겠다. 


우리 대한민국의 360년 흐름은 1904년에 시작되었기에 그 사이에 첫 번째 60년 순환이 1964년으로서 마무리되고 지금의 두 번째 순환도 2024년으로서 마무리된다. 따라서 이제 곧 세 번째 60년 순환이 시작될 참인데 원래 세 번째 순환의 정점에 도달하면 국력이 비약적으로 신장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2024년으로부터 30년이 흐른 2054년 무렵의 대한민국은 물론 통일 대한민국일 것이고 세계사에 기여하는 훌륭한 선진강국이 되어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물론 그 무렵 나 호호당은 세상에 없겠지만 분명히 그럴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해엔 덕담을 해야 하건만 이런 얘기를 하게 된다. 사실 며칠간 고민하고 썼다 지우고를 여러 차례 반복한 끝에 마무리한 글이다. 시각을 보니 새벽 4시 24분, 4시간 이상 걸렸지만 그나마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추운 밤의 뒷산 산책



추운 밤, 아파트 뒷산에 올랐다. 강아지들 데리고 아들과 함께. 고양이 사료도 주고 겨울새 모이도 주고 강아지들 응가도 시키고, 근 9년째 지속되고 있는 우리 父子(부자)의 생활 루틴이다. 밤 시각 아들과의 뒷산 산책이야말로 하루 중에서 가장 즐거운 때가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세 마리의 강아지였는데 그 사이에 두 마리는 죽어서 뒷산 경사면에 묻혔고 남은 놈도 이젠 올드 독, 하지만 2년 전 갓 태어난 신참 흰둥이가 합세했다. 


흰둥이는 한창 나이라서 팔팔하고 달리기를 즐겨서 매일 밤 뒷산 고양이들과 풀숲을 쑤셔놓으면서 술래잡기를 펼친다. 고양이들도 밥 주는 아저씨의 강아지인 줄 알아서 그저 피하기만 할 뿐 사납게 맞서는 경우는 없다. 한 수 접어주는 것이다. 


뒷산 공터에 오르니 동남쪽 높지 않은 하늘에 겨울철의 왕별인 시리우스가 밝고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산에 잘 올랐다고 환영해주는 느낌. 기온은 영하 8도이지만 며칠 사이 추위에 적응이 된 탓인지 그다지 춥지 않았다. 


아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저 별은 뭐지? 그러면 아들은 스마트폰 앱을 가동시켜 내게 알려준다. 밤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 불빛이 깜빡깜빡 비치면 나는 또 아들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아들은 또 스마트폰 앱으로 저건 어디에서 어디로 날아가는 무슨 항공 소속 화물기라고 알려준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 시각은 2018년 12월 31일 새벽 1시 11분이다. 해의 마지막 날, 즉 歲暮(세모)이고 세밑의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송년인사를 드릴 참 해서 자판을 탁탁탁 두드린다. 



類似(유사)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는 호호당



어떤 면에서 나 호호당은 도심에 살고 있는 自然人(자연인)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그 자연인 말이다. 


새벽 또는 아침녘이 되어야 잠에 들고 점심 무렵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점을 먹고 오후 3시나 되어야 작업실로 나간다. 찾아오는 이와 상담을 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보거나 생각에 빠져있다. 무료하면 근처의 강남 교보타워 지하 책방에 들러 책 구경을 하거나 책을 사기도 한다. 문구점에 가서 그림 종이나 재료를 사기도 하고. 


며칠 전엔 일본 추리작가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 ‘우부메의 여름’을 사서 잠자리에서 읽었다. 추리소설을 잠자리에서 읽는 것은 사실 좋지가 않다. 흥미가 돋기 시작하면 결국 잠에 들지 못하고 끝장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에 읽는 책은 역시 딱딱한 학술서적이나 아니면 차라리 순수문학 소설이 좋다. 그런데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같은 소설은 절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런 책은 잠을 부르기는커녕 2천년 서양 역사와 철학, 기타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일깨우는 웅장한 교향악과도 같아서 한동안 불면증에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니 차라리 시집 같은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궁금증을 유발하는 추리물이나 또 흥미진진한 역사책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얘기. 


저녁 식사는 약속이 없는 한 작업실 근처의 식당에서 해결한다. 마땅한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찾는 곳은 가까운 버거킹 그리고 할머니가 하는 허름한 분식점의 치즈 라면이다. 치즈 라면만 먹은 날은 아무래도 금방 출출해지는 탓에 작업실 구석에 놓인 크래커로 해결한다. 아이비는 아이비대로, 참이나 에이스 역시 나름의 맛이 있다. 달달한 믹스 커피와 함께 먹으면 요기가 된다. 



인상에 남는 相談(상담)



오늘 일요일 상담 한 건을 했다. 나름 독특한 상담이어서 인상에 남는다. 


40대 남자 엘리트 직장인이었고 마침 솔로라서 기왕이면 고생길을 가보라고 얘기해주었다. 아울러 그 친구 역시도 험한 길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이 하강하면 마침내 바닥에 도달하게 되고 그러면 또 다시 되살아나게 된다. 그 친구는 현재 운이 서서히 기울고 있는 터라 장차 크게 보면 두 가지 코스가 있는데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물론 선택은 그대의 몫이란 말도 해주었다. 


한 가지 길은 험난한 길인데 도중에 엄청 후회되는 때도 있겠지만 길게 보면 그로 인한 보상도 큰 길이고 또 한 가지 길은 나름 연착륙하는 길인데 나중에 보면 재미도 보람도 별로 없다.

 

선택을 하라고 말은 했지만 나는 그 친구가 터프한 첫 번째 길을 택할 것이라는데 베팅을 했고 그 친구 역시 그쪽 길을 가겠다는 말을 했다. 띵동!


남자라고 하는 동물의 삶



물론 내 편견이겠으나 남자란 동물이 힘을 발휘하는 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졌을 경우 또 하나는 동기부여가 확실한 경우가 그것이다. 


남자들을 보면 책임질 일도 없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참으로 쓸모가 없고 무능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이 여태껏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생각 혹은 편견이다. (하기야 개인의 가치판단은 거의 99.99%의 확률로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니 남자가 일찍 돈을 벌거나 성공하고 나면 사실 그게 더 문제가 된다. 자칫 타락의 길로 갈 수가 있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얘기이다. 돈이 많고 적고, 환경이 좋고 나쁘고, 사실 이런 것들은 남자가 인생을 보람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감에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이런 점을 모른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동기가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쩌다가 성급한 욕정 또는 무언가에 눈이 멀어 결혼을 하고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현실의 무게를 견딜 때만이 남자는 제 역할을 하고 능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이다. 



남자가 잘 산다는 것은



그간에 대다수의 남자들은 주로 두 번째 길, 결혼해서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투덜거리면서도 힘차게 살아왔고 또 그 바람에 나중에 가서 자신의 피곤하고 고단했던 삶을 돌아보며 긍정하면서 편히 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그게 잘 사는 길인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은 동기부여가 된 바람에 희박한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죽을 둥 살 둥 정신없이 그것을 쫓아가는 삶이다. 물론 고생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 길 역시 잘사는 길이란 사실. 


내 생각에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란 물건은 적극적인 삶을 유도하는 물질이기에 가령 지나치게 편안할 경우 고생을 일부러 사서라도 하게끔 만드는 물질이 아닌가 싶다. 


앞에서 찾아온 그 40대 솔로의 경우 현실이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지만 뭔가 강력한 존재감 혹은 의미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생길이 바로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얘기해주었다. 



쾌락의 길은 오히려 위험하나니



쾌락의 길은 치명적인 毒針(독침)을 내포하고 있다. 갈수록 그 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욕구나 욕망을 충족하는 것 역시 재미가 있고 즐거움이 있으며 쾌락이 주어진다.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그렇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욕구는 채워도 금방 비워지는 탓에 또 다시 욕구가 생기는 바람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런 본능적인 욕구를 넘어서는 욕구는 충족하면 할수록 어려워진다. 그거야말로 칼자루를 아니라 칼날을 쥐고 하는 게임과도 같다. 이길 도리가 없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세 번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맛이란 놈은 배에서 요구해야지 혀에서 요구하면 그건 골치 아프다는 얘기. 



고생길, 험한 길을 권유한 까닭



따라서 사실 잘 사는 길은 더 많은 쾌락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고통과 역경 속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자신의 역량이 가진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 한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그런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이른바 ‘빡센’ 길을 가야 한다. 


역량의 한계를 넘는 바람에 좌절하고 고통 받을 지라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은 동물이 남자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남자의 경우 부양할 가족이 있다면 감히 그런 시도를 해보지 못한다. 책임감 때문이다. 시쳇말로 더러워도 참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 나를 찾아온 40대 솔로남의 경우 미적지근하게 이것저것 타협하다가 나중에 진짜 후회하지 말고 기왕이면 빡세게 가는 길이 끝에 가선 더 나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사주를 보니 능히 그럴 법 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작업실을 나가는 그 젊은 친구의 등 뒤로 축원을 했다. Good Journey! 


이 늦은 시각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젊은 친구 역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빌보였다. 빌보 배긴스 말이다. 



송년 인사



시각을 보니 오전 3시 25분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송년의 인사라고 해두자.

 

사람들은 좀 지쳤다 싶으면 소위 힐링(healing)을 생각한다. 푹 쉬면서 편안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한다. 물론 그럴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진정한 힐링은 쉬는 것이 아니다, 지옥불 속에서 화끈하게 구워지고 나면 어느새 말끔하게 힐링이 되어 있고 더 건강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2019년에도 올해와 변함없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힘들고 벅차고 고단한 나날들을 맞이해보자. 견뎌나가자.


호기심과 궁금한 것을 삶의 재미로 삼아서



지금 시각은 2018년 12월 27일 새벽 1시 18분. 며칠 동안 하나의 주제에 꽂혀서 골몰하느라 글이나 그림에 손을 댈 시간이 없었다. 끈기가 있는 편도 아니요 집요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이상하게도 뭔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파헤친다. 


궁리해 봐도 모르겠으면 일단 머릿속 창고에 넣어둔다. 그러다가 다시 어떤 계기에 단서를 발견하면 또 다시 궁리해본다.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탐구형 성격’이란 말을 듣게 되겠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기심이 가는 것, 그래서 궁리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성격이라 하겠다. 


궁금한 것, 호기심이 가는 대상을 나 호호당은 在庫(재고)라 부른다. 궁금한 것을 풀어가는 것, 이는 삶의 활력이자 즐거움이기에 다 소비해서 재고가 바닥이 나면 낭패감을 느끼고 울적해진다. 그 바람에 재고가 거의 소진되었다 싶으면 이제 곧 울적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다보니 소비하는 만큼 재고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감도 가지고 있다. 


쌀독에 쌀이 떨어지면 굶어야 하듯이 내게 있어 궁금한 안건이나 주제란 바로 식량이다. 밥을 먹으면 힘이 나고 굶으면 힘이 빠지듯 궁리할 대상은 내게 밥과도 같다. 



뱀파이어 형 인간(?)



30대의 어느 날엔 내가 마치 뱀파이어나 드라큐라와도 같은 유형의 인간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여느 보통의 식량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말이다. 


몸매가 좋고 용모가 뛰어난 여성들 중엔 멋쟁이가 많다. 멋을 부리느라 보통의 여성들보다 더 자주 옷을 사 입고 바꿔 입는다. 경제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치장하는 데 돈과 시간을 쓴다. 


예전엔 그런 멋쟁이 여성을 보면 그냥 사치하는 성격이라 여겼다. 그런데 살면서 생각해보니 그 멋쟁이 여성이나 호기심을 소비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나 호호당이나 본질에 있어선 전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여성은 멋을 소비하는 것이고 나 호호당은 긍금증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멋쟁이 여성은 나보다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실은 내가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身分財(신분재)에 대해선 아예 흥취가 없으니



궁금한 것을 궁리하는 것이 삶의 재미이자 활력소인 탓에 과시성 소비에 대해 나는 거의 관심이 없다. 과시성 소비의 대상을 어떤 경제학자는 身分財(신분재)란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분재에 대해 조금 얘기하면 타인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소요되는 재화를 말한다. 예를 들면 모피코트라든가 롤렉스 시계, 유명 골프장 회원권, 명품 가방, 페라리와 같은 스포츠카.)


사람이란 사람 사이, 즉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신분재야말로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있어 엄청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궁리하는 것을 제2의 식량으로 삼아 살아가는 약간의 별종에 속하는 나 호호당의 경우 신분재 방면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나 흥취가 없다. 그런 면에선 이른바 가성비 쪽이라 하겠지만 실은 가성비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돈 없는 젊은이들이나 이른바 서민 계층의 사람들은 ‘가성비’를 중시한다. 價格(가격) 대비 性能(성능)의 비율 말이다. 


먹거리 중에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이야말로 가성비 甲(갑)이다. 맛도 좋고 영양도 부족하지 않으면서 값도 저렴하다. 하지만 신분재란 측면에서 보면 그야말로 꽝이다. 그러니 패스트푸드에 대해 무척 비판적인 사람들도 많은데 그중에는 은근히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느라 그런 사람도 꽤 되는 것 같다. 시간과 돈을 들여 식사를 한다? 그건 이미 서민이 아닌 셈이다. 


(그러니 재작년인가 구의역에서 젊은 정비원이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을 사람들은 ‘구의역 컵라면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압도적인 표현인가 말이다.)


돈 없는 젊은이라도 사회활동을 통해 소득이 늘어나면 서서히 신분재를 장만하기 시작한다. 형편에 맞게 좋은 만년필을 한 자루 마련한다거나 브랜드가 있는 남방셔츠를 한 장 마련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건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 



관련해서 얘기하면 얼마 전 겨울이 시작될 무렵 우연히 빈폴 매장에 들어갔는데 남성 캐주얼 셔츠가 무려 50만원을 웃도는 물건이 있는 것을 보고 깜작 놀라서 나도 모르게 도망쳐 나왔다. 내가 가끔 사 입는 3만원 짜리 유니클로 캐주얼 셔츠가 무려 17-18벌에 해당되는 가격이었으니 질겁할 만도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돈이 아깝다는 얘기도 아니다. 유니클로 정도의 셔츠면 그런대로 훌륭한 물건인데 그런 좋은 물건이 빈폴의 셔츠 한 장과 무려 17대1의 교환비가 나온다는 것은 돈을 떠나서 물건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을 한다. 


다시 말해서 나 호호당은 물건을 아낄 뿐이지 돈 자체를 아끼진 않는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하면 할 말도 없지만 그렇다.

 

어려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럼에도 늘 부모님들로부터 모든 물건은 아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까닭인 것도 같다. 지금도 집안에서 치약의 마지막 부분은 내가 짜서 쓴다. 아들이나 아내는 치약이 잘 나오지 않으면 바로 교체한다.

 

가격, 즉 상품의 가격은 상품의 가치를 반영해야만 옳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현실 세상은 우월한 신분을 자랑하고픈 사람들의 심리로 인해 품질은 50% 좋은 반면 가격은 17배나 되는 세상인 것이다. 


거기에 희소성이 곁들여지면 가격은 무한대로 치솟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 필요한 가를 떠나서 말이다. 물론 아무리 비싸더라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경쟁을 할 것 같으면 뭐라 할 말은 없다. 


사람의 수입이나 소득도 때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류현진 선수가 활약하는 다저스의 명투수 클레이튼 커쇼의 경우 2018년 연봉은 3,400만 달러였고 소화한 이닝(inning)은 161 이닝이었다. 


1 이닝 당 21만 달러란 계산이 나온다. 한 이닝에 던진 평균 투구 수가 13개 정도라고 하면 공 한 번 던지면 15,000 달러, 우리 돈으로 1700만원이 된다는 얘기이다. 


야구공 한 번 세게 잡고 휙 하고 뿌리면 1700만원, 참 요상한 세상이다. 


그렇지만 소득세도 많이 나아고 매니저에게도 돈을 떼어주어야 할 것이니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훨씬 적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납득해보기로 한다. 


그런가 하면 2017년도 미국 상장 대기업 CEO 평균 연봉이 1,150만 달러란 뉴스도 읽은 적이 있다. 모든 것에 관여해야 하는 관계로 사실상 365일 내내 신경을 쓴다 치고 하루에 3만 달러 정도 받는 셈이다. (하기야 우리나라 삼성전자 사장님들의 연봉도 그에 못하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야구선수이든 대기업 CEO 이든 모두가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사람들이고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이니 그렇긴 하지만 좀 지나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긴 하지만 연봉 100억을 받는 사람의 가치가 연봉 3천만원을 받는 사람에 비해 300배나 된다는 점에 대해선 실로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이념이 있는 좌파도 아니다, 그냥 세상 흐름에 대충 순응할 뿐이다. 


돈 얘기는 그만 하기로 하자. 말머리를 돌려본다. 



노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이 나이에



연말이고 며칠 지나면 우리 식 나이로 예순하고도 다섯이 된다. 재작년부터인가 들기 시작한 생각 중에 하나, 60 중반이면 노인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나 호호당은 이제 노인 축에 드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좀 남은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오늘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50대 이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인의 나이는 68.5세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노인은 아니란 말이 되는데 중요한 점은 50대 이상 사람들의 생각이란 것이다. 30대나 40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그 또한 궁금하다. 그러니 내 생각으론 準(준)노인 정도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즐거운 삶을 위한 在庫(재고)관리



처음에 시작했던 주제로 마무리하자. 궁금증을 在庫(재고)로 해서 살아간다는 얘기 말이다. 이에 끊임없이 호기심 가는 것을 발굴하려고 애를 쓴다. 궁금하지 않으면 사는 재미가 없으니. 


역사에 대한 지식, 언어에 대한 나만의 연구, 그리고 나 호호당이 세계 최초로 발견해낸 자연순환운명의 이치, 그런 것들은 사실 나 호호당이 호기심 때문에 궁금한 것들을 즐기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들이다. 일종의 副産物(부산물)이인 것이다. 


궁금한 주제나 안건이 있으면 어딜 가나 지루하지가 않다. 머릿속 창고에서 끄집어내어 다시 음미하거나 검토하고 있으면 금방 시간이 간다. 버스를 타거나 또는 지하철을 타서 눈앞에 흥미로운 경치가 없으면 눈을 뜬 채로 머릿속 궁리 마당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다. 



재고관리에 생겨난 약간의 트러블


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문제가 좀 생기고 있다. 


최근 근세 초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미국의 토마스 매든이란 학자가 2012년에 낸 책이다. 제목은 “Venice: A New History”이다. 난 이미 베네치아의 역사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의문부호가 떠오른다. 내가 베네치아 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요, 얻은 지식을 종합해서 어디에 가서 강의할 것도 아니며 뿐만 아니라 주변에 베네치아에 관해 얘기를 들려줄 사람도 없다. 


게다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마당,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앞으로 잘 살아본 들 사실 이십년 좌우인 사람이 우리 역사도 아니요 유럽 전체 역사도 아니며 세계사도 아닌 局地(국지)적인 역사에 대해 왜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 궁금증을 갖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비단 베네치아만이 아니다. 그냥 하나의 예일 뿐이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는 있다. 내게 있어 사실 베네치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즐겁게 살기 위한 방편, 즉 소비해야 할 궁금증의 대상으로서 베네치아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제 이런 따위의 궁금증은 점점 흥미롭지가 않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머릿속 창고에서 정작 재고가 떨어지면 큰일이다. 그렇기에 좀 더 섹시한 궁금증을 발굴해내어야 한다는 불안감 내지는 강박감이 들고 있다. 



그저 고맙기만 한 자연순환운명학



이런 점에서 천만다행인 것은 자연순환운명학이다. 


운명의 이치에 대해 흥미를 느낀 것이 47년 전이다. 그러다가 뭔가 미처 발견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가정 아래 연구를 시작한 것이 36년 전이다. 이에 마침내 자연순환의 이치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 6년 전이다.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궁리하면서 6년을 보냈다. 


참 잘도 궁금해 하고 실로 오랫동안 가지고 놀면서 즐거웠다. 하지만 아직 살아갈 날 또한 적지 않으니 여전히 아껴가면서 흥미를 잃지 않고 좋은 재고의 하나로서 유지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운명의 이치에 관한 내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궁금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적어도 그렇다고 스스로를 위무하고 힘을 내어본다. 


생각하면서 글을 쓰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 글을 마친 현재 시각은 오전 5시 46분, 4시간 38분 동안 즐겼다. 이제 오탈자를 찾아서 정정할 참이다. 날씨를 보니 영하 10도, 체감은 영하 14도. 아파트가 좋긴 하다, 작년에 새로 설치한 보일러 때문에 약간 덥다 싶으니. 


연말이 되면 궁리하기에 딱 좋다. 그러니 재고를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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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고비들을 넘겨왔으니

 

 

살아오면서 앞이 캄캄했던 적이 여러 번 된다. 앞날이 막막했던 적도 수 차례 된다. 어떤 순간엔 이게 현실이 아니지 싶어 내 뺨을 꼬집어본 적도 두어 번 있다. 애를 끓이며 하얗게 밤을 지새운 적도 무수히 많고 그러다 보면 아침녘 쓴 입안을 부시려고 연거푸 칫솔질을 한 적도 어디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중에 자연운명순환의 법칙을 발견한 뒤 알게 되었지만 나 호호당의 운세 흐름은 1997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그 바람에 그를 전후한 10년, 즉 1992년부터 2002년까지의 10년은 나 호호당에게 있어 그야말로 黑歷史(흑역사)였던 것이다.

 

(흑역사,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 시리즈’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라 하는데 나름 재치가 있다.)

 

자랑거리도 아닌 이런 얘기를 글머리에 꺼낸 것은 이유가 있다.

 

 

애를 너무 끓이면 명을 단축하나니

 

 

애를 심하게 끓이면 액면 그대로 명줄 단축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흔히 ‘내 이렇게 애를 태우니 이러다가 명대로 못 살겠네’,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런데 이게 그냥 푸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말을 한다.

 

중년에 몹쓸 병인 난치성의 癌(암)에 걸려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유전적인 것이 크겠지만 죽고 사는 문제는 그보다도 그 사람의 운세와 큰 연관, 거의 결정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그간의 연구와 사례 검증을 통해 나 호호당은 알고 있다.

 

내 생각에 암이란 난치의 질병에 걸린 것 자체가 지속적인 스트레스, 애를 태우고 속을 끓인 일이 너무 과도했던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암과 같은 질병을 떠나 중년에 사망하는 것 자체가 운세와 관련이 결정적이고 결국 어려운 고비에서 지나치게 애를 태우고 속을 끓인 것이 원인이라 여긴다.

 

 

대학 동기 송년회에서의 일

 

 

어제 저녁 대학 학과 동기 송년회가 있었다.

 

사회를 맡은 이가 하는 말인 즉 동기 모임을 하다 보면 남자들의 경우 65-70세 사이가 생존자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구간이란 얘기였다. 그 구간을 지나면 사망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서 대충 80세 전반까진 이어진다는 말이었다.

 

그런 얘기를 듣다보니 절로 그간에 세상을 등진 친구들에 대해 새삼 헤아려보게 되었고 확률을 뽑아보니 대학 졸업 후 15% 정도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계산이 나왔다. 대략 1/6.

 

그 중에 한 친구는 각별했던 터라 생년월일시를 알고 있었다. 동갑인 1955년생인데 2009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2014년에 췌장암이 발병해서 2015년에 사망했다.

 

그 친구는 한때 이른바 갑부집의 맏아들이었다. 1980년대 초반 그 친구의 부친은 서울 중심가에 소유하고 있는 대형 빌딩만 80채가 넘을 정도의 부자였다. 그런 부자가 어느 날 빚에 내몰려 졸지에 몰락하고 말았다.

 

부친이 남긴 국세체납액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 친구는 도저히 어떻게 재기해볼 수도 없었다. 이에 서울 은마 아파트 상가에서 구멍가게를 하면서 지내오던 중 췌장암이 발병한 것이다.

 

병에 걸리기 전,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속 비워, 이런들 저런들 한 세상이야, 너무 애 끓이지는 마, 늘 이런 충고를 해주던 터였다. 한편 속으로 저 친구 저러다가 결국 2014-2016년의 험한 구간을 넘기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늘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야, 나 살 수 있겠니? 내 팔자 좀 잘 살펴봐 하고 물어 보는 바람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췌장암은 사망률이 지극히 높은 병이고 게다가 그 친구의 운세를 잘 알고 있던 터라 빈 말일지언정 쉽사리 해줄 수가 없었다. 그냥 얼버무렸던 기억만 난다.

 

그 친구를 장지에 묻고 나서 ‘자네, 그렇게나 속을 끓였으니 빨리 간 거야,’ 하면서 술을 부어 주었다. 송년회 모임 내내 나는 그 친구 생각에  잠겨있었다. 박수치면 박수 치는 시늉을 하면서도 말이다.

 

 

살면서 깨달은 것들

 

 

그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으니 여린 사람이 큰 성공을 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에 오르면 명 재촉한다는 점이었다. 덤덤한 자는 성공을 해도 덤덤할 것이고 따라서 망해도 덤덤할 것이지만, 여린 자는 그게 어렵기 때문이란 생각이었다.

 

아끼던 고등학교 후배, 전설의 투수 최동원이 생각난다. 1986년 코리언 시리즈 4승의 투수였던 그가 몰락한 2000년대 중반 나와 친하게 지냈는데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해하고 애를 끓이는 것이었다.

 

술에 취한 나머지 추태까지 부리는 바람에 야 이놈아, 너 그러다가 암 걸린다, 네 체질로 볼 때 대장암이야, 하고 겁을 주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그만 나중에 대장암으로 2011년에 사망했다. 겨우 52세의 나이였으니 그야말로 비통한 일이었다.

 

살면서 또 깨달은 것이 있으니 名利(명리)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명예와 이득에 너무 집착하다가 그것을 정작 잃게 되면 뒷감당이 어렵다. 그 결과 몸을 다치게 해서 암에 걸리거나 여타 다른 병으로 인해 짧은 삶으로 마친다는 얘기이다.

 

명예와 이익이란 萬人(만인)이 다투는 물건이다. 만인이 다투다 보니 차지했다고 해서 영원히 내 것으로 온전히 차지하기도 어렵다. 사는 동안 잠시 얻었다가 되돌려주는 물건이 名利(명리)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어쩌다가 얻게 되는 것에 불과하니 기본적으로 헛것이나 같은 물건이라 여긴다.

 

 

말로서 의미를 전달하기란 참으로 어려워서

 

 

상담을 하다 보면 말의 의미를 이해시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가령 운세가 이제 한창 내리막인 사람이 찾아왔다고 하자.

그 경우 특히 60년 순환에 있어 52.5년이 경과하는 때, 즉 冬至(동지)의 운에 무리한 일이나 새로운 일을 펼치지 말라는 주의 또는 당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는 다시 물어본다. 제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하고.

 

그러면 그게 다 하나로 연결된 것이란 말을 해준다. 동지 운에 무리하다가 일이 잘못 되면 명이 줄어들 것이고, 그 때를 무난하게 넘길 것 같으면 장수를 할 수 있다는 말.

 

가령 동지 운에 무리한 일에 착수하면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되고 그 결과 애를 태우고 속을 끓이다 보면 명을 재촉할 것이란 얘기를 다시 한 번 들려준다.

 

모든 것은 因果(인과)의 사슬로 이어진다. 실패하면 돈만 날리는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송두리째 통째로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겪지 않은 일을 전달하기란 어렵다.

 

사람들은 돈과 이익, 명예 같은 것이 잃게 될 경우 사람의 목숨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자명한 이치를 모른다. 관념적으론 알 수 있어도 그게 진짜로 그렇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뭣이 소중한 가?

 

 

나 호호당 보기에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재산 혹은 자산은 다름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잠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권리’라 말할 수 있는 생명 혹은 수명이다. 돈이나 재산, 명예 같은 것은 목숨 자체에 비하면 사실 별 것이 아니다. 또 그런 면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는 근본적으로 거의 평등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너나 나나 한 세상 살다가는 것에 큰 차이는 없다는 얘기이다. 다만 긴 인생 충분하게 누리다 가느냐 아니면 운세가 바닥을 길 때 속을 끓이고 애를 태우는 바람에 고비를 넘지 못하고 그만 숨을 멈추게 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 여긴다.

 

나 호호당의 경우 1997년이 바닥이었기에 2005년 무렵엔 내가 이러다간 얼마 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그만 살고픈 생각도 들었다.

 

이에 조금씩 생각을 바꿔 먹었다. 우선 들숨과 날숨을 편안하게 길게 가져가는 연습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과거지사 실수한 일 따윈 최대한 잊어버리고 지워버리고자 노력했다. 모든 이가 바보이고 멍청한 데가 있는 법이니 나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현명해져보자,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도 나 호호당이 조선 시대 사람이었다면 그 무렵에 죽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50세의 나이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엔 좋은 점이 있으니 영양이 충분해서 기초체력이 좋다는 점이다. 세상을 잘 만난 것이다. 이에 그런대로 영양 섭취가 되는 바람에 서서히 천천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2007년부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무난하게 잘 살아오고 있다. 나름 성공한 셈이다.

 

 

이제 歷戰(역전)의 인생 용사로서

 

 

지난날 눈앞이 캄캄할 정도의 고비가 어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좋게 말하면 열정이고 달리 말하면 욕심이 많은 탓에 고생을 자초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에 그 많은 어려운 고비와 위기를 견디고 참으면서 살아오다 보니 이제 환갑도 넘겼고 기왕지사 아흔까지 살아보고자 하는 의욕을 부린다.

 

모친이 아흔에 돌아가셨다. 그러니 아들인 나 호호당 역시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물론 이 또한 욕심이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조심해가면서 잘 살겠다는 의욕일 뿐, 실은 언제 저 세상에서 불러도 놀라지 않고 담담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기본은 채웠지 않은가. 어제 저녁 동창회에서 나눈 말이 바로 ‘우리가 기본은 했다’ 그런 얘기였다.

 

 

잘 산다는 것

 

 

사람들은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은 참으로 다른 것 같다. 나이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 같다. 언어는 같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용은 각인각색이다.

 

길게 살려면 영광의 때도 있지만 굴욕 또한 피할 수가 없다. 이에 그 榮辱(영욕)이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하지만 너무 피폐해져서 넘길 수 있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길게 살 수가 없다.

 

나로선 뭐니 해도 길게 사는 삶이 잘 사는 것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현재를 살펴보면 세월의 傷痕(상흔)은 남았다. 아직도 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나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것 모두 일종의 상흔이다. 가급적 단출하고 조촐히 살려는 노력 역시 실은 과거 상처로부터 받은 영향일 것이다.

 

시인 워즈워드가 읊은 시 중에 ‘초원의 빛’이 있다.

 

시에서 언급되는 초원의 빛과 꽃의 영광이란 살다보면 어차피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길게 살아야만’ 빛나는 그 순간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연말이다. 세밑이 며칠 남지도 않았다. 독자 여러분과 그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진심을 다해 기원을 드린다.

그림 달력을 만들었기에 판매합니다. 


올해 3월부터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거의 매일 그린다. 4월에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올린 그림만 해도 162개나 된다. 그림은 주로 펜으로 드로잉한 다음 담채를 올리는 방식이 많다. 물론 선을 넣지 않고 수채화로만 그리기도 한다. 


금년 들어 유럽의 고건축에 관심이 가는 바람에 성곽이나 성채 같은 것도 많이 그렸지만 성당 건물도 자주 그렸다. 유럽에서 성당이야말로 건축의 정화인 까닭이다.


그랬더니 제자가 운영하는 업체에서 제의가 왔다. 성당 그림만 모아서 달력을제작해보자는 제의였다. 그래서 성당 그림 중 12장을 가려서 2019년 탁상용 캘린더와 함께 카드/엽서 세트를 만들었다. 


달력의 제목은 2019 The Beautiful Churches of Catholic이다. 


블로그 옆에 보면 배너 광고가 올라간 것이 그것이다. 


제품은 명동성당 지하에 있는 기념품삽 1898 플러스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이메일을 통해 문자 주문도 가능하다. 물론 배너 광고를 클릭하시면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호호당의 그림을 즐기시는 독자들의 많은 성원 있기를 바란다. 



다음은 구매방법에 관한 안내이다. 



-명동성당 1898플러스

서울 중구 명동길 74 명동성당 카톨릭회관 신관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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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제품은 세인트미카엘과 명동성당1898플러스의 콜라보 제품으로 한정 제작되었으며, 제품 특성상 단순 변심으로 인한 교환 및 반품이 불가하오니 신중한 구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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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 영희, 그 수수께끼



예전 초등학교 교과서엔 등장했던 이름이 철수와 영희이다. 그 바람에 여전히 철수는 남자 아이, 영희는 여자아이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통한다. 이에 대해 인터넷 포탈에 당시 교과서 저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이 실려 있어 나로 하여금 웃게 만들었다. 나름 귀여운 추측이다. 


철수란 이름의 한자는 哲洙(철수)이다. 유교의 성인인 孔子(공자)를 뜻하는 말이다. 哲(철)은 이치에 밝고 지혜롭다는 의미이고 洙(수)는 강 이름인 바, 공자가 태어난 고향 근처의 강 이름이다. 따라서 哲洙(철수)란 이름은 공자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서구화 이전의 우리 사회에 있어 남자의 이름을 철수라 한 것은 훗날 孔子(공자)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기원을 담은 이름이었다. 


그러면 영희는 어떤 유래인가 알아보자. 영희는 英姬이다. 이 이름은 고대 중국의 신화 전설이라 할 수 있는 堯舜(요순)시대에서 비롯된다. 요 임금은 임금의 자리를 순에게 물려주면서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냈는데 그 중에 하나가 女英(여영)이었다. 


英(영)이란 한자는 꽃봉오리가 봉긋 솟은 형상을 딴 글자로서 꽃부리 영이라 한다. 姬(희)는 흔히 ‘여자’란 뜻도 있지만 원뜻은 왕비라든가 지체 높은 여성에 대한 존칭이다. 따라서 英姬(영희)는 요 임금의 딸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영희란 이름은 훗날 왕비처럼 높은 신분이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사내아이에겐 유교의 대성인 孔子(공자)처럼 되어라 하는 것이고 여자아이에겐 존귀한 왕비가 되어라 하는 좋은 뜻이 담긴 이름이 바로 철수와 영희인 것이다. 


한글만을 써야 한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철수가 哲洙, 즉 공자님의 대명사인 줄 모르게 되었고 영희가 英姬인 줄도 모를 뿐 아니라 그 뜻은 더더욱 모르게 된 세상이다. 한자를 모르다 보니 철수와 영희란 이름이 이젠 수수께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인문 교육이란 그 기본이 읽고 쓰고 말하기인데, 우리말 대부분의 어휘가 한자어란 사실이다. 이에 기초한자를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어휘의 뜻을 억지로 외워야 하거나 아니면 어슴푸레 짐작 정도로 알고 있다. 딱한 일이다. 그냥 1천자 정도만 어린 시절에 익히면 그만인 것을 말이다. 



銜(함)이란 한자, 이미 그 뜻도 모르건만



사람을 처음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게 될 때가 있다. 나보다 젊은 상대라면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 정도로 묻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성함 또는 존함이란 단어를 쓰게 된다. 가령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하는 식으로. 


성함, 존함, 사회생활에서 흔히 쓰는 단어이다. 그런데 단어의 뒷글자인 ‘함’이 무슨 의미냐 물어볼 것 같으면 알고 있는 사람을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그냥 뒤에 붙여서 쓰면 존칭이 되는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막연히 짐작하는 정도라면 이미 죽은 단어, 즉 死語(사어)인 셈이니 아예 쓰지 않아야 더 맞을 것 같은데, 쓰긴 흔히 쓰면서 뜻은 모르고 있으니 이 또한 딱하다. 


함은 銜(함)이다. 원뜻은 마차를 끄는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이란 뜻이지만 나중에 ‘받들다’는 뜻이 파생된 결과 관리의 계급을 뜻하는 글자가 되었다. 관리란 임금의 명을 받들어 공무를 수행하는 자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오늘날의 뜻으로 헤아리면 銜(함)은 ‘타이틀’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姓銜(성함)이란 함은 성씨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뜻하는 말이다. 왜 그런가 하면 예전엔 윗사람의 이름은 말하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금기였기 때문이다. 


흔히 쓰면서도 뜻은 대부분 모르는 이상한 글자가 ‘銜(함)’이다. 



희화화, 발음하기도 정말 어려운 단어



하나 더 얘기해본다. 


들을 때마다 속이 불편해지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희화화’라고 하는 단어이다. 발음하기 정말 어렵다, 턱과 입술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는 나는 지식인,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다. 


한자로 바꿔보자, 희화화는 戱畵化이다. 戱畵(희화)는 어떤 대상을 풍자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그러니 희화화는 어떤 대상을 조롱거리 그림처럼 만든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발음하기도 정말 까다롭고 성가신 ‘희화화’란 단어를 쓰지 않고 그냥 쉽게 ‘조롱거리 그림으로 만든다’고 하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런 단어를 들을 때마다 정말 거슬린다. 정말이지 그 어려운 단어, 한자로 쓰실 수 있느냐 물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십중팔구 쓰지도 못할 거면서 발음하기도 까다로운 그런 표현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희롱할 戱(희)자, 사실 어지간히 한자 좀 익힌 사람이 아니라면 어려운 글자란 사실이다. 



傍點(방점)이란 단어



소위 텔레비전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정치 평론가란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서 ‘방점’이란 단어가 있다. 


방점, 한자로 傍點(방점)이다. 이 경우 傍(방)은 곁, 즉 사이드란 뜻이 되고 點(점)은 물론 점, 작고 둥글게 찍은 표시를 뜻한다. 그러니 옆에 찍어놓은 점이란 의미이다. 


최근 우리말로 하면 ‘밑줄’이 된다. 책을 보다가 중요한 대목에서 밑줄 쳐놓는 것을 뜻한다. 한문은 원래 위에서 아래로 縱(종)으로 썼기에 중요한 글자나 대목에 먹으로 점을 찍었던 것이고 횡으로 글을 쓰는 요즘엔 밑줄을 치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부분을 표시해 놓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정치 평론한다는 후배에게 “너, 방점이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니?” 하고 물었더니 후배 답하길 “중요해서 점을 찍는 것 아닙니까?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다시 그러면 왜 傍(방)이란 한자를 쓰는 까닭을 아느냐 하고 물었더니 ‘글쎄요’ 였다.

 

그러면서 나름 한다는 변명이 “저만 모르는 게 아니예요,”였다. 그래서 웃었다. 그리고 앞에서 한 설명을 해주었다. 



사자성어 유행



최근에 보면 기관장이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높으신 양반들이 신문에 기고한 글을 볼 것 같으면 남들 잘 모르는 네 글자로 된 한문표현, 이른바 사자성어 하나 정도는 쓰는 것이 유행이란 사실이다. 


나 호호당이 보기에 그런 사람들의 이력을 볼 때 그다지 한문이나 인문 교양에 밝을 것 같지도 않건만 희한하게도 사자성어 하나씩은 거의 들먹이고 있으니 우습다는 것이다. 


한글만 사용하자면서 모든 학생들 국민들, 한자 文盲(문맹) 만들어놓은 판국에 자신들은 어느 사이에 어려운 한자나 성어를 익혔을까 싶다. 홀로 남달리 짬을 내어 독학을 했나? 


남들과 구분되고 차별되는 자신의 높은 교양을 뽐내고 싶은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자성어가 본인이 평소 알고 있던 게 아니라 아랫사람 시킨 것 같은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올해 예순 넷, 1955년생인 나 호호당 역시도 학교에서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내가 한자와 한문을 익힌 것은 어려서 우연한 계기에 좋은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 호호당보다 더 뒤의 세대들은 더더욱 한자를 배우지 않았다.


그런데 기관장 등등의 높은 양반들을 보면 이젠 나이가 대부분 나 호호당보다 아래란 사실, 그러니 그들이 한자나 한문을 익혔을 가능성은 지극히 적다. 그런데 왜 글을 기고할 때면 그냥 평이한 글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일이지 왜 굳이 어설픈 사자성어를 인용하고 있는 것일까. 


사회 지도층이란 사람들이 저처럼 假飾(가식)으로 가득 차 있으니 슬프고 한심하다. 



언어가 타락한 사회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소설가 김훈 선생의 말, 우리 사회는 언어가 점점 타락해가고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선생의 말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다시 찾았다. 


“언어가 타락하면 소통이 불가능하게 되거든요.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 쓰지 않고 무기로 쓰기 시작하니까 언어가 결국 무장을 하잖아요. 언어가 총을 쏴대는 거죠.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죠. 전혀 소통이 안 되고 서로 딴소리를 하는 거죠.”


철수와 영희란 이름이 그저 수수께끼가 되고 성함의 銜(함)이란 글자 뜻을 모르면서도 너무나도 흔히 사용하고 있고, 쉬운 우리말 표현이 가능함에도 굳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희화화’란 표현을 써야 유식해보이고, 어쩌면 전부 앵무새처럼 ‘방점’이란 단어를 쓰면서도 정작 그 뜻은 어설프게 알고 있고, 한자라곤 거의 배우지도 않은 사람들이 졸지에 어려운 사자성어를 통해 뽐을 내고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언어를 소통이 아니라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들이 아니겠는가. 김훈 선생의 표현처럼 언어로 총질을 해대고 있는 2018년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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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스타가 된 박항서 감독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의 인기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사실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그저 박항서 감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2002년 우리가 월드컵 4강 갔을 때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다는 사실, 히딩크가 떠난 후 잠시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가 곧바로 경질되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 이후 박항서 감독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초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약체의 베트남이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감독이 박항서 감독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또 다시 우리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 여름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베트남을 56년 만에 4강에 올려놓으면서 일약 베트남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베트남의 히딩크’란 별명과 함께 베트남 국민영웅이 되었으니 국내에서도 상당한 주목과 관심을 받게 된 박 감독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연봉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얘기, 현지 CF를 3편이나 찍었다는 소식, 베트남 국민훈장을 받았다는 얘기, 박 감독의 뛰어난 리더십에 관한 얘기, 얼마 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박 감독의 모습까지 뉴스에 나오는 등 온통 흐뭇한 美談(미담)들로 무성하다. 졸지에 스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년의 세월 사이에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가 4강의 성적을 거두었을 때 잠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후론 망각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긴 세월 흘러 오늘에 와서 다시 저처럼 많은 관심과 조명을 받고 있으니 사실 뜬금없는 일이기도 하고 꽤나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박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이란 영예로운 자리에 잠시 앉았다가 경질된 것은 2002년 10월의 일이었다. 


그러던 그가 2017년 9월 29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11월부터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이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 일과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된 것은 사실상 정확하게 15년만의 일이란 점이다. 2002년 10월 경질, 2017년 9월 말 선임. 


60년 운세 순환을 15년씩 사계절로 나눈다면 바로 정확하게 한 계절이 지난 다음의 일이란 얘기가 된다. (이처럼 누구나 15년이 경과하면 많은 변화가 생겨난다.)



스스로를 재창조해낸 박 감독



박항서 감독은 1959년 1월 4일생으로 위키에 등재되어 있는 바, 그 무렵 경상남도 산청군 출신이란 점을 감안하면 음력 생일이라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양력 생일은 2월 11일이 되니 己亥(기해)년 丙寅(병인)월 甲子(갑자)일이 된다. 생시를 몰라서 그렇지만 그간의 경력이 알려져 있으니 운세 흐름을 알아보기엔 전혀 무리가 없다. 


60년 순환에 있어 甲申(갑신)년이 입춘 바닥이고 甲寅(갑인)년이 입추가 된다. 1974년 갑인년이 입추였기에 1979년 당시 국가대표팀 1진과 2진 사이를 오가며 활약을 했다. 1984년엔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한 후 1985년 K리그 우승과 1986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선수로서 영화로운 때였던 것이다. (1988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사실 박 감독은 지도자 또는 감독으로서도 그간에 충분히 좋은 활약을 했으며 그렇기에 월드컵 당시 대표팀의 코치 및 트레이너로서 활약할 수 있었다. 


다만 박 감독은 우리나라 축구계에서 이른바 주류가 아니었는데 그런 까닭이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표팀 감독을 맡은 뒤 바로 경질되는 수모를 겪었다. 


2004년 박감독의 운은 그야말로 입춘 바닥이었으나 그럼에도 상관하지 않고 그간에 계속해서 여러 팀의 감독 지도자 일을 맡아왔으며 그러던 중 우연히 베트남에서의 제의가 와서 생소한 나라에서 새로운 길을 열게 되었던 것이다. 



운명의 입춘, 죽고 다시 잉태되는 때



사람의 운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을 맞이하면 그로부터 12년은 새롭게 태어나서 어렵게 걸음마를 떼어야 하는 기간이다. 다시 말하면 새롭게 자신을 재창조해야 하는 기간, 물론 힘든 기간이 된다. 


입춘 바닥에서 10년은 운명의 子宮(자궁) 속에서 자라는 태아와 같다 하겠고 그로부터 다시 2.5년은 걸음마를 배워서 홀로 일어서는 기간이 되기에 대단히 힘에 겹다. 누구나 그렇다. 예외가 없다. 


박 감독의 경우 그 힘든 과정이 끝날 무렵에 베트남으로부터 제의를 받은 것이고 또 응한 것이라 하겠다.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여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선 약체국 베트남을 맡아서 다소 성적을 낸 것이니 그게 무에 대단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약팀을 맡아서 수준을 급격히 향상시킨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2002년 10월 굴욕의 때로부터 15년이 흘렀다. 비록 축구 약체국인 베트남을 맡아서의 일이긴 하지만 저 정도면 정말이지 멋지게 再起(재기)에 성공한 셈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이제 비로소 시작이란 점이다. 축구 지도자로서 이제부터 보다 더 알차고 보람찬 여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운명의 回春(회춘)



박 감독, 내년 2019년이면 이른바 還甲(환갑)이다. 만 60년의 생을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운세로 보면 이제 청소년이다. 큰 야심을 가져도 되는 운세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boy)는 응당 앰비셔스(ambitious)해야 하니 말이다.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의 回春(회춘)’이라고 나는 규정한다. 생리적인 나이야 어김없이 한 해가 지나면 한 살을 더 먹지만 그렇다고 나이 숫자만큼 인생이 흘러가지는 않는 것, 이는 참으로 세상의 신비이다. 


늙어도 생동감에 넘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그런 사람은 운세가 되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는 이제 중년인데 생각이나 의지는 고루하고 나약한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많다. 운세가 바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이에 맞추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든가 이루어야 하는 것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젊은 시절에 이미 모든 성취를 이룩한 다음 그 이후로는 시름시름 앓으며 세월을 보내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남들 보기에 다 살았다 싶은 나이에 진정으로 새롭게 도전에 나서는 이도 있는 세상인 것이다. 


나이는 모든 이가 함께 일제히 먹어가지만 운명의 나이는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나 호호당이 이 블로그를 통해 끊임없이 얘기하는 60년 운명의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란 죽고 다시 잉태되는 때를 말한다. 


물론 생명 자체가 죽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많은 일들이 고루해지고 그 결과 어려워져서 결국 다 버린 다음에 또 다시 새롭게 창조해내어야 하는 때가 된다. 이는 겨울이 되면 낙엽이 지고 봄이 되면 새로운 싹이 트는 것과 같다. 



2024년, 대한민국이 죽고 다시 생겨나는 때



애기 나온 김에 덧붙이면 우리 대한민국 역시 현재 죽어가고 있다. 


1964년에 새롭게 잉태되어 1974년에 세상에 나온 뒤 전 국민이 열심히 나라를 발전시켜왔다. 1976년에 씨를 뿌렸고 30년이 흘러 2006년부터 수확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에 이르러 생산도 수확도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더 이상 생산력과 탄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일자리 사정이 어려워서 청년 백수가 일상이 되었고 중년들은 자영업자로 내몰려서 지옥을 맛보고 있으며 나이든 사람들은 노후준비가 태부족이다. 중산층은 엄청난 부채를 안은 채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저금리 기조임에도 영업을 통해 이자도 내지 못하는 좀비 기업들이 즐비하다. 


젊은이들은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젊은 부부들은 출산을 꺼린다. 공기업과 대기업의 기득권 노조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느라 양보라곤 일절 없다. 모든 것이 경색되어있고 새로운 탄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가 죽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기에 2024년이면 국운의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그 순간 새로운 대한민국이 잉태되어 또 다시 10년의 세월 동안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그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 새롭게 나라를 재창조해야만 한다는 얘기이고 또 재창조하게 될 것이다. 



박항서 감독에게 박수를



제 정리하자. 


박항서 감독, 45세이던 2004년에 운명의 죽음을 맞이했고 그 순간 다시 잉태되어 54세가 되는 2014년에 또 다시 세상을 향해 재출발했다. 이번 베트남에서의 눈부신 활약은 박 감독이 자신을 재창조해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나이와 상관없이 앞으로 더욱 더 힘찬 발걸음으로 전진해갈 것이다.


응원하고 박수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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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풀린 궁금증



텔레비전의 다큐 프로를 보다가 오랜 의문이 하나 풀렸다. 몇 년 전 남자 속내의인 팬티가 한 장에 몇 만원씩 한다는 사실, 또 그런 팬티를 즐겨 입는 젊은이들이 꽤나 흔하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올드 세대인 나로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 경우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아마도 6-7년 전쯤에 동대문 시장에서  트라이 사각트렁크 천 팬티를 예닐곱 장 사오셨는데 지금까지도 그걸 입고 있다. 어머님께선 이거 좋은 거야 하셨는데 과연 그 말씀대로 착용감이 좋아서 편히 입고 다닌다. 닳고 달아서 아주 부드럽다. 나달나달. 


문화적 충격



그런 내게 있어 한 장에 몇 만원씩이나 하는 고가의 팬티가 흔치 않게 팔려나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나 호호당의 가치관 자체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때 “돈이 썩어 문드러졌군!”, 이게 나의 첫 반응이었다. 그 다음 뱉은 말이 “야, 대한민국 많이 컸다 컸어, 예전엔 강냉이도 배불리 못 먹던 대한민국이 말이지!”, 하는 소리였다. 


다소 격했던 모양이다.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당황한 나머지 憤慨(분개)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 고가의 팬티가 그냥 속내의가 아니라 일종의 고급 패션물이 되었다는 것을. 



범인의 정체

 

 

런데 어젯밤 다큐, ‘1980년대의 미국’이란 프로를 통해 남자 팬티를 패션물로 만든 작자가 미국의 캘빈 클라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근육질의 섹시한 젊은 청년이 눈부신 태양 아래 하얀 팬티를 입고 벽에 기대어 있는 광고사진이었다. (다큐 설명에 의하면 육상선수이던 그 남자는 그 바람에 최고 인기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캘빈 클라인은 연이어 당시의 인기 여배우 브룩 쉴즈를 모델로 해서 패션 브랜드 청바지 즉 ‘디자이너 진’ 시장을 창출했다는 내용도 소개되었다. 연이어 캘빈 클라인의 소행은 아니지만 마이클 조던을 통해 농구화 시장을 키운 얘기가 소개되었다. 


보면서 “아, 저 놈들이었어, 쟤들이 미국을 철저하게 고도 소비 시장으로 둔갑시켰고 그 바람에 우리까지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이란 말이지” 하고 납득을 했다. 



컨슈머리즘



컨슈머리즘, 소비지상주의라고도 번역되는 이 흐름이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글로벌 세계를 움직여왔다. 컨슈머리즘은 위키 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끊임없이 더 비싼 가격의 재화와 서비스를 취득하도록 북돋는 사회적 경제적 질서’라고 되어있다.


“social and economic order that encourages the acquisition of goods and services in ever-increasing amounts.”


(이 용어가 사회비판적이어서 사업에 해롭다는 판단을 내린 장사꾼들이 다른 이들을 내세워서 전혀 다른 개념, 즉 소비자주권이란 개념으로 재포장해놓는 바람에 이 용어는 헷갈리게 사용된다는 점도 알려드린다.)


그러고 보니 1955년생, 올해 64세나 된 나 호호당은 오늘날 2018년 12월까지 대한민국 안에서 살아왔지만 컨슈머리즘의 영향권 바깥에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자각했다. 


다시 말해서 컨슈머리즘의 은택을 입지 않은 내게 있어 팬티란 물건은 한 장에 5천원 정도하면 충분히 좋은 품질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고 그저 늘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후배 세대들은 한 장에 몇 만 원 하는 팬티를 돈만 된다면 별 부담 없이 사서 입을 수도 있고 애인으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하는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같은 시공간, 하지만 다른 문화



같은 시공간, 다른 문화, 이런 생각이 스친다. 


캘빈 클라인, 내게 컬쳐 쇼크를 안긴 놈이니 어디 사주나 한 번 봐야지 싶어서 검색해보았다. 내 너를 샅샅이 밝혀보리라, 약간은 악감정이 실린 마음으로 말이다. 


1942년 11월 19일이고 생시는 밝혀져 있지 않다. 하기야 뉴욕의 못 사는 동네인 브롱스 출신이니 생시가 밝혀져 있겠는가 싶다. (사실 이런 생각 또한 악감정이 실려 있다.) 


느낌 상으론 丙火(병화)였는데 알아보니 역시 그랬다. 


壬午(임오)년 辛亥(신해)월 丙子(병자)일. 그간의 경력을 보면 1966년 丙午(병오)년이 60년의 운세 흐름 상 立秋(입추)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겨울 丙火(병화)이니 디자인이나 패션 쪽에 대단한 재능과 열정을 타고 났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세심하고 치밀한 성격 또한 엿보인다. 


태어난 날이 불의 날, 즉 丙火(병화)나 丁火(정화)인 사람은 미술이나 영상, 광고, 컨설팅 등등 이런 방면의 일에 다소의 차이야 있을지언정 소질이 있다. 


가령 애플 교의 교주였던 스티브 잡스 역시 丙火(병화)로서 프리젠테이션의 달인이자 홍보의 마술사였다는 사실. 아울러 丁火(정화)인 나 호호당 역시 그림에 약간의 재능이 있기에 매일 그림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캘빈의 역사를 위키와 구글을 통해 살펴보니 1968 戊申(무신)년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캘빈 클라인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운세 흐름에 있어 벼꽃이 피고 쌀알을 맺는 處暑(처서)의 운이었다. 


그 이후 자유로운 섹스의 시대가 왔음을 감지한 그는 과감하게 광고에 팬티만 입은 벗은 남성의 몸을 보여주었고 그로서 패션 팬티 붐을 만들었다. 그 이전엔 남자가 알몸을 보여주는 그런 광고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다큐의 나레이터 말인 즉 캘빈은 결국 섹스를 팔았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캘빈 클라인, 이 양반 돈을 억수로 번 것 같지만 실은 실패한 사업도 제법 되는 바람에 2002년엔 회사를 팔아 넘겼다. 인수한 회사는 여러 의류 브랜드를 거느린 PHV 란 회사라고 한다. 캘빈의 운세는 1996년이 입춘 바닥이었으니 결국 열정이 식은 나머지 그랬을 것으로 본다. 


미국이 만든 자본주의는 결국 소비를 조장하고 창출하는데 그 특징이 있음을 여실히 실감하게 된다. 그 바람에 소비자 신용이란 이름으로 카드를 손에 쥐어주고 계속해서 소비를 통해 빚을 지게 만든다. 그러다가 불황이나 경제 위기가 오면 화가 나서 월가를 점령하자, 폭파하자면서 데모나 하는 게 고작이다. 


물론 나 호호당은 자본주의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진 않다. 결국 그 역시 사람들의 욕망을 가장 잘 충족시켜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미국에 대해서도 아무런 반감이 없다, 그저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이고 아무리 그래도 우리보단 나은 나라이고 사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미국이 안겨준 컨슈머리즘, 소비주의에 대해선 꽤나 불편함을 느낀다. 


예로서 최근엔 나 역시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 구두를 거의 신지 않는다. 편해서 그렇다. 그런데 비싼 운동화는 결코 사지 않는다, 오래 신을 수 있는 신발도 아닌 것을 값비싸게 줄 이유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운동화도 종류가 많다는 사실이다. 캔버스란 것도 있고 스니커즈란 물건도 있다. 운동화를 수십 켤레 장만해두고 기분에 따라 필요에 따라 바꿔 신는 젊은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나로선 그런 얘기가 그저 정신 사나운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쩝, 솔직히 말해서 내 경우 한 켤레 사서 떨어질 때까지 신는데 말이다. 


이에 드는 생각은 어쩌다보니 1955년생 호호당은 시대와 많이 동 떨어진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저 호기심이 많아서 책벌레, 특히 과거에 관한 얘기들만 모은 역사책이나 주로 읽으면서 살아오다 보니 시대를 놓쳐버린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나 호호당이 궁색하지 않은 이유



하지만 한편으로 나 호호당이 비교적 편하게 살아가는 이유도 이제 정확히 알 수 있다. 


사실 나 호호당은 전혀 궁색하지 않은데 이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담뱃값과 점심값, 책값, 그림 종이 값 등을 제외하면 소비하고픈 물건이 별로 없으니 궁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걸치는 옷 역시 추위를 막아주고 편하면 그만이란 생각이다. 


이는 결국 나 호호당이 美製(미제) 컨슈머리즘과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미국이 만들어놓은 소비지상의 글로벌 질서에 미처 편입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로마 제국으로서의 미국이다. 그러니 나 호호당은 어쩌면 제국의 변경 혹은 애매한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는 어정쩡한 야만인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캘빈 클라인, 당신을 이제 용서해준다. 너 역시 먹고 살려고 갖은 발악을 하다 보니 그랬을 뿐이지 달리 특별한 이유야 있었을 것 같진 않으니 말이다. 니나 내나.


오는 7일은 大雪(대설)인데 맹추위가 온다네



이번 금요일 7일은 영하 8도까지 내려가고 낮 최고기온 역시 영하 4도라고 하니 이번 겨울의 첫 추위가 세게 몰려올 참인가 보다. 마침 7일은 절기상 大雪(대설)이다. 말 그대로 눈이나 내릴 것이지 강추위는 전혀 반갑지 않은데 말이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



프랑스에선 ‘노란 조끼’ 시위가 한창이다. 첫날 시위에 참가한 사람은 경찰 추산으로 28만 명이라고 하나 프랑스 전역의 2000 여 곳에서 시위가 일어난 것을 보면 전국적 규모라 하겠고 여론 또한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먼 나라 얘기이긴 하지만 그곳 역시 ‘없는 자’들의 삶이 무척이나 팍팍한 모양이다. 11월17일부터 시작되었으니 오늘 12월 4일로서 18일이 된다. 이번 주말을 지나서도 시위의 기세가 누그러들지 않으면 장차 큰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이다. 


시위의 명분은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이지만 그건 표면적인 핑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류세 인상은 사실 마크롱 정부의 새로운 정책도 아니다. 이전의 올랑드 정부 때부터 이어온 환경정책, 즉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파리 외곽에서 출퇴근해야 하는 서민들에겐 부담이 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불경기와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누적된 프랑스 서민들의 불만과 짜증이 이번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폭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마크롱은 유류세 인상은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민 지지율이 현재 26%, 사실상 최악이란 점을 감안하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싶다.


 

내년이 더 어려울 것 같은 프랑스



프랑스 국운의 흐름을 보면 이번 사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진 않다. 프랑스의 경우 2011 辛卯(신묘)년이 국운의 입춘 바닥이었기에 올해 특히 내년은 프랑스에게 있어 정말로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 본다. 입춘으로부터 7.5년이 흐른 때는 春分(춘분)인 바, 사실 이때야말로 가장 至難(지난)한 때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스는 현재 나름의 개혁이 진쟁 중이다. 2012년 총선 당시만 해도 577석 중 279석을 차지했던 프랑스 사회당이었는데 작년 2017년 총선에선 놀랍게도 겨우 30석만을 얻으면서 풍비박산이 났다. 그간의 양대 정당 중에 하나였던 공화당 역시 2017년 총선에서 부진했다. 


그 대신에 마크롱 현 대통령이 2016년에 창당한 공화국 전진당, 즉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가 577석 중 310석을 얻어 60년 된 프랑스 정치의 판을 갈아치웠다. 


프랑스, 60년만의 변화



프랑스의 현 체제를 두고 제5공화국이라 한다. 1958년 샤를 드 골 장군이 알제리 전쟁을 배경으로 프랑스 제4공화국을 사실상 타도하고 대통령의 권한이 훨씬 강력한 현 체제를 만들었던 것이다. 


마크롱과 앙 마르슈가 또 다른 체제, 즉 제6공화국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1958년 이후 60년 만에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가 지금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마디로 해서 변화해간다.)


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올해 나이가 41세, 아직 혈기가 전혀 식지 않은 나이 사실상 청년에 더 가깝다. 프랑스 유권자들이 이런 젊은이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프랑스 사람들의 변화욕구가 얼마나 큰 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마크롱의 개혁 정책은 취임한 지 겨우 1년 반 만에 심한 반대에 직면하면서 지지율이 26%로 떨어지고 있으니 참 어렵다. 


나 호호당 생각에 지지율이 저조하다고 해서 개혁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라 여긴다. 개혁이란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가령 어떤 정부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개혁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사실 진정한 개혁이라기보다 무늬만 개혁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마크롱 정부는 개혁 정부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저처럼 지지율이 형편 없어서야 일을 하고 버텨낼 수 있겠는가 싶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와 비교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종전에 볼 수 없었던 괴팍한 대통령이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는 것 역시 미국의 국운과 관련이 크다. 



트럼프의 등장 역시 미국의 변화를 말해준다.



미국 역시 2013년이 국운의 立春(입춘) 바닥이었기에 그저 이미지 관리에만 몰두하는 기성 정치인들에게 미국 유권자들이 염증을 느꼈기에 저런 특이한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본다. 


글로벌 최강인 미국이었기에 그간 자유무역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여유가 사라지자 미국 역시 보호무역을 들고 나섰고 그런 체면 구겨지는 역할을 맡을 적임자는 역시 장사꾼 출신의 트럼프가 맞다 하겠다.

 

다만 트럼프의 경우 세월의 연륜이 있는 사람인지라 나름 그런대로 지지율을 맞추어가고 있으니 역시 젊은 마크롱보다는 老獪(노회)하다 하겠다.



유명무실해진 G 20 정상회의



프랑스야 어떻게 되건 간에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역시 미국이다. 이번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G 20 정상회의를 보라, 사실상 마비되고 말았지 않은가. 


공동성명이랍시고 내놓긴 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인해 무역 문제나 기후 문제는 언급하지도 못 하고 이민과 난민 문제에 대해 그저 공동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내용에 그쳤다. 형식적인 인사 치레였다. 그러니 있으나 마나한 G 20이 된 것이다. 


어쩌면 장차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면 G 20 재무장관및 중앙은행 총재들의 회의는 1999년부터 있었으나 정상회의는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협조 또는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부랴부랴 격상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조는 이제 물 건너가는 형국이라



미국이 이제 저처럼 체면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겠다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으니 걱정이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공조 또는 협력 체제는 사실상 물 건너가는 형국이다. 원래 협조가 이루어지려면 가장 강하고 많이 가진 자가 善心(선심)을 베풀고 양보도 가장 많이 해야만 되는 일인데, 지금의 미국은 그런 거 없어 이젠 똑같이 해야 해 하고 나서고 있으니 큰일인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물러가고 나면 달라지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너그럽던’ 미국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기에 하는 말이다. 내 코가 석자인데 어딜! 하면서. 


일본도 변하고 있고 미국도 변했으며 영국은 브렉시트, 이탈리아는 엉망진창이고 프랑스는 저 모양이고 독일 또한 메르켈의 사임으로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 그 사이에 힘을 키운 중국은 미국과 맞먹으려 들면서 우리 입장은 더 어려워졌다. 



달라도 많이 달라진 오늘의 세계



뭔가 예전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이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고달프고 힘들어졌음을 반영하고 있다. 


뭐니 해도 역시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시장이 되는 나라들이 저처럼 변해가고 있으니 장차 우리가 먹고 사는 것에도 많은 어려움이 생겨나고 또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얘기이다. 


최근의 글로벌 세계에 나타나는 兆朕(조짐)들을 보면 영 기분이 찜찜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