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일들이 구체화되고 있으니

 

 

작년 7월에 “2019년 5월, 우리 경제의 변곡점”이란 글을 올린 바 있다. 그리고 금년 5월의 “우리 경제, 이제부터가 정말 어렵다”는 글에선 ‘올 8월 壬申(임신)월이면 보다 더 수상한 국면이 연출되기 시작해서’란 글로 보충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8월이 되자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가 현실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간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려온 미국은 중국 위안화가 급락세를 보이자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으니 환율조작국 지정이 그것이다.

 

무역전쟁에 이어 미중간의 환율전쟁이 시작된 것이니 전선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1992년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가 2년 만에 풀어주었는데 이번에 다시 조치를 취했으니 25년만의 일이다. 즉 여간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여기에 북한은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방식, 저고도 비행을 하기에 요격이 불가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연일 쏘아대고 있다. 대체 며칠 사이에 몇 발을 쏘아댄 것인지 계산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거야 우리 일이 아니라는 자세이다. 게다가 7월 말엔 러시아까지 중국과 공동으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도발을 해왔다.

 

그런가 하면 미국은 8월 2일자 중거리핵전력조약(INF)폐기와 거의 동시에 우리나 일본 등지에 중거리 미사일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배치했으면 좋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중국은 즉각 ‘그러기만 해봐라!’ 하면서 우리를 향해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 한반도가 세력들의 각축장이 되어가는 형국이라!

 

 

우리 주변의 4강, 즉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가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치열한 패권 다툼의 角逐場(각축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내수는 갈수록 불황인데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또한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려워졌다. 여기에 안보를 비롯한 대외관계 역시 亂麻(난마)처럼 얽히고 꼬여들고 있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경고로서 미사일을 쏘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결국 한미합동훈련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한반도에서 미군의 철수와 한미방위조약을 철폐하라는 주장이고 그런 것이 되지 않는 한 비핵화는 없다는 얘기이다. 우리로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비핵화는 점점 멀어져가고 안보 위협은 더욱 가중되기 시작했다.

 

또 보자.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우리나 일본에 빠른 시간 안에 배치하고 싶다고 했다. 방어 미사일인 사드만 해도 중국이 저 난리였는데 공격형 미사일의 배치? 참으로 난감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더 있다. 우리가 결국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하자, 이에 결과적으로 미국이 일본에 배치한다고 했을 경우 미국이 우리보다 일본 쪽에 더 기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청와대 비서실장은 검토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지만 그건 최대한 현 정권에선 하지 않겠다는 얘기일 뿐, 중요한 것은 미국이 그런 요구를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우리의 어려운 입장을 활용해서 일본과 우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높이고자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트럼프는 농산물 보조금 때문에 WTO가 쓸모없는 퇴물이 되었다고 하면서 개도국 혜택을 활용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 적어도 미국만큼은 개도국 대우를 해주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슬쩍 지나가는 말 같지만 이 또한 엄청난 폭탄이다. 장차 우리 농수산 정책에 대한 엄청난 숙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순식간에 닥쳐온 惡材(악재) 앞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성장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어려운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이번만큼 동시에 악재들이 저처럼 산더미가 되어 터져 나왔던 적은 없었다. 정말이지 산 너머 또 산, 첩첩 산중으로 접어들고 있다.

 

창졸간에 생겨난 상황 앞에서 나 호호당은 지난 한 주 동안 글을 쓸 기력을 잃을 정도였다. 실로 답답한 것은 지금의 어려운 문제들이 단기간에 우리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될 사안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 닥칠 많은 것들을 속 시원히 털어놓고도 싶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고 그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얘기만 드린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2022년이 되면 우리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바닷가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태가 올 것이라 보는데, 나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글로벌 구도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원조와 시장개방, 기술 발전으로 인해 전 세계는 엄청난 번영과 성장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 그 흐름이 뒤바뀌고 있다. 미국의 유일한 전략적 취약점이었던 에너지 문제가 셰일 발굴로 인해 해결되었기에 미국은 더 이상 다른 대륙과 나라들에 대해 비위를 맞춰줄 이유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지금의 변화는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현재 우리의 국운 흐름은

 

 

금년 10월 甲戌(갑술)월을 기점으로 우리 국운은 해마다 양력 1월 5일 경에 찾아드는 小寒(소한)의 때가 시작된다. 그리고 2022년 4월 甲辰(갑진)월로서 1월 20일 경의 가장 추운 때인 大寒(대한)이 된다.

 

한 해를 통해 가장 추운 때가 소한이고 대한인 것인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 이를 달리 풀이하면 우리 스스로가 가진 열에너지, 줄여서 활력이 가장 낮은 수준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가 생길 경우 그에 대처하고 대응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나라의 기초 체력이 가장 낮은 단계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면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경우 자력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주변의 누군가가 나서준다면 그야말로 너무나도 고맙다. 사람은 돕고 사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국운의 에너지가 낮아지면 그간에 도와주던 주변의 조력도 사라져서 그야말로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 시기가 금년 10월부터 5년에 걸쳐 이어진다는 말을 지금 나 호호당은 하고 있으니 내 속인들 좋겠는가 말이다.

 

이런 때를 달리 표현하면 絶(절)의 때라고도 한다. 절은 끊어진다는 뜻이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지내게 되고 문상객들이 찾아오지만 결국 관에 담겨져서 산에 가서 묻힌다. 묻히고 나면 문상객은 물론이고 가까운 이들까지 다 산을 내려갈 것이다. 그러면 망자는 차가운 땅 속에서 홀로 내가 왜 여기 있는 것이지? 하고 물어보는 때를 운세 상으론 絶(절)이라 하는 것이다.

 

금년 10월부터 우리 대한민국은 그와 같은 孤立無援(고립무원)의 때로 진입한다고 보기에 나 호호당의 시름도 깊어간다.

 

 

앞일을 살피는 것은 강의 상류를 보는 것과 같아서

 

 

앞날을 본다는 것은 마치 강의 상류를 살피는 것과 같다.

 

당장 내 눈앞의 서울을 지나가는 한강의 수량이 많다 해도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한강의 상류가 마를 것이고 이에 시간이 지나면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도 결국 바닥을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이에 비유해서 얘기하자면 아직은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의 물이 예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그런대로 여전히 풍성한 편이다. 하지만 금년 10월부터 서서히 물줄기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2022년이 되면 바짝 말라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쌀쌀맞게 이해타산을 따지는 미국, 나름 컸다고 으스대면서 연신 우리를 향해 호통을 치는 중국, 경제보복을 가해오는 일본, 그 판국에 숟가락을 얹어보겠다는 러시아, 또 그 와중에 비핵화를 내흔들면서 우리의 안보 환경을 흔들고 나선 북한이다. 글로벌은 물론이고 우리 주변의 기류가 저렇게 변했다.

 

이 모두 내 눈엔 한강 상류에 비가 내리지 않아 나날이 말라가는 한강의 모습과도 같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첩첩한 산중의 문턱에 들어서는 우리 대한민국이고 상류의 물이 빠른 속도로 말라가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당분간은 이런 내키지 않는 얘기는 올리지 않을 작정이다.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오늘 글을 썼을 뿐이다.

이제 바깥세상으로 걸음을 옮기는 아내

 

 

오후 무렵 작업실에 나올 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내가 차로 태워다준다. 차안에서 아내가 말하길 “올 해는 참 신기해, 오랫동안 못 보던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되네, 아무튼 좋은 일이야” 하는 것이었다.

 

그냥 빙긋 혼자 웃음을 지었다. 속말로 그럴 때가 되어서 그런 거지 뭘.

 

아내는 올해 운세가 小滿(소만)인 까닭에 그간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연락이 닿고 또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소만이란 60년의 흐름 속에서 17.5년이 흐른 때. 해마다 양력 5월 20일 경의 때가 소만인데 이를 60년의 흐름으로 환산하면 그렇게 된다. 이 무렵이면 모든 나무의 새잎이 다 나와서 세상이 온통 푸르다, 新綠(신록)의 때인 것이다. (반대로 이때까지 새 잎이 나오지 않으면 그 가지나 나무는 죽은 나무라 보면 된다.)

 

 

살다 보면 오랜 시간 잠수를 타기도 하는 법이어서

 

 

우리가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 세계와 담을 쌓을 때가 있다. 이럴 때 흔히 시쳇말로 잠수를 탄다고 하지 않던가 말이다.

 

자신만의 세계로 沈潛(침잠)하거나 바깥 세상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이 시들해지고 사라져서 자신의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된다. 또는 형편이 어려워지면 자존심이 상하는 바람에 연락을 끊고 지내기도 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주변과 멀어지는 때가 있기 마련이란 얘기이다.

 

이런 때를 크게 보면 60년의 흐름 속에서 30년이 된다. 물론 바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때 역시 30년이다. 모든 것은 균형인 까닭이다.

 

이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볼 것 같으면 잠수를 타기 시작한 직후는 사람들도 모르고 본인 스스로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 서서히 사람들로부터 잊혀져가기 시작한다. (독자 역시도 생각해보면  얼굴 못 본지 오래된 친구나 지인이 생각해보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잠수 타는 때는 60년 흐름에 있어 겨울이 시작되는 立冬(입동)으로부터 30년이 흘러 여름이 시작되는 立夏(입하)의 때까지이다. 겨울이 시작되면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해서 이듬해 봄이 되어야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30년에 걸친 길고 긴 과정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 혹은 바깥과 단절되어 가는지 사실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아주 외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문득 알아차리게 된다.

 

 

침잠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으니

 

 

이 과정을 현실에서 찾아보면 이렇다.

 

가령 사업에 여러 번 실패해서 더 이상 손을 내밀 곳도 없어지면 스스로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지내기도 하고, 심한 경우 텔레비전의 나름 인기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산중에 홀로 기거하기도 한다.

 

때론 뜻이 꺾인 나머지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에 세상과 담 쌓고 지내기도 하며, 영락한 나머지 동문회 같은 곳에 얼굴을 내미는 법이 없기도 하고 자주 보고 지내던 친구들과 연락도 일부로 그런 것은 아니라 해도 끊고 지내기도 한다.

 

나 호호당의 아내 역시 남편을 잘 만난 탓(?)에 가세가 빈곤해지자 친구들 동창들, 친척들과 점차적으로 연락을 끊기 시작했고 때가 되자 아예 두문불출의 세월을 보냈다. 아내의 경우 60년 흐름에서 입춘 바닥은 2002년이었는데 그 무렵부터는 주변과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2017년 운명의 여름 즉 立夏(입하)가 되자 조금씩 바깥세상을 염탐하기 시작하더니 올 해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주변 세계와 交信(교신)을 시도하고 있는 아내이다. 나 살아있어, 오랜 만이야, 친구야 하면서.

 

이에 아내는 앞에서처럼 밝은 음성으로 “올 해는 참 신기해, 오랫동안 못 보던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되네, 아무튼 좋은 일이야”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바깥과 연락할 마음이 생기니 또 저쪽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는 것이니 이쪽에서 나서면 저쪽에서도 응하는 세상의 이치. 아내는 바야흐로 신록으로 무장한 채 또 다시 세상 밖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때와 들어앉는 때의 이치

 

 

60년 순환에 있어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하는 시점은 입춘으로부터 15년이 흐른 입하의 때이지만 정작 나갔음을 확인하는 시점은 그로부터 2.5년이 경과한 소만의 때이다. 그와 반대로 속으로 침잠을 시작하는 때는 입춘으로부터 45년이 지난 입동의 때이지만 정작 침잠했음을 확인하는 때 역시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소설의 때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역시 아주 오래 전에 소식이 끊긴 친구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와서 반갑게 해후한 분도 있을 것이니 그런 경우 그 친구의 운세가 이제 여름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라 보면 된다. 반대로 스스로 서서히 주변과 연락을 줄여가는 분도 있을 것이니 그런 독자는 운세가 한창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고 보시면 된다.

 

 

국가 역시도 그러하기에

 

 

이는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 역시 그러하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도 세상 바깥으로 나가기도 하고 안으로 들어와 침잠하기도 한다.

 

살펴보면 우리의 국운으로 볼 때 1964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1979년 입하부터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바깥으로 나가서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되었음을 확인한 시점은 1981년 가을에 “서울 하계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었을 때였다.

 

그런 의미에서 1988년에 개최된 서울 올림픽은 글로벌 코리아로 향하는 진정한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1989년에 출간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자전적인 책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또한 바깥세상에 나가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는 신념을 담은 책으로서 당시의 시대정신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까지 우리 경제의 든든함 버팀목이 되고 있는 반도체 사업이 시작된 것이 1983년 초였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제 한창 바깥으로 나가려던 그 시점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시로선 실로 무모하리만큼 어려운 결정이었던 반도체 사업이었다. 당시 반도체 시장은 미국과 일본이 독주하던 시장이었는데 여기에 삼성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당연히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칩 분야에서 이익을 내기 시작한 것은 사업 착수 후 무려 7-8년이 지난 뒤였고 1994년부터 일본의 NEC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본격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삼성반도체 사업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부강하게 만든 1등 공신이었다.

 

이처럼 해외로 글로벌 세계로 힘차게 약진했던 우리였으나 2009년 국운의 입동이 되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안으로 침잠하기 시작했고 2012년부터 우리의 시선은 바깥세상이 아니라 우리 안의 문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진취적인 대한민국, 다이나믹 코리아는 잊혀가고 우리 안에서의 떡 나누기 갈등에 더 골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얘기한 반도체 역시 약간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간 우리의 수출 첨병 역할을 반도체 역시 시작점인 1983년으로부터 36년이 흐른 올해 2019년에 이르러 일종의 브레이크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30년이면 반전이 시작되고 36년이면 제동이 걸리는 시점이기에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이 급격하게 부진해지는 일은 없겠으나 예전과 같은 활력을 보여줄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더불어 참으로 묘한 것은 우리가 바깥으로 나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1988년의 서울 올림픽으로부터 30년, 즉 60년의 절반이 흐른 2018년의 시점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겨울 올림픽은 사실 할 게 못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 경제 역시 올 해말이나 내년 초부터 많이 어려워지면서 2022년이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자금의 이탈이 시작될 것이다. (이 대목이 궁금하신 분은 금년 5월 13일자로 올린 “2022년부터 우리 증시의 외국인 투자가 줄어들 것이니”란 글을 참조하시면 되겠다.)

 

한 때 활달하던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도 어느새 내향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또 다시 힘차게 바깥으로 나서게 될 날 물론 올 것이다.

 

 

이완과 수축

 

 

한 번 움츠리면 한 번 펼치는 것이고, 펼치고 나면 또 다시 수축하는 것이 기본 이치이다. 陽(양)의 기간 30년이고 陰(음)의 기간 30년인 것이다.

철도가 보급되던 시절의 얘기.



영국의 위대한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영국 북서부의 아름다운 호수 지방에 철도가 부설된다고 하자 크게 경악했고 신문에 반대 의사를 여러 번 피력했다. 하지만 결국 아름다운 호수 지방에도 철도는 놓였고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들여서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여전히 경관도 아름답다. 


120년 전 중국 청제국의 어느 고위관리는 철도가 보급되면 수레를 끌고 노를 젓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반대했다. 하지만 오늘날 철도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운송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역시 철도가 놓일 때 풍수를 망치고 땅의 맥을 끊어 놓는다는 우려 때문에 지역의 儒林(유림)들과 대지주 계층을 중심으로 대거 반대에 나섰다. 특히 대지주가 많은 호남 지방의 반발이 심했다. 그러나 훗날에 와선 왜 일본 총독부는 경부선을 중심으로 하고 호남선은 대전에서 합류하게 했느냐며 오랫동안 서운하게 여길 정도였다. 



인공지능(AI) 역시도...



오늘날의 인공지능(AI) 또한 그렇다. 


장차 수많은 사람의 밥줄을 끊어 놓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처음에 알파고가 바둑시합에서 이세돌을 꺾었을 때 깜작 놀랐다. 바둑 좀 둘 줄 아는 나 호호당 역시 컴퓨터가 복잡 미묘한 형세 판단을 요구하는 바둑이란 게임에서 인간을 넘어설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뒤 바둑 인공지능의 성능이 더욱 좋아져서 지금은 프로 최고수들도 아예 2점을 깔고 둘 정도가 되었지만 그저 당연시한다. 


분명 그럴 것이라 본다. 장차 인공지능이 수많은 직업들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또 다른 직업들이 생겨나서 그 공간을 메워 나갈 것으로 기대해본다. 


물론 보장은 없다. 미래를 어떻게 알겠는가? 말이다. 만일 인공지능을 포함한 컴퓨터 기술이 기존의 직업을 없애는 숫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많다면 어떻게 될까? 진짜 그럴 것 같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들쳐 일어나서 또 다시 기계파괴운동과 反(반)자본주의 운동을 펼치게 되겠지 싶다. 러다이트 운동. 



혁신과 변화라고 하는 것



혁신이나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승자를 만들어내지만 당연히 그만큼의 패자를 만들어낸다. 


최근 정부가 ‘타다 택시’의 명줄을 사실상 눌러 놓았다. 정부가 내년 총선 때문에 기존 택시업계와 종사자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와 여당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 


얼마 전 작고한 이탈리아의 작가,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그 양반의 다른 책에서 인간은 혁신 앞에서 대체로 무능하지만 그걸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정치’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대목이 있어 나름 흥미로웠다. 이탈리아는 정치가 세다. 그렇기에 개혁은 약하다. 


기존의 먹고 사는 틀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사실 전혀 혁신이 아니다. 만일 생명과학자들이 사람의 이빨이 한 번만 갈이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갈이가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해낸다면, 대략 50세 무렵에 한 번 더 새 이빨이 나올 수 있도록 한다면 치과의사들의 미래는 그야말로 암울해질 것이다. 물론 임플란트 업체들은 모조리 소멸될 것이고. 


치과와 관련된 사람들만 제외하곤 모두에게 엄청난 복리후생이 되겠지만 적어도 그 쪽 사람들은 망한다. 


혁신이란 것, 말이 좋아서 그렇지 기존의 삶을 위협한다. 기존에 만들어진 ‘먹고 사는 사슬’을 일단은 파괴한 뒤에 새롭게 형성해내기 때문이다. 



30년이 흐르면



노래방이 사양길이라 한다. 일본의 가라오케 기술이 국내에는 1991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세상 만물은 대략 30년이 흐르면 반대되는 흐름이 생겨나기 마련인 까닭이다.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하기에 그 절반인 30년이 경과하면 반대의 운동이 시작된다. 


예전에 일본 소니가 ‘워크맨’이란 이름의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만들었는데 정말이지 전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Walkman, 걸어 다니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최초의 모바일 뮤직이었다. 1979년에 출시되었다. 그런데 31년이 흘러 생산이 중단되었으니 MP3 때문이었다. 이 역시 30년만의 반전이다. 위풍당당하던 예전의 소니는 이제 간 곳이 없다, 초라해졌다. MP3 역시 플래시 메모리 가격의 급격한 인하로 대거 보급되었지만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는 것은 크게 변함이 없지만 그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 기업들이 앞서가고 있다. 이 역시 과거를 돌이켜보면 1980-1990년대엔 일본의 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쓰 등의 기업들이 선도했고 2000년대 들어선 미국의 인텔이 단연 으뜸이었다. 


순위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 것이고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은 현재 개별 소자 분야에서 그런대로 해가고 있을 뿐 선두 자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가 최고이지만 이건 그냥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운 적은 마진의 하청기업일 뿐이다.)



결국 순환하고 있기에



이처럼 모든 것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변해간다. 그렇기에 지금의 우려가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으로 바뀌고 현재의 낙관이 비관으로 변하기도 한다. 기존의 것이 유지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생겨나고 혁신의 물결이 닥치기도 한다. 


이는 모든 것이 일정한 시간 간격을 갖는 거대한 순환의 틀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워낙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19세기 중반 “톰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의 마크 트웨인이 말하길 역사가 반복되는 일은 없지만 흐름은 여전히 반복된다고 했다. 


그렇다, 그게 바로 순환이다. 순환의 정확한 법칙과 규율을 알아내진 못 했어도 오래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은 순환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해왔고 또 글로 남겼다. 


이에 나 호호당은 그 주기가 일정하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특히 60년에 걸친 순환이 존재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있어온 60 甲子(갑자), 즉 60진법 때문에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고 또 그것이 실재 순환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나 호호당은 실로 무수히 많은 검증작업을 통해 알아내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상위 주기인 360년에 걸친 순환의 개념은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로부터 전해진 大年(대년), great year 란 개념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이 역시 역사 검증을 통해 실재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물론 자세한 논의는 많은 복잡한 얘기가 있어서 생략한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기에 60년에 걸친 순환이 있다는 얘기를 주로 하지만 그 60년 안에는 24번에 걸쳐 변화해가는 서로 다른 단계가 존재하며 더 자세히 나누면 10개월마다 변화하는 72개의 작은 상황이 숨겨져 있다. 



역사는 답습되지 않아도 흐름은 반복되는 법이라서



앞의 마크 트웨인의 말과 같이 역사는 답습하는 법이 없지만 흐름은 반복된다. 


하지만 60년에 걸친 각 단계마다의 변화를 충실히 살피다 보면 가까운 미래가 될수록 그간의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보다 구체화되고 좁혀져가기에 대단히 높은 정확도를 갖는 예측도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올 해 2019년으로서 우리 대한민국은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를 絶(절)의 단계라고 한다. 주변과 단절되는 일이 많아지는 단계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이에 나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라든가 중국과의 관계가 더욱 멀어지면서 우리가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생각하지 않았던 변수가 등장했으니 일본이다. 일본이 저런 식으로 나오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보면서 과연 우리의 국운이 絶(절)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구나 하고 실감이 갔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긴 하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숨어있던 변수가 등장한 셈이다. 그러니 향후의 변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예상 혹은 예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간 얌전히 있던 러시아까지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노골적으로 침범해왔다. 지나가는 일과성 사건이면 다행이겠으나 그것이 중국과의 교감 하에 이루어진 의도된 일이라면 그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북한은 우리 측의 성의에도 불구하고 신형 탄도미사일을 또 다시 발사했는데 이에 대해 미국 트럼프는 단거리 미사일은 미국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트럼프는 또 지난 26일자로 “한국 등 부자 나라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혜택을 못 받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고 한다. 물론 중국을 겨냥한 조치이지만 우리도 당연히 포함이 된다. 당장은 아니겠으나 우리로선 미국으로부터 농업 분야에서의 보조금 축소 등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올 해로서 우리가 주변과 소원해지는 일이 많을 거란 예측은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저러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멜바이스 거부반응’이란 용어

 

 

“제멜바이스 거부반응”이란 용어가 있다. 영어로 Semmelweis Effect 라고 한다.

 

기존의 신념이나 상식에 반하는 주장이 나올 경우 일단 거부부터 하고보는 현상을 일컫는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지구는 돈다고 했을 때의 거부 반응 같은 것이다. 오늘날 알려진 무수한 과학적 지식과 상식들은 처음 나왔을 때 아, 그렇구나 하고 순순히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일단 거부되거나 외면받기 십상이었다.

 

새로운 발견이나 지식이 등장하면 거부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의 권위자라든가 그 지식을 통해 권력과 이득을 누리는 기득권층에 대해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리 재수가 없었던 어느 의학자의 억울한 이야기

 

 

제멜바이스 이펙트는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란 헝가리 출신 의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대단한 발견을 하고도 재수가 없어서 억울하게 죽은 남자의 대명사라 하겠다.

 

1847년 무렵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 종합병원의 수석 레지던트로 일하던 제멜바이스는 당시로선 놀라운 추론을 제시했다. 가정에서 분만하는 경우보다 종합병원에서 아기를 낳는 산모들의 사망률이 현저하게 높았는데 그 원인으로서 의사들이 손을 잘 씻지 않고 수술 기구들의 소독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란 추론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균 감염이란 것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제멜바이스의 주장은 절대 다수의 의사들로부터 거부 당했다. 하지만 제멜은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상전격인 의사들이 시술이나 수술을 할 때마다 찾아다니며 염소 소독을 하도록 했다. 거의 싸우다시피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아기를 낳다 산욕열로 사망하는 산모들의 건수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현저하게 낮아졌던 것이다.

 

효과가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멜은 병원에서 쫓겨났다. 어린놈이 너무 설친다는 것, 기존의 알려진 의학적 지식에 없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으니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서 잘린 것이다. 만일 제멜의 주장이 맞는다면 그간에 죽은 산모들은 죄다 의사들의 책임이 될 것이 아닌가!

 

제멜은 그 이후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의사들과의 투쟁을 해야 했다. 의사들의 公敵(공적)이 된 셈이다. 최초 주장을 한 때로부터 15년이 흐른 1862년엔 그간의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문을 발표했지만 의사협회로부터 더욱 싸늘한 냉대만 받았다.

 

 

대단한 의학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맞아죽은 제멜바이스

 

 

그러다가 그간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3년 뒤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었고 2주 뒤 철창에서 반항하다가 맞은 상처로 인한 감염 때문에 급사하고 말았다.

 

세균이란 것이 있어서 병을 유발한다는 것은 제멜이 죽은 1865년으로부터 12년이 흐른 1877년에야 발견되었다. 알베르토 코흐가 탄저균을 발견한 것이 최초였다. 세균학과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사람 말이다. (사실 코흐 역시 세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엄청 고생을 해야 했지만 제멜바이스보다는 운이 좋았다.)

 

제멜바이스는 죽은 뒤 철저하게 잊혀졌다. 하지만 코흐의 연구 공로에 의해 세균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산모들의 산욕열 역시 세균 감염이 원인이라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제멜바이스가 입증을 하진 못했지만 그의 추론은 정확했던 것이다.

 

 

제멜바이스의 명예 회복

 

 

그러자 의사들은 서서히 사태 수습에 나섰다. 옛날 제멜바이스를 무시했던 선배의사들은 이제 주요 자리에서 떠났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니 수습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 선배들이 잘못 했습니다요, 우리들은 물론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하고 제멜바이스를 인정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부랴부랴 공동묘지에 묻혀있던 제멜바이스의 시신을 찾아서 그가 태어난 고향 마을로 이장을 하고 무덤을 잘 꾸며주었다. 예우를 갖춘 것이라 하겠으니 1891년이었다. 그의 사후 26년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53년이 흘러 1964년, 제멜바이스 사후 99년이 되던 해에 그의 유해는 그가 태어난 생가로 다시 이전된 뒤 집은 제멜바이스 박물관으로 꾸며졌다. 헝가리 정부가 국가적 예우를 해준 것이다.

 

 

제멜바이스의 사주와 운명

 

 

이 대목에서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의 사주와 운명을 간략하게나마 알아보자.

 

1818년 7월 1일에 태어나 1865년 8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 47년의 짧은 생애였다. 맞아 죽었으니 그렇다.

 

1818년 7월 1일 생이고 생시는 미상이다. 戊寅(무인)년 戊午(무오)월 乙丑(을축)일이 된다. 생시를 몰라도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는 1835 乙未(을미)년이고 입춘 바닥은 1865 乙丑(을축)년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침 공교롭게도 1865년에 사망했으니 立春(입춘) 바닥에 죽은 셈이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맞아죽었다는 사실. 새로운 사실을 함부로 주장했다는 죄로 말이다. 세상은 이토록 무서운 곳이다, 다만 조금씩 좋아져가긴 하다.

 

의학 공부를 했고 그 바람에 일생을 통해 가장 화려한 운세이던 寒露(한로)의 운, 일생을 한 해로 치면 가장 좋은 때인 10월 초 무렵인 1846년에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비엔나 종합병원의 수석 레지던트로 임명이 되었다. 이제 열심히만 하면 앞날은 보장되었다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너무 열심히 일한 게 탈이었다. 다음 해인 1947년 그는 산모들의 높은 사망률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오염물질에 의한 것이란 확신을 얻었고 그 결과 자신의 추론을 병원의 의사들, 즉 자신의 상사들에게 제시했다.

 

쫄다구 주제에 엄청나게 싸워가며 시술할 때마다 돌아다니며 기구와 손을 소독하도록 했고 그로 인해 대단히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그게 오히려 탈이 되었던 것이다. 그 뒤로 제멜바이스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가망성 없는 1인 시위 격이라고나 할까. 미친 놈 취급을 받았을 것은 당연지사.

 

한창 운이 좋을 때에 획기적인 주장을 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된 셈이다.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된 상태에서 반항을 하다가 구타를 당한 것이 원인이 되어 급사하고 말았으니 때는 운세가 입춘 바닥인 1865년 8월 13일었다.

 

죽은 날의 干支(간지)를 보면 전후 사정을 읽어낼 수 있다. 乙丑(을축)년 甲申(갑신)월 乙卯(을묘)일이니 운세가 큰 바닥에서 뭔가 희망을 찾으려는 몸부림 때문에 결국 구타로 인한 상처가 감염으로 번져서 죽은 날은 더 이상 희망이 사라지는 날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冤魂(원혼)이 되었을 것이니 참으로 억울한 죽음이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세상의 이치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지 않고 옳은 것은 반드시 세월이 흘러도 되살아나는 법이다. 제멜바이스의 억울한 원혼은 죽은 지 99년이 흘러 생가가 박물관으로 꾸며지면서 풀어졌을 것이고 지금은 박물관 안에서 편히 지내고 있으리라.

 

나 호호당은 오랜 연구를 통해 세상 이치에는 어김이 없다는 점을 무수히 통찰해왔기에 확신을 가지고 드리는 말이다.

 

그가 사후일지언정 인정을 받아 처음 이장된 때는 1891년이었는데 이 시기는 그가 비록 죽었으나 운세 흐름이 입추 다음에 오는 명예의 운, 나 호호당이 쓰는 표현으론 황금의 官運(관운)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박물관이 만들어진 것은 1964년 甲辰(갑진)년이니 그 역시 또 다시 운세가 피기 시작하는 小滿(소만)의 운이란 점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의 운세 흐름에 있어 재운이 돋아나는 1969년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의과대학을 개명해서 제멜바이스 의대로 개명이 되었다.

 

 

사람은 죽었어도 그의 운세 순환은 이어져가는 법이라

 

 

이처럼 사람은 죽었어도 그 사람의 운세 순환은 이어져간다.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 호호당은 그간 이런 케이스를 워낙 많이 검증해온 터라 전혀 놀랍지 않다.

 

나 호호당은 사람이 태어난 날의 사주 간지를 보면 일정한 주기, 즉 60년 그리고 더 길게는 3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운의 순환 과정이 있음을 발견했다. 기존의 사주명리학과는 차원이 다른 법칙이다. 무수한 검증, 거의 10만 건의 케이스를 통해 검증해봤고 확인할 수 있었기에 너무나도 명확한 과학적 법칙이다.

 

하지만 내가 대단한 발견을 했다고 해서 서두를 마음 전혀 없다. 이거 진짜입니다,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하고 떠들어 본 들 쉽게 될 성질의 것이 아닌 까닭이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의 내용이 기존의 틀을 흔들어놓는 강도가 클수록 쉽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가령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 인정을 받으려면 오늘날 글로벌 권력의 중심인 미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라 본다. 그런 다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쪽으로 역수입될 것 같으면 가능할 일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나 호호당이 죽은 뒤 한참 후의 일이겠지만.

 

실제 상담은 물론이고 구글이나 위키를 통해 무수한 사람들의 운명을 검증해오는 과정에서 나 호호당은 이런 억울한 케이스를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유전법칙을 발견한 ‘그레고어 멘델’ 역시 당시 유럽의 후미진 시골 마을 수도원의 수사였기에 그가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 인정받기까지 무려 35년이나 걸렸다. 그가 죽은 뒤 16년 뒤의 일이기도 하다.

 

죽은 뒤에도 그 사람의 운세 순환은 이어진다. 물론 亡者(망자)가 그 흐름을 인지할 것인지는 당연히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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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일까?



흔히 노력해라, 노력하면 된다, 이런 말을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어떤 이에게 있어 노력이 가능한 때가 있는가 하면 노력하려고 애를 써도 되지 않는 때가 있다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늘 궁금했다, 운이 좋은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 그냥 놀고먹어도 일이 잘 풀리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냥 자빠져 누워서 내 입으로 감이 떨어져라 배가 떨어져라 하고 있어도 운만 좋다면 만사형통일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때까지 거의 한 평생이 걸렸다. 그리고 명확하게 그 답을 얻었다.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운이 상승하는 사람이고 노력이 되지 않는 사람은 운이 하강하는 사람이란 간단한 답이다. 


따라서 노력과 운은 별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라는 얘기이다. 


알고 나면 이렇게 간단한 것이건만 다시 말해서 이 해답을 찾을 때까지 수십 년의 끈질 긴 연구가 있어야 했다.

 

어려운 이을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은 ‘야, 가진 게 없으니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하는 충고를 해주지만 사실 이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간섭에 불과할 때가 많다. 



노력이야말로 자본보다 더 한 자본이어서



경제학에서 흔히 생산의 요소로서 노동을 자본을 얘기한다. L과 K가 그것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자본이 있으면 그 자본을 투입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노력이란 것은 사람이 애를 끓이는 엄청난 일이다. 일이 될 때까지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 그러니 일을 성사시킴에 있어 실은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바로 노력이란 사실이다. 


노동이 더 소중하다고 했지 자본이 별 게 아니란 얘기는 결코 아니다. 자본을 만들어내려면 그 이전에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어떤 면에서 자본이야말로 노력의 결과물, 절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최근엔 필요한 자본을 부채로 조달할 수도 있기에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부채로 조달된 자본을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날려먹었다고 생각해보라, 그걸 갚으려면 뼈가 빠진다. 세상에 쉬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어지간하면 사람은 노력하느니 피할 방법을 우선시한다.



노력이란 말의 뜻부터 알아보자, 그래야만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니. 


인터넷 사전에 보면 노력이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어려움이나 괴로움 등(等)을 이겨 내면서 애쓰거나 힘쓰는 것이라 되어있다. 한자의 의미를 보면 奴婢(노비)가 갖은 힘을 다해 애를 쓴다는 뜻이다. 오늘날엔 노비가 없지만 아무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힘을 쓰고 애를 쓴다는 뜻이 노력이다. 


노력은 따라서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고 그 도중에 힘에 부치면 지치고 힘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노력한다는 것은 누구나 어지간하면 피하고자 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거리만 있으면 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단기간이라면 비교적 집중이 쉽게 되지만 장기간에 걸친 것이라면 노력을 도중에 이어가기가 정말로 어렵다.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단히 어떤 것과 맞서는 일이다. 맞서서 싸우고 해결해야 하는 일로 가득 찬 삶이다. 이빨이 아프면 치과에 가야 하는데 돈도 돈이지만 치과 시술대에 몸을 눕힐 각오를 해야 한다.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 자기 몸을 위하는 일도 이처럼 힘든데 다른 이유라면 더더욱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런 일들과 맞서야 한다. 그러니 고생이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흔히 하는 말, 공부 잘 해라는 이 말 역시도 열심히 싸우라는 얘기이고 노력을 통해 다른 학생들을 물리치라는 말이다. 다른 학생들 역시 부모님들로부터 그 말을 듣고 있을 것이니 이게 어디 쉬운가! 


열심히 해보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결심했다고 해서 그 결심대로 노력하고 집중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내일부터 새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기에 이른바 作心三日(작심삼일)이란 말도 있다. 


작심한 뒤 겨우 사흘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니 석 달은 훨씬 어렵고 3년 노력은 그야말로 지난한 일이라 하겠는데 이를 10년, 20년에 걸쳐 일관된 노력을 유지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정도가 되려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냥 습관이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하겠다. 



功業(공업)을 이루려면 30년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니



문자 좀 써서 功業(공업)을 이룩하려면 기본이 30년이다. 半平生(반평생)이 걸린다. 그렇게 할 것 같으면 각자 나름대로 반드시 공업을 달성하는 법이니 이를 운이 좋은 30년, 好運(호운)의 때라 말한다. 


어느 정도의 성취를 하느냐는 그 사람의 타고난 그릇, 운명학으로 말하면 命에 달린 문제, 쉽게 말하면 물려받은 재능에 달린 문제이다. 하지만 성취의 정도와 크기를 떠나 뜻한 바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꾸준한 노력이 30년은 이어져야 한다. 


노력할 것 같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목표를 잘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면 보폭이 짧은 사람이 마라톤 방면에서 성공하려 든다면 될 일이 아니란 얘기, 그렇기에 자신의 처지와 재능에 맞는 목표 설정을 잘 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엔 운의 상승과 함께 노력하기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왜 어떤 이는 되고 어떤 이는 되지 않을까?



세상 일 어느 하나 쉬운 건 없다. 다만 어떤 이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마침내 극복하고 넘어서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힘들다 보면 도중에 그만 둔다. 과연 이 차이는 어디에 원인이 있을까?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하나는 뜻을 잘못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운세와 상관이 있다. 운이 아닐 적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거나 자신의 적성이 아닌 쪽에 뜻을 두었다가 경험 즉 시련과 실패를 통해 그만 두게 된다. 


또 하나는 뜻을 세우고 노력을 하기 이전에 강한 좌절과 어려운 시기를 거친 이는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있다. 더 이상 돌아갈 수도 기댈 구석도 없는 이라면 가능한 눈앞의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에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좋은 환경에선 성취하기 어려운 법



하지만 그만 둬도 그만인 사람, 또 다른 선택이 있다 여기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어려운 경우에 처해도 그만 두게 된다. 여유가 있고 기댈 구석이 있는 자라면 자신의 가능성을 십분 발휘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에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라면 성공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여유가 있는 자라면 간절할 수가 없는 법이고 또 다른 선택이 있다 여기는 자 역시 베스트를 다 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선택의 가짓수가 많은 자가 바로 시험에 드는 자가 된다.)


학생의 경우를 보자, 어느 정도 타고난 두뇌가 있고 재능이 있을 경우 여기에 부모의 뒷받침까지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탁월한 성취도를 보이기란 어렵다. 스스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긴 시간에 걸쳐 노력하고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운세의 순환이란 결국 



60년의 운세 순환에 있어 立春(입춘)으로부터 15년간의 기간은 시련과 좌절의 기간이다. 그러나 이 기간을 통해 불굴의 의지가 생겨난다. 그러고 나서 立夏(입하)가 되면 독해지고 강해져서 15년간의 전쟁에 나선다, 본인만의 전쟁터에서 말이다. 


이에 입춘 바닥으로부터 30년이 흘러 立秋(입추)가 되면 슬슬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해서 15년이 흘러 立冬(입동)이 되면 최고의 성취를 보인다. 그러고 나면 사실 끝이다, 더 이상 노력이 불가능해진다, 이룰 것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은 많아도 이제 더 이상 새롭게 이루어낼 수 잇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노력 또한 할 수가 없다. 배가 불렀으니 투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운세가 맹렬히 하강하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입하로부터 입동까지 30년간이 好運(호운)인 것이고 입동부터 30년간이 不運(불운)이라 하겠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1964년에 입춘을 맞이했기에 1979년부터 30년에 걸쳐 줄기찬 발전과 전진의 발걸음을 이어왔다. 하지만 2009년 국운의 立冬(입동)이 되자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다 볼 뿐 나서서 노력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는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 대한민국은 노력 불가능의 사회가 되고만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시련을 통해 강해질 것이니



2024년 또 한 번의 순환을 시작된다. 입춘이다. 시련이 한도 끝도 없이 밀려올 것이다. 힘들고 지칠 것이다, 하지만 2039년 국운의 立夏(입하)가 될 때까지 시련 속에서 또 다시 강인하고 불굴의 의지를 지닌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것이다. 


노력하면 이룬다, 하지만 알고 보면 노력이 가능한 때가 있고 노력 자체가 불가능한 때가 있으니 그로서 순환의 바퀴자국을 만들어간다. 


이로서 운과 노력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란 얘기를 드렸다.


정두언 전 의원의 급작스런 사망

 

 

정두언 전 의원이 어제 오후 갑자기 세상과 이별했다. 自盡(자진)한 것으로 여겨진다.

 

생년월일을 보니 1957년 3월 6일로 되어있는데 전라도 광주 출생이면 거의 음력일 것으로 본다. 게다가 얼굴의 相(상)으로도 태어난 날이 丁火(정화)임이 분명하다.

 

이에 운세 순환을 살펴보면 태어난 해인 1957년, 또 60년이 흐른 2017년 즉 丁酉(정유)년이 立春(입춘) 바닥이 된다.

 

사망일은 2019년 7월 16일이니 己亥(기해)년 辛未(신미)월 甲寅(갑인)일, 그럴 법도 하구나 싶어 절로 탄성이 나온다. 그 양반에게 있어 현 운세 흐름은 모든 길이 다 막혀서 막막한 형국이다. 더 이상 희망을 걸어볼 데가 없다고 낙담한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인터뷰 기사를 보니 나름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있는 것 같았는데 그저 막연하게라도 시간을 벌면서 좀 더 인내하다 보면 인생의 새 길도 나타났을 것이다. 안타까워서 해보는 얘기이고 그럴 가능성도 적지만 만일 나 호호당과 인연이 되었더라면 결코 그렇게 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인연이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이 양반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앞으로 7년 반만 나 죽었소! 하고 눈 딱 감고 지내보시오, 단언컨대 분명 새 길을 만나서 또 다시 즐겁게 살아갈 만 할 터이니 말이오, 이렇게 얘기해주면서 만류할 수 있었을 것을.

 

1980년, 바닥으로부터 23년이 흐를 무렵, 즉 운세의 夏至(하지) 무렵 행정고시에 합격했으니 얼마나 꿈이 컸겠는가. 게다가 타고나길 집념 강한 노력가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태어난 계절과 사주 구조로 볼 때 흥도 많지만 반대로 심한 좌절감에도 빠질 수 있어서 이번에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

 

입춘 바닥 1년 전인 2016년 총선에서 낙선된 뒤론 사실상 길이 없었을 것이다. 2012년 총선에서 당선되긴 했으나 2013년 말로서 권력이 박근혜 쪽으로 넘어간 뒤로 새누리당 내에선 어차피 비주류였을 것이고 이어서 총선에서 낙마했으니 말이다.

 

이제 고인이 된 정두언 씨는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차기대권주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숨은 실세’란 평을 들었고 2007년 말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자 초반엔 그야말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던 사람이 미처 15년이 지나지 않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하니 그야말로 권력의 무상함을 절감케 한다.

 

 

정치는 虛業(허업)이어서

 

 

이에 문득 정치는 虛業(허업)이라고 했던 고 김종필 씨의 말이 생각난다. 虛業(허업), 헛된 일이란 뜻이다.

 

여느 사업과는 달리 정치적인 권력이나 권세란 것은 얻어도 잠시인 것이고 오래 붙잡아둘 순 없다는 의미에서 정말로 그렇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 정권과 그 사람들에 대해선 가혹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춘분 근처에 태어난 사람은 조울증 기질이 있으니

 

 

태어난 계절이 3월 23일 경의 春分(춘분)을 기점으로 앞뒤 보름 정도 안에 태어난 사람은 기본적으로 조울증 기질이 있다. 이번 정두언 의원 역시 그렇다.

 

춘분은 그 이전까지 밤이 더 길다가 이윽고 낮과 길이가 같아지는 때, 어둠이 빛을 이기다가 이제 막 그 세력이 같아지는 때이다. 그런 까닭에 이 무렵에 태어난 사람은 우울한 감정과 밝은 감정이 심하게 교차하는 심성을 가진다. 바로 조울증 기질이다.

 

낮이 긴 때에 태어난 사람은 기본적으로 명랑하고 의욕도 많다. 하지만 이 역시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뭐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가끔 낭패를 보기도 한다. 밤이 긴 때에 태어난 사람은 기본적으로 우울한 편에 욕심이 많지 않다. 이 또한 장점이자 단점이다. 좀 더 크게 바라봐도 되건만 스스로 자제하기 때문이다.

 

돌아와서 얘기, 춘분에 태어난 사람은 낙관과 비관이 순간순간 바뀐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우울증 환자가 자살을 택하는 시기 역시 춘분 무렵이 많다는 점이다. 겨울엔 어둠이 지배하는 때, 그냥 우울함 속에서 그냥 시간을 보내기에 자살을 택할 의지가 약해다. 하지만 춘분 무렵이 되면 서서히 빛이 길어지면서 갑자기 용기를 내고 결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또 다시 한 해를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런 선택을 한다.

 

물론 해마다 춘분이 되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바닥 근처 즉 입춘 바닥을 전후해서 앞뒤로 10년간이 그런 위험한 시기가 된다.

 

 

아픈 추억이 되살아나다.

 

 

우울증으로 자살을 택한 케이스 중에는 나 호호당 개인적으로도 아픈 추억이 있다. 이젠 10년도 더 된 얘기이다. 오늘 글을 이렇게 정한 까닭도 이 일이 생각나서였다.

 

지방에서 한의대를 다니던 재기발랄한 청년이 나를 찾아왔다. 얘기 중에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점도 털어놓았다. 태어난 날 日干(일간)이 丁火(정화)였고 3월생인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丁火(정화)인 까닭에 쉽게 정이 갔고 그 바람에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찾아왔다.

 

그 청년이 우울증을 앓게 된 데에는 부모 특히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인문계 쪽으로 가려는 아들에 대해 그 어머니는 의대를 가라,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한의대를 가라는 바람에 결국 한의대에 진학했는데 그 이후 심한 좌절을 느끼면서 병세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 손수 달인 경옥고 한 단지를 들고선 내 작업실로 들어왔다. 그냥 여느 때처럼 대했고 함께 저녁을 먹은 뒤 그 청년은 집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헤어지는 순간 느낌이 이상해서 농담조로 ‘야, 너 영영 작별하려고 온 건 아니지?’ 하고 물었다. 청년은 밝게 웃으면서 ‘아니예요’ 하고선 떠나갔는데 기분이 묘했다. 밝은 웃음이었지만 눈빛은 슬프고 서늘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 그 청년은 세상을 떴다. 며칠 뒤 그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 아들이 선생님을 만나고 오면 상태가 좋아지곤 했거든요 하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붙잡았어야 했는데, 너 뭔가 이상하다, 나하고 얘기를 더 해 하고 시간을 끌었어야 했다는 자책감이 그 후로 몇 년간 나를 괴롭혔다. 지금도 그 눈빛이 내 눈에 선하다.

 

이럴 땐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죽고 나면 가게 되는 그곳은 삶도 죽음도 없는 곳, 그곳에서 편히 지내시오 하는 말로서 망자를 위로하고 또 나 자신을 위로한다. 때론 가을 낙엽을 바라보면서 ‘보아라, 사라지고 스러지는 것 역시 실은 극히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저 그 놈의 情(정)이 무거울 뿐이다.

 

 

이 세상은 사랑하고 다투는 곳이기에

 

 

이 세상은 사랑하고 또 한 편으론 다투는 곳이다. 태어난 자의 숙명이다. 종교에선 다툼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고 사랑하라고만 말하지만 그건 진실의 반쪽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우울증 환자가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싸우기 싫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본다. 싸워야 할 뿐 아니라 싸워서 이기려면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데 우울증 환자는 그럴 힘을 낼 수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그런 선택을 한다고 본다.

 

자살로 마치긴 했어도 그게 반드시 비극이 아닌 경우도 있으니 안락사가 그것이다.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는데 고통만 길게 이어진다 싶을 때의 선택이다.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수십 차례의 구강암 수술 끝에 너무 지겨워서 친구인 의사를 통해 약물로 안락사를 했고, “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수렵총으로 한 방에 갔다.

 

프로이트의 경우 입춘 바닥으로부터 10년 만의 일이었고 헤밍웨이는 입춘 바닥 다음 해에 그랬다. 이런 경우는 더 살 수도 있었겠지만 무의미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특이한 환경의 나라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 예전엔 일본이 워낙 높아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어느덧 우리가 더 그렇다. 당연히 노인 자살이 많다, 빈곤과 병환에 시달리다 보면 그 일부가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우리와 일본이 특이한 것은 자살률이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춥고 빛이 적은 북유럽 쪽임에 반해 우리나 일본은 온대 기후임에도 그렇다는 점이다. 사회적 경쟁과 갈등의 압력이 심한 까닭일 것이다.

 

노인들 중에 26%가 살아서 뭐하나 싶고 때론 죽고 싶다는 통계가 있었다. 운명의 순환이 60년이니 그 중에 15년은 당연히 이모저모 어려운 시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니 그럴 것이다. 다만 수치 26%는 1/4인 25%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문제라 본다.

 

우리 모친은 만 89년을 살다가셨다. 인생 중년에 풍파를 겼었지만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였기에 넘어설 수 있었다고 본다. 참으로 대단한 삶이었다 보기에 나 역시 그래야지 하는 의욕이고 생각이다. 지금 65세, 그러니 앞으로 25년이다. 完走(완주)해야지!

 

 

목성의 별빛 아래

 

 

올 여름 밤은 늘 목성이 눈에 띈다. 얼마 전엔 보름 달 밑에 매달려 있는 바람에 UFO 소동도 있었다. 목성은 공전 주기가 12년에 가까워서 옛날엔 연도를 알려주는 별 즉 歲星(세성)이라 했다. 또 장수를 주관한다 해서 壽星(수성)이라 하기도 했다. 수명을 관장하는 목성의 빛을 매일 밤 대하고 있으니 올해만큼은 자살이 좀 줄었으면 한다.

 

(이번 토요일 자연순환운명학 심화반 강좌를 시작한다. 그간 기초를 배우신 분들의 많은 참가를 바란다.)

미국이 에너지 자급을 달성했다고 하네, 거 참.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아킬레스건은 에너지 문제, 즉 석유였다. 미국은 중동 지역의 석유가 꼭 필요했고 또 그 때문에 중동 지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떤 이유로든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집트, 이라크, 아프간, 시리아, 그리고 지금의 이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늘 서남아시아 문제에 관여해왔다. 다시 말하지만 근본 이유는 석유였다.

 

그런데 엄청난 변화가 발생했다. 미국에게 엄청난 희소식.

 

최근 발간된 미국 에너지 관리청(EIA)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제 미국은 사실상 에너지 자립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늦어도 내년 2020년부터는 에너지 수입보다 수출이 더 많아지면서 미국의 에너지 안보가 100% 달성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공격 버튼을 누르지 않은 이유

 

 

최근 호루무즈 해협에선 미국은 이란과의 갈등 때문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열 받은 트럼프가 이란을 공격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냉정히 따져보니 미국 입장에서 이란이 괘씸하긴 해도 이란을 굳이 손봐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중동 산유지대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가 이제 미국으로선 전혀 아쉽지가 않은 것이다. 이 해협은 쿠웨이트를 비롯한 여러 산유국들이 생산하는 석유의 주요 운송로로서 세계 석유의 약 20%, 해상을 통해 거래되는 석유의 약 35 %가 통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석유의 대부분은 싱가포르의 말라카 해협을 거쳐 에너지 자급이 되지 않는 일본이나 우리나라 등으로 운송된다.

 

 

우리와 일본은 성의를 보여야 하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아서

 

 

그렇기에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우리와 일본의 명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 스스로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물론 당장은 미국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시도를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이에 트럼프는 야, 일본이나 한국도 군함을 보내어 보초도 좀 서고 성의를 보이라고 해, 우리만 신경을 쓸 이유는 없잖아, 안 그래?

 

아쉬운 건 우리와 일본이니 당연히 군함을 보내어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경계 임무에 협조해야 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자체적으로 엄청난 산유국인 이란과 등을 져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도 우리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요청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길게 볼 때 고품질의 산유국인 이란과의 관계도 중요한 까닭이다.

 

 

국적선이라고 하는 생경해진 개념의 뒤에는

 

 

그동안 미국은 전 세계 모든 公海(공해)의 안전과 항해의 자유를 지켜주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오래 전부터 국제 해운에 있어 國籍船(국적선), national carrier 란 개념이 있어왔고 이 개념은 항공해운에도 확대되어왔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생경한 단어가 되고 말았다.

 

국적선 혹은 국적기란 간단히 말하면 어떤 나라의 국기를 달고 다니는 상선이나 비행기를 말한다. 하지만 회사의 민영화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국적선이나 국적기는 그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가 있다. (가령 대한항공은 국적기 회사이지만 아시아나는 그렇지 않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 반세기 전만 해도 국적선을 공격하거나 위해를 가할 경우 바로 그 나라에 대한 공격이나 위해로 간주되었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공해는 오늘날처럼 안전하지가 않았는데, 해적이나 여타 다른 세력이 국적선을 공격하는 것은 사실상 그 나라와 전쟁을 각오해야 했기에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었다. 가령 예전에 해적들은 대영제국의 깃발을 단 배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았다. 후환이 두려워서.

 

국적선이란 개념의 중요성이 오늘날 사라진 까닭이 무엇일까? 하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미국 해군과 공군이 전 세계의 공해와 하늘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오늘날 공해상에서 다른 나라의 상선이나 여객기를 공격하는 일은 미치지 않고선 없는 일이다.

 

 

미국이 만든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글로벌이었는데

 

 

19세기의 제국주의 시절과 오늘날의 차이 역시 바로 이점이다. 과거 대영제국은 전 세계에 널린 시장과 원자재 산지를 확보하기 위해 막강한 해군을 통해 현지를 오고 가는 자국 상선들을 보호했다. 유럽 열강들과 미국, 나중엔 일본 제국 역시 저마다 국적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비경쟁을 펼쳤던 것이다.

 

오늘날 베트남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로 친다면 우리나라의 식민국가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군대가 동원되진 않는다. 공해의 안전을 미국이 책임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상공에 GPS 위성을 올려서 실시간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깔아놓은 것도 미국이다. 그 바람에 전 세계 모든 자동차들은 ‘네비’를 무료로 사용하고 있고 최근엔 해외 여행을 가도 스마트폰으로 길거리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엄청난 혜택이지만 공짜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에너지 자급을 달성하게 되면서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왜 전 세계의 모든 바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앞의 호르무즈 일처럼 석유를 가져다 쓰는 나라는 일본이고 우리 대한민국이건만 비용이 들고 위험 부담도 있는 항해의 안전은 미국이 책임지고 있으니 뭔가 균형이 맞지 않다. 트럼프 말대로 하면 언페어(unfair)하다. 당연히 틀린 말이 아니다, 수익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세상의 기본 이치인 까닭이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만들어낸 새로운 국제 질서는 과거 대영제국 시절의 자유무역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또 그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미국은 글로벌 경찰 역할을 맡아왔으며 IBRD와 IMF를 통해 전후 부흥과 글로벌 경제의 번영을 기했으며 나아가서 외화 부족에 허덕이는 전 세계 나라들에게 자국의 방대한 시장을 열어주었다. 그러니 미국 달러는 글로벌 통화일 수밖에 없었다. 금 본위제에서 달러 본위제로 바뀐 오늘의 글로벌인 것이다.

 

미국이 만든 신질서야말로 글로벌 전체의 번영을 가져왔다. 물론 처음엔 소련이라고 하는 라이벌,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타파하기 위한 미국 자체의 목적도 있었지만 이젠 사실 그런 것도 없어지고 말았다.

 

소련이 붕괴된 후 미국 스스로도 우리가 왜 전 세계 바다와 하늘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지? 하는 의문이 서서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대국의 체면도 있고 새 대통령들은 으레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기 싫었던 탓도 있고 해서 그냥 답습해왔다.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기 시작한 미국

 

 

그런데 체면이라곤 그다지 관심이 없는 장사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간의 방식에 대해 異義(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게다가 참으로 묘하게도 미국은 이제 에너지 자급을 달성한 참이다.

 

이제 미국으로선 태평양과 대서양이란 광활한 바다 건너의 나라들과 대륙들에 대해 길게 볼 때 전혀 아쉬울 것이 없어진 셈이다. 그냥 유라시아 대륙에서 패권을 휘두르는 막강한 한 놈만 등장하지 못하게 적당히 견제할 수만 있으면 충분해진 미국이다. 자잘한 것들이 서로 치고 받는 일 정도야 그냥 두고 보거나 아니면 적당한 시기에 그쳐! 하고 주의를 주면 되는 미국이다.

 

종교 때문에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중동? 됐다 해라, 우린 필요 없으니. 유럽? 연합해서 뭘 좀 하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고령화로 인해 장차 경제가 부진해질 늙은 대륙 아닌가, 내버려두면 알아서 자빠질 것이고 일본? 어느 세월의 일본인데,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 일. 문제는 중국이지. 저 놈들이 그 사이 우리 미국 시장에 물건을 팔아서 달러를 좀 벌었다고 까불어대고 있으니 이제 기를 좀 꺾어 놓을 때가 되었다.

 

이런 생각이 미국 보통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좋던 세월은 이제 지나갔다는 사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미리 내다보는 자의 눈에 세상은 이미 변했다. 커다란 틀이 바뀌고 있고 또 바뀌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입지도 장차 애매해졌다. 우리 역시 오대양 육대주로 물건을 실어 날라서 먹고 사는 수출주도형 경제, 미국이 손을 떼는 지역엔 거래가 위태로워 질 것이며 나아가서 더 문제가 있다.

 

중국이 조만간 제 풀에 무너질 것 같으면 중국을 견제하는 최전방 기지로서의 우리 대한민국도 값어치가 확 떨어진다는 점이다. 북한, 그거야 미국 입장에서 적당히 다루면 되는 일이고 통일을 하든 엎어지든 사실 무슨 상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미국인 것이다. 그저 반도체를 잘 만들고 있는 한국이니 공급에 문제가 없도록 관리하면 되는 정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소련이 무너진 마당이고 독일 놈들 군사비도 쓰고 있지 않으니 더 이상 우리가 크게 돈을 쓸 것도 없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폐기하면 그만이다. 아니면 러시아 견제 차원에서 적당히 폴란드라든가 스웨덴, 네델란드 정도나 밀어주면 되는 일.

 

그렇기에 미국의 현안 문제는 중국이다. 이번 트럼프는 방한해서 우리가 그동안 꺼려오던 인도 태평양 봉쇄전략, 즉 중국을 틀어막기 위한 방위 체제 구축에 있어 한국의 동참을 기어코 받아내고 돌아갔다. 우리로선 미국 편에 서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니 그렇다.

 

다른 나라 일에 크게 신경을 쓸 일은 없어지고 있는 미국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방위비용을 줄이진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감시위성을 포함한 글로벌 모니터링 시스템과 전략 탄도 미사일 체제, 11척에서 12척의 항공모함 체제는 그냥 유지될 것이고 하늘에선 무적의 F 35 전투기와 장거리 공격기인 B-52와 B-1, B-2를 통해 초장거리 전술 미사일 공격 태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선택적 개입의 시대에

 

 

이제 종전처럼 전 세계의 공해와 하늘의 안전을 무조건 책임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미국으로 변해가고 있는 셈이다. 영양가가 있을 경우에만 개입하고 간섭하는 방식 말이다.

 

雨後竹筍(우후죽순)이란 말, 비 오고 나면 삽시간에 대밭의 죽순들이 머리를 비집고 나온다. 이는 마치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만든 신질서로 인해 전 세계가 번영을 누린 것을 연상시킨다.

 

각국이 서로의 이권을 지키는 제국주의 방식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유무역을 통한 상호 번영, 각국의 안전은 물론이고 경제 안정과 번영까지 책임져주던 방식, 부족하면 미국 시장을 열어주어 번영을 가능케 했던 미국식 글로벌 질서가 이제 막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선택적으로 관여하는 새로운 글로벌은 훨씬 힘겨운 세상이 될 거란 점, 게다가 유럽과 일본, 우리와 중국까지 죄다 고령화로 인한 수요 부진을 겪어야 할 참이니 글로벌 경제가 장차 좋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반면 미국은 인구 구조가 그야말로 양호하고 탄탄하다.)

 

이제 멀지 않아 反美(반미)를 외치던 시절이 좋은 시절이었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생겼다. 우리 젊은이들이 미국을 두고 天朝國(천조국)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말이 진짜 리얼이 될 판이다.

 

오늘 글로서 그간 이어왔던 2019년 현재의 글로벌 이슈에 대해 마무리한다.

중국, 글로벌 공급과잉의 주범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더 넘었어도 글로벌 경제는 뚜렷한 회복조짐이 없고 오히려 장기 침체 내지는 디플레이션의 징후만 더해가고 있다.

 

이렇게 된 배경의 하나로서 중국 경제를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 주요 경제국들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수요가 줄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중국은 끊임없이 공장을 지어대는 바람에 글로벌 공급과잉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의 고속성장은 한계가 있기 마련

 

 

어떤 나라든 산업화가 진행되는 기간 중에는 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런 기간 중에는 투자 대상을 물색하는 어려움보다도 그에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더 문제가 된다. 늘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그 바람에 그 나라의 금리도 당연히 고금리 상태를 유지된다.

 

따라서 금융위기 상황이 아닌 이상 어떤 나라의 금리가 높을 경우 그것은 그 나라의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언제까지고 지속될 순 없다. 일종의 포화점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경우 1970년대 중반부터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늘 고금리 상태였다. 자금이 귀하던 시절이라 정부가 자금을 직접 관리하는 관치금융의 시절이기도 했다. 이에 기업들은 인맥을 총동원해서 재경관료들에게 줄을 대느라 바빴다. 소위 모피아의 전성시절.

 

하지만 영원히 이어지는 것은 없는 법,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우리 경제에 있어 투자비중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수치로 말할 것 같으면 외환위기 이전 GDP의 40%에 달하던 투자비중이 그 이후 30%로 한 단계 낮아졌다.

 

그에 따라 금리 역시 지속적으로 하강하면서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가 되었지만 나 호호당이 예상하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대 우리 경제는 투자비중이 한 단계 더 내려가서 20% 초반대로 낮아지는 경제부진의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이 된다.

 

일본 역시 우리와 비슷하다. 1990년 버블 붕괴 직전 30-35%에 달했던 투자비중은 오랜 경제부진으로 평균 22% 정도에 그치고 있다. 세계 최강 경제대국인 미국 역시 일본과 비슷한 20% 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참고로 알려드리면 GDP 전체 수치에 있어 20%의 투자비중은 신규투자가 아니라 기존의 설비와 인프라를 유지해가기 위한 최소한의 수치, 즉 투자의 하한선이라 봐도 무방하다.)

 

 

중국의 높은 투자비중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 문제

 

 

이 정도 살펴보았으니 이제 중국에 대해 얘기해보자. 얼핏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과 만나기 때문이다.

 

중국의 산업화는 미국과의 외교관계가 수립된 1980년부터 10년이 흐른 199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미국으로부터 기술과 자금이 밀려들기 시작했다는 얘기이다.

 

그 이후 중국은 수출을 통해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였으니 중국 공산당은 그 자금을 틀어쥐고 정부 주도 하에 주로 국영기업에 대한 높은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그 바람에 중국의 경우 GDP에 있어 투자비중이 지금도 무려 45% 선을 유지해오고 있다.

 

대개 산업화에 걸리는 시간, 즉 높은 투자가 이루어지는 시기는 길어야 20년 남짓이다. 자연순환의 이치로 얘기하면 22.5년이고 그 이후는 서서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다. 우리의 경우 1976년 무렵부터 22.5년을 더해보면 1999년이 되는데 바로 외환위기 직후가 된다. 일본 역시 그렇다.

 

그런데 중국은 국가 주도로 투자가 이루어지다 보니 투자 효율 따윈 사실상 도외시한 채 무작정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나치게 장기간에 걸친 높은 투자비중, 사실상 비효율의 투자가 바로 중국 경제의 문제이고 글로벌 공급과잉의 원인이기도 하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국은 8%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2010년대 초반의 경우 무려 GDP 대비 47%대의 엄청난 투자 비중을 보여주기도 했다.

 

 

목적과 수단이 거꾸로 된 중국 경제

 

 

투자가 있는 한 그 자체로서 성장률이 만들어진다. 중국은 이른바 保八(보팔), 즉 8% 성장률을 지키기 위해 정부 주도하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했던 것이다. 8% 대 성장률이 무너지면 공산당의 통치 권위에 흠집이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장률 8% 유지 목표는 2012년으로서 무너졌으며 작년인 2018년엔 7%도 무너져서 6.5%에 그치고 있다.

 

성장률 8%가 무너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비효율적인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는 중국 경제라 하겠다. 투자를 이익을 내고 성과를 보기 위함인데 중국은 성장률 유지를 위해 투자를 통해 GDP 라고 하는 숫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 하겠지만 중국 내부 사정을 들여다볼 것 같으면 나름 둘러댈 만한 핑계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동쪽 바닷가 지역은 이미 투자가 끝난 마당, 즉 성장 포화점에 도달한 상태라 하겠으나 중부 내륙과 서부 지역 그리고 우리가 만주라 부르는 동북 삼성 지역의 경우 여전히 낙후되어 있기에 그 방면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 균형발전이란 명분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그런 낙후 지역은 아직 미처 투자할 여건이 미성숙 상태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예로서 중국 내륙에 지어진 어느 철강 공장의 경우 공장 인근의 현지 수요가 없어서 만일 구매자가 운송비만 부담한다면 제품 자체는 무료로 팔 수 있다고 선전하고 나섰음에도 구매업체가 없을 지경이라 한다.)

 

게다가 우리로 치면 지자체에 해당되는 지역의 省(성)정부들이 시진핑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수요도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충성 경쟁 또한 대단하다. 그 바람에 중국 내륙 여기저기에 남아도는 텅 빈 아파트들과 위락시설이 그것이다. 고스란히 투자손실로 이어지는 케이스들이다.

 

게다가 중국 국영기업들의 투자는 주로 에너지, 소재, 유틸리티, 기계, 조선 건설 등이다. 이 중에서 특히 소재산업 쪽에서 글로벌 공급과잉을 불러왔다. 소재산업이란 반도체나 전자부품, 디스플레이와 같이 IT 산업의 기초 재료라든가 화학, 섬유, 2차 전지, 철강과 같은 금속 또는 비금속 등의 산업 재료를 말한다.

 

(이 소재산업은 특히 우리 경제가 현재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어 장차 우리 경제의 수출 경쟁력에 큰 위협이 되는 분야라는 점에서 주목이 된다.)

 

철강의 경우 아시다시피 엄청난 공급과잉 상태인데 물론 그 원인은 중국 때문이다. 전 세계가 비난하고 나서자 중국은 조절에 나섰다. 그런데 그 방식 또한 정말로 희한하다. 고비용 저효율의 국영 철강 공장은 고용과 생산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효율 높은 민간 기업에 대해선 자금줄을 조여서 도산을 유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의 진짜 문제점은 비효율적인 투자의 과잉에 있다.

 

 

중국 경제, 여러 미디어에서 다루고 있어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보도되고 있지만 다 무시해도 좋다고 본다. 부채 문제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가 그렇다는 점에서 넘어갈 수 있다고 본다.

 

단 하나 중국 경제의 핵심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투자효율이 엉망이란 점이다. 영양가가 있는 곳, 장차 돈이 될 곳에 투자가 진행되어야 하건만 중국 경제는 투자 자체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란 점에서 효율성은 따져보지 않는 투자가 너무나도 그 비중이 높다는 점이고 그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주도 경제의 한계

 

 

그 까닭은 간단히 말해서 투자를 시장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사고가 날 것이라 본다.

 

비효율적인 투자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원의 낭비로 마무리될 것이고 그러면 그때 가서 중국 경제는 전체적으로 엄청난 상각 처리를 해야 할 것이다.

 

공산당 주도의 권위적 사회주의 시장경제 자체가 대 실패로 끝이 날 것 같다는 얘기이다. 그들이 나름 자랑삼아 내세우는 “중국특색사회주의” 자체가 붕괴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중국 경제가 무너지면 그것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니 그 또한 글로벌 시한폭탄이라 하겠다.

 

 

웃기는 에피소드 하나

 

 

중국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웃기는 얘기 하나 해드린다.

 

얼마 전 우리 U 20 대표팀이 준우승을 했다. 뿐만 아니라 웬만한 국제 축구 시합이라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것이 중국의 완다 그룹 광고이다. 영문으로 WANDA, 기억이 있으실 것이고 축구 팬이라면 눈에 익을 것이다.

 

한자론 萬達(만달), 만 가지에 모두 도달한다는 뜻이기에 뭐든 돈만 되면 사업화하겠다는 자세의 중국 민간 대기업이다. 그런데 아무리 만달이라 해도 이 기업의 경우 국제축구 대회에 광고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중국 내 호텔이나 리조트, 아파트, 백화점 등으로 사업하는 철저한 내수기업이어서 국제 시장에 홍보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기업이 국제 홍보에 나선 이유는 이렇다. 시진핑 주석께서 축구를 사랑하셔서 월드컵 시합도 열심히 챙겨보는데 광고판에 한국의 삼성이나 엘지, 일본의 기업광고는 늘 눈에 띄는데 중국 기업 광고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시진핑은 “야, 비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국제 시장에 홍보하고 광고할 것이 그렇게도 없니, 이거야 원 민망해서 말이지.”

 

그러자 즉각 시행되고 시정이 되었다. 완다 그룹이 시진핑의 점수를 따기 위해 나선 것이다. “주석 각하, 평소 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그 까짓 광고비용, 우리 기업에서 쾌히 부담하겠습니다.”

 

웃기지 않는가? 광고 효과는 전혀 없는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국제 홍보를 꼬박꼬박 하고 있는 모습이. 이야말로 웃기는 짜장면. 그러니 중국의 높은 투자 비중이란 것 역시 저 완다 그룹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얘기이다.

이래도 저래도 답이 없는 유로

 

 

저번 글은 미국 달러에 관한 얘기였다. 오늘은 또 하나의 국제 통화인 유로(Euro)에 관해 얘기하겠다. 유로 또한 장기적으로 존속되기엔 문제가 너무나도 많다. 결론적으로 유로는 실패할 것이라 본다. 그런데 유로가 실패할 경우엔 지금보다 더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러니 유로야말로 골칫거리이고 우환거리이다.

 

간단하게 유로에 대해 알아본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라고 해서 모두 유로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로는 유럽연합 가맹국 28개 중에서 19개 나라만 사용하고 있고 특이하게도 유럽연합이 아니면서도 유로를 사용하는 나라 또한 9개국, 합쳐서 28개국이 사용하는 통화이다. (유럽연합과 유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얘기.)

 

유로가 미국 달러와 같은 기축 통화는 아니지만 국제무역에 있어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대단히 중요한 통화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뭐가 문제인가?

 

 

쉬운 이해를 위해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기준으로 서울과 경기를 제외하면 재정자립을 달성한 지자체는 없다. 그런대로 상황이 좋은 지자체라 해야 인천, 부산, 대전, 울산, 세종, 이렇게 5개 정도인데 그 역시 재정자립도가 50%를 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모든 지자체는 50% 미만. 특히 전남 지역의 재정자립도는 심각해서 강진군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겨우 7.3%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정부는 서울 경기에서 걷은 稅收(세수)를 가지고 나머지 전국 지자체의 부족한 재정을 메워주고 있는 셈이다. 하나의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있기에 지역 균형을 위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로를 사용하는 나라들은 당연히 하나의 국가가 아니다. 중앙 정부가 없다는 말씀. 그런데 유로 지역을 보면 재정자립이 불가능한 나라-지자체가 아니라-들이 우글거리고 있기에 문제가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유로 지역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는 독일이고 그 다음으론 프랑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이나 프랑스가 유로 지역의 중앙정부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독일이나 프랑스가 그리스와 같은 가난한 나라들에게 교부금을 주어야 할 의무도 없고 사실 이유도 없다.

 

 

기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걸 없는 셈 쳤으니

 

 

그런데 독일 사람들의 노동생산성이 54라고 하면 프랑스는 53이고 네델란드는 56, 이런 식으로 북유럽 국가들은 괜찮다. 하지만 그리스는 27이고 포르투갈은 28, 슬로베니아는 34, 체코 31, 슬로바키아 35 에 불과하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평균은 그렇게 나쁘지 않지만 지역간 불균형이 엄청나게 심하다. 라틴 유럽과 동유럽은 북유럽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얘기.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얘기는 소득이 적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모두 유로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런 나라들을 국가로 치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와 사실상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나라가 아니기에 중앙으로부터 지방교부금이 없다. 중앙 정부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로가 문제가 된다. 부실한 나라들을 안고 가야 하는데 지방교부금 제도가 없으니 그렇다.

 

게다가 독일은 부실한 나라들 쪽으로 많은 수출을 하고 있고 그 대금은 물론 유로로 받는다. 그러니 부실한 나라들은 계속해서 말라가고 있다. 살이 쪽 빠졌다 할 것이니 그게 바로 몇 년 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PIIGS 문제였고 그리스 문제였다.

 

유로라고 하는 돈의 흐름이 지속적으로 독일로만 흘러갈 뿐 부실한 국가들 쪽으로 흘러나올 기미가 없으니 문제인 것이다. 만일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 부실 국가들은 통화의 평가 절하를 통해 수지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환율정책을 쓰겠지만 같은 공통의 통화를 쓰고 있으니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 바람에 지방교부금은 아니지만 몇 년 전 그리스는 유럽중앙은행으로부터 엄청난 액수의 금융지원을 받아야 했다. 독일이나 프랑스, 네델란드와 같이 부유한 국가들이 직접 줄 순 있는 방법은 없기에 일단은 그런 식으로 메웠다. (하지만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나라 유권자들은 기분이 대단히 나쁘다, 저 돈 결국 우리가 막아주어야 할 돈이란 생각에서 말이다.)

 

 

지나친 의욕으로 출발한 유로

 

 

그렇기에 유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유지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로 가맹국들의 소득 수준이나 노동생산성이 같아지거나 아니면 국가 울타리 안에서처럼 교부금을 주거나 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근본적으로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게 유로 가맹국을 확대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유로만이 아니라 유럽연합(EU) 또한 사실은 문제가 많다. 문제가 있으면 회원국 간에 협의를 통해 해결한다는 방식인데 저마다 입장이 다른 28개국이 모여서 갑론을박할 것 같으면 어떤 결정이 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겉으로야 대화와 타협이라 하겠지만 원래 그건 포장, 즉 해보는 말에 불과한 법. 결국 오늘날의 유엔 총회장처럼 그냥 모여서 불만을 토로하고 들어주고 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가령 북한이 유엔 총회 장에서 뭐라 떠들어대고 있으면 나머지 국가 대표들은 듣는 척 하면서 속으론 오늘 점심 메뉴는 뭘로 하지? 하고 딴 생각하면서 앉아 있는 모습, 텔레비전에 많이 보지 않았는가 말이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하기로 국민들이 결정한 것 역시 중앙의 권위 있는 조직이 없고 너무나도 민주적인 유럽연합의 성격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그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그냥 좋은 소리만 늘어놓고 있을 따름이다. 그저 당장 급하지 않은 장기목표를 향해 노력을 계속 한다는 정도의 합의나 있을 뿐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그런데 유로는 바로 돈이다. 돈에 관한 얘기이다. 그야말로 치열한 성질의 것이다. 그냥 두면 재정자립이 되지 않아서 교부금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한 지방자치체들처럼 부실 국가들은 늘 부도를 내느니 마느니 하며 지내고 있다.

 

유로 사용 국가는 규정 상 국가의 예산 적자가 GDP의 3%, 국가 부채는 GDP의 60% 정도로 유지되어야 하며 낮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금리 또한 유럽 연합에 기준에 근접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런 조항이 지켜질 리 만무했다.

 

가령 독일과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금리 차이, 이른바 스프레드만 해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금과 같이 초저금리 또는 제로 금리 상황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는 그 차이가 무려 3.20-2.30%의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좀 더 얘기하면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현재 -0.390%, 채권을 가지고 있으면 일 년 뒤에 그 금액만큼 떼이고 원금을 찾게 된다는 얘기. 그러니 현재 독일 경제도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스의 경우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당시 독일과의 차이는 무려 25%였다. 사실상 유로 사용 국가로 남아있으면 안 되는 처지였다.

 

따라서 처음 유로 사용국가가 지켜야 할 의무조항들은 우명무실한 상태가 되었고 지금은 오로지 억지로 버티고 있는 유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유로는 독일과 프랑스, 네델란드나 벨기에와 같이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는데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지나친 이상주의로 인해 너무 회원국을 늘린 것이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유로는 유럽연합 회원국에게 자격이 주어졌어야 했고 또 그 유럽연합이 미국과 같은 연방제 국가가 되어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통합적인 리더십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실패할 것이고 없어질 것이다. 다만 언제 그렇게 되느냐의 문제만 남아있다.

 

 

유로는 실패하겠지만 실패하면 더 문제

 

 

유로가 실패할 경우 그 역시 엄청난 문제점과 리스크를 안고 있다. 그냥 그만 합시다 하고 그만 둘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얘기이다.

 

가령 유로가 없어지고 독일이 예전의 마르크로 복귀할 경우 그 새로운 마르크에 대해선 엄청나 평가절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부실한 나라들 역시 각자의 통화를 되찾을 경우 독일 돈에 대해 대폭의 평가절하를 해야만 수지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도 영국처럼 유럽연합 탈퇴 얘기가 자주 나오고 있고 유로를 그만 두고 자국 통화를 사용하자는 말도 빈번하다. 대중에 영합하기 바쁜 이탈리아 정치인들이다. 이에 이탈리아에서 유권자들은 왜 우리가 유로를 사용해야 하는가, 원래대로 리라로 돌아가서 평가절하를 단행해야만 숨통을 틀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로는 아마도 2020년대 중반이면 깨질 것 같은데...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이 자연운명순환학의 견지에서 예측을 해보면 이렇다.

 

이탈리아는 2021년이 국운의 바닥이 된다. 따라서 운세 상으로 가장 괴로운 시점은 2020년대 중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아마도 그 무렵에 이탈리아가 유럽연합 탈퇴와 함께 유로를 집어던지든지 할 것으로 예상한다.

 

문제 많은 그리스가 유로를 사용한 것이 2001년이었다. 불량 회원을 받아들인 그 때로부터 24년이 경과하면 답이 나오는 법, 이에 2025년경이면 유로가 무너지지 않을 까 하는 계산도 해본다.

 

미국의 달러는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참으로 이상한 구조 속에서 유지되고 있고 그를 통해 미국과 동아시아가 함께 굴러가고 있다.

 

그런데 독일은 엄청난 무역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독일 역시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유로를 사용하고 있기에 유로권 전체가 유지될 수가 없다. 노름판에서 돈을 늘 따는 놈이 그 돈을 전혀 풀어주지 않고 있으면 노름판이 깨어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2020년대는 그야말로 고난의 시기

 

 

달러 체제도 과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걱정되지만 그래도 미국이니 어떻게 넘어간다 치더라도 유로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기에 2020년대는 정말로 글로벌이 어떻게 굴러갈 지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일본도 문제가 많지만 중국 역시 거품 성장이 붕괴될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이런 판국에 우리 대한민국은 2024년에 국운의 60년 입춘 바닥을 맞이할 것이란 점에서 장차 어떤 시련이 닥칠 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야말로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미국 달러

 

 

상식적인 선에서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를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와중엔 미국 달러가 있다.

 

미국 달러는 글로벌 화폐이다. 미국 달러를 두고 기축통화라고 하지만 실은 그 이상의 것이다.

 

과거 대영 제국 시절 기축통화는 영국 파운드화였지만 영란은행이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었다. 영국 파운드화가 비록 국제 교역에 사용되는 기축통화로서의 명예와 권위를 지니긴 했어도 그 역시 영국의 금 보유량을 넘어서 파운드화를 발행하거나 찍어낼 수 없었다. (이런 제도를 금본위제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달러는 찍어내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그냥 미국 연준(Fed)이 찍어내고자 하면 마음껏 얼마든지 한껏 찍어낼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연준은 이른바 양적완화, 즉 무지막지한 양의 달러를 찍어내었던 것이 그것이다.

 

당시 연준이 찍어낸 달러는 너무나도 엄청나서 기존 경제학 이론대로라면 미국 경제는 500%에 달하는 수퍼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기에 기존의 경제학 이론은 한 마디로 개망신을 당했다.)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 그 이상의 것이어서

 

 

우리 돈인 원화는 한국은행이 보증하는 돈이지만 외국에 나가면 사실상 통용되지 않는다, 베트남 정도라면 받아주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해외에선 그냥 종이일 뿐이다.

 

미국 달러 역시 금에 연계되어 있지 않고 우리처럼 그냥 미국 연준이 보증하고 있을 뿐이지만 전 세계 어디에 가도 다 통용된다. 달러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없으면서도 아주 특별한 화폐인 것이다. 미국 연준은 그야말로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금 나와라 뚝딱!

 

 

달러의 위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그 이유가 놀랍게도!

 

 

미국 달러의 이와 같은 특별한 지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물론 미국이란 나라가 가진 엄청난 국력이 배경이라 하겠지만 실은 좀 더

이상하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원인이 있으니 그것은 참으로 해괴망측하게도 그 까닭은 미국이 엄청난 무역적자 대국이기 때문이란 점이다.

 

작년 한 해만 해도 미국의 무역수지는 무려 6,120억 달러 적자였다. 작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은 과거 수십년간 줄곧 엄청난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야말로 오늘날 글로벌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무역 불균형을 달성하게 되면 무서운 재앙이 닥칠 것이니

 

 

미국이 무역에 있어 균형을 달성하면 아주 좋지 못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 글로벌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재미난 점은 작년부터 미국 트럼프가 무역 불균형을 없애겠다면서 중국과 무역전쟁을 선포하는 등등 씩씩거리면서 팔을 걷고 나섰음에도 무역적자는 더 늘었다는 점이다.

 

왜 그런 것일까? 하고 이유를 따져보면 그 또한 웃긴다. 트럼프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작년 미국 경제는 2.9% 성장했다, 그 정도면 미국으로선 호황이었기에 소비가 늘었고 자연적으로 해외로부터의 수입도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가 좋으면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무역불균형을 시정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고 지지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만일 진짜로 미국의 무역수지가 개선되어 균형을 이루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전 세계 불황이 닥칠 것이란 점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

 

다시 말해서 미국의 무역수지가 만일 균형을 맞추거나 흑자로 전환될 경우 글로벌 경제는 그야말로 파탄이 날 것이고, 특히 우리와 같은 수출경제는 더더욱 그렇다.

 

미국의 무역수지가 흑자 또는 균형을 잡을 경우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알아보자.

 

 

미국이 무역균형을 달성하면 글로벌 경제의 돈줄이 마른다.

 

 

더 이상 미국 달러가 해외로 흘러나가지 않게 된다. 수입 물품에 대해 달러로 대금을 지불하고 있으니 미국의 수출 수입이 균형을 잡으면 달러 또한 해외로 나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글로벌 경제에 있어 돈줄이라 할 수 있는 달러 공급이 멈춘다는 말이 된다. 달러는 연준만이 찍어낼 수 있는데 다른 나라가 달러를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수출을 더 많이 하고 그 대금을 달러로 받는 것이니 그렇다.

 

그러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노릇인 것이 글로벌 경제라 하겠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유지해야만 나머지 글로벌 경제가 돌아가고 그에 따라 미국 경제도 돌아갈 것이니 말이다.

 

 

글로벌 경제, 이상한 상호의존 관계

 

 

현재의 글로벌 경제 구조는 이렇다. 우리 대한민국이나 중국, 일본, 대만 등은 물론이고 아세안 국가들은 대부분 미국에 대해 수입보다 수출이 많다. 그 차액만큼 달러를 벌고 있다. 즉 미국에 대해 무역흑자국들이다.

 

각 나라의 수출업자들은 미국 수입업자로부터 달러로 지불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그 달러를 각자의 중앙은행에 가서 자국 돈으로 교환해서 가져간다. 그러고 나면 각국 중앙은행은 수출업자에게 자국 돈을 내어주고 달러를 받게 되는데 그 달러를 어떤 식으로 처분하고 관리하고 있을까?

 

방법은 각국 중앙은행들은 그 달러를 미국 상업은행에 예금을 하거나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식이다. 하는 것이다. 물론 일부는 유로를 사들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대목에서 또 한 번의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동아시아 중앙은행들로부터 예금을 받은 미국 은행들은 그 돈을 미국 기업들에게 대출해주고 그러면 미국 기업들은 대출받은 돈으로 다시 해외 각 나라에 대한 투자자금으로 사용한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니 그렇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미국 상업은행에 예금하지 않고 국채를 사들인다 해도 결과적으론 동일하게 된다.)

 

미국 정부의 부채 규모 또한 대단하다. 현재 22조 달러로서 20 조 달러인 미국 GDP보다 더 많다. 미국 정부가 부채를 조달하는 방법은 국채 발행이고 그 상당 부분은 동아시아의 중앙은행들이 사주고 있다. 금년 4월 통계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들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는 대략 6조5천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국가 부채 22조 달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미국이 만일 트럼프 말대로 무역 균형을 달성하게 되면 달러가 다른 나라로 흘러나갈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각국 중앙은행들은 더 이상 미국에 예금하거나 국채를 살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미국 정부는 국채 발행에 애를 먹게 될 것이고 뿐만 아니라 미국 상업은행들이 미국 기업들에게 대출해주는 돈도 줄어들 것이다. 이에 미국 기업들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 질 것이고 해외 자산에 투자할 규모도 줄어들 것이다.

 

대출이 줄면 경제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흔히 말하는 신용경색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 경제도 위축될 것이고 글로벌 경제도 위축될 것이며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동아시아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유럽 경제는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적다는 점에서 피해가 동아시아 나라들보다 피해가 적겠지만 그 역시 불황이 닥칠 것은 물론이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 무역의 균형이 달성되면 글로벌 경제는 엄청난 불황 또는 패닉(panic)이 발생할 것이고 디플레이션이 만연할 것이란 얘기가 된다.

 

이게 오늘날 달러로 유지되고 돌아가는 글로벌 경제의 실상이다. 그렇기에 미국 달러는 그냥 기축통화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라 할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무역적자와 국가부채를 유지해주어야만

 

 

미국은 앞으로도 수출보다 수입을 많이 해주어야 한다. 즉 미국 국민들과 기업들은 그들이 한 해 동안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보다 더 많이 소비해주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래야만 달러가 다른 나라 쪽으로 흘러나갈 것이고 그러면 앞에서와 같이 글로벌 경제가 돌아간다.

 

미국 정부 또한 앞으로도 건전재정을 달성하면 참으로 곤란하고 계속해서 국가부채를 유지해주어야만 국채를 계속 발행할 것이고 그래야만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달러를 처리할 수 있다.

 

미국 시민들과 기업들은 저렴한 일용품의 경우 메이드 인 차이나를 사주어야 할 것이고, 텔레비전이나 모니터, 반도체 등은 우리 대한민국으로부터 사주어야 할 것이며 다른 기타 제품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계속해서 무역적자를 유지할 것이니 말이다.

 

미국의 국가부채와 미국의 무역적자는 글로벌 경제는 물론이고 미국 자체의 경제를 위해서도 불가결하다는 것이고 그래야만 미국 연준은 계속해서 달러를 찍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글로벌 중앙은행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게 오늘날 글로벌 경제가 유지되는 방법이다. 글로벌 GDP가 계속해서 플러스 성장을 이어가려면 그야말로 필수 조건인 것이다.

 

현재로선 그 어떤 경제학자나 천재적인 아이디어맨도 지금까지 얘기된 방법을 떠나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전 세계 경제가 미국에 연동되어 있는 것이고 ‘미국화’되어 있고 ‘달러화’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글로벌 경제는 미국 경제의 파생 경제일 뿐이니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는 글로벌 세계, 이것이 오늘날의 참된 실상이다. 미국 경제규모는 GDP 20 조 달러로서 전 세계 GDP 80조 달러에 비하면 1/4이다. 하지만 그 1/4 규모의 미국 경제가 이상해지면 글로벌 전체 경제가 이상해진다는 얘기이다. (EU 역시 규모가 대략 20조 달러지만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은 훨씬 적다.)

 

지금까지 늘어놓은 얘기는 사실 글로벌 경제에 대한 대단히 상식적인 얘기였다. 경제에 대해 약간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괴이한 글로벌 경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전체적인 구조는 지금까지 얘기한 바와 같이 그렇다고 인정해두고 우리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다음과 같다.

 

달콤한 생각 하나 얘기해본다.

 

중국은 미국 물건을 더 많이 사주어서 대미 무역흑자를 줄일 것이며 일본 또한 그렇게 되면 좋겠다. 반면 우리의 경우 적절한 대미 무역흑자를 유지해갈 수 있다면 최상이라 할 것이다. (최근 정부는 미국산 셰일 가스 수입을 늘려서 대미 무역흑자를 줄여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음 글에선 유로화 얘기를 해보기로 하겠다. 그 역시 이상한 구석이 참으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