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춘추시대의 얘기와 구약성서 속의 얘기



“초나라 노양공이 韓(한)나라와 싸웠을 때의 일이다. 아직 전투가 한창인데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에 戈(과)를 손에 들고 해를 향해 휘두르자 허공의 해가 30도 정도 다시 돌아왔다.” 


회남자 남명훈에 있는 글이다. 한창 전투가 승기를 잡아갈 무렵 해가 떨어지려고 하니 그럴 순 없다면서 해를 향해 창을 휘두르자 저물던 해가 거꾸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옛날의 전투는 해가 지면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려웠기에 노양공이 해에게 명령해서 되돌린 다음 승리를 거두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 


글에서 30도라 했는데 원문은 三舍(삼사)이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180도를 움직이는데 그것의 1/6이다. 일조시간이 12시간이라 한다면 1시간 30분 정도 해가 더 길어졌다는 얘기이다. 


말이 되지 않는 故事(고사)이다. 찬스를 잡은 판국에 해가 지면 안 되니 해를 되돌렸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와 사실상 같은 얘기가 구약성서에도 나온다, 특이하다. 


구약성서의 여호수아 10장 12-13절 내용이 그렇다. 기브온 전투 당시의 일이다. 


“여호수아가 여호와에게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 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적들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의 창시자인 모세의 유지를 이어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했던 위대한 지도자이자 장수이다. 그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기브온이란 곳에서 적을 만나 맹렬히 공격하는 도중에 해가 지고 달이 지려고 하자 멈추게 함으로써 적을 섬멸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중국 고서인 회남자 남명훈 속의 노양공에 관한 고사나 구약성서 여호수아記(기) 속의 얘기나 모두 승기를 잡았을 때 해를 멈추게 하고 달을 멈추게 함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니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고대로부터 동서양 문명은 상호 교류해 왔기에



해가 멈추었든 달이 머물렀든 그것과 상관없이 참으로 신기한 것은 어떻게 해서 기본적으로 같은 내용이 고대 중동의 가나안과 그로부터 멀고 먼 중국 양자강 부근에서 생겨났을까 하는 점이다. 구글 어스에 가서 고대 가나안과 중국 양자강의 거리를 재어보니 무려 7,500 킬로미터나 되니 말이다. 


지극정성이면 중국의 경우 天(천)도 감동했다는 것이고 중동에선 여호와도 감동해서 해와 달도 멈추었다는 것이니 이 모티프는 서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거리를 넘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이 되었던 모양이다. 어느 쪽이 오리지널이냐 하는 문제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유리 구두의 신데렐라 스토리도 그렇다. 동서양 함께 널리 퍼져있는 이 이야기는 ‘아라비안나이트’ 즉 천일야화 속에도 있고 우리나라에 와선 ‘콩쥐팥쥐’가 되었는데 가장 오래된 원형은 중국 서남부와 베트남 쪽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흥미로운 모티프를 가진 얘기는 의외로 멀리까지 전달이 되고 그 사이에 또 조금씩 변형되면서 퍼져나간다. 


여호수아기속의 기브온 전투 얘기나 회남자 속의 노양공에 관한 고사도 그랬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하나의 기본 모티프가 어느 쪽으론가 전해졌을 것이다. 


이처럼 노양공과 여호수아의 고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동양과 서양의 사상이나 종교 등을 볼 때 다르다고 하면 많이 다르겠으나 큰 눈으로 보면 사실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교류했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점성술이나 동양의 명리학이나 같은 출발



서양의 점성술이나 동아시아의 사주명리 역시 기본적으로 같은 사고방식에서 생겨났다. 하늘을 보아 그 징조를 미리 알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모두 12進法(진법)에 바탕을 둔다. 


한 해가 기본적으로 열 두 달인 것이고 그것이 하늘의 천문 별자리에 적용이 되어 황도12궁 즉 Zodiac으로 발전해간 것이고 동아시아에선 曆法(역법)의 발전과 함께 12節氣(절기)로 나타났을 뿐이다. 


서양 천문학과 점성술은 고대 수메르 문명으로부터 이어져온 신바빌로니아 제국(또는 칼데아 제국)의 학술과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고 동아시아의 경우엔 기원 전 1500년대 경의 殷(은)제국으로부터 시작해서 춘추전국 시대로 이어진 사상과 학술에 뿌리를 두지만 그 내용을 살펴볼 것 같으면 기본 흐름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중국의 역법은 干支(간지), 즉 갑을병정으로 시작되는 10干(간)과 자축인묘로 이어지는 12支(지)를 결합한 60갑자, 즉 60進法(진법)을 채용했다는 차이가 있다. 



원의 내각이 360도인 이유



바빌로니아 문명에서 발전해온 서구 문명 역시 60진법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干支(간지)로 연결되는 구조가 아닌 탓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서양 기하학에서 원의 내각을 360도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은 그들 역시 60진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원의 內角(내각)이란 말은 사실 꽤나 흥미로운 표현이다. 원은 그 어디에도 각진 구석이 없다. 다시 말해서 원은 모서리가 없기에 각을 잴 수가 없다. 


삼각형은 모서리가 세 개이고 사각형은 네 개, 하지만 원은 기본적으로 각도를 잴 수 있는 모서리가 없다. 이에 원의 내각이란 말은 사실 모순이라 하겠다. (참고로 얘기하면 중국의 옛 수학책에는 원은 모서리가 9,999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미적분 개념과 통한다 하겠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해서 원의 내각이 360도라 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 이는 점성술 그리고 천문학에서 말하는 황도(黃道)에 기준하고 있다. 


黃道(황도)란 하늘에서 해가 한 해 동안 지나는 길이다. 사실 이는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까닭에 지구의 입장에서 볼 때 마치 해가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이에 지구의 공전 일자가 365일과 그 여분이 되기에 원을 이루는 황도의 내각을 서양 사람들은 360도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황도라고 하는 가상의 원을 상정하고 그 원의 내각을 360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기준해서 정사각형의 한 모서리는 각도가 90도가 되는 것이고 정삼각형은 60도가 된다. 角度(각도)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모서리가 존재하지 않는 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동서양의 기본적인 차이



그런데 이 대목에서 아주 흥미로운 얘기가 하나 숨겨져 있으니 동양에선 원의 내각을 365도라고 했다는 점에 반해 서양은 360도라고 했다는 점이다. 동서양 공히 오래 전부터 지구의 태양 공전 주기 즉 1년의 길이가 360일이 아니라 대략 365일과 1/4일인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1년의 길이는 그레고리 평균년으로 볼 때 365.2425일로 되어있다.) 


그렇기에 동양의 경우 1/4일을 버리고 1년을 360일 따라서 원의 내각을 365도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서양은 왜 굳이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360도로 규정했던 것일까 하는 점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서양인들은 만물의 창조주 하느님이 우주와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복잡 지저분하게 만들어놓았을 까닭이 절대 없을 것이란 생각 또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에 그들은 원의 내각을 360도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념적인 서양, 非(비)이념적인 동양



결국 이런 차이는 동양의 경우 창조주에 대한 믿음이 희박했던 탓이고 서양의 경우 바빌로니아 문명 당시부터 위대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런 면에서 보면 동서양이 유사하고 닮은 점이 많으면서도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서양의 경우 이념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고 동양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랬기에 중국은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를 뭉뚱그려서 이른바 儒彿仙(유불선)을 하나로 통합했으며 우리 역시 크게 다르지가 않다. 일본 또한 고유의 종교인 神道(신도)와 외래의 불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神佛習合(신불습합)이 가능했다고 하겠다.

하지만 서양의 경우 같은 기독교의 흐름이라 할 수 있는 구교와 신교 간의 갈등과 투쟁이 실로 대단했다는 점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이념적인가를 알 수 있다 하겠다. 



논리란 것은 기본적으로 서양의 정신



서양인들이 논리적인 측면이 강한 것 역시 그 출발은 이념이 강한 까닭이라 하겠으며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세계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논리적 일관성이나 정치성이 떨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라 하겠다. 그것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렇다는 얘기이다.

 

이와 같은 점을 이해한다면 고대 인디아에서 생겨난 불교가 그쪽 지방에선 난해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교철학으로 발전해간 반면 중국으로 넘어와선 이론불교가 사라지고 선불교와 같이 논리를 넘어서는 불교로 발전해왔는가 하는 점도 이해가 가능하다고 본다. 


서양 문명은 출발부터 이념적이기에 그것이 논리적으로 이어진 것이고 동양 특히 동아시아 세계는 非(비)이념적이었기에 논리적이지 않거나 때론 논리를 초월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아주 오래 전, 아마도 1990년대 중반 무렵? 나 호호당은 국내의 어떤 철학자가 저술한 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동양의 논리는 어디에 있는가?” 였다. 그 질문은 오랫동안 나 호호당의 가슴 속에 자리를 잡아왔다. 오늘의 글은 그 질문에 대해 나 호호당이 오랜 생각을 거쳐 얻어낸 나름의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초겨울 나날이라 최근엔 이런 사색이 잦은데 오늘의 글 역시 그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