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病相憐(동병상련)



며칠 꽤나 날이 덥더니 오늘은 비가 온다. 새벽녘에 제법 굵게 내리더니 오후 들어 부슬비로 내리고 있다. 덕분에 날이 식어서 좋다. 지난주에도 글을 거의 올리지 못했다. 좌골신경통 때문이다. 서 있거나 누워있으면 괜찮은데 앉았으면 통증이 온다. 그 바람에 글을 쓰기가 어려워서 지난 주 내내 쓰다 말고 쓰다 말고를 반복해야 했다. 답답한 노릇이다.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보면 디스크 시술에 관한 광고성 프로그램이 저렇게나 많았던가 싶다. 온통 어깨 통증, 허리와 다리 통증에 관한 것이다. 역시 남의 일은 내 알 바가 아닌 것이어서 종전까진 잽싸게 채널을 돌렸던 것이 정작 내 일이 되다 보니 새삼 눈에 들어온다. 


작업실은 방이 두 개, 수묵화를 그리던 건너 방의 책상을 치우고 매트리스를 깔았다. 앉았다가 통증이 시작되면 일어나서 서성대거나 아니면 건너 방으로 가서 누워서 책을 본다. 



좌골신경통 때문에 시작된 또 하나의 여행



러다 보니 어쩌다가 또 하나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남긴 무려 14권짜리 대작 “역사의 연구”를 읽는 일이다. 1970년대에 번역 출간된 책인데, 책 한 권당 면수만 해도 6백 페이지, 그러니 대략 8천 페이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40대 초반 처음 접했는데 너무 방대한 내용이라 미처 다 읽진 못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읽어보니 무협소설 만큼이나 흥미진진, 재미가 있다. 40대 중반에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남긴 “서양의 몰락”이란 책에 심취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역사의 연구”에 푹 빠졌다. 풍덩. 


인류 역사의 수많은 케이스들을 다루고 있어 미처 잘 모르는 분야도 여전히 있지만 이젠 그런대로 다른 책이나 위키를 뒤지지 않고서도 술술 읽혀지니 그간 역사에 대한 내 시야가 많이 넓어진 까닭이 아닌가 싶다. 현재 제4권을 읽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토인비의 저 방대한 연구가 다루고 있는 핵심 주제, 흔히 “도전과 응전”이란 말로 축약된 저 주제는 사실 나 호호당이 연구해 온 주제, 운명의 순환과 그 법칙에 관한 것과 그 본질에 있어 전적으로 동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번 독서 대장정이 더 흥미롭다. 


오늘의 글은 바로 그 주제에 관한 것이다. 



편하게 살면 나약해지는 것일까?



편하게 살다보면 나약해진다. 이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상식적으로 대충 맞는 말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따져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무려 14권에 달하는 방대한 연구를 통해 다루고 있는 주제 역시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라 하겠다. 


토인비는 자신의 저서 제2부 ‘문명의 발생’에서 이 문제를 놓고 인류 역사의 방대한 사례들을 열거하고 살펴가며 집요하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또 검증하고 있다. 


토인비의 연구에 따르면 문명의 발생 자체가 인류 투쟁의 산물이다. 문명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우호적인 환경에서 탄생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고 척박하고 거친 환경 속에서 더 잘 생겨나고 성공적이더라 하는 얘기이다. 


편한 환경에서가 아니라 힘든 逆境(역경)에서 발전이 있다는 이 주장은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한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그러니 편하게 살다 보면 나약해진다는 말은 맞는 말이라 해도 무방하다. 



樂園(낙원)에서의 삶은 없다



당연히 우리 모두 누구 할 것 없이 안락하고 편하게 살고자 한다. 고생하고픈 이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안일하게 살다보면 나약해지고 퇴보한다. 그 결과 이른바 망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편히 살고픈 우리의 바람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긴 하겠으나 편히 살다보면 나약해진다는 점에서 꽤나 矛盾(모순)된 욕망이라 하겠다. 


앞의 얘기를 다시 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에덴동산이나 파라다이스 또는 극락정토와 같은 세상에서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은 실낙원 즉 Paradise Lost 이고 지저분한 穢土(예토)의 세상이다. 


토인비의 말을 빌려 얘기하면 인류의 문명 자체가 환경과 주어진 여건에 대한 부단한 즉 끊임없는 투쟁의 산물이다. 이 말을 조금 바꿔서 얘기하면 애초부터 환경이 풍족하고 살기에 좋았다면 아예 문명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인간은 마치 자연 속에서 식물처럼 존재하고 있을 거란 얘기이다. 



산다는 것은 어차피 고단한 것이어서



따라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어쨌거나 길고 긴 투쟁과 고생으로 점철되지 않을 수 없다. 다. 자연 환경과의 투쟁만이 아니라 인간 집단 간의 투쟁, 아울러 개개인간의 치열한 상호 경쟁 혹은 투쟁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 산다는 것은 고생일 수밖에 없다. 다만 운명의 순환이란 것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좀 더 힘들고 반대로 조금은 더 수월한 때가 갈마드는 것일 뿐이다. 


바람이 있고 욕망이 있어서 우리는 어떤 목표를 세운다. 그런데 그 목표란 건 현재의 상태보다 더 높은 단계이기에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하고 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이 들 수밖에. 


상담하다 보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정말이지 제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 못 했어요.” 하지만 그런 일을 겪지 않는 인생은 없다. 아직 겪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나 한 번은 그런 어려운 처지를 겪게 된다. 평생을 두고 無事安逸(무사안일)하고 乘勝長驅(승승장구)하는 삶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 반대로 평생을 두고 막히기만 하는 답답한 삶도 없다. 한 때 그럴 뿐이다.)



정말로 잘 살다간 어느 할머니



며칠 전 우리 젊은 세대들이 잘 모르는 ‘도리스 데이’란 이름의 미국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1960년대 전성기를 보낸 미국의 유명 여가수였다. 우리로 치면 동백아가씨의 이미자 선생님과 같은 분이다. 


1922년 4월 3일에 태어나 며칠 전에 돌아가셨으니 무려 97년 하고도 한 달을 살다간 셈이다. 


이 분의 사주를 검토해보면 최고의 운에 세상을 떠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태어날 때 받은 생명의 힘을 남김없이 알뜰하게 소진하고 세상을 떠난 분이란 생각이 든다. 


도리스 데이 할머니 역시 유명 가수로서 많은 영광을 누렸지만 그에 못하지 않게 숱한 좌절과 굴욕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냥 쭉 편하게 好衣好食(호의호식)한 삶은 절대 아니었다. 인생 한 번 살다 가려면 무수한 고비를 만나기 마련이고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잘 살려면 물건을 아끼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말은 듣게 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 스스로를 아끼고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채어날 때 받은 자신의 삶을 알뜰하게 잘 쓰다가 가야한다는 얘기이다. 



죽은 것이 아니라 羽化登仙(우화등선)한 할머니



그런 면에서 도리스 데이 할머니의 삶이야말로 모범이고 典型(전형)이 아닌가 한다. 그간 구글이나 위키를 통해 수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생애를 연구 검토해 보았지만 이 분처럼 잘 살다가 떠난 사람은 보지 못했다.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하지만 이 분의 경우 그 어떤 통증이나 고생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단정을 한다. 그냥 노화로 인해 숨쉬기가 거북해져서 돌아가셨을 것으로 본다. 


살다보면 실망도 하고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게도 된다. 이에 화를 내기도 하고 역정을 부리기도 하겠지만 그게 다 손해란 사실, 그래본 들 그게 모두 아까운 내 생명력을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양반 역시 한 때 그런 세월도 겪었지만 끝내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다루었기에 저렇게 살다 갔을 것으로 여긴다. 


완전연소의 삶을 살다간 셈이니 죽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신선이 되어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돌아간 羽化登仙(우화등선)의 삶을 살다간 것이 아닐까 싶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엔 영원히 살 것 같아서 돈과 명예를 얻고자 세월을 보내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은 결국 내 삶이란 얘기였다. 


오늘의 글 역시 오후 3시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 시각이 새벽 3시 40분이다. 계속해서 의자에서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텔레비전에선 류현진이가 안타를 매회 맞아가면서도 실점하지 않고 용케 잘 던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