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쯤은 들어보셨을 말

 

 

“가난이 문을 두드리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간다.” 이런 재치 넘치는 말,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우연한 계기에 나는 이 말이 아일랜드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처음 쓴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것도 아니었다. 영국 속담이란 말도 있고 독일의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아프리카의 오래된 속담이란 주장도 있다. 어쩐지 아프리카 쪽이 오리지널이 아닐는지 싶다.

 

가난이 문을 두드리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간다. 영어 표현으론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버전이 있다.

 

When poverty comes in at the door, love flies out of the window.

When Poverty Knocks at the Door, Love flies out of the Window.

 

100퍼센트 맞는 말이라 하긴 그렇지만 거의 그런 것 같다.

 

 

시대 차이, 세대 차이

 

 

집안에 가난이 찾아들면 유교적 관념을 지녔던 예전 어머니들은 애정은 없어도 자식들 보며 참고 살았지만 최근의 부부들은 곤궁해지면 이혼할 확률이 무척 높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난해지면 애정은 사라진다, 다만 예전과 지금의 차이는 그냥 참고 견디며 한 세상 사느냐 아니면 이혼하느냐 정도라 하겠다.

 

 

물 건너 세상의 풍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물 건너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엔 이혼을 하게 되면 결국 돈 문제가 되니 아예 결혼식이나 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동거하는 커플이 거의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이를 낳더라도 결혼신고는 하지 않는다 한다. 우리로 치면 사생아가 되는 셈인데 그쪽에선 별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또 서구의 부자들은 결혼할 당시부터 변호사를 통해 이혼할 경우의 재산 문제에 대해 사전에 합의해둔다고 한다. 이혼이 금기가 아닌 탓에 일종의 사전 출구전략인 셈이다.

 

최근 뉴질랜드에서 온 제자가 전해준 새로운 얘기인 즉, 뉴질랜드에선 남녀가 만나서 사귀더라도 이름을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아니면 가명이나 애칭을 사용한다고 한다. 언제든 결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를 낳아도 엄마가 말해주지 않아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동거할지언정 결혼을 하지 않는 풍토는 주로 북유럽 그리고 미국의 경우 남부의 감리교 지역을 제외한 개신교 지역에서 그렇다. 로마 가톨릭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선 여전히 결혼을 하는 모양이다.

 

 

이혼 문제로 국민투표까지 했던 이탈리아

 

 

놀랍게도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가톨릭 전통이 강했던 이탈리아는 1974년에 이혼을 합법화할 것인가를 놓고 거국적 행사인 ‘국민투표’까지 단행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투표는 거의 전 유권자가 참여할 정도로 대단한 이슈였으며 투표 결과 이혼 합법화에 찬성하는 이가 59.26%, 합법화 반대가 40.74%가 나와서 결국 이혼이 합법화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투표 문항이 적절했느냐를 놓고서 나중에도 엄청난 사회적 물의가 있었으며 가톨릭 종교 지도자들은 말세라고 하면서 개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출처: wikipedia, "1974 Italian divorce referendum")

 

우리의 경우 대한제국 시절인 1898년부터 그러니까 121년 전에 이미 근대적 형태의 이혼제도가 도입된 것에 비하면 가톨릭 전통의 이탈리아는 정말 대단하다.

 

 

흔들리는 있는 결혼 제도

 

 

우리의 경우 먹고 살기가 팍팍해진 최근에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非婚(비혼)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멀지 않아 우리도 어쩌면 서구의 풍조를 따라갈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결혼이란 법적 제도가 맹렬히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 호호당 생각하기로 우리도 동거를 통해 낳은 아이가 사생아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야만 그나마 출산율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혼소송은 결국 돈 싸움

 

 

나 호호당은 법대를 나온 까닭에 대학 동기 중엔 법조인이나 변호사를 했거나 하고 있는 친구들이 제법 있다. 꽤 오래 전 변호사 사무실을 하는 한 친구로부터 “이혼소송이란 결국 돈 싸움이야 딴 거 없어” 하는 말을 듣고 약간 놀랐던 적이 있다. 지금에서야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인데 말이다.

 

맞는 말이다. 이혼소송은 결국 돈 싸움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 소송을 고려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런데 소송의 동기인 즉 억울하고 원통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나는 “민사 소송은 결국 돈 싸움입니다, 법이 부인의 억울 원통함을 풀어주지는 않습니다, 그저 금전적인 보상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라고 말해준다.

 

이처럼 상담하다 보면 부부의 이혼 문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혼의 이유를 보면 물론 불륜도 많지만 불륜 자체가 최종적인 동기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애정이 식었다 해도 돈 문제만 없으면 그냥저냥 지내다가도 결국 돈 문제, 형편이 어려워지면 이혼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부부가 갈라설 무렵이 되면 부부가 잘 살고 있던 예전보다 금전적으로 어려워진 경우가 많아서 더 치열한 소송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남편의 수입이 너무 없어서 아예 위자료를 포기하고 합의 이혼하는 딱한 여성들도 많다.

 

상담을 통한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대부분의 경우 이혼하는 시점은 부부 모두 운세가 한창 내리막길을 걷고 있거나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바닥을 전후한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것이 입춘 바닥을 보내고 이제 운명의 여름, 즉 입춘 바닥에서 15년이 흐른 이후에 이혼을 하는 경우 이혼한 다음에 더 나은 삶을 사는 경우도 꽤나 된다는 점이다.

 

 

노년의 이혼은 참으로 문제, 특히 남성에게

 

 

그간의 상담경험과 연구에 의하면 이혼이 최악이 되는 경우는 중년의 이혼보다도 60대 이후의 이혼이 아닌가 싶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혼은 대개의 경우 그 사람의 운세 순환이 내리막일 때 하게 된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 운이 내리막이라면 장차 수입이나 직업 사정도 어려워질 것이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돈 문제에 이혼까지 하게 된다면 특히 그 당사자가 남성인 경우 상당히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돈만 충분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새롭게 결혼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나이든 여성의 경우 이혼을 해도 예컨대 저임금이긴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기가 남자들보다 나은 것 같고, 게다가 자녀의 집안일을 돌보면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 정말 어려워진다.

 

 

돈과 행복의 관계

 

 

돈 얘기가 나와서 얘기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제목의 책이 있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다. 하지만 행복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타고난 자질 즉 건강이나 재주, 취미나 관심 등과 더불어 타고난 품성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행복이란 것은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난 문제이다.

 

(가령 나 호호당의 경우 호기심이 많아서 늘 연구하고 궁리하는 것이 있어 전혀 심심하지가 않다. 게다가 그림 재주가 있어서 늘 그리면서 즐긴다. 그런 까닭에 나 호호당은 스스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은 이처럼 돈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하지만 불행은 돈이 없으면 바로 닥친다.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자신의 취미나 관심, 또는 숨겨진 재능 같은 것을 시험해볼 시간이나 기회가 돈벌이 때문에 원천 봉쇄된다면 그거야말로 불행하다.

 

그렇기에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지만 불행을 피하는 방파제 또는 방화벽 역할은 분명히 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돈은 행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돈이 사라지면 즉 가난이 닥치면 그런 까닭에 사랑은 창문을 통해 날아간다. 가난이 닥치면 사랑만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건강도 행복도 나아가서 삶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다. 다시 얘기지만 돈이 반드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진 않겠지만 우리의 삶을 받쳐주는 필수 요건이고 바탕인 것이다.

 

 

돈, 젊음, 그리고 미모

 

 

돈 얘기를 하다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젊음과 美貌(미모)이다.

 

사실 젊음과 미모 이 두 가지는 남녀 불문하고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대단한 財貨(재화)라 하겠다. 특히 여성에게 미모는 절대적인 무기이다. 모두가 미모를 가진 것은 아니기에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지만 젊음은 한 때 누구나 가지는 것, 그런 점에서 적어도 한 가지만은 평등하다. 물론 최근엔 돈만 있으면 성형수술을 통해 어느 정도 미모도 소유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긴 하다. 미모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데 젊음이나 미모는 세월과 함께 감가상각이 이루어지는 재화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면 돈만 남는다. 심지어 돈은 이자가 붙으니 감가상각과는 거리가 있다. 불편한 진실이다. (물론 돈이 행복을 살 순 없다는 점 또한 다시 한 번 강조해둔다.)

 

최근 이상하게도 이혼이나 결별과 관련된 상담이 잦다. 그런 탓에 이 글을 쓰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이란 게 결국 변하더라고요. 몇 년 전에 상담하러 오신 분이 했던 말이다. 여운이 많이 남았고 그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오랜 사색 끝에 미처 정답을 얻진 못했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과 욕망, 특히 에로틱한 욕망은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짧다는 생각. 사랑은 좀처럼 변하지 않지만 욕망은 그렇지가 않다는 생각. 사랑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내리사랑, 즉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지만 커플 간의 사랑은 그것이 사랑인지 욕망인지도 판별하기 어렵다는 생각, 또 순수한 사랑이라 해도 가난이 닥쳐오면 시험을 받게 된다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더 생각해볼 것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