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엄마, 우리 주변의 흔한 스토리



엄마가 아이를 엄하게 다그친다, ‘성적을 떠나서 네겐 간절함이 없으니 장차 어떻게 할 것이냐’고. 야단을 친 엄마는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나머지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분풀이를 한다. 당신도 아이에게 신경 좀 써야 할 게 아니냐고. 남편은 주눅이 든 목소리로 ‘알았어, 알았다고, 연구 좀 해보자고’ 하는 말로 모면한다. 


‘쟤는 도대체가 해보자는 마음이 없어, 혼을 내면 잠시 하는 시늉만 할 뿐 금방 풀어져서 태평세월이야, 누굴 닮아서 저 모양이지?’ 하며 아내는 남편을 쬐려보곤 ‘에라,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 뭐’, 이런 식의 혼잣말로 끝을 내는 아내. 


며느리로부터 아들이 험한 추궁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시어머니 즉 아이의 친할머니는 이래저래 속도 상하고 걱정도 되었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전화를 해왔다. 우리 손주 사주팔자 좀 볼 수 있소? 잘 보신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하고. 나로선 너무나 뻔한 일인지라 ‘아, 네, 오실 것 없습니다, 먼저 손주 생일과 생시나 알려주시지요, 잠깐 봐드리지요’ 한다. 


손주의 운세를 보니 小雪(소설)을 막 지난 터였다. 이제 막 본격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이가 더 이상 성가신 학업에 집중할 힘이 사라졌다는 것, 그러니 공부를 잘 하기가 어려운 손주의 운세였다, 짐작하던 대로였다. 


그러니 좋은 말로 둘러댈 수밖에 없다, 공부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제 구실 잘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이런 일로 굳이 찾아오실 일도 아닙니다, 하곤 빠져나간다. 할머니가 찾아와서 꼬치꼬치 캐물으면 손주가 공부 잘 하긴 틀렸다고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거짓말로 둘러댈 수도 없으니 골치만 아플 터,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서울 강남의 좀 사는 집 아이인 그 손주는 올해 중학교로 진학했다, 아이들의 경쟁이 치열한 학교로 소문이 난 학교다. 중학교 1학년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도 없다는데 그것과는 관계없이 학원에 가서 고등학교 진학에 대비해서 살벌하고 무지막지한 선행학습에 시달려야 하는 딱한 처지의 손주였다. 


그러니 그 손주의 심정도 십분 이해가 갔다. 급우들에게 뒤지긴 싫으니 공부는 해야겠는데, 이상하게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학원에도 빠지지 않고 다니지만 수업시간엔 수시로 멍을 때린다.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매만진다, 게임 한 판 하고픈 마음에. 벌써 여러 차례 스마트폰의 게임을 모조리 삭제 당한 바 있고 때론 기계 자체를 압수당한 적도 많다. 


공부 잘 하고 못 하고는 사실상 운에 달린 문제라서



아이들 사주를 보면 거짓말 보태지 않고 10초만 살펴봐도 그 아이가 공부를 잘 할 지 아닐 지를 판별할 수 있다. 98% 정도의 확률로 맞혀낸다. (100%가 아닌 이유는 타고나길 끈기가 있거나 아니면 남에게 뒤지길 대단히 싫어하는 아주 특별한 아이들이 가끔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공부를 잘 할 것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한마디로 말해서 보통의 지적 능력만 갖췄다면 전적으로 운에 달려있다. 지적 능력이 정상적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타고난 命(명)으로 쉽게 판별할 수 있으니 나머진 운의 흐름이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괜찮은데 노력을 안 해서 문제란 말, 흔히 듣는 얘기이다.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미 공부 잘 하긴 글렀다는 얘기, 성적이 좋을 수가 없다. 학업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지능과는 별 상관이 없다, 크게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가 아니라면 학업 성적은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좋아지게끔 되어있다. 



‘노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제는 왜 노력을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이 아이의 운세 흐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사람의 운이 하락할 때의 전형적인 현상이 바로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진지한 노력을 할 수 없게 된다. (못 하는 것이나 안 하는 것이나 사실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노력을 하지 않는 것과 사람의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운이 내리막일 뿐이다.

가령 다재다능한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아이의 노력은 분산이 되고 자칫 흩어져버릴 수 있을 것이다. 다재다능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라 하겠지만 그 어느 것에도 집중이 되지 않는 문제점을 가진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노력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되었다. 노력이란 바로 한 군데에 힘을 집중해서 이어나가고 있을 때 우리들은 그 사람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쓴다. 



노력이란 벡터(vector)값이다.



약간 어려운 얘기가 될 것도 같지만 수학에서 벡터(vector)라는 하는 개념이 있다. 어떤 힘의 방향과 크기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가령 동쪽으로 100의 힘이 작용한다고 말하면 그게 바로 벡터 값이다.

 

다재다능한 아이의 총체적인 능력이 가령 200이라 하더라도 동서남북 모두 골고루 힘을 쓰고 있다면 어떤 한 방향으로 향하는 힘은 50이 된다. 그런데 힘은 100에 불과해도 그 모두를 한 방향으로 쓰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다재다능한 아이를 그 방향에 있어서만은 앞설 것이다. 


학업 성취도가 높은 아이의 경우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학업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라 봐도 무방하다. 능력이 100이냐 200이냐 하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 



노력하기란 왜 그리 어려운가?에 대해



렇다면 왜 어떤 아이는 자신의 힘을 학업에 집중하고 반대로 어떤 아이는 그 힘이 분산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 모두 누구나 그러하듯이 관심이나 흥미가 한 가지만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돈 벌이에도 신경을 쓰지만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쪽에도 관심이 많을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취미가 있어서 그 방면에도 많은 시간 투자를 하기도 한다. 실은 이게 정상이다. 자신의 힘을 오로지 한 곳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라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주의와 에너지를 여기저기 다양한 방면에 분산시키는 아이가 실은 훨씬 정상적이라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그런 아이보다는 주로 학업에만 집중하는 아이, 실은 오히려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가 정상적인 아이보다 성적이 좋아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력한다는 것, 그게 오히려 비정상적이어서



이 세상은 온갖 유혹으로 가득하다.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학생의 경우 해보고 싶고 가져보고 싶은 대상이 실로 엄청나게 많다. 사춘기를 보내다 보면 이성에도 관심이 생길 것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싶을 것이며 남자 아이라면 게임도 해야 할 것이며 자신만의 개성을 인정받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그런 유혹을 잘 뿌리치는 편이라 보면 된다. 그렇다면 공부 잘 하는 아이 역시 정상적인 욕구와 감수성을 가졌건만 어떤 까닭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그런 유혹을 잘 뿌리치고 자신의 힘을 상대적으로 학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로 귀착이 된다. 


이제 오늘 글의 결론에 도달할 때가 되었다. 


한 곳에 그것도 학업에 자신의 능력과 힘을 집중하는 아이 혹은 학생은 주변의 보통의 아이들, 여기저기에 한 눈을 팔고 있는 정상적인 아이들에 비해 공부에 집중해야 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동기란 것이 그냥 부여되는 법은 드물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까닭은 공부를 잘 하는 아이 또는 학생은 그렇게 해야 하는 간절하고 특별한 動機(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동기는 가정 형편이 별로이거나 가난한 탓에 좋은 학교를 마치고 좋은 직장이나 자격증 또는 가령 고시패스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자신의 미래가 있지 않을 것 같다고 느낀 학생이라면 갖은 유혹을 꾹 참고 눈앞의 공부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물론 수강료가 엄청 고가인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의 지도 선생들은 엄청난 정보력과 분석력을 가지고 있고 강의 기술도 탁월하기에 학생의 진학 지도에 뛰어나다,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강남 대치동의 유명 학원을 다닌다 해도 그 안에서 어떤 학생은 이른바 SKY에 진학하고 어떤 학생은 실패한다. 그 역시 학생 스스로가 학업에 대한 강한 집착 혹은 동기를 가졌느냐 그 여부에 따라 결정이 된다는 점이다. 


나 호호당 생각에 최근엔 ‘학종’이란 것 때문에 예전에 비해 가난한 집안의 강한 동기를 가진 아이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수능시험도 예전보다 난이도가 높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푸는 기술이나 숙련도에 의해 성적이 죄우되는 경향이 있어서 이 또한 예전에 비해 가난한 집의 강한 동기를 가진 학생들에겐 더 불리한 것 같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긴 어렵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모든 현실적인 조건을 떠나 강한 동기를 가진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정상적이고 보통의 아이들보다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겠다. 



결핍은 動機(동기)를 부여하고 그러면 노력을 통해 성공한다.



강한 동기는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缺乏(결핍)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결핍되지 않은 아이들 혹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기란 실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결핍이 동기를 부여하고 동기를 가진 자는 힘과 방향을 한 곳에 모은다. 그게 바로 노력이고 노력하면 성취가 있기 마련이다.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