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일정으로 전남 곡성과 구례를 다녀왔다. 좋은 인연을 만나 덕분에 참으로 좋은 경관들을 볼 수 있었다. 물이 흘러내리는 커다란 바위 위의 누각은 능파각이라 하니 멋지기도 하고 한편 절의 누각 이름으로는 다소 얄궃은 느낌도 있다. 능파미보라 하면 절세미인의 대명사이니 그렇다. 스님들은 물론 좋은 경치를 두고 미인에 비유했겠지만 色(색)과 空(공)의 항등식이 깨지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깨달은 스님들이야 그 경계를 이미 넘어섰기에 그랬으리라 보지만 말이다. 일정이 다소 무리했는지 다녀온 뒤 일요일까지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설사까지 겹쳐서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월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그럭저럭 정신이 들고 체력이 회복되고 있다. 이럴 때면 나이를 느낀다. 사실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은 생각 굴뚝 같았지만 마음만 그럴 뿐 기력이 되질 않아 그저 머리 속으로 여러 번 그려봐야 했다. 그림 시뮬레이션! 살살 쓰다 가야할 몸이다. 독자들도 아니 이 양반 왜 글을 올리지 않지? 할 것 같아 이 사진으로 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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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또 책을 만나게 되니

 

 

한 권의 소설은 한 권의 소설로 완결이지만 지식을 다루는 책을 읽다 보면 책 안에서 또 다른 책을 만나게 된다. 아니, 소개받게 된다. 가령 최근 다시 펼쳐보고 있는 “영국 해군지배력의 역사”란 책, 영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가 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참조하거나 인용한 책들을 널리 소개하고 있다. 으레 학자들의 책이란 게 다 그렇지만 그러다 보면 만나보고 픈 책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또 다시 그 책을 찾아 나서게 되기도 한다. 폴 케네디란 사람이 중개인이 되어 또 다른 책과 조우하게 된다. 최근엔 세상이 좋아져서 저자와 제목만 구글 검색하면 아마존에서 팔고 있거나 더러 운이 좋으면 책의 pdf 파일을 만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존 책 소개란을 통해 관련된 다른 책들도 소개받게 된다.

 

이는 마치 사람의 교제와도 같다. 친한 이가 사람을 데려와 함께 자리를 했는데 나중에 그 소개 받은 사람과 친해지기도 하고 또 그 바람에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과도 알고 지내는 것과 같다.

 

 

무얼 해도 重重(중중)하고 無盡(무진)하니 

 

 

인간의 만남과 교제가 重重(중중)하고 無盡(무진)하듯 책의 세계도 그렇다.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도가 아니라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끄집어내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선 조금 기다려주시기 바란다. (원래 글을 이렇게 쓰면 읽는 이의 흥미가 떨어져서 피해야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한 때 삶을 적극적으로 낭비해보려는 의지를 가진 적도 있었으니 

 

 

예전에, 상당히 오래 전에, 정확하게 얘기하면 2002년 무렵의 한 때, 나 호호당은 道敎(도교)의 팔만대장경에 해당되는 道藏(도장)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죽는 날까지 세월을 보내볼 까 하는 구상을 꽤나 진지하게 했다.

 

사주 가게를 하고 있으니 겨우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이에 틈이 날 때마다 저 방대한 도장을 번역한다. 뭐 이런 아이디어였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나가서 사진을 찍거나 드로잉과 수채 스케치를 하면서 살아볼까 했다.

 

텍스트는 중국어 위키에 들어가면 전부 다 올라와 있으니 별도로 구매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도교의 경전을 집대성한 道藏(도장) 역시 너무나도 엄청난 분량이라 계산해보니 살아생전에 나 혼자 다 하긴 어렵겠다 싶었다. 물론 꼭 다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울러 다 한다고 한들 그걸 책으로 출간해 줄 사람이나 출판사가 있을 턱도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해보고 싶었으니 그 이유가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웃긴다. 그런 일이 삶을 낭비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예 작정하고 낭비해보는 것 또한 내 개인의 철저한 자유라는 사실에 묘한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까불다가 왕창 망했다, 그렇다고 해서 장차 멋지게 재기할 것 같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60년에 걸친 순환이론, 나중에 자연순환운명학이라 이름 붙인 이론체계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 여부는 더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기에 당시 내게 있어 미래란 그저 無望(무망), 그 자체였다.

 

희망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암울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편한 점도 적지 않다. 잃을 것이 많지 않은 자는 强者(강자)라 해도 말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老莊(노장)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淮南子(회남자)란 책을 열심히 읽던 시절이라 더더욱 그런 마음이었다.

 

 

포기할 수 있는 자유 또한 자유의 한 양식인 것이니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면 家長(가장)으로서 절대 모자람이 없다. 그럴진대 장차 남은 삶을 무엇으로 놀아볼 것이냐 하는 것이 큰 과제였는데, 이왕 그럴 것 같으면 철저하게 마음 끌리는 대로 해보고 싶었다. 이 또한 自由(자유)의 한 스타일이란 생각. 그 바람에 道藏(도장)을 번역하면서 보낼까 하는 생각이 진지해졌다.

 

누군가 그런 거 왜 하시오? 하고 물을 것 같으면 그냥 합니다, 하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소! 하고 대답할 요량도 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의무라든가 미션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살 뿐이오, 하는 심정.

 

2005년 무렵, 그러니까 나 호호당의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春分(춘분)의 때에 정말이지 사는 게 싫었다.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책을 30분만 읽어도 눈이 시리고 눈물이 나서 읽을 수 없었고 천식이 심해서 편히 누워서 잘 수도 없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고 그저 내 탓임을 알고 나니 그냥 입 꽉 다물고 세월을 보내고자 했다.

 

 

시간의 누적은 무엇이든 바꾸어놓는다. 

 

 

그런데 세월, 그러니까 시간의 누적은 무엇이든 바꾸어놓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신논현역 근처 오피스텔을 작업실로 해서 지내고 있다, 올 해 10월이면 만 20년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도교의 경전을 몽땅 송두리째 번역하겠다는 생각은 가신 지 오래이다.

 

이제 글머리에서 책을 통해 책을 만난다는 얘기, 그건 마치 사람의 교제와도 같다는 얘기를 한 이유에 대해 털어놓을 때가 되었다.

 

자연순환운명학을 연구해오는 과정에서 이 방면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게 도장 번역에 대한 생각을 그만 두게 했다.

 

형식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지만 그 본질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가르치다 보니 실로 다양한 사람과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사연과 역사, 희망과 고민에 대해 말하고 되고 듣게 되다 보니 情(정)도 생긴다.

 

그게 더 시간이 지나자 이젠 혼자서 작업실에 틀어박혀 번역만 하고 있을 순 없게 된 것이다. 그것보다는 역시 사람은 사람을 만나는 게 더 흥미롭고 재미가 있으며 때론 유익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에 어느 날 그간의 번역 파일들을 간단하게 DELETE 키로 날려버렸다. 수년간의 노고가 사라지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굿 바이!

 

 

포기하려 했더니 얻게 되는 이 묘한 세상

 

 

게다가 2007년의 어느 날 아!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운명의 법칙은 그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이제 내려놓자! 하고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불과 며칠 뒤 답을 얻었다. 포기하려는 순간 답을 찾았다.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사는 게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즐거워졌다. 사람과의 교제만이 아니라 숨 쉬고 하늘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겨워지기 시작했다. 2007년은 60년 순환에 있어 청명, 즉 한 해로 치면 4월 5일경의 때와 같았던 것이고 그로서 回春(회춘)이란 게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했다.

 

 

下山(하산)의 때

 

 

내 스스로 2007년 무렵을 下山(하산)의 때로 받아들이고 있다. 높고 깊은 산중 궁벽하고 후미진 동굴 속에서 벽을 마주한 채 보내던 세월을 그만 하고 산 밑으로 내려온 셈이었다.

 

사실 후미진 동굴 속에서 내가 대하고 있던 벽 앞엔 모니터가 한 대 있고 그 모니터 속엔 ‘구글’이란 신기한 놈과 ‘위키피디아’란 놈이 살고 있었다. 그를 통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일생에 걸친 스토리들을 검색하면서 參究(참구)할 수 있었다. (자연순환운명학이 탄생함에 있어 절대적인 기여를 구글과 위키피디아가 한 셈이다.)

 

사람을 만나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듯이 구글과 위키피디아 속에 들어가면 또 다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스토리, 사연들을 접할 수 있었고 나중엔 너무 확장이 되는 바람에 멈추어야 할 때도 있었다. 책 역시 그렇다. 평생 책 속에서 책을 만나고 다녔다.

 

그러다가 유튜브를 통해 수채화 고수들의 시범을 통해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재미난 건 유튜브 속의 고수들이 보여주는 시범은 일종의 쇼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마치 쉽고 자연스러운 것인 양 보여주지만 그 속엔 그들의 평생에 걸친 학습과 연마가 숨어있다. 그러니 기술은 결국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지 배우는 것이 아니란 사실.

 

 

모든 것이 모든 것을 의지해서 존재하는 이 신묘한 세상

 

 

겨울 동안 수채화 종이 문제로 근 6개월 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종이를 구해서 간만에 그렸더니 그간 습득한 것들이 전혀 되질 않았다. 너무나도 어색했다. 깜짝 놀랐다. 아니 그렇다면 그간에 터득한 것들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싶었다.

 

이에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보름 정도 열심히 그려보니 다시 내 손 끝에서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문득 알게 되었다. 그림의 기술이나 기법이란 것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에 대해. 그건 내 머리 안에 머무는 것도 아니요, 손끝에 있는 것도 아니란 사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림 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란 것을 알았다. 종이와 물감, 붓, 그림을 그리려는 흥미와 의지, 아이디어, 그리고 손과 눈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림, 그 모든 것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을 의지해서 존재하고 서로가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생각.

 

서로 싸우고 경쟁하고 또 사랑하고 아끼면서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듯이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를 통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마무리하려는 이 글 역시 독자들이 있기에 글을 쓰는 나 호호당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오늘 다소 두서가 없는 글을 쓰고는 있지만 과연 독자들이 읽고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인지 그 또한 전혀 알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세상은 어떤 일과 것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공간, 그러니 세상은 그저 重重(중중)하고 無盡(무진)하다는 생각이다.

 

내일 아침 나 호호당은 고마운 분과의 인연으로 해서 전라남도 곡성의 천태암과 구례군의 천은사를 찾아간다. 2박3일의 일정이다. 벌써 즐겁다.

세월이 잘도 가는 까닭은 

 

 

시간이 잘도 가고 세월도 잘 간다. 하루란 시간 간격이 정말이지 국수 삼키듯 후루룩 지나간다. 이는 생활이 나름 편하다는 얘기이고 큰 걱정이 없어서 그렇다. 하루하루가 전투의 날이고 결전의 순간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런 날들을 보내봤기에. 그런 까닭으로 이렇게 살 수 있으니 그저 하루하루 고마울 따름이다.

 

간밤에 생각했다. 왜 이렇게 세월이 금방 가는 걸까? 창밖에 달이 둥그렇게 떠 있어서 화실의 등을 끄고 앉았노라니 달빛이 방안에도 찾아들었다. 아, 나는 ‘루틴’이 많구나, 그래서 하루가 금방 가는구나 싶었다.

 

 

데일리 루틴 

 

 

아침 8시 반 기상, 세라젬으로 척추를 펴고 단백질 분말 반 컵에 칼슘 한 알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9시, 증시가 개장하면 잠시 본다. 그런 후에 강아지들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갔다 오면 10시, 온 집안에 흰 강아지 털이 날리니 정전기 청소포로 거실과 안방을 쓸고 물걸레 자루를 가져와 닦는다. 그러면 땀이 나고 열이 오른다, 시원한 보이차 물 한 잔 마시고 나서 다시 증시를 잠깐 보면서 거래 여부를 판단해본다. 11시 정도가 되면 수채화 종이를 화판에 테이핑해서 스트레칭을 한다. (가급적 밤까지 기다려서 완전히 말려야 한다.)

 

11시 반, 아점을 먹은 다음 설거지를 마친다. 사실 물 적시는 것을 좋아하기에 설거지를 즐긴다. 어머니가 계실 땐 눈치가 보여서 참았지만 지금은 마음 편히 한다. 그리고선 커피 한 잔을 타서 다시 화실 모니터 앞에 앉는다. 증시를 1-2분간 살펴보고 하루 일정도 확인해보고 잠시 글을 쓰거나 아니면 그림에 손을 댄다. 그러다가 화장실 가서 일을 보고 샤워를 하고 오후 1시 반 정도에 집을 나선다. 고맙게도 아내가 차로 작업실까지 태워다 준다.

 

작업실 나가서 상담이 있는 날엔 상담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는다. 물론 그 사이에 간단히 뉴스도 확인하고 구글에 들어가 해외소식도 좀 더 밀도 있게 들여다본다.

 

미국 의회조사국의 보고서를 읽기도 하고 최근엔 미국 상원이 통과시킨 소위 “중국 견제법” 전문을 모두 읽어보았다. 무려 281쪽에 달하는 내용이라 중국에 대해 미국 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많은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혹시 관심 있다면 구글에 가서 “Strategic Competition Act of 2021 | SLC | download”, 이렇게 치면 전문이 나온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약속이 있는 날은 사람을 만나고, 아니면 근처 식당에 들러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소화시킬 겸 교보문고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고 귀가한다. 8시 반이 되기 전에 버스를 타야 한다.

 

집에 가면 강아지들의 강렬한 환대-주로 뽀뽀와 배 만져주기-를 받은 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 그러다가 밤 10시가 되면 아내와 아들, 강아지들과 함께 전 가족 산책을 나간다. 11시 경엔 아들과 식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고 아들이 야식거리를 만들면 조금 먹기도 한다.

 

12시가 되면 슬슬 하루를 마무리한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하루의 증시 내용을 살펴보고 글을 쓰기도 하며 그림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아니면 책을 좀 더 본다. 1시 반이 되면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잠깐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최근엔 이 구역의 미친 X가 재미가 있었고 일본 애니 “오늘부터 신령님”이란 시리즈를 하루 한 편씩 보고 있다.

 

나 호호당은 일본 妖怪(요괴)물을 엄청 좋아한다. 요괴 이야기는 공포스럽지가않다. 오히려 요괴나 정령들은 귀엽고 애교가 있다. 요괴에 대해 일본사람들이 가진 관념이랄까 아니면 문화를 애호한다. 중국의 “수신기”라든가 “당송전기” 그리고 “요재지이”는 아무래도 옛날 것이라 일본 요괴물보다는 덜 흥미롭다.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책 읽고 상담하고 때론 사색하고 간간히 사람 만나고, 이게 전부이다. (그러니 텔레비전은 야구 중계를 잠깐 보는 것을 빼면 거의 보지 못 한다.) 거의 매일 이 루틴들의 반복이다. 그러니 시간이 잘도 가고 하루가 금방 가며 어제와 오늘의 차이가 거의 없다.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걱정도 해가면서 살아야지

 

 

물론 걱정거리가 없진 않다. 살다 보면 많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견디고 기다리고 참다 보면 해결이 된다.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이 된다. 해결할 수 있으면 그게 문제일 수 없다, 어떻게 애를 쓰고 노력하면서 길을 찾다보면 이윽고 길을 만나게 되니 그건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적극적인 해결책, 또는 솔루션이란 것을 좋아하는 미국적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가 지났으니 만물이 활개를 치는구나

 

 

계절은 夏至(하지)를 지났으니 바야흐로 무더운 여름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열이 오르고 수분이 땅속에서 공기 속으로 맹렬히 증발하고 있다. 벼는 물론이고 갖은 풀들이 서슴없이 자랄 것이고 벌레들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가 지나면 만물이 모두 부지런만 떨면 먹고 사는데 별 문제가 없어진다. 예전 농민들은 하지감자를 삶아서 배불리 먹었을 것이다.

 

이처럼 하지로서 모든 생명들이 활개를 친다. 잡아먹고 잡아먹히면서 말이다. 일제 약진의 때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운 상으로 1987년이 하지였다. 우리가 먹고 살만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자 마침 아파트 붐이 일었다. 이젠 나이가 든 가수 윤수일 씨가 “아파트”란 노래를 부른 것은 1982년이었는데 이미 5년 전에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시대를 미리 알리는 대중가요 

 

 

대중적으로 빅 히트를 치는 노래는 새로운 시대를 미리 알리는 일종의 嚆矢(효시), 즉 전투를 시작할 때 쏘던 화살, 살촉에 속이 빈 깍지를 달아 붙였기에 날아가면서 강렬한 파공음을 내는 화살과도 같은 것이다.

 

방탄소년단, 나로선 전혀 관심이 없지만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워낙 열광을 해대니 노랫말을 가끔 음미해 보기도 한다. 2013년에 나온 첫 앨범의 타이틀 곡이 No More Dream.

 

시시한 꿈이나 강요된 희망을 억지로 가질려 하지 말고 그냥 너답게 삶을 살아보라고! 하는 얘기이다. 이젠 더 이상 꿈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거, 즉 “이생망” 세대들을 위한 노래, ‘희망이 없지만 혹시 모르잖아, 네 식대로 하다 보면 뭔가 길이 열릴 수도 있지 않겠니? 하는 얘기이다.

 

2013년의 노래 역시 2018년을 미리 노래했다고 볼 것 같으면 우리 국운의 小寒(소한), 겨울 추위가 본격화되는 때이니 실로 시국과 잘 맞는다. 오늘에 이르러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누구인들 꿈이 있겠는가 말이다.

 

 

2007년으로서 글로벌 경제는 '아작'이 났으니 

 

 

사실 글로벌 경제는 2007년 미국 금융위기로 해서 ‘아작’이 났다. 디플레이션을 감추기 위해 돈을 남발하고 있는 오늘이다.

 

이 대목에서 약간 심각한 얘길 좀 하면 이렇다. 미국이 달러가 곧 금이던 시절을 정식으로 포기한 것은 1971년이었다. 辛亥(신해)년, 그리고 36년이 흘러 2007년 丁亥(정해)년이 되자 금이 아닌 종이돈 달러가 과잉으로 넘쳐나면서 금융위기가 닥쳤다. 모든 사물은 36년이 경과하면 어떤 결정적인 브레이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바로 종이 달러가 사실상 절대적인 가치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챈 결과로서 일종의 부산물이다.)

 

미국 연준은 더 많은 달러를 찍어냄으로써 위기를 일단은 해결했다, 참으로 기발한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고 지연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의 후속 대책이 없다.

 

 

총결산의 날이 올 것이니

 

 

그러니 총결산의 날이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어떤 수를 써도 문제를 지연시킬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란 얘기이다. 그 결산은 아마도 2025년부터 시작되고 2031년경이면 마무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보고 있다. 미국으로선 그 이전에 어떻게 해서든 중국을 ‘자빠뜨려야만’ 한다고 단단히 作心(작심)을 한 것 같다.

 

세계제패의 꿈을 꾸던 중국 또한 자빠져서 코가 깨질 준비를 다 마쳤다. 난데 아닌 황제 체제가 되면서 모든 언로를 다 막아 놓았으니 그야말로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는 격이다. 며칠 전 초강경 논조의 중국 관영 영자신문인 “글로벌 타임즈”의 책임자가 너무 약한 소리를 해대고 있다는 이유로 경질되었다고 한다.

 

새롭게 자리에 앉은 사람은 보나마나 “이 구역의 미친 X”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잘 하는 짓이다.

 

나 호호당 개인의 삶은 루틴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세상은 더욱 알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느낌만 든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읽으면 첫 부분에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의 언덕과 숲 사이로 가다 보면 드라큘라 백작의 성이 나온다는 소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트란실바니아, 뭔가 울림이 있는 이름 아닌가!  뜻을 찾아보니 '숲 너머 저쪽'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구글 어스에서 찾았고 정취가 있어서 그렸다. 올 가을 전시회를 준비해서 맹렬 정진이다. 하루에 두 장씩 그린다. 8월부터는 작품을 준비해야 하니까. 다 올리진 못 한다, 독자들이 질려할 것 같아.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일도 없을 것이다. 담배를 참을 수 없는 터라 그냥 저런 곳이 있구나 한다. 그리면서 즐거웠다. 독자들도 즐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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