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 나들이로 지쳐버렸기에



지난 보름 동안 상당히 무리를 했다. 일본에 있는 지인의 초대로 히로시마를 다녀왔고 다시 올 초부터 예정되어 있던 여수를 다녀왔으니 안팎으로 강행군을 했던 것이다. 입술에 물집이 잡히더니 터졌는데 아직 낫지 않았다. 드디어 어젯밤 모처럼 편히 잠에 들어 무려 13시간이나 잤지만 아직 개운하지가 않다. 오늘 하루 더 푹 자야하겠다. 나이가 들면 회복이 늦다. 


30년도 더 된 1986년에 일본을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인상은 여전히 같다, 거리가 깨끗하고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 주택가의 경우 아침저녁으로 집 앞을 쓸고 물로 청소하고 있었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 


여수에 가선 생전 처음으로 홍어 삼합을 먹었다. 오래 전에 한 번 시도해봤으나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단단히 작심한 터라 발효된 홍어의 가스가 목으로 올라와도 참고 먹다 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다음엔 좀 더 편히 먹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수 흥국사를 다시 찾았더니



여수 흥국사를 두 번째 찾아갔는데 늦가을 초겨울이라 바람이 마른 가지들을 스쳐 지나며 내는 소리, 도처에 깔린 낙엽 밟을 때의 서걱대는 소리, 말라가는 개천에서 나는 물소리, 계절의 스산한 정취가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다. 대법당 안의 여러 부처님 들은 물론이고 김총 장군 신위 앞에 문안을 드렸다. 


그런데 이번엔 대법당과 제법 떨어져있는 원통전이 각별하게 다가왔다. 조선 시대 후기의 것으로서 팔작지붕에 요철이 있는 品(품)자 모양의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법당 안에 모셔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앞에 삼배를 올리고 법화경 보문품 안의 “妙音觀世音(묘음관세음) 梵音海潮音(범음해조음) 勝彼世間音(승피세간음)” 구절을 염송하고 나왔다.


 

60개월의 흐름도 중요하기에



이 블로그를 통해 60년에 걸친 운의 흐름에 대해 얘기해오고 있지만 실은 60개월에 걸친 흐름도 있고 그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삶에 있어 좀 더 구체적인 변화로서 나타나는 까닭이다. 


나 호호당의 경우 丁丑(정축)이 입춘 바닥이자 새로운 시작의 起點(기점)이 된다. 그런데 내년 1월이 정축월이 된다. 따라서 내년 1월부터 또 다시 60개월 5년에 걸친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는 셈이다. 



因緣(인연)이란 수동태이자 능동태



어떤 흐름이 만들어질 것이며 또 나타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가 미래를 그려낼 수 없는 것은 미래에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든 일은 사람을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만날 사람을 미리 알 수가 없으니 그렇다. 


하지만 만나게 될 사람을 알지 못한다 해서 미래가 전혀 불투명한 것 또한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면 내 생각과 태도에 따라 만나게 될 사람이 특정 지워지고 한정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만나게 될 인연에 대해 우리가 전혀 受動(수동)적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가! 하지만 어떤 이는 인연이 되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연인이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그냥 스쳐지나간다. 그러니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 스스로의 생각과 태도인 것이다. 따라서 인연을 만나는 것은 내가 정하는 것 즉 능동태가 된다. 


인연을 맺고 짓는 것은 수동적이자 능동적인 것이다.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쉽게 얘기해보면 이렇다. 내가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기에 남쪽 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남쪽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내가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나섰더라면 남쪽에서 만날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것이란 얘기가 된다.

남쪽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지는 사전에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남쪽으로 길을 나섰기에 그 길에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물론 남쪽 길에서도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어떤 일과 遭遇(조우)하게 되겠지만 그 중에 어떤 이는 스쳐 보내고 또 어떤 이와는 인연이 되어 나중엔 함께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일정이 촉박해서 급히 길을 가다가 무리가 겹쳐서 어쩔 수 없이 쉬어 가야할 때도 있다. 그런데 쉬는 도중에 누군가를 만난 것이 오히려 나중에 더 빨리 길을 가게 되는 행운도 있을 것이며 계획대로 빨리 길을 간 것이 거꾸로 잘못되기도 한다. 



지난 60개월을 되돌아보는 10월과 11월



돌아와서 얘기이다. 저번 달이 甲戌(갑술)월이었고 이번 달이 乙亥(을해)월이다. 모두에게 같은 달이지만 실은 저마다 그 의미가 다르다. 왜냐면 저마다 운세의 기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 이 달은 일의 진척이 급진전되는 그야말로 ‘달리는 달’이 될 것이고 나 호호당에겐 이 달이 뭔가 사색하면서 지난 5년간을 되돌아보는 달이기도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2015년 1월부터 시작된 60개월의 흐름이었고 이 흐름은 올 해 12월로서 마무리가 된다. 그렇기에 나로선 지난달과 이번 달은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반추해보는 기간인 것이다. 


이에 그간의 일기장을 들척거린다. (매일 일기를 쓰진 않는다, 그냥 편한 대로 내키는 때로 몇 자 적어 놓는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 때의 심정과 상황이 선연하게 생각이 난다. 일기장의 마력이다.) 


돌이켜보니 2015년 여름에 “당신의 때가 있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만났던 새로운 인연들에 대한 기록도 적혀 있다. 


2016년 2월 9일자 기록을 보니 이렇게 적혀있다. 


-수묵화가 잘 되지 않는다, 때려치울까 말까?

-독일 역사에 대한 침잠,

-날씨가 포근하다, 겨울이 가고 있다.

-아들이 피부 엘러지로 고생! 쯧!

-성욕이란 참 성가신 것! 잊을 만하면 또 찾아든다. 


첫 번째 줄에서 수묵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고민을 그 무렵 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이에 자료를 뒤져보니 2017년 12월부터 수묵화를 그만 두고 드로잉으로 바뀌고 그 이후론 수채화 쪽으로 옮겨왔음을 알았다. 


두 번 째 줄에서 독일사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독일 역사에 대해 한동안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바로 그 무렵이었던 모양이다. 


셋째 줄에서 그 무렵 날씨가 포근했던 모양이고 넷째 줄엔 아들 녀석이 피부 엘러지로 고생한다는 글을 보니 그랬던가 싶다. 최근에 그런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마지막 줄의 글 ‘성욕이란 참 성가신 것’이란 말이 제법 흥미롭다. 성욕은 식욕처럼 매일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건만 그래도 생각이 나곤 하니 지금도 여전히 성가시고 귀찮다. 크게 변한 것이 없다. 


2016년 무렵의 일기들을 살펴보니 그 무렵 돈 걱정을 꽤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생활고’에 약간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니 지인으로부터 500만원을 얻어 썼던 일도 기록되어 있고 또 이런 기록도 있다.

 

2016년 12월 1일의 일이다. “왼쪽 송곳니 씌움! 공짜, 서지훈 고맙다! 밤에 엄마가 난장판, 잠 못 잤다.”


당시 송곳니가 망가져서 새롭게 씌웠는데 내 이빨 주치의가 공짜로 해준 것이다. 이번에 여수 다녀온 것도 그 친구와의 인연이 깊어져서 2012년 가을부터 매년 한 두 차례 다녀오고 있다. 그리고 그 전 날 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화장실 다녀오시다가 쓰러지시는 바람에 조금 다치셨고 그 바람에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젠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구차한 몸도 없고 얼마나 편하실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아내의 고모님이 돌아가셨다. 아흔하고도 한 살, 주무시다가 가셨다고 한다. 영안실 영정 앞에 절을 드리면서 ‘고모님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런 식으로 일기장을 들척이며 지난 60개월의 일들을 살펴보았다. 그간에 무엇을 얻었으며 또 놓친 것은 없는지 생각해본다. 그간에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있었고 진전도 있었다. 내 스스로 놀랄 정도로 깊어졌다. 그리고 올해 초엔 좌골신경통으로 고생을 했고 울적한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열심히 치료해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나에게 있어 금년 10월과 11월은 이처럼 지난 60개월 5년간의 일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보는 때인 것이다. 일종의 마무리 기간이자 새로운 때를 향한 준비기간인 셈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일본 다녀오고 여수 다녀와서 상당히 무리했지만 곧 기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간에 내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에게 감사드리고 그간에 있었던 모든 인연들과 일에 대해서 감사드린다. 다음 주 부터는 의욕을 내어볼 생각이다.

대문에 여수 돌산의 가막만 사진을 올린다. 감상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