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홍콩을 소화하지 못한다.
일국양제, 나라는 하나이지만 제도는 두 가지인 방식이다. 1980년대 초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이 제시한 중국 통일의 대원칙이다. 전쟁하지 않고도 대만이나 홍콩, 마카오 등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특별한 제도이다. 현재 홍콩이나 마카오는 이미 이런 식으로 중국에 흡수되었지만 사실 일국양제는 통일하기 쉽지 않은 대만을 내다보고 채택한 정책이다.
그런데 이번 홍콩 사태를 보면 결국 중국이 홍콩을 소하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 호호당이 발견한 자연순환의 이치에 따르면 중국의 홍콩 흡수는 이미 실패를 예고하고 있다.
2021년, 중국 경제 파탄
뿐만 아니라 얼마 가지 않아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후년인 2021년에 가서 홍콩 문제와 함께 중국 경제의 파탄이 시작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이 홍콩을 소화하지 못한 나머지 그 몸통인 중국 전체가 파탄에 이를 수 있을 거란 얘기이다.
그럴 경우 중국 내부에 政變(정변)이 발생할 가능성과 함께 2018년 3월 주석 직의 임기제한을 철폐한 뒤 사실상의 황제 자리에 오른 시진핑의 안위도 무사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2021년에 말이다.
기발한 아이디어 일국양제로 일단 삼키기는 했으나
홍콩은 아편전쟁의 패배로 인해 1842년 영국에 영구적으로 넘어갔다. 영국 영토가 된 셈이다. 하지만 제2차 대전 이후 글로벌 지도 세력으로 등장한 미국은 유럽의 식민지 제국들을 해체해버렸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영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홍콩의 반환 협상을 시작했다.
이때 등소평이 내세운 나름 기발한 방식이 바로 일국양제였고 그 바람에 1984년 12월에 가서 홍콩반환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로 인해 홍콩은 비교적 순조롭게 중국으로 인도되었으니 1997년 7월 1일이었다.
묘한 것은 홍콩을 되찾은 일에 대해 중국 사람들은 환호했으나 정작 홍콩 주민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다.
중국 공산당은 일국양제의 원칙에 따라 홍콩이 반환되더라도 경제와 정치 제도는 50년 동안 유지될 것을 약속하면서 홍콩 주민들을 안심시켰으나 공산당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홍콩 주민들은 그 이후 1997년 반환 직전까지 무려 총 50 만명 이상이나 홍콩을 떠났으며 떠나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수가 미국을 포함해서 다른 나라의 영주권이나 싱가포르로 도망갈 수 있는 자격을 취득했다.
이런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담고 있는 영화가 바로 반환 직후 상영된 홍콩 영화 “메이드 인 홍콩”이다. 나 호호당은 그 영화를 예전에 보았는데 마치 내일이 없다는 식의 대단히 음울한 분위기의 영화였다.
하지만 정작 홍콩은 반환된 이후 그런대로 평온을 유지했고 중국 중앙정부의 일국양제 약속도 비교적 잘 지켜지는 듯 했다.
2014년 우산혁명, 최초의 이상징후
하지만 뭐든 시간이 말해주는 법.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기간으로 해서 순환하고 있기에 지켜봐야 하는데 일차적으로 좋지 못한 징후가 나타났으니 2014년의 “우산혁명”이 그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홍콩의 최고위 행정직인 행정장관직 선출에 있어 후보제한 조치를 취하자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시위였다. 당시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가 있어 판단하기엔 다소 시기상조라 보았다.
기껏해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시위라는 점에서 일과성일 수 있다는 판단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1984년 12월의 홍콩 반환이 결정된 이후 30년만에 생겨난 대규모 시위라는 점이었다.
그간에 중국 공산당은 관광객을 대거 홍콩으로 보냄으로써 홍콩 주민들의 밥줄을 중국 쪽으로 얽어놓았기에 시간이 지나면 결국 홍콩은 무난하게 중국이 소화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이상주의에 기울기 쉬운 대학생들의 시위 정도는 평가 절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일은 1984년 반환 결정 이후 30년 만에 대규모 시위가 등장했다는 점이었다. 이는 예사 일이 아니었다.
30년은 60년 사이클에 있어 돌아오는 시점이다. 즉 반대 흐름이 나타나는 시점이 된다. 그런 면에서 우산 혁명이 장차의 징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이번 시위야말로 진짜 심각한 일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 시위는 학생들만이 아니라 시민들도 대거 가세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올해는 2019년이니 1997년 반환 시점으로부터 22년이 된다.
60년 흐름에서 22.5년은 대단히 중요한 자리이지만 숨어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일반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 기간은 장차의 흐름을 명확하게 전망할 수 있는 숨어있는 급소인 까닭이다. 1997년 7월 1일자로 반환되었으니 내년 1월 1일이 되면 정확하게 22.5년이 된다.
그런데 최근 시위 양상은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다. 공항 점거 사태가 그렇고 중국 군대가 들어올 것이란 소문도 흉흉하다. 그렇게 되면 제2의 천안문 사태가 터질 수도 있다.
체면을 구긴 시진핑
이와 관련해서 얼마 전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베이다이허 회의가 있었다. 베이다이허 한자로 北戴河(북대하)는 베이징에서 정동쪽으로 250 킬로미터 떨어진 보하이만의 해변 휴양지이다. 중국 공산당과 고위급 인사들의 여름 별장이 들어선 일종의 특별 구역이다.
1954년 마오쩌둥 당시 주석이 처음 이곳에서 공산당 비밀회의를 연 이후 해마다 여름이면 피서를 겸한 비밀회의가 열리고 있다. 공식회의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모든 중대 결정은 바로 이 기간 중에 이루어진다.
공식 자료는 발표되지 않지만 주변을 통해 흘러나오는 회의 내용이야말로 중국의 권력이동과 정책의 향배를 알 수 있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른바 밀실행정 밀실정치의 대명사라 하겠다.
최근 북한 김정은이 중국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데 첫 번째 방문 당시 시진핑과 함께 베이다이허의 해변을 산책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곳의 해변을 두 사람이 산책했다는 것은 두 사람 간에 밀담을 나누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정은아, 걱정 마, 쫄지 마, 내가 있잖아.
그런가 하면 최근 트럼프가 중국을 환율조작국가로 지정했을 때 마침 베이다이허 회의 중이었다는 사실. 트럼프가 고의적으로 시진핑의 얼굴을 깎아 내렸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중국 어용언론들은 일제히 분개하고 있다.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시진핑은 꽤나 궁지에 몰렸던 모양이다. 홍콩 문제와 함께 미중 무역전쟁 등의 난제로 인해 시진핑의 국수주의 드라이브와 지도능력에 대해 공산당 상무위원들로부터 상당히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추측을 가능케 하는 대목은 이번 회의를 주재하기로 되어있던 시진핑의 핵심 책사인 “왕후닝”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왕후닝은 중국공산당의 최고 결정기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에서 서열 5위의 인물이란 점이다. (시진핑을 빼면 서열 제4위가 된다.) 작년 2018년 3월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을 베이징 역에서 직접 영접할 정도로 시진핑의 腹心(복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비밀회의를 주재할 사람이 빠졌다는 것은 여간한 일이 아니다. 아마도 회의를 주재하게 되면 나머지 시진핑을 견제하는 상무위원들로부터 상당한 질책을 받게 될 것을 염려했던 모양이다. 이는 시진핑의 현재 처지가 그렇게 편하지 않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 취임부터 문제였는데
사실 중국은 2013년 시진핑이 처음 주석직을 맡았을 당시부터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중국 경제는 다운 사이드로 들어섰던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 대한민국 경제가 2012년부터 사실상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한 것과 같다.
이에 시진핑은 무리하게 돈을 풀어 억지로 성장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취임 이후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 바람에 억지 건설이 다반사이고 수요도 없는데 공장과 플랜트를 만들고 있는 중국이다. 우리말로 하면 타당성 조사를 무시하고 전철을 놓고 철도를 깔고 비행장을 지어대는 셈이다. (하기야 우리도 이번 정부 들어 경제 부양을 위해 타당성 조사 면제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홍콩에서 저런 강렬한 반발이 격화되고 있다. 이건 결국 중국이 홍콩을 돌려받은 1997년으로부터 24년이 흐른 2021년에 가면 실패로 끝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의 홍콩 삼키기는 무리였다고 말이다.
대만 통일은 물 건너가고 있으니
홍콩이 저 모양이니 대만 흡수는 사실상 물 건너가고 있다. 대만 내의 친중파(대륙파)도 최근 급격히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일국양제, 모순된 것을 조화하려니 그게 너무 어렵다.
시쳇말로 양질의 식민지 통치를 받던 선진 홍콩을 후진의 중국이 소화하기엔 무리였다는 얘기이다. 홍콩이 전 중국을 뒤흔들어댄다면 그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이른바 Wag the dog 현상의 또 다른 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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