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因果(인과)



친한 친구 중에 기러기 아빠를 하다가 처지가 무척이나 어려워진 이가 있다. 자녀 둘을 열심히 뒷바라지하다 보니 그만 그렇게 되었다. 첫째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 바람에 영재 고등학교를 마친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둘째는 조기 유학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아내마저 미국으로 가야 했다. 


그리고 꼭 이십 년이 흘렀다. 


수재이던 큰 아이는 미국에서 좋은 직장을 얻어 열심히 살고 있다. 원래는 미국에서 경력을 어느 정도 쌓은 뒤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그게 그렇게 되질 않았다. 성적이 미흡해서 미국으로 떠났던 둘째는 한국으로 돌아올 기회가 아예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아내와는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내다 보니 미국 현지에서 다른 인연이 생겨서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 


좋은 공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던 친구는 퇴직을 했는데 학비 때문에 모은 돈도 거의 없었고 그러다가 그나마 퇴직금을 투자했다가 거의 잃고 말았다. 그 결과 친구는 서울의 허름한 동네로 옮겨서 전세를 살고 있다. 혼자 지내고 있다. 



친구와의 송년 자리



며칠 전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고 두 사람만의 송년 자리를 가졌다. 친구는 볼 때마다 얼굴이 많이 상해가고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친구의 얼굴에는 더더욱 을씨년스러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문득 중국말이 생각났다, 冷凄凄, 렁치치 렁치치! 참으로 딱한 내 친구여. 


난 망했어, 네 말이 맞았어, 네가 그렇게 여러 번 말렸는데 그때 너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짙은 회한이 서린 말이었다.

나름 위로랍시고 얘기했다, 다 팔자야 팔자. 내가 팔자 보는 사람이잖아, 그것도 팔자소관이라고. 


물론 해보는 애기였다. 그게 모두 팔자소관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 친구의 운세로 볼 때 2011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현재 가장 어려운 때가 되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덩그러니 전세방에 혼자 지내는 것까지 모두 예정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니 말이다. 



좋은 시절에 뿌려진 불행의 씨앗



돌아오면서 친구의 일을 되새겨보았다. 결국 근 이십 년 전 첫 아이를 미국으로 보내면서 오늘날의 불행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가 떠나자 다시 둘째 아이가 떠났고 그러다보니 아내가 떠났다. 


당시 나와 친구는 사십 대 중반이었다. 당시 나는 꽤나 곤경에 처해 있었지만 친구는 반대로 공기업의 중견 간부로서 좋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언 20년이 흘렀다.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마저 든다. 친구는 아이들 잘 키워 보겠다고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적으로 외톨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세월 동안에 누적된 삶의 피로가 진하게 밀려왔다. 


친구는 한창 좋던 그 시절에 불행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삶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적 확장으로 치닫는 법



다시 어젯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서 다시 생각이 났다. 냉정하게 그간의 상황을 생각해보니 친구의 그간 행동은 결국 ‘삶의 제국주의적 확장’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자아를 확장해가고픈 욕망이 있다. 자녀란 결국 자아의 연장인 법, 아이들을 잘 되게 하겠다는 욕망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또한 자아의 확장인 것이니 생명의 본능이다. 본능을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는가!


친구의 당초 기대는 수재인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좋은 경력을 쌓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좀 미흡했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 돌아와서 어느 정도는 괜찮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그 과업을 다 마치고 나면 아내와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면 되리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친구의 노력이 전적으로 실패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결과적으로 치른 대가가 너무나도 컸다. 



중앙과 변두리



이 세상에는 당연히 그리고 언제나 中央(중앙)이 존재하는 데 자아의 확장은 대부분 중앙으로의 진출을 통해 이루어진다. 중앙 스스로는 자신이 중앙이란 것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으며 아예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겠으나 주변의 존재들은 그 중앙을 갈망하고 중앙으로의 진출을 시도한다. 옛날 표현으론 “大處(대처)로 나아가다”는 말이 그것이고 또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한양으로”란 표현도 있다. 


그렇기에 누구나 중앙 또는 중앙무대에 서서 능력을 보여주고 자웅을 겨루고자 하는 포부를 한 때나마 가져보기 마련이다. 중앙 무대에 서면 주목을 받게 되고 게다가 잘 하기까지 할 경우 인정을 받고 뽐을 내며 살 수 있다. 



불안정한 2등의 위상



그렇기에 중앙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없거나 그럴 처지가 아니다 싶으면 결국 어떤 疏外(소외)의 감정을 갖는다. 중앙 무대로 진출하지 못 했다고 해서 물론 패배자는 아니다. 축구로 말하면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지 못하면 2부 리그에서 열심히 뛰는 것이고 그도 아니면 3부 리그에서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친구는 왜 미국 저 먼 나라에까지 자녀들을 보냈어야 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보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뛰는 것은 잘 해 본들 2부 리그에 불과하다 여겼던 탓일 것이다. 자녀들이 최소한 미국이란 1부 리그에서 경험을 해봐야 나중에 이곳 2부 리그에서 인정을 더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오늘날 글로벌의 중앙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고 사실이다. 


어떤 마케터의 말처럼 모든 물건이 미국으로 팔려나가진 않지만 미국에서 잘 팔리는 물건은 글로벌 전체로 퍼져나가고 팔려나간다. 그곳이 중앙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정하는 룰이 표준이고 글로벌 스탠다드인 것이다. 


최근에 와서 애플 스마트폰의 장점은 단 하나밖에 없다. 미국 기업이 만든 물건이기 때문이다. 조립은 중국이든 대만이든 아니면 인도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뭐 같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 자체가 2부 리그 소속이 아니라 아예 1부를 바라볼 수 없는 4부나 5부에 속한 나라였다면 친구의 소득으론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 바람에 여전히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과 자주 왕래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기껏해야 우리나라로 와서 외국인노동자를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늘 전진만 할 순 없지 않은가!



우리 대한민국은 1960년대 4-5등 국가에서 엄청난 노력을 통해 오늘날 2등 국가 정도는 되었다. 전 세계에서 우리와 같은 역량을 가진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다.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하지만 4-5등에서 치고 달려온 탄력의 관성이 남아있기에 우리의 의식은 어쩔 수 없이 여전히 1등을 지향하고 있다. 


이 정도 위치에서 계속 머문다고 해도 그다지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정도 위상을 지켜나가는 것만 해도 앞으론 벅찰 것 같은데 말이다. 


친구는 대단히 선량한 사람이고 인정도 많다. 능력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다만 자신보다 아이들이 더 나은 삶, 더 발전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뒷받침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그게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물론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도 있지만 꿈은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성공의 신화와 전설을 새겨온 우리들이었고 동시에 우리가 뱁새인지 황새인지 확인해보기 전에 미리 알 순 없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제국주의라 하면 으레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사실 우리 모두 알고 보면 능히 제국주의자들이란 생각을 한다. 사회에 나가 성공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자는 당연히 그렇다. 그 성공이란 결국 남보다 앞서는 것이고 경쟁자를 제쳐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욕망은 때론 불행을 불러오기도 하는 법이다. 


5년 두인 2024년 우리 국운의 입춘 바닥이 된다. 그로서 새로운 60년의 순환이 시작된다. 그 새로운 순환에 있어 우리 모두의 미래지향과 좌표는 어떤 것이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친구에게 물었다, 너의 얘기는 내 블로그의 글감으로서 참 좋은데! 했더니 뭐 상관없다, 이름만 밝히지 않으면 말이다 했다. 승낙을 받은 셈이다. 


(알림: 작년에 이어 우리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의 아름다운 성당들을 그린 내년도 탁상 달력을 제자가 제작했다. 그림은 물론 나 호호당이 그렸다. 이에 블로그에 베너 광고를 올린다.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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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내리는 아련한 情景(정경)

 

 

12월 1일, 겨울비가 내린다. 작업실 창 아래 목련 公(공)이 비에 젖고 있다. 오랜 친구이기에 그냥 목련이 아니라 목련 공이라고 존대해준다. 물기에 번들거리는 붉고 누런 갈색의 시든 이파리들과 검은 가지가 지나간 계절에 대한 아련함과 서운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곧 大雪(대설)이다, 오는 7일이다. 그러니 비는 어쩌면 올 해로선 마지막일 것도 같다.

 

 

大雪(대설)의 의미

 

 

大雪(대설)은 만물이 일제히 철수하는 때이다. 해가 빨리 지고 어둠이 일찍 찾아오며 나무는 말라버린 잎을 내려놓고 땅속으로 침잠해가고 풀벌레들은 죽거나 아니면 땅속으로 파고들었으며 여름 철새들은 떠난 지 오래이다. 땅은 비워지고 치워지며 그 위로 큰 눈 大雪(대설)이 내려 덮으면 세상은 흰 색의 모노톤으로 변한다. 그저 군데군데 지난 일들의 흔적과 자취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大雪(대설)은 따라서 한 해 동안 地上(지상)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과 그것의 역사를 無(무)로 되돌려 놓는 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로 되돌아가진 않는다, 살아있는 생명들은 이제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거나 꿈속에서 길고 긴 여행길에 나선다. 假死(가사)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리하면 대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곳 근처의 따뜻한 곳을 찾아서 겨울을 나거나 철수하는 때란 점, 아울러 땅속에서 동면하면서 긴 꿈을 꾸는 때란 점이다.

 

 

대설이 되면 떠나는 내면으로의 여행

 

 

현실의 길은 아니지만 꿈속에서 길을 가게 되니 이를 두고 나 호호당은 ‘겨울 여행’이란 부른다. 겨울 여행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서 그 속의 길들을 밟아가는 여행이다.

 

우리 속 즉 우리의 의식 속에도 실은 넓은 공간이 있고 스스로도 몰랐던 어쩌면 잊고 지냈던 많은 구석들이 있다. 그 땅들을 밟아보고 미처 몰랐던 구석까지 찾아나서는 여행이 겨울 여행이다.

 

그렇기에 어떤 이가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서 대설, 즉 입춘 바닥이자 시작점으로부터 50년이 흐르면 그 사람은 겉으론 멀쩡하게 일을 하고 직장을 다니지만 실은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현실의 일은 하던 대로 하고 있지만 그 사람의 생각과 영혼은 자신의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는 얘기이다. 이는 눈을 뜬 상태에서 꿈을 꾼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현실의 사물을 보고 인지하면서도 사실 그 사람의 망막에는 다른 그림, 현실 사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머릿속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그 사람의 행동에는 서서히 현실과의 괴리가 생겨난다. 눈을 뜬 채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대설 운을 맞이하면 사람은 이상주의자가 된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憧憬(동경)의 念(념)이 의사결정에 있어 더 우선적이 되기도 한다. 가보고 싶지만 정작 갈 수 없었던 곳에 대한 羨望(선망), 과거에 대한 추억과 悔恨(회한), 때론 현실에선 구현하기 어려운 욕구가 생겨난다. 따라서 사람이 운세 순환에 있어 대설이 되면 이상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理想(이상)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생각 가능한 범위에서 가장 완전한 상태”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실로 너무나도 다양한 마찰 요인들이 존재하고 작용하기에 계획을 실행에 옮겨보면 처음의 생각보다 너무나도 미흡하고 불만족스런 결과로 그칠 때가 많다.

 

하지만 상상의 공간 속에선 그런 사소한 그리고 예기치 못한 마찰 요인들이 없다. 앞이 트여 있으면 그 앞으로 달려 나가면 되는 것이 이상이고 현실에선 트였다 싶은 앞의 공간이 막상 달려 나가다 보면 길이 울퉁불퉁하기도 하고 또 생각하지 않았던 장애물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이다.

 

 

理想(이상)이 갖는 문제점

 

 

理想(이상)이란 그 자체로서 선악이 없다. 다만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아직 부족한 것이 많거나 때론 시기상조일 때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할 경우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가 대설의 시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경우 그 시도는 실패하거나 未完(미완)으로 마무리될 때가 많다. 大雪(대설)이 되면 일제히 철수하는 때라고 앞에서 말했는데 여기에서 길을 강행하는 것은 길이 눈에 덮이고 추위로 인해 기력이 부족해서 도중에 그만 포기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60년 순환에 있어 대설이거나 대설을 지낸 자가 하려는 행동이나 계획을 들어보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일 때가 많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감이 든다.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 꿈이 현실인 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운세에 있어 대설이거나 대설을 지낸 자의 경우 대부분 그간에 많은 것을 이미 성취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가령 재산을 이제 나름 모았다거나 사업에서 성공했다거나 또는 명성을 얻었다거나 등등의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성공과 성취는 언제나 십분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다. 현실의 세상은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반대되는 상대가 있어서 성공과 성취 또한 어느 정도는 당초 목표한 것과 비교할 때 아무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走火入魔(주화입마)의 위험성

 

 

그런데 대설이 되어 꿈을 꾸다 보면 그간의 경험과 힘을 바탕으로 이제야말로 제대로 나름의 작품을 완성해볼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겨나게 되니 그 또한 자연스런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실은 우리가 흔히 ‘魔(마)가 낀다’고 표현하는 상태인 것이다. 즉 走火入魔(주화입마)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설 운에 야심차게 일을 시작해서 그간의 업적과 성취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심할 경우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대설 운에 잘못된 결정과 행동에 나섰다가 잘못된 경우를 열거하자면 그야말로 이룰 헤아릴 수 없이 허다하다.

 

 

사례들

 

 

몇 가지 예만 들어본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영웅이자 거인이었던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대설 운을 지내고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크게 낭패를 보고 수명까지 단축했다. 그간의 경륜으로 볼 때 경제인이 정치인을 해도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나라를 예로 들면 이웃 일본의 경우 과거 1935년부터 대설 운이었는데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그게 1941년의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져서 패망하고 말았다. 당시 일본 지도층들이 국운의 분위기에 휩쓸려 집단적 迷夢(미몽)에 빠졌던 것이다.

 

중국 역시 시진핑 주석이 들어서면서 이른바 중국몽을 말하기 시작했다. 과거 중화제국의 위세와 영광을 되찾겠다는 것인데 그 또한 문자 그대로 몽이다. 중국 또한 국운의 대설을 지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설 운을 맞이했으면 새롭게 야심찬 계획이나 사업에 손을 데면 실패는 기정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2014년으로서 국운의 대설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 번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 또한 평등과 공정, 정의를 주장하고 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물론 다 좋은 말이고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주장들이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고 말해도 지나친 얘긴 아닐 것이다. 우리의 국운이 대설을 지나 올 해로서 小寒(소한)이고 조만간 참으로 힘든 형국이 닥쳐올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2014년 이후 우리 모두가 집단적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누굴 탓하기 보다는 이 또한 국운의 흐름이라 하겠다.

 

 

驚蟄(경칩)이 되면 꿈에서 깨어날 것이니

 

 

하지만 영원히 언제까지고 꿈을 꾸고 있을 순만은 없을 것이고 당연히 때가 되면 우리 모두 꿈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는 언제가 되는 것일까? 그 답은 2029년이다. 지금부터 정확하게 10년 뒤가 된다.

 

2029년은 국운의 驚蟄(경칩)이 되니 겨울잠에서 깨어나 또 다시 척박한 현실로 되돌아오는 때가 된다. 놀랄 驚(경)에 칩거할 蟄(경칩)이니 꿈에서 깨어나 보니 그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어려워져 있는 참담한 현실을 깨닫게 되니 어쩔 수 없이 그간의 칩거를 끝내고 다시 현실에 발을 딛고 선다는 것이 경칩인 까닭이다.

 

 

제대로 겨울여행을 하는 방법

 

 

이제 겨울 여행을 제대로 하는 법에 대해 알려드리고 글을 마무리하겠다.

 

그간의 성취에 다소 아쉽더라도 일단은 자족할 것, 더 이상 그간에 이루지 못한 것들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것, 큰 목표가 있고 달성 가능하다 여겨지더라도 실은 그것을 이루기엔 부족한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이제부터 목표 구현이 아니라 그를 위한 준비 작업에 나설 것, 방면의 선생과 高手(고수)와 高人(고인)들을 찾아서 배우러 다닐 것.

 

이것이 겨울 여행을 제대로 하는 법이다. 이를 두고 나 호호당은 이 산의 선생을 찾아서 올라가도 보고 저 산의 고인을 찾아가 보는 발걸음, 즉 일러서 “이산 저산 행”이라 부른다.

 

오늘의 글은 다소 추상적이다. 따라서 뭔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잘 읽어보시면 소득이 적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어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면서 저녁에 시작한 글을 오늘 오후에 마무리했다.


시적 감흥과는 연을 끊겠다했던 망상



해마다 2월 20일 경의 우수가 되면 작업실 청소를 하면서 버릴 것은 버린다. 특히 내겐 책꽂이 정리가 중요하다, 필요 없겠다 싶은 책은 버린다. 해마다 수 십 권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후회하는 일도 간혹 생긴다. 


꽤나 된 것 같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이제 대충 다 살았다 싶어서 詩集(시집) 같은 것은 다 버리고 치워도 될 듯 했고 그래서 근 백 권이 넘는 시집을 깡그리 다 버렸다. 수십년 묵은 책도 있었고 비교적 근자에 산 시집도 있었는데 통으로 다 버렸다. 그때 심정은 枯木(고목)에 봄꽃은 어울리지 않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고목나무라 해도 죽지만 않았으면 봄이 되어 꽃을 피워 매달듯 시적 감성은 수시로 때때로 가슴 속에서 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오래된 나무를 보면 죽은 가지도 있겠으나 꽃을 피워내는 가지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나무는 아직 살아있다. 그처럼 나 호호당 역시 살아있는 한 시적 감흥을 느끼면서 살게끔 되어있는 법, 그러니 그런 와중에선 기억나는 시들을 다시 찾게 된다. 



몸이 조금 아프게 되자 생각이 난 시 한 수



일본을 다녀오고 다시 연달아 여수를 다녀왔더니 살짝 몸살이 났었다. 사나흘 쉬고 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고 미열이 나면서 근육통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몸져누울 정도도 아니었다. 


며칠 전의 일이다. 작업실에서 저녁이 되자 미열이 올라와서 잠시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있는데 문득 일본 하이꾸의 명인 바쇼가 남긴 시 구절이 떠올랐다. 마쓰오 바쇼 말이다. 


오래 전 일본어를 공부해보겠다는 생각에서 바쇼의 시들을 몇 수 외웠던 적이 있는데 살짝 몸살이 나자 시 한 수가 떠올랐던 것이다. 


여행길 몸져누우니 꿈은 황량한 들판 헤매이누나, 하는 시. 그런데 일본어로는 구절 전체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바쇼의 시집이 책꽂이 어딘가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다가가 보니 바쇼의 시집은 물론이고 그 어떤 시집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서야 알았다, 시집을 다 버렸다는 것을. 이런! 내가 미쳤지. 


시계를 보니 교보문고가 아직 열고 있겠구나 싶어서 부랴부랴 달려가서 예전에 버렸던 바쇼의 시집을 샀다. 다행히도 같은 책이 한 권 있었다. 


원문은 旅に病んで/夢は枯野を/かけ廻る,

읽을 땐 たびにやんで / ゆめはかれのを / かけめぐる, 이렇게 읽고 우리말 소리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타비니얀데 유메하카레노오 카케메구루. 


작업실로 돌아오면서 마치 주문 외듯이 “타비니얀데 유메하카레노오 카케메구루”를 외우면서 걸어왔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몸살이 났으니 병들어 곧 죽을 수도 있는 처지의 바쇼 시인의 심정이 담긴 저 시, “여행길 몸져누우니 꿈은 황량한 들판 헤매이누나!” 하는 것에 조금은 공감이 갔던 까닭이다. 물론 내 경우엔 일종의 엄살이지만 말이다. 



그의 꿈은 무슨 연유였던 걸까?



우리말로 芭蕉(파초)가 되는 바쇼는 세속과 탈속의 경계를 살다간 시인이다. 그랬기에 그는 수시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고 그 속에서 시적 영감을 얻었다. 앞에 소개한 시는 바쇼의 마지막 작품인 것으로 알고 있다. 유랑길을 돌아다니다가 겨울 무렵에 병이 나서 누웠던 중에 쓴 작품이고 그 뒤로 그만 숨지고 말았다. 


몸은 아파서 누웠으나 마음은 계속해서 마른 벌판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당시의 여행은 결코 지금처럼 관광이 아니었고, 때론 몹시 힘든 상황에 처할 때도 많았다. 그러니 병이 났고 오늘날과 같이 아프면 며칠 요양하면 회복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그만 세상을 떠야 했으리라. 오십의 나이였으니 지금 시절이라면 아직 한창인 나이였다. 


병난 몸이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지만 그럼에도 겨울 마른 벌판을 돌아 다니고 싶다는 저 마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길 위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꼭 찾아야만 하는 것이 있었을까? 알듯 모를듯 하다. 


마쓰오 바쇼는 출신이 寒微(한미)했던 모양이다, 생년월일이 알려져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의 사주팔자를 살펴볼 수가 없고 그 점이 아쉽다. 대시인의 사주를 엿볼 기회가 없는 것이다. 



좋은 시절에 좋은 나라에 태어난 행운



나 호호당은 올 해 예순 다섯이다. 바쇼보다 벌써 15년을 더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적 감흥을 수시로 일으킬 만큼 건강하다. 시대를 잘 만난 덕분이다. 


나 호호당 역시 조선시대였다면 아마도 어쩌면 필시 벌써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라 여긴다. 1955년생이지만 1997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그로부터 7-8년 뒤인 2004-2005년 무렵에 죽었을 것이란 얘기이다. 


그러면 나 호호당 역시 향년 50이었을 것이다. 죽으면서 세상을 한탄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상 시절을 잘 만나서 영양 충분한 오늘날 세계적으로도 빠지지 않는 대한민국에 태어났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날씬한 초사흘 달과 다시 돌아온 겨울밤의 시리우스



그제 저녁 서쪽 하늘을 보니 날씬한 초사흘 달이 저물고 있었다. 산뜻한 초사흘 달 말이다. 초사흘 달의 몸매는 정말 날씬하고 날렵하다. 성깔도 있어 보인다. 


그런 뒤 늦은 밤 뒷산 산책할 때 보니 겨울 밤하늘의 왕별 ‘시리우스’가 동남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간 잊고 지내다가 또 만나게 되니 많이 반가웠다. 


다시 흥이 날 때마다 좋아하는 시집들을 기꺼이 사들여야 하겠다. 곁에 두고 수시로 즐겨야 하겠다. 괜히 늙은 시늉 할 까닭 전혀 없고 마음은 꽃을 피워내는 청춘으로 남아서 흔쾌히 살아가야지 하는 다짐을 해본다. 



어려워져가는 우리나라를 지켜보노라니



최근 점차 어려워져가는 우리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꽤나 묘한 생각이 든다. 내 경우 이미 이럴 것으로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지 않은가, 그러니 눈앞의 일을 당연시해야 할 터인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롭다고 하면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 우리나라가 씩씩하게 발전해오는 과정을 그 시대 속에서 살아왔기에 몸으로 경험했다는 것, 그러니 그 반대의 흐름, 쇠퇴해가는 흐름을 눈으로 찬찬히 지켜보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시장’의 시절에 대한 회상



어린 시절 조금씩 세상 물정을 알아가던 시절이 1960년대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 사회는 정말로 힘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 대학 다니다가 등록금이 없어서 휴학하던 형이 있었다. 스무 살 남짓이었겠지만 내가 워낙 어렸기에 형이 아니라 큰 어른처럼 여겨졌다.

 

어느 날 그 형님 집에 일이 있어 들렀는데 그 분은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찬밥 반 공기 정도를 그냥 드시는 것이 아니라 물을 불려서 두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왜 물을 부어 먹어요? 했더니 그래야만 양이 많아지잖아 하시는 것이었다. 


늘 대학생 교복 한 벌이 전부이던 그 분은 얼굴이 몹시도 창백했다. 왜 그럴까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밥 한 공기를 절반씩 나눈 다음 물에 불려서 간장을 숟가락으로 조금씩 찍어가며 먹는 것이 하루 식사였으니 영양 상태가 좋을 리 만무였던 것이다. 지금도 그 분의 검은 대학생 교복과 창백한 얼굴이 기억 속에서 선명하다. 그래도 당시 그 분은 휴학 중인 대학생, 즉 우리 사회의 엘리트였다는 생각이다. 


중학교 시절 월남, 지금은 베트남이지만 파병 장변들을 환송하거나 귀국장병들을 마중나가는 일에 자주 동원되곤 했다. 부산 부두로. 수업을 하지 않으니 우리들은 마냥 신이 났었다. 군가가 크게 울리면 우리들 또한 가슴이 울렁거렸고 이에 종이 태극기를 세차게 흔들다가 찢어놓곤 했던 기억. 


수돗물이 나오지 않으면 급수차 앞에서 양동이를 잔뜩 가져다 놓고 자리를 지키던 기억, 초등학교 시절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나누어주는 옥수수떡을 내가 가져간 도시락과 바꾸어먹을 때 상대방이 건방진 표정으로 약간 손해지만 너그럽게 베풀어준다는 식의 그 건방진 표정 또한 여전히 새록새록하다. 


바로 그런 때가 몇 년 전 소개된 영화 “국제시장”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 호호당은 굳이 그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우리 국운이 가파르게 하락 중이고 이에 10년 후, 즉 2029년이 되면 그야말로 한심하다 싶은 때가 올 것이다. 2029년이 되면 국운의 재바닥, 가장 힘겨운 시점이 될 것이니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금 말한 국제시장의 시절로 원점 복귀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이라서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어져 있겠지만 이미 우리에겐 성공해본 경험이 있고 또 상당한 기술력과 인재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렇기에 또 다시 단합하고 뭉치면 힘들긴 해도 또 다시 더욱 힘차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니 사실 나 호호당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그 途中(도중)에 겪을 일들이 힘들 뿐이라 여긴다. 


변해가는 세계와 우리 대한민국을 열심히 지켜볼 생각이다. 어쨌거나 끝이 좋으면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고 힘들어도 다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며칠 엄살을 부렸는데 기력을 회복한다는 핑계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입안에 가시가 돋을 판이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책방에 가서 읽고 싶은 시집을 몇 권 사와야 하겠다. 


(이 글은 토요일 새벽에 시작해서 일요일 새벽 이 시각에 마무리했다. 그래서 이미 오늘은 음력 6일이 되고 있다.)



2015년 6월, 우리 경제의 내수 여력이 사라진 시점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던 때는 2015년 6월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했고 그 바람에 특히 식당들이 된서리를 맞았고 이에 한동안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와 원성만 귓전에 들려왔다. 


그런데 메르스 사태가 가신 뒤에도 우리 경제의 내수는 더 이상 되살아나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내수가 쪼그라든 이유는 메르스가 아니었던 것이고, 가계의 소비여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 하겠다. 



壬午(임오)월이 되면 모종의 답이 주어지는 우리 경제



그 해 6월은 壬午(임오)월이었는데 이처럼 우리 경제는 매 5년마다 임오월이 되면 전망이 확실해지면서 답이 나오는 때라 보면 된다. 우리 경제를 가장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급소라 하겠다. 가령 2005년 6월, 2010년 6월, 2015년 6월, 그리고 내년 2020년의 6월이 되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물론 정치권이나 미디어들은 여당이냐 야당이냐 친여진영이냐 친야진영이냐에 따라 다른 진단을 할 것이고 각종 언론매체들도 다른 소리를 하겠지만 그거야 각자 자신의 이익 특히 진영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그냥 전 국민의 상황인식이 명확해지는 때 또는 성적표가 나오는 때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얘기이다. 


과거의 사례를 돌이켜보자면 2005년 6월은 당시 우리나라의 財富(재부)가 급증하면서 부동산 상승세가 확연해진 때였고, 2010년 6월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제 고비를 넘기고 되살아날 것이란 기대가 확산되던 때였다. 


그 바람에 2009년의 성장률이 0.8%였던 것에 반해 2010년의 경우 무려 6.8%의 높은 성장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실은 마지막 반짝이였다는 사실, 그 이후 지금까지 2-3% 대의 성장률에 그치고 있다. (한진해운이 망한 것 역시 당시 글로벌 경기 회복을 기대하고 용선을 늘린 것이 원인이었다.)


우리 경제는 크게 나누어서 내수와 수출이다. 특히 수출의 중요성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고 중요하다. 우리 경제는 전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 대단히 특별한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박근혜 전 정부와 현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차이



돌아가서 얘기하면 2015년 6월로서 경제의 한 축인 내수가 한계에 도달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이른바 초이노믹스, 즉 금리인하는 물론이고 부동산 활성화라는 극약처방을 내려야 했으며 기업의 배당확대를 유도해서 시장으로 유통시키는 내수경기 활성화 정책을 단행했다. 


경기활성화 정책은 부동산 상승 등의 부작용을 유발했지만 그 효과는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집권 1년차인 2017년까지 이어졌고 그 해 성장률 3.2%를 찍었다. 그 때가 경기정점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택했으니 이른바 소득주도성장과 주52시간 근무제였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그냥 현상유지라고 보면 되겠다. 올라도 문제, 내려도 문제란 인식이다. 


소주성과 주52시간 정책이 경제에 가져온 효과는 그렇다면 어땠을까? 친여 성향의 사람이라면 긍정적이라 할 것이고 반대 진영이라면 부정적이겠지만 말이다. 



내년 6월 壬午(임오)월이면 답이 나올 것이니



그 정확한 답은 역시 내년 2020년 6월이면 전 국민이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라 본다. 물론 나 호호당은 우리 국운의 흐름으로 볼 때 효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경제침체를 가속화시키는 데 일조를 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책 자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올 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연말까지 잘 해야 2%를 찍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더욱 좋지가 않다. 금년도 우리 경제 성장이 그나마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억지인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 자료가 흥미롭다. 올 해 민간과 정부의 성장률 기여도 비중이 3대7이라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올 성장률이 2%라 할 경우 1.4%는 정부의 재정투입을 통한 것이란 애기가 되니 그렇다.

 

정상적인 경제라면 민간이 7, 정부가 3 정도 되어야 하겠는데 지금은 거꾸로인 것이고 그러니 성장률 자체가 억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해마다 “수퍼 예산”이 편성되고 있는 현실이고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이미 제로 성장 혹은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장하성 실장이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조금만 있으면 나타날 거라고 하다가 결국 그만 두었고 지금은 홍남기 총리가 올해만 넘기면 내년부턴 좋아질 것이란 얘기를 하고 있다. 이는 어떤 가계가 지출에 비해 수입이 부족해지자 조만간 좋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일단 마이너스 통장의 돈을 인출해서 쓰고 그것도 부족해지면 추가로 대출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형국이라 하겠다.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정부의 적자재정이란 것 역시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은 두루 아실 것이니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



참으로 어려운 부동산 문제



박근혜 정부는 당초 경제혁신3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하고자 했다. 어려운 길이지만 장기적으론 옳은 처방이었다 본다. 그러나 강성의 기득권 노조와 좌파 진영의 극렬한 반대로 좌절했고 동시에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내수 경제가 꺾어지자 어쩔 수 없이 경기부양을 위한 땜질 극약처방을 했으니 그게 바로 초이노믹스였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나름 최선을 다해 부동산 부양만큼은 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경제성장률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하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에 재정확대 혹은 국가부채를 늘려 경기를 유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시 장기적으론 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동산 부양만큼은 하지 않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최근 부동산 시세가 상승하고 있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으니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부동산은 오르게 되어있다는 생각과 함께 저금리로 이자부담이 적으니 일단 집을 사두자는 심리가 예전과는 달리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년 2020년 6월 壬午(임오)월이 되면 현 정부의 정책이라든가 우리 경제 전체 상황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날이 지속적으로 기울어가고 있는 우리 국운으로 볼 때 그 답은 부정적일 것이 분명하다. 



내년 6월의 상황을 미리 예상해보면



부정적인 답이 나올 것이라 했지만 그래도 예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나름의 최선과 최악에 대해 말이다. 


소주성과 주52시간 정책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정도로만 그친다면 그게 나름 가장 바림직한 답이라 여긴다. 더 좋지 않은 경우는 내수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레벨 다운되는 것이라 본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는 이미 꺾인 내수에 더하여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내년 6월로서 더 위축되는 상황이 닥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것이다. 


다행히도 반도체 경기가 살아난다면 좋을 것이지만 최근 또 한 가지 새롭게 등장한 악재는 정유업이 역마진으로 고통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 있다. 며칠 전 뉴스에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이 18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것이었다. 정유제품의 수출 또한 우리 수출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극히 어둡기만 우리 경제의 내수전망



솔직히 말해서 우리 경제의 내수 전망은 지극히 어둡고 암울하다. 대학은 정원을 채우지 못하니 줄어들 것이고 교육시장도 덩달아 위축될 것이다. 교육시장이 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건설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건설 경기 역시 전망이 어둡다. 영원히 저금리가 이어지진 않을 것이고 그 결과 부동산 시세가 하락할 경우 장기간에 걸쳐 주택건설은 드문 일이 될 터이니 그렇다. 그렇다고 인프라 건설 투자 역시 달리 기대할 구석이 없다. 참고로 얘기하면 나 호호당은 2022년 외국인 투자가 이탈하면서 저금리 기조가 급작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역시 최근 뉴스에 보니 전기차는 생산인력이 적어서 현대차의 경우 2025년까지 현 제조인력을 최대 40%까지 줄여야 한다는 외부자문위원회의 권고가 있었다고 한다. 


아직 전망에 불과하지만 우리 수출의 최대 스타인 반도체의 경우 집적기술이 절대한계에 도달하고 있어서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유지해가는 것 역시 조만간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풍전등화의 형국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 거센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의 형국이 된 우리 대한민국 경제인 것이다. 새로운 활로를 찾을 때까진 상당한 희생 그리고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고 그러기까지의 시간 또한 만만치 않게 길 것이다. 하지만 달리 길이 없으니 길을 찾아서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다음 주면 12월이다. 디셈버란 단어를 연상할 때마다 각별한 느낌을 갖게 된다.









오늘은 증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최근 한국의 증시 흐름은 정권 교체와 관련이 깊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뭔가 새로운 활력이 돋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남북간에 새로운 흐름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상승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흐름에도 반대 흐름이 생길 것으로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가지고 강의를 해보았다.


고대 춘추시대의 얘기와 구약성서 속의 얘기



“초나라 노양공이 韓(한)나라와 싸웠을 때의 일이다. 아직 전투가 한창인데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에 戈(과)를 손에 들고 해를 향해 휘두르자 허공의 해가 30도 정도 다시 돌아왔다.” 


회남자 남명훈에 있는 글이다. 한창 전투가 승기를 잡아갈 무렵 해가 떨어지려고 하니 그럴 순 없다면서 해를 향해 창을 휘두르자 저물던 해가 거꾸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옛날의 전투는 해가 지면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려웠기에 노양공이 해에게 명령해서 되돌린 다음 승리를 거두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 


글에서 30도라 했는데 원문은 三舍(삼사)이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180도를 움직이는데 그것의 1/6이다. 일조시간이 12시간이라 한다면 1시간 30분 정도 해가 더 길어졌다는 얘기이다. 


말이 되지 않는 故事(고사)이다. 찬스를 잡은 판국에 해가 지면 안 되니 해를 되돌렸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와 사실상 같은 얘기가 구약성서에도 나온다, 특이하다. 


구약성서의 여호수아 10장 12-13절 내용이 그렇다. 기브온 전투 당시의 일이다. 


“여호수아가 여호와에게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 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적들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의 창시자인 모세의 유지를 이어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했던 위대한 지도자이자 장수이다. 그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기브온이란 곳에서 적을 만나 맹렬히 공격하는 도중에 해가 지고 달이 지려고 하자 멈추게 함으로써 적을 섬멸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중국 고서인 회남자 남명훈 속의 노양공에 관한 고사나 구약성서 여호수아記(기) 속의 얘기나 모두 승기를 잡았을 때 해를 멈추게 하고 달을 멈추게 함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니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고대로부터 동서양 문명은 상호 교류해 왔기에



해가 멈추었든 달이 머물렀든 그것과 상관없이 참으로 신기한 것은 어떻게 해서 기본적으로 같은 내용이 고대 중동의 가나안과 그로부터 멀고 먼 중국 양자강 부근에서 생겨났을까 하는 점이다. 구글 어스에 가서 고대 가나안과 중국 양자강의 거리를 재어보니 무려 7,500 킬로미터나 되니 말이다. 


지극정성이면 중국의 경우 天(천)도 감동했다는 것이고 중동에선 여호와도 감동해서 해와 달도 멈추었다는 것이니 이 모티프는 서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거리를 넘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이 되었던 모양이다. 어느 쪽이 오리지널이냐 하는 문제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유리 구두의 신데렐라 스토리도 그렇다. 동서양 함께 널리 퍼져있는 이 이야기는 ‘아라비안나이트’ 즉 천일야화 속에도 있고 우리나라에 와선 ‘콩쥐팥쥐’가 되었는데 가장 오래된 원형은 중국 서남부와 베트남 쪽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흥미로운 모티프를 가진 얘기는 의외로 멀리까지 전달이 되고 그 사이에 또 조금씩 변형되면서 퍼져나간다. 


여호수아기속의 기브온 전투 얘기나 회남자 속의 노양공에 관한 고사도 그랬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하나의 기본 모티프가 어느 쪽으론가 전해졌을 것이다. 


이처럼 노양공과 여호수아의 고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동양과 서양의 사상이나 종교 등을 볼 때 다르다고 하면 많이 다르겠으나 큰 눈으로 보면 사실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교류했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점성술이나 동양의 명리학이나 같은 출발



서양의 점성술이나 동아시아의 사주명리 역시 기본적으로 같은 사고방식에서 생겨났다. 하늘을 보아 그 징조를 미리 알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모두 12進法(진법)에 바탕을 둔다. 


한 해가 기본적으로 열 두 달인 것이고 그것이 하늘의 천문 별자리에 적용이 되어 황도12궁 즉 Zodiac으로 발전해간 것이고 동아시아에선 曆法(역법)의 발전과 함께 12節氣(절기)로 나타났을 뿐이다. 


서양 천문학과 점성술은 고대 수메르 문명으로부터 이어져온 신바빌로니아 제국(또는 칼데아 제국)의 학술과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고 동아시아의 경우엔 기원 전 1500년대 경의 殷(은)제국으로부터 시작해서 춘추전국 시대로 이어진 사상과 학술에 뿌리를 두지만 그 내용을 살펴볼 것 같으면 기본 흐름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중국의 역법은 干支(간지), 즉 갑을병정으로 시작되는 10干(간)과 자축인묘로 이어지는 12支(지)를 결합한 60갑자, 즉 60進法(진법)을 채용했다는 차이가 있다. 



원의 내각이 360도인 이유



바빌로니아 문명에서 발전해온 서구 문명 역시 60진법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干支(간지)로 연결되는 구조가 아닌 탓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서양 기하학에서 원의 내각을 360도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은 그들 역시 60진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원의 內角(내각)이란 말은 사실 꽤나 흥미로운 표현이다. 원은 그 어디에도 각진 구석이 없다. 다시 말해서 원은 모서리가 없기에 각을 잴 수가 없다. 


삼각형은 모서리가 세 개이고 사각형은 네 개, 하지만 원은 기본적으로 각도를 잴 수 있는 모서리가 없다. 이에 원의 내각이란 말은 사실 모순이라 하겠다. (참고로 얘기하면 중국의 옛 수학책에는 원은 모서리가 9,999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미적분 개념과 통한다 하겠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해서 원의 내각이 360도라 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 이는 점성술 그리고 천문학에서 말하는 황도(黃道)에 기준하고 있다. 


黃道(황도)란 하늘에서 해가 한 해 동안 지나는 길이다. 사실 이는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까닭에 지구의 입장에서 볼 때 마치 해가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이에 지구의 공전 일자가 365일과 그 여분이 되기에 원을 이루는 황도의 내각을 서양 사람들은 360도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황도라고 하는 가상의 원을 상정하고 그 원의 내각을 360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기준해서 정사각형의 한 모서리는 각도가 90도가 되는 것이고 정삼각형은 60도가 된다. 角度(각도)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모서리가 존재하지 않는 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동서양의 기본적인 차이



그런데 이 대목에서 아주 흥미로운 얘기가 하나 숨겨져 있으니 동양에선 원의 내각을 365도라고 했다는 점에 반해 서양은 360도라고 했다는 점이다. 동서양 공히 오래 전부터 지구의 태양 공전 주기 즉 1년의 길이가 360일이 아니라 대략 365일과 1/4일인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1년의 길이는 그레고리 평균년으로 볼 때 365.2425일로 되어있다.) 


그렇기에 동양의 경우 1/4일을 버리고 1년을 360일 따라서 원의 내각을 365도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서양은 왜 굳이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360도로 규정했던 것일까 하는 점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서양인들은 만물의 창조주 하느님이 우주와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복잡 지저분하게 만들어놓았을 까닭이 절대 없을 것이란 생각 또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에 그들은 원의 내각을 360도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념적인 서양, 非(비)이념적인 동양



결국 이런 차이는 동양의 경우 창조주에 대한 믿음이 희박했던 탓이고 서양의 경우 바빌로니아 문명 당시부터 위대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런 면에서 보면 동서양이 유사하고 닮은 점이 많으면서도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서양의 경우 이념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고 동양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랬기에 중국은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를 뭉뚱그려서 이른바 儒彿仙(유불선)을 하나로 통합했으며 우리 역시 크게 다르지가 않다. 일본 또한 고유의 종교인 神道(신도)와 외래의 불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神佛習合(신불습합)이 가능했다고 하겠다.

하지만 서양의 경우 같은 기독교의 흐름이라 할 수 있는 구교와 신교 간의 갈등과 투쟁이 실로 대단했다는 점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이념적인가를 알 수 있다 하겠다. 



논리란 것은 기본적으로 서양의 정신



서양인들이 논리적인 측면이 강한 것 역시 그 출발은 이념이 강한 까닭이라 하겠으며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세계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논리적 일관성이나 정치성이 떨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라 하겠다. 그것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렇다는 얘기이다.

 

이와 같은 점을 이해한다면 고대 인디아에서 생겨난 불교가 그쪽 지방에선 난해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교철학으로 발전해간 반면 중국으로 넘어와선 이론불교가 사라지고 선불교와 같이 논리를 넘어서는 불교로 발전해왔는가 하는 점도 이해가 가능하다고 본다. 


서양 문명은 출발부터 이념적이기에 그것이 논리적으로 이어진 것이고 동양 특히 동아시아 세계는 非(비)이념적이었기에 논리적이지 않거나 때론 논리를 초월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아주 오래 전, 아마도 1990년대 중반 무렵? 나 호호당은 국내의 어떤 철학자가 저술한 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동양의 논리는 어디에 있는가?” 였다. 그 질문은 오랫동안 나 호호당의 가슴 속에 자리를 잡아왔다. 오늘의 글은 그 질문에 대해 나 호호당이 오랜 생각을 거쳐 얻어낸 나름의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초겨울 나날이라 최근엔 이런 사색이 잦은데 오늘의 글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안팎 나들이로 지쳐버렸기에



지난 보름 동안 상당히 무리를 했다. 일본에 있는 지인의 초대로 히로시마를 다녀왔고 다시 올 초부터 예정되어 있던 여수를 다녀왔으니 안팎으로 강행군을 했던 것이다. 입술에 물집이 잡히더니 터졌는데 아직 낫지 않았다. 드디어 어젯밤 모처럼 편히 잠에 들어 무려 13시간이나 잤지만 아직 개운하지가 않다. 오늘 하루 더 푹 자야하겠다. 나이가 들면 회복이 늦다. 


30년도 더 된 1986년에 일본을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인상은 여전히 같다, 거리가 깨끗하고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 주택가의 경우 아침저녁으로 집 앞을 쓸고 물로 청소하고 있었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 


여수에 가선 생전 처음으로 홍어 삼합을 먹었다. 오래 전에 한 번 시도해봤으나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단단히 작심한 터라 발효된 홍어의 가스가 목으로 올라와도 참고 먹다 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다음엔 좀 더 편히 먹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수 흥국사를 다시 찾았더니



여수 흥국사를 두 번째 찾아갔는데 늦가을 초겨울이라 바람이 마른 가지들을 스쳐 지나며 내는 소리, 도처에 깔린 낙엽 밟을 때의 서걱대는 소리, 말라가는 개천에서 나는 물소리, 계절의 스산한 정취가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다. 대법당 안의 여러 부처님 들은 물론이고 김총 장군 신위 앞에 문안을 드렸다. 


그런데 이번엔 대법당과 제법 떨어져있는 원통전이 각별하게 다가왔다. 조선 시대 후기의 것으로서 팔작지붕에 요철이 있는 品(품)자 모양의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법당 안에 모셔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앞에 삼배를 올리고 법화경 보문품 안의 “妙音觀世音(묘음관세음) 梵音海潮音(범음해조음) 勝彼世間音(승피세간음)” 구절을 염송하고 나왔다.


 

60개월의 흐름도 중요하기에



이 블로그를 통해 60년에 걸친 운의 흐름에 대해 얘기해오고 있지만 실은 60개월에 걸친 흐름도 있고 그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삶에 있어 좀 더 구체적인 변화로서 나타나는 까닭이다. 


나 호호당의 경우 丁丑(정축)이 입춘 바닥이자 새로운 시작의 起點(기점)이 된다. 그런데 내년 1월이 정축월이 된다. 따라서 내년 1월부터 또 다시 60개월 5년에 걸친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는 셈이다. 



因緣(인연)이란 수동태이자 능동태



어떤 흐름이 만들어질 것이며 또 나타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가 미래를 그려낼 수 없는 것은 미래에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든 일은 사람을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만날 사람을 미리 알 수가 없으니 그렇다. 


하지만 만나게 될 사람을 알지 못한다 해서 미래가 전혀 불투명한 것 또한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면 내 생각과 태도에 따라 만나게 될 사람이 특정 지워지고 한정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만나게 될 인연에 대해 우리가 전혀 受動(수동)적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가! 하지만 어떤 이는 인연이 되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연인이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그냥 스쳐지나간다. 그러니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 스스로의 생각과 태도인 것이다. 따라서 인연을 만나는 것은 내가 정하는 것 즉 능동태가 된다. 


인연을 맺고 짓는 것은 수동적이자 능동적인 것이다.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쉽게 얘기해보면 이렇다. 내가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기에 남쪽 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남쪽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내가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나섰더라면 남쪽에서 만날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것이란 얘기가 된다.

남쪽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지는 사전에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남쪽으로 길을 나섰기에 그 길에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물론 남쪽 길에서도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어떤 일과 遭遇(조우)하게 되겠지만 그 중에 어떤 이는 스쳐 보내고 또 어떤 이와는 인연이 되어 나중엔 함께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일정이 촉박해서 급히 길을 가다가 무리가 겹쳐서 어쩔 수 없이 쉬어 가야할 때도 있다. 그런데 쉬는 도중에 누군가를 만난 것이 오히려 나중에 더 빨리 길을 가게 되는 행운도 있을 것이며 계획대로 빨리 길을 간 것이 거꾸로 잘못되기도 한다. 



지난 60개월을 되돌아보는 10월과 11월



돌아와서 얘기이다. 저번 달이 甲戌(갑술)월이었고 이번 달이 乙亥(을해)월이다. 모두에게 같은 달이지만 실은 저마다 그 의미가 다르다. 왜냐면 저마다 운세의 기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 이 달은 일의 진척이 급진전되는 그야말로 ‘달리는 달’이 될 것이고 나 호호당에겐 이 달이 뭔가 사색하면서 지난 5년간을 되돌아보는 달이기도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2015년 1월부터 시작된 60개월의 흐름이었고 이 흐름은 올 해 12월로서 마무리가 된다. 그렇기에 나로선 지난달과 이번 달은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반추해보는 기간인 것이다. 


이에 그간의 일기장을 들척거린다. (매일 일기를 쓰진 않는다, 그냥 편한 대로 내키는 때로 몇 자 적어 놓는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 때의 심정과 상황이 선연하게 생각이 난다. 일기장의 마력이다.) 


돌이켜보니 2015년 여름에 “당신의 때가 있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만났던 새로운 인연들에 대한 기록도 적혀 있다. 


2016년 2월 9일자 기록을 보니 이렇게 적혀있다. 


-수묵화가 잘 되지 않는다, 때려치울까 말까?

-독일 역사에 대한 침잠,

-날씨가 포근하다, 겨울이 가고 있다.

-아들이 피부 엘러지로 고생! 쯧!

-성욕이란 참 성가신 것! 잊을 만하면 또 찾아든다. 


첫 번째 줄에서 수묵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고민을 그 무렵 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이에 자료를 뒤져보니 2017년 12월부터 수묵화를 그만 두고 드로잉으로 바뀌고 그 이후론 수채화 쪽으로 옮겨왔음을 알았다. 


두 번 째 줄에서 독일사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독일 역사에 대해 한동안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바로 그 무렵이었던 모양이다. 


셋째 줄에서 그 무렵 날씨가 포근했던 모양이고 넷째 줄엔 아들 녀석이 피부 엘러지로 고생한다는 글을 보니 그랬던가 싶다. 최근에 그런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마지막 줄의 글 ‘성욕이란 참 성가신 것’이란 말이 제법 흥미롭다. 성욕은 식욕처럼 매일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건만 그래도 생각이 나곤 하니 지금도 여전히 성가시고 귀찮다. 크게 변한 것이 없다. 


2016년 무렵의 일기들을 살펴보니 그 무렵 돈 걱정을 꽤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생활고’에 약간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니 지인으로부터 500만원을 얻어 썼던 일도 기록되어 있고 또 이런 기록도 있다.

 

2016년 12월 1일의 일이다. “왼쪽 송곳니 씌움! 공짜, 서지훈 고맙다! 밤에 엄마가 난장판, 잠 못 잤다.”


당시 송곳니가 망가져서 새롭게 씌웠는데 내 이빨 주치의가 공짜로 해준 것이다. 이번에 여수 다녀온 것도 그 친구와의 인연이 깊어져서 2012년 가을부터 매년 한 두 차례 다녀오고 있다. 그리고 그 전 날 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화장실 다녀오시다가 쓰러지시는 바람에 조금 다치셨고 그 바람에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젠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구차한 몸도 없고 얼마나 편하실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아내의 고모님이 돌아가셨다. 아흔하고도 한 살, 주무시다가 가셨다고 한다. 영안실 영정 앞에 절을 드리면서 ‘고모님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런 식으로 일기장을 들척이며 지난 60개월의 일들을 살펴보았다. 그간에 무엇을 얻었으며 또 놓친 것은 없는지 생각해본다. 그간에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있었고 진전도 있었다. 내 스스로 놀랄 정도로 깊어졌다. 그리고 올해 초엔 좌골신경통으로 고생을 했고 울적한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열심히 치료해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나에게 있어 금년 10월과 11월은 이처럼 지난 60개월 5년간의 일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보는 때인 것이다. 일종의 마무리 기간이자 새로운 때를 향한 준비기간인 셈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일본 다녀오고 여수 다녀와서 상당히 무리했지만 곧 기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간에 내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에게 감사드리고 그간에 있었던 모든 인연들과 일에 대해서 감사드린다. 다음 주 부터는 의욕을 내어볼 생각이다.

대문에 여수 돌산의 가막만 사진을 올린다. 감상해주시길...




 

운명의 公式(공식)대로 살다간 박홍 총장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타계했다. 주사파 발언으로 한 때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던 그 분이 말이다. 


생년월일을 검색해보니 1941년 2월 27일이다. 그 연배면 음력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辛巳(신사)년 辛卯(신묘)월 辛未(신미)일이 된다. 살아온 행적을 보니 1951 辛卯(신묘)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1981 辛酉(신유)년이 입추였다. 


이에 입추로부터 7.5년이 흐른 1989년이 추분인데 마침 그 해 서강대 총장이 되셨다. 그리고 30년이 흘러 春分(춘분)으로서 돌아가셨다. 자연순환운명학의 公式(공식)대로 살다가셨다. 


이처럼 운명에는 公式(공식)이 주어져있다. 이에 어떤 사람이든 생년월일시만 알 것 같으면 공식에 맞추어 살아가는 그 사람의 프로그램, 즉 운명의 프로그램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用(용)은 운명의 추분으로서 드러난다.



해마다 9월 23일 경에 찾아드는 절기가 秋分(추분)이다. 이 무렵이면 한 해 농사의 성패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처럼 사람 또한 60년에 걸친 운명의 순환에 있어 입춘으로부터 37.5년이 지나면 운명의 秋分(추분)을 맞이하게 되고 그로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떤 ‘쓰임새’ 즉 用途(용도)를 가졌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가령 박홍 총장님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혹은 미션(mission)은 서강대 총장의 일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 번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는 모든 사람은 크고 작고의 차이야 있겠으나 일정한 用(용)이 있는 법이니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려면 그 사람의 운세 순환에 있어 秋分(추분)을 기다려봐야 한다. 


추분으로서 밝혀진 사람의 용도는 추분부터 그 이후 15년에 걸쳐 모든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15년간 그 사람의 행적 또는 그 사람이 한 일이 바로 그 사람이 운명적으로 타고난 혹은 부여받은 용도의 전부인 것이다. 


나 호호당은 한 때 사람의 운세 순환에 있어 추분까지 기다려보지 않고 언제든지 사주만 보고 알아내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그간 무수히 연구해왔지만 결국 알아낼 수 없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 알게 된 것은 그를 미리 알고자 하는 것이 참으로 헛된 시도라는 점이었다. 그냥 헛된 욕심이었다고나 할까. 



추분의 用(용)은 동지로서 끝이 난다.



한 해를 볼 것 같으면 9월 22일 경의 추분으로부터 91일 정도가 지나면 冬至(동지)가 된다. 동지는 해가 가장 짧아지는 때를 말한다. 이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동지로서 낡은 해가 죽고 동시에 어린 새 해가 등장하는 때이다. 


그렇기에 동지로서 그간의 낡은 비전(vision)이 폐기되고 새로운 비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 사람, 미래를 보는 눈이 없는 맹목의 우리들은 막 등장하기 시작한 미래의 비전, 즉 또 다시 60년간을 이끌어갈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인간의 시야는 지극히 좁다! 



동지로서 새로운 비전(vision)이 등장하지만



새 비전이 등장했다는 것은 마치 먼 지평선 저 끝에서 아주 작은 점 하나가 등장한 것과 같아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첫 장면이 생각난다. 붉은 사막 ‘와디람’의 저 먼 끄트머리에서 점 하나가 나타나는 장면, 나중에 보니 낙타를 타고 다가오는 유목민 전사 오마 샤리프였다. 평생 기억하는 장면이다.)


그렇기에 동지로서 등장한 새로운 시대의 비전은 그로부터 또 다시 91일이 흘러 3월 22일 경의 春分(춘분)이 되어야 비로소 눈 좋은 사람들의 시야에 겨우 들어오기 시작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춘분을 두고 낮이 밤보다 길어지는 때 정도로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새 시대의 새 비전이 모든 이의 눈에 확연히 보이는 때는 없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당연히 있다’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바로 해마다 6월 22일 경의 夏至(하지)가 된다. 


하지가 되면 욕심에 눈이 멀어 맹목이 아닌 이상 모든 이의 눈에 뚜렷하게 그 비전의 전모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우리 국운의 하지와 동지, 그 차이!



저번 우리 국운의 하지는 1987년이었다. 그 무렵 우리 경제는 약진을 했고 수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수출흑자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그토록 간절하게 전 국민이 바라던 민주화가 달성되었다. 이에 당시 분위기는 그야말로 전 국민적 축제였다. 


그 무렵 우리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던 새 시대의 비전은 이제 우리도 잘 먹고 윤택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고 아울러 민주화를 통해 맑은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었다. 


그리고 1987년 우리 국운의 하지로부터 30년이 흘러 2017년 우리 대한민국 국운의 冬至(동지)를 맞이했다. 모두의 눈에 우리의 앞날이 캄캄해졌다. 어둠이 너무 깊어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보지 못 해서 그렇지 놀랍게도 새 시대의 비전이 먼 지평선 끝에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1인당 평균 소득은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그건 통계일 뿐 철저한 양극화를 통해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가 너무나 벌어졌다. 나아가서 당장의 가진 것이 없다 해도 열심히 일하면 될 수 있다는 기대나 희망마저도 사실상 헛된 꿈처럼만 여겨졌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헬 조선이라 불렀고 스스로는 ‘이생망’이라면서 좌절했으며 ‘소확행’ 정도가 기껏인 현실이다. 


예전 1987년 국운의 하지 때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고 그와 반대로 국운의 동지인 2017년이 되자 주어진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는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이게 바로 국운의 하지와 동지 간의 극명한 對照(대조)가 아니면 무엇이랴! 



2032년까진 더욱 어두워져만 갈 것이기에



그러니 다시 한 번 얘기하는 바, 2017년으로서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은 캄캄해지고 말았다. 물론 현 정부도 그렇고 다음 정부 역시 국민들에게 뭔가 희망을 주고자 노력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희망은 2017년부터 5년 단위로 더욱 옅어져갈 것이다. 사실 2017년 국운의 동지로서 향후 60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비전이 등장했지만 우리들 눈엔 보이지가 않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새 시대의 희망은 언제쯤이나 되어야만 우리들 시야에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얘기이다. 그건 2032년, 국운의 春分(춘분)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야말로 시름 깊어 하겠으나 눈 밝은 소수의 사람들은 그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얘기했듯이 2032년이 되면 먼 지평선 저 끝에서 등장했던 작은 점 하나가 이젠 제법 커져서 눈 밝은 자들의 시야에 얼추 들어온다는 얘기이다. 그러면 바로 그들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고 이끌어갈 것이다. 


다시 말해서 2032년이 되면 새 시대를 이끌어갈 리더들,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강인한 의지와 능력을 가진 자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지난 주 금요일 8일은 立冬(입동)이었고 그로서 우리는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섰다. 그 날 기온도 영하였으니 입동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하지만 아직은 늦가을 기운이 남아있는 것이고 22일 小雪(소설)을 지나면 비로소 초겨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면 다시 한 번 긴 겨울이 이어져갈 것이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가 국운의 소설이었다. 겨울은 열기가 없는 계절, 즉 무기력한 계절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말 그대로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 우리나라의 계절은 1월 초의 小寒(소한)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 본격 겨울은 지난 달 10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국운의 추위 즉 ‘열기 없음’의 계절은 2027년이나 되어야 간신히 끝이 나고 쌀쌀한 꽃샘추위의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꽃샘추위! 그 또한 얼마나 시리고 매울 것인지! 



예전 같지 않은 탓에



나이는 역시 나이인가 보다, 이번 출타가 상당히 무리한 일정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토요일에 돌아와서 오늘 수요일 밤이 되어서야 겨우 기력을 되찾고 있다. 글을 써보고자 모니터 앞에 앉았어도 기력이 부족해서 여러 차례 포기하고 말았다. 쉰 중반만 해도 이틀 정도 쉬고 나면 거뜬했는데 이젠 힘 좀 썼다 싶으면 일주일은 지나야 정상이 되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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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흔히 목격하는 가족의 운명 이야기



이 이야기는 상담을 하다보면 너무나 흔히 만나게 되는 운명의 이야기이다. 일종의 典型(전형)이라 하겠다. 


어려서 고생을 많이 한 두 총각 처녀가 만나서 결혼을 했다. 학력도 별로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부부는 작은 장사를 시작해서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기도 낳아서 잘 길렀다. 세월이 가서 어느덧 기반도 잡혔고 또 사업이 그런대로 번창하는 바람에 더 큰 곳으로 장사의 터전을 옮겼고 그 결과 더 많은 수입을 올렸다. 아이들 역시 무럭무럭 잘 자랐고 학업 성적도 좋았으며 학교에서 인기도 많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갔던 부부였고 그 슬하의 아이들이었다.

 

세월이 더 흘러 처음 시작할 땐 생각하지 못했던 제법 큰 재산도 일구었다. 아주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먹고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자녀들 또한 건강하고 힘차게 잘 지내는 좋은 시절을 보냈으니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다. 



호시절은 지나고 나야 알게 되는 법



물론 당사자들은 그게 호시절인 것을 모른다, 앞날에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호시절이란 것은 언제나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바깥양반의 사업이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역경이야 언제나 극복해왔다는 생각에서 일종의 승부수를 던졌다. 그간에 저축된 자본을 투입해서 사업장을 더 크게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게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업장에서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바깥양반까지 부상을 당하게 되고 결국 사업 전체를 접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녀들 또한 덩달아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견디지 못하고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을 접은 바깥양반은 원래 농촌 출신인 터라 시골로 가서 살기로 마음을 먹고 토지를 매입했다. 집도 새롭게 짓고 논밭도 사들여서 전원생활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집 짓는 일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듯 리스크가 따르는 법, 새 집은 계속 말썽을 부렸고 농사일도 쉽지가 않았다. 


결국 말썽 많은 전원의 집과 함께 전답을 처분하고 다시 살던 도시로 되돌아왔다. 그러자 바깥양반의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치료비도 적지 않게 들었다. 그런 판국에 아이들 또한 사회진출이 여의치 않았다.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유학도 다녀왔는데 자리를 잘 잡지 못하는 바람에 엄마의 애를 끓이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약간 각색을 하긴 했지만 실화이다. 



2대에 걸친 흥망의 흐름



부부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것은 남편의 60년 운세 순환으로 볼 때 夏至(하지)의 때였고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나서 사업을 접은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冬至(동지)의 일이었다.

 

그런데 자녀들 또한 부부의 운세 흐름과 거의 같이 가고 있었기에 집안 전체가 기울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와 자녀의 운세 흐름을 확인해보면 거의 차이가 없는 경우가 일반적인 까닭이다. (물론 부모와 자녀의 운세 흐름이 정반대인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 경우 간혹 보면 그 부모가 이런 푸념도 한다. 나는 어려서 고생한 탓에 많이 배우지도 못 했고 그저 죽자고 열심히 살아오는 과정에서 내 자식만큼은 최대한 지원해주고 가르쳐서 출발에서부터 남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여건을 만들어주었다고 여기는데 왜 우리 아이들은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걸까요? 하는 얘기이다. 



모든 것이 운의 흐름에 달렸으니



부모와 자녀의 운이 같을 때가 많아서 그런 것인데 열심히 뒷바라지해온 부모로선 자녀에 대해 자칫 원망하거나 한심하게 여길 수가 있으니 이런 경우 정말이지 잘 얘기해주어야 한다. 


한 세대는 대략 30년이다. 그런데 운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흘러가고 있으니 부모가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잘 되었을 경우 그 혜택을 받고 태어난 자녀의 경우 부모와 함께 내리막 운을 타는 경우가 된다. 


가령 부모의 경우 운세 흐름이 나이 40대 중반에 한창이었다면 그 무렵 자녀는 15세 정도가 될 것이다. 이에 부모가 운세 바닥에 도달하는 70대 무렵이 되면 자녀의 나이는 40대가 될 것이고 그 무렵에 함께 바닥을 친다. 


이런 경우는 정말 너무나도 많고 흔하다. 그간 상담해오는 과정에서 무수히 경험했고 목격해왔다. 



부모 자식 간에 오해와 불화가 생길 때도 있으니



런데 이 경우 가족 간에 불화가 발생할 때도 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자녀 특히 아버지의 경우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에 대해 대단히 못 마땅하게 여길 때가 많다는 점이다. 


흔히 하는 말로서 나는 가진 것 하나 없이 서울로 상경해서 악착같이 일해서 그런대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는데 저놈의 아들 녀석은 기껏 밀어 주었더니 악착같은 데는 전혀 없고 그저 헛바람만 들어서 돌아다니다가 결국 취업도 못 하고 빈둥거리고 놀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 모두가 운의 탓이라 하겠다. 아버지는 운이 어려운 때에 태어나 악바리 근성을 길렀고 그 결과 작은 일로 시작해서 나중엔 나름 일가를 이루었던 것이고 그런 도중에 태어난 아들은 부모를 잘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시간이 흘러 모든 일이 막히고 있을 뿐이다. 


아들의 경우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보다 훨씬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부친과 같은 악바리 근성이 있을 리가 없다. 악착같은 정신 자세는 고난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란 점이다. 



다 때가 있는 법이어서



그렇기에 어려서 고생하며 자란 부모와는 달리 자녀의 경우 오히려 30대 무렵부터 고생을 하게 되지만 그를 통해 또 다시 단련이 되고 정신적으로 무장이 되면서 60대 무렵이면 나름의 큰 성취를 이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어떤 이는 중년에 빛을 발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어린 시절 또는 20대 초반에 빛을 발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인생 후반에 들어 더욱 더 융성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기에 인생엔 누구나 자신의 ‘한 때’가 있다. 


크게 보면 나라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우리 대한민국은 1960년대 저 깊은 나락에서 힘차게 올라섰고 악착같이 노력한 결과 국운의 추분인 2002년 무렵부터는 글로벌 속의 코리아로 우뚝 섰다. 


그리고 호시절을 보냈다. 2002년부터 10년간은 정말 호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이 지나가자 모든 방면에서 쇠퇴의 징후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짝을 짓지 못하고 그 바람에 신생아도 줄어들고 있다. 가계부채에 짓눌려 소비는 날로 줄어들고 주력 산업들은 어느덧 정체의 기미가 완연하다. 


이에 다시 2022년이 되면 이젠 쇠퇴의 징후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쇠퇴의 흐름이 본격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다시 깊은 나락으로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편히 자란 아이들이 재능에 상관없이 부진의 시기를 보내고 나면 어느새 또 다시 정신을 차리고 힘차게 자신의 인생을 再建(재건)해 가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이 또 다시 보다 더 탄탄한 기반 위에서 그간의 발전보다 더 큰 성취를 일구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 흐름은 수축과 이완의 연속이기에 바닷가의 밀물과 썰물과도 같은 것이다. 한 번 힘쓰고 나면 한 번 쉬어야 하고 쉬고 나면 다시 힘을 내는 것, 세상의 영원한 이치라 하겠다. 


(나 호호당이 며칠 동안 출타한다. 그 바람에 이번 주엔 글을 올리지 못한다는 점 알려드린다.)


시월 말이면 누구나 감회가 있을 것이니

 

 

새달이 되었다. 오늘 기온은 아침 11도 낮엔 20도. 며칠 뒤 8일 立冬(입동)이 되면 아침 5도, 낮엔 14도, 기온이 한 단계 더 내린다.

 

시월이 지났다. 누구나 감회가 많았으리라. 그런데 시월 말이면 왜 무슨 까닭에서 감회가 많은 걸까? 그 얘기로 시작해보겠다.

 

10월 24일 무렵의 상강이면 한 해 농사가 끝난다. 들판의 벼농사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들의 한 해 생산이 끝이 난다. 12월 결산법인도 사실 시월이면 그 해의 윤곽이 정확하게 드러난다. 정치도 이 무렵이면 한 해 경영이 마감된다.

 

개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 무렵이면 한 해 동안 해왔던 모든 일이 사실상 마감이 된다. 그런데 가령 이런 질문을 해올 수도 있겠다. 나는 공무원 시험을 보는데 시험은 11월에 있으니 아직 결정된 것 아니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답을 하자면 이렇다. 시험은 11월에 있어도 시험에 합격할 것인지 아니면 떨어질 것인지 하는 여부는 이미 시월로서 결정이 나 있다고 말이다. 붙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으면 11월에 시험을 보고 그 결과 합격이 될 것이고 아닐 것 같으면 시험을 보기 전에 이미 본인이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미련이란 것이 있어서 부족한 줄 알면서도 혹시나 붙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서 가슴을 졸일 뿐이다.

 

11월 13일이 수능일이다. 하지만 수능에서 성공할 것인지 여부는 시월 상강으로서 이미 답이 나와 있다는 얘기이다. 놀랍게도 이 세상엔 僥倖(요행) 즉 뜻밖의 행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세상 모든 일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것이 나 호호당의 평소 지론이다.

 

 

시월 말로서 한 해의 생산이 끝나는 까닭에

 

 

그렇기에 시월이 지나면 누구에게나 많은 감회가 일게 된다. 한 해 경영이 그런대로 잘 이루어진 자는 성공의 뿌듯한 감회가 가질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아쉬움과 함께 보다 복잡다단한 생각이 들 것이다. 시월을 보낼 때 우리 가슴 속에 이는 많은 생각들과 그로 인한 여러 복잡한 감정들은 결국 이 무렵으로서 한 해의 成敗(성패)가 결정되는 시기인 까닭이다.

 

그것이 울적한 마음 또는 憂愁(우수)라고 한다면 한 해를 헛되이 보냈다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인 것이고 높아진 하늘 저 멀리 바라보면서 다시 포부를 품게 된다면 한 해의 노력에 대해 만족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로 많은 것들을 기대하고 꿈을 꾸고 구상을 한다. 건강과 금전 재산, 출세, 연애, 결혼, 사업 성공, 취업, 승진 등등 단순한 것도 같지만 실은 우리 모두 많은 것들을 희망하고 욕망한다.

 

그런 모든 것들이 시월 말이면 누구나 저절로 한 해를 평가하게 되기에 이 무렵이면 감회가 색다른 것이고 유난한 것이다.

시월 말이면 이 세상 모든 것의 한 해 경영이 성패의 윤곽을 드러내는 때.

 

그렇기에 우리의 최우선 관심사이던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도 시월까지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올 해는 헛되이 보낸 셈이다. 게다가 작년 3월부터 시작된 협상이기에 금년 9월에서 11월 초까지의 두 달 간은 결정적 고비였는데 아무런 것이 없으니 올 해만 성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 협상 전체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 역시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가 올 해 정치는 완전히 실패했다. 거의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관계도 그렇고 경제도 어려웠으니 이제 서서히 레임덕이 시작되고 있다. 내년부터 통치에 많은 어려움이 생각날 것이다.

 

 

국운의 상강이었던 2006년에 대한 기억

 

 

우리 국운의 순환, 60년에 걸친 순환에 있어 상강은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 무렵이었다.

 

 당시 기억에 남는 일로서 노무현 정부가 특별히 잘 못 한 것도 없었는데 2006년 7월의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레임덕이 진행 중이었던 까닭도 있었겠으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국운의 상강이었기에 이제 더 이상의 성장과 발전이 없으리란 것을 전 유권자들이 감지했던 것이고 그에 따라 부와 성공을 향한 치열한 레이스도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었던 까닭이라 본다.

 

사실상 그 때로서 양극화는 고착화되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도 극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그로 인한 우울증 또는 울분이 대통령과 집권당을 향한 원망으로 쏠렸던 것이라 본다.

 

 

2006년 경제성장률은 놀랍게도 5.3%였건만

 

 

2006년의 경제성장률은 놀랍게도 무려 5.3%였다. 올 해 성장률이 2% 미만인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대단히 높은 성장률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7%대 성장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유권자들은 크게 불만을 가졌던 것이다.

 

우리 경제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잠시 강력한 회복세를 보였다가 그 이후 2011년부터 본격적인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정부의 재정투입과 저금리를 통한 소비진작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올 해 2% 달성이 불가능해지고 내년 또한 정부가 대대적인 재정투입을 예고하고 있음에도 역시 2%대 성장률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사실 2017년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시위 역시 그 바탕에는 불황과 취업난 그리고 양극화로 인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을 감지한 젊은 층의 반발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이리하여 국민들은 현 정권에 대해 다시 한 번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소득주도성장정책은 효과가 없었거나 역효과였던 것 같고 공정과 정의 등에 대한 기대도 이번 조국 사태로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대통령은 그저 예산증대가 중요하다고 강변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지내고 보니 2006-2007년만 해도 이른바 ‘봄날’이었던 것이니 참으로 격세지감마저 든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 시월이 지나 겨울이 오면 추울 것이란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쌀쌀해지다가 어느 날 한파가 찾아들고 그로서 엄동의 겨울이 이어진다는 것을.

 

하지만 국운에도 그와 같은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렇기에 2006년 지방선거를 통해 울적한 심사를 표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상황은 점차 더 어려워져만 갔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은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현실에 적응한다는 점이다. 이젠 우리 경제가 한 때 펄펄 약동했다는 사실마저 망각해버린 것 같다.

 

 

그럭저럭 이어지진 않을 것 같아서

 

 

올 해 10월은 한 해로만 보면 추운 계절의 시작인 것이니 이는 또 다시 내년 4월이면 따뜻한 계절로 되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국운의 60년 순환으로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2019년 10월 甲戌(갑술)월은 60년 순환에 있어 한 해로 치면 양력 1월 초의 小寒(소한)인 까닭이다.

 

해마다 1월 5일 경에 맞이하는 소한이다. 그야말로 한 겨울의 때이다. 향후 5년이 지나야만 비로소 국운의 쌀쌀한 초봄이 시작된다. 그러니 앞으로의 5년은 모든 것이 삭아들고 식어드는 세월이 이어질 것이다. 해마다 나오는 경제전망 역시 늘 지나고 나면 그보다 못한 실적을 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냥 힘이 없어져가는 흐름이 아니라 지금으로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위기국면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 호호당 눈에 우리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간당간당 위태롭게만 보인다. 2007년 이후 국운의 생산이 끝이 나고 지금은 그때의 힘으로 이어갈 뿐인데 이 또한 마냥 언제까지고 그럭저럭 이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2008년 말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다시 돌아오자. 시월이 지났다, 2019년의 시월이.

 

앞의 생각들을 하다 보니 이번 겨울은 그냥 여느 때의 겨울이 아니라 더 추울 것만 같다. 오래 전에, 그러니까 프리스타일 코너 말고 그 이전에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기고했던 2008년 11월 17일자의 글 “다섯 개의 겨울 설산”에 장차 우리가 넘어야 할 국운의 겨울 설산이 다섯이라 말했는데 다음과 같다. (김태규 명리학 코너 361회 글이다.)

 

- 미국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디플레이션

- 국내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경제 불황

- 중국 경제의 거품 소멸에 따른 문제

- 김정일 이후 북한의 붕괴 등 그에 따른 통일비용

- 우리 산업의 노후화와 수출 경쟁력 저하

 

10년도 더 흐른 현 시점에 와서 봐도 저 다섯 개의 설산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그 이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찍어낸 통화와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돈의 홍수를 이뤘지만 오히려 더 많은 문제점들을 파생시켰을 뿐이다. 가령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거 말이다. 게다가 우리 주변의 환경은 더 악화되고 있다.

 

각오를 다지고 힘을 내어야 할 때란 생각이 든다.

 

(참고로 11월 중에 홍콩 시위 사태는 그간의 흐름으로 볼 때 한 단계 더 악화되는 일이 발생할 것 같다는 얘기이고 그로 인한 악영향이 우리에게도 적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