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를 향해 돌진함으로써 근대화의 서막을 연 돈키호테
돈키호테하면 풍차를 향해 마상에서 창을 꼬나들고 돌진했던 어이없는 인물,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물론 작가 세르반테스의 諷刺(풍자)라고 하겠는데 이에 대해 돈키호테를 번역한 박철 전 한국외대 총장은 소설 속에서 풍차는 당시의 부패한 교회·성직자·왕족·귀족 등 권력자를 상징한다고 얘기했다.
나름 맞는 얘기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
소설 속에서 풍차는 정해진 운명 또는 숙명, 영어로는 destiny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차를 향해 돌진했다는 것은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겠다는 것, 즉 내 미래는 내 스스로 정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고 있는 몸짓이다.
내 삶과 미래를 내가 정하겠다는 정신이 무엇인가? 하면 그건 바로 근대화, modernization의 정신이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로 하여금 풍차로 돌격하게 함으로써 서구 근대화의 의지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는 돈키호테가 최초의 근대소설로 인정받는 것과 맥이 통한다.
풍차, 정해진 숙명의 상징
그렇다면 왜 풍차가 정해진 숙명을 뜻하는지 그 까닭에 대해 풀이해드리고자 한다. 오늘 이 글을 쓰는 까닭이기도 하다.
위키피디어 영문판에 가서 “Wheel of Fortune (medieval)”이라고 검색해보면 “운명의 수레바퀴”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운명의 여신, 그 이름이 포르츄나에(Fortunae)인데 그 여신이 무작위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 바퀴 위에서 오르거나 또는 내리고 심지어는 추락하고 있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운이다.
바퀴가 오르고 있으면 운이 상승해서 영화를 누리는 것이고 내리고 있으면 운이 하강하고 있고 바닥에 가면 몰락한다. (헤르만 헤세가 쓴 “수레바퀴 아래서”의 그 수레바퀴는 바로 운명의 수레바퀴인 것이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은 사람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영문 위키에서 오른쪽, 위에서 네 번째 그림을 보면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운명이 무작위 즉 랜덤(random)이란 의미이다.
그냥 무작위로 돌릴 뿐인데 바퀴 위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심각하다. 사람에게 있어서 바퀴 위의 상황이 바로 숙명이고 정해진 운명이다.
따라서 운명의 수레바퀴가 의미하는 것은 그냥 너는 그렇게 태어났어, 그게 너의 숙명이고 팔자야, 하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소설 속에서 풍차를 巨人(거인)으로 착각한다. 그건 그때까지 이어져온 거대한 통념, 즉 넌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상징한다.
이에 돈키호테는 그 통념을 깨뜨리기 위해 과감하게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 바로 근대화의 정신이고 의지의 표명이 아닐 수 없다.
자유의지와 정해진 운명간의 대립, 잘못된 문제 제기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이 지적하고자 하는 게 있다. 서구 정신에서 수천 년간 이어져온 핵심 과제이자 논쟁이기도 하다.
자유의지와 정해진 운명, 서구인들은 이 둘을 兩立(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했고 이에 자유의지에 대한 강조와 찬양이 바로 근대화의 정신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런 식의 문제 제기가 나 호호당은 틀렸다고 본다. 우리 모두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 속에 있는 무수한 것들이 매 순간 다수결로 투표를 하면서 정해지는 바에 따라 우리가 행동한다고 여긴다. 그 결정을 우리들은 자유의지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판단이다.
자아, self가 무엇인가? 왜 필요한가? 를 놓고 현대 뇌과학은 치열하게 논쟁하고 또 연구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우리 속에는 무수한 것들이 치열하게 다투고 협조하면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에 나 호호당은 그 무수한 것들의 구조가 바로 운명을 결정한다고 여긴다. 자유의지는 자아를 가진 우리들이 가진 일종의 착각이란 생각이다.
소설 돈키호테는 너무 높아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맥과 같아서
세르반테스가 남긴 돈키호테, 나 호호당은 그 소설이야말로 서구 정신의 진수를 담고 있다는 것을 어렴픗하게 감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 돈키호테는 서구인이 아닌 나 호호당에게 있어 그저 畏敬(외경)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이는 나 호호당이 단테의 신곡을 끝내 십분 소화해낼 수 없는 것과 같다.
너무나도 많은 서구적인 것들이 담겨 있어서 동아시아 사람인 내가 끝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러니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질 뿐이다. 소설 속의 대사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진짜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동아시아 정신의 진수 또는 핵심 또한 서구인들이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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