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내리는 아련한 情景(정경)
12월 1일, 겨울비가 내린다. 작업실 창 아래 목련 公(공)이 비에 젖고 있다. 오랜 친구이기에 그냥 목련이 아니라 목련 공이라고 존대해준다. 물기에 번들거리는 붉고 누런 갈색의 시든 이파리들과 검은 가지가 지나간 계절에 대한 아련함과 서운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곧 大雪(대설)이다, 오는 7일이다. 그러니 비는 어쩌면 올 해로선 마지막일 것도 같다.
大雪(대설)의 의미
大雪(대설)은 만물이 일제히 철수하는 때이다. 해가 빨리 지고 어둠이 일찍 찾아오며 나무는 말라버린 잎을 내려놓고 땅속으로 침잠해가고 풀벌레들은 죽거나 아니면 땅속으로 파고들었으며 여름 철새들은 떠난 지 오래이다. 땅은 비워지고 치워지며 그 위로 큰 눈 大雪(대설)이 내려 덮으면 세상은 흰 색의 모노톤으로 변한다. 그저 군데군데 지난 일들의 흔적과 자취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大雪(대설)은 따라서 한 해 동안 地上(지상)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과 그것의 역사를 無(무)로 되돌려 놓는 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로 되돌아가진 않는다, 살아있는 생명들은 이제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거나 꿈속에서 길고 긴 여행길에 나선다. 假死(가사)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리하면 대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곳 근처의 따뜻한 곳을 찾아서 겨울을 나거나 철수하는 때란 점, 아울러 땅속에서 동면하면서 긴 꿈을 꾸는 때란 점이다.
대설이 되면 떠나는 내면으로의 여행
현실의 길은 아니지만 꿈속에서 길을 가게 되니 이를 두고 나 호호당은 ‘겨울 여행’이란 부른다. 겨울 여행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서 그 속의 길들을 밟아가는 여행이다.
우리 속 즉 우리의 의식 속에도 실은 넓은 공간이 있고 스스로도 몰랐던 어쩌면 잊고 지냈던 많은 구석들이 있다. 그 땅들을 밟아보고 미처 몰랐던 구석까지 찾아나서는 여행이 겨울 여행이다.
그렇기에 어떤 이가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서 대설, 즉 입춘 바닥이자 시작점으로부터 50년이 흐르면 그 사람은 겉으론 멀쩡하게 일을 하고 직장을 다니지만 실은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현실의 일은 하던 대로 하고 있지만 그 사람의 생각과 영혼은 자신의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는 얘기이다. 이는 눈을 뜬 상태에서 꿈을 꾼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현실의 사물을 보고 인지하면서도 사실 그 사람의 망막에는 다른 그림, 현실 사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머릿속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그 사람의 행동에는 서서히 현실과의 괴리가 생겨난다. 눈을 뜬 채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대설 운을 맞이하면 사람은 이상주의자가 된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憧憬(동경)의 念(념)이 의사결정에 있어 더 우선적이 되기도 한다. 가보고 싶지만 정작 갈 수 없었던 곳에 대한 羨望(선망), 과거에 대한 추억과 悔恨(회한), 때론 현실에선 구현하기 어려운 욕구가 생겨난다. 따라서 사람이 운세 순환에 있어 대설이 되면 이상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理想(이상)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생각 가능한 범위에서 가장 완전한 상태”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실로 너무나도 다양한 마찰 요인들이 존재하고 작용하기에 계획을 실행에 옮겨보면 처음의 생각보다 너무나도 미흡하고 불만족스런 결과로 그칠 때가 많다.
하지만 상상의 공간 속에선 그런 사소한 그리고 예기치 못한 마찰 요인들이 없다. 앞이 트여 있으면 그 앞으로 달려 나가면 되는 것이 이상이고 현실에선 트였다 싶은 앞의 공간이 막상 달려 나가다 보면 길이 울퉁불퉁하기도 하고 또 생각하지 않았던 장애물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이다.
理想(이상)이 갖는 문제점
理想(이상)이란 그 자체로서 선악이 없다. 다만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아직 부족한 것이 많거나 때론 시기상조일 때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할 경우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가 대설의 시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경우 그 시도는 실패하거나 未完(미완)으로 마무리될 때가 많다. 大雪(대설)이 되면 일제히 철수하는 때라고 앞에서 말했는데 여기에서 길을 강행하는 것은 길이 눈에 덮이고 추위로 인해 기력이 부족해서 도중에 그만 포기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60년 순환에 있어 대설이거나 대설을 지낸 자가 하려는 행동이나 계획을 들어보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일 때가 많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감이 든다.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 꿈이 현실인 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운세에 있어 대설이거나 대설을 지낸 자의 경우 대부분 그간에 많은 것을 이미 성취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가령 재산을 이제 나름 모았다거나 사업에서 성공했다거나 또는 명성을 얻었다거나 등등의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성공과 성취는 언제나 십분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다. 현실의 세상은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반대되는 상대가 있어서 성공과 성취 또한 어느 정도는 당초 목표한 것과 비교할 때 아무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走火入魔(주화입마)의 위험성
그런데 대설이 되어 꿈을 꾸다 보면 그간의 경험과 힘을 바탕으로 이제야말로 제대로 나름의 작품을 완성해볼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겨나게 되니 그 또한 자연스런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실은 우리가 흔히 ‘魔(마)가 낀다’고 표현하는 상태인 것이다. 즉 走火入魔(주화입마)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설 운에 야심차게 일을 시작해서 그간의 업적과 성취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심할 경우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대설 운에 잘못된 결정과 행동에 나섰다가 잘못된 경우를 열거하자면 그야말로 이룰 헤아릴 수 없이 허다하다.
사례들
몇 가지 예만 들어본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영웅이자 거인이었던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대설 운을 지내고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크게 낭패를 보고 수명까지 단축했다. 그간의 경륜으로 볼 때 경제인이 정치인을 해도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나라를 예로 들면 이웃 일본의 경우 과거 1935년부터 대설 운이었는데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그게 1941년의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져서 패망하고 말았다. 당시 일본 지도층들이 국운의 분위기에 휩쓸려 집단적 迷夢(미몽)에 빠졌던 것이다.
중국 역시 시진핑 주석이 들어서면서 이른바 중국몽을 말하기 시작했다. 과거 중화제국의 위세와 영광을 되찾겠다는 것인데 그 또한 문자 그대로 몽이다. 중국 또한 국운의 대설을 지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설 운을 맞이했으면 새롭게 야심찬 계획이나 사업에 손을 데면 실패는 기정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2014년으로서 국운의 대설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 번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 또한 평등과 공정, 정의를 주장하고 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물론 다 좋은 말이고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주장들이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고 말해도 지나친 얘긴 아닐 것이다. 우리의 국운이 대설을 지나 올 해로서 小寒(소한)이고 조만간 참으로 힘든 형국이 닥쳐올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2014년 이후 우리 모두가 집단적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누굴 탓하기 보다는 이 또한 국운의 흐름이라 하겠다.
驚蟄(경칩)이 되면 꿈에서 깨어날 것이니
하지만 영원히 언제까지고 꿈을 꾸고 있을 순만은 없을 것이고 당연히 때가 되면 우리 모두 꿈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는 언제가 되는 것일까? 그 답은 2029년이다. 지금부터 정확하게 10년 뒤가 된다.
2029년은 국운의 驚蟄(경칩)이 되니 겨울잠에서 깨어나 또 다시 척박한 현실로 되돌아오는 때가 된다. 놀랄 驚(경)에 칩거할 蟄(경칩)이니 꿈에서 깨어나 보니 그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어려워져 있는 참담한 현실을 깨닫게 되니 어쩔 수 없이 그간의 칩거를 끝내고 다시 현실에 발을 딛고 선다는 것이 경칩인 까닭이다.
제대로 겨울여행을 하는 방법
이제 겨울 여행을 제대로 하는 법에 대해 알려드리고 글을 마무리하겠다.
그간의 성취에 다소 아쉽더라도 일단은 자족할 것, 더 이상 그간에 이루지 못한 것들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것, 큰 목표가 있고 달성 가능하다 여겨지더라도 실은 그것을 이루기엔 부족한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이제부터 목표 구현이 아니라 그를 위한 준비 작업에 나설 것, 방면의 선생과 高手(고수)와 高人(고인)들을 찾아서 배우러 다닐 것.
이것이 겨울 여행을 제대로 하는 법이다. 이를 두고 나 호호당은 이 산의 선생을 찾아서 올라가도 보고 저 산의 고인을 찾아가 보는 발걸음, 즉 일러서 “이산 저산 행”이라 부른다.
오늘의 글은 다소 추상적이다. 따라서 뭔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잘 읽어보시면 소득이 적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어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면서 저녁에 시작한 글을 오늘 오후에 마무리했다.
'자연순환운명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생 순탄한 삶은 없기에 (0) | 2019.12.08 |
---|---|
우리 모두 삶의 帝國主義者(제국주의자)들인 것이니 (0) | 2019.12.06 |
착각 그리고 회상 (0) | 2019.12.01 |
풍전등화의 대한민국 경제 (0) | 2019.11.28 |
동서양의 닮은 점 그리고 차이점 (0) | 2019.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