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침체의 강력한 신호가 나타났으니

 

 

지난 주 글로벌 증시는 “R의 공포”가 엄습한다고 난리가 났다. R은 경기침체를 뜻하는 Recession, 미국 시간으로 지난 주 수요일 오전 한 때 미국 채권시장에서 일시적이긴 하지만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가 1.623%를 나타내면서 2년 만기 국채의 1.634%를 깨고 내려가는 장단기 금리역전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경기침체가 올 것을 나타내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이다. 과거 사례로 볼 때 특히 미국 국채 2년물과 10년물의 금리가 역전될 경우 거의 예외 없이 경기침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라는 말처럼 오늘날 모든 돈은 미국의 뉴욕 금융시장으로 흘러가고 흘러나온다. 금융시장에도 여러 형태가 있지만 뭐니 해도 가장 대표적인 시장은 미국 국채시장인데 바로 그 시장에서 장단기 금리역전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장기 채권의 금리는 단기 채권보다 높아야 정상인데 그게 거꾸로 된 것이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10년 만기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비정산적으로 많다는 것을 뜻한다. 수요가 많다 보니 수익률 즉 금리도 낮아진다.

 

이는 10년 후를 바라볼 때 마땅히 돈을 굴릴 곳이 적어졌다는 말이 된다. 돈을 굴릴 곳, 즉 투자할 곳이 없다 보니 그럴 바엔 가장 안전하고 현 시점에선 그래도 수익률이 좋은 미국 국채에 돈을 넣어두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전체적으로 투자가 줄면 그게 바로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그러니 이번에도 거의 글로벌 경기침체가 닥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원인에서 그렇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국채 시장에서 나타난 현상이지만 그게 미국만의 사정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자금의 동향이 미국 국채에 집약되기 때문이다.

 

 

일본이 중국보다 미국 국채를 더 많이 보유하게 되었으니

 

 

그런데 이번 금리 역전 현상과 관련해서 묘한 일이 한 가지 더 발생했다. 금년 6월로서 일본이 중국보다 미국 국채를 더 많이 보유하게 된 일이다. 일본은 1조1220억 달러였고 중국은 1조1120억 달러로서 일본보다 적어진 것이다.

 

그간 미국이 중국을 심하게 압박할 경우 중국은 보유 중인 막대한 액수의 미국 국채를 매도함으로써 미국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지만 이번 일로 알 수 있듯이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게다가 미국의 국채 수익률이 영국이나 독일, 일본 등에 비해 높은 편이어서 국가의 자금을 관리해야 할 입장에서 본다면 더더욱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그런 까닭에 중국 금융의 고위직 인사 역시도 현실적으로 미국 국채 말고 달리 투자할 곳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글로벌 침체는 중국에서 시작될 것 같으니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나면 평균적으로 22개월 후에 경기침체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에 22개월 후를 계산해보면 내후년 즉 2021년 6월경이 된다. 辛丑(신축)년 甲午(갑오)월이란 얘기인데 이 무렵에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그 震源(진원)은 단연코 중국이 아닐까 싶다.

 

바로 그 무렵 정도에 중국의 국운이 아주 흉흉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격화된 홍콩 시위가 더더욱 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어쩌면 홍콩 문제와 맞물려서 중국발 글로벌 침체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얼마 전에도 얘기했지만 2021년은 중국이 홍콩을 돌려받은 1997년 7월 1일로부터 정확하게 24년이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60년 순환에 있어 24년이란 기간은 사물의 큰 흐름을 살필 때 그 성패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때가 된다.

 

이미 중국의 홍콩 흡수는 최근의 일로 볼 때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해졌으며 그 결과는 2021년이면 알 수 있다는 말을 얼마 전 글에서 했다.

 

홍콩은 중계무역의 기지일 뿐 아니라 전 세계 금융의 흐름이 아시아와 중국으로 연결되는 핵심 중계 시장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와 함께 양적완화가 실시되는 과정에서 무지막지한 액수의 잉여 달러가 싱가포르와 홍콩의 은행들을 통해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 만일 홍콩 문제가 악화될 겨웅 그 자금이 역으로 흐르게 될 경우 그건 중국의 금융 붕괴가 될 것이다.

 

 

홍콩을 특별 대우해온 미국

 

 

오늘날 홍콩은 두 가지 수익원, 즉 밥줄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금융을 포함한 중계 기지의 역할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원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중국 당국이 의도적으로 밀어주는 지원, 즉 관광객의 유입을 통한 수입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중요한 변수가 하나 있다는 점이다. 홍콩의 자금 중계나 물류 중계의 기능은 사실상 미국이 그간 홍콩에게 특별한 지위를 인정해오고 있기에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면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5년 전인 1992년에 미국은 별도의 입법 조치를 통해 홍콩을 정치, 사법, 교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 지역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른 특별 우대 혜택을 부여해왔다. (U.S.-Hong Kong Policy Act)

 

그런데 이번 홍콩 당국이 추진했다가 일단 연기된 범죄인 인도법안이 추진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미국이 홍콩 특별법에 대해 수정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수정 법안의 주된 내용은 해마다 홍콩의 자치 수준을 점검하고 기준에 미달된 경우 그간 홍콩에 부여해온 특별대우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의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가 취소될 경우 중국 본토와 동일한 관세를 부여하게 되고 아울러 전략적 물자의 수출을 제한하는 등의 다양한 제재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송환법 역시 강행될 경우 취소 요건이 된다.

 

그렇기에 중국은 그간에 홍콩을 길들이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서 관광객을 지속적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수익은 홍콩이 중계기지 역할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하면 그야말로 ‘껌값’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특별대우가 취소될 가능성이 높아지기만 해도

 

 

만일 홍콩에 대해 미국이 특별대우를 취소할 경우 홍콩은 그저 그런 펑범한 지방 도시로 전락된다. 관광과 도박으로 먹고 사는 마카오보다 더 못한 처지로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그간 중국은 홍콩의 특수한 위치를 활용해서 무역창구로 활용해왔으며 게다가 필요한 해외자금 또한 홍콩을 통해 조달해왔다는 점에서 미국의 취소가 있을 경우 중국 또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잃는 결과가 된다. 엄청난 국가적 손실.

 

만일 미국의 홍콩 특별대우 취소가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일 경우 홍콩에 영업장을 가진 수많은 은행들은 싱가포르로 옮겨가려 할 것이고 덩달아 그간 중국 본토로 중계해준 막대한 달러 대출, 거의 수조 달러의 자금 회수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중국 금융위기를 무조건 촉발하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이 홍콩을 특별대우해준 배경은 그것이 미국 금융계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들은 홍콩 은행들을 통해 자금을 중계하면서 벌어들이고 있는 중간 마진이나 수수료가 실로 막대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얘기하면 미국 금융계는 현재 미국 민주당 쪽에 서 있다. 그렇기에 특별대우 취소 역시 미국이 쉽게 결정할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크지 않다고 하겠다.

 

무역이든 금융이든 거래가 줄어들거나 막히면 어차피 쌍방 모두 피해가 발생한다. (이번 한일 간의 문제도 마찬가지, 장기화될 경우 모두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문제는 어느 쪽의 손실이 더 크냐 하는 점이다.

 

 

영국(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同床異夢(동상이몽)

 

 

이에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장기적으로 중국을 이 시점에서 꺾어놓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의견일치를 볼 경우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점이다. (미국은 실제로 가끔 여야가 초당적 의견일치를 보기도 한다.)

 

홍콩 반환 시에 중국은 50년간 홍콩의 특별한 지위, 즉 기존의 홍콩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을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일국양제가 그것이다. 하지만 넘겨주는 영국(미국 포함)과 넘겨받는 중국은 서로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영국은 홍콩에 개방형 민주주의 시스템을 심어놓았기에 50년에 걸쳐 결국 중국의 공산당 독재체제를 개방형 자유민주주의로 이끌어 내는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고 반대로 중국은 50년에 걸쳐 홍콩 주민들에게 떡을 던져주면서 길들이면 충분히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로 흡수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얘기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홍콩 시위는 의도를 떠나서 어느 쪽 판단이 옳았는지를 가늠하는 前哨戰(전초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번 미국 채권시장에서 발생한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가 줄어들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홍콩 시위와 함께 금리 역전 현상을 함께 해석할 경우 어쩌면 그동안 세계의 자금을 빨아들이던 최대의 흡수처이자 투자처였던 중국이 이제 더 이상 그 역할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흐름이 이번 홍콩 시위를 통해 더 악화될 경우 미중 무역전쟁에 이은 새로운 격전장으로서 중국에게 보다 더 치명적인 뇌관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하겠다.

 

내년 트럼프 재선 여부에 많은 것들이 달려있다는 얘기

 

 

이 모든 상황은 결국 내년에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본다.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결국 미국 유권자들이 중국을 꺾어놓자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제야말로 글로벌 판국이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만들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미구에 돌이켜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지난 세월은 참으로 봄날이었음을 알게 되리라. 우리 주변을 보면 편한 곳이 없으니 말이다.






오늘은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국가도 인간처럼 60년의 국운 주기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누누히 해왔었다. 국가도 인간처럼 30년 상승을 하면 30년 하강을 하는데, 이러한 규칙을 중국에 맞추어 이야기 해보려는 것이다. (물론 국가는 인간보다 수명도 길며, 또한 그에 맞추어 더 긴 시간의 주기가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 강의해 보았다.

중국은 홍콩을 소화하지 못한다.

 

 

일국양제, 나라는 하나이지만 제도는 두 가지인 방식이다. 1980년대 초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이 제시한 중국 통일의 대원칙이다. 전쟁하지 않고도 대만이나 홍콩, 마카오 등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특별한 제도이다. 현재 홍콩이나 마카오는 이미 이런 식으로 중국에 흡수되었지만 사실 일국양제는 통일하기 쉽지 않은 대만을 내다보고 채택한 정책이다.

 

그런데 이번 홍콩 사태를 보면 결국 중국이 홍콩을 소하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 호호당이 발견한 자연순환의 이치에 따르면 중국의 홍콩 흡수는 이미 실패를 예고하고 있다.

 

 

2021년, 중국 경제 파탄

 

 

뿐만 아니라 얼마 가지 않아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후년인 2021년에 가서 홍콩 문제와 함께 중국 경제의 파탄이 시작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이 홍콩을 소화하지 못한 나머지 그 몸통인 중국 전체가 파탄에 이를 수 있을 거란 얘기이다.

 

그럴 경우 중국 내부에 政變(정변)이 발생할 가능성과 함께 2018년 3월 주석 직의 임기제한을 철폐한 뒤 사실상의 황제 자리에 오른 시진핑의 안위도 무사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2021년에 말이다.

 

 

기발한 아이디어 일국양제로 일단 삼키기는 했으나

 

 

홍콩은 아편전쟁의 패배로 인해 1842년 영국에 영구적으로 넘어갔다. 영국 영토가 된 셈이다. 하지만 제2차 대전 이후 글로벌 지도 세력으로 등장한 미국은 유럽의 식민지 제국들을 해체해버렸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영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홍콩의 반환 협상을 시작했다.

 

이때 등소평이 내세운 나름 기발한 방식이 바로 일국양제였고 그 바람에 1984년 12월에 가서 홍콩반환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로 인해 홍콩은 비교적 순조롭게 중국으로 인도되었으니 1997년 7월 1일이었다.

 

묘한 것은 홍콩을 되찾은 일에 대해 중국 사람들은 환호했으나 정작 홍콩 주민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다.

 

중국 공산당은 일국양제의 원칙에 따라 홍콩이 반환되더라도 경제와 정치 제도는 50년 동안 유지될 것을 약속하면서 홍콩 주민들을 안심시켰으나 공산당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홍콩 주민들은 그 이후 1997년 반환 직전까지 무려 총 50 만명 이상이나 홍콩을 떠났으며 떠나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수가 미국을 포함해서 다른 나라의 영주권이나 싱가포르로 도망갈 수 있는 자격을 취득했다.

 

이런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담고 있는 영화가 바로 반환 직후 상영된 홍콩 영화 “메이드 인 홍콩”이다. 나 호호당은 그 영화를 예전에 보았는데 마치 내일이 없다는 식의 대단히 음울한 분위기의 영화였다.

 

하지만 정작 홍콩은 반환된 이후 그런대로 평온을 유지했고 중국 중앙정부의 일국양제 약속도 비교적 잘 지켜지는 듯 했다.

 

 

2014년 우산혁명, 최초의 이상징후

 

 

하지만 뭐든 시간이 말해주는 법.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기간으로 해서 순환하고 있기에 지켜봐야 하는데 일차적으로 좋지 못한 징후가 나타났으니 2014년의 “우산혁명”이 그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홍콩의 최고위 행정직인 행정장관직 선출에 있어 후보제한 조치를 취하자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시위였다. 당시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가 있어 판단하기엔 다소 시기상조라 보았다.

 

기껏해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시위라는 점에서 일과성일 수 있다는 판단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1984년 12월의 홍콩 반환이 결정된 이후 30년만에 생겨난 대규모 시위라는 점이었다.

 

그간에 중국 공산당은 관광객을 대거 홍콩으로 보냄으로써 홍콩 주민들의 밥줄을 중국 쪽으로 얽어놓았기에 시간이 지나면 결국 홍콩은 무난하게 중국이 소화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이상주의에 기울기 쉬운 대학생들의 시위 정도는 평가 절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일은 1984년 반환 결정 이후 30년 만에 대규모 시위가 등장했다는 점이었다. 이는 예사 일이 아니었다.

 

30년은 60년 사이클에 있어 돌아오는 시점이다. 즉 반대 흐름이 나타나는 시점이 된다. 그런 면에서 우산 혁명이 장차의 징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이번 시위야말로 진짜 심각한 일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 시위는 학생들만이 아니라 시민들도 대거 가세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올해는 2019년이니 1997년 반환 시점으로부터 22년이 된다.

 

60년 흐름에서 22.5년은 대단히 중요한 자리이지만 숨어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일반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 기간은 장차의 흐름을 명확하게 전망할 수 있는 숨어있는 급소인 까닭이다. 1997년 7월 1일자로 반환되었으니 내년 1월 1일이 되면 정확하게 22.5년이 된다.

 

그런데 최근 시위 양상은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다. 공항 점거 사태가 그렇고 중국 군대가 들어올 것이란 소문도 흉흉하다. 그렇게 되면 제2의 천안문 사태가 터질 수도 있다.

 

 

체면을 구긴 시진핑

 

 

이와 관련해서 얼마 전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베이다이허 회의가 있었다. 베이다이허 한자로 北戴河(북대하)는 베이징에서 정동쪽으로 250 킬로미터 떨어진 보하이만의 해변 휴양지이다. 중국 공산당과 고위급 인사들의 여름 별장이 들어선 일종의 특별 구역이다.

 

1954년 마오쩌둥 당시 주석이 처음 이곳에서 공산당 비밀회의를 연 이후 해마다 여름이면 피서를 겸한 비밀회의가 열리고 있다. 공식회의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모든 중대 결정은 바로 이 기간 중에 이루어진다.

 

공식 자료는 발표되지 않지만 주변을 통해 흘러나오는 회의 내용이야말로 중국의 권력이동과 정책의 향배를 알 수 있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른바 밀실행정 밀실정치의 대명사라 하겠다.

 

최근 북한 김정은이 중국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데 첫 번째 방문 당시 시진핑과 함께 베이다이허의 해변을 산책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곳의 해변을 두 사람이 산책했다는 것은 두 사람 간에 밀담을 나누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정은아, 걱정 마, 쫄지 마, 내가 있잖아.

 

그런가 하면 최근 트럼프가 중국을 환율조작국가로 지정했을 때 마침 베이다이허 회의 중이었다는 사실. 트럼프가 고의적으로 시진핑의 얼굴을 깎아 내렸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중국 어용언론들은 일제히 분개하고 있다.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시진핑은 꽤나 궁지에 몰렸던 모양이다. 홍콩 문제와 함께 미중 무역전쟁 등의 난제로 인해 시진핑의 국수주의 드라이브와 지도능력에 대해 공산당 상무위원들로부터 상당히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추측을 가능케 하는 대목은 이번 회의를 주재하기로 되어있던 시진핑의 핵심 책사인 “왕후닝”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왕후닝은 중국공산당의 최고 결정기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에서 서열 5위의 인물이란 점이다. (시진핑을 빼면 서열 제4위가 된다.) 작년 2018년 3월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을 베이징 역에서 직접 영접할 정도로 시진핑의 腹心(복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비밀회의를 주재할 사람이 빠졌다는 것은 여간한 일이 아니다. 아마도 회의를 주재하게 되면 나머지 시진핑을 견제하는 상무위원들로부터 상당한 질책을 받게 될 것을 염려했던 모양이다. 이는 시진핑의 현재 처지가 그렇게 편하지 않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 취임부터 문제였는데

 

 

사실 중국은 2013년 시진핑이 처음 주석직을 맡았을 당시부터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중국 경제는 다운 사이드로 들어섰던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 대한민국 경제가 2012년부터 사실상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한 것과 같다.

 

이에 시진핑은 무리하게 돈을 풀어 억지로 성장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취임 이후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 바람에 억지 건설이 다반사이고 수요도 없는데 공장과 플랜트를 만들고 있는 중국이다. 우리말로 하면 타당성 조사를 무시하고 전철을 놓고 철도를 깔고 비행장을 지어대는 셈이다. (하기야 우리도 이번 정부 들어 경제 부양을 위해 타당성 조사 면제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홍콩에서 저런 강렬한 반발이 격화되고 있다. 이건 결국 중국이 홍콩을 돌려받은 1997년으로부터 24년이 흐른 2021년에 가면 실패로 끝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의 홍콩 삼키기는 무리였다고 말이다.

 

 

대만 통일은 물 건너가고 있으니

 

 

홍콩이 저 모양이니 대만 흡수는 사실상 물 건너가고 있다. 대만 내의 친중파(대륙파)도 최근 급격히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일국양제, 모순된 것을 조화하려니 그게 너무 어렵다.

 

시쳇말로 양질의 식민지 통치를 받던 선진 홍콩을 후진의 중국이 소화하기엔 무리였다는 얘기이다. 홍콩이 전 중국을 뒤흔들어댄다면 그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이른바 Wag the dog 현상의 또 다른 예가 될 것이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토요일 저녁 강남역 근처의 강좌를 마친 뒤 작업실로 걸어왔다.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불고 있었지만 시원한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熱風(열풍)이었다. 하지만 공기의 빠른 움직임이 내 마음 속 뭔가를 건들었던 모양인지 문득 콧노래가 나왔다. ‘썸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 웨이업 하이-’ 하는 노래.

 

Somewhere Over the Rainbow. 이 노래는 1939년, 17세의 주디 갈런드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을 맡아서 불렀던 노래이다. 중성적인 저음의 絶唱(절창)을 타고난 천재 가수이자 인기 절정의 배우였다. 그녀의 딸인 라이자 미넬리 역시 엄마를 닮아서 뛰어난 배우이자 가수이다.

 

 

불행을 예고하고 있었던 노래

 

 

일찍 죽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이에 작업실에 들어오자 그녀의 생애와 운명에 대해 좀 더 알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저 유명한 노래의 가사부터 어떤 불행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개 너머 저 먼 곳 어딘가”에 하는 가사 말이다. 저런 노래를 부른 이는 대개 불행한 삶으로 끝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이는 둘 중에 하나가 된다. 무리한 꿈을 쫓아다니다가 망가지든가 아니면 현실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무너지게 된다. 그렇기에 그 개인의 삶은 비극으로 끝이 난다.

 

 

주디 갈런드의 비극적인 삶

 

 

알아보니 1922년에 태어나 1969년에 죽었다. 47년의 생애, 요절한 셈이다.

 

1922년 6월 10일 아침 6시 출생이니 壬戌(임술)년 丙午(병오)월 己酉(기유)일 丁卯(정묘)시가 된다. 생시까지 정확하게 알았으니 60년에 걸친 입춘 입추를 프로필을 보지 않아도 금방 알아낼 수 있다.

 

놀랍게도 그녀의 입추는 생후 7세 때인 1929 己巳(기사)년이고 입춘 바닥은 1959년 己亥(기해)년, 37세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10년 후인 1969년 6월 22일에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일곱 살에 입추가 되면 흔히 말하는 영재나 천재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그녀는 생후 2년 반 만에 무대에 서기 시작해서 빠른 속도로 스타로 성장해갔다.

 

너무나도 알려진 노래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1939년에 상영된 “오즈의 마법사”에 들어있는 노래이다. 따라서 일생을 통해 가장 화려한 寒露(한로)의 운에 불러서 빅히트를 칠 수 있었다. 17세에 인생의 절정에 오른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성공한 탓에

 

 

하지만 겨우 17세의 나이에 인생 최고의 시기를 맞이했다는 것은 길게 보면 전혀 좋은 일이 아니다. 그 뒤론 내리막을 간다고 생각해보라, 그게 좋은 일이겠는가. 다시 말해서 47세가 되면 인생의 밑바닥을 기고 있을 것인데 그녀의 경우 그 무렵 세상을 떴다.

 

유튜브에 가서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입력하면 금방 영화에 등장하고 있는 17세의 그녀를 만나볼 수 있다. 여성으론 최저음역대인 콘트랄토, 약간 사내아이 같은 중성적인 저음이다. 그런 魔性(마성)의 목소리로 미국 대중들을 까무러치게 만들었던 그녀였으니 그 절정의 모습이 아직도 영화 클립에 담겨져 전해오고 있다.

 

누구나 사람은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으로부터 40년이 흐른 寒露(한로)의 때가 되면 그 사람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 발산된다.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그 매력은 입춘으로부터 37.5년이 흐른 때로부터 10년간 이어진다. 한 해로 치면 9월 22일 경의 추분에서 11월 22일 경의 소설까지가 한 해를 통해 가장 풍요로운 때인 것과 같다.

 

예컨대 판타지 영화 시리즈 “해리 포터”에 나온 대니얼 래드클리프 역시 바로 그런 운세에 발탁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푹 죽어지내고 있다. 2014년이 입춘 바닥이기에 마치 기가 다 빨렸다는 느낌이다.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 역시 마찬가지. 우리나라의 경우 추분인 2002년 4월부터 2012년 3월 말까지의 10년이 가장 화려하고 융성한 때였다. 그렇기에 다시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22년 4월이 되면 어느새 초라해져버린 대한민국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처럼 세월 따라 변해가는 법이고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

 

 

너무 빠른 성공은 파멸의 씨앗이어서

 

 

다시 돌아와서 얘기이다. 주디 갈런드는 아카데미상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상을 받았고 덩달아 엄청난 돈을 벌었다. 하지만 관리가 되질 않았다. 돈과 권력을 쥔 그녀에게 어린 나이라고 해서 감히 충고할 순 없었을 것이고 또 충고를 했다 해도 귀담아 들을 리 만무했을 것이다.

 

돈을 물 쓰듯 낭비하다 보니 나중에 수십 만 달러의 세금 체납으로 궁지에 몰렸고 그 사이에 네 번의 이혼을 겪어야 했고 마지막 결혼했던 해에 숨졌다. 겨우 47세의 나이였다. 절정의 화려함과 엉망진창의 사생활로 뒤범벅이 된 삶을 살았던 주디 갈런드였던 것이다.

 

얼마 전 유튜브 동영상 강좌를 통해 얘기했듯, 사람은 죽어도 그 사람의 운세는 그대로 유지가 된다. 그녀는 1969년에 죽었지만 1997년 또 다시 추분의 운이 되자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았으며 1999년 한로의 운에는 미국 영화 협회에서 그녀를 미국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대 여성 스타 중 한 명으로 지정했다. “오즈의 마법사”가 상영된 1939년으로부터 정확하게 60년이 흐른 때였다.

 

이처럼 사람은 죽어도 운은 그대로 이어져간다. 신기한 일이다.

 

 

노래 따라 가는 가수의 삶

 

 

우리 가요계에 전해져오는 말이 있으니 가수의 삶은 노래 따라 간다는 말이 그것이다. 슬픈 노래라든가 悲運(비운)의 노래를 불러 히트를 치면 가수의 삶도 슬프게 되거나 비운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이는 빈말이 아니다. 묘하게도 그렇다.

 

그녀의 노랫말을 음미해보면 그녀의 미래가 불행 또는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 이제 가사의 결말 부분을 살펴보자.

 

Somewhere over the rainbow, blue birds fly,

무지개 저 너머 어딘가에 파랑새는 날아다니고,

 

Birds fly over the rainbow,

새들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데

 

Why then oh why can't I?

그런데 왜 나는 그럴 수가 없는 걸까?

 

If happy little blue birds fly

행복한 작은 파랑새는

 

beyond the rainbow

무지개 너머로 날아갈 수 있는데

 

why, oh why can't I?

아니 왜 나는 그럴 수가 없는 걸까?

 

이 정도면 충분히 감이 올 법도 하다. 파랑새는 행복의 상징이자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저 너머의 새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 이룰 수 없는 것을 꿈꾸는 것은 불행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런 노래를 부른 주디 갈런드 역시 훗날의 불행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렌 카펜터, 세상의 정점에서 추락한 가수

 

 

이와 유사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예전에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던 남매 혼성 듀오가 있었으니 카펜터즈(Carpenters)가 그들이다. 오빠와 누이가 팀을 이루어서 크게 성공했다. 그 중에 누이인 보컬을 맡았던 카렌 카펜터의 경우 1950년생인데 1983년, 3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운세를 살펴보면 1956년, 6세 시절에 입추의 운이었고 1986년 36세로서 입춘 바닥이었다. 1965년에 데뷔를 했고 1969년에 오빠와 함께 팀을 만들어 활동했다. 그녀는 연예인이다 보니 체중 조절을 해야 했는데 그게 어려웠다. 이에 결국 거식증, 뭔가 먹으면 구토를 하게 되는 신경성 질환에 시달리다가 굶어 죽었다.

 

그녀가 부른 노래 중에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노래가 있다. 탑 오브 더 월드(Top of the world)가 그 노래이다. 쎠쳐 필링 커밍 오버 미,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말이다.

 

가사를 보면 이 노래 역시 불행을 암시하고 있다.

 

I'm on the top of the world/ looking down on creation, 바로 이 대목이다. 번역하면 “나는 이 세상 꼭대기에서/ 이 세상 모든 창조물들을 내려다 봅니다”가 된다.

 

세상의 최고 정점에 올라서 있다면 그건 장차 내려갈 일, 때론 추락할 일만 남았다는 얘기가 된다. 노래를 만들 무렵 카렌 카펜터는 가수로서 성공의 영광과 함께 어떤 짝과 사랑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랑의 행복은 지속되기 보다는 소모되는 법, 여기에 현실적으론 한 여성으로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그만 몹쓸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수는 노래 따라 간다는 우리 가요계의 말이 전혀 빈말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삶에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위대한 일은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

 

천재의 목소리와 끼를 타고난 주디 갈런드는 불행하게 갔으나 또 한 명의 걸출한 스타를 세상에 내놓았으니 그녀의 딸인 라이자 미넬리이다. 뮤지컬 드라마 “카바레”의 여주인공 말이다.

 

라이자 미넬리의 경우 운세 흐름은 그 모친인 주디 갈런드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1946년생이지만 출생 1년 전인 1945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주디 갈런드의 경우는 1959년이 바닥이었으니 14년 차이가 있다.

 

라이자 미넬리 역시 대스타답게 오랜 기간 동안 약물중독으로 고통을 겪었으나 다행히도 그 어머니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자선활동도 많이 하면서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딸이 엄마보다는 나은 편이란 얘기.

 

이러니저러니 해도 삶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또는 일은 다름이 아니라 후손을 남기는데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호호당이다. 이어가는 것 그게 가장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은 소년 천재 또는 영재 소리를 듣는 것은 사실 그게 한 때의 光輝(광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알고 나면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해보았다.

우려하던 일들이 구체화되고 있으니

 

 

작년 7월에 “2019년 5월, 우리 경제의 변곡점”이란 글을 올린 바 있다. 그리고 금년 5월의 “우리 경제, 이제부터가 정말 어렵다”는 글에선 ‘올 8월 壬申(임신)월이면 보다 더 수상한 국면이 연출되기 시작해서’란 글로 보충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8월이 되자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가 현실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간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려온 미국은 중국 위안화가 급락세를 보이자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으니 환율조작국 지정이 그것이다.

 

무역전쟁에 이어 미중간의 환율전쟁이 시작된 것이니 전선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1992년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가 2년 만에 풀어주었는데 이번에 다시 조치를 취했으니 25년만의 일이다. 즉 여간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여기에 북한은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방식, 저고도 비행을 하기에 요격이 불가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연일 쏘아대고 있다. 대체 며칠 사이에 몇 발을 쏘아댄 것인지 계산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거야 우리 일이 아니라는 자세이다. 게다가 7월 말엔 러시아까지 중국과 공동으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도발을 해왔다.

 

그런가 하면 미국은 8월 2일자 중거리핵전력조약(INF)폐기와 거의 동시에 우리나 일본 등지에 중거리 미사일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배치했으면 좋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중국은 즉각 ‘그러기만 해봐라!’ 하면서 우리를 향해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 한반도가 세력들의 각축장이 되어가는 형국이라!

 

 

우리 주변의 4강, 즉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가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치열한 패권 다툼의 角逐場(각축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내수는 갈수록 불황인데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또한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려워졌다. 여기에 안보를 비롯한 대외관계 역시 亂麻(난마)처럼 얽히고 꼬여들고 있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경고로서 미사일을 쏘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결국 한미합동훈련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한반도에서 미군의 철수와 한미방위조약을 철폐하라는 주장이고 그런 것이 되지 않는 한 비핵화는 없다는 얘기이다. 우리로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비핵화는 점점 멀어져가고 안보 위협은 더욱 가중되기 시작했다.

 

또 보자.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우리나 일본에 빠른 시간 안에 배치하고 싶다고 했다. 방어 미사일인 사드만 해도 중국이 저 난리였는데 공격형 미사일의 배치? 참으로 난감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더 있다. 우리가 결국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하자, 이에 결과적으로 미국이 일본에 배치한다고 했을 경우 미국이 우리보다 일본 쪽에 더 기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청와대 비서실장은 검토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지만 그건 최대한 현 정권에선 하지 않겠다는 얘기일 뿐, 중요한 것은 미국이 그런 요구를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우리의 어려운 입장을 활용해서 일본과 우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높이고자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트럼프는 농산물 보조금 때문에 WTO가 쓸모없는 퇴물이 되었다고 하면서 개도국 혜택을 활용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 적어도 미국만큼은 개도국 대우를 해주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슬쩍 지나가는 말 같지만 이 또한 엄청난 폭탄이다. 장차 우리 농수산 정책에 대한 엄청난 숙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순식간에 닥쳐온 惡材(악재) 앞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성장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어려운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이번만큼 동시에 악재들이 저처럼 산더미가 되어 터져 나왔던 적은 없었다. 정말이지 산 너머 또 산, 첩첩 산중으로 접어들고 있다.

 

창졸간에 생겨난 상황 앞에서 나 호호당은 지난 한 주 동안 글을 쓸 기력을 잃을 정도였다. 실로 답답한 것은 지금의 어려운 문제들이 단기간에 우리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될 사안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 닥칠 많은 것들을 속 시원히 털어놓고도 싶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고 그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얘기만 드린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2022년이 되면 우리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바닷가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태가 올 것이라 보는데, 나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글로벌 구도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원조와 시장개방, 기술 발전으로 인해 전 세계는 엄청난 번영과 성장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 그 흐름이 뒤바뀌고 있다. 미국의 유일한 전략적 취약점이었던 에너지 문제가 셰일 발굴로 인해 해결되었기에 미국은 더 이상 다른 대륙과 나라들에 대해 비위를 맞춰줄 이유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지금의 변화는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현재 우리의 국운 흐름은

 

 

금년 10월 甲戌(갑술)월을 기점으로 우리 국운은 해마다 양력 1월 5일 경에 찾아드는 小寒(소한)의 때가 시작된다. 그리고 2022년 4월 甲辰(갑진)월로서 1월 20일 경의 가장 추운 때인 大寒(대한)이 된다.

 

한 해를 통해 가장 추운 때가 소한이고 대한인 것인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 이를 달리 풀이하면 우리 스스로가 가진 열에너지, 줄여서 활력이 가장 낮은 수준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가 생길 경우 그에 대처하고 대응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나라의 기초 체력이 가장 낮은 단계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면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경우 자력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주변의 누군가가 나서준다면 그야말로 너무나도 고맙다. 사람은 돕고 사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국운의 에너지가 낮아지면 그간에 도와주던 주변의 조력도 사라져서 그야말로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 시기가 금년 10월부터 5년에 걸쳐 이어진다는 말을 지금 나 호호당은 하고 있으니 내 속인들 좋겠는가 말이다.

 

이런 때를 달리 표현하면 絶(절)의 때라고도 한다. 절은 끊어진다는 뜻이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지내게 되고 문상객들이 찾아오지만 결국 관에 담겨져서 산에 가서 묻힌다. 묻히고 나면 문상객은 물론이고 가까운 이들까지 다 산을 내려갈 것이다. 그러면 망자는 차가운 땅 속에서 홀로 내가 왜 여기 있는 것이지? 하고 물어보는 때를 운세 상으론 絶(절)이라 하는 것이다.

 

금년 10월부터 우리 대한민국은 그와 같은 孤立無援(고립무원)의 때로 진입한다고 보기에 나 호호당의 시름도 깊어간다.

 

 

앞일을 살피는 것은 강의 상류를 보는 것과 같아서

 

 

앞날을 본다는 것은 마치 강의 상류를 살피는 것과 같다.

 

당장 내 눈앞의 서울을 지나가는 한강의 수량이 많다 해도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한강의 상류가 마를 것이고 이에 시간이 지나면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도 결국 바닥을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이에 비유해서 얘기하자면 아직은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의 물이 예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그런대로 여전히 풍성한 편이다. 하지만 금년 10월부터 서서히 물줄기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2022년이 되면 바짝 말라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쌀쌀맞게 이해타산을 따지는 미국, 나름 컸다고 으스대면서 연신 우리를 향해 호통을 치는 중국, 경제보복을 가해오는 일본, 그 판국에 숟가락을 얹어보겠다는 러시아, 또 그 와중에 비핵화를 내흔들면서 우리의 안보 환경을 흔들고 나선 북한이다. 글로벌은 물론이고 우리 주변의 기류가 저렇게 변했다.

 

이 모두 내 눈엔 한강 상류에 비가 내리지 않아 나날이 말라가는 한강의 모습과도 같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첩첩한 산중의 문턱에 들어서는 우리 대한민국이고 상류의 물이 빠른 속도로 말라가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당분간은 이런 내키지 않는 얘기는 올리지 않을 작정이다.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오늘 글을 썼을 뿐이다.







오늘은 조금 신기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죽은 사람의 운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죽은 뒤에도, 그 사람의 운세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니면 아예 작용이 안 되는지 같은 것에 대한 의문이다.


내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이다. 신기하지 않을가? 죽은 뒤에도 그 사람의 운세가 작용하고 있다니 말이다.


이런 이야기에 대해 강의해 보았다.

철도가 보급되던 시절의 얘기.



영국의 위대한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영국 북서부의 아름다운 호수 지방에 철도가 부설된다고 하자 크게 경악했고 신문에 반대 의사를 여러 번 피력했다. 하지만 결국 아름다운 호수 지방에도 철도는 놓였고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들여서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여전히 경관도 아름답다. 


120년 전 중국 청제국의 어느 고위관리는 철도가 보급되면 수레를 끌고 노를 젓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반대했다. 하지만 오늘날 철도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운송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역시 철도가 놓일 때 풍수를 망치고 땅의 맥을 끊어 놓는다는 우려 때문에 지역의 儒林(유림)들과 대지주 계층을 중심으로 대거 반대에 나섰다. 특히 대지주가 많은 호남 지방의 반발이 심했다. 그러나 훗날에 와선 왜 일본 총독부는 경부선을 중심으로 하고 호남선은 대전에서 합류하게 했느냐며 오랫동안 서운하게 여길 정도였다. 



인공지능(AI) 역시도...



오늘날의 인공지능(AI) 또한 그렇다. 


장차 수많은 사람의 밥줄을 끊어 놓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처음에 알파고가 바둑시합에서 이세돌을 꺾었을 때 깜작 놀랐다. 바둑 좀 둘 줄 아는 나 호호당 역시 컴퓨터가 복잡 미묘한 형세 판단을 요구하는 바둑이란 게임에서 인간을 넘어설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뒤 바둑 인공지능의 성능이 더욱 좋아져서 지금은 프로 최고수들도 아예 2점을 깔고 둘 정도가 되었지만 그저 당연시한다. 


분명 그럴 것이라 본다. 장차 인공지능이 수많은 직업들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또 다른 직업들이 생겨나서 그 공간을 메워 나갈 것으로 기대해본다. 


물론 보장은 없다. 미래를 어떻게 알겠는가? 말이다. 만일 인공지능을 포함한 컴퓨터 기술이 기존의 직업을 없애는 숫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많다면 어떻게 될까? 진짜 그럴 것 같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들쳐 일어나서 또 다시 기계파괴운동과 反(반)자본주의 운동을 펼치게 되겠지 싶다. 러다이트 운동. 



혁신과 변화라고 하는 것



혁신이나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승자를 만들어내지만 당연히 그만큼의 패자를 만들어낸다. 


최근 정부가 ‘타다 택시’의 명줄을 사실상 눌러 놓았다. 정부가 내년 총선 때문에 기존 택시업계와 종사자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와 여당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 


얼마 전 작고한 이탈리아의 작가,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그 양반의 다른 책에서 인간은 혁신 앞에서 대체로 무능하지만 그걸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정치’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대목이 있어 나름 흥미로웠다. 이탈리아는 정치가 세다. 그렇기에 개혁은 약하다. 


기존의 먹고 사는 틀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사실 전혀 혁신이 아니다. 만일 생명과학자들이 사람의 이빨이 한 번만 갈이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갈이가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해낸다면, 대략 50세 무렵에 한 번 더 새 이빨이 나올 수 있도록 한다면 치과의사들의 미래는 그야말로 암울해질 것이다. 물론 임플란트 업체들은 모조리 소멸될 것이고. 


치과와 관련된 사람들만 제외하곤 모두에게 엄청난 복리후생이 되겠지만 적어도 그 쪽 사람들은 망한다. 


혁신이란 것, 말이 좋아서 그렇지 기존의 삶을 위협한다. 기존에 만들어진 ‘먹고 사는 사슬’을 일단은 파괴한 뒤에 새롭게 형성해내기 때문이다. 



30년이 흐르면



노래방이 사양길이라 한다. 일본의 가라오케 기술이 국내에는 1991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세상 만물은 대략 30년이 흐르면 반대되는 흐름이 생겨나기 마련인 까닭이다.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하기에 그 절반인 30년이 경과하면 반대의 운동이 시작된다. 


예전에 일본 소니가 ‘워크맨’이란 이름의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만들었는데 정말이지 전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Walkman, 걸어 다니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최초의 모바일 뮤직이었다. 1979년에 출시되었다. 그런데 31년이 흘러 생산이 중단되었으니 MP3 때문이었다. 이 역시 30년만의 반전이다. 위풍당당하던 예전의 소니는 이제 간 곳이 없다, 초라해졌다. MP3 역시 플래시 메모리 가격의 급격한 인하로 대거 보급되었지만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는 것은 크게 변함이 없지만 그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 기업들이 앞서가고 있다. 이 역시 과거를 돌이켜보면 1980-1990년대엔 일본의 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쓰 등의 기업들이 선도했고 2000년대 들어선 미국의 인텔이 단연 으뜸이었다. 


순위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 것이고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은 현재 개별 소자 분야에서 그런대로 해가고 있을 뿐 선두 자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가 최고이지만 이건 그냥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운 적은 마진의 하청기업일 뿐이다.)



결국 순환하고 있기에



이처럼 모든 것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변해간다. 그렇기에 지금의 우려가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으로 바뀌고 현재의 낙관이 비관으로 변하기도 한다. 기존의 것이 유지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생겨나고 혁신의 물결이 닥치기도 한다. 


이는 모든 것이 일정한 시간 간격을 갖는 거대한 순환의 틀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워낙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19세기 중반 “톰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의 마크 트웨인이 말하길 역사가 반복되는 일은 없지만 흐름은 여전히 반복된다고 했다. 


그렇다, 그게 바로 순환이다. 순환의 정확한 법칙과 규율을 알아내진 못 했어도 오래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은 순환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해왔고 또 글로 남겼다. 


이에 나 호호당은 그 주기가 일정하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특히 60년에 걸친 순환이 존재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있어온 60 甲子(갑자), 즉 60진법 때문에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고 또 그것이 실재 순환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나 호호당은 실로 무수히 많은 검증작업을 통해 알아내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상위 주기인 360년에 걸친 순환의 개념은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로부터 전해진 大年(대년), great year 란 개념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이 역시 역사 검증을 통해 실재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물론 자세한 논의는 많은 복잡한 얘기가 있어서 생략한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기에 60년에 걸친 순환이 있다는 얘기를 주로 하지만 그 60년 안에는 24번에 걸쳐 변화해가는 서로 다른 단계가 존재하며 더 자세히 나누면 10개월마다 변화하는 72개의 작은 상황이 숨겨져 있다. 



역사는 답습되지 않아도 흐름은 반복되는 법이라서



앞의 마크 트웨인의 말과 같이 역사는 답습하는 법이 없지만 흐름은 반복된다. 


하지만 60년에 걸친 각 단계마다의 변화를 충실히 살피다 보면 가까운 미래가 될수록 그간의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보다 구체화되고 좁혀져가기에 대단히 높은 정확도를 갖는 예측도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올 해 2019년으로서 우리 대한민국은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를 絶(절)의 단계라고 한다. 주변과 단절되는 일이 많아지는 단계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이에 나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라든가 중국과의 관계가 더욱 멀어지면서 우리가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생각하지 않았던 변수가 등장했으니 일본이다. 일본이 저런 식으로 나오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보면서 과연 우리의 국운이 絶(절)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구나 하고 실감이 갔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긴 하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숨어있던 변수가 등장한 셈이다. 그러니 향후의 변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예상 혹은 예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간 얌전히 있던 러시아까지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노골적으로 침범해왔다. 지나가는 일과성 사건이면 다행이겠으나 그것이 중국과의 교감 하에 이루어진 의도된 일이라면 그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북한은 우리 측의 성의에도 불구하고 신형 탄도미사일을 또 다시 발사했는데 이에 대해 미국 트럼프는 단거리 미사일은 미국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트럼프는 또 지난 26일자로 “한국 등 부자 나라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혜택을 못 받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고 한다. 물론 중국을 겨냥한 조치이지만 우리도 당연히 포함이 된다. 당장은 아니겠으나 우리로선 미국으로부터 농업 분야에서의 보조금 축소 등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올 해로서 우리가 주변과 소원해지는 일이 많을 거란 예측은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저러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살다보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다. 그리고 이 선택은 마치 사다리 타기와 같은 면이 있다.


방향을 정하고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도달하는 곳은 시작했을 때에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곳인 경우가 많다.


최고로 좋은 결과를 바라고 선택했지만, 흘러흘러 방향을 변경해가며 결국 예상치 못한 결과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다리 타기와 같지 않은가?


이러한 것에 대하여 강의해 보았다.

‘제멜바이스 거부반응’이란 용어

 

 

“제멜바이스 거부반응”이란 용어가 있다. 영어로 Semmelweis Effect 라고 한다.

 

기존의 신념이나 상식에 반하는 주장이 나올 경우 일단 거부부터 하고보는 현상을 일컫는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지구는 돈다고 했을 때의 거부 반응 같은 것이다. 오늘날 알려진 무수한 과학적 지식과 상식들은 처음 나왔을 때 아, 그렇구나 하고 순순히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일단 거부되거나 외면받기 십상이었다.

 

새로운 발견이나 지식이 등장하면 거부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의 권위자라든가 그 지식을 통해 권력과 이득을 누리는 기득권층에 대해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리 재수가 없었던 어느 의학자의 억울한 이야기

 

 

제멜바이스 이펙트는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란 헝가리 출신 의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대단한 발견을 하고도 재수가 없어서 억울하게 죽은 남자의 대명사라 하겠다.

 

1847년 무렵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 종합병원의 수석 레지던트로 일하던 제멜바이스는 당시로선 놀라운 추론을 제시했다. 가정에서 분만하는 경우보다 종합병원에서 아기를 낳는 산모들의 사망률이 현저하게 높았는데 그 원인으로서 의사들이 손을 잘 씻지 않고 수술 기구들의 소독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란 추론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균 감염이란 것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제멜바이스의 주장은 절대 다수의 의사들로부터 거부 당했다. 하지만 제멜은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상전격인 의사들이 시술이나 수술을 할 때마다 찾아다니며 염소 소독을 하도록 했다. 거의 싸우다시피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아기를 낳다 산욕열로 사망하는 산모들의 건수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현저하게 낮아졌던 것이다.

 

효과가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멜은 병원에서 쫓겨났다. 어린놈이 너무 설친다는 것, 기존의 알려진 의학적 지식에 없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으니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서 잘린 것이다. 만일 제멜의 주장이 맞는다면 그간에 죽은 산모들은 죄다 의사들의 책임이 될 것이 아닌가!

 

제멜은 그 이후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의사들과의 투쟁을 해야 했다. 의사들의 公敵(공적)이 된 셈이다. 최초 주장을 한 때로부터 15년이 흐른 1862년엔 그간의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문을 발표했지만 의사협회로부터 더욱 싸늘한 냉대만 받았다.

 

 

대단한 의학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맞아죽은 제멜바이스

 

 

그러다가 그간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3년 뒤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었고 2주 뒤 철창에서 반항하다가 맞은 상처로 인한 감염 때문에 급사하고 말았다.

 

세균이란 것이 있어서 병을 유발한다는 것은 제멜이 죽은 1865년으로부터 12년이 흐른 1877년에야 발견되었다. 알베르토 코흐가 탄저균을 발견한 것이 최초였다. 세균학과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사람 말이다. (사실 코흐 역시 세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엄청 고생을 해야 했지만 제멜바이스보다는 운이 좋았다.)

 

제멜바이스는 죽은 뒤 철저하게 잊혀졌다. 하지만 코흐의 연구 공로에 의해 세균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산모들의 산욕열 역시 세균 감염이 원인이라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제멜바이스가 입증을 하진 못했지만 그의 추론은 정확했던 것이다.

 

 

제멜바이스의 명예 회복

 

 

그러자 의사들은 서서히 사태 수습에 나섰다. 옛날 제멜바이스를 무시했던 선배의사들은 이제 주요 자리에서 떠났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니 수습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 선배들이 잘못 했습니다요, 우리들은 물론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하고 제멜바이스를 인정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부랴부랴 공동묘지에 묻혀있던 제멜바이스의 시신을 찾아서 그가 태어난 고향 마을로 이장을 하고 무덤을 잘 꾸며주었다. 예우를 갖춘 것이라 하겠으니 1891년이었다. 그의 사후 26년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53년이 흘러 1964년, 제멜바이스 사후 99년이 되던 해에 그의 유해는 그가 태어난 생가로 다시 이전된 뒤 집은 제멜바이스 박물관으로 꾸며졌다. 헝가리 정부가 국가적 예우를 해준 것이다.

 

 

제멜바이스의 사주와 운명

 

 

이 대목에서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의 사주와 운명을 간략하게나마 알아보자.

 

1818년 7월 1일에 태어나 1865년 8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 47년의 짧은 생애였다. 맞아 죽었으니 그렇다.

 

1818년 7월 1일 생이고 생시는 미상이다. 戊寅(무인)년 戊午(무오)월 乙丑(을축)일이 된다. 생시를 몰라도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는 1835 乙未(을미)년이고 입춘 바닥은 1865 乙丑(을축)년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침 공교롭게도 1865년에 사망했으니 立春(입춘) 바닥에 죽은 셈이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맞아죽었다는 사실. 새로운 사실을 함부로 주장했다는 죄로 말이다. 세상은 이토록 무서운 곳이다, 다만 조금씩 좋아져가긴 하다.

 

의학 공부를 했고 그 바람에 일생을 통해 가장 화려한 운세이던 寒露(한로)의 운, 일생을 한 해로 치면 가장 좋은 때인 10월 초 무렵인 1846년에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비엔나 종합병원의 수석 레지던트로 임명이 되었다. 이제 열심히만 하면 앞날은 보장되었다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너무 열심히 일한 게 탈이었다. 다음 해인 1947년 그는 산모들의 높은 사망률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오염물질에 의한 것이란 확신을 얻었고 그 결과 자신의 추론을 병원의 의사들, 즉 자신의 상사들에게 제시했다.

 

쫄다구 주제에 엄청나게 싸워가며 시술할 때마다 돌아다니며 기구와 손을 소독하도록 했고 그로 인해 대단히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그게 오히려 탈이 되었던 것이다. 그 뒤로 제멜바이스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가망성 없는 1인 시위 격이라고나 할까. 미친 놈 취급을 받았을 것은 당연지사.

 

한창 운이 좋을 때에 획기적인 주장을 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된 셈이다.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된 상태에서 반항을 하다가 구타를 당한 것이 원인이 되어 급사하고 말았으니 때는 운세가 입춘 바닥인 1865년 8월 13일었다.

 

죽은 날의 干支(간지)를 보면 전후 사정을 읽어낼 수 있다. 乙丑(을축)년 甲申(갑신)월 乙卯(을묘)일이니 운세가 큰 바닥에서 뭔가 희망을 찾으려는 몸부림 때문에 결국 구타로 인한 상처가 감염으로 번져서 죽은 날은 더 이상 희망이 사라지는 날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冤魂(원혼)이 되었을 것이니 참으로 억울한 죽음이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세상의 이치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지 않고 옳은 것은 반드시 세월이 흘러도 되살아나는 법이다. 제멜바이스의 억울한 원혼은 죽은 지 99년이 흘러 생가가 박물관으로 꾸며지면서 풀어졌을 것이고 지금은 박물관 안에서 편히 지내고 있으리라.

 

나 호호당은 오랜 연구를 통해 세상 이치에는 어김이 없다는 점을 무수히 통찰해왔기에 확신을 가지고 드리는 말이다.

 

그가 사후일지언정 인정을 받아 처음 이장된 때는 1891년이었는데 이 시기는 그가 비록 죽었으나 운세 흐름이 입추 다음에 오는 명예의 운, 나 호호당이 쓰는 표현으론 황금의 官運(관운)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박물관이 만들어진 것은 1964년 甲辰(갑진)년이니 그 역시 또 다시 운세가 피기 시작하는 小滿(소만)의 운이란 점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의 운세 흐름에 있어 재운이 돋아나는 1969년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의과대학을 개명해서 제멜바이스 의대로 개명이 되었다.

 

 

사람은 죽었어도 그의 운세 순환은 이어져가는 법이라

 

 

이처럼 사람은 죽었어도 그 사람의 운세 순환은 이어져간다.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 호호당은 그간 이런 케이스를 워낙 많이 검증해온 터라 전혀 놀랍지 않다.

 

나 호호당은 사람이 태어난 날의 사주 간지를 보면 일정한 주기, 즉 60년 그리고 더 길게는 3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운의 순환 과정이 있음을 발견했다. 기존의 사주명리학과는 차원이 다른 법칙이다. 무수한 검증, 거의 10만 건의 케이스를 통해 검증해봤고 확인할 수 있었기에 너무나도 명확한 과학적 법칙이다.

 

하지만 내가 대단한 발견을 했다고 해서 서두를 마음 전혀 없다. 이거 진짜입니다,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하고 떠들어 본 들 쉽게 될 성질의 것이 아닌 까닭이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의 내용이 기존의 틀을 흔들어놓는 강도가 클수록 쉽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가령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 인정을 받으려면 오늘날 글로벌 권력의 중심인 미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라 본다. 그런 다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쪽으로 역수입될 것 같으면 가능할 일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나 호호당이 죽은 뒤 한참 후의 일이겠지만.

 

실제 상담은 물론이고 구글이나 위키를 통해 무수한 사람들의 운명을 검증해오는 과정에서 나 호호당은 이런 억울한 케이스를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유전법칙을 발견한 ‘그레고어 멘델’ 역시 당시 유럽의 후미진 시골 마을 수도원의 수사였기에 그가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 인정받기까지 무려 35년이나 걸렸다. 그가 죽은 뒤 16년 뒤의 일이기도 하다.

 

죽은 뒤에도 그 사람의 운세 순환은 이어진다. 물론 亡者(망자)가 그 흐름을 인지할 것인지는 당연히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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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일까?



흔히 노력해라, 노력하면 된다, 이런 말을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어떤 이에게 있어 노력이 가능한 때가 있는가 하면 노력하려고 애를 써도 되지 않는 때가 있다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늘 궁금했다, 운이 좋은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 그냥 놀고먹어도 일이 잘 풀리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냥 자빠져 누워서 내 입으로 감이 떨어져라 배가 떨어져라 하고 있어도 운만 좋다면 만사형통일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때까지 거의 한 평생이 걸렸다. 그리고 명확하게 그 답을 얻었다.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운이 상승하는 사람이고 노력이 되지 않는 사람은 운이 하강하는 사람이란 간단한 답이다. 


따라서 노력과 운은 별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라는 얘기이다. 


알고 나면 이렇게 간단한 것이건만 다시 말해서 이 해답을 찾을 때까지 수십 년의 끈질 긴 연구가 있어야 했다.

 

어려운 이을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은 ‘야, 가진 게 없으니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하는 충고를 해주지만 사실 이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간섭에 불과할 때가 많다. 



노력이야말로 자본보다 더 한 자본이어서



경제학에서 흔히 생산의 요소로서 노동을 자본을 얘기한다. L과 K가 그것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자본이 있으면 그 자본을 투입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노력이란 것은 사람이 애를 끓이는 엄청난 일이다. 일이 될 때까지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 그러니 일을 성사시킴에 있어 실은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바로 노력이란 사실이다. 


노동이 더 소중하다고 했지 자본이 별 게 아니란 얘기는 결코 아니다. 자본을 만들어내려면 그 이전에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어떤 면에서 자본이야말로 노력의 결과물, 절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최근엔 필요한 자본을 부채로 조달할 수도 있기에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부채로 조달된 자본을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날려먹었다고 생각해보라, 그걸 갚으려면 뼈가 빠진다. 세상에 쉬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어지간하면 사람은 노력하느니 피할 방법을 우선시한다.



노력이란 말의 뜻부터 알아보자, 그래야만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니. 


인터넷 사전에 보면 노력이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어려움이나 괴로움 등(等)을 이겨 내면서 애쓰거나 힘쓰는 것이라 되어있다. 한자의 의미를 보면 奴婢(노비)가 갖은 힘을 다해 애를 쓴다는 뜻이다. 오늘날엔 노비가 없지만 아무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힘을 쓰고 애를 쓴다는 뜻이 노력이다. 


노력은 따라서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고 그 도중에 힘에 부치면 지치고 힘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노력한다는 것은 누구나 어지간하면 피하고자 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거리만 있으면 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단기간이라면 비교적 집중이 쉽게 되지만 장기간에 걸친 것이라면 노력을 도중에 이어가기가 정말로 어렵다.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단히 어떤 것과 맞서는 일이다. 맞서서 싸우고 해결해야 하는 일로 가득 찬 삶이다. 이빨이 아프면 치과에 가야 하는데 돈도 돈이지만 치과 시술대에 몸을 눕힐 각오를 해야 한다.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 자기 몸을 위하는 일도 이처럼 힘든데 다른 이유라면 더더욱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런 일들과 맞서야 한다. 그러니 고생이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흔히 하는 말, 공부 잘 해라는 이 말 역시도 열심히 싸우라는 얘기이고 노력을 통해 다른 학생들을 물리치라는 말이다. 다른 학생들 역시 부모님들로부터 그 말을 듣고 있을 것이니 이게 어디 쉬운가! 


열심히 해보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결심했다고 해서 그 결심대로 노력하고 집중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내일부터 새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기에 이른바 作心三日(작심삼일)이란 말도 있다. 


작심한 뒤 겨우 사흘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니 석 달은 훨씬 어렵고 3년 노력은 그야말로 지난한 일이라 하겠는데 이를 10년, 20년에 걸쳐 일관된 노력을 유지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정도가 되려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냥 습관이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하겠다. 



功業(공업)을 이루려면 30년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니



문자 좀 써서 功業(공업)을 이룩하려면 기본이 30년이다. 半平生(반평생)이 걸린다. 그렇게 할 것 같으면 각자 나름대로 반드시 공업을 달성하는 법이니 이를 운이 좋은 30년, 好運(호운)의 때라 말한다. 


어느 정도의 성취를 하느냐는 그 사람의 타고난 그릇, 운명학으로 말하면 命에 달린 문제, 쉽게 말하면 물려받은 재능에 달린 문제이다. 하지만 성취의 정도와 크기를 떠나 뜻한 바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꾸준한 노력이 30년은 이어져야 한다. 


노력할 것 같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목표를 잘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면 보폭이 짧은 사람이 마라톤 방면에서 성공하려 든다면 될 일이 아니란 얘기, 그렇기에 자신의 처지와 재능에 맞는 목표 설정을 잘 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엔 운의 상승과 함께 노력하기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왜 어떤 이는 되고 어떤 이는 되지 않을까?



세상 일 어느 하나 쉬운 건 없다. 다만 어떤 이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마침내 극복하고 넘어서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힘들다 보면 도중에 그만 둔다. 과연 이 차이는 어디에 원인이 있을까?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하나는 뜻을 잘못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운세와 상관이 있다. 운이 아닐 적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거나 자신의 적성이 아닌 쪽에 뜻을 두었다가 경험 즉 시련과 실패를 통해 그만 두게 된다. 


또 하나는 뜻을 세우고 노력을 하기 이전에 강한 좌절과 어려운 시기를 거친 이는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있다. 더 이상 돌아갈 수도 기댈 구석도 없는 이라면 가능한 눈앞의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에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좋은 환경에선 성취하기 어려운 법



하지만 그만 둬도 그만인 사람, 또 다른 선택이 있다 여기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어려운 경우에 처해도 그만 두게 된다. 여유가 있고 기댈 구석이 있는 자라면 자신의 가능성을 십분 발휘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에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라면 성공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여유가 있는 자라면 간절할 수가 없는 법이고 또 다른 선택이 있다 여기는 자 역시 베스트를 다 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선택의 가짓수가 많은 자가 바로 시험에 드는 자가 된다.)


학생의 경우를 보자, 어느 정도 타고난 두뇌가 있고 재능이 있을 경우 여기에 부모의 뒷받침까지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탁월한 성취도를 보이기란 어렵다. 스스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긴 시간에 걸쳐 노력하고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운세의 순환이란 결국 



60년의 운세 순환에 있어 立春(입춘)으로부터 15년간의 기간은 시련과 좌절의 기간이다. 그러나 이 기간을 통해 불굴의 의지가 생겨난다. 그러고 나서 立夏(입하)가 되면 독해지고 강해져서 15년간의 전쟁에 나선다, 본인만의 전쟁터에서 말이다. 


이에 입춘 바닥으로부터 30년이 흘러 立秋(입추)가 되면 슬슬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해서 15년이 흘러 立冬(입동)이 되면 최고의 성취를 보인다. 그러고 나면 사실 끝이다, 더 이상 노력이 불가능해진다, 이룰 것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은 많아도 이제 더 이상 새롭게 이루어낼 수 잇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노력 또한 할 수가 없다. 배가 불렀으니 투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운세가 맹렬히 하강하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입하로부터 입동까지 30년간이 好運(호운)인 것이고 입동부터 30년간이 不運(불운)이라 하겠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1964년에 입춘을 맞이했기에 1979년부터 30년에 걸쳐 줄기찬 발전과 전진의 발걸음을 이어왔다. 하지만 2009년 국운의 立冬(입동)이 되자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다 볼 뿐 나서서 노력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는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 대한민국은 노력 불가능의 사회가 되고만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시련을 통해 강해질 것이니



2024년 또 한 번의 순환을 시작된다. 입춘이다. 시련이 한도 끝도 없이 밀려올 것이다. 힘들고 지칠 것이다, 하지만 2039년 국운의 立夏(입하)가 될 때까지 시련 속에서 또 다시 강인하고 불굴의 의지를 지닌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것이다. 


노력하면 이룬다, 하지만 알고 보면 노력이 가능한 때가 있고 노력 자체가 불가능한 때가 있으니 그로서 순환의 바퀴자국을 만들어간다. 


이로서 운과 노력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란 얘기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