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에너지 자급을 달성했다고 하네, 거 참.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아킬레스건은 에너지 문제, 즉 석유였다. 미국은 중동 지역의 석유가 꼭 필요했고 또 그 때문에 중동 지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떤 이유로든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집트, 이라크, 아프간, 시리아, 그리고 지금의 이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늘 서남아시아 문제에 관여해왔다. 다시 말하지만 근본 이유는 석유였다.

 

그런데 엄청난 변화가 발생했다. 미국에게 엄청난 희소식.

 

최근 발간된 미국 에너지 관리청(EIA)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제 미국은 사실상 에너지 자립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늦어도 내년 2020년부터는 에너지 수입보다 수출이 더 많아지면서 미국의 에너지 안보가 100% 달성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공격 버튼을 누르지 않은 이유

 

 

최근 호루무즈 해협에선 미국은 이란과의 갈등 때문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열 받은 트럼프가 이란을 공격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냉정히 따져보니 미국 입장에서 이란이 괘씸하긴 해도 이란을 굳이 손봐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중동 산유지대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가 이제 미국으로선 전혀 아쉽지가 않은 것이다. 이 해협은 쿠웨이트를 비롯한 여러 산유국들이 생산하는 석유의 주요 운송로로서 세계 석유의 약 20%, 해상을 통해 거래되는 석유의 약 35 %가 통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석유의 대부분은 싱가포르의 말라카 해협을 거쳐 에너지 자급이 되지 않는 일본이나 우리나라 등으로 운송된다.

 

 

우리와 일본은 성의를 보여야 하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아서

 

 

그렇기에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우리와 일본의 명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 스스로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물론 당장은 미국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시도를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이에 트럼프는 야, 일본이나 한국도 군함을 보내어 보초도 좀 서고 성의를 보이라고 해, 우리만 신경을 쓸 이유는 없잖아, 안 그래?

 

아쉬운 건 우리와 일본이니 당연히 군함을 보내어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경계 임무에 협조해야 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자체적으로 엄청난 산유국인 이란과 등을 져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도 우리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요청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길게 볼 때 고품질의 산유국인 이란과의 관계도 중요한 까닭이다.

 

 

국적선이라고 하는 생경해진 개념의 뒤에는

 

 

그동안 미국은 전 세계 모든 公海(공해)의 안전과 항해의 자유를 지켜주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오래 전부터 국제 해운에 있어 國籍船(국적선), national carrier 란 개념이 있어왔고 이 개념은 항공해운에도 확대되어왔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생경한 단어가 되고 말았다.

 

국적선 혹은 국적기란 간단히 말하면 어떤 나라의 국기를 달고 다니는 상선이나 비행기를 말한다. 하지만 회사의 민영화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국적선이나 국적기는 그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가 있다. (가령 대한항공은 국적기 회사이지만 아시아나는 그렇지 않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 반세기 전만 해도 국적선을 공격하거나 위해를 가할 경우 바로 그 나라에 대한 공격이나 위해로 간주되었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공해는 오늘날처럼 안전하지가 않았는데, 해적이나 여타 다른 세력이 국적선을 공격하는 것은 사실상 그 나라와 전쟁을 각오해야 했기에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었다. 가령 예전에 해적들은 대영제국의 깃발을 단 배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았다. 후환이 두려워서.

 

국적선이란 개념의 중요성이 오늘날 사라진 까닭이 무엇일까? 하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미국 해군과 공군이 전 세계의 공해와 하늘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오늘날 공해상에서 다른 나라의 상선이나 여객기를 공격하는 일은 미치지 않고선 없는 일이다.

 

 

미국이 만든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글로벌이었는데

 

 

19세기의 제국주의 시절과 오늘날의 차이 역시 바로 이점이다. 과거 대영제국은 전 세계에 널린 시장과 원자재 산지를 확보하기 위해 막강한 해군을 통해 현지를 오고 가는 자국 상선들을 보호했다. 유럽 열강들과 미국, 나중엔 일본 제국 역시 저마다 국적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비경쟁을 펼쳤던 것이다.

 

오늘날 베트남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로 친다면 우리나라의 식민국가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군대가 동원되진 않는다. 공해의 안전을 미국이 책임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상공에 GPS 위성을 올려서 실시간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깔아놓은 것도 미국이다. 그 바람에 전 세계 모든 자동차들은 ‘네비’를 무료로 사용하고 있고 최근엔 해외 여행을 가도 스마트폰으로 길거리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엄청난 혜택이지만 공짜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에너지 자급을 달성하게 되면서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왜 전 세계의 모든 바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앞의 호르무즈 일처럼 석유를 가져다 쓰는 나라는 일본이고 우리 대한민국이건만 비용이 들고 위험 부담도 있는 항해의 안전은 미국이 책임지고 있으니 뭔가 균형이 맞지 않다. 트럼프 말대로 하면 언페어(unfair)하다. 당연히 틀린 말이 아니다, 수익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세상의 기본 이치인 까닭이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만들어낸 새로운 국제 질서는 과거 대영제국 시절의 자유무역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또 그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미국은 글로벌 경찰 역할을 맡아왔으며 IBRD와 IMF를 통해 전후 부흥과 글로벌 경제의 번영을 기했으며 나아가서 외화 부족에 허덕이는 전 세계 나라들에게 자국의 방대한 시장을 열어주었다. 그러니 미국 달러는 글로벌 통화일 수밖에 없었다. 금 본위제에서 달러 본위제로 바뀐 오늘의 글로벌인 것이다.

 

미국이 만든 신질서야말로 글로벌 전체의 번영을 가져왔다. 물론 처음엔 소련이라고 하는 라이벌,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타파하기 위한 미국 자체의 목적도 있었지만 이젠 사실 그런 것도 없어지고 말았다.

 

소련이 붕괴된 후 미국 스스로도 우리가 왜 전 세계 바다와 하늘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지? 하는 의문이 서서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대국의 체면도 있고 새 대통령들은 으레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기 싫었던 탓도 있고 해서 그냥 답습해왔다.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기 시작한 미국

 

 

그런데 체면이라곤 그다지 관심이 없는 장사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간의 방식에 대해 異義(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게다가 참으로 묘하게도 미국은 이제 에너지 자급을 달성한 참이다.

 

이제 미국으로선 태평양과 대서양이란 광활한 바다 건너의 나라들과 대륙들에 대해 길게 볼 때 전혀 아쉬울 것이 없어진 셈이다. 그냥 유라시아 대륙에서 패권을 휘두르는 막강한 한 놈만 등장하지 못하게 적당히 견제할 수만 있으면 충분해진 미국이다. 자잘한 것들이 서로 치고 받는 일 정도야 그냥 두고 보거나 아니면 적당한 시기에 그쳐! 하고 주의를 주면 되는 미국이다.

 

종교 때문에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중동? 됐다 해라, 우린 필요 없으니. 유럽? 연합해서 뭘 좀 하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고령화로 인해 장차 경제가 부진해질 늙은 대륙 아닌가, 내버려두면 알아서 자빠질 것이고 일본? 어느 세월의 일본인데,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 일. 문제는 중국이지. 저 놈들이 그 사이 우리 미국 시장에 물건을 팔아서 달러를 좀 벌었다고 까불어대고 있으니 이제 기를 좀 꺾어 놓을 때가 되었다.

 

이런 생각이 미국 보통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좋던 세월은 이제 지나갔다는 사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미리 내다보는 자의 눈에 세상은 이미 변했다. 커다란 틀이 바뀌고 있고 또 바뀌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입지도 장차 애매해졌다. 우리 역시 오대양 육대주로 물건을 실어 날라서 먹고 사는 수출주도형 경제, 미국이 손을 떼는 지역엔 거래가 위태로워 질 것이며 나아가서 더 문제가 있다.

 

중국이 조만간 제 풀에 무너질 것 같으면 중국을 견제하는 최전방 기지로서의 우리 대한민국도 값어치가 확 떨어진다는 점이다. 북한, 그거야 미국 입장에서 적당히 다루면 되는 일이고 통일을 하든 엎어지든 사실 무슨 상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미국인 것이다. 그저 반도체를 잘 만들고 있는 한국이니 공급에 문제가 없도록 관리하면 되는 정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소련이 무너진 마당이고 독일 놈들 군사비도 쓰고 있지 않으니 더 이상 우리가 크게 돈을 쓸 것도 없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폐기하면 그만이다. 아니면 러시아 견제 차원에서 적당히 폴란드라든가 스웨덴, 네델란드 정도나 밀어주면 되는 일.

 

그렇기에 미국의 현안 문제는 중국이다. 이번 트럼프는 방한해서 우리가 그동안 꺼려오던 인도 태평양 봉쇄전략, 즉 중국을 틀어막기 위한 방위 체제 구축에 있어 한국의 동참을 기어코 받아내고 돌아갔다. 우리로선 미국 편에 서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니 그렇다.

 

다른 나라 일에 크게 신경을 쓸 일은 없어지고 있는 미국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방위비용을 줄이진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감시위성을 포함한 글로벌 모니터링 시스템과 전략 탄도 미사일 체제, 11척에서 12척의 항공모함 체제는 그냥 유지될 것이고 하늘에선 무적의 F 35 전투기와 장거리 공격기인 B-52와 B-1, B-2를 통해 초장거리 전술 미사일 공격 태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선택적 개입의 시대에

 

 

이제 종전처럼 전 세계의 공해와 하늘의 안전을 무조건 책임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미국으로 변해가고 있는 셈이다. 영양가가 있을 경우에만 개입하고 간섭하는 방식 말이다.

 

雨後竹筍(우후죽순)이란 말, 비 오고 나면 삽시간에 대밭의 죽순들이 머리를 비집고 나온다. 이는 마치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만든 신질서로 인해 전 세계가 번영을 누린 것을 연상시킨다.

 

각국이 서로의 이권을 지키는 제국주의 방식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유무역을 통한 상호 번영, 각국의 안전은 물론이고 경제 안정과 번영까지 책임져주던 방식, 부족하면 미국 시장을 열어주어 번영을 가능케 했던 미국식 글로벌 질서가 이제 막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선택적으로 관여하는 새로운 글로벌은 훨씬 힘겨운 세상이 될 거란 점, 게다가 유럽과 일본, 우리와 중국까지 죄다 고령화로 인한 수요 부진을 겪어야 할 참이니 글로벌 경제가 장차 좋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반면 미국은 인구 구조가 그야말로 양호하고 탄탄하다.)

 

이제 멀지 않아 反美(반미)를 외치던 시절이 좋은 시절이었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생겼다. 우리 젊은이들이 미국을 두고 天朝國(천조국)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말이 진짜 리얼이 될 판이다.

 

오늘 글로서 그간 이어왔던 2019년 현재의 글로벌 이슈에 대해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