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마누법전이 제시하는 삶의 4단계



인도에는 마누 법전이란 것이 있다. 기원 전 2백년에서 기원 후 2백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법전은 힌두인이 지켜야 할 법(‘다르마’라 한다)과 규범을 규정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인도인들에게도 여전히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마누 법전 안엔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나치는 삶의 4 단계(stage)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나 호호당이 알아낸 60년에 걸친 삶의 사계절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이다.


먼저 힌두에서 주장하는 삶의 4 단계-각 단계를 아쉬라마(ashrama)라 한다-가 어떤 내용인지부터 알아보자. 


學生期(학생기): 생후 24세까지는 힘써 배우는 시기로서 삶의 규범은 물론이고 장차 먹고 살아갈 직업에 관한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시기이다. 徒弟(도제)의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世俗期(새속기):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활동 하면서 돈도 벌고 출세도 하며 삶의 다양한 감각적인 향락을 누리는 기간으로서 25-48세까지의 기간이다. 


隱退期(은퇴기): 인도 말로는 ‘숲에서 사는 기간’이란 뜻인 바, 이제 영화를 누렸고 체력도 떨어지고 있으니 서서히 물러날 준비를 하는 기간, 49-72세까지의 기간이다. 


脫世俗期(탈세속기): 72세 이후 삶을 마칠 때까지의 시기로서 이제 세속을 완전히 떠나게 되니 갖은 물질적 욕망을 내려놓게 되며 집을 떠나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면서 정신적 평화와 해탈을 추구하는 시기. 



힌두철학에서의 삶의 4단계는 본질적으로 운명 순환과 같은 것



이처럼 힌두철학은 4 단계(아쉬라마)를 통해 일종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바, 이것은 사실 나 호호당이 주장하는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해당된다. 


봄은 힘써 논밭을 갈고 씨 뿌리는 시기이니 힘들고 고되다. 여름은 농사를 열심히 짓는 시기로서 그야말로 전투적인 시기이며 그 와중에 집안일도 돌보는 한편 즐길 수 있는 것은 틈을 내어 즐기는 시기이다. 일도 하고 놀 것 놀면서 말이다. 


가을은 그간의 힘든 농사가 결실을 맺었으니 이제 더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얻은 것에 만족하고 그간의 삶을 서서히 정리해가면서 다가올 겨울에 대비하는 시기이다. 겨울은 모든 생산 활동이 마무리되었기에 한가롭게 쉬면서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는 때이다. 되돌아보다 보면 어떤 깨달음도 얻게 된다. 


따라서 힌두 철학의 인생 4단계와 나 호호당의 60년 운세순환에 따른 운명의 사계절이 본질에 있어 같은 것이라 하겠다. 



힌두철학과 자연순환운명학의 차이점



그러나 차이가 있다. 그게 중요하기에 지금부터 얘기해본다. 


힌두철학의 인생 4단계는 일종의 모델이고 定型(정형)이란 점이다. 동시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들을 4단계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규범이자 권고 사항이란 점이다. 


하지만 나 호호당이 말하는 인생의 사계절은 태어난 이후 맞이하는 삶의 단계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일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태어난 때가 여름이어서 그 이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을 맞이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겨울에 태어나서 시련의 봄을 맞이하고 그 이후 여름과 가을 그리고 또 다시 겨울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공교롭게도 태어난 때가 봄이어서 그 이후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을 맞이하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연순환운명학에선 삶의 계절을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으니



자연순환운명학에선 어떤 이의 생년월일을 알면 즉각적으로 그 사람이 출생한 때가 운세 순환에 따른 60년을 1년으로 치환할 경우 어떤 계절, 나아가서 몇 월에 태어났는지? 더 정확하게는 태어난 때가 몇 월 며칠에 태어났는지까지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태어난 날의 시각까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나 호호당은 1955년 7월 25일 오전 4시 5분에 출생했다. 이를 60년을 한 해로 치환해서 태어난 운명의 계절과 월과 일 그리고 시까지 알아보자. 


태어나기 18년 전인 1937년 7월 7일 밤 10시로서 60년 순환이 시작되는 입춘 시점이었다. 따라서 나 호호당이 출생한 1955년 7월 25일 새벽 4시 5분은 그 때로부터 18년과 17일 16시간이 경과한 때였다. 이에 60년 순환을 1년으로 치환해서 계산해보면 5월 24일 아침 7시 경에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60:1로 축약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계산하는 방법이 독자들에겐 다소 낯이 설 수 있겠지만 몇 번 해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 


다시 말해서 나 호호당이 태어났을 무렵은 60년을 1년으로 하는 운명의 계절로 바꾸면 5월 24일 아침 7시였다는 말이다. 운명의 계절로 싱그러운 초여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셈이다. 


도중에 1997년 7월 7일로서 생후 처음으로 운명의 입춘 바닥을 맞이했으며 그로부터 또 다시 22년을 조금 더 보냈기에 지금은 운명의 계절에 있어 6월 20일 무렵을 지나가고 있다. 내년 1월 초가 되면 운명 순환에 있어 夏至(하지)가 된다. 


앞에서 말한 힌두의 인생 4단계에 적용해볼 것 같으면 두 번째 단계인 것이니 세속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1997년부터 15년 동안이 학생기였던 셈이고 2012년부터 2027년까지가 세속기가 된다. 


60년의 운명 순환에 있어 봄 15년이 가장 힘들다. 힌두 철학으로 말하자면 배우는 시기, 즉 학생의 기간이라서 배울 것도 많고 또 배우는 것은 원래 어렵다. 그러니 웃긴다. 1997년은 내 나이 42살이었는데 그 때부터 57세까지 이른바 ‘배우는 시기’였으니 흔히 말하는 중년의 좋은 시절을 고생하면서 배우느라 보낸 것이다. 나 호호당은 인생 재수생이었던 것이다. 


운명의 계절상으로 여름에 태어나 풍족한 가을을 멋모르고 우쭐대며 지내다가 겨울이 되어 풍상을 맞으면서 추운 유랑의 시기를 보냈고 이에 1997년으로서 다시 봄을 맞이한 셈이다. 기초에서부터 새롭게 또 어렵사리 배웠으니 57세가 되어서야 겨우 세속의 길로 들어선 것이 나 호호당의 그간 운명길이었고 삶의 흐름이었다. 



젊은 스타들의 경우 일찍 운명의 가을을 맞이한 것이어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20-30대 무렵 빛나는 스타가 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바로 그 무렵에 운명의 가을을 맞이한 경우라 보면 정확하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한 때 우리의 호프였던 메이저 리거 박찬호 선수를 볼 것 같으면 1973년생인데 12세인 1985년이 운명의 입추였다. 가을이 되었던 것이고 이에 가을의 한 가운데인 추분은 1993년경이 되는데 바로 이 무렵 메이저 리그의 스카우터들에게 발탁이 되어 다음 해인 1994년 엘에이 다저스에 입단했다. 


그 이후 2000년이 운세상 입동이었기에 절정의 시기가 되었으니 바로 그 해 18승 10패라고 하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운세에 있어 입동 무렵이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화려한 때가 된다.) 


그러다가 서서히 내리막으로 접어들어 운명의 동지 무렵엔 뉴욕 메츠로 옮겼으나 0승 1패의 초라한 성적을 보였을 뿐이고 그 이후로도 별다른 성적을 보이지 못했다. 2015년이 입춘 바닥이었는데 그 이전인 2012년 말에 한화 이글스에서 은퇴를 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계절 60년을 보내고 또 새로운 사이클로 접어드는데 이를 운의 순환이라 한다. 運(운)이란 움직여간다는 의미이기에 그렇다. 



알면서도 연결 짓지 못하고 있었으니



나 호호당은 힌두 철학에서 제시했던 삶의 4단계에 대해 비교적 이른 시기인 서른 살 초반에 인도철학사 책을 통해 접했었다. 대략 3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이상적인 삶, 세속의 가치와 탈세속의 가치 모두를 긍정한다는 점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을 뿐이었다. 


이에 그것이 훗날 운명의 순환에 관해 내가 알아낸 이론 즉 “자연순환운명학”의 본질과 동일한 것이란 사실에 대해선 전혀 몰랐었다. 그러다가 앗, 그게 그거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사실 힌두철학에서만이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도 360년을 大年(대년), 즉 그레이트 이어(great year)라고 규정하고 그 순환을 다루는 내용이 있었으며 더 멀리는 그 보다 더 오랜 바빌로니아 문명에서도 시간의 순환을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역시 그 점을 알고 있었고 가깝게는 종교철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 역시 그렇다. 


다만 나 호호당은 그 주기가 막연한 것이 아니라 60년 단위로 시계처럼 움직여간다는 사실, 즉 하나의 시계(chronometer of life)를 발견해냄과 동시에 그 규칙을 밝혔다는 점에서 意義(의의)가 있다 하겠다. 


언젠가 이 주제와 관련해서 더 많은 얘기들을 들려드릴 것을 약속하면서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친다.


긴 인생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헷갈리는 젊은이들



대학 진학할 때 성적에 맞추어 갈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상이나 포부에 따라 소신 지원을 할 것인지 하는 고민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당장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세월이 가서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되면 진짜 어려워진다. 취업 자체도 어렵지만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했다고 치자. 일하다 보니 하는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고민하는 경우도 많고 너무 일이 고된 바람에 계속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또 일은 그런대로 할 만 하지만 급여가 낮아서 고민하기도 한다. 


물론 어쩌다 보니 아예 취업 자체를 포기해버린 젊은이도 최근에 적지 않다. 얼마나 암울할 까. 그러니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이생망’이란 말, 또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는 ‘대박자’까지 유행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직장이 있을 경우 당연히 소득이 생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슬슬 결혼도 생각해봐야 하는데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 젊은이들도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이에 그냥 나도 남들처럼 비혼족을 자처해볼 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가 하면 결혼을 해도 자녀를 출산하지 않겠다는 커플도 생겨나고 있다. 부부가 자녀를 출산하지 않겠다는 것은 물론 그들의 결정이겠으나 그게 자연스럽다 말하긴 어렵다. 


지금까지의 얘기들은 모두 최근 우리 젊은이들의 고민과 방황이 극도로 깊어지고 심화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점에 대해 나 호호당이 어떤 지적을 하자는 얘긴 절대 아니다. 다만 60년 이상의 짧지 않은 세월 살아오면서 느낀 점, 알게 된 점, 그리고 자연순환운명학을 정립하고 수많은 상담을 통해 느낀 것들 중에 우리 젊은이들에게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얘기들을 들려주고플 뿐이다. 



덕업일치는 실로 확률이 희박하다.



늦었지만 아제 오늘의 주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할 때가 되었다. 바로 덕업일치에 관한 것이다. 한자로 德業一致(덕업일치). 최근엔 포털 사이트의 국어사전에도 등재될 정도이니 일반 명사가 된 셈이다. 뜻을 보면 자신이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 이른바 ‘덕질’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일하는 것이 노는 것이고 노는 것이 일하는 것인데 그러면서 돈도 그런대로 잘 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러기란 확률이 희박하다. (덕업일치가 왜 어려운 가에 대해선 ‘나무위키’에도 아주 잘 소개되고 있다는 점 알려드린다. 들어가서 읽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덕업일치란 것이 그러나 불가능한 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덕업일치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덕업일치를 달성하려면 특별한 재능과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엄청난 열정, 기막힌 행운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좋아하는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인생의 나머진 다 포기할 수 있다는 거의 무모하다 싶은 용기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재능과 열정, 행운, 여기에 더해서 무모한 용기가 있어야만 덕업일치가 가능해진다. 


긴 인생을 살아가려면 중요한 것들이 참으로 많다. 건강도 중요하고 돈도 벌어야 할 것이며 사람으로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욕구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 욕구란 것이 실로 가짓수가 많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인간 역시 생명이고 동물이기에 후손을 이어가고픈 강렬한 욕구, 세다가 후손이 생기면 그 후손을 잘 되고 번창하게 하고픈 욕망이 당연히 생기는 까닭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기르다 보면 갖은 번잡한 일과 어려움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 바람에 배우자에게 싫증이 나도 전혀 안 그런 척 연기까지 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가진 다양한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해법은 쉽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덕업일치를 이루기란 실로 어렵다.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들의 실재 사례를 들어본 즉은



여기에 나 호호당이 긴 세월 상담을 해오는 과정에서 지켜본 바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들의 케이스를 얘기해보겠다. 


덕업일치를 이루고 그걸 평생의 업으로 해가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나본 바에 의하면 그들 대부분이 거의 빠지지 않고 토로하는 얘기가 하나 있다는 점이다. 그게 뭔가 하면 어려운 처지였는데 그 상황에서 본인이 그런대로 잘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딱 하나밖에 없더라는 얘기이다. 


궁핍한 상황에서 돈을 벌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달리 없었기에 그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 덕업일치를 이룬 대부분 사람들의 얘기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일에 대한 재능이 충분한지 그게 세상에 나가서 먹힐 지 어떤 확신도 전망도 크지 않았지만 그나마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로 오묘하고 심오한 운명의 逆說(역설)


사실 이게 바로 삶과 운명의 지극히 깊고 오묘한 이치라 여긴다. 


선택지가 많은 자는 미련 때문에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한 결과 후회하게 되는 것이고, 재주가 많은 자는 그 많은 재주로 인해 하나의 長技(장기)를 갈고 닦지 못한다. 환경이 윤택한 자는 절실하지가 않아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지 못하니 그로서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반대로 변변치는 않아도 달리 선택지가 없다면 오로지 그 길로만 나아갈 것이다. 도중에 끊임없이 미심쩍어 하고 때론 막막하기도 하겠으나 여전히 다른 방도가 없으니 어려울 때마다 안간힘을 다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묘하게도 길은 계속 이어지고 점차 나아진다. 그러다 보면 먹고 살만한 수입도 얻게 되고 이에 신이 나서 더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마침내 당초 상상하지도 못했던 성공을 거두게 된다. 


덕업일치를 이룬 자에게 물어본 결과 처음부터 자신의 일을 무작정 좋아하고 즐거웠다기보다 하다 보니 손에 익고 능력도 더 생기는 과정에서 점차로 자신의 일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 실은 더 일반적이었다. 



구체적인 사례 소개



이 대목에서 실례를 하나 소개해본다. 나 호호당과 친밀한 사이라서 얘기를 좀 해도 나중에 책망하진 않을 것이라 여기기에 얘기한다. 유명한 수학강사의 인생 스토리이다. 


어려운 집안에서 생계를 꾸려갈 사람이라곤 본인 밖에 없어서 25세 무렵 대학을 마쳤으나 수학과를 택해서 다시 1학년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수학, 장래 전망은 크게 없어 보였지만 원래 좋아하는 과목이고 나중에 강사로 나서면 먹고 살 순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수학 가정교사 일로 등록금 마련은 물론이고 가계 살림도 책임졌다 한다. 그 때가 1985년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34년 동안 오로지 수학강사의 길을 걸어왔는데 지금은 서울 강남과 분당 등지에서 규모가 상당한 학원을 경영하고 있다. 경영 때문에 또 체력 때문에 시간은 줄였으나 여전히 직접 강의를 맡고 있다. 돈도 상당히 벌었다. 간단히 말해서 성공했다.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겪었으나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헤쳐 나왔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돈도 많이 벌었으니 덕업일치로 성공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사실 나 호호당은 이런 분들을 적지 않게 알고 있고 또 상담을 통해 만났다. 



성공했다는 말까지 듣지 않아도 충분한 삶이지만



오늘의 글은 덕업일치란 것이 과연 가능한가를 묻고 있다. 이에 대답은 ‘가능하다’이다. 그러나 핵심을 얘기하면 덕업일치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 이전에 무수한 산과 강을 넘고 건너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태어나 살아보는 세상이다. 사실 굳이 성공했다는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떠랴. 한 번 살아본다는 것이 벌써 기막힌 행운이니 말이다. 나 호호당이 보기에 태어나서 자라고 성인이 되어 짝을 짓고 자녀를 낳아서 무사히 길러낸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공이란 생각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실은 이거야말로 대단한 사업이자 큰일인 까닭이다. 


그런데 기왕지사 한 번 태어난 것 내친 김에 성공도 하고 싶은 우리들이고 덕업일치도 해보고 싶은 욕망 누구에게나 있으니 그 또한 자연스런 욕망이다. 



치열한 세상에서 그래도 성공해보고 싶다면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다. 20122년에 작고한 미국의 유명한 진보적 작가인 고어 비달(Gore Vidal)의 말이다. “내가 잘 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실패해야만 내가 성공할 수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성공하고픈 욕망이 있기에 치열하고 또 치열한 곳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덕업일치를 통해 성공한 자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재능은 경쟁을 통해 가려지고 또 벼려지는 것이고 열정 또한 견디지 못하면 별 게 아니게 된다. 남이 실패하고 내가 선택을 받는 행운도 따라야 하겠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는 무모한 용기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덕업일치를 이룬 자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부터 큰 욕심이 없고 그저 자신의 하는 일을 통해 겨우 밥만 먹고 살 수 있으면 만족이란 생각을 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 욕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감히 그럴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어 남들로부터 저 사람은 덕업일치를 이룬 자야 하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 실은 더 일반적이란 얘기이다. 



그 어떤 길도 막다른 길은 없기에



이 세상의 어떤 길도 막다른 길은 없다. 다가서다 보니 길이 막혔다고 스스로 생각을 할 뿐이라 본다. 용기를 내어 끝까지 가보면 또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샛길을 발견할 것이니 또 그 길로 걷다보면 마침내 넓은 길을 만나게 되는 것이 인생이고 운명의 묘미라 여긴다. 


힘든 오늘의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오늘의 글이 나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악다구니 투쟁으로서의 30년 전쟁



아주 오래 전 유럽에서의 일이다.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나라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장장 30년간에 걸쳐 참혹한 전쟁이 있었다. 1618년에 시작해서 1648년에 끝났기에 흔히 30년 전쟁이라 부르고 있다. 


말로는 종교 전쟁이라 하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았다. 판이 커지자 거의 모든 유럽의 나라들이 개입되면서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진 악다구니 투쟁이었다. 


같은 개신교 국가이던 덴마크와 스웨덴이 반대 진영에 서서 싸웠으며 프랑스 역시 가톨릭 국가였음에도 같은 가톨릭 제국인 신성로마제국과 전쟁을 했다. 종교적 신념보다 서로의 이익이 중요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아사리판’ 이었다. 


지역 영주나 제후들은 가톨릭교회가 가진 방대한 재산을 빼앗기 위해 졸지에 개신교로 전향하기도 했으며 헝가리 왕은 폴란드 땅을 차지하기 위해 당시로선 악마로 치부하던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末世(말세)의 전쟁이었으나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그 전쟁은 종말 전쟁이었다. 세상의 진정한 종말이 다가왔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기존의 모든 도덕과 가치관이 무너졌으며 중세 유럽을 이끌어오던 하느님의 율법과 예수의 가르침도 덩달아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당시 사람들에겐 실로 끔찍한 사건이었다. 


책방에 가면 30년 전쟁을 소개하는 책이 제법 된다. 내 경우 영국 사학자 윌슨이 쓴 “유럽의 비극, 30년 전쟁사”를 아마존을 통해 구입해서 읽었고 번역판으로 베로니카 웨지우드의 “30년 전쟁”을 읽었으며 기타 여러 권의 책을 예전에 읽은 바 있다. 


그런데 워낙 일의 경위와 사정이 복잡다단해서 읽다가 포기할 정도였다. 그저 내가 받은 인상이라곤 인간의 탐욕이 실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누군가 30년 전쟁에 대해 물어올 것 같으면 그냥 온 유럽이 외부의 오스만 제국까지 끌어들여서 싸웠던 이판사판 개판 전쟁이었으니 더 이상 알 것 없다는 식으로 얘기해준다. 묻지마, 복잡해!



전쟁 결과 누군가에겐 구역질나는 합의가 이루어졌으니



어쨌거나 기진맥진해서 끝이 날 수밖에 없었던 전쟁이었다. 절대 승자도 절대 패자도 없었지만 나름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고 이에 종전협상을 시작했다. 참전 당사국 대표만도 무려 109명이었다. 진통 끝에 조약을 체결했다. 오늘날 독일 서북쪽의 지역인 베스트팔렌의 오스나브뤼크와 뮌스터에서 조약문이 작성 체결되었기에 훗날 역사가들은 베스트팔렌 조약이라 부른다. 


조약문은 프랑스어로 작성이 되었는데 그 바람에 프랑스어는 국제외교의 공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오늘날 영어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어 프랑스 사람들의 자존심을 긁어놓고 있다.)


길고 긴 조약문이었다. 무려 88개의 조문과 부속 문항들로 이루어져 있다. 원하시면 구글을 통해 검색해볼 수 있다. 구글 만세! 


조약을 통해 수많은 영토가 재조정되었고 엄청난 이권들이 거래를 통해 오갔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은 각 나라마다 그 지배자의 선택에 따라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를 결정할 자유를 갖는다는 점이었다. 


오늘날 이른바 현대 세속국가에서 당연히 인정되는 종교의 자유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던 셈이다. 물론 당시에는 각 나라의 군주나 지배자가 종교를 결정하는 것이지 일반 백성들에게 그런 권리와 자유가 없었다. 


그 바람에 일반 시민이나 백성들은 종교 때문에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가거나 탈출하는 일이 러시를 이룰 정도였고 특히 고급 기술자들의 이주나 이민으로 인해 유럽의 산업지형이 바뀔 정도였다. 



민주화는 당하는 것이지 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 우리 젊은이들은 민주화 되었다, 민주화 당했다는 재미난 표현을 쓰곤 하는데 그 말은 참으로 정곡을 찌르고 있다. 민주화란 것은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것이지 자발적으로 되지 않는다. 유럽 역시 그 이후 민권이란 것이 생겨났으니 그 역시 민주화당한 셈이다. 


아무튼 참혹한 30년 전쟁의 결과 조약이 체결되었고 각 나라의 종교는 각국 지배자의 선택에 따라 정해지게 되었는데 당시 종교 지도자들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로선 도저히 눈 뜨고 봐 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절대에서 상대로의 이행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은 그 이후 세월이 갈수록 심대하고도 폭 넓은 영향력을 미쳤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으로 이 세상에 이른바 절대, 영어로 absolute 란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아직도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 진실이라든가 진리와 같은 것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선 그 바람에 ‘실체적 진실’이란 희한한 용어를 쓰고 있다. 들을 때마다 웃게 된다.)


眞實(진실) 혹은 眞理(진리), 영어로는 true 또는 truth 가 된다. 과거에 이런 단어는 종교적 절대권위의 차원에서 사용되던 말이다. 그런데 개신교적 가르침도 옳고 가톨릭의 그것도 옳다면 둘은 서로 상대적인 위치로 격하될 수밖에 없다. 


엄청난 희생과 비용을 치르게 했던 유럽의 30년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절대적인 것이 사라지고 상대적인 시대로 변했다는 점이었다. 


절대적 진리가 인정받지 못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은 이제 소위 正答(정답)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 정답이란 시험을 칠 때 출제자가 정해놓은 답이 정답인 것이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삶에 정답이 없다고 한다면 각자는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전까지는 교회의 가르침이 정답이었으니 실천하긴 어려워도 그냥 믿으면서 곧이곧대로 살기만 하면 모두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모든 것이 애매해져서 잿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된 1648년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전통적 사고방식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말세가 왔고 불신의 지옥문이 열린 셈이었다. 



민주화와 과학혁명은 相對主義(상대주의)의 시대에 등장했다.



하지만 상대적 가치의 시대가 열리면서 민권의 시대 즉 민주주의와 과학적 사고방식이 길을 열었다.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방식은 결국 다수결이다. 그 이전에 나름 충분히 토의를 거치고 또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본 후에 유권자들이 투표를 한다. 그러면 임시적이고 상대적이긴 하지만 방향이 정해지고 결정이 난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이른바 개나 소나 한 표로서의 가치는 동등한 것이 바로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이다. 또 그 결정이 정답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아무런 관계가 없고 연륜이 쌓인 자나 새파란 철부지나 상관이 없다, 그저 일정 연령이 되어 투표권만 있으면 되는 세상이다. 


정답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거야말로 개판 5분전인 것이고 식견과 경험이 많은 자의 관점에서 이거야말로 엉망진창인 세상이 오늘날의 세상이다. 그렇기에 1대1의 입장이 되면 어떤 말과 주장을 해도 그건 “님 생각이시구요!” 하면 그만인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준 과학을 보면 상대적 세계가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과학의 정신은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과학적 정신은 기본적으로 회의, 즉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갈릴레이의 지동설 그리고 데카르트의 회의적 방법론이 과학의 모태인 것이다. 


이에 가설을 세우고 검증과 실험을 통해 어느 수준 이상 오류가 없으면 과학적 법칙이 된다. 과학적 법칙은 그것이 틀렸다는 새로운 증거나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 유효하다. 상대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나 과학 모두 상대적 세계의 산물이란 얘기이다. 



우리는 아직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인 시대에 머물고 있다.



이제 슬슬 나 호호당이 오늘 이 글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꺼낼 때가 되었다. 왜 갑자기 독자들에게 낯설 수 있는 17세기 유럽의 전쟁 얘기를 끄집어내어야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건 결국 우리에 대해 얘기하기 위함이다. 


1950년대의 폐허에서 일어선 우리 대한민국이다. 겉으론 분명히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있지만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도 실로 많고 다양하다. 그리고 그 문제점들에 대해 살펴보다 보면 우리가 아직 상대적 세계의 가치관을 우리 것으로 소화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근대화를 이끌어낸 유럽이 1648년부터 이미 절대적 세계에서 상대적 세계로 이행을 시작한 것에 비하면 그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그러니 우리에게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우리는 여전히 절대와 상대가 함께 공존하는 헷갈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근대화, 영어로 Modernization 이란 단어가 있다. 이게 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상대적 세계로 넘어오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반대로 말해서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 또한 근대화의 근저에 놓인 상대적 세계에 대한 인식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근대화는 합리화와 통하는 말이다. 그런데 합리화란 기존의 생각과 방식에서 벗어나 원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가능해진다. 이미 주어져 있는 정답이 아니라 그간에 정답이던 것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할 때 비로소 좀 더 나은 방식을 찾는 과정 즉 합리화가 시작된다. 


그런 면에서 비록 우리가 근대화를 해오긴 왔지만 그건 겉에 걸친 외투이고 속으론 미처 체화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그간에 생산적 결과를 가져오기 보다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해온 결과 오늘에 이르러 소위 ‘진영논리’만 남았을 뿐이고 아군이 아니면 적이라는 살벌한 생각만 가득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우리 정치는 이제 거의 파산 직전에 와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정치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서 이런 문제는 비단 우리 대한민국만의 문제 또한 아니다. 일본도 그렇고 중국 또한 그렇다. 동북아시아의 유교적 전통이 새롭게 혁신되지 않은 바탕 위에 근대화가 진행되어 왔기에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2024년이면 우리 국운의 입춘 바닥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그로서 다시 2084년에 이르는 60년에 걸친 국운 제3기가 시작될 것이다. 어쩌면 국운 제3기가 끝나갈 무렵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상대적 세계로의 전환이 구체화되어 있지 않을까 전망해본다. 


오늘은 다소 무거운 주제였고 나름 최대한 줄였지만 글 분량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얘기를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로저 페더러냐 라파엘 나달이냐?

 

 

며칠 전 2019 US오픈 테니스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 라파엘 나달과 메드베데프의 시합을 텔레비전에서 시청했다. 긴 시합이라 도중에 그만 두었지만 나중에 나달의 승리를 확인했다. 이로서 나달은 19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에 성공하면서 20회 우승의 로저 페더러를 바짝 뒤쫓고 있다.

 

그래서 나달의 사주를 확인해보고 또 페더러의 사주까지도 확인해보았는데 아주 흥미로운 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의 사주 구성이 대단히 흡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사주구성이 대단히 흡사한 두 선수를 비교해본다.

 

 

라파엘 나달의 사주부터 알아본다.

 

1986년 6월 3일 오후 6시 20분이다. 따라서 丙寅(병인)년 癸巳(계사)월 戊寅(무인)일 辛酉(신유)시가 된다.

 

운기가 절정인 입추가 2008년 戊子(무자)년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2008년부터 나달의 기세가 본격 상승하고 있다는 말이다.

 

로저 페더러의 경우 1981년 8월 8일 아침 8시 40분이다.

 

러니 辛酉(신유)년 丙申(병신)월 戊午(무오)일 丙辰(병진)시가 된다. 운기의 절정인 입추는 1998년 戊寅(무인)년이었다.

 

두 사람의 사주 구성을 비교해보자.

 

라파엘 나달: 丙寅(병인)년 癸巳(계사)월 戊寅(무인)일 辛酉(신유)시

로저 페더러: 辛酉(신유)년 丙申(병신)월 戊午(무오)일 丙辰(병진)시

 

유사점#1. 두 사람의 태어난 날 즉 日干(일간)이 무인이고 무오이니 모두 戊土(무토)로서 같다.

 

유사점#2. 두 사람 모두 사주 구성에 辛酉(신유)라는 코드가 들어있다. 두 사람에게 있어 신유는 빼어난 기운이자 동시에 금 기운이기에 메카닉적인 정밀성이 뛰어남을 말해준다. 두 사람 모두 지극히 정밀한 스트로크를 해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유사점#3. 두 사람 모두 여름철 태생이어서 열정과 에너지가 강하고 동시에 사주 천간에 丙火(병화)가 있어 공간 파악 능력이 뛰어남을 말해준다.

 

두 사람의 다른 점을 찾자면 라파엘 나달은 천간에 癸水(계수)가 있어 냉철한 구석이 있다는 점이고 로저 페더러는 그에 반해 공간 파악 능력이 좀 더 뛰어나다는 차이가 있다. 나달은 게임이 꼬일 때 냉정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좋다는 것이고 페더러는 기세가 강하다는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만간 나달의 시대

 

 

종합적으로 파악하자면 라파엘 나달이 로저 페더러보다 조금은 더 천재적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멀지 않아 나달이 페더러의 기록을 넘어설 것이라 여긴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 로저 페더러가 정상에 오른 시기는 2004년이었으니 1998년의 입추를 넘긴 지 6년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라파엘 나달의 경우 입추가 2008년이었는데 그 이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서 2006년 무렵엔 이미 세계 랭킹 2위에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천재성이 더 돋보인다.

 

로저 페더러의 경우 작년 2018년으로서 서서히 내리막을 가는 대설의 운이었기에 이제 2020년부터는 급격히 하강세를 보일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라파엘 나달의 경우 2018년이 한로의 운이었기에 앞으로도 10년 이상 활약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조만간 로저 페더러의 기록을 갱신함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성적을 남길 수 있다는 판단이 든다.

 

 

서산에 지는 해와 오후의 작렬하는 해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 두 사람의 사주구성이 아주 흡사하다는 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로저 페더러의 경우 이제 서산에 기울고 있는 황혼의 햇빛이라면 라파엘 나달은 아직 뜨거운 오후의 작렬하는 백열의 태양이라 하겠다.

 

참고로 현재 탑 쓰리 안에 드는 조코비치의 경우도 알아보았다. 조코비치는 2001년이 입추로서 올 해의 경우 라달과 메이저 대회를 양분하고 있는 절정의 선수이지만 로저 페더러에 이어 나이와 운세 모두 약간씩 기울어가고 있다.

 

이에 전망해보면 남자 테니스의 경우 향후 5년을 본다면 라파엘 나달과 조코비치의 시대가 될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데 라달이 좀 더 우세할 것으로 전망한다.

 

 

기아차와 나달의 특별한 인연

 

 

라파엘 나달은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기아 자동차가 메인 스폰서라는 점에서 말이다.

 

특히 재미난 점은 기아자동차의 경우 나달이 2004년 발목 부상으로 향후 전망이 극히 어두워지는 바람에 모두들 스폰서 계약을 망설일 때 과감하게 스폰서 계약을 체결해서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아 측의 판단이 대단히 정확했고 뛰어났다.

 

나달 역시 그런 기아에 대해 대단히 고마워하고 있기에 바쁜 일정에도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으며 여전히 좋은 관계를 지속해가고 있다.

 

 

스포츠와 운세와의 관계

 

 

모든 사람에게 기세가 오르는 때가 있고 또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포츠의 경우 신체적 역량 즉 피지컬을 유지할 수 있는 시기가 젊은 시절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좋은 운세와 피지컬이 함께 가야만 빛을 볼 수 있다.

 

그 바람에 프로 스포츠 업계는 늘 희비가 엇갈린다. 유망주라고 비싼 돈을 들여 영입했으나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반대로 그냥 별 기대도 없이 썼더니 대박을 내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박병호 선수의 경우가 그렇다. 이제 막 운세가 급상승하려던 시점에 LG트윈스를 떠나 히어로즈로 옮겼는데 곧 대박이 났다. 이른바 탈쥐 효과가 그것이다.

 

그런 점을 지켜보면서 늘 흥미롭고 동시에 딱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연순환운명학의 이론을 알아내고 정립해낸 나 호호당에게 그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 선수의 경우 애로사항이 하나 있으니 선수의 생일이 양력인지 음력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지방의 경우 1980년대 후반의 경우에도 음력 생일로 기재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이렇다. 최근 엘에이 다저스의 신인 개빈 럭스(Gavin Lux) 선수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에 생일을 확인해보니 생시 확인이 되지 않는다. 아직은 무명의 선수라서 점성술 사이트에 포착되어 있지 않다.

 

이에 생년월일만으로 추정해봐야 한다. 1997년 11월 23일생이니 정축년 신해월 기사일이다. 생시를 모르면 경우의 수는 두 가지가 된다. 상황을 보아 추정할 수밖에 없다. 2019년이 입추가 되든가 아니면 입춘 바닥이 된다. 하지만 입춘 바닥에 메이저 선수가 되는 법은 없으니 당연히 올 해 2019년이 입추가 된다.

 

활약은 입추부터가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정도 운세에서 유망 신인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면 이 선수는 장차 충분히 대박감이다. 엘에이 다저스의 주축 타자가 될 수 있는 선수인 것이다.

 

 

추석 연휴를 보내면서

 

 

오늘은 일요일, 추석 연휴가 끝나가고 있다. 직장인들은 이제 또 일하러 나가야겠네, 아이고! 하면서 울적해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일부러 무거운 주제를 피했다. 우리나라의 8월은 온통 ‘조국’이었고 9월에도 조국이 될 공산이다. 다음 주면 秋分(추분)이다. 가을이 깊어질 것이다. 호호당의 기분도 가볍지 않고 다소 침울하다.

 

점차 내리막을 걸어온 우리나라의 국운은 다음 달 10월부터 한층 더 엄중하고 답답한 상황으로 들어갈 참이다. 교역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내수는 가라앉고 있으니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얼씬 거리고 있다.

 

(추석 연휴 때문인지 21일에 시작하는 자연순환운명학 기초강좌 클라스에 아직 여유가 있다. 많이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





언젠가 글로도 썼던 내용이지만, 귀인을 언제 만나게 되는지 다들 궁금해한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생의 60년 사이클 속에서 귀인은 3번 정도 만나게 된다. 물론 이들을 만나게 되는건 운이 아니다. 스스로 그들을 만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 때가 되어야만 귀인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가지고 강의를 해보았다.





주위에서 간혹 나이가 들어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크게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운의 순환이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어서 30년 즐겁다면 30년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중년의 시기에 좀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결코 낙담할게 아니란 것이다.


이전 강의는 성공적으로 중년을 보내고 노년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한 내용을 담았다면, 이번엔 중년에 힘들게 보내고 노년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한 내용을 담았다.






치열하게 경쟁하여 성공한 사람이라도 언젠가 은퇴를 하게 된다.


은퇴 이후에 대해서 막연히 '그냥 소일거리 하며 지내지, 뭐.'라며 생각해왔다면 정말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은퇴 이후의 삶을 잘 가꾸는 것도 쉬운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대하여 강의해 보았다.


시골 청년이 무작정 상경하게 된 사연



시골 산중에 살던 아이가 있었다. 남들처럼 큰 도시에 나가서 화려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계단식 논 몇 마지기와 밭이 조금 있을 뿐이니 우린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면서 아이를 달래기도 하고 때론 야단을 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던 아이는 어느새 고등학교를 마치고 성인이 되었는데 어느 날 신문 하단에서 서울에 있는 에어컨 가게에서 보조기사를 모집하는데 숙식도 제공한다는 내용의 작은 광고가 눈에 띄었다. 


청년은 혹시나 싶어서 연락을 했더니 그쪽에서 봉급은 적지만 해보고 싶으면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이에 그 청년은 부모님과 상의도 하지 않고 공책을 찢어 떠난다는 사연을 적은 뒤 몰래 가방 하나 메고 서울로 상경했다. 때는 1993년 말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참으로 고생이 많았지만 꾹 참고 일했다. 적은 봉급에 근무 시간도 따로 없었다. 밤 시간이라도 전화만 오면 즉각 출장을 나가서 가정용 에어컨을 수리해야만 했다. 알고 보니 숙식제공 역시 야밤에 가게에서 전화를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일하다 보니 이른바 그 바닥, 즉 에어컨 설치와 수리로 먹고 사는 세계에 대해 견문이 넓어져갔고 성실히 일한 탓에 3년을 일한 뒤 좀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곳으로 옮겼고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발전해갔다. 물론 그 사이에 군대도 갔다 왔다.



그 초라한 서울행이 바로 귀인의 운이었으니



그 청년은 서울로 상경한 1993년으로부터 근 26년이 흐른 2019년 현재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로서 국내 유수의 시스템 에어컨 회사에서 전무로 재직 중에 있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바로 그 1993년에 서울로 상경한 일입니다. 그게 바로 첫 번째 귀인의 운이었으니 말이오.”

“아니, 그 양반이 제게 귀인이었다고요, 그냥 박봉에 빡 세게 일만 했을 뿐인데요?”


“그 가게 사장님이 당신을 특별 대우해준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그 인연으로 해서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고 그 이후 열심히 노력한 결과 오늘날 업계에선 말만 하면 알아주는 기업의 전무로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 인연이 귀인이고 시골 청년을 받아준 그 사장님이 바로 귀인이지요.”


내 말에 그 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요, 당장 큰 것은 아니었어도 그게 오늘의 내 위치로까지 오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맞지요.”


상담 온 분의 운세로 볼 때 1993년은 바로 입춘 바닥으로부터 18년이 조금 지날 무렵이었기에 앞글에서 말했듯이 처음 맞이하는 귀인의 운이었던 것이다. 



송해 선생님에게 찾아든 귀인의 운



이에 또 다른 예로서 널리 알려진 분의 얘기를 하나 소개해본다. 전국노래자랑으로 현재 최고령 현역 연예인이신 송해 선생님의 얘기이다. 


송해 선생님은 1927년 5월 27일에 태어나셨기에 丁卯(정묘)년 乙巳(을사)월 辛酉(신유)일 된다. 입춘 바닥은 1971년이었다. (생시까지 알아야만 운세의 기산점인 立春(입춘)을 알 수 있지만 그간의 경력이 있으니 그냥 알 수 있다.)


운세가 기울 무렵 코미디언 생활을 시작하셨기에 큰 인기를 얻진 못하고 보조 역할에 그쳤다. 그러다가 입춘 바닥으로부터 15년, 즉 立夏(입하) 무렵에 아드님을 잃는 큰 비극을 겪어야 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사실 입하야말로 여러 모로 가장 어려운 때인 까닭이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중 전국노래자랑을 맡아 보겠느냐는 제의를 받았고 이에 큰 기대 없이 생계를 위해 응하게 되었으니 1988년 5월부터였다. 1971년이 운세 바닥으로부터 18년만의 일이다. 이게 바로 첫 번째 귀인의 운이었던 것이다. 전국노래자랑이야말로 오늘날의 송해 선생님을 만들어준 발판이 아닌가! 



첫 번째 귀인의 운은 슬며시 찾아드는 법이니



첫 번째 귀인의 운에 이어 두 번째 귀인의 운이 찾아오면 그건 누구나 이건 정말 행운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실감하게 되지만 사실 첫 번째 찾아오는 운은 그런 실감이 들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실은 그게 더 중요한 발판이 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첫 번째 귀인의 운에 직장에 입사한 경우도 많이 본다. 그런 경우 그 인연이 발판이 되어 그 이후 세월이 지나면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그 직장에서 성공하거나 아니면 옮겼더라도 그 때의 인연이 발판이 되어 잘 발전해간다. 


또 어떤 아주머니는 첫 번째 귀인의 운에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된 경우도 많이 본다. 두 사람 모두 가진 것은 없었으나 그 이후 합심해서 집안이 번창하는 경우가 바로 이 케이스이다. 그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은 아저씨와 결혼한 것이란 얘기를 드렸더니 씩 웃으면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하고 긍정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웃은 적이 있다. 


이처럼 첫 번째 귀인의 운은 이처럼 슬며시 찾아든다. 그렇기에 그게 행운이란 것을 미처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는 얘기이다. 



飮水思源(음수사원)이란 사자성어



飮水思源(음수사원)이란 말이 있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내가 그런대로 잘 성장해서 사회적 성취도 이루었다고 할 때, 그 뿌리가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부모님이 잘 길러 주셨고 만나는 사람들이 도와주고 때론 야단도 치면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것이니 그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면 당장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처신도 크게 잘못이 없게 된다는 의미를 담은 사자성어이다. 


나 호호당이 보기에도 첫 번째 귀인의 운을 만나서 그 이후 무난하게 잘 성장해왔다면 반드시 그 근원인 첫 번째 귀인의 운에 대해 고마워해야 한다고 본다. 이 세상은 어떤 면에서 내 능력으로 살아가는 곳이지만 동시에 사람은 사람과의 인연 속에서 발전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의 앞부분에서 사례로서 소개했던 그 분에 대해서도 예전에 서울로 오도록 인연을 만들어준 그 에어컨 가게 사장님을 한 번 찾아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기도 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사람 하기에 달린 일



귀인의 운은 그냥 찾아드는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을 때만이 찾아든다. 저 친구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좀 도와주고 싶은데 하는 마음, 저 사람 경력은 부족해도 일하는 자세를 보니 일을 맡겨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 이처럼 주변의 눈이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미래에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서 인연을 맺을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좋은 인연을 만나면 결과가 좋을 것이고 악연을 만나면 좋지 못한 결과를 보게 되겠지만 그 또한 생각해보면 결국 내 생각과 태도에 달린 문제라는 점이다. 악연을 만났다고 그 사람을 원망하기보다 왜 그런 사람을 내가 선택했을까 하는 점부터 생각해볼 일이란 얘기이다.

 

그렇기에 모든 일은 결국 본인의 태도에 달린 문제가 된다. 



처음의 마음가짐을 잃다 보면



하지만 사람은 긴 시간을 두고 볼 때 늘 한결같지 않다. 고생할 적엔 성의가 넘치던 사람이 다소 상황이 풀리고 먹고 살만 해지면 방심한 나머지 처음의 마음가짐 즉 初心(초심)을 잃게 되는 것이 또 사람인 것이니 그게 바로 운이 하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60년 순환에 있어 세 번에 걸쳐 귀인의 운이 찾아든다고 말했는데 세상 이치는 공평해서 반대로 세 번에 걸쳐 귀인을 내 스스로 떨쳐버리게 되고 그로 인해 운의 바닥에 이르러 고생하는 경우도 흔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경우 스스로 근신하고 자중하거나 그간의 일에 대해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위기를 넘기게 된다. 이를 두고 물러날 때를 안다고 말한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결국 세상사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 즉 進退(진퇴)의 시기를 알면 운이 바닥에 들어서도 큰 무리가 없고 그저 조용하게 세월을 보내며 또 다시 찾아온 순환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이다. 


그 실례로서 미국의 세계적 갑부이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너인 빌 게이츠는 1975년에 사업을 시작해서 2005년에 은퇴를 단행했다. 30년만의 일이니 이는 60년 순환의 절반이다. 


빌 게이츠가 사업에 나선 1975년은 나서기만 결국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夏至(하지)의 운이었고 그가 물러난 2005년은 이제 물러나면 그 뒤로 아무런 탈이 없는 冬至(동지)의 운이었다. 그러니 가히 道士(도사)라 불러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하겠다. 


그러니 목이 말라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떻게 해서 내 입속으로까지 들어올 수 있었느냐를 생각해보는 마음 자세, 이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잃지 말아야 하는 생각이라 하겠다. 


(자연순환운명학 기초이론 강좌 공고를 블로그에 올렸다. 그 코너에 강좌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짧은 동영상도 붙여놓았다는 점 알려드린다. )






나는 언제쯤이면 귀인을 만날까? 하는 궁금증

 

 

살아가면서 보노라면 우리 주변의 어떤 이는 뜻하지 않게 사람을 잘 만나서 일이 척척 풀리거나 생각 밖의 행운을 만나서 눈부시게 발전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런 일을 두고 항간에선 흔히 貴人(귀인)을 만났다고 말한다. 예부터 써오는 말이니, 원 의미대로 풀이해보면 지체가 높은 사람으로부터 은전을 입어 신세가 풀렸다는 말이 되는데, 현실에선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꼭 사람이 아닐지라도 예기치 않은 좋은 기회를 잡아서 일이 잘 되어지는 것을 뜻한다.

 

가령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답답한 사람이 ‘아이고, 나는 언제쯤에나 귀인을 만날꼬!’ 하는 푸념을 할 때도 자주 사용된다.

 

이에 오늘은 이른바 귀인의 운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리 모두 혼자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란 점부터 알 필요가 있다. 바깥에 나가 내 돈을 주고 밥을 사먹는다 해도 밥 파는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니 사람은 혼자만의 사람이 아니란 얘기이다.

 

이는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기업을 포함해서 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 독립 자존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오늘날 최강국인 미국마저도 다른 여타 나라들을 무시하고 외면한 상태에서 유지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든 나라는 으레 국가 행정부서 중에 외교(Foreign Affairs)를 담당하는 부서를 설치 운영한다. 어쨌거나 함께 살아가는 세상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을 포함하여 모든 일상생활에서 주변 사람이나 타인들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끊임없이 주고 또 받으며 살아간다. 이런 뻔한 말을 여기에서 하는 까닭은 귀인은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특별한 귀인의 운 또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니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는 귀인은 다소 특별한 사람이나 또는 예기치 않았던 좋은 기회에 관한 것이다.

 

나 호호당은 2014년에 이르러 자연순환의 이치를 과학적으로 검증해낸 이래 줄곧 지속적인 사례연구를 통해 귀인의 운이 구체적으로 언제 사람에게 찾아오는 지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내용을 얘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귀인을 만나는 운은 작게는 5년 즉 60개월마다 한 번씩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일생을 통해 가장 크고 특별한 귀인의 운은 60년 순환을 통해서 세 번에 걸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일생을 통해 기회는 세 번 찾아온다는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귀인의 운은 언제 작용하는가 하는 시점의 문제가 남는다. 이 점에 대해 얘기해보면 60년 순환의 경우 입춘 바닥 시점으로부터 최초 귀인의 운세는 17-18년 정도 경과할 무렵에 찾아들고 그 다음으로 27-28년, 마지막으로 37-38년이 경과할 무렵에 찾아온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적은 귀인의 운세는 매 5년 60개월 사이클마다 27-28개월이 경과할 무렵에 찾아온다. 이는 앞의 운에 비해서 비교적 작은 귀인의 운이라 하겠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이제 구체적인 사례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을 예로서 설명해보자.

 

 

첫 번째 귀인의 운

 

우리나라의 경우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 시점은 1964년이었다. 그런 이후 1981년 9월 서울 하계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었다. 솔직히 당시로선 개최를 신청하긴 했으나 객관적으로 볼 때 그다지 바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덜커덕 하고 서울이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서울 올림픽은 단순한 체육 행사가 아니었다. 우리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우리는 1980년 광주에서 비극적인 희생을 겪는 등 당시 사회 분위기는 대단히 암울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개최지로 선정된 다음에도 과연 우리가 올림픽이란 거창한 행사를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는가 하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형식적으로 신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망외의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 1981년 9월의 서울 올림픽 개최지 선정이었다.

 

(훗날 우연한 계기에 알게 된 사실로서 우리 서울이 선정된 배경에는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 대한민국은 여전히 빈곤하고 초라한 개발도상국에 불과했음에도 말이다.)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고 마침 그 무렵 우리 정치는 1987년 민주화와 함께 경제 또한 비약적인 약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1981년 가을의 서울 올림픽 개최 확정은 그런 면에서 오랜 시련을 겪던 우리 대한민국으로선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으니 그것이 바로 최초의 귀인 운이었다.

 

 

두 번째의 귀인 운

 

 

두 번째의 귀인 운은 1992년에 찾아들었다. 1964년 국운의 입춘 바닥으로부터 28년이 흐를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 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이후 일종의 조정기로 접어든 상태였다.

 

그러자 지나치게 올랐던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여 주었는데 그 무렵 증시를 부양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슈는 증시개방, 즉 외국인 투자 허용이었다.

 

1986-1988년까지 3년 동안 우리 경제의 엄청난 성장과 함께 우리 기업들의 질적 양적 성장 또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소식을 접한 외국 펀드들의 투자 허용 요청도 지속적으로 있었던 참이기도 하다.

 

이에 당시 정부는 1992년 8월 증시가 극도로 부진에 빠질 무렵 마침내 증시 개방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이에 허우적대던 우리 증시는 순식간에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1992년 8월의 증시개방 건이 그것이다.

 

증시가 살아났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좋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 자체만으론 투자자들만 환호성을 올렸을 뿐이다. 하지만 증시개방은 그야말로 우리 경제의 성장 발전에 있어 두고두고 힘이 되는 메가톤 급 호재였던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자 우리 기업 운영의 모든 면에 있어서 투명성을 요구받기 시작했고 동시에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국제시장 기준에 맞는 경영 표준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1992년의 증시 개방은 우리 경제의 개방과 글로벌화, 즉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개방경제의 틀로 우리가 변화해감에 있어 엄청난 역할을 했기에 두 번째 귀인의 운이었다는 말을 한다. 증시 개방을 통해 성장에 필요한 자본 조달이 그 이전에 비해 훨씬 용이해졌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귀인의 운

 

 

이제 우리 경제에 있어 마지막의 귀인 운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것은 운세 상으론 2002년의 일이었으나 현실적으로 2003년 3월에 발생했다. 이 역시 1964년 바닥으로부터 28년만의 일이라 하겠다.

 

1997년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고 이에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우리 경제에 대한 많은 정보가 개방되었다. 그러자 외국 투자 펀드들은 우리 기업들의 미래 투자가치가 높다는 점을 발견 또 인식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김대중 정부 또한 외국인 투자에 대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 것도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2002년 노무현 정부가 등장하자 반미 성향에 대한 우려로 인해 잠시 머뭇거렸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걱정이 해소된 것은 2003년 3월 17일 새벽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미국 부시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렸고 이에 그 소식을 전해들은 외국인 투자의 엄청난 물길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그로서 우리 경제는 사실상 양적 질적 수준 모두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으니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이것이 마지막 귀인의 운이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실물 부문이나 금융부문 공히 전적으로 개방된 글로벌 경제체제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 대한민국은 글로벌 전체적으로도 손에 꼽는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내용만 충실하다면 더 이상 자본 조달 때문에 투자가 어려운 일은 사라졌다.

 

이처럼 우리 대한민국 역시 삼 세 번에 걸쳐 귀인의 운을 맞이했고 또 그를 활용하여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다음 글에선 개인의 경우에 대해 얘기할 참이니

 

 

오늘은 개인의 경우에 대해선 구체적인 실례를 들지 않았다. 실제 상담 사례를 통해 그간 무수히 확인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일이라 섣불리 노출하기가 어렵다는 사정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현실감이 떨어질 것이기에 다음 글에서는 널리 알려진 공인의 경우와 개인의 경우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알 수 없게끔 조심스럽게 각색을 해서 얘기해볼 까 한다.

 

(자연순환운명학 기초강좌 공고를 올렸다. 다음 달인 9월21일부터 시작하는 강에 평소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많은 분들의 호응을 바란다.)





살다보면 운명을 느끼게 된다.

 

 

저마다의 運命(운명)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젊은 시절엔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생살이 좀 겪다 보면 운명이란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거의 모든 이가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연구와 검증을 거쳐온 저 호호당에게 있어 운명이란 것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해와 같이 너무나도 명백하고 당연할 뿐입니다.

 

命(명)이란 부모로부터 받아서 타고난 저마다의 자질이고 바탕이며 性情(성정)인 것이고 運(운)이란 것은 결국 인생의 四季節(사계절)을 거쳐 가는 과정입니다.

 

 

한 인생 살다 간다는 것, 실로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니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얼마나 많은 고비를 견디고 또 버텨내어야 하며 또 얼마나 많은 굽이를 돌아가야 합니까. 이에 누군가는 한창 풍성한 가을을 보내고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이는 인고의 세월인 봄을 견뎌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세상 다 삼킬 기세로 왕성한 여름을 보내고 있으며 반대로 어떤 이는 만물이 시든 겨울과 같이 시들시들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생의 계절, 즉 운도 변해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뜨거운 여름도 어느새 서늘한 가을로 바뀌듯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드는 인생의 계절 역시 조금치도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인생의 사계절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변해가는 너무나도 유장한 흐름이기에 보통의 사람들은 그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감히 자신하는 바, 대략 50만 가지의 유형으로 구분이 되는 저마다의 命(명)과 그에 따른 운세의 변화를 조금치의 오차도 없이 짚어낼 수 있는 학문이 제가 30년의 연구와 검증 끝에 정리하고 틀을 세운 ‘자연순환운명학’입니다.

 

자연순환운명학은 사람의 일만이 아니라 세상 그 어떤 일이든 그 추이를 점검하고 장차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조직, 더 크게는 나라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놀라운 도구이기도 합니다.

 

 

자연순환운명학의 원리를 알게 됨으로써 얻는 근본 효용

 

 

우리가 살면서 갖게 되는 모든 불안과 불만은 미래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未知(미지)에 대한 不安(불안)인 것입니다. 언제 이 힘들고 어두운 터널이 끝이 날 것인지, 또는 지금 모든 것이 좋긴 하지만 불현듯 막을 내릴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등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자연순환운명학을 배우고 이해할 경우 무엇보다도 그런 불안감을 씻어낼 수 있다고 감히 자신합니다. 성공도 성취도 그와 반대로 역경과 고난도 사실 각자의 주어진 命(명)과 運(운)에 따라 다 때가 있기 때문에 미리 알고 대비한다면 적어도 막연한 불안감과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모든 것에 ‘당신의 때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더불어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도구 혹은 무기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얻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에 시작하는 자연순환운명학 기초이론 강좌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12회에 걸쳐 이어지는 기초과정의 회별 주요 강의 내용

 

 

제 1회. Introduction, 자연순환운명학의 전체적인 원리와 이론

제 2회. 생년월일시에 의거하여 사주를 추출하는 기본 방법과 陰陽五行(음양오행)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

제 3회. 운명이 통과해 가야 하는 24개의 관문에 대한 이해 #1

제 4회. 운명이 통과해 가야 하는 24개의 관문에 대한 이해 #2

제 5회. 60년 순환의 기산점 즉 立春(입춘)점을 파악하는 방법

제 6회. 60진법 속에 숨어있는 數(수)의 법칙에 대한 이해 #1

제 7회. 60진법 속에 숨어있는 數(수)의 법칙에 대한 이해 #2

제 8회. 운명에 작용하는 어길 수 없는 因果(인과)의 법칙

제 9회. 518,400개에 달하는 四柱(사주)의 개성과 특징 파악법 #1

제10회. 518,400개에 달하는 四柱(사주)의 개성과 특징 파악법 #2

제11회. 실제 사례를 통한 이론의 종합적 적용 방법 #1

제12회. 실제 사례를 통한 이론의 종합적 적용 방법 #2

 

 

 

 

강좌 개요

 

 

강좌 개최

- 2019 년 9월 21일 토요일 오후 4시 30 분부터 8시까지. 

 

강좌 기간

- 매주 토요일 1회, 총 12번의 강좌

 

강좌 시간

- 3 시간 30 분이고 중간에 간식 시간을 가집니다.

 

강좌 장소

- 강남역 근처 CNN the Biz 강남교육연수센터 강의실 (Tel. 02-564-4172) 

-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400 미터, 도로로 5분 거리



수강료

- 12회분 66 만원 (분납도 가능합니다.)

 

신청 방법

- 제 메일(1tgkim@hanmail.net)로 신청을 하시면 제가 참강 확인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 Tel. 02-534-7250로 오후 3시 이후에 전화주셔도 됩니다.

 

사전에 준비할 것은 없으며 더러 한자를 몰라서 망설인다는 분들의 문의가 있는데 아무런 애로가 없다는 점 알려 드립니다.



 

 

 

2019.8.26. 호호당 김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