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있는 일

 

 

상담오신 분 중에 자신의 운세 바닥이 언제였는지를 사실상 정확하게 맞히신 분이 있었다. 그간의 많은 상담 중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분의 말씀인 즉 그간 블로그에 올린 많은 글과 최근의 동영상 강좌를 보다 보니 ‘통밥’으로 얼추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대단하시다고 선뜻 인정을 해주었다.

 

운세의 최저점이자 바닥, 반대로 말하면 새로운 60년 순환의 시작점은 立春(입춘)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느끼기로 가장 힘든 시점은 그로부터 7.5년이 흐른 춘분의 시점이 된다. 그 분은 자신의 춘분 시점을 정확하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에 나는 입춘 바닥은 사실 그로부터 7.5년 전이라고 나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춘분, 각성의 때

 

 

이처럼 가장 암울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시점은 60년 순환에 있어 그 시작점인 입춘이 아니라 그로부터 7년 반이 흐른 春分(춘분)이 된다.

 

춘분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면서 그 이후부턴 낮이 더 길어지는 시점이다. 바로 이때가 고통스런 覺醒(각성)의 때가 된다. 각성이 무엇인가? 어떤 잘못이나 사실 등을 깨달아서 알게 됨을 말한다. 잘못한 것을 깨달아서 알게 될 때 우리는 괴로워한다.

 

아,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내가 너무 놀고 있었구나, 그간 내가 너무 세상을 몰랐구나! 등등 뒤늦은 한탄, 즉 晩時之歎(만시지탄)을 한다.

 

각성 또한 하나의 빛으로부터 온다. 어느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한 줄기 빛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어떤 통찰을 유발케 하고 그것은 마침내 각성으로 이어진다. 그게 바로 춘분의 빛이다. 춘분이 지나면 밤 시간보다 낮 시간이 길어지기에 그런 것이다.

 

60년에 걸친 순환에 있어 춘분의 때를 지내보지 않았거나 또는 너무 어린 시절에 겪은 사람은 그 고통과 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한다.

 

 

나 호호당이 겪었던 춘분의 기억

 

 

이에 나 호호당 개인의 경험을 예로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나 호호당은 1955년생인데 1997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이에 2004년, 내 나이 마흔아홉에 춘분의 때를 보냈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생생하게 당시의 고통과 각성을 기억한다, 몸에 새겼던 것이다. 당시 나는 스스로 한심하고 못났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유복한 환경에 태어나 명문의 고등학교와 명문 대학을 나왔고 군 복무 후엔 급여도 좋고 근무환경도 어렵지 않은 은행에서 일했다. 어쩌다 보니 부잣집 사위가 된 바람에 내가 장만한 아파트 한 채, 아내가 받아온 아파트 2채, 그 바람에 1990년 무렵엔 강남 서초에 아파트만 3채, 거기에 상당한 주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윤택했다.

 

그림을 잘 그려서 늘 인기가 많았고 상도 여러 번 탔다. 직장생활하면서는 모 신문사가 주최하는 사진전에도 응모해서 상도 받았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 교양도 풍부했고 한문에 밝아서 중국 원전을 읽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며 중국어회화에도 능했다. 아울러 영어 회화도 1980년대 당시로선 일류 축에 속했다. 나름 엘리트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 호호당에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으니 나도 모르게 사람과 세상을 밑으로 깔고 보는 교만함이 내 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시건방진 태도로 세월을 보낸 것이다.

 

그러자 운세 순환에 있어 입춘 5년 전인 1992년, 小寒(소한)의 때부터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고 이에 12년이 흘러 春分(춘분)의 운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월세 집에 틀어 박혀 보내는 신세, 망해도 너무 심하게 망한 零落(영락)의 신세가 되어 있었다.

 

서른일곱부터 풍상의 세월 12년을 겪다보니 어언 마흔아홉, 머리가 허옇게 세어가고 있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이 어느새 홍안이 백발 되고 상전이 벽해로 변해있었다. 내 딴엔 똑똑한 줄 알았더니 천만의 말씀, 정말로 바보처럼 살았구나 하는 한스러움만 가슴 가득 밀려왔다.

 

건강도 엉망이었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댄 탓에 호흡곤란의 천식으로 고생을 해야 했고 체중 또한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로 불어 있었다.

 

특히 괴로웠던 것은 그 세월 사이에 잘 될 수 있는 길은 너무나도 많았건만 그 모두를 시시하다 여겨서 외면하고 어쩌면 그렇게 망하는 길만 찾아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悔恨(회한)이었다.

 

이에 스스로 너무나 부끄럽고 민망해서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쯤에서 세상에서 퇴장하고픈 마음이었지만 그 또한 쉬운 일도 아니고 게다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살아갈 날 또한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내 운세 흐름 상 춘분인 2004년 여름부터 다음 해 가을까지 줄곧 스스로를 自責(자책)하면서 보냈다.

 

 

각성한 결과 얻게 된 새로운 마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 작정을 했다, 앞날을 살아가면서 세상 그 누구라도 무시하거나 우습게 여기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나의 선생님으로 삼을 것이며 작은 기회라도 생긴다면 최선을 다해서 붙잡아 보겠다. 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으면 내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각오였다.

 

이게 나 호호당이 운명의 춘분을 보내면서 가지게 된 새로운 마음 자세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로 그 무렵부터 나 호호당이 발견해낸 운명의 법칙인 자연순환운명학의 연구가 크게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후로도 이론의 모델링이 되지 않아 포기해야 하는가 싶은 좌절감이 여러 차례 나를 괴롭혀왔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돌차구가 열리고 또 열리곤 했다. 이에 나는 2014년 어느 날에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초유의 학문이 세상에 등장했다는 글까지 썼다. 그 또한 10년의 노력이었다.

 

이렇게 나 호호당은 60년 순환에 있어 춘분의 때를 보냈다. 처절할 정도로 각성을 하고 반성을 했더니 얼마 가지 않아 큰 報償(보상)이 주어졌다.

 

 

각성이 가져다 준 報償

 

 

2007년 바닥으로부터 10년이 흐른 淸明(청명)의 때가 되자 가진 것은 없어도 그저 밥 먹고 숨 쉬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다. 매일 변하는 날씨와 하늘만 바라봐도 행복감을 느꼈다.

 

물론 늘 돈 걱정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살아있음 그 자체만으로 좋았다. 마치 몸속에서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큰 병 앓고 나서 내 몸 마음대로 쓰고 다니는 것만 해도 즐거운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세상에 살아있는 그 어떤 것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내 스스로 지은 호를 生命(생명))을 애호하고 세상의 모든 모습 즉 色(색)을 애호한다는 의미에서 호생하고 호색한 사람, 줄여서 好好堂(호호당)이라 지었다.

 

나 호호당의 얘기는 이 정도까지만 하겠다. 운명의 순환 속에서 춘분의 때, 입춘 바닥으로부터 7.5년이 경과했을 때 겪는 이런 상황은 사람에 따라, 즉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처지, 나이에 따라 무수히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어려운 가운데 각성을 하게 된다.

 

 

되돌아본 우리 대한민국의 춘분

 

 

우리 대한민국 역시 1964년이 국운의 입춘이었기에 1972년 무렵이 춘분이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곤궁했고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부정부패가 일상이었다.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발전에 모든 것을 다 걸었고 유신독재를 단행한 상태였다.

 

당시 유행하던 말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 안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것과 같다는 말이었으니 우리 스스로 自己卑下(자기비하)가 극에 달할 정도였다. 당시 우리의 지식인들은 낙담했고 또 통분했다. 이에 김지하 시인이 “타는 목마름으로”란 시를 씀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표출했던 것은 1975년이었다.

 

하지만 훗날에 보니 박정희도 옳았고 김지하도 옳았다. 한 사람은 세계 최빈국의 대한민국을 강철과 같은 의지로서 경제발전의 기틀을 놓았고 또 한 사람은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렸다. 당시 나 호호당은 대학생이랍시고 박정희를 매우 증오했었지만 말이다.

 

 

기적을 만들어낸 우리 대한민국

 

 

며칠 전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우리 영화의 빛나는 금자탑을 세웠다. 1992년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개방했을 때 많은 사람이 우려했었으나 그들의 판단은 틀렸다. 그로부터 우리 영화는 크게 발전해왔고 마침내 저런 큰 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 우리는 개방을 통해 성공을 거듭해왔기에 개방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그 말이 새삼 기억난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지지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하지만 그 분 역시 크게 옳았다.

 

돌이켜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40대 세대만 해도 그것이 기적이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겪지 않았기에 그렇다.

 

 

새로운 국운의 순환을 앞에 두고

 

 

이제 앞으로 5년 후가 되면 또 한 번 국운의 입춘 바닥이다. 그렇기에 올 해부터 많은 것이 어려워지고 새로운 엄중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32년이 되면 시름 깊은 가운데 또 한 번의 큰 覺醒(각성)을 하게 될 것이다.

 

2032년은 앞으로 13년, 따라서 나 호호당은 아마도 그 무렵까진 살아있을 공산이 크다. 그러니 그 무렵에 가서 우리가 또 어떤 깨우침을 얻게 될 것인지 지켜볼 수 있겠다. 각성의 알맹이를 보면 그 속에 향후의 미래가 또 보일 것이니 말이다.

한 번 쯤은 들어보셨을 말

 

 

“가난이 문을 두드리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간다.” 이런 재치 넘치는 말,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우연한 계기에 나는 이 말이 아일랜드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처음 쓴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것도 아니었다. 영국 속담이란 말도 있고 독일의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아프리카의 오래된 속담이란 주장도 있다. 어쩐지 아프리카 쪽이 오리지널이 아닐는지 싶다.

 

가난이 문을 두드리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간다. 영어 표현으론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버전이 있다.

 

When poverty comes in at the door, love flies out of the window.

When Poverty Knocks at the Door, Love flies out of the Window.

 

100퍼센트 맞는 말이라 하긴 그렇지만 거의 그런 것 같다.

 

 

시대 차이, 세대 차이

 

 

집안에 가난이 찾아들면 유교적 관념을 지녔던 예전 어머니들은 애정은 없어도 자식들 보며 참고 살았지만 최근의 부부들은 곤궁해지면 이혼할 확률이 무척 높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난해지면 애정은 사라진다, 다만 예전과 지금의 차이는 그냥 참고 견디며 한 세상 사느냐 아니면 이혼하느냐 정도라 하겠다.

 

 

물 건너 세상의 풍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물 건너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엔 이혼을 하게 되면 결국 돈 문제가 되니 아예 결혼식이나 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동거하는 커플이 거의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이를 낳더라도 결혼신고는 하지 않는다 한다. 우리로 치면 사생아가 되는 셈인데 그쪽에선 별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또 서구의 부자들은 결혼할 당시부터 변호사를 통해 이혼할 경우의 재산 문제에 대해 사전에 합의해둔다고 한다. 이혼이 금기가 아닌 탓에 일종의 사전 출구전략인 셈이다.

 

최근 뉴질랜드에서 온 제자가 전해준 새로운 얘기인 즉, 뉴질랜드에선 남녀가 만나서 사귀더라도 이름을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아니면 가명이나 애칭을 사용한다고 한다. 언제든 결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를 낳아도 엄마가 말해주지 않아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동거할지언정 결혼을 하지 않는 풍토는 주로 북유럽 그리고 미국의 경우 남부의 감리교 지역을 제외한 개신교 지역에서 그렇다. 로마 가톨릭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선 여전히 결혼을 하는 모양이다.

 

 

이혼 문제로 국민투표까지 했던 이탈리아

 

 

놀랍게도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가톨릭 전통이 강했던 이탈리아는 1974년에 이혼을 합법화할 것인가를 놓고 거국적 행사인 ‘국민투표’까지 단행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투표는 거의 전 유권자가 참여할 정도로 대단한 이슈였으며 투표 결과 이혼 합법화에 찬성하는 이가 59.26%, 합법화 반대가 40.74%가 나와서 결국 이혼이 합법화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투표 문항이 적절했느냐를 놓고서 나중에도 엄청난 사회적 물의가 있었으며 가톨릭 종교 지도자들은 말세라고 하면서 개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출처: wikipedia, "1974 Italian divorce referendum")

 

우리의 경우 대한제국 시절인 1898년부터 그러니까 121년 전에 이미 근대적 형태의 이혼제도가 도입된 것에 비하면 가톨릭 전통의 이탈리아는 정말 대단하다.

 

 

흔들리는 있는 결혼 제도

 

 

우리의 경우 먹고 살기가 팍팍해진 최근에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非婚(비혼)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멀지 않아 우리도 어쩌면 서구의 풍조를 따라갈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결혼이란 법적 제도가 맹렬히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 호호당 생각하기로 우리도 동거를 통해 낳은 아이가 사생아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야만 그나마 출산율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혼소송은 결국 돈 싸움

 

 

나 호호당은 법대를 나온 까닭에 대학 동기 중엔 법조인이나 변호사를 했거나 하고 있는 친구들이 제법 있다. 꽤 오래 전 변호사 사무실을 하는 한 친구로부터 “이혼소송이란 결국 돈 싸움이야 딴 거 없어” 하는 말을 듣고 약간 놀랐던 적이 있다. 지금에서야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인데 말이다.

 

맞는 말이다. 이혼소송은 결국 돈 싸움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 소송을 고려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런데 소송의 동기인 즉 억울하고 원통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나는 “민사 소송은 결국 돈 싸움입니다, 법이 부인의 억울 원통함을 풀어주지는 않습니다, 그저 금전적인 보상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라고 말해준다.

 

이처럼 상담하다 보면 부부의 이혼 문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혼의 이유를 보면 물론 불륜도 많지만 불륜 자체가 최종적인 동기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애정이 식었다 해도 돈 문제만 없으면 그냥저냥 지내다가도 결국 돈 문제, 형편이 어려워지면 이혼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부부가 갈라설 무렵이 되면 부부가 잘 살고 있던 예전보다 금전적으로 어려워진 경우가 많아서 더 치열한 소송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남편의 수입이 너무 없어서 아예 위자료를 포기하고 합의 이혼하는 딱한 여성들도 많다.

 

상담을 통한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대부분의 경우 이혼하는 시점은 부부 모두 운세가 한창 내리막길을 걷고 있거나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바닥을 전후한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것이 입춘 바닥을 보내고 이제 운명의 여름, 즉 입춘 바닥에서 15년이 흐른 이후에 이혼을 하는 경우 이혼한 다음에 더 나은 삶을 사는 경우도 꽤나 된다는 점이다.

 

 

노년의 이혼은 참으로 문제, 특히 남성에게

 

 

그간의 상담경험과 연구에 의하면 이혼이 최악이 되는 경우는 중년의 이혼보다도 60대 이후의 이혼이 아닌가 싶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혼은 대개의 경우 그 사람의 운세 순환이 내리막일 때 하게 된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 운이 내리막이라면 장차 수입이나 직업 사정도 어려워질 것이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돈 문제에 이혼까지 하게 된다면 특히 그 당사자가 남성인 경우 상당히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돈만 충분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새롭게 결혼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나이든 여성의 경우 이혼을 해도 예컨대 저임금이긴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기가 남자들보다 나은 것 같고, 게다가 자녀의 집안일을 돌보면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 정말 어려워진다.

 

 

돈과 행복의 관계

 

 

돈 얘기가 나와서 얘기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제목의 책이 있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다. 하지만 행복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타고난 자질 즉 건강이나 재주, 취미나 관심 등과 더불어 타고난 품성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행복이란 것은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난 문제이다.

 

(가령 나 호호당의 경우 호기심이 많아서 늘 연구하고 궁리하는 것이 있어 전혀 심심하지가 않다. 게다가 그림 재주가 있어서 늘 그리면서 즐긴다. 그런 까닭에 나 호호당은 스스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은 이처럼 돈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하지만 불행은 돈이 없으면 바로 닥친다.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자신의 취미나 관심, 또는 숨겨진 재능 같은 것을 시험해볼 시간이나 기회가 돈벌이 때문에 원천 봉쇄된다면 그거야말로 불행하다.

 

그렇기에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지만 불행을 피하는 방파제 또는 방화벽 역할은 분명히 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돈은 행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돈이 사라지면 즉 가난이 닥치면 그런 까닭에 사랑은 창문을 통해 날아간다. 가난이 닥치면 사랑만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건강도 행복도 나아가서 삶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다. 다시 얘기지만 돈이 반드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진 않겠지만 우리의 삶을 받쳐주는 필수 요건이고 바탕인 것이다.

 

 

돈, 젊음, 그리고 미모

 

 

돈 얘기를 하다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젊음과 美貌(미모)이다.

 

사실 젊음과 미모 이 두 가지는 남녀 불문하고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대단한 財貨(재화)라 하겠다. 특히 여성에게 미모는 절대적인 무기이다. 모두가 미모를 가진 것은 아니기에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지만 젊음은 한 때 누구나 가지는 것, 그런 점에서 적어도 한 가지만은 평등하다. 물론 최근엔 돈만 있으면 성형수술을 통해 어느 정도 미모도 소유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긴 하다. 미모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데 젊음이나 미모는 세월과 함께 감가상각이 이루어지는 재화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면 돈만 남는다. 심지어 돈은 이자가 붙으니 감가상각과는 거리가 있다. 불편한 진실이다. (물론 돈이 행복을 살 순 없다는 점 또한 다시 한 번 강조해둔다.)

 

최근 이상하게도 이혼이나 결별과 관련된 상담이 잦다. 그런 탓에 이 글을 쓰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이란 게 결국 변하더라고요. 몇 년 전에 상담하러 오신 분이 했던 말이다. 여운이 많이 남았고 그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오랜 사색 끝에 미처 정답을 얻진 못했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과 욕망, 특히 에로틱한 욕망은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짧다는 생각. 사랑은 좀처럼 변하지 않지만 욕망은 그렇지가 않다는 생각. 사랑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내리사랑, 즉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지만 커플 간의 사랑은 그것이 사랑인지 욕망인지도 판별하기 어렵다는 생각, 또 순수한 사랑이라 해도 가난이 닥쳐오면 시험을 받게 된다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더 생각해볼 것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同病相憐(동병상련)



며칠 꽤나 날이 덥더니 오늘은 비가 온다. 새벽녘에 제법 굵게 내리더니 오후 들어 부슬비로 내리고 있다. 덕분에 날이 식어서 좋다. 지난주에도 글을 거의 올리지 못했다. 좌골신경통 때문이다. 서 있거나 누워있으면 괜찮은데 앉았으면 통증이 온다. 그 바람에 글을 쓰기가 어려워서 지난 주 내내 쓰다 말고 쓰다 말고를 반복해야 했다. 답답한 노릇이다.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보면 디스크 시술에 관한 광고성 프로그램이 저렇게나 많았던가 싶다. 온통 어깨 통증, 허리와 다리 통증에 관한 것이다. 역시 남의 일은 내 알 바가 아닌 것이어서 종전까진 잽싸게 채널을 돌렸던 것이 정작 내 일이 되다 보니 새삼 눈에 들어온다. 


작업실은 방이 두 개, 수묵화를 그리던 건너 방의 책상을 치우고 매트리스를 깔았다. 앉았다가 통증이 시작되면 일어나서 서성대거나 아니면 건너 방으로 가서 누워서 책을 본다. 



좌골신경통 때문에 시작된 또 하나의 여행



러다 보니 어쩌다가 또 하나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남긴 무려 14권짜리 대작 “역사의 연구”를 읽는 일이다. 1970년대에 번역 출간된 책인데, 책 한 권당 면수만 해도 6백 페이지, 그러니 대략 8천 페이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40대 초반 처음 접했는데 너무 방대한 내용이라 미처 다 읽진 못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읽어보니 무협소설 만큼이나 흥미진진, 재미가 있다. 40대 중반에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남긴 “서양의 몰락”이란 책에 심취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역사의 연구”에 푹 빠졌다. 풍덩. 


인류 역사의 수많은 케이스들을 다루고 있어 미처 잘 모르는 분야도 여전히 있지만 이젠 그런대로 다른 책이나 위키를 뒤지지 않고서도 술술 읽혀지니 그간 역사에 대한 내 시야가 많이 넓어진 까닭이 아닌가 싶다. 현재 제4권을 읽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토인비의 저 방대한 연구가 다루고 있는 핵심 주제, 흔히 “도전과 응전”이란 말로 축약된 저 주제는 사실 나 호호당이 연구해 온 주제, 운명의 순환과 그 법칙에 관한 것과 그 본질에 있어 전적으로 동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번 독서 대장정이 더 흥미롭다. 


오늘의 글은 바로 그 주제에 관한 것이다. 



편하게 살면 나약해지는 것일까?



편하게 살다보면 나약해진다. 이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상식적으로 대충 맞는 말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따져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무려 14권에 달하는 방대한 연구를 통해 다루고 있는 주제 역시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라 하겠다. 


토인비는 자신의 저서 제2부 ‘문명의 발생’에서 이 문제를 놓고 인류 역사의 방대한 사례들을 열거하고 살펴가며 집요하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또 검증하고 있다. 


토인비의 연구에 따르면 문명의 발생 자체가 인류 투쟁의 산물이다. 문명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우호적인 환경에서 탄생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고 척박하고 거친 환경 속에서 더 잘 생겨나고 성공적이더라 하는 얘기이다. 


편한 환경에서가 아니라 힘든 逆境(역경)에서 발전이 있다는 이 주장은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한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그러니 편하게 살다 보면 나약해진다는 말은 맞는 말이라 해도 무방하다. 



樂園(낙원)에서의 삶은 없다



당연히 우리 모두 누구 할 것 없이 안락하고 편하게 살고자 한다. 고생하고픈 이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안일하게 살다보면 나약해지고 퇴보한다. 그 결과 이른바 망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편히 살고픈 우리의 바람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긴 하겠으나 편히 살다보면 나약해진다는 점에서 꽤나 矛盾(모순)된 욕망이라 하겠다. 


앞의 얘기를 다시 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에덴동산이나 파라다이스 또는 극락정토와 같은 세상에서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은 실낙원 즉 Paradise Lost 이고 지저분한 穢土(예토)의 세상이다. 


토인비의 말을 빌려 얘기하면 인류의 문명 자체가 환경과 주어진 여건에 대한 부단한 즉 끊임없는 투쟁의 산물이다. 이 말을 조금 바꿔서 얘기하면 애초부터 환경이 풍족하고 살기에 좋았다면 아예 문명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인간은 마치 자연 속에서 식물처럼 존재하고 있을 거란 얘기이다. 



산다는 것은 어차피 고단한 것이어서



따라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어쨌거나 길고 긴 투쟁과 고생으로 점철되지 않을 수 없다. 다. 자연 환경과의 투쟁만이 아니라 인간 집단 간의 투쟁, 아울러 개개인간의 치열한 상호 경쟁 혹은 투쟁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 산다는 것은 고생일 수밖에 없다. 다만 운명의 순환이란 것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좀 더 힘들고 반대로 조금은 더 수월한 때가 갈마드는 것일 뿐이다. 


바람이 있고 욕망이 있어서 우리는 어떤 목표를 세운다. 그런데 그 목표란 건 현재의 상태보다 더 높은 단계이기에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하고 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이 들 수밖에. 


상담하다 보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정말이지 제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 못 했어요.” 하지만 그런 일을 겪지 않는 인생은 없다. 아직 겪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나 한 번은 그런 어려운 처지를 겪게 된다. 평생을 두고 無事安逸(무사안일)하고 乘勝長驅(승승장구)하는 삶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 반대로 평생을 두고 막히기만 하는 답답한 삶도 없다. 한 때 그럴 뿐이다.)



정말로 잘 살다간 어느 할머니



며칠 전 우리 젊은 세대들이 잘 모르는 ‘도리스 데이’란 이름의 미국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1960년대 전성기를 보낸 미국의 유명 여가수였다. 우리로 치면 동백아가씨의 이미자 선생님과 같은 분이다. 


1922년 4월 3일에 태어나 며칠 전에 돌아가셨으니 무려 97년 하고도 한 달을 살다간 셈이다. 


이 분의 사주를 검토해보면 최고의 운에 세상을 떠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태어날 때 받은 생명의 힘을 남김없이 알뜰하게 소진하고 세상을 떠난 분이란 생각이 든다. 


도리스 데이 할머니 역시 유명 가수로서 많은 영광을 누렸지만 그에 못하지 않게 숱한 좌절과 굴욕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냥 쭉 편하게 好衣好食(호의호식)한 삶은 절대 아니었다. 인생 한 번 살다 가려면 무수한 고비를 만나기 마련이고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잘 살려면 물건을 아끼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말은 듣게 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 스스로를 아끼고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채어날 때 받은 자신의 삶을 알뜰하게 잘 쓰다가 가야한다는 얘기이다. 



죽은 것이 아니라 羽化登仙(우화등선)한 할머니



그런 면에서 도리스 데이 할머니의 삶이야말로 모범이고 典型(전형)이 아닌가 한다. 그간 구글이나 위키를 통해 수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생애를 연구 검토해 보았지만 이 분처럼 잘 살다가 떠난 사람은 보지 못했다.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하지만 이 분의 경우 그 어떤 통증이나 고생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단정을 한다. 그냥 노화로 인해 숨쉬기가 거북해져서 돌아가셨을 것으로 본다. 


살다보면 실망도 하고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게도 된다. 이에 화를 내기도 하고 역정을 부리기도 하겠지만 그게 다 손해란 사실, 그래본 들 그게 모두 아까운 내 생명력을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양반 역시 한 때 그런 세월도 겪었지만 끝내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다루었기에 저렇게 살다 갔을 것으로 여긴다. 


완전연소의 삶을 살다간 셈이니 죽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신선이 되어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돌아간 羽化登仙(우화등선)의 삶을 살다간 것이 아닐까 싶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엔 영원히 살 것 같아서 돈과 명예를 얻고자 세월을 보내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은 결국 내 삶이란 얘기였다. 


오늘의 글 역시 오후 3시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 시각이 새벽 3시 40분이다. 계속해서 의자에서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텔레비전에선 류현진이가 안타를 매회 맞아가면서도 실점하지 않고 용케 잘 던져가고 있다.


우리는 전적으로 개방형 경제

 

 

우리 경제는 개방경제이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무역비중이 높고 수출은 우리 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역시 철저하게 개방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 경제는 글로벌 경제 동향에 대해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트럼프가 중국에 대해 25% 관세폭탄을 터뜨리자 그것이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모든 언론 뉴스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하고 있고 증시는 지난 목요일부터 큰 폭의 하락을 보이고 있으니 이 모두 우리 경제가 대외 동향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 지를 잘 보여준다.

 

무역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이른바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전자제품의 경우 우리나 대만, 말레이시아, 태국 등은 일본에서 부품과 재료를 가져오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중간재를 생산한 다음 그것을 중국으로 가져간다. 그러면 중국에서 최종 완제품이 되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되는 이 공급 사슬이 어떻게 변형되고 왜곡될 것인지 그 악영향을 미처 가늠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악영향은 무역과 관련된 실물경제만이 아니라 금융 분야에도 대단히 큰 파급효과를 미치게 된다. 그 바람에 글로벌 악재가 생길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동향에 대해 늘 우려를 이마에 달고 사는 우리들이다.

 

 

외국인 투자, 이젠 얘기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이에 오늘은 우리 증시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의 향후 동향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젠 얘기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을 한다.

 

우리 증시를 글로벌 시장에 개방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말부터였다. 하지만 우려도 많았다. 증시를 개방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막대한 자금력과 선진 투자 노하우로 인해 우리 증권사들이 상대가 안 된다는 말, 일반 투자자들도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관련해서 흥미로운 점은 영화시장 개방 역시 자본시장 개방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영화시장을 개방하면 국산 영화는 맥도 못 추고 전멸할 것이라는 우려, 그 바람에 스타 배우들을 필두로 수많은 영화인들이 극력 반대에 나서고 시위도 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본시장이나 영화시장 모두 오히려 개방 이후에 양과 질에서 장족의 발전을 보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개방으로 인해 크게 선진화된 우리 경제

 

 

이처럼 시장 개방은 나름의 부작용도 있지만 전체적인 국면에선 긍정적인 효과가 더 컸던 것이 사실이라 하겠다. 증시개방의 경우 그를 통해 우리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의 재무구조가 크게 건실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금융시장 개방 이후 우리 경제가 돌아가는 구조는 대단히 선진화되었다. 주식 좀 하는 사람치고 주당수익률(PER)이나 주당순자산(PBR), 자기자본이익율(ROE)과 같은 개념을 모르는 이가 없고, 은행에서 대출 좀 받으려 할 것 같으면 DTI 라든가 LTV, DSR 같은 개념을 익히 알고 있는데 이 모두 30년 전만 해도 대단히 낯설고 어려운 개념들이었다.

 

현재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 비중은 시가총액에 있어 대략 35%선을 중심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이 자금이 크게 빠져나갈 것 같으면 증시 하락은 당연한 얘기일 것이고 파급효과로서 부동산 시장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금융시장의 외국인 투자에 대한 향후 전망

 

 

그러면 지금부터 나 호호당이 밝혀온 ‘자연순환의 이치’에 근거해서 본격적으로 외국인투자의 향후 동향에 대해 전망해보고자 한다. (자연순환의 이치는 기본적으로 대단히 단순하지만 그 어떤 예측 기법보다도 위력적이란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해가다 보면 그 노력의 누적효과- 이를 나 호호당은 時間(시간)의 利子(이자)라고 부른다-에 의해 갑자기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 때가 온다.

 

이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데, 예기치 않은 인정을 받게 되는 때는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자 시작점으로부터 25년이 흘렀을 때이다.

가령 어떤 이는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고속 승진의 길로 들어서거나 또 어떤 이는 장사가 갑자기 잘 되기 시작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경우 갑자기 주변에 좋은 남자들이 나타나서 구애를 해오기도 한다. 이른바 瑞光(서광)이 비쳐오기 시작하는 때가 입춘 바닥으로부터 25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으로 보면 1964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25년이 흐른 때는 1989년이었다. 바로 그 무렵부터 증시개방에 대한 논의가 무성해지기 시작했던 것이고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 경제와 기업에 대해 전에 없던 관심을 내비치기 시작했던 때였다.

 

 

우리가 매력을 발산하자 관심을 받은 것이니

 

 

이어서 1992년은 우리 국운에 있어 大暑(대서)의 때, 우리의 활력이 넘쳐나던 때였으니 이를 한 해의 순환으로 보면 7월 24일 경의 뜨거운 때와 같다.

 

이에 급기야 증시개방이 되고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니 이는 우리 경제가 그간에 큰 발전을 보인 결과 외국 자본의 눈에도 매력적으로 여겨진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 역시 입춘 바닥으로부터 25년이 흐르면 급작스럽게 일이 잘 풀려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그 때를 이미 보낸 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간의 흐름을 보면 우리 금융시장과 증시로 외국인의 자금이 밀려든 것에는 크게 세 번의 흐름이 있었다는 알 수 있다.

1992년 증시개방이 그것이고 그 다음에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의 증시 전면개방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2003년부터 시작된 보다 막대한 액수의 외국인 투자가 있었다.

 

정치적 사회적 사건으로 인해 가려져있긴 하지만 자연순환의 이치에 따라 살펴볼 것 같으면 이 흐름의 본질은 1992년과 1997년, 그리고 2002년이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즉 10년에 걸친 흐름이었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가 계기가 되어 우리 시장의 전면 개방을 불러왔다는 점, 또 2002년 말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대해 미국 측이 의혹의 눈길을 보냈지만 2003년 초 그런 의혹이 해소되면서 비로소 외국인 투자의 물결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나 호호당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2003년 3월 17일 아침 뉴스에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당시 부시 대통령과 우호적인 전화 통화를 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나 호호당은 이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의혹이 해소되었고 그러니 장차 외국인 투자가 물밀듯이 들어오겠네 하는 판단을 했었다.)

 

 

자연순환의 이치에 따른 외국인 투자 향후 전망

 

 

세월이 가면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변화이다. 그렇기에 이 간단한 이치로서 향후 외국인 투자의 동향을 능히 예측해볼 수 있다.

 

세상일은 30년이 흐르면 반대 흐름이 생겨난다. 60년 순환을 하나의 원운동으로 볼 것 같으면 30년 전과 후는 원 궤도에 있어 정반대(opposition)의 위치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증시개방에 대한 말이 무성해진 것은 1989년부터였다는 말을 했다. 그러니 올 해 2019년 말이 되면 그로부터 30년 후가 된다. 따라서 나 호호당은 올 해말부터 외국인 투자의 감소가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할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2022년, 즉 1992년의 증시개방으로부터 30년이 흐른 시점이면 외국인 투자가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아울러 1997년으로부터 30년이 흐른 2027년이 되면 우리 경제에 대한 매력이 크게 감소하면서 대폭의 감소가 있을 것이고 2032년 즉 2002년으로부터 30년 후가 되면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가 빠져나갈 만큼 다 빠져나갈 것이란 얘기이다.

 

 

결국 조정(Correction)이겠으나

 

 

물론 이런 흐름은 일종의 조정(Corretion)이라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 비중이 전적으로 없어진다는 얘기는 아닌 것이고 많이 줄어들 것이란 얘기이다. 지금 외국인 비중이 35% 선이란 점을 감안할 때 2032년 정도가 되면 그 절반인 17% 선 정도로 줄어들 것을 예상해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그 정도만 줄어도 우리 증시의 시가 총액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란 점 자명하다. 이에 따라 富(부)의 효과(Wealth Effect), 달리 말하면 자산효과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가증권 자산의 축소에 따라 소비가 위축될 것이며 부동산 시세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국민연금의 고갈 시점도 앞당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고 보면 부동산 시장과 증시 모두 연동되어 움직인다. 결국 자산시장이란 점에선 같기 때문이다.

 

돈에 관한 글을 올릴 때마다 조심스럽다. 나 호호당의 글을 잘 읽지 않고 독자들께서 섣불리 판단하는 바람에 손실을 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에 관한 글은 그래서 늘 주의를 기울여 주셨으면 한다.

 

얼마 전 “우리 경제 이제부터가 정말 어렵다”는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은 그와 관련된 글이라 하겠다.

희망이란 것에 대하여

 

먼저 희망이란 것에 대해서부터 얘기를 시작해본다.

 

희망이란 미래, 가까운 미래 또는 먼 미래이든 상관없이 장차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좋은 일이나 상태에 대한 바람이다.

 

가령 주중에 일터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은 주말이 가까워오면 푹 쉬고 또 즐겁게 놀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다소 궁핍해도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서 즐겁게 살아갈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을 가졌다면 그건 사실 막연한 희망이다. 희망은 이처럼 그것이 크든 작든 간에 우리로 하여금 눈앞의 힘든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그러니 희망을 가진 것은 좋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희망이란 것이 때론 대단히 해로울 때도 있다. 단적으로 현재의 어려운 때가 어서 빨리 지나가버리길 바랄 때 희망은 우리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희망이 눈앞의 힘든 현실, 줄이면 ‘현실’로부터 자꾸 외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희망은 힘이 아니라 해로운 독소로 변해서 우리의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희망은 양날의 칼이어서

 

 

희망이 현재를 견디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고 자꾸 망각하도록 만들 때 희망은 일종의 진통제, 나아가서 일종의 마약이 된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통증으로 진통제를 먹어야 할 때가 수시로 있다. 나프록센,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등등 다양한 진통제가 잘 팔려나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진통제를 습관성으로 먹다 보면 나중에 결국 일종의 마약 중독 상태에 빠지는 것처럼 희망이란 것 역시 남용할 때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이 있다. 현실이 팍팍할 때 어떤 이는 막연한 희망으로 버텨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힘든 처지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찾고 또 즐기면서 위안을 찾는 이도 있다. 최근 유행하는 ‘소확행’ 같은 것도 그런 일종이다.

 

우리 사회는 2012년부터 경기침체 또는 스태그네이션 상태에 들어가 있고, 특히 젊은이들의 사회진출이 그 질적인 면에 있어 예전보다 훨씬 악화되었다. 대부분 계약직 또는 비정규직이 고작이어서 안정성이나 장래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이다.

 

 

소확행과 욜로족, 젊은이들의 적응

 

 

이에 한동안은 헬 조선이다 하면서 푸념을 했지만 이젠 그런 푸념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소확행’이다. 젊은이들이 현 세태에 대하여 나름의 적응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쩌다가 한 번 목돈이 생기면 과감하게 지르기도 한다. 그럴 땐 ‘욜로’족 시늉인 셈이다.

 

이른바 ‘희망고문’에 넌더리가 난 우리 젊은이들이라 여긴다.

 

 

희망의 부작용

 

 

그렇다, 희망이 희망고문이 되면 삶은 피폐해진다. 뿐만 아니라 막연한 희망만으로 오늘을 견디는 방식은 현재와 현실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책에서 이런 시를 읽었다.

 

희망을 품다 보면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지.

최후의 시간이 오면

더 이상 희망도 없어라.

 

희망, 막연한 희망만으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다 보면 어느새 삶의 종착역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시에 담겨 있다.

 

 

좋았던 일도 금방 무감각해지는 우리인 까닭에

 

 

사실 우리가 좀 살아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살다보면 때론 대단히 격할 정도로 좋은 일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좋은 일이나 감격적인 慶事(경사)라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덤덤해지고 무디게 되며 심지어는 망각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내 경우 군에서 제대하던 날을 기억하곤 있지만 그 날의 감동과 기쁨은 전혀 남아있지가 않다. 이처럼 우리 삶에 있어 모든 기쁨의 날은 기억되긴 해도 기쁨의 알맹이는 금방 빛을 잃고 퇴화되며 심지어 없음 즉 無(무)로 변하기도 한다.

 

그런 우리들이기에 늘 새로운 그리고 막연한 희망과 꿈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희망이나 꿈은 눈앞의 일도 아니요 현실도 아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따라서 존재하지도 않는 그저 막연한 미래에 대한 것이다.

 

미래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따라서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은 과거의 추억과 현재, 즉 눈앞의 시간뿐이다. 그런데 눈앞의 시간이 힘들고 시시하다 해서 외면하고 의미 없게 여겨버릴 것 같으면 결국 삶 전체가 의미 없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삶이란 과거가 되었을 때만이 이해가 되니

 

 

키르케고르의 말에 의하면 삶이란 뒤돌아봤을 때만이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대한 반추와 성찰을 통해서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현재란 순간순간의 이어짐이고 연속일 뿐, 거기에 스토리는 없다. 스토리란 결국 기승전결의 구조로서 결말이 나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늘 진행형이어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 점심시간까진 좋던 하루가 저녁에 들어 최악의 날이 될 수도 있겠고 또 그 다음 날이면 전혀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는 끊임없는 진행형이 바로 현재인 까닭이다.

 

현실 그리고 현재의 순간에 있어 어쩌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이성간에 연애하는 시간들일 것 같다. 뜨거운 감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원할 때의 그 시간들은 분명 꿈길 같다. 그렇기에 대중가요나 팝송은 죄다 연애나 사랑에 관한 얘기이다. 하지만 천생 바람둥이가 아닌 이상 평생을 정말로 그렇게 살 순 없는 노릇이고 연애의 시간은 길어봐야 긴 인생에 비하면 한 때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함부로 무턱대고 희망을 품을 일은 아닌 것이다. 그건 어딘가 조금 아프다고 진통제부터 찾는 나쁜 습관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물론 전혀 진통제를 찾지 않고 오로지 생으로 버티는 것 역시 미련한 짓이긴 하다.)

 

 

우리 누구나가 보내고 있는 운명의 계절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어떤 삶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고 또 지내고 있다.

 

나 호호당은 어쩌다가 관심이 생기고 집요하게 연구해본 결과 어떤 사람이 지금 어떤 계절을 보내고 있는지 열두 달 중에 어느 달을 지내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60년에 걸쳐 한 해 열두 달이 지나가기에 누구에게나 계절과 시간의 길이는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점도 알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승리나 유천, 준영과 같은 젊은 연예인들의 경우 인생의 계절이 모두 입춘 바닥 그리고 박유천의 경우 올 해가 바로 입춘 바닥의 해이다. 인생의 한겨울 추위가 그들을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곧 나름의 합당한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그 시절에 그렇게 행동했을까를 놓고 많이 되새겨보게 될 것이다.

 

그간의 상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막연하긴 해도 자신의 계절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헛된 희망이나 욕심으로 인하여 수시로 흐려지기도 하는 사람이다. 아닐 거야 더 좋아질 거야 하는 희망에서 말이다.

 

앞에서 말했다. 키르케고르의 말이 그것이다. 삶이란 뒤돌아봤을 때만이 이해될 수 있다는 말. 그렇기에 알려드리고자 한다.

 

 

좋은 시절은 없고 좋았던 시절만 가능한 법이어서

 

 

좋은 시절은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되돌아봤을 때 그때가 좋았다거나 좋은 시절이었구나 하는 것은 있어도 지금 현재 좋은 시절이구나 하고 自覺(자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순간순간의 연속체일 뿐이기에 결론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시절은 없고 좋았던 시절만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빴던 시절도 있다.) 좋았던 시절이란 결국 현재와 비교해서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미래 역시 없다. 일단은 오지도 않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 것이고 그 역시 더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미래가 먼 과거의 일이 될 때만이 좋은 시절이었구나 혹은 나쁜 시절이었다는 자각을 할 수 있으니 그렇다.

 

그러니 좋았던 시절만이 가능하다. 그때가 好時節(호시절)이었지 하는 과거적 사건만이 가능하다.

 

예전엔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상담하러온 사람이 지금 호시절을 보내고 있건만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고 현실의 어려움만 호소하고 있을 때 그러했다. 그래서 지금이 호시절이란 것을 알려주려고 애를 쓸 때도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현재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만이 이해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고 현재는 순간의 연속적인 과정이니 흐름의 渦中(와중)에 있는 자는 상황을 판단할 수 없는 법, 그리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나름 예쁜 그림을 그려보거나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뿐이다.

 

 

그저 분명한 것 한 가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이 시각 현재 인생의 어느 계절, 운명의 어느 계절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운의 장기 순환과 단기 순환의 상호 작용

 

 

나 호호당이 세상의 변화를 살피는 방법은 60년에 걸친 장기 순환과 60개월의 단기 순환의 상호 작용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큰 그림을 살필 적엔 60년에 걸친 장기 순환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눈앞의 일이나 가까운 미래를 살필 적엔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몇 년 사이 줄곧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경제는 2014년부터 이미 스태그네이션(Stagnation), 경제 성장률이 침체 상태, 달리 말하면 잠재성장률과 같거나 그 이하인 상태를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國運(국운)이 2024년이면 立春(입춘) 바닥을 맞이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던 나 호호당으로선 우리 경제가 침체상태에 있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고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편으로 그러는 사이에도 어쩌면 우리 경제가 침체 즉 스태그네이션 정도가 아니라 더 심한 곤경에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또한 그간에 늘 해오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최근 몇 년 사이의 동향에 대해 신경을 곧추 세우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금년 1/4분기는 향후 전망에 결정적인 시기

 

 

지난 달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 성장률이 1/4분기에 작년 4/4분기 대비 0.3% 축소되었다는 발표를 했다. 상당한 충격이다.

 

다시 얘기하는 바이지만 나 호호당이 경제를 살피고 또 판단하는 방법은 일반 경제전문가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같은 수치와 통계자료를 근거로 하지만 판단의 방법은 일반적인 경제예측이론이 아니라 나 호호당이 발견해낸 자연순환의 이치에 의한 것이다.

 

우리 국운과 경제의 60개월짜리 단기순환은 2017년 4월 초에 시작해서 2022년 4월 초로서 끝이 나고 그 이후엔 또 다른 60개월의 단기순환이 펼쳐진다.

 

작년 8월 23일자로 “소득주도성장론을 바라보는 복잡한 심사”란 글을 올린 바 있다. 본문 내용에 이렇게 쓰고 있다.

 

“7월 고용발표를 접하고 나서 맥이 풀리고 기가 빠졌다.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걱정하고 우려하던 그 이상의 나쁜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중략) 올 7월은 향후 45개월의 흐름과 방향을 처음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달이었다. 2017년 4월부터 2022년 3월에 이르는 60개월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는 말이다.”

 

또 그 이전인 7월 24일자에 “2019년 5월, 우리 경제의 변곡점”이란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런 글을 올린 것은 올해 5월, 바로 지금의 때가 되면 우리 경제가 침체이긴 하더라도 그런대로 이어져갈 것인지 아니면 더욱 심한 곤경에 처할 것인지의 여부가 판명이 나는 시점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건한 스태그네이션과 더욱 엄중한 경제 상황의 기로

 

 

이에 과연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스태그네이션 상태로 유지될 것인가 아니면 보다 심한 침체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나 호호당은 금년 1/4분기를 보면 알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려놓고 있던 차였다.

 

그런 마당에 1/4분기 0.3% 역성장이란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이제부터 그냥의 일반적인 경기침체가 아니라 더 엄중한 상황으로 들어갈 것이란 진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런 판단을 하게 되는지를 놓고 독자들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약간의 설명을 해보기로 한다.

 

한 해를 놓고 보자. 5월 초가 되면 4월 20일 경에 뿌린 볍씨가 발아해서 모판을 뚫고 나온다.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새싹이 머리를 내미는 것이다. 싹이 나오면 이제 눈에 보인다. 不明(불명)에서 明(명)의 때로 접어든 것이다. 5월 초의 立夏(입하)란 절기는 그 이전까지 땅속에 숨었던 일들이 이제 바깥으로 드러나는 때인 것이다.

 

2017년 4월 甲辰(갑진)월부터 60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순환을 놓고 얘기해보면 15개월이 경과하고 16개월로 접어드는 2018년 7월이 바로 60개월 순환에 있어 立夏(입하)의 때라고 할 수 있다. (1년 12개월을 5년 60개월에 대입하면 되겠다.)

 

그렇기에 2018년 7월의 고용수치는 2017년 4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진행될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는 최초의 시점이었다. 그런데 수치가 몹시 나빴다. 그 이후 정부는 부랴부랴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수치 자체는 높여놓는데 성공했으나 아시다시피 상당수가 초단기 일자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번 5월은 60개월의 전체 흐름을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이 된다.

 

해마다 6월 22일경의 夏至(하지) 무렵이면 한 해의 모든 흐름이 명확해지는 때이다. 하지는 빛이 가장 센 탓에 모든 사물을 가장 명확하게 비추이는 때인 까닭이다.

 

이를 60개월에 대입해서 시점을 뽑아보면 올 2-3월이 바로 夏至(하지)의 때란 것을 알 수 있다. 2017년 4월로부터 22.5개월이 경과한 시점을 말한다.

 

따라서 올 2-3월은 60개월 전체의 흐름을 명확하게 眺望(조망)해볼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번 한은의 발표, 금년 1/4분기, 즉 금년 1-3월까지의 경제성장률 수치가 마이너스로 나온 것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4분기 -3.3% 이후 41분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 하며 분기 기준으로 5개 분기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경기하강 속도가 예상보다 가파르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전년 동기 대비로도 이번 1/4분기 성장률은 1.8%에 그치고 있다. 이 또한 2009년 3/4분기 이후 38분기 즉 9년 반 만에 최저치라고 한다.

 

 

우리 경제, 심각한 상황으로 들어설 것 같으니

 

 

동향을 가장 정확하게 예단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에 이런 우울한 수치가 나왔으니 나머지 기간, 즉 2022년 3월까지의 우리 경제 흐름은 일반적인 침체를 넘어 대단히 심각한 국면이 연출될 것으로 진단하게 된다.

 

정부는 2/4분기부터 수출이나 내수 등이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이다. 올 8월 壬申(임신)월이면 보다 더 수상한 국면이 연출되기 시작해서 연말 정도가 되면 정부 역시 전망을 대폭 수정하게 될 것이라 본다.

 

올해 성장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부 예산 규모가 크고 여기에 추경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 미만일 공산이 크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수치를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어쩌면 내년 2020년 경제성장률 전체가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덧붙일 점은 중국 경제가 금년 하반기부터 6% 대의 성장률을 지켜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란 점도 있다. 중국 경제는 이미 작년부터 성장률이 꺾이기 시작했고 올 해엔 그런 경향이 더 심화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기에 중국 경제가 부진할 경우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대한 평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여야 간의 정치 투쟁이 개입되어 있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논쟁에 휘말릴 이유가 없는 나 호호당이지만 그동안 지켜온 바 득보다는 실이 더 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이번에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 사건은 비핵화 협상을 최대한 잘 끌어내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발사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니 우리로선 요격이 불가능한 ‘이스칸데르’ 버전인 것 같으니 마음이 더 무겁다. 저기에 핵을 장착하게 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우리로선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미사일을 발사체라 하고 도발을 도발 아니라고 강변해야 하는 대통령과 정부로선 참으로 난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어내려는 대통령의 노력에 뜨거운 성원을 보낸다. 중간 과정이 어떻게 되든 결과적으로 잘 되기만을 바랄 밖에.

제때에 씨 뿌린 대한민국, 그렇지 못한 북한



봄에 때에 맞추어 볍씨를 뿌려야만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도중인 여름에는 부지런히 잡초를 뽑아야만 하고 日氣(일기)도 순조로워야 한다. 


우리 國運(국운)의 순환에 있어 씨를 뿌려야할 시기는 1976년 무렵이었다. 그 때가 우리와 북한 모두에게 있어 穀雨(곡우), 즉 씨를 뿌려야 할 때였던 것이다. 


비록 독재자란 평가를 받고는 있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모든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해서 씨를 뿌렸다. 중화학 공업의 육성이 그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했고 2006년, 즉 국운의 霜降(상강)인 수확기에 풍성한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전자와 자동차, 조선, 화학 등등 우리의 모든 주력산업들이 엄청난 실적을 보여주었던 것이 그것이다. 


이 모두 결국은 1976년 국운의 씨 뿌릴 시기에 야무지고 독하게 씨를 뿌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2006년 우리의 반쪽인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다. 


남쪽은 경제발전에 성공해서 부강한 나라가 된 반면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북한은 핵개발에 성공했으니 그 대조가 참으로 심하다. 



북한이 핵개발에 매달린 이유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복잡하게 따질 것도 없다. 그 이유는 북한의 경우 씨를 뿌려야 했던 1976년에 씨를 제대로 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까닭이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김일성과 그 집단의 잘못인지 그건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북한은 그 중요한 시기를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다. 


1976년과 2006년, 30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차가 존재한다. 그러니 그 도중에 북한 역시 잘해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던 것일까?

이를 벼농사로 비유해서 설명해본다. 


볍씨를 뿌렸다 해도 가뭄이 들면 농사가 되질 않는다. 그렇기에 6월 23일 경의 夏至(하지)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낸다. 기우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하지 무렵까진 늦어도 비가 내려야만 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국운에 있어 夏至(하지)는 1986년경이었다. 북한이 오늘날처럼 핵이라고 하는 협박 수단을 통해 생존의 길을 모색해보려는 생떼를 부리게 된 것은 결국 국운의 하지인 1986년까지 제대로 된 경제발전의 길을 찾아내지 못했거나 아니면 공산체제의 모순으로 인해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마지막 때를 놓친 북한이었던 것이다. 


북한의 경우 제 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으니 그냥 무사하게 흘러가는 법은 없다.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때를 놓친 북한의 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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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년으로부터 15년이 흐른 1991년 무렵이 되자 북한으로선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1991년 말 그간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던 소련이 붕괴했을 뿐 아니라 또 하나의 뒷배였던 중국이 우리 남한과 수상한 거래를 하더니 졸지에 1992년에는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텄다. (그 바람에 아버지에 이어 북한의 통치자가 된 김정일은 죽을 때까지 중국을 저 배신자들! 하면서 미워했고 경계했다.) 


엄청난 고립감을 느낀 김일성이가 핵개발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 역시 1991년이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그 결과가 바로 1993년 초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인 NPT 탈퇴였고 그로서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으로선 1986년 무렵, 국운의 하지 무렵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북한은 그냥 세월을 보냈고 그 바람에 그 10년 뒤인 1996년이 되자 식량 고갈과 부족으로 인해 엄청난 사람들이 굶어주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북한은 양면 전략을 썼다. 비밀리에 핵을 개발해가되 우리 측에겐 경제원조를 요청했다. 때마침 김대중 대통령의 햇볓 정책과 맞물려서 2000년엔 최초로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2002년 핵개발 사실이 미국 정보 당국에 의해 발각되면서 우리로선 더 이상 북한을 원조할 근거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김정일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오로지 핵 개발에 매진했다. 이제 죽으나 사나 핵을 완성한 다음 그것으로서 우리는 물론이고 미국과 담판을 지어보겠다는 장기에 걸친 어려운 전략을 택했다. (그 사이에 북한 김정일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집요하게 경제 원조를 요청했으나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결과 2006년 마침내 북한은 핵 실험을 단행했다. 본격 협박을 시작한 북한인 것이다.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의 생존전략



김정일은 파탄에 빠진 경제를 살리지 못한 가운데 심한 압박 속에서 2008년 뇌졸중과 뇌일혈로 쓰려졌고 결국 2011년 말 사망하고 말았다.

김정일은 대단히 머리가 뛰어나고 치밀했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판단이 된다. 권력을 김정은에게 넘겨주면서 자신의 사후에 있을 상황에 대해 대단히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놓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이에 김정은은 권좌에 오른 후 부친의 사전 지침에 따라 상당수의 권력자들을 처단했고 특히 대표적 친중파이자 피붙이인 장성택을 처행했는데 이는 결국 중국을 극도로 경계했던 김정일의 사전 안배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작년 3월 그간에 도발을 거듭해오던 김정은이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미국에게 비핵화 담판을 짓자고 나섰던 것 역시 김정일의 사전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좌초된 북한의 담판 전략과 그 한계



하지만 북한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의 답판 전략은 올 초 하노이 회담의 협상 실패로 인해 사실상 무너지고 말았다. 


영변 핵시설만 포기하는 대가로 먼저 경제제재를 푼 다음 그간에 만들어놓은 핵 무력을 하나씩 협상의 카드로 써가면서 최대한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김정은의 구상은 이른바 빅딜이 아닐 것 같으면 아예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책을 만나 좌초되고 말았다. 미국은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에 대한 不信(불신)심리가 엄청나게 강한 까닭이다. 


이에 김정은은 전략을 수정해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 들여서 협상력을 높여보려는 쪽으로 방법을 바꾸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역할도 대단히 어려워지고 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조건으로 북한이 좀 더 양보하는 방안을 도출해내려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담판에 대한 전망



이제 장차 이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애기해보자, 일종의 전망이다. 


전망을 함에 있어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먼저 단기 흐름에 입각한 전망부터 얘기해본다. 


작년 3월 김정은의 제안으로 시작된 북핵 담판이다. 이에 6월 미국 백악관에서 제1차 정상회담이 있었으나 알맹이는 전혀 없었다. 아쉽지만 일단 인사를 나눈 셈이라 치자. 


그런 이후 올 2월 하노이에서 제2차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 호호당은 갸우뚱했다. 2월에 열린다면 잘 될 까닭이 없는데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리 얘기는 하지 않았으나 아마도 실패할 것으로 짐작했고 실제 결과 역시 그러했다. 이번 회담의 성과가 있다면 양자 간의 입장 차이가 엄청나게 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전부였다.


일은 시작으로부터 24, 즉 이번 경우 24개월이 흘렀을 때 성패가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연순환의 법칙에서 하는 얘기이다.


 

금년 9월에서 11월 사이에 숨은 고비가 있으니



그렇기에 내년 2020년 3월이 최종적인 고비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그 도중에 보이지 않는 진짜 고비가 숨어있다는 점이니 그건 18개월에서 20개월 사이에 존재한다. 


따라서 작년 3월에서 계산해보면 올 9월에서 11월 사이에 아마도 뉴스 보도가 되진 않을 것으로 보지만 양자 간에 마지막 절충이 그 무렵에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니 그 비밀 접촉과 협상에서 사실상 윤곽이 드러나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정리하면 올 9-11월 사이에 있을 비밀 협상이야말로 이번 핵 담판에 있어 성패를 좌우하는 기로가 될 것이다. 보도는 되지 않겠지만 양쪽에서 흘러나오는 내용들을 잘 분석해보면 어느 정도 가늠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제 장기 흐름에 입각한 더 큰 시야에서의 전망에 대해 얘기해보자. 15년 간격으로 살펴보면 충분하다. 


1976년 국운의 穀雨(곡우)인 파종 시기에 남한은 발전과 번영의 씨를 뿌렸고 북한은 그냥 놀았다. 


1991년 국운의 大暑(대서)에 남한은 왕성하게 발전의 경로를 밟고 있었으나 북한은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우리와 수교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이에 핵 개발을 시작하게 된 북한이다.

 

2006년, 국운의 霜降(상강) 수확기에 남한은 풍성한 수확을 보았으나 알거지가 된 북한은 결국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처럼 15년 간격으로 살펴보면 남북한의 차이가 명료해진다. 따라서 다시 15년이 흐른 시점은 2021년 국운의 大寒(대한) 시점이다. 나 호호당은 2021년이야말로 북핵 문제만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것이 총 정리되는 최종 시점이란 판단을 한다. 



종합 전망



이 점을 앞서의 얘기와 연결해서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전망이 가능해진다. 


올 9월에서 11월에 진행되는 북미간의 실무협상이 비핵화 협상에 있어 사실상의 고비이자 機樞(기추)가 될 거란 점이다. 이에 그 일이 잘 진행된다면 내년 3월 이후 전체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제3차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고 또 좋은 결실을 얻게 될 것이라 본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지 않을 경우 내년엔 보다 더 엄중하고 경색된 국면이 찾아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 그리고 마침내 2021년까지 이어질 경우 현재로선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는 엄청난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예컨대 북한 체제의 급격한 붕괴라든가 여타 현재로선 생각하기 어려운 변고가 발생할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씨를 뿌려야 할 때 씨를 뿌리지 못하더니 오늘날 저토록 생억지를 쓰고 있는 북한이다, 우리의 반쪽이 저렇다니 그저 딱할 뿐이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가 잘한 것이고 못되면 조상 탓을 한다는 말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선 ‘이기적 편향’이라 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는 우리가 힘든 인생을 견뎌낼 수 있게 해주는 대단히 중요한 자기 보호 심리라 하겠다. 나 호호당 역시 젊은 날엔 이런 심리를 두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바로 진리!

 

 

지적 장애아 관련 다큐 프로를 보다가

 

 

텔레비전에서 지적 장애아동들에 대한 다큐를 방영하고 있었다. 잠깐 보다가 채널을 돌렸다, 가슴 아픈 일.

 

그간에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사주를 적지 않게 보았고 그를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산모의 운세 순환이 바닥권에 있지 않았다면 장애아가 태어날 가능성이 지극히 적다는 점이다. 의학계에선 유전적 요인을 많이 지적하지만 실은 산모의 운세 순환이야말로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나 호호당은 익히 알고 있다.

 

 

유전보다도 운의 흐름이 더 문제인 법이니

 

 

정확하게 얘기해보자.

 

부모에게 비록 유전적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나진 않는다. 그런데 부모 특히 산모의 운세 순환이 60년 순환에 있어 바닥점인 立春(입춘)을 전후한 10년 사이에 아이가 태어날 경우 유전적 결함이 그대로 태아에게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이다.

 

달리 말하면 부모의 컨디션이 떨어져있을 때 출산을 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로 이 대목에서의 컨디션이란 매일매일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 순환에 따른 것을 말한다.

 

이는 비단 장애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생 이후 어린 시절에 이런저런 남다른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보면 거의 예외가 없다. 본인의 운세만이 아니라 부모의 운세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잘 되지 못하면 당연히 조상 탓이다.

 

 

유복자로 살다 가신 선친에 대한 기억

 

 

나 호호당의 돌아가신 선친 역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遺腹子(유복자)였던 선친이었다. 선친께선 한 때 사업적으로 성공하셔서 좋은 세월을 보내기도 하셨지만 그럼에도 평생을 두고 그늘이 있었다.

 

가끔씩 스스로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란 독백을 하시던 기억이 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유언을 남기시면서 ‘인생이란 게 별것도 아니지만 내 평생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은 너를 낳아서 무사하게 키워낸 거’라고 하셨다.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이런 경우도 보았다.

 

1949년이 60년 순환의 입춘 바닥이었던 어느 할머니의 얘기이다. (지금 그 분은 돌아가셨다.)

 

집안이 궁핍해서 치워지다시피 시집을 갔는데 그때가 17살, 1949년이었는데 때마침 입춘, 운세 바닥이었다. 출가 후 아이를 가지면 유산하고 또 유산하고, 그러기를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스물아홉이 되던 1961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정상 분만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아들 둘 딸 둘을 낳아 무사히 잘 키웠다는 것이었다.

 

그 할머니는 1970년대 들어 남편 일을 도와서 크게 돈도 벌었고 부귀영화도 누렸다. 상담하는 내내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토로하시는 할머니였다. 세월이 흘러 살림이 넉넉해지자 해마다 빠지지 않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 시절 영양 상태도 충분하지 못한 상태였을 것이며 더욱이 운세 바닥에서 출산이란 엄청난 작업을 했으니 뱃속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위로가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다행한 일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운세 바닥에 태어난 까닭에

 

 

이전에 글로 소개한 적도 있지만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 스티브 잡스는 1955년생인데 1956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었다. 그 바람에 대학생 커플이 키울 수가 없었고 입양이 되었다. (사실 입양되는 아이들의 운세를 보면 다 그렇다, 이 또한 전혀 예외가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고 크게 성공한 사람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혼외자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커다란 심리적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으로 여긴다. 그런 까닭에 나 호호당은 스티브 잡스에 대해 측은한 심정이 있다. 이미 죽고 없지만 말이다.

 

 

자연순환운명학이 세상에 널리 인정을 받는다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나 호호당이 발견해낸 자연순환운명학의 이론이 세상에 인정받고 널리 퍼지게 될 경우 불행한 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그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만만한가, 잘 받아들여지면 좋겠으나 반대로 자칫 잘못 되어 일종의 우생학으로 간주되어 많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예전 생각이 난다. 2010년 무렵 자연순환운명학의 이론을 거의 완성해가던 무렵, 내가 이것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어쩌면 세상에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다. 이거야말로 소위 천기누설인데 말이다.

 

하지만 결국 2014년에 들어 나는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것이 성립되었다고 내 나름 블로그를 통해 선포를 했다. 가치 판단의 문제는 세상에 맡기기로 결정을 했다.

 

서구에 비해 동아시아 사람들은 어떤 지식을 알아내게 되면 널리 공개해서 그것이 보다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소수의 제자들에게만 비밀리에 전수했던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바람에 서구 세계는 과학 기술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고 동아시아 세계는 결국 한때 큰 수모를 겪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 호호당이 알아낸 운명의 법칙은 당연히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가끔 제자들이나 독자들은 전체 이론을 소개하는 책을 쓰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도 해온다. 하지만 아직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책 집필은 조금 더 미룬 상태에서 블로그를 통해서만 글을 올리고 있다.

 

사실 이론을 공개하고 널리 알린다 하더라도 파급력엔 어차피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한다. 왜나면 이곳 대한민국은 글로벌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인 까닭이다.

 

유전법칙을 연구해낸 멘델의 경우 논문을 발표한 후에도 무려 36년이 걸려서야 우연히 소수의 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러면서 진화론의 다윈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게 되었고 그로서 오늘날의 유전학과 생명과학의 흐름을 만들어졌다.

 

엄청난 과학적 발견이 무려 36년씩이나 걸린 뒤에야 알려지게 된 것은 결국 그레고어 멘델이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변방 후미진 시골에서 연구를 했고 또 이론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비록 멘델은 동료 수도사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나, 당시의 위대한 생물학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고 논문 발표 이후 36년, 사후 17년이 흘러서야 연구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렇기에 나 호호당 역시 자연순환운명학이 살아생전에 주목을 받고 과학적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다.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묻히는 일도 없을 거라 여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이론이기에 결국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어디 한 평생 살기가 만만한가 말이다.

 

 

돌아가서 얘기이다.

 

태어나서 한 평생 살다가는 것이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어려선 부모가 부양해주고 장성하면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다가 나이가 들면 은퇴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 한다고 하지만 어디 그러기가 쉬운가 말이다.

 

운세 바닥 근처에 태어난 이 중에는 절대 다수가 질병이나 장애, 가정환경 등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고 20-30대에 운세가 바닥인 젊은이들은 취업도 어렵고 결혼이나 짝을 찾아 안정된 생활을 그려보기가 난감하다.

 

그런가 하면 중년에 운세가 바닥에 이르게 되면 직장에서 내몰리게 되고 그러다가 어렵사리 자영업을 해보지만 성공하는 이는 희박하고 대부분 그야말로 고생의 나날이다.

 

또 노년에 운세가 바닥에 이르면 갖은 질병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자녀 문제로 인해 경제적 파탄에 이르는 사람들이 실로 허다하다. 물론 평균의 사람보다 일찍 세상을 뜨는 경우도 많다.

 

작업실이 서울 강남역 인근이라 교보서점에 들렀다가 산책 삼아 한 바퀴 강남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한다.

 

강남역 일대는 젊은이들의 거리이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젊은이들, 특히 젊은 처녀들의 모습과 옷차림이 보기에도 정말 좋다. 세련되었고 표정은 발랄하다. 모두들 나름 잘 꾸미고 있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나 호호당의 시선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저 어리고 싱싱한 젊은이들이 장차 긴 세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마모되고 피폐해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말이다.

 

(토요일 시작하는 기초강좌에 아직 여유가 있다. 이번 기회에 이 신기하고 절묘한 운명의 과학적 법칙을 배워 가시는 분이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불 타버린 프랑스의 상징

 

 

노트르담 성당이 불에 탔다. 건물 중앙의 드높은 90 미터짜리 첨탑이 불길에 휩싸여 와르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첨탑을 밑에서 받치고 있던 12 사도의 동상도 함께 불에 녹아서 쓰러졌다.

 

에펠탑, 개선문과 함께 파리의 상징이자 프랑스의 상징이기도한 성당이 불에 타버렸으니 프랑스로선 일대 참변이 아닐 수 없다. 다행인 것은 건물의 얼굴, 파사드가 건재하고 또 많은 성유물(relic)들을 구했다는 점이다.

 

 

사건 사고가 그치는 않는 수난의 프랑스, 그 이유는?

 

 

프랑스의 그간 흐름을 살펴보면 이미 이전에도 적지 않은 일들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2005년 10월의 파리 소요사태로 인해 3개월에 걸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했던 일이 그것이다. 다시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2015년엔 엄청난 파리 테러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면 물론 많은 설명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운세로 말할 것 같으면 2011 辛卯(신묘)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순환의 시작점인 까닭이다.

 

입춘 바닥을 지나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렇기에 프랑스는 나름의 개혁을 이미 진행해가고 있으니 2017년의 선거혁명이 그것이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39세의 마크롱이 당선과 함께 총선에선 마크롱이 급조한 ‘전진’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으며 반면 기존의 거대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은 참패했다.

 

(과거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61년전인 1958년 드골 대통령에 의한 제5공화국 등장과 2017년의 마크롱 등장은 같은 맥락인 셈이다.)

 

 

개혁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어서

 

 

국운이 바닥에 이르자 등장한 새 물결인 마크롱과 전진당은 사회적으론 좌파, 경제적으론 우파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도 아니요 결국은 사회 전체가 어쩔 수 없이 양보를 하고 타협을 해야만 가능하다. 당연히 시일이 걸린다. 이에 거센 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얼마 전 프랑스 전체를 뒤흔든 노란조끼 운동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화재사고는 프랑스더러 쇄신 혹은 혁신을 하라는 일종의 계시이자 警鐘(경종)이라 보면 되겠다.

 

 

일본의 사례

 

 

일본의 경우 2011년 동북지방 대지진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을 일으켜 원자로 뚜껑이 날아갔다.

 

이 역시 일본의 국운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의 경우 2005 乙酉(을유)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그로부터 6년 뒤 재해가 발생한 것이다. 자연재해야 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으나 문제는 원자로 뚜껑이 날아갔다는 점이고 이는 사람으로 인한 災殃(재앙)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과거 1970-1980년대 동안 그야말로 정교한 첨단기술의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원전 사고 발생에 따른 매뉴얼이 엉망진창이었음을 드러낸 것이고 그로서 일본의 이미지는 철저하게 실추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개망신을 당한 셈이다.

 

그간 일본은 나름 절치부심하면서 적지 않은 분야에서 개혁을 진행해왔다. 물론 아직은 그 개혁이 성공적이었는지 그 여부를 판단하긴 이른 시점이다. 하지만 내년 2020년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일본의 중흥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0년은 일본 국운에 있어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立夏(입하)의 운인 까닭이다.

 

 

국제적 망신을 당한 독일의 신공항

 

 

그런가 하면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사한 사례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독일 베를린의 신공항 사건이다.

 

당초 2011년 10월에 개항할 예정이었던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공항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엉터리 공사, 무리한 설계 변경과 부실 공사, 감리 부실, 부정부패 등으로 인해 건설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개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내년 2020년 10월까진 개항할 것이라 하지만 현재 상태로선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아예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독일하면 그 역시 정밀 기술과 신뢰의 상징이다. 특히 공사 감리 면에서 최고로 알려져 있던 독일이 수도 베를린의 관문으로서 나름 야심차게 추진했던 신공항이 돈 먹는 쓰레기 꼴로 전락했으니 이야말로 엄청난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디젤 엔진 조작 사건과 함께 독일의 글로벌 위신도 크게 금이 간 상태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면 역시 독일의 국운과 관련이 된다는 얘기이다. 독일 역시 2010 庚寅(경인)년이 국운의 입춘 바닥인 것이다.

 

그 바람에 흔히 EU의 사실상 맹주로서의 독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현재 독일 역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특히 영국의 EU 탈퇴는 독일의 위상에 커다란 타격을 가한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그간 독일을 지탱해온 많은 미덕들이 무너져가고 있기도 하다. 정직한 독일이 디젤 조작으로 정직하지 못함이 드러났고 신공항 감리 부실로 독일의 기술적 신뢰성이 무너졌다.

 

 

체면불구의 미국이 된 까닭

 

 

미국의 경우 2013 癸巳(계사)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무너진 이후 비록 양적완화라고 하는 이상한 방법으로 일단 문제를 봉합하긴 했으나 사실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미국이다. 이제 체면불구의 미국이 된 것이다.

 

나 호호당은 미국이 올해 2019년부터 내년 사이에 전혀 예기치 못한 커다란 일이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해보고 있다.

 

 

입춘으로부터 10년, 시련과 쇄신의 기간

 

 

사람의 경우에도 입춘 바닥으로부터 10년 사이엔 많은 어려움이 닥친다.

 

어린 시절에 이런 운을 맞이하면 몸이 아프거나 기타 여러 사정이 생겨서 성장기를 어두운 기억으로 물들인다. 청년기에 이런 운이면 사회 진출에 많은 애로가 있기 마련이고, 중년에 이런 운이 찾아들면 실로 엄청난 고생을 겪게 되며 나이든 노인의 경우 사망하는 시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이나 사회, 국가를 떠나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으로부터 10년 사이엔 갖은 어려움이 생겨나고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는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인 까닭이다.

 

나 호호당이 판단하기로 글로벌 경제는 향후 15년 정도 동안 침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그 근거는 주요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이 운세 흐름 상 이미 바닥권에 들어서 있고 이탈리아는 2021년으로 예정된 입춘 바닥을 향해 접근해가고 있으며 중국 또한 이미 탄력을 잃고 한창 겨울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 또한 그런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 대한민국 경제의 경우 탄력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이다. 올해로서 해마다 양력 1월 초의 때, 추위가 몰아닥치는 小寒(소한)의 운이다.

 

그렇기에 올해 하반기부터 더욱 어려워져서 내년 2020 庚子(경자)년이 되면 본격 침체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수출이 결정적인 버팀목인바, 글로벌 경기가 침체할 경우 그로 인한 악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 역시 2024년 국운의 입춘을 맞이하게 되면 그로부터 10년간 숱한 시련과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낡은 가죽을 벗겨내고 새 가죽을 씌우는 것이 바로 改革(개혁), 즉 가죽 바꾸기인 까닭이다.

 

건강 문제로 글을 올리지 못했으니



한 주 내내 글을 올리지 못했다. 요추 이상으로 인해 걷기 어려울 정도의 통증이 왔다.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도 찍어보고 다른 경로를 통해 척추교정을 받게 되었는데 마치고 집에 오면 몹시 노곤하고 또 약간의 몸살 증세로 해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늘 건강한 몸이었기에 꽤나 뜻밖이었지만 이제 내 나이 예순하고도 다섯, 눈앞의 문제부터 잘 해결하고 또 앞으론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겠구나 싶다. 



운과 노력의 관계에 대하여



먼저 얘기할 것은 운이란 것과 노력이란 것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재능이나 능력에 대해선 글 말미에 얘기하겠다.)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노력하면 되는 것이지 운이 무슨 소용? 또 이런 말도 있다. 결국 운이더라 하는 말. 


나 호호당은 운명에 대해 연구해온 결과 마침내 운명의 법칙을 발견하고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새로운 학문을 정립한 바 있다. 그런 과정에서 운이란 것의 정체 또는 본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타고난 명이 있고 운의 흐름이 있으며 거기에 철저한 법칙이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 다음에도 정작 운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대해 알아내기까진 더 많은 사색과 연구 그리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운의 실체와 본질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기 된 것은 사실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최근 1년 사이의 일이다. 


이제 운과 노력의 관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해보자. 



운과 노력은 함께 가는 것이어서



나 호호당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운이 상승할 적엔 그 사람이 진지한 노력을 할 때란 점이고 운이 하락할 적엔 그 사람이 더 이상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더란 점이다. 


간단히 말하면 운의 상승과 노력의 진지성 또는 세기가 함께 한다는 점이다. 



운의 상승과 하강은 등산과 하산과 같은 것



따라서 운의 상승과 하강이란 것은 마치 登山(등산)과도 같다.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고 고된 일이다. 산 초입을 지나 어느 정도 오르다 보면 숨이 차고 걸음도 무거워진다. 그러는 와중에 멀리 있는 산 정상을 바라보면 한심한 나머지 그만 두고도 싶다. 일종의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고비를 지나 계속 어렵게 발걸음을 떼어놓다 보면 어느 순간 이른바 8부 능선을 넘어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갑자기 힘이 나고 발걸음에도 힘이 들어간다. 힘들지만 이제 사실상 다 오른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야호-하고 함성도 질러보고 멀리 산 밑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만끽한다. 고된 산행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운이 상승하는 사람이 심적으로 느끼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러다가 하산을 시작한다. 운이 하강하는 것이다. 


산의 등줄기를 따라 내려오면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가벼운 발걸음도 즐긴다. 이 시간이 정작 정상에 힘들게 올랐던 때보다 더 즐거운 때가 된다. 이것이 운의 하강 초기와 비슷하다. 


그런 연후에 산 중턱 정도까지 내려오면 피곤함도 몰려오고 목도 컬컬해진다. 이제 좀 쉬고 싶어진다. 하루의 산행은 이것으로서 충분하기에 더 이상 갑자기 다시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은 없고 그냥 산 아래 식당을 찾아서 막걸리 한 잔 걸칠 생각밖에 없다. 이것이 운의 하강에 있어 마무리 국면이다. 


산을 오르는 것이 바로 운의 상승이자 노력하는 때이다. 산을 내려오는 것이 운의 하강이자 동시에 더 이상의 노력이 없는 때이다, 그저 무사히 하산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에 대해 4개의 국면으로 나누어 얘기했다. 


이 4개의 과정이 바로 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순환이라 한다면 초기 등산 과정은 15년에 걸친 봄이 되고 중턱 이후의 산행은 여름이 된다. 다시 정상에서의 초기 하산 과정은 15년에 걸친 가을인 것이고 중턱 이후의 하산까지의 과정은 겨울이라 보면 된다. 


가장 힘든 때는 산을 오르는 초반 과정이니 봄의 때이다. 그리고 이때가 가장 힘겨운 때라 하겠다. 


정리해보면 운과 노력은 사실상 동의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상황은 으레 착각하기 마련인 것이니



그런데 실제 상황에 들어가서 보면 그리고 개개인의 경우를 따져볼 것 같으면 노력을 해도 운이 없어서 되지 않았다거나 어떤 이는 별로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잘 되는 경우가 있다. 운이란 것과 노력이란 것이 마치 따로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 문제는 사람마다 태어나는 때가 60년에 걸친 운의 순환에 있어 저마다 다른 때에 태어나기 때문이라 하겠다. 


가령 태어난 때가 60년 순환에 있어 운세가 한창 상승 중인 여름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태어나는 때가 바로 산을 오르는 과정의 중반 이후에 태어난 것과 같아서 대단한 탄력으로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접근해간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하고 열심인 경우이다. 


운세의 가을에 태어난 사람은 어린 시절 똑똑하고 재능이 있어 보이지만 스무 살 무렵 근처가 되면 지지부진해지고 탄력을 잃어서 경쟁에서 뒤처진다. 그러다가 힘들게 30-40대를 보낸 이후 중년 이후 또 다시 진지한 노력을 통해 발전해간다. 


또 어떤 이는 태어난 때가 하산의 마무리 과정인 겨울인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 끝나고 여기에 다시 힘겨운 봄의 시간, 즉 등산의 초반 과정을 보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린 시절엔 내성적인 성향이다가 10대 무렵 대단히 힘겨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더 퇴보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운세 순환의 봄에 태어난 사람은 어린 시절 병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고 가정환경도 불우한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타고난 능력 자체가 부족해보이기도 하지만 중년 무렵에 가서 큰 성취를 하기도 한다. 


운과 노력의 관계는 이런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로 헷갈릴 정도로 대단히 복잡하다. 



노력한 만큼 보답은 있는 것일까?



가령 진지하게 노력을 해도 끝내 되지 않아서 결국 포기하고 방향을 바꾸게 되고 이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결과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기에 노력은 반드시 그만큼의 보답을 가져다준다는 말을 하지만 그게 꼭 들어맞는 얘기도 아닌 것이고 반대로 틀린 말이라 하기도 그렇다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운이 상승할 적엔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인 것이고 노력의 방향이 틀렸을 경우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모색 또는 방향 전환 또한 일종의 노력에 속한다고 하겠다. 



재능이야말로 운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까지 운과 노력의 관계에 대해 얘기했으니 이제 재능에 대해 얘기할 차례이다. 


재능이나 능력이란 것은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것이 아니며 동시에 고정불변한 것도 아니란 얘기이다. 동시에 재능이란 운의 흐름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가령 프로야구를 들어 얘기한다. 시즌 초반에 어떤 선수가 홈런을 잘 치고 고타율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 상태가 시즌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아가서 한 시즌에 잘 한다 하더라도 계속되는 시즌을 통해 줄곧 잘 하는 이는 드물다. 그렇기에 선수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시즌 전체를 통한 평균 타율이나 수치를 가지고 판단하게 되고 또 여러 시즌의 흐름을 보아 판단한다. 


이 대목에서 한 시즌을 인생 전체로 확장해보자. 어린 시절 어떤 방면에 재능이 특출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어린 시절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던 사람도 중년 이후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면서 크게 성취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재능의 발휘 여부는 바로 운의 흐름과 직적접인 관련을 갖는다. 


음악이나 스포츠, 또 바둑과 같은 분야의 경우 어린 시절에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스킬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분야는 어린 시절에 이미 관련 뇌세포의 신경조직이 만들어지는 까닭에 그렇다. 나이가 들면 회로 형성이 느려지기에 스킬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어린 시절의 재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가령 비즈니스의 경우라면 어떤 사람이 그 방면에 능력이 있을 것인지 없을 것인지를 확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본인 스스로도 정작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것이고 그런 까닭에 주변 사람이라면 더더욱 알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이제 정리하자. 운의 상승 과정이 바로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재능이란 것은 그 사람이 운의 순환에 있어 어떤 시기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객관적인 측정은 물론이고 주변의 섣부른 판단 또한 틀릴 공산이 대단히 높다고 하겠다. 


나아가서 능력이란 어느 한 시기의 능력인 것이지 평생을 두고 뛰어난 능력을 지녔거나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고 지극히 드물다고 하겠다. 그런데 물론 그런 탁월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란의 경우 타고난 유전적 소양에서 온다고 하겠으니 이를 일러 命(명)이라 한다. 


오는 27일 토요일부터 자연순환운명학 기초강좌를 개최한다는 공고를 올렸다. 인생과 운명의 과학적인 이치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