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느낌이 난다. 날씨도 약간 덥고 신록도 싱그럽다. 무슨 나무이고 꽃인지 모르겠지만 마냥 명랑해보인다. 철 모르고 즐겁던 청소년기의 나 호호당이 생각난다. 무술 도장에서 열심히 연습을 하던 중 어쩌다가 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자식 땀 많이 흘리네 하고 웃던 기억이 난다. 운동 마친 뒤 귀가하면서 자주 사먹던 밀면- 부산은 밀면이 유명하다-도 기억난다. 그때는 밤 10시에도 식당이  문을 열고 있었다. 부산 용두산 공원 밑의 밀면집이었는데. 배불리 먹어도 1시간이면 다 소화가 되고 다시 시장기가 돌던 그 시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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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삶을 잘 마치고 떠나셨다. 올 초 몸이 편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생일을 따져보니 얼마 되지 않아 가시겠구나 하고 짐작했다.

 

1936년 12월 17일 저녁 9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다.

 

丙子(병자)년 庚子(경자)월 癸酉(계유)일 壬戌(임술)시가 된다.

 

(저녁 9시 출생이란 것은 대략적인 시각일 것이고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서경 58도 27분이니 술시로 추정하는 것이 온당하다.)

 

12월생이지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남반구 즉 남위 34도이기에 사실상 북반구의 6월에 해당된다. 차가운 사주가 아니란 얘기. (향후 나 호호당의 뒤를 잇는 후학이 있다면 지구의 북반구와 남반구 문제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연구해주기를 바란다.)

 

사주 구성을 볼 때 1973 癸丑(계축)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그 얼마 전인 1969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73년 입춘 시점, 4월 22일에 종신서원을 한 뒤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으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하는 입춘의 시점부터 사제의 길을 본격 걷기 시작했으니 훗날 로마 가톨릭 교회의 큰 인물이 될 것을 기약하고 있었다 하겠다.

 

운기가 가장 강한 입추가 2003년이었는데 그 2년 전인 2001년 大暑(대서)의 운에 추기경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3년 화려한 운세인 寒露(한로)의 운에 마침내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었다.

 

그로부터 12년간 교황의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셨으며 올 해 2025년은 冬至(동지)의 운이다.

 

동지는 더 이상 더 이상 새로운 비전(vision)이 없는 때가 되는데 아마도 교황께선 이 세상에서 하실 일을 다 마무리했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돌아가신 날이 4월 21일, 庚辰(경진)월 庚申(경신)일 아침인 庚辰(경진)시에 선종하셨다. 날을 보면 아무런 고통 없이 편히 숨을 거두신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1973년 종신서원을 한 날이 4월 22일이었는데 그로부터 52년이 흘러 4월 21일에 선종하셨다는 점이다. 우연 같지만 이런 게 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란 점 알려드린다. 세상 모든 일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때 쓰던 달력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 음력이 함께 있는 매우 정교한 달력이었다는 사실. 
사주를 양력으로 봐야 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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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를 향해 돌진함으로써 근대화의 서막을 연 돈키호테

 

 

돈키호테하면 풍차를 향해 마상에서 창을 꼬나들고 돌진했던 어이없는 인물,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물론 작가 세르반테스의 諷刺(풍자)라고 하겠는데 이에 대해 돈키호테를 번역한 박철 전 한국외대 총장은 소설 속에서 풍차는 당시의 부패한 교회·성직자·왕족·귀족 등 권력자를 상징한다고 얘기했다.

 

나름 맞는 얘기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

 

소설 속에서 풍차는 정해진 운명 또는 숙명, 영어로는 destiny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차를 향해 돌진했다는 것은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겠다는 것, 즉 내 미래는 내 스스로 정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고 있는 몸짓이다.

 

내 삶과 미래를 내가 정하겠다는 정신이 무엇인가? 하면 그건 바로 근대화, modernization의 정신이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로 하여금 풍차로 돌격하게 함으로써 서구 근대화의 의지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는 돈키호테가 최초의 근대소설로 인정받는 것과 맥이 통한다.

 

 

풍차, 정해진 숙명의 상징

 

 

그렇다면 왜 풍차가 정해진 숙명을 뜻하는지 그 까닭에 대해 풀이해드리고자 한다. 오늘 이 글을 쓰는 까닭이기도 하다.

 

위키피디어 영문판에 가서 “Wheel of Fortune (medieval)”이라고 검색해보면 “운명의 수레바퀴”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운명의 여신, 그 이름이 포르츄나에(Fortunae)인데 그 여신이 무작위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 바퀴 위에서 오르거나 또는 내리고 심지어는 추락하고 있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운이다.

 

바퀴가 오르고 있으면 운이 상승해서 영화를 누리는 것이고 내리고 있으면 운이 하강하고 있고 바닥에 가면 몰락한다. (헤르만 헤세가 쓴 “수레바퀴 아래서”의 그 수레바퀴는 바로 운명의 수레바퀴인 것이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은 사람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영문 위키에서 오른쪽, 위에서 네 번째 그림을 보면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운명이 무작위 즉 랜덤(random)이란 의미이다.

 

그냥 무작위로 돌릴 뿐인데 바퀴 위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심각하다. 사람에게 있어서 바퀴 위의 상황이 바로 숙명이고 정해진 운명이다.

 

따라서 운명의 수레바퀴가 의미하는 것은 그냥 너는 그렇게 태어났어, 그게 너의 숙명이고 팔자야, 하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소설 속에서 풍차를 巨人(거인)으로 착각한다. 그건 그때까지 이어져온 거대한 통념, 즉 넌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상징한다.

 

이에 돈키호테는 그 통념을 깨뜨리기 위해 과감하게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 바로 근대화의 정신이고 의지의 표명이 아닐 수 없다.

 

 

자유의지와 정해진 운명간의 대립, 잘못된 문제 제기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이 지적하고자 하는 게 있다. 서구 정신에서 수천 년간 이어져온 핵심 과제이자 논쟁이기도 하다.

 

자유의지와 정해진 운명, 서구인들은 이 둘을 兩立(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했고 이에 자유의지에 대한 강조와 찬양이 바로 근대화의 정신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런 식의 문제 제기가 나 호호당은 틀렸다고 본다. 우리 모두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 속에 있는 무수한 것들이 매 순간 다수결로 투표를 하면서 정해지는 바에 따라 우리가 행동한다고 여긴다. 그 결정을 우리들은 자유의지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판단이다.

 

자아, self가 무엇인가? 왜 필요한가? 를 놓고 현대 뇌과학은 치열하게 논쟁하고 또 연구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우리 속에는 무수한 것들이 치열하게 다투고 협조하면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에 나 호호당은 그 무수한 것들의 구조가 바로 운명을 결정한다고 여긴다. 자유의지는 자아를 가진 우리들이 가진 일종의 착각이란 생각이다.

 

 

소설 돈키호테는 너무 높아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맥과 같아서 

 

 

세르반테스가 남긴 돈키호테, 나 호호당은 그 소설이야말로 서구 정신의 진수를 담고 있다는 것을 어렴픗하게 감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 돈키호테는 서구인이 아닌 나 호호당에게 있어 그저 畏敬(외경)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이는 나 호호당이 단테의 신곡을 끝내 십분 소화해낼 수 없는 것과 같다.

 

너무나도 많은 서구적인 것들이 담겨 있어서 동아시아 사람인 내가 끝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러니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질 뿐이다. 소설 속의 대사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진짜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동아시아 정신의 진수 또는 핵심 또한 서구인들이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아파트 현관 바로 앞에 심어진 작은 복숭아 나무, 그 꽃이 피었다. 벚꽃이 질 무렵에 피는 복숭아 꽃.  술이 탐스럽게 펼쳐져 있다. 나무는 키가 작아서 아직 가슴 높이 정도, 다가가서 편하게 촬영할 수 있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 5년 되었는데 꽃을 보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 사랑스러워서 해마다 봄이면 늘 기다리게 된다.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고 덧없다. 그래서 애처롭다. 사진을 찍은 뒤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만 눈물이 터진다. 나이 70 넘은 호호당이 아직도 그러니 아직 살아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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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과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역마살을 좋아하는 오늘날의 한국인들

 

 

“역마살이 껴서 난 평생 외국으로 돌아다닌다고 얘길 들었어,” “왠 놈의 역마살이 꼈다나 뭐라나 해외를 자주 나간다고 하네,”

사주를 보고 온 사람들이 이런 얘기 자주 한다. 카페에서 들은 적도 있고 지하철 대화에서도 들었다.

 

다소 젊은 층이다 싶은 사람들은 역마살이란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다. 2000년대 이후 사람들이 해외여행이나 해외 유학 또는 해외 나가서 살아보는 것을 선호하게 되면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워낙 사주명리가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된 것이고 그러다 보니 역마살이란 용어 자체도 그다지 생소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국어사전에도 니온다.

 

 

역마살의 뜻

 

 

이에 역마살이란 사주명리의 용어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驛馬煞(역마살), 원뜻은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늘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야만 하는 액운”이라 되어 있다.

 

驛馬(역마)란 말부터 알아보자. 옛날 관청에선 급히 통신문을 전달하거나 또는 관리를 빠르게 이동시키기 위해 驛站(역참)이란 시설을 운용했는데 거기에 가면 당시로선 가장 빠른 이동수단인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를 擺撥馬(파발마)라 불렀다.

 

암행어사 馬牌(마패)에 보면 말이 세 마리 다섯 마리 이런 식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그게 그 암행어사가 역참에 가서 부릴 수 있는 파발마의 숫자를 나타낸다.

 

오늘날 서초구 양재역 근처에 말죽거리라고 있는데 예전에 그곳에 역참이 있었다 그곳에선 밤새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허기진 파발마에게 말죽을 쑤어서 먹이던 곳이라서 말죽거리이다.

 

이처럼 역삼동이나 역촌동 등 驛(역)이란 글자가 붙은 동네는 모두 예전에 정부에서 운용하는 역참이 있던 곳이다.

 

따라서 역마살이란 기본적으로 이동을 나타낸다. 그런데 역마란 단어 뒤에 붙은 煞(살), 이 글자는 죽인다는 뜻의 殺(살)과 같은 의미로서 災厄(재액)을 뜻한다.

 

이에 역마살이란 게 사주에 있을 경우 예전엔 영 좋지 않게 보았다는 뜻이다.

 

 

역마살이 예전엔 재액의 운으로 취급받았던 까닭은 

 

 

이동하는 게 왜 재액이라 했을까? 바로 이게 오늘 글을 쓰는 이유이다.

 

예전 유교봉건사회는 기본적으로 농경사회였다. 당시 신분질서는 士農工商(사농공상)이었고 선비나 관리 밑에 농민이 두 번째 신분이었다.

 

농민은 농사를 짓는다, 그러기 위해선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사는 定着(정착)을 필요로 하는데 옮겨 다닌다는 것은 뭔가 수상하거나 좋지 않은 무엇이다.

 

예전에 옮겨 다니며 사는 것은 주로 상인이었다. 5일장을 따라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옮겨 다니는 떠돌이 생활이었고 주로 賤視(천시)되었다. 그래서 천한 상인 즉 賤商(천상)이라 했다.

 

또 하나 떠돌이는 살던 곳에서 재해가 발생해서 어쩔 수 없이 즉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서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가는 딱한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그를 流氓(유맹), 일정한 거주지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이라 했는데 나라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 왜냐면 그냥 두면 강도가 되기도 하고 도둑이나 몸을 파는 처지로 전락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교봉건 농경사회에서 옮겨 다닌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災厄(재액)이었다. 그래서 옮겨 다니며 살 팔자, 역마살이 끼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자본주의 시대이고 상업의 시대이다. 해외로 나가서 공부도 하고 장사도 하고 생활도 하는 이동의 시대, 즉 모바일(mobile) 시대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역마살이 꼈다고 하면 활동적이고 돈도 잘 벌겠네 싶어서 은근 좋아한다.

 

 

역마살의 요건은 

 

 

역마살이란 사주 地支(지지)에 다음의 글자, 즉 寅(인) 申(신) 巳(사) 亥(해)가 있을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왜 그런 글자가 있으면 역마살이라 하는지, 그 점에 대해선 약간의 전문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기에 생략한다. 시중에서 사주 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게 역마살인지 아느냐 물어보면 모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글자가 끼면 역마살의 인생을 살까?

 

나 호호당의 생각은 그건 글쎄? 이다.

 

 

기존 중국 명리의 허구성

 

 

나 호호당은 기존 전통 명리를 엄청나게 공부하고 연구해 보았으나 그다지 타당하지 않고 견강부회하는 요소가 많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했다. 이에 오랜 독자적인 연구 끝에 추호도 틀림이 없는 자연순환운명학을 만들었다.

 

하지만 자연순환운명학 역시 기존의 틀인 음양오행이나 오행의 상생상극이나 육십갑자 등에 입각해서 사주를 추론하기에 전통 명리와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 중국 명리가 넘볼 수 없이 획기적으로 발전된 이론이라 여긴다.

 

이에 기존 전통 명리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개념에 대해 이번 글처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드리는 글을 종종 올려볼까 한다. 시중 사주보는 이들 중에 기초 원리를 모르는 분들이 나 호호당의 글을 자주 보는 것 같아서 가르쳐드린다는 생각도 조금은 있다.

젊은이들이여 실패를 두려워 말라, 올드세대들이여 현실을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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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벚꽃은 이걸로 안녕이겠지, 바람 불고 비오고 있었다. 작별인사라도 해야지 싶어서 집 근처 과천 대공원 쪽으로 나가보았다. 이쪽은 도심이 아니라서 공기가 차다, 그래서 꽃도 늦게 핀다. 볼 만했다, 밤 벚꽃, 옛날엔 야사쿠라라 했던 밤 벚꽃. 잠시 젖은 몸통을 어루만지면서 벚꽃 엔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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