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대체 왜 자아를 유럽에서 찾죠??”

 

SKY캐슬 최종회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보는 순간 빵 터졌다. 드라마를 한 편도 본 적은 없지만 대충 내용은 전해 듣고 있었기에 한참 동안 웃었다. 저 댓글만으로도 길고 긴 장문의 에세이나 논문 한 편을 지루하지 않게 쓸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자아를 유럽에서 찾아야 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암, 그렇다 하고 말해도 말이 된다는 생각이고 틀렸다고 말해도 정답일 것이다. 이걸 가지고 백분 토론을 하면 그야말로 치열한 갑론을박이 나올 것 같다.

 

서양의 城(성) 캐슬에 살던 아이이니 당연히 유럽으로 가야지 그럼 남한산성을 찾을 것이냐? 해도 말이 된다.

 

코기토 엘고 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렇게 주장한 데카르트가 유럽 사람이니 자아를 찾으려면 유럽으로 감이 마땅하다고 해도 된다.

 

유럽엔 좋은 카페가 많고 멋진 건물들과 거리가 많으니 당연히 유럽으로 가야지 그럼 방글라데시를 가리? 해도 된다.

 

자아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현대인의 幻想(환상)이니 이왕 갈 거 판타스틱한 유럽 여행을 해야지 하고 말해도 된다.

 

유럽은 계몽사상의 발현지이자 근현대 문명의 리더였으니 이왕 갈 것이면 배울 것 많은 유럽으로 가야지 해도 된다.

 

자퇴하고 고등학교 생활 망쳤으니 다음 목표는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정도는 가야만 상큼하게 만회가 가능할 것이니 미리 현장견학 가는 것이라 해도 되겠다.

 

유럽 정도는 다녀왔다고 해야 나름 ‘뽀대’가 나니 유럽을 택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해도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럽은 그야말로 환상의 나라이고 네버랜드, 주당 근무시간이 짧아서 모두들 자아를 구현하고 워라벨이 좋은 곳이니 자아를 찾으려면 유럽으로 가야지 해도 된다.

 

우리 대한민국이 제 아무리 1인당 소득이 높아져도 유럽처럼 여유롭게 살 수 없으니 기왕 간다면 유럽을 가서 그 인간다운 삶의 공기를 마시고 온다는 식으로 해도 된다.

 

지금까진 찬성하는 주장이었는데 이에 반대하는 주장은 제시할 것도 없다, 앞의 말에 반대로 討(토)를 달고 딴지를 걸면 그 또한 다 말이 된다.

 

현 정부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의 그 나라는 바로 유럽 특히 서유럽 나라들의 좋은 점들만 다 합친 나라, 엄친아가 아니라 ‘엄친국’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기에 이탈리아 제노바 인근의 고속도로 교량이 무너진 사건은 유럽의 사건이 아니라 인명 경시의 중국 시골, 쓰촨성 정도에서 일어난 일로 우리 국민들에게 각인되었을 것이라 본다.

 

우리 현실이 각박하고 무자비할수록 유럽은 더더욱 엄친의 나라이고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전해지는 나라가 되어간다. 점점 멀어져간다. 닿을 수 없는 나라.

 

자아를 찾는 일은 사실 고등학생 때나 생각해보는 일, 스님들은 바로 그 자아란 것이 없다고 누누이 가르치고 설파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도 자아를 찾겠다면 유럽 정도 가주시는 것이 역시 정답, 양보해서 최소한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얼마 전 환타지를 목말라하는 시청자들을 엄청 만족시키다가 최종회에 가서 수습 불능으로 끝났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처럼 이번 SKY캐슬도 그랬던 모양이다.

 

사실 이런 결말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과도 동일하다. 양소유가 속세에서 갖은 부귀영화를 누린 다음에 어느 날 갑자기 깊은 산 절간의 법당 방석 위에 쪼그려 앉아있는 별 볼일 없는 승려의 몸인 자신을 깨닫는다는 결말이 같지 않은가 말이다. 실컷 놀 거 다 놀고 나서 착한 사람이 되어 끝나는 결말.

 

유교적 전통의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좋은 출구전략, 여전히 이런저런 알게 모르게 검열이 엄청 많은 우리 사회인 탓에 작가가 저런 식으로 ‘쫑’을 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JTBC, 철저하게 상업적이고 동시에 명분 또한 잘 포장하는 영리 방송국에서 만든 드라마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갈등 항목들이 어디 한 둘인가 말이다. 지역갈등은 이제 뒷전이고 세대 갈등, 빈부 갈등, 이념 갈등, 젠더 갈등, 학벌 갈등, 정규직 비정규직 갈등 등등 갈등 항목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하나뿐인 내편”이란 드라마가 저처럼 인기를 모을 법도 하다. 이불 밖으로만 나와도 내 편은 없으니 말이다.)

 

이런 마당에 김은 빠져도 역시 치고 빠지는 권선징악의 엔딩이 무난하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명분과 실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저 훌륭한 애티튜드. 그러니 막장 드라마를 막장으로 끝을 내지 않았다고 분격해할 것까진 없다, 이제 꿈 깨시오 하는 소리이니. 레드 선, 하나 둘 셋, 이렇게 취했다가 말이다.

 

텔레비전의 경우 평소 스포츠나 다큐 프로를 보지만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드라마가 그래도 넷플릭스 드라마보단 좀 편하다. 넷플릭스 영화나 드라마는 너무 잔인하고 진해서 보다가 거북한 나머지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넷플릭스는 아들 녀석 덕분에 패드로 잠자리에서 주로 본다.)

 

낮 시간 무료할 땐 컴퓨터 앞에서 유튜브, 잠자리엔 넷플릭스, 아니면 독서.

 

최근 넷플릭스에서 ‘킹덤’이란 우리나라 드라마를 한 편 봤는데 소감은 마치 맛없는 음식을 인공감미료로만 버무린 느낌이라 한 편도 미처 끝까지 보지 못했다. 그저 잔혹함만 강조한 느낌.

 

밤엔 사색에 잠겨 지낸다. 생각이 많다 보니 글 쓰는 작업이 자꾸 느려진다. 이에 연휴 전이라 작업실에서 가벼운 느낌으로 써본 글이다.

귀성길 마음 내려놓고 편하게 다녀오시길 바라면서. 너무 전투적으로 다녀오시진 말라는 얘기.

 

연휴 중에 동영상을 만들어서 올릴 생각이란 얘기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