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란 것에 대하여
먼저 희망이란 것에 대해서부터 얘기를 시작해본다.
희망이란 미래, 가까운 미래 또는 먼 미래이든 상관없이 장차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좋은 일이나 상태에 대한 바람이다.
가령 주중에 일터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은 주말이 가까워오면 푹 쉬고 또 즐겁게 놀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다소 궁핍해도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서 즐겁게 살아갈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을 가졌다면 그건 사실 막연한 희망이다. 희망은 이처럼 그것이 크든 작든 간에 우리로 하여금 눈앞의 힘든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그러니 희망을 가진 것은 좋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희망이란 것이 때론 대단히 해로울 때도 있다. 단적으로 현재의 어려운 때가 어서 빨리 지나가버리길 바랄 때 희망은 우리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희망이 눈앞의 힘든 현실, 줄이면 ‘현실’로부터 자꾸 외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희망은 힘이 아니라 해로운 독소로 변해서 우리의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희망은 양날의 칼이어서
희망이 현재를 견디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고 자꾸 망각하도록 만들 때 희망은 일종의 진통제, 나아가서 일종의 마약이 된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통증으로 진통제를 먹어야 할 때가 수시로 있다. 나프록센,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등등 다양한 진통제가 잘 팔려나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진통제를 습관성으로 먹다 보면 나중에 결국 일종의 마약 중독 상태에 빠지는 것처럼 희망이란 것 역시 남용할 때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이 있다. 현실이 팍팍할 때 어떤 이는 막연한 희망으로 버텨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힘든 처지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찾고 또 즐기면서 위안을 찾는 이도 있다. 최근 유행하는 ‘소확행’ 같은 것도 그런 일종이다.
우리 사회는 2012년부터 경기침체 또는 스태그네이션 상태에 들어가 있고, 특히 젊은이들의 사회진출이 그 질적인 면에 있어 예전보다 훨씬 악화되었다. 대부분 계약직 또는 비정규직이 고작이어서 안정성이나 장래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이다.
소확행과 욜로족, 젊은이들의 적응
이에 한동안은 헬 조선이다 하면서 푸념을 했지만 이젠 그런 푸념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소확행’이다. 젊은이들이 현 세태에 대하여 나름의 적응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쩌다가 한 번 목돈이 생기면 과감하게 지르기도 한다. 그럴 땐 ‘욜로’족 시늉인 셈이다.
이른바 ‘희망고문’에 넌더리가 난 우리 젊은이들이라 여긴다.
희망의 부작용
그렇다, 희망이 희망고문이 되면 삶은 피폐해진다. 뿐만 아니라 막연한 희망만으로 오늘을 견디는 방식은 현재와 현실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책에서 이런 시를 읽었다.
희망을 품다 보면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지.
최후의 시간이 오면
더 이상 희망도 없어라.
희망, 막연한 희망만으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다 보면 어느새 삶의 종착역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시에 담겨 있다.
좋았던 일도 금방 무감각해지는 우리인 까닭에
사실 우리가 좀 살아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살다보면 때론 대단히 격할 정도로 좋은 일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좋은 일이나 감격적인 慶事(경사)라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덤덤해지고 무디게 되며 심지어는 망각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내 경우 군에서 제대하던 날을 기억하곤 있지만 그 날의 감동과 기쁨은 전혀 남아있지가 않다. 이처럼 우리 삶에 있어 모든 기쁨의 날은 기억되긴 해도 기쁨의 알맹이는 금방 빛을 잃고 퇴화되며 심지어 없음 즉 無(무)로 변하기도 한다.
그런 우리들이기에 늘 새로운 그리고 막연한 희망과 꿈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희망이나 꿈은 눈앞의 일도 아니요 현실도 아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따라서 존재하지도 않는 그저 막연한 미래에 대한 것이다.
미래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따라서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은 과거의 추억과 현재, 즉 눈앞의 시간뿐이다. 그런데 눈앞의 시간이 힘들고 시시하다 해서 외면하고 의미 없게 여겨버릴 것 같으면 결국 삶 전체가 의미 없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삶이란 과거가 되었을 때만이 이해가 되니
키르케고르의 말에 의하면 삶이란 뒤돌아봤을 때만이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대한 반추와 성찰을 통해서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현재란 순간순간의 이어짐이고 연속일 뿐, 거기에 스토리는 없다. 스토리란 결국 기승전결의 구조로서 결말이 나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늘 진행형이어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 점심시간까진 좋던 하루가 저녁에 들어 최악의 날이 될 수도 있겠고 또 그 다음 날이면 전혀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는 끊임없는 진행형이 바로 현재인 까닭이다.
현실 그리고 현재의 순간에 있어 어쩌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이성간에 연애하는 시간들일 것 같다. 뜨거운 감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원할 때의 그 시간들은 분명 꿈길 같다. 그렇기에 대중가요나 팝송은 죄다 연애나 사랑에 관한 얘기이다. 하지만 천생 바람둥이가 아닌 이상 평생을 정말로 그렇게 살 순 없는 노릇이고 연애의 시간은 길어봐야 긴 인생에 비하면 한 때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함부로 무턱대고 희망을 품을 일은 아닌 것이다. 그건 어딘가 조금 아프다고 진통제부터 찾는 나쁜 습관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물론 전혀 진통제를 찾지 않고 오로지 생으로 버티는 것 역시 미련한 짓이긴 하다.)
우리 누구나가 보내고 있는 운명의 계절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어떤 삶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고 또 지내고 있다.
나 호호당은 어쩌다가 관심이 생기고 집요하게 연구해본 결과 어떤 사람이 지금 어떤 계절을 보내고 있는지 열두 달 중에 어느 달을 지내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60년에 걸쳐 한 해 열두 달이 지나가기에 누구에게나 계절과 시간의 길이는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점도 알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승리나 유천, 준영과 같은 젊은 연예인들의 경우 인생의 계절이 모두 입춘 바닥 그리고 박유천의 경우 올 해가 바로 입춘 바닥의 해이다. 인생의 한겨울 추위가 그들을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곧 나름의 합당한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그 시절에 그렇게 행동했을까를 놓고 많이 되새겨보게 될 것이다.
그간의 상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막연하긴 해도 자신의 계절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헛된 희망이나 욕심으로 인하여 수시로 흐려지기도 하는 사람이다. 아닐 거야 더 좋아질 거야 하는 희망에서 말이다.
앞에서 말했다. 키르케고르의 말이 그것이다. 삶이란 뒤돌아봤을 때만이 이해될 수 있다는 말. 그렇기에 알려드리고자 한다.
좋은 시절은 없고 좋았던 시절만 가능한 법이어서
좋은 시절은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되돌아봤을 때 그때가 좋았다거나 좋은 시절이었구나 하는 것은 있어도 지금 현재 좋은 시절이구나 하고 自覺(자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순간순간의 연속체일 뿐이기에 결론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시절은 없고 좋았던 시절만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빴던 시절도 있다.) 좋았던 시절이란 결국 현재와 비교해서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미래 역시 없다. 일단은 오지도 않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 것이고 그 역시 더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미래가 먼 과거의 일이 될 때만이 좋은 시절이었구나 혹은 나쁜 시절이었다는 자각을 할 수 있으니 그렇다.
그러니 좋았던 시절만이 가능하다. 그때가 好時節(호시절)이었지 하는 과거적 사건만이 가능하다.
예전엔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상담하러온 사람이 지금 호시절을 보내고 있건만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고 현실의 어려움만 호소하고 있을 때 그러했다. 그래서 지금이 호시절이란 것을 알려주려고 애를 쓸 때도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현재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만이 이해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고 현재는 순간의 연속적인 과정이니 흐름의 渦中(와중)에 있는 자는 상황을 판단할 수 없는 법, 그리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나름 예쁜 그림을 그려보거나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뿐이다.
그저 분명한 것 한 가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이 시각 현재 인생의 어느 계절, 운명의 어느 계절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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