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흔히 목격하는 가족의 운명 이야기



이 이야기는 상담을 하다보면 너무나 흔히 만나게 되는 운명의 이야기이다. 일종의 典型(전형)이라 하겠다. 


어려서 고생을 많이 한 두 총각 처녀가 만나서 결혼을 했다. 학력도 별로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부부는 작은 장사를 시작해서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기도 낳아서 잘 길렀다. 세월이 가서 어느덧 기반도 잡혔고 또 사업이 그런대로 번창하는 바람에 더 큰 곳으로 장사의 터전을 옮겼고 그 결과 더 많은 수입을 올렸다. 아이들 역시 무럭무럭 잘 자랐고 학업 성적도 좋았으며 학교에서 인기도 많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갔던 부부였고 그 슬하의 아이들이었다.

 

세월이 더 흘러 처음 시작할 땐 생각하지 못했던 제법 큰 재산도 일구었다. 아주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먹고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자녀들 또한 건강하고 힘차게 잘 지내는 좋은 시절을 보냈으니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다. 



호시절은 지나고 나야 알게 되는 법



물론 당사자들은 그게 호시절인 것을 모른다, 앞날에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호시절이란 것은 언제나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바깥양반의 사업이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역경이야 언제나 극복해왔다는 생각에서 일종의 승부수를 던졌다. 그간에 저축된 자본을 투입해서 사업장을 더 크게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게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업장에서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바깥양반까지 부상을 당하게 되고 결국 사업 전체를 접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녀들 또한 덩달아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견디지 못하고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을 접은 바깥양반은 원래 농촌 출신인 터라 시골로 가서 살기로 마음을 먹고 토지를 매입했다. 집도 새롭게 짓고 논밭도 사들여서 전원생활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집 짓는 일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듯 리스크가 따르는 법, 새 집은 계속 말썽을 부렸고 농사일도 쉽지가 않았다. 


결국 말썽 많은 전원의 집과 함께 전답을 처분하고 다시 살던 도시로 되돌아왔다. 그러자 바깥양반의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치료비도 적지 않게 들었다. 그런 판국에 아이들 또한 사회진출이 여의치 않았다.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유학도 다녀왔는데 자리를 잘 잡지 못하는 바람에 엄마의 애를 끓이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약간 각색을 하긴 했지만 실화이다. 



2대에 걸친 흥망의 흐름



부부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것은 남편의 60년 운세 순환으로 볼 때 夏至(하지)의 때였고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나서 사업을 접은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冬至(동지)의 일이었다.

 

그런데 자녀들 또한 부부의 운세 흐름과 거의 같이 가고 있었기에 집안 전체가 기울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와 자녀의 운세 흐름을 확인해보면 거의 차이가 없는 경우가 일반적인 까닭이다. (물론 부모와 자녀의 운세 흐름이 정반대인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 경우 간혹 보면 그 부모가 이런 푸념도 한다. 나는 어려서 고생한 탓에 많이 배우지도 못 했고 그저 죽자고 열심히 살아오는 과정에서 내 자식만큼은 최대한 지원해주고 가르쳐서 출발에서부터 남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여건을 만들어주었다고 여기는데 왜 우리 아이들은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걸까요? 하는 얘기이다. 



모든 것이 운의 흐름에 달렸으니



부모와 자녀의 운이 같을 때가 많아서 그런 것인데 열심히 뒷바라지해온 부모로선 자녀에 대해 자칫 원망하거나 한심하게 여길 수가 있으니 이런 경우 정말이지 잘 얘기해주어야 한다. 


한 세대는 대략 30년이다. 그런데 운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흘러가고 있으니 부모가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잘 되었을 경우 그 혜택을 받고 태어난 자녀의 경우 부모와 함께 내리막 운을 타는 경우가 된다. 


가령 부모의 경우 운세 흐름이 나이 40대 중반에 한창이었다면 그 무렵 자녀는 15세 정도가 될 것이다. 이에 부모가 운세 바닥에 도달하는 70대 무렵이 되면 자녀의 나이는 40대가 될 것이고 그 무렵에 함께 바닥을 친다. 


이런 경우는 정말 너무나도 많고 흔하다. 그간 상담해오는 과정에서 무수히 경험했고 목격해왔다. 



부모 자식 간에 오해와 불화가 생길 때도 있으니



런데 이 경우 가족 간에 불화가 발생할 때도 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자녀 특히 아버지의 경우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에 대해 대단히 못 마땅하게 여길 때가 많다는 점이다. 


흔히 하는 말로서 나는 가진 것 하나 없이 서울로 상경해서 악착같이 일해서 그런대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는데 저놈의 아들 녀석은 기껏 밀어 주었더니 악착같은 데는 전혀 없고 그저 헛바람만 들어서 돌아다니다가 결국 취업도 못 하고 빈둥거리고 놀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 모두가 운의 탓이라 하겠다. 아버지는 운이 어려운 때에 태어나 악바리 근성을 길렀고 그 결과 작은 일로 시작해서 나중엔 나름 일가를 이루었던 것이고 그런 도중에 태어난 아들은 부모를 잘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시간이 흘러 모든 일이 막히고 있을 뿐이다. 


아들의 경우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보다 훨씬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부친과 같은 악바리 근성이 있을 리가 없다. 악착같은 정신 자세는 고난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란 점이다. 



다 때가 있는 법이어서



그렇기에 어려서 고생하며 자란 부모와는 달리 자녀의 경우 오히려 30대 무렵부터 고생을 하게 되지만 그를 통해 또 다시 단련이 되고 정신적으로 무장이 되면서 60대 무렵이면 나름의 큰 성취를 이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어떤 이는 중년에 빛을 발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어린 시절 또는 20대 초반에 빛을 발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인생 후반에 들어 더욱 더 융성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기에 인생엔 누구나 자신의 ‘한 때’가 있다. 


크게 보면 나라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우리 대한민국은 1960년대 저 깊은 나락에서 힘차게 올라섰고 악착같이 노력한 결과 국운의 추분인 2002년 무렵부터는 글로벌 속의 코리아로 우뚝 섰다. 


그리고 호시절을 보냈다. 2002년부터 10년간은 정말 호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이 지나가자 모든 방면에서 쇠퇴의 징후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짝을 짓지 못하고 그 바람에 신생아도 줄어들고 있다. 가계부채에 짓눌려 소비는 날로 줄어들고 주력 산업들은 어느덧 정체의 기미가 완연하다. 


이에 다시 2022년이 되면 이젠 쇠퇴의 징후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쇠퇴의 흐름이 본격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다시 깊은 나락으로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편히 자란 아이들이 재능에 상관없이 부진의 시기를 보내고 나면 어느새 또 다시 정신을 차리고 힘차게 자신의 인생을 再建(재건)해 가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이 또 다시 보다 더 탄탄한 기반 위에서 그간의 발전보다 더 큰 성취를 일구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 흐름은 수축과 이완의 연속이기에 바닷가의 밀물과 썰물과도 같은 것이다. 한 번 힘쓰고 나면 한 번 쉬어야 하고 쉬고 나면 다시 힘을 내는 것, 세상의 영원한 이치라 하겠다. 


(나 호호당이 며칠 동안 출타한다. 그 바람에 이번 주엔 글을 올리지 못한다는 점 알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