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마누법전이 제시하는 삶의 4단계
인도에는 마누 법전이란 것이 있다. 기원 전 2백년에서 기원 후 2백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법전은 힌두인이 지켜야 할 법(‘다르마’라 한다)과 규범을 규정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인도인들에게도 여전히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마누 법전 안엔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나치는 삶의 4 단계(stage)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나 호호당이 알아낸 60년에 걸친 삶의 사계절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이다.
먼저 힌두에서 주장하는 삶의 4 단계-각 단계를 아쉬라마(ashrama)라 한다-가 어떤 내용인지부터 알아보자.
學生期(학생기): 생후 24세까지는 힘써 배우는 시기로서 삶의 규범은 물론이고 장차 먹고 살아갈 직업에 관한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시기이다. 徒弟(도제)의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世俗期(새속기):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활동 하면서 돈도 벌고 출세도 하며 삶의 다양한 감각적인 향락을 누리는 기간으로서 25-48세까지의 기간이다.
隱退期(은퇴기): 인도 말로는 ‘숲에서 사는 기간’이란 뜻인 바, 이제 영화를 누렸고 체력도 떨어지고 있으니 서서히 물러날 준비를 하는 기간, 49-72세까지의 기간이다.
脫世俗期(탈세속기): 72세 이후 삶을 마칠 때까지의 시기로서 이제 세속을 완전히 떠나게 되니 갖은 물질적 욕망을 내려놓게 되며 집을 떠나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면서 정신적 평화와 해탈을 추구하는 시기.
힌두철학에서의 삶의 4단계는 본질적으로 운명 순환과 같은 것
이처럼 힌두철학은 4 단계(아쉬라마)를 통해 일종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바, 이것은 사실 나 호호당이 주장하는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해당된다.
봄은 힘써 논밭을 갈고 씨 뿌리는 시기이니 힘들고 고되다. 여름은 농사를 열심히 짓는 시기로서 그야말로 전투적인 시기이며 그 와중에 집안일도 돌보는 한편 즐길 수 있는 것은 틈을 내어 즐기는 시기이다. 일도 하고 놀 것 놀면서 말이다.
가을은 그간의 힘든 농사가 결실을 맺었으니 이제 더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얻은 것에 만족하고 그간의 삶을 서서히 정리해가면서 다가올 겨울에 대비하는 시기이다. 겨울은 모든 생산 활동이 마무리되었기에 한가롭게 쉬면서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는 때이다. 되돌아보다 보면 어떤 깨달음도 얻게 된다.
따라서 힌두 철학의 인생 4단계와 나 호호당의 60년 운세순환에 따른 운명의 사계절이 본질에 있어 같은 것이라 하겠다.
힌두철학과 자연순환운명학의 차이점
그러나 차이가 있다. 그게 중요하기에 지금부터 얘기해본다.
힌두철학의 인생 4단계는 일종의 모델이고 定型(정형)이란 점이다. 동시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들을 4단계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규범이자 권고 사항이란 점이다.
하지만 나 호호당이 말하는 인생의 사계절은 태어난 이후 맞이하는 삶의 단계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일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태어난 때가 여름이어서 그 이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을 맞이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겨울에 태어나서 시련의 봄을 맞이하고 그 이후 여름과 가을 그리고 또 다시 겨울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공교롭게도 태어난 때가 봄이어서 그 이후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을 맞이하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연순환운명학에선 삶의 계절을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으니
자연순환운명학에선 어떤 이의 생년월일을 알면 즉각적으로 그 사람이 출생한 때가 운세 순환에 따른 60년을 1년으로 치환할 경우 어떤 계절, 나아가서 몇 월에 태어났는지? 더 정확하게는 태어난 때가 몇 월 며칠에 태어났는지까지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태어난 날의 시각까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나 호호당은 1955년 7월 25일 오전 4시 5분에 출생했다. 이를 60년을 한 해로 치환해서 태어난 운명의 계절과 월과 일 그리고 시까지 알아보자.
태어나기 18년 전인 1937년 7월 7일 밤 10시로서 60년 순환이 시작되는 입춘 시점이었다. 따라서 나 호호당이 출생한 1955년 7월 25일 새벽 4시 5분은 그 때로부터 18년과 17일 16시간이 경과한 때였다. 이에 60년 순환을 1년으로 치환해서 계산해보면 5월 24일 아침 7시 경에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60:1로 축약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계산하는 방법이 독자들에겐 다소 낯이 설 수 있겠지만 몇 번 해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
다시 말해서 나 호호당이 태어났을 무렵은 60년을 1년으로 하는 운명의 계절로 바꾸면 5월 24일 아침 7시였다는 말이다. 운명의 계절로 싱그러운 초여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셈이다.
도중에 1997년 7월 7일로서 생후 처음으로 운명의 입춘 바닥을 맞이했으며 그로부터 또 다시 22년을 조금 더 보냈기에 지금은 운명의 계절에 있어 6월 20일 무렵을 지나가고 있다. 내년 1월 초가 되면 운명 순환에 있어 夏至(하지)가 된다.
앞에서 말한 힌두의 인생 4단계에 적용해볼 것 같으면 두 번째 단계인 것이니 세속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1997년부터 15년 동안이 학생기였던 셈이고 2012년부터 2027년까지가 세속기가 된다.
60년의 운명 순환에 있어 봄 15년이 가장 힘들다. 힌두 철학으로 말하자면 배우는 시기, 즉 학생의 기간이라서 배울 것도 많고 또 배우는 것은 원래 어렵다. 그러니 웃긴다. 1997년은 내 나이 42살이었는데 그 때부터 57세까지 이른바 ‘배우는 시기’였으니 흔히 말하는 중년의 좋은 시절을 고생하면서 배우느라 보낸 것이다. 나 호호당은 인생 재수생이었던 것이다.
운명의 계절상으로 여름에 태어나 풍족한 가을을 멋모르고 우쭐대며 지내다가 겨울이 되어 풍상을 맞으면서 추운 유랑의 시기를 보냈고 이에 1997년으로서 다시 봄을 맞이한 셈이다. 기초에서부터 새롭게 또 어렵사리 배웠으니 57세가 되어서야 겨우 세속의 길로 들어선 것이 나 호호당의 그간 운명길이었고 삶의 흐름이었다.
젊은 스타들의 경우 일찍 운명의 가을을 맞이한 것이어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20-30대 무렵 빛나는 스타가 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바로 그 무렵에 운명의 가을을 맞이한 경우라 보면 정확하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한 때 우리의 호프였던 메이저 리거 박찬호 선수를 볼 것 같으면 1973년생인데 12세인 1985년이 운명의 입추였다. 가을이 되었던 것이고 이에 가을의 한 가운데인 추분은 1993년경이 되는데 바로 이 무렵 메이저 리그의 스카우터들에게 발탁이 되어 다음 해인 1994년 엘에이 다저스에 입단했다.
그 이후 2000년이 운세상 입동이었기에 절정의 시기가 되었으니 바로 그 해 18승 10패라고 하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운세에 있어 입동 무렵이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화려한 때가 된다.)
그러다가 서서히 내리막으로 접어들어 운명의 동지 무렵엔 뉴욕 메츠로 옮겼으나 0승 1패의 초라한 성적을 보였을 뿐이고 그 이후로도 별다른 성적을 보이지 못했다. 2015년이 입춘 바닥이었는데 그 이전인 2012년 말에 한화 이글스에서 은퇴를 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계절 60년을 보내고 또 새로운 사이클로 접어드는데 이를 운의 순환이라 한다. 運(운)이란 움직여간다는 의미이기에 그렇다.
알면서도 연결 짓지 못하고 있었으니
나 호호당은 힌두 철학에서 제시했던 삶의 4단계에 대해 비교적 이른 시기인 서른 살 초반에 인도철학사 책을 통해 접했었다. 대략 3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이상적인 삶, 세속의 가치와 탈세속의 가치 모두를 긍정한다는 점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을 뿐이었다.
이에 그것이 훗날 운명의 순환에 관해 내가 알아낸 이론 즉 “자연순환운명학”의 본질과 동일한 것이란 사실에 대해선 전혀 몰랐었다. 그러다가 앗, 그게 그거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사실 힌두철학에서만이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도 360년을 大年(대년), 즉 그레이트 이어(great year)라고 규정하고 그 순환을 다루는 내용이 있었으며 더 멀리는 그 보다 더 오랜 바빌로니아 문명에서도 시간의 순환을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역시 그 점을 알고 있었고 가깝게는 종교철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 역시 그렇다.
다만 나 호호당은 그 주기가 막연한 것이 아니라 60년 단위로 시계처럼 움직여간다는 사실, 즉 하나의 시계(chronometer of life)를 발견해냄과 동시에 그 규칙을 밝혔다는 점에서 意義(의의)가 있다 하겠다.
언젠가 이 주제와 관련해서 더 많은 얘기들을 들려드릴 것을 약속하면서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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