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가 잘한 것이고 못되면 조상 탓을 한다는 말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선 ‘이기적 편향’이라 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는 우리가 힘든 인생을 견뎌낼 수 있게 해주는 대단히 중요한 자기 보호 심리라 하겠다. 나 호호당 역시 젊은 날엔 이런 심리를 두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바로 진리!

 

 

지적 장애아 관련 다큐 프로를 보다가

 

 

텔레비전에서 지적 장애아동들에 대한 다큐를 방영하고 있었다. 잠깐 보다가 채널을 돌렸다, 가슴 아픈 일.

 

그간에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사주를 적지 않게 보았고 그를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산모의 운세 순환이 바닥권에 있지 않았다면 장애아가 태어날 가능성이 지극히 적다는 점이다. 의학계에선 유전적 요인을 많이 지적하지만 실은 산모의 운세 순환이야말로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나 호호당은 익히 알고 있다.

 

 

유전보다도 운의 흐름이 더 문제인 법이니

 

 

정확하게 얘기해보자.

 

부모에게 비록 유전적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나진 않는다. 그런데 부모 특히 산모의 운세 순환이 60년 순환에 있어 바닥점인 立春(입춘)을 전후한 10년 사이에 아이가 태어날 경우 유전적 결함이 그대로 태아에게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이다.

 

달리 말하면 부모의 컨디션이 떨어져있을 때 출산을 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로 이 대목에서의 컨디션이란 매일매일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 순환에 따른 것을 말한다.

 

이는 비단 장애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생 이후 어린 시절에 이런저런 남다른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보면 거의 예외가 없다. 본인의 운세만이 아니라 부모의 운세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잘 되지 못하면 당연히 조상 탓이다.

 

 

유복자로 살다 가신 선친에 대한 기억

 

 

나 호호당의 돌아가신 선친 역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遺腹子(유복자)였던 선친이었다. 선친께선 한 때 사업적으로 성공하셔서 좋은 세월을 보내기도 하셨지만 그럼에도 평생을 두고 그늘이 있었다.

 

가끔씩 스스로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란 독백을 하시던 기억이 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유언을 남기시면서 ‘인생이란 게 별것도 아니지만 내 평생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은 너를 낳아서 무사하게 키워낸 거’라고 하셨다.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이런 경우도 보았다.

 

1949년이 60년 순환의 입춘 바닥이었던 어느 할머니의 얘기이다. (지금 그 분은 돌아가셨다.)

 

집안이 궁핍해서 치워지다시피 시집을 갔는데 그때가 17살, 1949년이었는데 때마침 입춘, 운세 바닥이었다. 출가 후 아이를 가지면 유산하고 또 유산하고, 그러기를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스물아홉이 되던 1961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정상 분만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아들 둘 딸 둘을 낳아 무사히 잘 키웠다는 것이었다.

 

그 할머니는 1970년대 들어 남편 일을 도와서 크게 돈도 벌었고 부귀영화도 누렸다. 상담하는 내내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토로하시는 할머니였다. 세월이 흘러 살림이 넉넉해지자 해마다 빠지지 않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 시절 영양 상태도 충분하지 못한 상태였을 것이며 더욱이 운세 바닥에서 출산이란 엄청난 작업을 했으니 뱃속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위로가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다행한 일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운세 바닥에 태어난 까닭에

 

 

이전에 글로 소개한 적도 있지만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 스티브 잡스는 1955년생인데 1956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었다. 그 바람에 대학생 커플이 키울 수가 없었고 입양이 되었다. (사실 입양되는 아이들의 운세를 보면 다 그렇다, 이 또한 전혀 예외가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고 크게 성공한 사람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혼외자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커다란 심리적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으로 여긴다. 그런 까닭에 나 호호당은 스티브 잡스에 대해 측은한 심정이 있다. 이미 죽고 없지만 말이다.

 

 

자연순환운명학이 세상에 널리 인정을 받는다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나 호호당이 발견해낸 자연순환운명학의 이론이 세상에 인정받고 널리 퍼지게 될 경우 불행한 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그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만만한가, 잘 받아들여지면 좋겠으나 반대로 자칫 잘못 되어 일종의 우생학으로 간주되어 많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예전 생각이 난다. 2010년 무렵 자연순환운명학의 이론을 거의 완성해가던 무렵, 내가 이것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어쩌면 세상에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다. 이거야말로 소위 천기누설인데 말이다.

 

하지만 결국 2014년에 들어 나는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것이 성립되었다고 내 나름 블로그를 통해 선포를 했다. 가치 판단의 문제는 세상에 맡기기로 결정을 했다.

 

서구에 비해 동아시아 사람들은 어떤 지식을 알아내게 되면 널리 공개해서 그것이 보다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소수의 제자들에게만 비밀리에 전수했던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바람에 서구 세계는 과학 기술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고 동아시아 세계는 결국 한때 큰 수모를 겪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 호호당이 알아낸 운명의 법칙은 당연히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가끔 제자들이나 독자들은 전체 이론을 소개하는 책을 쓰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도 해온다. 하지만 아직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책 집필은 조금 더 미룬 상태에서 블로그를 통해서만 글을 올리고 있다.

 

사실 이론을 공개하고 널리 알린다 하더라도 파급력엔 어차피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한다. 왜나면 이곳 대한민국은 글로벌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인 까닭이다.

 

유전법칙을 연구해낸 멘델의 경우 논문을 발표한 후에도 무려 36년이 걸려서야 우연히 소수의 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러면서 진화론의 다윈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게 되었고 그로서 오늘날의 유전학과 생명과학의 흐름을 만들어졌다.

 

엄청난 과학적 발견이 무려 36년씩이나 걸린 뒤에야 알려지게 된 것은 결국 그레고어 멘델이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변방 후미진 시골에서 연구를 했고 또 이론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비록 멘델은 동료 수도사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나, 당시의 위대한 생물학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고 논문 발표 이후 36년, 사후 17년이 흘러서야 연구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렇기에 나 호호당 역시 자연순환운명학이 살아생전에 주목을 받고 과학적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다.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묻히는 일도 없을 거라 여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이론이기에 결국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어디 한 평생 살기가 만만한가 말이다.

 

 

돌아가서 얘기이다.

 

태어나서 한 평생 살다가는 것이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어려선 부모가 부양해주고 장성하면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다가 나이가 들면 은퇴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 한다고 하지만 어디 그러기가 쉬운가 말이다.

 

운세 바닥 근처에 태어난 이 중에는 절대 다수가 질병이나 장애, 가정환경 등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고 20-30대에 운세가 바닥인 젊은이들은 취업도 어렵고 결혼이나 짝을 찾아 안정된 생활을 그려보기가 난감하다.

 

그런가 하면 중년에 운세가 바닥에 이르게 되면 직장에서 내몰리게 되고 그러다가 어렵사리 자영업을 해보지만 성공하는 이는 희박하고 대부분 그야말로 고생의 나날이다.

 

또 노년에 운세가 바닥에 이르면 갖은 질병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자녀 문제로 인해 경제적 파탄에 이르는 사람들이 실로 허다하다. 물론 평균의 사람보다 일찍 세상을 뜨는 경우도 많다.

 

작업실이 서울 강남역 인근이라 교보서점에 들렀다가 산책 삼아 한 바퀴 강남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한다.

 

강남역 일대는 젊은이들의 거리이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젊은이들, 특히 젊은 처녀들의 모습과 옷차림이 보기에도 정말 좋다. 세련되었고 표정은 발랄하다. 모두들 나름 잘 꾸미고 있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나 호호당의 시선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저 어리고 싱싱한 젊은이들이 장차 긴 세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마모되고 피폐해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말이다.

 

(토요일 시작하는 기초강좌에 아직 여유가 있다. 이번 기회에 이 신기하고 절묘한 운명의 과학적 법칙을 배워 가시는 분이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불 타버린 프랑스의 상징

 

 

노트르담 성당이 불에 탔다. 건물 중앙의 드높은 90 미터짜리 첨탑이 불길에 휩싸여 와르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첨탑을 밑에서 받치고 있던 12 사도의 동상도 함께 불에 녹아서 쓰러졌다.

 

에펠탑, 개선문과 함께 파리의 상징이자 프랑스의 상징이기도한 성당이 불에 타버렸으니 프랑스로선 일대 참변이 아닐 수 없다. 다행인 것은 건물의 얼굴, 파사드가 건재하고 또 많은 성유물(relic)들을 구했다는 점이다.

 

 

사건 사고가 그치는 않는 수난의 프랑스, 그 이유는?

 

 

프랑스의 그간 흐름을 살펴보면 이미 이전에도 적지 않은 일들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2005년 10월의 파리 소요사태로 인해 3개월에 걸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했던 일이 그것이다. 다시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2015년엔 엄청난 파리 테러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면 물론 많은 설명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운세로 말할 것 같으면 2011 辛卯(신묘)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순환의 시작점인 까닭이다.

 

입춘 바닥을 지나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렇기에 프랑스는 나름의 개혁을 이미 진행해가고 있으니 2017년의 선거혁명이 그것이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39세의 마크롱이 당선과 함께 총선에선 마크롱이 급조한 ‘전진’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으며 반면 기존의 거대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은 참패했다.

 

(과거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61년전인 1958년 드골 대통령에 의한 제5공화국 등장과 2017년의 마크롱 등장은 같은 맥락인 셈이다.)

 

 

개혁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어서

 

 

국운이 바닥에 이르자 등장한 새 물결인 마크롱과 전진당은 사회적으론 좌파, 경제적으론 우파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도 아니요 결국은 사회 전체가 어쩔 수 없이 양보를 하고 타협을 해야만 가능하다. 당연히 시일이 걸린다. 이에 거센 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얼마 전 프랑스 전체를 뒤흔든 노란조끼 운동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화재사고는 프랑스더러 쇄신 혹은 혁신을 하라는 일종의 계시이자 警鐘(경종)이라 보면 되겠다.

 

 

일본의 사례

 

 

일본의 경우 2011년 동북지방 대지진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을 일으켜 원자로 뚜껑이 날아갔다.

 

이 역시 일본의 국운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의 경우 2005 乙酉(을유)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그로부터 6년 뒤 재해가 발생한 것이다. 자연재해야 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으나 문제는 원자로 뚜껑이 날아갔다는 점이고 이는 사람으로 인한 災殃(재앙)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과거 1970-1980년대 동안 그야말로 정교한 첨단기술의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원전 사고 발생에 따른 매뉴얼이 엉망진창이었음을 드러낸 것이고 그로서 일본의 이미지는 철저하게 실추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개망신을 당한 셈이다.

 

그간 일본은 나름 절치부심하면서 적지 않은 분야에서 개혁을 진행해왔다. 물론 아직은 그 개혁이 성공적이었는지 그 여부를 판단하긴 이른 시점이다. 하지만 내년 2020년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일본의 중흥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0년은 일본 국운에 있어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立夏(입하)의 운인 까닭이다.

 

 

국제적 망신을 당한 독일의 신공항

 

 

그런가 하면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사한 사례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독일 베를린의 신공항 사건이다.

 

당초 2011년 10월에 개항할 예정이었던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공항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엉터리 공사, 무리한 설계 변경과 부실 공사, 감리 부실, 부정부패 등으로 인해 건설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개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내년 2020년 10월까진 개항할 것이라 하지만 현재 상태로선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아예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독일하면 그 역시 정밀 기술과 신뢰의 상징이다. 특히 공사 감리 면에서 최고로 알려져 있던 독일이 수도 베를린의 관문으로서 나름 야심차게 추진했던 신공항이 돈 먹는 쓰레기 꼴로 전락했으니 이야말로 엄청난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디젤 엔진 조작 사건과 함께 독일의 글로벌 위신도 크게 금이 간 상태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면 역시 독일의 국운과 관련이 된다는 얘기이다. 독일 역시 2010 庚寅(경인)년이 국운의 입춘 바닥인 것이다.

 

그 바람에 흔히 EU의 사실상 맹주로서의 독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현재 독일 역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특히 영국의 EU 탈퇴는 독일의 위상에 커다란 타격을 가한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그간 독일을 지탱해온 많은 미덕들이 무너져가고 있기도 하다. 정직한 독일이 디젤 조작으로 정직하지 못함이 드러났고 신공항 감리 부실로 독일의 기술적 신뢰성이 무너졌다.

 

 

체면불구의 미국이 된 까닭

 

 

미국의 경우 2013 癸巳(계사)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무너진 이후 비록 양적완화라고 하는 이상한 방법으로 일단 문제를 봉합하긴 했으나 사실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미국이다. 이제 체면불구의 미국이 된 것이다.

 

나 호호당은 미국이 올해 2019년부터 내년 사이에 전혀 예기치 못한 커다란 일이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해보고 있다.

 

 

입춘으로부터 10년, 시련과 쇄신의 기간

 

 

사람의 경우에도 입춘 바닥으로부터 10년 사이엔 많은 어려움이 닥친다.

 

어린 시절에 이런 운을 맞이하면 몸이 아프거나 기타 여러 사정이 생겨서 성장기를 어두운 기억으로 물들인다. 청년기에 이런 운이면 사회 진출에 많은 애로가 있기 마련이고, 중년에 이런 운이 찾아들면 실로 엄청난 고생을 겪게 되며 나이든 노인의 경우 사망하는 시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이나 사회, 국가를 떠나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으로부터 10년 사이엔 갖은 어려움이 생겨나고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는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인 까닭이다.

 

나 호호당이 판단하기로 글로벌 경제는 향후 15년 정도 동안 침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그 근거는 주요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이 운세 흐름 상 이미 바닥권에 들어서 있고 이탈리아는 2021년으로 예정된 입춘 바닥을 향해 접근해가고 있으며 중국 또한 이미 탄력을 잃고 한창 겨울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 또한 그런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 대한민국 경제의 경우 탄력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이다. 올해로서 해마다 양력 1월 초의 때, 추위가 몰아닥치는 小寒(소한)의 운이다.

 

그렇기에 올해 하반기부터 더욱 어려워져서 내년 2020 庚子(경자)년이 되면 본격 침체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수출이 결정적인 버팀목인바, 글로벌 경기가 침체할 경우 그로 인한 악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 역시 2024년 국운의 입춘을 맞이하게 되면 그로부터 10년간 숱한 시련과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낡은 가죽을 벗겨내고 새 가죽을 씌우는 것이 바로 改革(개혁), 즉 가죽 바꾸기인 까닭이다.

 

건강 문제로 글을 올리지 못했으니



한 주 내내 글을 올리지 못했다. 요추 이상으로 인해 걷기 어려울 정도의 통증이 왔다.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도 찍어보고 다른 경로를 통해 척추교정을 받게 되었는데 마치고 집에 오면 몹시 노곤하고 또 약간의 몸살 증세로 해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늘 건강한 몸이었기에 꽤나 뜻밖이었지만 이제 내 나이 예순하고도 다섯, 눈앞의 문제부터 잘 해결하고 또 앞으론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겠구나 싶다. 



운과 노력의 관계에 대하여



먼저 얘기할 것은 운이란 것과 노력이란 것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재능이나 능력에 대해선 글 말미에 얘기하겠다.)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노력하면 되는 것이지 운이 무슨 소용? 또 이런 말도 있다. 결국 운이더라 하는 말. 


나 호호당은 운명에 대해 연구해온 결과 마침내 운명의 법칙을 발견하고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새로운 학문을 정립한 바 있다. 그런 과정에서 운이란 것의 정체 또는 본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타고난 명이 있고 운의 흐름이 있으며 거기에 철저한 법칙이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 다음에도 정작 운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대해 알아내기까진 더 많은 사색과 연구 그리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운의 실체와 본질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기 된 것은 사실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최근 1년 사이의 일이다. 


이제 운과 노력의 관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해보자. 



운과 노력은 함께 가는 것이어서



나 호호당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운이 상승할 적엔 그 사람이 진지한 노력을 할 때란 점이고 운이 하락할 적엔 그 사람이 더 이상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더란 점이다. 


간단히 말하면 운의 상승과 노력의 진지성 또는 세기가 함께 한다는 점이다. 



운의 상승과 하강은 등산과 하산과 같은 것



따라서 운의 상승과 하강이란 것은 마치 登山(등산)과도 같다.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고 고된 일이다. 산 초입을 지나 어느 정도 오르다 보면 숨이 차고 걸음도 무거워진다. 그러는 와중에 멀리 있는 산 정상을 바라보면 한심한 나머지 그만 두고도 싶다. 일종의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고비를 지나 계속 어렵게 발걸음을 떼어놓다 보면 어느 순간 이른바 8부 능선을 넘어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갑자기 힘이 나고 발걸음에도 힘이 들어간다. 힘들지만 이제 사실상 다 오른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야호-하고 함성도 질러보고 멀리 산 밑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만끽한다. 고된 산행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운이 상승하는 사람이 심적으로 느끼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러다가 하산을 시작한다. 운이 하강하는 것이다. 


산의 등줄기를 따라 내려오면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가벼운 발걸음도 즐긴다. 이 시간이 정작 정상에 힘들게 올랐던 때보다 더 즐거운 때가 된다. 이것이 운의 하강 초기와 비슷하다. 


그런 연후에 산 중턱 정도까지 내려오면 피곤함도 몰려오고 목도 컬컬해진다. 이제 좀 쉬고 싶어진다. 하루의 산행은 이것으로서 충분하기에 더 이상 갑자기 다시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은 없고 그냥 산 아래 식당을 찾아서 막걸리 한 잔 걸칠 생각밖에 없다. 이것이 운의 하강에 있어 마무리 국면이다. 


산을 오르는 것이 바로 운의 상승이자 노력하는 때이다. 산을 내려오는 것이 운의 하강이자 동시에 더 이상의 노력이 없는 때이다, 그저 무사히 하산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에 대해 4개의 국면으로 나누어 얘기했다. 


이 4개의 과정이 바로 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순환이라 한다면 초기 등산 과정은 15년에 걸친 봄이 되고 중턱 이후의 산행은 여름이 된다. 다시 정상에서의 초기 하산 과정은 15년에 걸친 가을인 것이고 중턱 이후의 하산까지의 과정은 겨울이라 보면 된다. 


가장 힘든 때는 산을 오르는 초반 과정이니 봄의 때이다. 그리고 이때가 가장 힘겨운 때라 하겠다. 


정리해보면 운과 노력은 사실상 동의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상황은 으레 착각하기 마련인 것이니



그런데 실제 상황에 들어가서 보면 그리고 개개인의 경우를 따져볼 것 같으면 노력을 해도 운이 없어서 되지 않았다거나 어떤 이는 별로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잘 되는 경우가 있다. 운이란 것과 노력이란 것이 마치 따로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 문제는 사람마다 태어나는 때가 60년에 걸친 운의 순환에 있어 저마다 다른 때에 태어나기 때문이라 하겠다. 


가령 태어난 때가 60년 순환에 있어 운세가 한창 상승 중인 여름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태어나는 때가 바로 산을 오르는 과정의 중반 이후에 태어난 것과 같아서 대단한 탄력으로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접근해간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하고 열심인 경우이다. 


운세의 가을에 태어난 사람은 어린 시절 똑똑하고 재능이 있어 보이지만 스무 살 무렵 근처가 되면 지지부진해지고 탄력을 잃어서 경쟁에서 뒤처진다. 그러다가 힘들게 30-40대를 보낸 이후 중년 이후 또 다시 진지한 노력을 통해 발전해간다. 


또 어떤 이는 태어난 때가 하산의 마무리 과정인 겨울인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 끝나고 여기에 다시 힘겨운 봄의 시간, 즉 등산의 초반 과정을 보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린 시절엔 내성적인 성향이다가 10대 무렵 대단히 힘겨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더 퇴보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운세 순환의 봄에 태어난 사람은 어린 시절 병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고 가정환경도 불우한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타고난 능력 자체가 부족해보이기도 하지만 중년 무렵에 가서 큰 성취를 하기도 한다. 


운과 노력의 관계는 이런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로 헷갈릴 정도로 대단히 복잡하다. 



노력한 만큼 보답은 있는 것일까?



가령 진지하게 노력을 해도 끝내 되지 않아서 결국 포기하고 방향을 바꾸게 되고 이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결과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기에 노력은 반드시 그만큼의 보답을 가져다준다는 말을 하지만 그게 꼭 들어맞는 얘기도 아닌 것이고 반대로 틀린 말이라 하기도 그렇다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운이 상승할 적엔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인 것이고 노력의 방향이 틀렸을 경우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모색 또는 방향 전환 또한 일종의 노력에 속한다고 하겠다. 



재능이야말로 운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까지 운과 노력의 관계에 대해 얘기했으니 이제 재능에 대해 얘기할 차례이다. 


재능이나 능력이란 것은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것이 아니며 동시에 고정불변한 것도 아니란 얘기이다. 동시에 재능이란 운의 흐름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가령 프로야구를 들어 얘기한다. 시즌 초반에 어떤 선수가 홈런을 잘 치고 고타율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 상태가 시즌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아가서 한 시즌에 잘 한다 하더라도 계속되는 시즌을 통해 줄곧 잘 하는 이는 드물다. 그렇기에 선수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시즌 전체를 통한 평균 타율이나 수치를 가지고 판단하게 되고 또 여러 시즌의 흐름을 보아 판단한다. 


이 대목에서 한 시즌을 인생 전체로 확장해보자. 어린 시절 어떤 방면에 재능이 특출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어린 시절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던 사람도 중년 이후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면서 크게 성취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재능의 발휘 여부는 바로 운의 흐름과 직적접인 관련을 갖는다. 


음악이나 스포츠, 또 바둑과 같은 분야의 경우 어린 시절에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스킬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분야는 어린 시절에 이미 관련 뇌세포의 신경조직이 만들어지는 까닭에 그렇다. 나이가 들면 회로 형성이 느려지기에 스킬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어린 시절의 재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가령 비즈니스의 경우라면 어떤 사람이 그 방면에 능력이 있을 것인지 없을 것인지를 확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본인 스스로도 정작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것이고 그런 까닭에 주변 사람이라면 더더욱 알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이제 정리하자. 운의 상승 과정이 바로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재능이란 것은 그 사람이 운의 순환에 있어 어떤 시기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객관적인 측정은 물론이고 주변의 섣부른 판단 또한 틀릴 공산이 대단히 높다고 하겠다. 


나아가서 능력이란 어느 한 시기의 능력인 것이지 평생을 두고 뛰어난 능력을 지녔거나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고 지극히 드물다고 하겠다. 그런데 물론 그런 탁월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란의 경우 타고난 유전적 소양에서 온다고 하겠으니 이를 일러 命(명)이라 한다. 


오는 27일 토요일부터 자연순환운명학 기초강좌를 개최한다는 공고를 올렸다. 인생과 운명의 과학적인 이치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라는 마음이다.


블로그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속초 산불 소식이 들려오는 오늘 4월 5일은 호호당 블로그가 시작한 지 만 10년이 되는 날이다. 열 번째 생일인 셈이다. 이에 10주년 기념 겸 해서 약간 색다른 시리즈 글을 올려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2014년 5월 25일자로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새로운 학문이 성립되었다고 이 블로그에 알린 바 있다. 이제 다음 달이면 그로부터 다시 만 5년이 된다. 그 사이에 연구를 통해 전혀 새롭게 알아낸 것도 많았으며 보다 폭 넓고 깊은 이치에까지 알게 되었다. 


연구는 끝이 없겠지만 문득 이 시점 정도에서 자연순환운명학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져 나왔는지 그 경과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과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것이 무엇인지, 기존의 사주명리학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 독자들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자연순환운명학



연순환운명학은 기존의 사주명리와는 사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별도로 이름을 붙였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면 그냥 좀 더 독특한 사주명리라는 정도로 소개했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기존의 사주명리를 포함한 모든 운명학은 운의 흐름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하거나 설명해줄 수 없지만 나 호호당의 이 학문은 문자 그대로 운명의 법칙이다. 변화해가는 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지극히 엄밀하고도 정확하게 예측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법칙을 발견했기에 그렇다. 



자연순환운명학의 첫 발상에 대해



자연순환운명학의 첫 발상이 시작된 것은 1982년 말 아니면 1983년 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36년 전의 일이고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그다지 정확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확실한 시점은 잘 모르겠다. 


1983년 초라고 하면 나 호호당의 나이 서른도 되기 전의 일이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 예순하고도 다섯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紅顔(홍안)이 白髮(백발)이 된 셈이다. 거 참!


당시 나 호호당은 사주명리를 포함해서 운명학 전반에 대해 관련된 서적이나 이론을 두루 충분히 접한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대개의 운명학이란 것이 지나온 과거에 대해선 그런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선 사실 전혀 신빙도가 없다는 점에 대해 많이 실망하기도 한 상태였다. 


그런 까닭에 당시 나는 운명학의 신빙성과 진위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했다.


운명학이란 것이 결국 근거 없는 것으로 단정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 발전시켜온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상태에 머물고 있기에 신빙도가 여전히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앞에서 말한 1982년 말 혹은 1983년 초의 어느 겨울날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을 산책하다가 하나의 발상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아마도 그 날은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原點(원점)에서부터 새롭게 시작된 연구



헛된 엉터리라고 단정을 짓기엔 사주명리란 것이 나름의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까닭에 아직 밝혀내지 못한 운명의 이치가 있을 것이니 내가 그것을 알아내고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발상이었다. 


사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대단히 엉뚱하고 무리한 발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떤 식으로 연구 방법론을 세울 수 있는 지부터 당장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운명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그런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부터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데이터를 수집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의 사주명리 책에 소개된 사람들의 사주 즉 생년월일시를 기준으로 그 사람의 운명에 대한 설명은 적지 않았지만 그를 무턱대고 신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가능하다면 운명학에 대해 그야말로 原點(원점)에서부터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연구하고 검증해보자는 발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니 당시 내 생각이 터무니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말이다. 


이 대목 정도에서 나 호호당이 운명학과 그 이전에 맺었던 인연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운명학과의 처음 遭遇(조우)



따라서 그 얘기부터 먼저 시작해본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나는 사주팔자 보는 책 한 권을 샀다. 이유는 궁금해서였다. 운명이란 것이 정말 있는 것일까?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정말일까? 하는 궁금증. 초등학교 무렵 어머니가 내 사주를 보고 왔다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뒤로 호기심이 생긴 터였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더더욱 다양한 호기심이 생겼는데, 최면술에 관한 것, 심령현상에 관한 것, UFO에 관한 것, 히틀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일까? 귀신이란 것이 정말 있을까 하는 것, 또 사람이 죽은 뒤 다른 세상에 간다는 말이 진짜일까? 하는 등등 실로 무수히 많은 궁금증이 생겼는데 운명이나 팔자에 관한 것도 그 중에 하나였다. 


나 호호당에게 있어 호기심과 궁금증이야말로 삶의 큰 원동력이 되어왔다. 


학업에 대한 관심은 사실 크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이 못 살게 군다는 것 때문에 적당히 하는 정도, 즉 ‘면피’ 정도만 했을 뿐 내겐 여러 궁금증을 파고들어 알아보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었다. 


가령 어느 날 바람을 왜 바람이라 하는 거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면 한동안 거기에 몰두해서 지내곤 했다. 말의 생성과정과 語源(어원)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도 나 호호당의 커다란 즐거움이 되고 있다. 평생 다양한 방면에 걸쳐 수많은 책을 읽어온 것 역시 학구적이어서가 아니라 호기심이 많은 탓이다. 


그런 까닭에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주팔자 보는 책을 산 것은 내게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때 샀던 책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나는 책을 사면 으레 책을 구입한 연도와 일자, 그리고 간단한 소감을 책 빈 여백에 적어놓는 습관이 있어서 그게 고등학교 1학년인 1971년에 구매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고 하니 궁금한 것이 많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부자로 살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하게 살 게 될까? 나는 이 담에 뭐가 될까? 등등 그런 의문이 치솟았고 이에 사온 책을 단숨에 읽어보았다. 그 바람에 사주팔자를 뽑는 만세력도 한 권 샀다. 


내 사주를 뽑은 뒤 책에 적혀있는 내용에 의거해서 살펴보니 가장 먼저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대단히 우려되는 내용이었다. 내 팔자에 空亡(공망)이란 것이 무려 두 개씩이나 있다는 점이었다. 


‘공망’에 대해 자세히 읽어보니 한 마디로 말해서 평생의 모든 일들이 헛되고 실패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뭐 이런 따위가 다 있어! 하고 책을 한 쪽 구석으로 휙-하고 던져버렸다. 


나중에 다시 궁금해서 살펴보니 승려나 성직자가 되면 괜찮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런 방면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아니 내 팔자가 겨우 중 팔자란 말인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한창 사춘기, 이성에 대해 관심이 폭증하고 있던 나에게 성직자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만일 사주보는 책이 정말 옳다면 내 인생의 앞길에 두터운 먹장구름이 잔뜩 드리운 터였다. 이럴 때의 해법은 간단하다, 사주란 것은 한 마리도 어리석은 迷信(미신)이 되어야 했다. 그럼 그렇지,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고 하면서 나는 사주책을 어디론가 던져놓았다. 


이렇게 해서 나 호호당은 운명학과 최초로 遭遇(조우)했다. 



처음 만남은 실망이었지만 연애작전엔 유용했으니



첫 만남은 대단히 불쾌했으나 며칠 가지 않아 영악한 머리를 쓰게 되었다. 고1 겨울방학을 지내면서 사주를 가지고 또래 여자애들을 유혹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당시 1971년 무렵만 해도 고등학생 신분으로 여고생들을 만나서 사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소나마 좀 ‘까진’ 애들이 아니면 어떻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도 단칼에 무시당하곤 했다. 급우들은 교회 나가는 것이 연애작업에 가장 상책이란 얘기를 해주었지만 신앙심이라곤 한 점도 없는 내가 그러기엔 양심에 걸렸다. 


그래도 누군가 주선을 해서 빵집 같은 곳에서 미팅을 할 때 나가서 사주 볼 줄 안다고 사기를 치면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내 구상은 그런대로 멋지게 먹혀들었다. 아무래도 사주만으론 부족한 것 같아서 손금 보는 책도 사서 읽고 공부한 뒤 충분히 ‘무장(?)’한 상태로 여고생들과 단체 미팅을 몇 번 할 수 있었다. 


일단은 그게 전부였다. 고2 여름방학이 지나면서 공부에 신경을 써야 했다. 사실 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자의반 타의반으로 매일 중국무술도장에 다니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 바람에 학원갈 시간도 없었지만 무술도장의 사부님을 만난 덕분에 평생의 ‘무기’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漢文(한문)과 중국말 회화 능력이었다. 중국 공산화 이후 부산으로 피난오신 사부님의 엄격한 지도 아래 나는 억지로라도 한자와 한문 공부를 매일 해야 했던 것이다.

 

도장에 다녀오면 늦은 밤이었고 덕분에 졸리는 눈을 비벼가며 학업 진도를 따라가야 했다. 당시 다니던 학교가 이른바 명문고등학교, 공부 열심히 하는 무서운 놈들이 많았던 터라 좋은 성적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체면치레를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아무튼 나중에 고려대학교 법대에 입학했으니 그런대로 성공한 셈이었다. 


분량이 제법 되었기에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이번 시리즈 글은 분량이 상당할 것 같다, 그렇기에 줄곧 이번 주제에 고나한 글만 올릴 생각은 아니고 도중에 다른 글도 써가면서 이어가볼 생각이다.


목련 동백 그리고 진달래



내일이면 4월인데 차가운 날씨. 작업실 창 아래로 목련 하얀 꽃이 바람에 살랑대고 있다. 추운 걸까 싶어 창가로 다가가 문을 여니 눈이 부셔온다. 고결한 품격의 목련, 그런데 질 때의 목련은 유난히 누추하다. 그러자 생각은 자연스럽게 동백꽃에 미친다, 동백은 질 때에도 도도한 모습이니. 


얼마 안 있어 진달래가 필 것이다. 소나무 그늘 아래 피는 연분홍의 진달래는 슬픈 꽃이다. 멀리서 보면 산 중턱에 분홍의 안개 서린 것 같은 진달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으레 진달래를 떠올린다. 연분홍 치마의 새색시와 진달래는 어쩐지 맥락이 통한다. 갓 시집온 터라 자기를 내세우지 못하는 연분홍 치마의 각시와 나무 그늘 아래 숨어 피는 진달래, 통한다. 



소외란 슬픈 것이어서



살아있으되 그 살아있음을 세상을 향해 주장하지 못하는 자는 슬퍼할 수밖에 없다. 이에 큰 소리로 울어도 들어주는 이가 없으면 이를 疏外(소외)된 자라 한다. 소외가 무엇인가? 주변에서 꺼리면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다. 시쳇말로 ‘따’를 당한 것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도 따를 당한다. 가령 옆 나라 일본은 2005년이 국운의 입춘 바닥이기에 그 5년 전인 2000년부터 국제사회에서 따를 당했다. 딱 30년 전인 1989년 일본은 가히 온 세계를 모두 집어삼킬 기세였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미국에 이어 일본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주장했다. 


그런데 1990년이 되자 일본은 침몰했고 미국이 또 다시 부상했다. 내년 2020년은 일본이 사라진지 즉 소외 당한지 20년이 되는 해, 도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세상으로의 복귀 신고를 치를 셈이다. 당장 일본이 예전의 기세를 찾는다는 것은 아니고 이제 일본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말이다. 2020년은 일본 국운의 여름이 시작되는 立夏(입하)의 운인 까닭이다. 


얼마 전 글에서 立夏(입하)의 운이야말로 가장 가난하다고 했다. 하지만 내적 힘이 다시 솟아나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입하인 것이다. 그러니 다시 힘차게 되돌아온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일본의 현 인구 피라미드를 볼 때 일본의 신생아 출산율이 극적으로 반전되지 않는 한 이제 다시 일어선다 해도 예전과 같은 파괴력을 발휘하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사실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 이른바 선진국이란 나라들의 장래는 죄다 어둡다. 인구 구조가 엉망인 까닭이다. 나라의 미래 경제를 이끌어갈 60대에서 20대 사이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미국만 예외이다. 따라서 선진국 중에서 미국만이 희망이 있다. 영국도 그다지 나쁘지가 않다.)



저출산이 대세일 수밖에 없어서


런데 놀라운 사실은 OECD 국가 중에서 장차 가장 심한 인구감소가 일어날 나라는 다름 아닌 우리 대한민국이란 점이다. 어쩌면 올 해부터 신생아수가 30만을 밑돌 것이라 본다. (참고로 중국 또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지만 다만 OECD 국가는 아니다.)


왜 저출산인가? 


이유는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아기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사치품을 장만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독일제 승용차를 한 대 장만할 경우 할부기간만 끝나면 비싸긴 해도 유지비 정도면 되지만 아기는 갈수록 더 많은 돈이 든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돈이 많이 든다. 


그 돈을 마련하려면 두 부부가 죽도록 열심히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육아에 충분한 정성을 쏟을 수도 없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부부의 경우 사람을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육아 비용이 아기 엄마가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더 큰 경우도 허다하다. 


결혼한 부부의 경우 세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 부부가 짊어질 부담이 적은 순부터 얘기해보자. 출산은 하지 않고 저축도 하지 않고 그냥 둘이 버는 수입으로 즐기면서 사는 방법이다. 당장은 가장 편하고 즐겁다. 다음으론 출산을 뒤로 미루거나 포기하고 미래의 풍요를 위해 저축을 하는 방법이다. 물론 즐길 수가 없다, 하지만 가장 부담이 큰 선택은 출산을 감행하는 것이다. 


출산하고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두게 되면 소득은 줄고 지출은 늘어난다. 사실상 최악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엔 둘이 벌면서 눈앞의 시간을 즐기자는 욜로족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그나마 결혼을 할 수 있었던 부부의 얘기였다. 가정을 꾸릴 소득이 되지 않는 커플들은 그냥 연애만 하다가 때가 되면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되풀이한다. 연애에 충당할 비용도 되지 않는 소득일 것 같으면 그냥 홀로 지내는 경우도 엄청나게 많다. 


그러니 소확행이 대세가 되는 것이고 저출산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이제 아파트나 주택을 장만하는 것은 엄청난 대출을 받지 않은 이상 넘사벽이 되었다. 물론 원리금을 갚아나가는 것 역시 평생을 벌어서 갚아야 하는 무거운 짐이 되겠지만 아무튼 거액의 대출을 끼지 않는 한 집을 사는 일은 어렵다. 둥지를 틀지 못하는 새는 알을 낳을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오늘날 당연시되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 즉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 역시 혼인율을 낮추는 커다란 요인 중에 하나이다. 결혼을 하지 않으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소비수준이 높아진 것 역시 결혼을 기피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의 하나이다. 일반화된 해외여행과 럭셔리 풍조가 그것이다. 


반면 정규직으로의 진입이 좁아지고 차단되면서 젊은 층에게 좋은 직장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고 비정규직 젊은이들의 소득 저하 현상 역시 혼인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러니 공시족으로 내몰릴 수밖에. 



누적된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으니



이에 젊은 층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보기 위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정책과 주52시간제는 외환위기 이후 양산된 40-50대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조이는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자영업자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난히 많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서 문제였으나 외환위기 이후 당분간은 그게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12년 전인 2007년경부터는 이미 해법이 아니라 부담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동산 가격 역시 2008년 미국 금융 위기를 계기로 연착륙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미국 연준이 돈을 마구 살포하는 양적완화를 단행하면서 그럴 수 있는 있는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다. 


자영업 문제, 일자리 문제,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가격의 고공행진, 가진 자의 럭셔리 풍조 등등 이 모든 문제점들은 외환위기 이래로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누적되어왔고 그것들이 오늘에 이르러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저출산 현상은 그런 흐름의 부분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자들의 구고조정을 유발할 것이고 일자리 문제는 기업들의 투자 확대만이 해법인데 내수는 정체 일로이고 글로벌 무역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어 어렵다. 비정규직 문제는 기존 거대 노조의 거부로 인해 막혀있고, 부동산 가격이 내릴 경우 중산층의 상당수가 희생당한다. 


친노조 진보성향의 현 정부이기에 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은 사실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보수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편향성만 반대로 바뀔 뿐 문제 전반을 개혁할 수 있는 역량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정치란 결국 ‘진영 싸움’이기 때문이다. 



길을 잃은 우리 대한민국



그렇기에 우리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판단을 내린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으로 보면 2024년의 입춘 바닥 5년 전이기에 絶(절)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絶(절)이란 무엇인가? 하면 앞에서 말한 소외의 흐름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서로가 서로로부터 소외되는 단계, 나라의 에너지가 양력 1월 초의 小寒(소한)의 때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취약해진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올 해가 시작인 것이고 장차 20년이 흘러서 2039년 우리 국운의 立夏(입하)가 될 때까지 더욱 어려워지면서 지루하리만큼 길게 진행되어갈 것이다. 매 5년마다 내용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그 과정 속에서 역경 속에서 당연히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이란 정말로 길이 막혔다 싶으면 길을 창출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개혁이란 몇 년 안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개혁이 이루어진 뒤에도 많은 시간과 난관을 돌파한 뒤에 비로소 그게 개혁이었음을 뒤늦게 느낄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에 개혁은 어렵다. 하지만 하게 될 것이다, 때가 되면.


저마다 타고난 命(명)과 運(운)에 따라 한 세상 살다간다. 명이란 유전적 소양인 것이니 그 사람만의 개성이고, 운이란 정확하게 사계절과 같아서 60년에 걸쳐 15년씩 계절이 지나쳐간다. 


운명의 봄에 태어난 사람의 삶



어떤 이는 운세의 초봄에 태어나 꽃샘추위를 견디면서 힘겨운 성장기를 보낸다, 그러면서 강해지고 튼튼해지기에 인생 중년엔 크게 성공하기도 한다. 40-50대에 이르러 성공한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운세가 어려운 터라 가정환경이 어렵거나 몸이 아픈 경우도 있으며 학업이 부진해서 좋은 명문 대학을 졸업한 경우는 많지 않고 오히려 사회 진출 후에 두각을 나타낸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세상을 지나치게 경쟁의 관점에서 본다는 문제점이 있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의 살아온 세월이 그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년 이후 또는 노년에 접어들면서 뜻밖의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말년이 곤궁하거나 어렵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를 두고 나 호호당은 ‘출구전략’ 혹은 ‘후퇴관리’에 실패했다는 표현을 쓴다. 전쟁에서도 가장 어려운 전략이 후퇴하는 과정이다. 자칫 패주가 되는 바람에 엄청난 손실을 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운명의 여름에 태어난 사람의 삶



다음으로 운세 순환 상 여름에 태어난 사람을 보자. 


좋은 대학을 마치고 좋은 직장에 입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유형에 속한다. 만 18세이면 운세가 기세의 절정인 立秋(입추) 이후가 되는데 이 무렵 대학에 진학하는 관계로 당연히 명문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사회 출발도 쾌조의 스타트를 보인다. 이른바 엘리트 그룹이다. 


오늘날 취업이 어려운 시대, 명문 대학을 마치고 신이 내린 직장인 공사나 대기업에 입사한 청년들의 운 흐름을 보면 거의 예외가 없다. 27세 무렵에 입사한다고 볼 때 운세 흐름은 가장 화려한 때가 시작되는 한로 상강의 운이 되니 사회 진출할 무렵이 실은 인생의 한 절정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35세 무렵부터 뭔가 본인은 잘 모르긴 하지만 삶의 권태기를 느끼면서 서서히 뒤처지게 된다. 능력 부족이 아니라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엔 여성의 경우 학력이나 직장도 다 좋은 골드미스이건만 정작 결혼 상대를 잘 만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런 운세 흐름의 사람들은 대부분 40대 중반 무렵 운세의 바닥인 입춘을 맞이하게 되어 몰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멀리 갈 것 없이 나 호호당이 이 케이스에 해당이 된다. 


하지만 失意(실의)의 중년 세월을 보내면서 절치부심한 결과 다시 힘차게 일어나서 노년 들어 원만한 삶을 살거나 때론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중년 한 때 힘든 시절을 보냈으나 1988년부터 KBS의 ‘전국노래자랑’을 발판으로 지금까지 진행을 맡으면서 크게 성공한 송해 선생이 대표적인 케이스. 



운명의 가을에 태어난 사람의 삶



그러면 이제 운세 순환 상 가을에 태어난 사람을 보자.


흔히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서 학업이나 예능 방면에서 神童(신동) 또는 英才(영재)란 소리를 듣는 아이들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태어난 때가 바로 운명의 가을 즉 가장 화려한 시기인 까닭에 또래 아이들에 비해 성취가 빠르고 뛰어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는 시기 가령 사회 진출한 뒤에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부진을 겪거나 무능력해지는 바람에 잊혀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가령 고등학교 때까지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던 야구선수 유망주가 프로에 진출하면서 순식간에 퇴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많은 스카우터들의 기대가 완전히 빗나가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나이 30세 무렵이 운명의 입춘 바닥이 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진로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게 되고 훗날 중년 이후에 전혀 새로운 방면에서 대성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가령 축구 선수로선 별로였으나 축구 감독으로 국제적 명성을 떨친 거스 히딩크 감독이나 줄곧 무명 감독을 지내다가 작년 월드컵 축구에서 준우승을 거두면서 일약 주목을 받게 된 크로아티아 대표팀 감독인 53세의 즐라트코 달리치 감독이 그렇다. 



운명의 겨울에 태어난 사람의 삶



이제 마지막으로 운명의 겨울에 태어난 경우를 얘기해보자. 


이런 운명의 흐름을 타고 태어난 사람의 특징은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는 점이다. 겨울은 스산하고 추운 계절이어서 유년기의 성격 형성 또한 그렇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10대에서 20대 초반에 걸쳐 대단히 힘든 시련기를 보낸다. 그때가 운명의 봄에 해당되는 까닭이다. 부모의 이혼이라든가 갑자기 집안이 몰락했다든가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30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발전해간다. 성실한 노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간다. 이에 40대 이후엔 확고한 기반을 갖추게 되고 50 대 후반이면 삶의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어서 60-70대 들어 몰락하기도 하고 때론 자식들의 재산 분배 분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고초를 겪기도 한다. 


운명의 사계절 중에서 어떤 계절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기본적인 4가지 유형의 삶에 대해 지금까지 얘기해보았다. 



운보다도 자기관리가 더 중요한 법이어서



그러나 운이 다했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예외 없이 몰락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 평생 잘 나가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도 없지가 않은데 그런 사람들은 운은 바닥이 되어도 자기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가령 세계적인 부호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과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케이스라 하겠다. 


빌 게이츠를 보면 1955년생인데 당시 운명의 계절을 보면 1952년이 운명의 입춘이었다. 앞에서 소개한 운명의 봄에 태어난 사람인 것이다. 나이 마흔엔 이미 세계적인 부호가 되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2005년, 그러니까 50세라고 하는 이른 나이에 훌쩍 은퇴를 해버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단히 정확한 판단이었다. 은퇴할 당시 빌 게이츠의 운세는 겨울의 중앙인 冬至(동지)였던 것이다. 물론 조기 은퇴하는 바람에 재미는 없어도 그간에 모은 엄청난 재산을 잘 지켜가고 있다. 자신의 능력과 분수를 잘 알아서 냉철하게 처신했던 것이다. 


사실 빌 게이츠와 같은 경우는 대단히 드문 케이스라 하겠다. 대부분의 사람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넘어 무리하게 추구하다가 一敗塗地(일패도지)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오히려 그게 일반적이다. 


국내의 경우 굴지의 연예기획사인 SM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한 이수만 회장 또한 대단한 양반이다. 이 분의 경우 1952년생으로서 1956년으로서 운명의 봄을 맞이했다. 그러니 어린 시절 나름 힘겹게 지냈을 것이 분명하다. 


1986년은 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였고 1989년에 회사를 창립했다. 그 이후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운세의 입동 직후인 2002년 회사자금 횡령 혐의로 인해 한 때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가 귀국해서 수사를 받고 집행유예 3년을 받는 시련을 겪었다. 


그런데 실은 이게 이수만 회장에겐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본다. 그 이후 전면에 나서는 일 없이 모든 일은 실무자에 위임한 채 늘 조심하면서 회사를 운영해오고 있다. 2016년은 이수만 회장에게 있어 운세 바닥인 입춘이다, 그 바람에 2014년엔 아내를 사별하는 큰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예전과 같이 늘 조심하면서 지내면 마침내 성공적인 삶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최근 버닝썬 문제로 온 국내가 시끌벅적하다. 관련해서 YG의 양현석 회장에 대해 조금 얘기해본다. 2002년이 운세 상 입추였기에 15년 뒤인 2017년은 입동이었다. 입동을 지나 소설 무렵이 되면 슬슬 어려운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기 마련인데 이번 버닝썬 사건이 바로 그렇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일종의 경고, 운명이 내리는 경고라고 하겠다. 이제 더 이상 크게 발전할 일은 없으니 유종의 미를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運(운)은 공평하지만 命(명)은 차이가 있는 법이니



운은 이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나 60년 이상을 살아가노라면 운의 사계절을 겪기 마련인 까닭이다. 다만 命(명)의 차이, 달리 말하면 타고난 소질과 능력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달리 말하면 명은 공평하지가 않다. 


어떤 이는 아파트 한 채 마련한 것이 일생의 절정인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세계적인 부호가 되기도 한다. 命(명)의 차이인 것이다. 



하지만 自足(자족)할 수만 있다면



아파트 한 채일지언정 아니 그보다 못하다 해도 만족할 수만 있다면 좋은 세월 한 번 누리고 가면 되는 일이니 굳이 특별한 부자가 되어보겠다고 무리했다가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는 것보다 백번 나은 일이 아니겠는가 싶다.


춘분, 농사의 시작이자 고뇌의 시작.



춘분은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때이다. 밭갈이 논갈이가 시작되고 이런저런 농사 준비로 인해 갑자기 바빠지는 때이다. 옛 사람들은 겨울 동안 아침과 저녁 두 끼만 먹다가 춘분부턴 힘을 써야 하니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더 먹어서 좋은 것보다 그만큼 힘겨운 때가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한 끼를 더 먹게 되면 그만큼 비축된 양곡이 더 빠른 속도로 바닥을 드러낸다는 말도 된다. 


그러니 춘분은 바빠지는 때이자 시름이 본격화되는 때이기도 하다. 


가령 생각해보라, 자영업자인 당신이 수입은 줄고 있는데 지출해야 할 비용은 여전하고 이대로 있자니 결국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 이에 영업활성화를 위해 어렵게 비축해 놓은 얼마 되지 않는 비상자금을 홍보에 써야 할 것 같을 때의 심정이 어떨는지. 


당연히 시름 깊어지지 않겠는가. 춘분으로서 농사 준비에 나서는 옛날 농부의 마음보다 오늘날 자영업자의 마음이 더 힘들면 힘들었지 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춘분은 해가 길어지는 때이자 농사준비가 본격화되는 때, 그리고 힘겹게 또 다시 삶의 투쟁에 나서야 하는 때라는 것을 이제 알 것이다. 



춘분과 입하의 관계



저번 글에서 춘분의 때에 입하를 말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얘기를 했다. 


춘분에서부터 입하에 이르는 한 달 반의 기간은 참으로 모순이자 동시에 고뇌와 고통의 기간이란 말을 하기 위함이었다. 


왜 모순이고 고뇌의 시간인가? 농부는 4월 20일 경에 볍씨를 뿌린다. 4월 20일이면 이제 쌀독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 시점이다. 그러니 볍씨에 눈이 간다. 밥을 지어 먹을 수도 있는 쌀이란 사실이다. 당장 배가 고프니 볍씨로서 밥을 해먹을 것인가 아니면 주릴지언정 볍씨를 뿌릴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입하는 生死(생사)의 갈림길



이에 눈 딱 감고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면서 볍씨를 뿌렸다고 하자. 으레 때가 되면 새싹이 나오겠지 하는 마음이겠지만 사느냐 죽느냐가 경각에 달린 사람의 생각에 새싹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한다. 


오늘날 농사는 너무나도 농법이 잘 확립되어 있어 그런 불안감을 갖는 농부는 없다, 하지만 자영업자인 당신이 마지막 비상금을 영업활성화를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의 마음이 될 것이다. 


양력 5월 초순의 입하는 땅속에 심은 씨앗이 땅가죽을 뚫고 싹을 내미는 바로 그 순간이란 사실. 그 순간 농부는 가장 빈한하다. 


아직 보리 수확은 시일이 좀 더 남았으니 입하야말로 식량은 바닥이 나고 수입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그나마 비상식량일 수 있는 볍씨는 이제 먹을 수 없는 벼가 되어 머리를 내밀고 있는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보리는 빨라야 5월 20일 경이나 되어야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옛날 이 때를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그렇기에 입하의 때는 가장 빈한한 때가 되는 것이다. 그냥 빈한한 것이 아니라 생사가 갈리는 지극히 빈한한 때란 얘기이다.


옛날 농경시대 우리 선조들은 입하 무렵이면 거의 알곡을 먹지 못했다. 밭작물은 당연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찾아서 허기를 때웠다. 초근목피,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기도 했다는 말이다. 



입하는 헝그리 복서를 만들어내는 때



늘 순환 즉 운의 순환에 대해 얘기한다. 60년 순환에 있어서 춘분의 때는 입춘 바닥으로부터 7.5년이 경과한 때이고 입하는 그로부터 다시 7.5년이 흘러 입춘에서 15년이 흐른 때가 된다.

 

앞글에서 1968년은 미국의 60년 순환에 있어 입하의 때란 말을 했다. (1953년이 입춘 바닥이자 시작이었다. 동시에 2013년 또한 미국 국운의 새로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었다. 그러다보니 트럼프란 이단아가 등장할 수 있었다.) 


입하의 때가 되면 더 이상 체면이고 나발이고 차릴 여유도 필요도 없어진다. 절로 그렇게 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실전적으로 변한다. 그게 바로 헝그리 복서의 시작이다. 


섹시한 대통령인 케네디의 큰 소리로 시작된 미국의 베트남 전쟁이었지만 1968년이 되자 세계 최강대국 미국 역시 더 이상 체면을 차릴 여유가 없어졌던 것이고 이에 창피를 무릅쓰고 베트남에서 발을 뺐다. 



1979년은 우리 대한민국의 입하였으니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얘기도 해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은 1964년이었다. 이에 춘분은 1972년이었고 입하는 1979년이었다. 독재자 박정희는 독한 마음으로 1976년, 한 해로 치면 4월 20일 경의 곡우에 미래의 수확을 위한 볍씨를 뿌렸다. 나라의 명운을 걸고 모든 가용자금을 다 모아서 중화학공업에 대해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게다가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안 그래도 힘겨워하는 국민들의 살림에 한 번 더 커다란 부담을 지웠으니 부가가치세의 신설이었다. 실로 독한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장사하는 이들은 부가세의 무서움을 실감할 것이다. 월급쟁이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국운의 입하는 1979년, 가장 빈한한 때가 찾아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직전에 제2차 석유파동이 터졌다. 안 그래도 어려운 처지였는데 정말 죽어라 죽어! 하는 판국이었다. 


생활고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1979년 10월의 부마사태였다. 그리고 10월 26일 박정희는 부하의 총에 의해 죽고 말았다.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빈한한 처지에 빠졌을 때의 일이었다. (오늘날 ‘부마민주화항쟁’이라 부르지만 이는 훗날에 와서 붙여진 명칭이고 사태의 본질은 ‘생활고’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브렉시트는 영국 국운의 입하



하 영국은 이미 결정된 브렉시트의 이행을 놓고 엄청난 혼란에 빠져있다. 이 역시 2017년이 영국의 입하였기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영국 역시 현재 몹시 가난하다. 영국의 보통 시민들은 생활하기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영국의 유권자들은 2016년 보나 나은 미래를 위해서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하지만 정작 이행이 눈앞에 다가오자 갈팡질팡하고 국론 분열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입하는 낡은 흐름과 새로운 흐름의 교체기인 까닭이다. 



또 다시 새로운 춘분이 오고 입하가 올 것이니



다시 우리 대한민국으로 되돌아오자. 


2024년이면 360년 거대 순환 속에서 세 번째로 맞이하는 60년 순환이 시작된다. 국운 제3기가 2024년으로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2032년이면 또 다시 국운의 춘분이 될 것이고 2039년이면 또 다시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빈한해지는 국운의 입하가 될 것이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아마도 그 무렵 정도에 남북한이 본격적으로 하나가 되는 때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얼마 전의 글 “어디로? 어떻게?”란 시리즈 글에서 얘기했다. 북한의 2,500만 주민은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게 될 2,500만의 난민이란 사실에 대해서. 같은 민족이 하나가 된다는 감회는 잠시일 것이고 현실은 남한의 우리가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되는 일이다. 그러니 전체가 가난해지고 빈한해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현재 청년은 줄어들고 있고 노령화는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복지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져갈 터인데 장차 그때 가서 세금을 부담할 세대들은 숫자에서 대폭 줄어들 것이니 그들의 고충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주력산업들을 새롭게 이어갈 미래 신산업이 제대로 성장해주지 않을 경우, 우리를 지탱시켜온 수출이 경쟁력을 잃게 될 경우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니 2039년 무렵에 우리는 충분히 가난해지고 빈한해져 있을 것이다. 춘분히 예상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앞에서 미국의 예, 영국의 예, 그리고 우리의 예를 얘기했다. 사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지난 한 주 동안 국운의 입하에 생겨나는 일에 대해 빠져서 생각하고 또 생각할 법도 하지 않았겠는가. 


물론 이는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은 당연히 그렇다. 


나 호호당은 입춘 바닥으로부터 15년이 된 사람을 대번에 알아본다. 가진 것이 없어 보이는데 눈빛은 오로지 생존에 대한 욕구로 형형하다. 입하의 눈빛이다. 


돈이 되기만 한다면 천리길이고 만리길이고 달려갈 태세를 보인다. 자존심 따윈 집어치운 지 오래되었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一念(일념)으로 말과 행동이 간절하고 또 간절하다. 나 호호당은 그간의 상담을 통해 입하의 눈빛을 일순 포착할 수 있다, 충분히 배고픈 헝그리 복서의 눈빛을. 


이제 이틀 후 21일은 2019년의 춘분이다. 한 해의 힘겨운 투쟁과 전투가 본격화될 것이다. 시름 또한 당연히 깊어질 것이다. 온 세상이 싸우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사랑도 할 것이다. 그러니 세상은 사랑과 투쟁이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특별한 존재여서 투쟁이란 말 대신에 평화란 말로 현실을 위장해가고 있지만 말이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춘분에 하루를 놀면 한 해 내내 배부르지 않다, 그러니 우리 모두 춘곤증으로 힘들더라도 애써 스스로를 채근해보아야 하겠다.


춘분, 한 해의 윤곽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하는 때



춘색이 현저하고 완연하다. 오는 목요일 21일이 春分(춘분)이다. 들을 덮었던 안개가 걷히고 해도 길어질 것이다. 이로서 2019년 한 해가 과연 어떤 모습의 한 해가 될 것인지 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하노이 협상 결렬로 오리무중에 갇힌 비핵화 문제, 이제 집권 3년차로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의 향배,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 경제의 문제,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이슈가 되기 시작한 페미니즘 갈등, 이웃 일본과의 갈등 등등 많은 현안들이 이제 보다 구체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밖으로 살펴보면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온갖 시나리오가 난무하는 영국의 브렉시트 문제, 미중 간의 무역협상과 중국의 경제 침체 문제, 우려되는 글로벌 경기 침체, 프랑스의 내부 갈등, 갈 데까지 가고 있는 이탈리아의 내정 문제, 날로 거칠어져가고 있는 트럼프와 미국 반대 세력 간의 갈등 문제들도 마찬가지.


저 문제들은 인간 사회의 문제이건만 그것이 해가 길어지는 춘분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사람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자연의 변화는 사람의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또 영향의 정도가 일반의 생각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직접적이란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해서 그럴 뿐이지 자연의 변화는 인간의 생리는 물론이고 사고와 행동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로서 세상과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춘분은 한 해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져 갈 것인가를 우리 눈앞에 펼쳐주는 첫 날인 것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속에서 어떤 풀들이 고개를 내밀지 모르는 것처럼 춘분이 되기 전까진 한 해의 땅 밑에 어떤 새로운 것들이 잠재해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과 계절의 변화란 결국 일조량과 땅의 온도, 또 대기와 땅을 넘나드는 습기의 변화라 할 것이니 그런 기본적인 요소들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계절의 변화에 따라 우리가 변화해간다는 생각을 한다. (이 점에 대해선 나중에 좀 더 얘기를 드리고자 한다.) 



생각에 몰두하는 바람에



지난 한 주 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다. 골똘한 생각에 빠지게 만든 하나의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몰두해있다 보니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만 하다가 말았다. 


사회적 사건 또는 커다란 변화가 그 나라 또는 사회의 운세 변화와 어떤 관련을 맺게 되는가 하는 문제, 아울러 그것을 일으키게 하는 메카니즘은 무엇인가 하는 思念(사념)이었다. 


자연의 변화, 운세 변화, 사회의 변화



이 문제에 대해 현대 미국 역사에 있어 치욕을 안긴 베트남 전쟁을 예로서 시작해보자. 


베트남 전쟁은 제2차 대전의 종료와 함께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쟁과 이어서 미소간의 냉전 속에서 발생한 전쟁이었다. 그렇기에 베트남 전쟁은 1946년 12월부터 1975년 4월까지 이어진 길고 긴 전쟁, 사실상의 30년 전쟁이었다. 


미국은 그 길고 긴 전쟁 기간 중 1961년부터 개입하기 시작해서 1973년 발을 뺄 때까지 무려 12년 동안 전쟁을 이끌었고 또 패배했다. 


1961년 임기를 시작한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이렇게 멋진 소리를 했다. “얼마를 지불하든, 져야할 짐이 얼마이든, 얼마나 어려운 일이 닥치든, 모든 우방들을 지원하고 자유의 승리와 생존을 확약한다.” 훗날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악몽이 되어버린 미국의 베트남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기야 그랬을 것이다, 히틀러의 독일과 태평양의 강자 일본제국을 무너뜨린 미국이었기에 멀고 먼 베트남의 정글 속 성가신 게릴라들이 무얼 그리 부담이 되었겠는가! 계획을 세워서 철저하게 밀어버리면 그만 아니겠느냐는 생각의 미국이었을 것이다. 프랑스가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북베트남의 오합지졸들에게 항복을 하긴 했지만 그거야 맛이 간 프랑스였으니 그랬을 것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 개입 확대에는 물론 43세의 혈기 넘치는 케네디의 오판도 있었겠으나 그 배경에는 당시 침체해있던 미국 경제를 살리려는 여망, 특히 군수업자들의 전쟁 특수를 기대하는 기대심리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끝이 나지 않았고 이에 미국은 더 많은 병력을 베트남으로 보내고 대대적인 물자 투입을 통해 승부를 결정짓고자 했다. 


미군 증파가 최고조에 달했던 1968년의 경우 미군 병력만 해도 55만에 달했고 전비 또한 그 한 해에만 오늘날 달러가치 기준으로 무려 5,570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인 미국이었지만 비용만 해도 미국에게 있어 실로 엄청난 출혈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정도까지 갔으면 끝이 보여야 했건만 상황은 전혀 정반대였다. 1968년 초 북쪽의 당시 월맹은 음력 1월1일의 설날에 예상치 못한 엄청난 규모의 본격 기습 공세를 가해왔다. 이른바 ‘뗏 대공세’였다. 


뗏 공세 자체는 월맹군과 베트콩 게릴라의 엄청난 피해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미국의 장군들은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도무지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을 자신감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전투에선 비록 미국 측이 이겼으나 전쟁의 저울추는 북베트남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1968년, 승부의 저울추가 기울던 때



뗏 공세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미군이 베트콩 진압 작전에서 무구한 양민들을 대거 학살한 ‘미라이 학살 사건’이 그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어버렸다. 도무지 전쟁을 지속할 더 이상의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국내에서 거센 반전 운동과 함께 장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미국 경제는 국고가 텅 빌 지경이었으며 시민들도 전쟁 수행에 넌더리를 내던 참이었다. 그렇기에 미라이 학살 사건은 미국 시민들의 여론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제 무의미한 전쟁은 그만! 하는 것이 절대적인 여론이었다. 


당시 인기를 한창 끌던 록 그룹 CCR의 노래 “Who'll Stop the Rain”, 누가 저 비를 멈추랴, 하는 노래는 1970년 발매되자 즉각 엄청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과연 어느 누가 저 잘못된 전쟁을 멈출 수 있겠느냐는 대표적인 반전 노래였던 것이다. 


그 바람에 케네디에 이어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지지율의 격하로 재선에 출마하지 못했고 이에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끝낼 것을 다짐한 야당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1968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출구전략의 어려움



하지만 미국은 깊게 개입된 전쟁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나중엔 갖은 굴욕과 수모를 당하면서 사실상 도망쳐 나와야 했던 미국이었다. 그때가 바로 1973년 3월이었으니 손을 떼는 데에만 무려 4년의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그러니 출구전략이란 것 역시 대단히 지난한 일인 것을 말해준다.) 


그 이후 낙동강 오리알 격이 된 남베트남 정부는 그로부터 2년 뒤인 1975년 4월 30일에 북베트남군의 무력침공으로 남쪽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베트남은 무력 통일되었다. 남쪽 베트남의 수많은 인사들이 처형당하고 희생당한 것은 물론이고 그 바람에 이른바 ‘보트 피플’이 동남아시아의 바다와 태평양을 방황하고 다녀야 했다. 



왜 1968년이었던 것일까?



이 대목에서 왜 1968년에 이르러 미국은 급작스럽게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큰 테두리에서 말하면 그 해답은 1968년은 1953년부터 시작된 미국 국운의 60년 흐름에 있어 15년이 경과한 때, 즉 여름이 시작되는 때인 立夏(입하)였기 때문이라 하겠다. 



하는 新舊(신구)가 교체되고 동시에 가장 빈한한 때이기에



해마다 5월 5일 경에 찾아오는 立夏(입하)의 때는 작년의 묵은 기운들이 최종적으로 사라지고 새해의 기운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결정적 교체의 시기인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입하의 때야말로 가장 빈한한 때이기도 하다. 가을에 수확한 식량이 다 떨어지고 겨울에 심은 보리는 미처 익지 않은 때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1968년으로서 입하의 운을 맞이한 미국은 사실상 국고가 비고 경제가 침체일로에 빠졌던 시점이었다. 참고로 금 보유와 연결되던 달러 체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때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 1968년으로서 미국은 탈탈 털렸던 때란 얘기이고, 거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월남전 수행이었다는 말이다. 


이는 미국만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라마다 국운의 立夏(입하) 무렵이 그 나라가 가장 가난한 때가 된다. 사람 역시 그렇다. 


글을 더 이어가자니 분량이 많아졌다. 다음 글에서 입하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춘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입하를 얘기하니 조금 이른 감이 들지만 이 점에 대해서도 다음 글에서 얘기하겠다.


塵土(진토)의 나라 중국



1994년 4월 나는 한 달 여에 걸쳐 중국을 여행했다. 중국과 수교한 지 만 2년도 안 된 때였다. 그 직전 겨울 12월 직장을 무단히 그만 둔 뒤 이제 중국길이 열렸으니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해볼 생각을 했다. 무려 25년 전의 일이다. 


사업기회를 찾기 위해 일단 먼저 중국을 한 번 둘러보고 싶었다. 이에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자신감 하나로 카메라와 가방 하나 들고 홀로 떠난 여행이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산동성의 웨이하이로 건너가면서 내 여행은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과 무역을 하던 선배의 조언대로 필수 품목은 물 티슈였다. 수시로 한 장 씩 꺼내어 손과 얼굴을 문질렀다. 그럼에도 호텔이나 숙소에 들어가면 머리카락이 뻣뻣해져있었고 하얀 남방셔츠는 깃과 소매가 시커멓게 변해있었으니 과연 塵土(진토)의 대륙이었다. 


중국 화북지방, 그러니까 양자강 북쪽은 푸른 보리밭을 제외하면 초록빛을 쉽사리 찾기 어려웠다. 우리처럼 푸른 강산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황갈색의 거대한 땅덩어리였다. 어딜 가나 희부연 흙먼지 바람이 일고 있었고 그나마 길가의 가로수들도 먼지를 잔뜩 덮어쓴 채 메말라 있었다. 어딜 가나 물은 희귀한 자원이었다. 


그 이전인 1986년 일본에 다녀온 뒤 나는 우리나라가 너무 지저분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중국을 다니면서 생각이 완전 바뀌었다. 일본이 지나치게 깨끗한 것이고 우리나라 역시 중국에 비하면 너무나도 깨끗한 나라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이 부족하고 오염된 나라 중국



중국에선 어딜 가나 사람들이 끓인 물, 그들 표현으로 카이수이, 한자론 開水(개수)를 마시고 있었다. 젊은 날 누구나 으레 그렇듯이 냉수만 마시던 나였지만 중국에선 큰 일 날 일이었다. 배가 냉해져서가 아니라 그냥 찬물은 장염의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찬물을 마시고 싶으면 값이 꽤 되는 광천수를 사셔 마셔야 했다. 


논과 밭 사이의 개울 역시 전혀 맑지 않았고 강이라고 해봐야 수량도 얼마 없을 뿐 아니라 그야말로 시커멓게 오염된 물이었다. 냄새도 아주 역했다. 가정이나 공장들은 오폐수를 그냥 강이나 개천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 말로 어지간한 시골의 우물마저도 그냥 마실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달 보름에 걸쳐 중국을 대충 한 바퀴 돌아온 나는 장차 중국이 경제적으론 엄청나게 발전할 것 같지만 환경문제는 당분간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좋아질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을 했다. 



환경오염,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 건



그 이후 베이징에 꽤나 장기간 머물기도 하고 또 여러 차례 다녀오면서 바라본 중국은 장차 환경문제가 중국의 경제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되리란 생각을 더욱 더 굳히게 했다. 


내가 1994년 중국에 들렀을 땐 지하수나 우물을 식수로 쓸 수 없다고 했는데 2012년 무렵이 되자 중국 친구가 해주는 얘기인 즉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괜찮았다 하면서 지금은 대부분의 우물물이나 지하수가 공업용수로도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더더욱 나빠진 셈이다. 


중국은 20년 사이에 눈부신 공업화를 통해 나름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을 허공에 배출하고 있고 수자원 역시 썩은 물이 되고 말았다. 



궁하면 더 큰소리치는 중국



오늘 아침 뉴스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왔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냐면서 우리 대통령의 중국 책임론 발언을 마치 꾸짖듯이 반박하고 있었다. 


루캉, 陸慷 이란 이름의 대변인인데 이 친구는 늘 권위적인 외모에 권위적인 목소리로 敎示(교시), 즉 가르치는 말투를 쓴다. 그 바람에 중국 공산당 고위간부들이 당의 절대권위를 잘 살려낸다고 하면서 무척이나 아끼는 관료이다. 


중국은 이런 나라이다. 공산당 일당독재는 인민에 대한 당의 절대적인 권위 하나로 가능한 것이기에 가령 이번 루캉의 강경한 발언에 대해 중국 친구들과 속내를 트고 얘기해보면 이렇게 말할 것이 뻔하다. 전 중국 인민이 지켜보는 공식적인 자리이기에 난처한 질문이면 더 세게 맞받아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우리 중국인들도 미세먼지 때문에 맘대로 숨을 못 쉬고 사는데, 원인을 떠나서 당장 뾰족한 해법도 없는 마당에 너희들 조그만 이웃까지 대국인 우리의 체면을 구기려 하니? 하는 것이 루캉 발언의 속내이다. 실로 어이가 없지만 그게 중국이다. (중국이 저렇게 고자세로 나오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선 글 말미에 명하겠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더하면 더 했지 절대 중국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이른바 최고 존엄의 나라가 아닌가. 그러니 중국보다 한 수 더 뜬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우리로선 이웃에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상대하기도 까다로운 북한과 중국을 두고 있는 셈이다. 


나 호호당은 몇 년 전부터 공기의 질을 즉각 파악할 수 있는 사이트를 거의 매일 들여다보고 있다. Airvisual Earth 라고 하는 사이트. 공기의 질은 물론이고 바람의 방향까지 보여주기에 미세먼지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최근 최악의 대기오염이 지속되면서 문 대통령의 입장이 제법 난처한 지경이다. 바로 미세먼지 30% 감축 공약 때문이다. 재작년 그런 공약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저건 실수하는 건데 싶었다.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 참모의 잘못이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대기오염의 대략 60% 정도가 중국발이고 우리 것이 40%라고 할 때, 30%를 감축하려면 우리 자체의 먼지 발생을 1/4 수준으로 낮추어야 가능하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중국의 에너지 정책



우리 스스로 제 아무리 미세먼지 발생원을 낮춘다 해도 중국발 미세먼지는 앞으로 더더욱 늘어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사실 암담한 심정이다. 중국의 경우 전력생산의 70%가 석탄발전이고 게다가 석탄발전 용량을 현재보다 25% 정도 더 늘리기 위해 추가로 2-3년 이내에 수백 기의 석탄발전소를 더 세울 예정이라 한다. 


더 문제는 석탄발전소를 짓는 위치가 대부분 중국의 동부지역 바닷가 쪽이란 점이다. 그러니까 우리와 더 가까운 쪽이 된다. 그래야만 서풍이 불면 미세먼지가 우리의 서해상으로 빠져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쪽으로 더 많은 미세먼지를 날려 보낼 것이란 얘기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 측의 항의에 대해 무슨 군거가 있어서 그러냐고 마구 무시하며 대드는 이유 또한 그런 까닭이다. 만일 중국이 미세먼지에 대해 중국 원인이 크다는 것을 인정할 것 같으면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중국의 에너지 수급 계획에 근본적인 차질을 줄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적 채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얘기이다. 


그렇기에 미세먼지의 중국 책임 문제는 나 호호당 생각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중국이 결코 절대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여긴다. 마치 북한이 오랫동안 핵개발에 대해 일관되게 거짓말을 해온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중국 요인으로 인하여 당분간은 해법이 없으니



따라서 하고픈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더더욱 화력발전과 석탄 난방에 의존하는 중국 요인으로 인해 장차 장구한 세월 동안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에너지 수급은 국가 경제의 기본 동력에 관한 것이고 그 문제를 중국은 화력발전과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이상 서해 바다의 폭이 지금보다 두 배로 넓어지지 않는 한 미세먼지 문제만큼은 중국이 향후로도 우리의 요구와 항의를 들어줄 입장이 아닌 까닭이다. 


물론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일이다.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선 사실 10년 전부터 얘기하고 싶었으나 해법이 없는 문제란 점에서 글로 쓰지 않았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 차라리 희망이다.



만 한 가지 나 호호당이 기대하는 구석이 있기에 말을 한다.


중국 국운으로 볼 때 중국 경제는 장차 수년 안에 급격한 저성장 국면을 맞이하거나 아니면 붕괴의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빠르면 내년부터이고 늦어도 5년 뒤가 되면 대단히 엄중한 상황이 중국을 엄습해올 것이란 점이다.

 

그럴 경우 에너지 수요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니 그나마 우리 하늘로 불어오는 미세먼지가 다소 줄어들게 되지 않겠느냐는 희망이다. 물론 중국이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많이 상하겠지만 말이다. 


2000년대 중반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거란 말을 들을 때부터 나 호호당은 멀지 않아 중국발 미세먼지의 폭풍이 한반도를 뒤덮어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그냥 흙먼지로 해서 塵土(진토)의 나라였던 중국이었는데 이젠 석탄에 기반한 산업화로 인해 또 다른 차원의 유해한 塵土(진토)를 우리가 마셔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별 다른 기대가 없었던 이번 하노이 회담

 

 

나 호호당은 이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처음부터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결렬될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으나 사실상 의미 없는 회담으로 끝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 전망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조금 있다가 얘기할 생각이다.)

 

 

이번 회담에선 구체적인 성과가 있었어야 했기에

 

 

작년 싱가포르에서 정상 회담은 비핵화를 해보자는 원칙적인 합의였지 그 이상의 내용이 없었다.

 

그 바람에 트럼프로선 약간 체면을 구겼고 미국의 야당으로부터 김정은에게 속고 있다는 비판을 꽤나 받았다. 그렇기에 이번 회담은 트럼프에게 있어 뭔가 실질적인 진도, 그러니까 비핵화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까지 진척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정상회담이 되어야 했다.

 

이번 회담 결과 알려진 바, 북한의 의도는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1개 중에서 5개를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북한 측 주장인 즉 일부 해제라고 했지만 그게 모두 2016년 이후의 강력한 신규제재로서 미국 입장에서 볼 때 그걸 풀어주는 것은 전면 해제나 다름이 없다. 뿐만 아니라 미국 입장에서 영변 해체만으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트럼프는 최근 진행된 실무협상에서 원하는 바의 진척이 없는 것을 보고 이번 회담에선 사실상 합의를 포기했던 모양이다. 대신에 최후의 승부수를 준비했다, 만찬장에서 제시된 볼턴 보좌관의 서류가 그것이었다. 빅딜을 할 거면 하고 아니면 더 이상의 정상 간 합의는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 김정은 측에서 빅딜에 응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북미 간 정상회담은 없을 공산이 크다.

 

이로서 비핵화 협상 자체가 결렬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내용과 북한의 그것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여간해선 진척이 어렵게 되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교착 상태가 시작된 셈이다.

 

 

너무나도 일관된 김씨 3대의 장기전략

 

 

이쯤에서 북한의 전략을 한 번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북한의 전략은 아주 명확하다. 핵과 미사일을 만든 다음 그것을 지렛대로 해서 절대 강자 미국을 상대로 담판을 짓고 그로서 북한 체제의 안전과 번영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년 3월 이전까지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지속하면서 긴장상태를 높여가던 김정은의 깜짝 카드, 즉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담판을 지어보자는 제안은 돌발적으로 만들어진 전략이 아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으로부터 부친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에게까지 근 30년에 걸쳐 이어져온 김씨 3대의 일관된 전략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런 면에서 비핵화 협상은 북한 측에서 전혀 그만 둘 마음이 없다.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온 핵과 미사일의 목적 자체가 미국을 상대로 하는 담판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선 미국이 초라한 독재국가 북한에게 눈길을 줄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현저한 입장의 차이, 깊어지는 김정은의 고민

 

 

따라서 이번 담판 결렬로 인해 이제부터 김정은의 고민이 본격화되었을 것이다.

 

가진 것이라곤 핵과 미사일밖에 없으니 그걸 최대한 활용해서 얻을 것 다 얻고 취할 것 다 취해야만 하는데 미국은 초장부터 빅딜, 그러니까 다 내려놓을 것 같으면 잘 봐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것 같으면 그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영변을 폐기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 능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 마당에 핵심 제재 5개를 풀어주었다가 나중에 북한이 또 다시 예전의 입장으로 회귀할 것 같으면 그 때 가서 또 다시 안보리 제재 과정을 힘들게 답습해야 할 것이니 그렇다. 그럴 경우 또 다시 북한에게 당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미국의 위신과 체통이 서지 않는다.

 

 

북한은 크레딧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사실 북한의 접근법은 하나씩 주고받는 과정에서 상호 신뢰를 확보해가자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그런 것들이 다져진 연후에 언젠가 궁극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수십 년 동안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오는 과정에서 북한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고 블러핑을 쳐왔다, 그런 까닭에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신용 즉 크레딧이란 무형의 자산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나마 트럼프가 많이 밀어주는 편이다.

 

양자의 입장이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그렇기에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현실과 마주치게 된 김정은이다.

 

 

자연순환의 이치에 근거하여 살펴보는 비핵화 전망

 

 

자, 이제 그러면 나 호호당의 생각과 전망을 얘기한다.

 

비핵화 과정에 대해 자연순환의 이치를 적용해볼 것 같으면 빠른 프로세스가 있고 중기적인 프로세스가 있을 수 있다.

빠른 것은 6개월에서 7.5개월 안에 끝나는 과정이다.

 

작년 3월 김정은의 제의로 시작된 비핵화 협상이 빠른 과정을 거쳤다면 6월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있은 뒤 9월에서 11월 중순까진 이른바 빅딜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작년 9월경부터 협상은 오히려 교착상태로 들어갔기에 빠른 프로세스는 이미 작년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중기 프로세스가 된다. 이는 30개월에서 36개월에 걸치는 과정이다.

 

작년 3월부터 시작된 협상과정이니 이번 회담은 12개월이 경과한 시점이 된다. 하지만 중기 프로세스가 1년 만에 타결되는 법은 자연순환의 이치 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 하노이 회담에 대해 나 호호당은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잘 해야 중간의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회담으로 끝나겠구나 싶었다.

 

36개월짜리 중기 과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때는 24개월, 즉 2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이 무렵의 상황을 보면 결말을 거의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다.

 

따라서 내년 3월을 전후한 때가 이번 북미 비핵화 협상의 성패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기가 될 것이란 얘기를 한다. 그때 가서 실질적인 진척이 이루어질 경우 전체적인 마무리는 2021년 3월, 즉 36개월이 흐른 시점에 가서 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비핵화 협상이 잘 될 것인지 아니면 실패할 것인지에 대해선 나 호호당이 함부로 예단하긴 어렵다. 다만 이번 협상의 진행을 지켜보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이고 빠른 과정이 실패했기에 중기 프로세스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그럴 경우 내년 3월경에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얘기이다.

 

 

60년 순환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전망

 

 

그러면 이제 북핵 문제에 대해 좀 더 큰 시간 스케일의 차원에서 정리해보자. 큰 흐름을 볼 경우 15년 단위로 체크하는 방법이 아주 유효하다.

 

1976년경으로 거슬러간다. 그 무렵은 우리나 북한 모두에게 있어 國運(국운) 상으로 향후 먹고 살 씨를 뿌려야하는 파종의 때였다. 다행히도 우리 대한민국은 당시 중화학 공업에 대한 거국적인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김일성은 별다른 일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 문제가 김일성의 잘못인지 아니면 사회주의라는 체제의 문제인지 그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로서 남북의 체제경쟁은 사실상 1976년 무렵으로서 남한의 승리로 귀결이 났다는 점이다.

 

15년이 흘러 1991년이 되자 모든 상황은 확연해졌다. 우리 남한은 중화학 제품의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력이 나날이 신장되었던 반면 북한으로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1991년 말 소련이 붕괴했으니 북한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덩달아 중국마저 대한민국과 친해지면서 급기야 1992년에 수교를 했다. 북한으로선 중국의 일대 배신이었다.

 

이에 김일성은 체제의 안전을 위해선 핵 개발밖에 없다는 단안을 내렸다. 바로 북핵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북한은 NPT에서 탈퇴했고 이로서 제1차 북핵 위기가 발발했다. 하지만 경제는 더더욱 낙후되었고 이에 설상가상 ‘고난의 행군’ 시절이 찾아들었다.

 

김정일은 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햇볕 정책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여전히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 정보당국에게 탄로 나면서 우리 측의 북한 지원은 미국에 의해 저지되었다.

 

1991년으로부터 다시 15년이 흘러 2006년, 급기야 북한은 핵실험을 단행했고 이로서 핵개발의 완성을 과시했다.

 

그러니 다음 단계는 2006년으로부터 15년이 흐른 시점, 즉 2021년이 된다. 앞에서 설명한 비핵화 중기 프로세스가 36개월짜리라고 했는데, 그 또한 최종 시점이 2021년 3월이 된다.

 

 

중기와 장기가 맞물리는 2021년을 기다려보자.

 

 

따라서 2021년은 45년에 걸친 북한체제의 서바이벌 게임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는 때이자 작년 3월에 시작된 비핵화 협상의 최종 시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2021년 3월은 장기 흐름과 단기 흐름이 맞물리는 때란 얘기이다.

 

참고로 15년 단위로 살펴보는 방법의 이론적 근거는 60년 순환에 있어 15년은 하나의 계절을 뜻하기 때문이다. 1년에 있어 4계절은 각각 3개월인 것과 같다.

 

그러니 현재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이지만 너무 실망할 일은 아니라 본다. 일이 되려면 도중에 진통도 으레 따르는 법이니 그렇다. 내년 3월을 기다려서 그때 확인해보면 되겠다. (하지만 나 호호당이 온 감각을 동원해서 지켜보는 때는 금년 9월에서 11월이 된다, 그때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분수령인 까닭이다, 그게 왜 분수령이 되는지에 대해선 글의 분량 상 생략한다.)

 

알림: 강좌안내란에 고급반 강좌 개최를 공지하고 있다. 아직 여유가 있기에 그간 기초이론을 수강하신 분들의 많은 참여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