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작, 부산 광복동 거리, 비오는 밤, 화려한 불빛들이 젖은 포석 위에 번지고 있다. 핑크와 노랑, 청록 등등 밝은 빛들이 어지럽게 춤추고 아마도 젊은이들의 떠드는 대화 소리와 물 튀기는 소리, 빗방울 소리로 요란할 것 같다. 위엔 전선줄들이 빛을 받아 날렵하게 오가고 있다. 계절은 겨울이다. 즐겨주시길...

 

서서히 완성되어 가고 있다. 이 대목이 그릴 때 절정의 순간들이다. 이제 8부 능선을 넘는 느낌이고 몰아지경에 들어가 있다. 이제 군데 군데 강조하고 하이라이트를 넣으면 완성이다. 속에서 뭔가 치솟고 있다. 

 

이 정도면 윤곽이 다 잡혔다. 이제부터 놀아보자 하는 생각이 든다. 붓을 종이 위를 스쳐가고 팔레트를 분주하게 오간다.  이제 달리자, 디리 Go! 

 

밑칠을 블루 그레이로 잡았다. 겨울의 차가운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그릴 때 연필 스케치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엷은 물감으로 소실점을 잡고 대강의 구역들을 나누어둔다. 그런 다음 큰 물건인 차를 그려넣고 전경의 우산 쓴 사람들의 실루엣을 칠해본다. 이제 슬슬 시작해보자. 잘 될 지 모르겠지만 가보는 거다.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유튜브에서 만난 일본 도쿄의 비오는 거리 풍경, 이자카야의 등불이 반갑다. 들어가서 사케 한 도쿠리에 안주를 곁들여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 즐겁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점 간판을 고마이누 貊犬(맥견)이라 고쳐 썼다. 고마이누는 고구려에서 건너온 흰둥이 개를 뜻한다. 대빵 큰 주점의 등불, 늘 인상적이다. 겨울비오는 거리의 풍경인데 잘 그린 것 같다. 기분이 좋다. 비오는 거리를 좀 더 전문적으로 그려보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즐겨주시길...

오늘은 집에서 책 보는 날이다. 전시화 출품 작품 중에서 판매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늦가을 구름 층 차갑게 푸른 하늘의 간월암 그림을 제자가 가져갔다. 아끼는 사람이니 쾌히 줄 수 있다. 이에 책을 덮고 그리기 시작했다. 배경을 다르게 해서. 이번엔 겨울 철 저녁 놀 지는 배경의 간월암이다. 간월암 풍경과 구도를 참으로 좋아한다. 해초 냄새도 나고 약간의 비린내도 나는 개펄과 바위, 언젠가 다시 찾아가서 용왕님 전에 인사드리고 시주도 좀 해야 겠다. 암자와 땅 사이를 잇는 공사를 하는 모양인데 그러면 아깝다. 묘미가 사라지지 않는가 말이다. 뭐 절의 결정이니 할 수 없다.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곳에 가야만 기도가 더 잘 먹힐 터인데 그걸 글쎄. 이미 절 모양도 좀 변했다, 하지만 예전 모습대로 그냥 그린다. 오늘은 대박이다. 그림을 두 장 씩이나 그리면서 즐기고 있으니. 약간의 어지럼증만 남았는데 곧 싹-하고 나아지길 기대한다. 즐겨주시길... 파브리아노 핫 프레스 종이에 이젠 이골이 났나 보다. 금방 칠할 수 있고 얇게 물감이 올려가는 맛 또한 묘미가 있다. 내가 이 종이를 이렇게 잘 쓰다니 크하핫! 30 곱하기 45 센티미터. 

 

 

월요일 아침 나절 강아지 산책 중에 동남쪽 하늘을 보았다. 전 날 미세먼지 자욱하더니 밤사이 비 내려 쾌청했다. 강아지 놈이 자꾸 앞으로 나가려는 바람에 한 쪽으로 줄을 잡아당기고 한 쪽으론 셔터를 눌렀다. 입엔 담배를 물고. 우린 참 여러가지 동시에 한다. 어지럼증으로 약간씩 비틀거리면서 그걸 다 하다니, 고기능 유기체이다. 인상적이었다. 겨울이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하고 감회가 일었다. 사진만 올리려 했는데 보다 보니 칠하고 싶었다. 사진보다 좀 더 원근감과 스케일을 키웠다. 비교하면서 즐겨주셔도 좋겠다. 종이는 파브리아노 핫 프레스, 요즘 이 종이에 맛이 들었다. 30 곱하기 45 센티.

가끔 텔레비전에서 본다, 파미르 고원의 협곡을 따라 길을 가는 다큐제작진의 모습, 그런 것을 상상하면서 그렸다. 바람이 강해서 절벽의 경사면엔 눈이 많이 쌓여 있지 않다. 협곡길은 젖어있다, 미끄러울 것이다. 앗차-하면 끝.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차갑게 빛나고 있다. 공기 밀도가 약할 것이다. 숨이 가빠지는 느낌. 젊은 날의 꿈과 로망을 그림으로 옮겨보았다. 먼 옛날 서역 천축국으로 불경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파미르 고원의 협곡을 따라 길을 갔던 구법승들, 나 호호당도 그렇게 길을 가다가 도중에 죽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이 생겨나자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 여겼다. 그러니 이렇게 그림으로 환타지를 구현해본다. 오늘 아침부터 세게 겨울로 들어가던 데, 계절에 맞게 즐겨주시길. (그림 종이는 파브리아노 핫프레스 300그램, 사이즈는 30 곱하기 45 센티미터.) 


아마도 미국의 로키 산맥 정도 될 것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스쳐간 이미지가 생각났다. 늦은 오후의 바위산이 빛나고 있었는데 그 느낌을 살려 그렸다. 일요일이라 갤러리에 나갔다가 마치고 들어와서 쉬어야 겠는데 이미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에이, 그래 그릴 께, 속에서 그리라고 하니 어쩔 수가 없지! 하면서 그렸다. 좀 더 명암 대조를 살려서 그렸다. 며칠 사이 핫프레스 종이를 쓰고 있는데 그 역시 나름의 요령이 생긴다. 빨리 마르는 것이 좋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하다. 결국 칠하는 사람이 할 탓이다. 내일은 소설인데 밤비가 내린다. 겨울비. 추워지겠지. 아끼는 후배가 요로결석이 왔다고 한다. 겁나 아프다고 한다. 겪어보진 않았으나 내 몸 어딘가도 아픈 느낌이다. 우리가 타고 가는 몸뚱아리는 영원하지가 않다. 아껴서 쓸 일이다. 

한창 뜨거웠던 여름날, 아내는 나를 태우고 다니는 성북동의 작은 절에 데려갔다. 스님에게 아내의 얼굴을 좀 세워주기 위함이었다. 시주돈 좀 넉넉히 챙겨서 말이다. 차안에서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찰칵했다. 쨍-하고 맑은 날, 하지만 바깥은 극도의 무더위. 이미지를 확인해보고 나이쑤! 했다. 다시 펜화의 맛에 빠져들고 있다. 어지럼증도 많이 가셧다. 스타이틀러 라이너 0.2 밀리, 나름 예리한 보검을 휘둘러 선을 그으면서 갈등했다. 어디까지 선으로 긋고 어디에서부터 색으로 갈음해야 할 지, 펜화 담채를 그릴 땐 늘 겪는 애매함과 갈등, 그림을 다시 핸드폰으로 찍다 보면 흔들리기 마련, 핀이 언제나 조금씩은 나간다. 실제 그림은 훨씬 샤프-한데 말이다. 여름, 겨울이 왔으니 즐겨주시길... (그림 종이는 파브리아노 핫프레스 300그램, 사이즈는 30 곱하기 45 센티미터.) 

2019년 여름이었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이 화일 안에 있었다. 보다가 그리고 싶어졌다. 어지럼이 아직 남아 있지만 그려도 될 것 같았다. 선이 조금 비뜰어지면 어떠리, 서슴없이 수직으로 긋고 사선으로 그은 뒤 푸른 물감을 풀어 엷게 하늘에 칠했다. 사실 날은 이처럼 푸르진 않았지만 내 마음이 그랬다. 긋고 또 긋고, 그것만으로도 쾌감을 느낀다. 언젠가 펜화 담채를 모아서 전시회를 해보고 싶다. 오늘은 그런 마음이다. 겨울 입구에서 여름 구경 시켜드린다. 즐겨주시길... 

서서히 가을의 자취가 하나 둘씩 없어져간다. 낙엽은 겨우내 마르고 말라서 부숴지고 가루는 바람에 실려 날아갈 것이다. 풀벌레의 주검들도 그러할 것이다. 돌계단은 그에 비하면 꽤나 견고하다. 천년 만년 갈 것 같다. 하지만 저 놈 역시 서서히 마모가 되어 언젠간 둥글어지고 또 바스러질 것이다. 우리 역시 낙엽과 돌 사이에 있다. 결국 니나 내나, 시간 속에선 다 그렇다.  

양재천, 약간씩 어지러워서 걸음도 약간씩 비틀거린다. 멀리 보고 걸어보고 싶어서 아파트 근처의 양재천에 나갔다. 물은 마지막 단풍을 비추고 있다. 물은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가만히 흘러간다. 물은 시간과 계절을 실어나른다. 초여름 쯤에 이 장소에 왔었는데 많이 다르다. 그 때의 계절은 흘러가고 없다. 지금은 초겨울의 날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아직 한 편의 글을 쓰기엔 힘이 들다. 간간이 자판을 봐야만 해서 시선을 오르내리다 보면 어지러워진다. 다음 주면 더 좋아지겠지, 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