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公式(공식)대로 살다간 박홍 총장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타계했다. 주사파 발언으로 한 때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던 그 분이 말이다. 


생년월일을 검색해보니 1941년 2월 27일이다. 그 연배면 음력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辛巳(신사)년 辛卯(신묘)월 辛未(신미)일이 된다. 살아온 행적을 보니 1951 辛卯(신묘)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1981 辛酉(신유)년이 입추였다. 


이에 입추로부터 7.5년이 흐른 1989년이 추분인데 마침 그 해 서강대 총장이 되셨다. 그리고 30년이 흘러 春分(춘분)으로서 돌아가셨다. 자연순환운명학의 公式(공식)대로 살다가셨다. 


이처럼 운명에는 公式(공식)이 주어져있다. 이에 어떤 사람이든 생년월일시만 알 것 같으면 공식에 맞추어 살아가는 그 사람의 프로그램, 즉 운명의 프로그램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用(용)은 운명의 추분으로서 드러난다.



해마다 9월 23일 경에 찾아드는 절기가 秋分(추분)이다. 이 무렵이면 한 해 농사의 성패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처럼 사람 또한 60년에 걸친 운명의 순환에 있어 입춘으로부터 37.5년이 지나면 운명의 秋分(추분)을 맞이하게 되고 그로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떤 ‘쓰임새’ 즉 用途(용도)를 가졌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가령 박홍 총장님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혹은 미션(mission)은 서강대 총장의 일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 번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는 모든 사람은 크고 작고의 차이야 있겠으나 일정한 用(용)이 있는 법이니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려면 그 사람의 운세 순환에 있어 秋分(추분)을 기다려봐야 한다. 


추분으로서 밝혀진 사람의 용도는 추분부터 그 이후 15년에 걸쳐 모든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15년간 그 사람의 행적 또는 그 사람이 한 일이 바로 그 사람이 운명적으로 타고난 혹은 부여받은 용도의 전부인 것이다. 


나 호호당은 한 때 사람의 운세 순환에 있어 추분까지 기다려보지 않고 언제든지 사주만 보고 알아내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그간 무수히 연구해왔지만 결국 알아낼 수 없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 알게 된 것은 그를 미리 알고자 하는 것이 참으로 헛된 시도라는 점이었다. 그냥 헛된 욕심이었다고나 할까. 



추분의 用(용)은 동지로서 끝이 난다.



한 해를 볼 것 같으면 9월 22일 경의 추분으로부터 91일 정도가 지나면 冬至(동지)가 된다. 동지는 해가 가장 짧아지는 때를 말한다. 이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동지로서 낡은 해가 죽고 동시에 어린 새 해가 등장하는 때이다. 


그렇기에 동지로서 그간의 낡은 비전(vision)이 폐기되고 새로운 비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 사람, 미래를 보는 눈이 없는 맹목의 우리들은 막 등장하기 시작한 미래의 비전, 즉 또 다시 60년간을 이끌어갈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인간의 시야는 지극히 좁다! 



동지로서 새로운 비전(vision)이 등장하지만



새 비전이 등장했다는 것은 마치 먼 지평선 저 끝에서 아주 작은 점 하나가 등장한 것과 같아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첫 장면이 생각난다. 붉은 사막 ‘와디람’의 저 먼 끄트머리에서 점 하나가 나타나는 장면, 나중에 보니 낙타를 타고 다가오는 유목민 전사 오마 샤리프였다. 평생 기억하는 장면이다.)


그렇기에 동지로서 등장한 새로운 시대의 비전은 그로부터 또 다시 91일이 흘러 3월 22일 경의 春分(춘분)이 되어야 비로소 눈 좋은 사람들의 시야에 겨우 들어오기 시작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춘분을 두고 낮이 밤보다 길어지는 때 정도로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새 시대의 새 비전이 모든 이의 눈에 확연히 보이는 때는 없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당연히 있다’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바로 해마다 6월 22일 경의 夏至(하지)가 된다. 


하지가 되면 욕심에 눈이 멀어 맹목이 아닌 이상 모든 이의 눈에 뚜렷하게 그 비전의 전모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우리 국운의 하지와 동지, 그 차이!



저번 우리 국운의 하지는 1987년이었다. 그 무렵 우리 경제는 약진을 했고 수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수출흑자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그토록 간절하게 전 국민이 바라던 민주화가 달성되었다. 이에 당시 분위기는 그야말로 전 국민적 축제였다. 


그 무렵 우리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던 새 시대의 비전은 이제 우리도 잘 먹고 윤택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고 아울러 민주화를 통해 맑은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었다. 


그리고 1987년 우리 국운의 하지로부터 30년이 흘러 2017년 우리 대한민국 국운의 冬至(동지)를 맞이했다. 모두의 눈에 우리의 앞날이 캄캄해졌다. 어둠이 너무 깊어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보지 못 해서 그렇지 놀랍게도 새 시대의 비전이 먼 지평선 끝에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1인당 평균 소득은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그건 통계일 뿐 철저한 양극화를 통해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가 너무나 벌어졌다. 나아가서 당장의 가진 것이 없다 해도 열심히 일하면 될 수 있다는 기대나 희망마저도 사실상 헛된 꿈처럼만 여겨졌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헬 조선이라 불렀고 스스로는 ‘이생망’이라면서 좌절했으며 ‘소확행’ 정도가 기껏인 현실이다. 


예전 1987년 국운의 하지 때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고 그와 반대로 국운의 동지인 2017년이 되자 주어진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는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이게 바로 국운의 하지와 동지 간의 극명한 對照(대조)가 아니면 무엇이랴! 



2032년까진 더욱 어두워져만 갈 것이기에



그러니 다시 한 번 얘기하는 바, 2017년으로서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은 캄캄해지고 말았다. 물론 현 정부도 그렇고 다음 정부 역시 국민들에게 뭔가 희망을 주고자 노력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희망은 2017년부터 5년 단위로 더욱 옅어져갈 것이다. 사실 2017년 국운의 동지로서 향후 60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비전이 등장했지만 우리들 눈엔 보이지가 않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새 시대의 희망은 언제쯤이나 되어야만 우리들 시야에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얘기이다. 그건 2032년, 국운의 春分(춘분)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야말로 시름 깊어 하겠으나 눈 밝은 소수의 사람들은 그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얘기했듯이 2032년이 되면 먼 지평선 저 끝에서 등장했던 작은 점 하나가 이젠 제법 커져서 눈 밝은 자들의 시야에 얼추 들어온다는 얘기이다. 그러면 바로 그들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고 이끌어갈 것이다. 


다시 말해서 2032년이 되면 새 시대를 이끌어갈 리더들,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강인한 의지와 능력을 가진 자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지난 주 금요일 8일은 立冬(입동)이었고 그로서 우리는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섰다. 그 날 기온도 영하였으니 입동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하지만 아직은 늦가을 기운이 남아있는 것이고 22일 小雪(소설)을 지나면 비로소 초겨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면 다시 한 번 긴 겨울이 이어져갈 것이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가 국운의 소설이었다. 겨울은 열기가 없는 계절, 즉 무기력한 계절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말 그대로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 우리나라의 계절은 1월 초의 小寒(소한)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 본격 겨울은 지난 달 10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국운의 추위 즉 ‘열기 없음’의 계절은 2027년이나 되어야 간신히 끝이 나고 쌀쌀한 꽃샘추위의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꽃샘추위! 그 또한 얼마나 시리고 매울 것인지! 



예전 같지 않은 탓에



나이는 역시 나이인가 보다, 이번 출타가 상당히 무리한 일정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토요일에 돌아와서 오늘 수요일 밤이 되어서야 겨우 기력을 되찾고 있다. 글을 써보고자 모니터 앞에 앉았어도 기력이 부족해서 여러 차례 포기하고 말았다. 쉰 중반만 해도 이틀 정도 쉬고 나면 거뜬했는데 이젠 힘 좀 썼다 싶으면 일주일은 지나야 정상이 되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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