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있는 일
상담오신 분 중에 자신의 운세 바닥이 언제였는지를 사실상 정확하게 맞히신 분이 있었다. 그간의 많은 상담 중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분의 말씀인 즉 그간 블로그에 올린 많은 글과 최근의 동영상 강좌를 보다 보니 ‘통밥’으로 얼추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대단하시다고 선뜻 인정을 해주었다.
운세의 최저점이자 바닥, 반대로 말하면 새로운 60년 순환의 시작점은 立春(입춘)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느끼기로 가장 힘든 시점은 그로부터 7.5년이 흐른 춘분의 시점이 된다. 그 분은 자신의 춘분 시점을 정확하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에 나는 입춘 바닥은 사실 그로부터 7.5년 전이라고 나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춘분, 각성의 때
이처럼 가장 암울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시점은 60년 순환에 있어 그 시작점인 입춘이 아니라 그로부터 7년 반이 흐른 春分(춘분)이 된다.
춘분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면서 그 이후부턴 낮이 더 길어지는 시점이다. 바로 이때가 고통스런 覺醒(각성)의 때가 된다. 각성이 무엇인가? 어떤 잘못이나 사실 등을 깨달아서 알게 됨을 말한다. 잘못한 것을 깨달아서 알게 될 때 우리는 괴로워한다.
아,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내가 너무 놀고 있었구나, 그간 내가 너무 세상을 몰랐구나! 등등 뒤늦은 한탄, 즉 晩時之歎(만시지탄)을 한다.
각성 또한 하나의 빛으로부터 온다. 어느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한 줄기 빛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어떤 통찰을 유발케 하고 그것은 마침내 각성으로 이어진다. 그게 바로 춘분의 빛이다. 춘분이 지나면 밤 시간보다 낮 시간이 길어지기에 그런 것이다.
60년에 걸친 순환에 있어 춘분의 때를 지내보지 않았거나 또는 너무 어린 시절에 겪은 사람은 그 고통과 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한다.
나 호호당이 겪었던 춘분의 기억
이에 나 호호당 개인의 경험을 예로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나 호호당은 1955년생인데 1997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이에 2004년, 내 나이 마흔아홉에 춘분의 때를 보냈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생생하게 당시의 고통과 각성을 기억한다, 몸에 새겼던 것이다. 당시 나는 스스로 한심하고 못났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유복한 환경에 태어나 명문의 고등학교와 명문 대학을 나왔고 군 복무 후엔 급여도 좋고 근무환경도 어렵지 않은 은행에서 일했다. 어쩌다 보니 부잣집 사위가 된 바람에 내가 장만한 아파트 한 채, 아내가 받아온 아파트 2채, 그 바람에 1990년 무렵엔 강남 서초에 아파트만 3채, 거기에 상당한 주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윤택했다.
그림을 잘 그려서 늘 인기가 많았고 상도 여러 번 탔다. 직장생활하면서는 모 신문사가 주최하는 사진전에도 응모해서 상도 받았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 교양도 풍부했고 한문에 밝아서 중국 원전을 읽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며 중국어회화에도 능했다. 아울러 영어 회화도 1980년대 당시로선 일류 축에 속했다. 나름 엘리트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 호호당에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으니 나도 모르게 사람과 세상을 밑으로 깔고 보는 교만함이 내 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시건방진 태도로 세월을 보낸 것이다.
그러자 운세 순환에 있어 입춘 5년 전인 1992년, 小寒(소한)의 때부터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고 이에 12년이 흘러 春分(춘분)의 운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월세 집에 틀어 박혀 보내는 신세, 망해도 너무 심하게 망한 零落(영락)의 신세가 되어 있었다.
서른일곱부터 풍상의 세월 12년을 겪다보니 어언 마흔아홉, 머리가 허옇게 세어가고 있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이 어느새 홍안이 백발 되고 상전이 벽해로 변해있었다. 내 딴엔 똑똑한 줄 알았더니 천만의 말씀, 정말로 바보처럼 살았구나 하는 한스러움만 가슴 가득 밀려왔다.
건강도 엉망이었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댄 탓에 호흡곤란의 천식으로 고생을 해야 했고 체중 또한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로 불어 있었다.
특히 괴로웠던 것은 그 세월 사이에 잘 될 수 있는 길은 너무나도 많았건만 그 모두를 시시하다 여겨서 외면하고 어쩌면 그렇게 망하는 길만 찾아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悔恨(회한)이었다.
이에 스스로 너무나 부끄럽고 민망해서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쯤에서 세상에서 퇴장하고픈 마음이었지만 그 또한 쉬운 일도 아니고 게다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살아갈 날 또한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내 운세 흐름 상 춘분인 2004년 여름부터 다음 해 가을까지 줄곧 스스로를 自責(자책)하면서 보냈다.
각성한 결과 얻게 된 새로운 마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 작정을 했다, 앞날을 살아가면서 세상 그 누구라도 무시하거나 우습게 여기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나의 선생님으로 삼을 것이며 작은 기회라도 생긴다면 최선을 다해서 붙잡아 보겠다. 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으면 내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각오였다.
이게 나 호호당이 운명의 춘분을 보내면서 가지게 된 새로운 마음 자세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로 그 무렵부터 나 호호당이 발견해낸 운명의 법칙인 자연순환운명학의 연구가 크게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후로도 이론의 모델링이 되지 않아 포기해야 하는가 싶은 좌절감이 여러 차례 나를 괴롭혀왔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돌차구가 열리고 또 열리곤 했다. 이에 나는 2014년 어느 날에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초유의 학문이 세상에 등장했다는 글까지 썼다. 그 또한 10년의 노력이었다.
이렇게 나 호호당은 60년 순환에 있어 춘분의 때를 보냈다. 처절할 정도로 각성을 하고 반성을 했더니 얼마 가지 않아 큰 報償(보상)이 주어졌다.
각성이 가져다 준 報償
2007년 바닥으로부터 10년이 흐른 淸明(청명)의 때가 되자 가진 것은 없어도 그저 밥 먹고 숨 쉬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다. 매일 변하는 날씨와 하늘만 바라봐도 행복감을 느꼈다.
물론 늘 돈 걱정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살아있음 그 자체만으로 좋았다. 마치 몸속에서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큰 병 앓고 나서 내 몸 마음대로 쓰고 다니는 것만 해도 즐거운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세상에 살아있는 그 어떤 것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내 스스로 지은 호를 生命(생명))을 애호하고 세상의 모든 모습 즉 色(색)을 애호한다는 의미에서 호생하고 호색한 사람, 줄여서 好好堂(호호당)이라 지었다.
나 호호당의 얘기는 이 정도까지만 하겠다. 운명의 순환 속에서 춘분의 때, 입춘 바닥으로부터 7.5년이 경과했을 때 겪는 이런 상황은 사람에 따라, 즉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처지, 나이에 따라 무수히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어려운 가운데 각성을 하게 된다.
되돌아본 우리 대한민국의 춘분
우리 대한민국 역시 1964년이 국운의 입춘이었기에 1972년 무렵이 춘분이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곤궁했고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부정부패가 일상이었다.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발전에 모든 것을 다 걸었고 유신독재를 단행한 상태였다.
당시 유행하던 말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 안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것과 같다는 말이었으니 우리 스스로 自己卑下(자기비하)가 극에 달할 정도였다. 당시 우리의 지식인들은 낙담했고 또 통분했다. 이에 김지하 시인이 “타는 목마름으로”란 시를 씀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표출했던 것은 1975년이었다.
하지만 훗날에 보니 박정희도 옳았고 김지하도 옳았다. 한 사람은 세계 최빈국의 대한민국을 강철과 같은 의지로서 경제발전의 기틀을 놓았고 또 한 사람은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렸다. 당시 나 호호당은 대학생이랍시고 박정희를 매우 증오했었지만 말이다.
기적을 만들어낸 우리 대한민국
며칠 전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우리 영화의 빛나는 금자탑을 세웠다. 1992년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개방했을 때 많은 사람이 우려했었으나 그들의 판단은 틀렸다. 그로부터 우리 영화는 크게 발전해왔고 마침내 저런 큰 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 우리는 개방을 통해 성공을 거듭해왔기에 개방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그 말이 새삼 기억난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지지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하지만 그 분 역시 크게 옳았다.
돌이켜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40대 세대만 해도 그것이 기적이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겪지 않았기에 그렇다.
새로운 국운의 순환을 앞에 두고
이제 앞으로 5년 후가 되면 또 한 번 국운의 입춘 바닥이다. 그렇기에 올 해부터 많은 것이 어려워지고 새로운 엄중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32년이 되면 시름 깊은 가운데 또 한 번의 큰 覺醒(각성)을 하게 될 것이다.
2032년은 앞으로 13년, 따라서 나 호호당은 아마도 그 무렵까진 살아있을 공산이 크다. 그러니 그 무렵에 가서 우리가 또 어떤 깨우침을 얻게 될 것인지 지켜볼 수 있겠다. 각성의 알맹이를 보면 그 속에 향후의 미래가 또 보일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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