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메일에 대한 답신



결혼해서 첫 아기를 키우고 있는 제자가 메일을 보내왔다. 18개월이 되어가는 아들의 사진도 함께 보내왔다. 이제 18개월, 세상 아무 것도 모르는 그 눈빛이 생기에 넘치고 있었다. 


이렇게 답신을 썼다. 


“아기가 엄청 힘차 보이네요. 예쁘죠? 지금의 모습과 행동들을 잘 기억해두세요, 평생 그리울 것이니, 그냥 하루하루 자라는 것 같지만 훗날 생각해보면 이 모든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는지를 알게 되거든요. 지금 눈앞에 삶의 보석을 대하고 있는 것이라는 거.” 


아기 엄마인 제자는 무럭무럭 성장해가는 아기가 신통방통할 것이고 예쁠 것이다. 물론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제자는 아기와 함께 하는 지금의 이 순간순간들이 자신의 삶에 있어 그 얼마나 빛나는 절정의 때인지를 결코 실감하진 못할 것이다. 왜냐면 절정의 때는 과거에 있었거나 아니면 미래에 있을 것이라 여기는 우리들인 까닭이다. 



좋은 때를 좋다고 느낄 수 없는 이유, 시간의 비밀



지금을 절정이라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욕심이 많아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어떤 시간 속에 있을 때엔 그 시간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물건은 우리가 어떤 시간의 바깥에 있을 때만이 감지할 수 있는 것, 따라서 ‘지금 그리고 이곳’은 시간의 속에 있기에 그건 시간으로 감지되지 않는다, 그냥 눈앞의 일일 뿐이다. 그렇기에 절정의 때란 것 역시 어떤 시간이기에 ‘지금 그리고 이곳’에서 감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자에게 ‘지금의 모습과 행동들을 잘 기억해두세요, 평생 그리울 것’이며 ‘훗날 생각해보면 이 모든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는지를 알게 될 거’란 말을 답신에 썼다. 



인생 최고의 순간은 즐겁지가 않다, 오히려 힘들다.



상담을 하다보면 어떤 경우 찾아온 사람이 마침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가 있다. 최근 있었던 상담이 바로 그러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게 최고의 시간인 줄 알지 못한다. 나는 그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통해 눈앞의 시간들이 그 사람의 삶 전체에 있어 최고의 순간들인 것을 알지만 정작 본인은 여전히 바쁘고 불안해하고 때론 너무 힘들다고 내게 속내를 토로하곤 한다. 


가령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빌려 얘기하면 모든 것이 치열하고 아슬아슬해서 숨이 막히는 장면들이 있다. 미나스 티리스 요새를 둘러싼 긴박한 공방전과 전세 역전의 장면 또 엄청난 압박 속에서 모르도르의 척박한 땅을 헤치며 운명의 산을 향해 나아가는 프로도의 모습이 이른바 클라이막스, 절정의 순간들이다. 


모든 주요인물들이 고생하고 있고 매 순간이 고비이다. 하지만 그 대목들이 바로 소설 속 최고의 절정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반지가 화산의 불길 속에 녹아버리고 사우론은 사라진다. 그런 다음엔 결말의 얘기들이 나오고 소설은 끝이 난다. 


나를 찾아온 테이블 맞은 편의 상담자는 지금 절정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힘들어서 때론 숨이 막힌다는 토로를 한다. 나 호호당은 그 사람에게 있어 지금의 시간들이 절정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람은 그런 줄 모른다. 이럴 때면 늘 기분이 묘하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지금 당신이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 최고의 때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란 점, 그리고 많이 그리워하게 될 것이란 얘기를 해준다. 그러면 상대방은 ‘아니, 지금은 많이 힘이 든다니까요’ 하면서 항변 아닌 항변을 해온다. 이에 대해 ‘물론 힘이 들겠지만 소설 속 절정의 장면들을 보세요, 느긋하고 편안한 절정이 있던가요?’ 하고 반문하기도 한다. 



최고의 순간은 지난 뒤에야 알게 되는 법



절정이 지나면 힘든 순간들이 사라지고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는 느긋한 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날수록 편안하고 느긋한 결말보다도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던 그 때가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서서히 또는 문득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아, 내가 그 때가 최고의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에 알았더라면 좀 더 그 시간들을 즐길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생각 또는 아쉬움이 든다. 그 사람은 절정의 시간 저편 즉 시간의 바깥에 있기에 그 시간이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최대의 고비를 넘는 순간이 최고의 순간인 법이니



그렇기에 인생 최고의 순간은 당신이 인생 최고의 고비를 넘거나 또는 최대의 난관을 헤쳐 나갈 때인 것이다. 나중에 고비를 넘은 뒤 또 난관을 헤쳐 나왔을 때의 안도감 역시 대단히 기쁜 순간이 되겠지만 그 장면은 클라이막스가 아니란 사실. 


그런데 묘한 것은 클라이막스는 한창 진행 중일 땐 알 수가 없고 결과가 나왔을 때만이 사후적으로 귀착이 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최대의 험한 고비를 맞이하여 그 고비를 넘고자 하는 자가 이 순간을 즐겨야지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나 호호당은 그 사람이 그 고비를 이미 거의 다 넘었으며 또 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이고, 그 말을 듣는 그 사람은 오로지 눈앞의 고비를 넘느라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힘들어 죽을 지경인 것이다. 


예를 들면 난생처음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젊은 축구 선수가 큰 시합에 나가는 각오를 묻는 질문에 즐기고 오겠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픽-하고 웃는다. 그저 모르고 하는 말이다. 


큰 시합에 처음 나갔다면 엄청 긴장할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실수만큼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서 꽤나 경직된 자세로 운동장을 뛰어다니게 되어있지, 신나는 게임이니 즐겨야지 하는 마음일 순 없는 법이다. 


그처럼 인생 최고의 순간에 그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은 당신의 일이 어차피 잘 되게 되어있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라는 정도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 최대의 고비야말로 실은 최고의 순간이란 이 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얘기해보자. 


우리 현대사에 있어 최고의 시간은 언제였을까? 하면 바로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와 그 극복과정이었다는 점이다. 1964년에 시작된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바로 그 때가 최고의 클라이막스였다. 



우리 현대사 최고의 순간은 1997년 외환위기와 그 극복과정



당시 문자 그래도 최대의 國難(국난)을 맞이했던 우리였다. 물론 수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위기를 잘 극복한 결과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 대한민국은 럭셔리한 세월을 맞이했고 구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 강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니 외환위기와 그 극복과정이 바로 60년 흐름에서 최고의 때였던 것이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강국 미국 역시 그렇다. 최근 60년 흐름에 있어 미국이 맞이했던 최고의 고비이자 최고의 순간은 1985년 무렵이었다. 당시 악성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든 미국이었지만 살인적인 고금리 긴축 정책을 통해 미국은 힘차게 일어섰고 그 이후 소련을 무너뜨리고 글로벌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때가 미국 최고의 순간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생 최고의 순간은 가장 험난한 고비를 맞이하여 그를 극복하고 넘어서는 때인 것이다. 당장은 힘들어 죽을 지경이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때야말로 힘차고 살아있던 시절로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된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 그 시간들



결국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그에 대해 최고의 역량으로 응전할 때, 위대한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한 바의 Challenge and response, 즉 최대의 도전에 대해 최고의 응수를 하는 그 순간이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 그리고 개인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때가 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넘기고 나면 영광의 세월, 안도의 시간들이 찾아들지만 이미 최고 절정의 때는 시간 저편에 있음을 훗날 어느 때에 이르러 알게 된다.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



호호당의 젊은 시절, 영국본토 항공전을 배경으로 하는 비디오 게임을 샀던 적이 있다. 공중전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는데 검색해보니 1989년에 발매되었다. (그러니 나 호호당의 나이 서른 다섯이었다.) 


제2차 대전 초기인 1940년, 히틀러의 독일은 폴란드와 프랑스를 파죽지세로 쓰러뜨리고 영국을 위협했다. 독일이 영국 상륙에 앞서 막강한 공군력을 동원해서 영국 공군을 무력화시키고자 대규모 공중전을 개시했던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비디오 게임이었다. 


그런데 게임의 제목이 “Their Finest Hour” 였다. 그 제목이 당시 나로선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이한 상태에서 조국의 명운을 걸고 나선 영국 공군의 활약을 다룬 내용이건만 ‘그들 최고의 시간’이란 제목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최고 위기의 시간이란 표현이 더 부합되지 어떻게 최고의 시간이란 표현을 썼지? 하는 생각은 꽤나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흐르는 사이 그 어떤 시점부터인가 과연 그 제목은 실로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일부터 연휴라서 해마다 찾아가는 여수에 다녀온다. 월요일까진 글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서 알려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