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丑(축)월은 사색의 달이라서



설 연휴를 앞둔 2019년의 2월이다. 북극권의 찬 공기가 우리 쪽이 아니라 캐나다와 미국 쪽으로 쏠려간 탓에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다. 저번 여름 지독히도 무더웠던 탓에 항간의 속설에 따라 올 겨울은 지독히 추운 겨울이 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추측이 많았다. 하지만 유동적인 공기의 흐름을 예측하긴 역시 어려운 법, 롱 패딩 업체들은 올 겨울 탈탈 털리고 있다.

 

丑(축)월은 깊은 사색의 때, 1월 들어 거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다, 그림은 종이 위에 무언가를 쏟아놓는 것인데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다. 그저 생각의 무수한 실마리들이 어둡고 깊은 바다 속을 유영하는 은빛의 정어리 떼처럼 내 속에서 왕래하고 또 오르내린다. 움켜쥐면 빠져나가고 내버려두면 눈앞에서 浮游(부유)한다, catch me if you can! 


이제 얘기를 시작해보자.



탄력을 상실한 대한민국 경제



한 때 엄청난 탄력을 보여주었던 우리 대한민국 경제에 老衰(노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충격으로 성장률이 급락했던 때를 제외하면 2000년대 후반의 성장률은 대체적으로 5% 안팎이었다. 


그러다가 2011년엔 3.7%로 내려앉더니 2012년부터는 3% 미만, 2% 중후반 대의 성장률이 이어져오고 있다. (2017년에만 이례적으로 3.1%였는데 이는 신 정권의 등장으로 향후 새로운 상승 탄력을 기대했던 심리적 요인들이 컸던 것이 아닐까 싶다.)


2% 중반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잠재 성장률과 일치하는 것이기에 성장의 흐름은 이제 멈추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욱이 금년 2019년의 경우 나 호호당의 추산으론 2% 중반대의 성장도 어렵지 않을까 여긴다. 



경제가 되살아나기 위해선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그렇기에 오늘은 우리 경제의 장기적 전망에 관해 생각해보고 살펴보는 글을 준비해보고자 한다. 


일단 제2차 대전 이후 독일, 정확히 말하면 서독 경제의 놀라운 발전에 관한 얘기로부터 글을 시작해보자. ‘라인 강의 기적’이란 말이 그것이다. 어떻게 해서 패전국 서독이 그와 같은 엄청난 탄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가에 대해 그 이후 많은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이 설명을 제시했고 또 토의했다. 


나 호호당이 어려서 들었던 설명은 전후 독일인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불을 붙일 때 사용하는 성냥개비 하나도 아까워서 여러 사람이 돌려가며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철두철미한 근검절약의 정신이 몸에 배었던 탓에 서독이 저처럼 놀라운 발전을 할 수 있었다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말씀이셨다. 


그 덕분에 평생 물건을 아끼는 버릇이 들었지만, 그게 전후 독일 발전의 핵심 요인은 아니란 것을 이젠 잘 알고 있다. 그런 설명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유입된 하나의 神話(신화)였을 뿐이다. 


전후 서독의 발전과 관련해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1948년의 화폐개혁, 10 라이히스마르크를 1 도이치마르크로 바꾼 일이었고, 또 하나는 마셜 플랜에 따른 미국의 대규모 원조였다. 


그런데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그 두 가지 일이 전후 서독의 발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선 아직까지 통일된 견해가 없다. 


화폐개혁만 하더라도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발생한 무지막지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단행된 1924년 화폐개혁은 성공하지 못했건만 어떤 이유로 1948년의 화폐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느냐는 대한 것부터 실은 확실한 定說(정설)이 없다. 


뿐만 아니라 마셜 플랜에 따른 원조가 제공되기 이전부터 서독 경제는 이미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학자들도 많다. 거액의 원조가 분명 도움이 되긴 되었겠지만 그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의 부활은 신인들의 作品(작품)



서독의 경제 기적에 대한 원인으로서 작고한 미국의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新人(신인)들의 작품”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독일이 2차 대전에서 철저하게 패망한 까닭에 여러 방면에 존재하던 기득권 인사들이 깨끗이 물러났고 이에 그 공백을 메운 신인들이 독일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은 나 호호당이 참으로 좋아하고 늘 공감하는 설명이다. 나 호호당이 발견한 자연순환의 이치와도 잘 부합되기 때문이다.


 

결국 판 갈이가 필요하다



흔히 쓰는 말로서 판을 갈아엎는 것, 줄여서 ‘판 갈이’가 그것이다. 人事(인사)가 萬事(만사)라는 말처럼, 한 사이클이 지나서 새 사이클이 시작될 때면 사람을 전면적으로 교체하는 것이 새로운 비전과 탄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전면적인 교체는 좀처럼 일어나기 어렵다, 이른바 기득권이 괜히 기득권이 아닌 탓이다. 여러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고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의 판 갈이는 특별한 계기가 주어져야 한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큰 전쟁에서의 패전이라든가 또는 혁명과 같은 극단적인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만 전적인 판 갈이가 가능해진다. 패전이나 혁명은 일종의 충격 요법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혁명에 대해 좀 더 얘기하면 정치인들은 혁명이니 개혁이니 하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의 혁명은 아니다. 최근의 촛불혁명 역시 그렇다.)


전쟁에서의 패전을 통한 물갈이 또는 판 갈이는 상당수가 큰 효과를 가져 온다. 이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이나 일본은 그 이후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던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따라서 극적인 사회적 변화나 충격요법 없이 분배동맹 또는 기득권을 물러가게 하는 일은 사실상 대단히 어렵다. 그렇기에 패전이나 혁명이 아닌 방식의 변화 즉 개혁이나 혁신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경제방면에서의 혁신 역시 슘페터가 말한 바의 ‘창조적 파괴’가 선행되어야 한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은 결국 성경의 말씀처럼 낡은 부대를 없애야만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를 현실에서 적용해보면 낡은 부대를 버려야만 새 술을 담게 될 새 부대를 만들게 되지 않겠는가 싶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의 정체된 상황 역시 기득권이 부득이하게 물러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벗어날 가능성은 지극히 제한적이라 하겠다. 


196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온 우리 대한민국의 성공 공식은 이미 한계점을 넘어섰다 효용성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고속성장은 저렴한 양질의 노동력 공급이 필수조건



또 한 가지 얘기할 점은 어떤 국가가 고속 성장으로 들어서는 과정을 살펴보면 의욕에 찬 저임금 노동력의 공급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전후 독일의 발전이나 일본의 발전에도 신인의 등장과 함께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이 거의 무제한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풍부하게 공급되었다. 물론 우리도 그랬었다, 한국전쟁 이후 빈곤의 수렁에서 우리가 재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양질의 저렴한 노동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웃 중국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장차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경우 당연히 북한 주민이라고 하는 저임금 노동력이 공급되겠지만 우리 측 즉 남한의 노동단가가 비싸다면 그 격차는 순식간에 메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경제가 정체를 벗어 새로운 성장 공식과 궤도를 달려가게 된다 해도 그것이 고속 성장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 본다, 오히려 출산율 저조로 인해 장차 노동력 공급은 부족해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중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역동성이 생겨나려면 신인이 등장해야 한다는 점, 또 그러기 위해선 어떤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는 점, 마지막으로 앞으로 정체에서 벗어난다 해도 그것이 고속성장은 아닐 것이란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얘기해보자면 앞의 세 가지 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는 점으로 집약이 된다. 



계기가 주어져야만 변신을 통해 되살아날 수 있다.



그런데 그 계기는 주어질 것이라 나 호호당은 자신한다. 운의 순환, 국운의 순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24년은 우리 국운의 입춘 바닥이기에 그 5년 전인 올 해부터 많은 것들이 어려워지기 시작할 것이고 이에 2029년 초반이 되면 더 이상 기존의 기득권이 현 구조와 상황을 이끌어갈 명분도 권력도 상실할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2013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었다. 그 바람에 유권자들은 아무런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기성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내게 되었으니 그 바람에 트럼프라고 하는 이단아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역시 프랑스의 국운이 2011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기존 정당이 몰락하고 마크롱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이나 프랑스의 예를 통해 공고한 기득권이 어떤 경로를 밟아서 해체되고 물러가는가에 대해 목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역시 기존의 거대 양당인 자유한국당이나 더불어민주당 앞으로 길면 10년, 짧으면 5년 사이에 사라져갈 것으로 전망한다. 


오늘 글은 이번으로 끝나지가 않는다. 우리가 장차 어떻게 가게 될 것인지 어떻게 정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그간 생각해온 내용들을 몇 차례에 걸쳐 올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