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半(야반)의 독서

 

 

밤공기 차가운 한밤중 혹은 새벽녘에 윌리엄 워즈워스의 장편시인 “서곡(Prelude)”을 읽어나가다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원문부터 소개해본다.

 

And yet we feel—we cannot choose but feel—

That they must perish. Tremblings of the heart

It gives, to think that our immortal being

No more shall need such garments; and yet man,

As long as he shall be the child of earth,

Might almost "weep to have" what he may lose,

 

번역해보면 이렇다.

 

하지만 우린 느끼네-느낄 수밖에 없네-

그것들은 소멸하리라고. 가슴 떨린다네

불멸의 우리 존재가 더 이상 그런 (거추장스런) 옷가지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리란 생각을 하면 말일세, 그러나 인간은,

그가 대지의 아이들로서 살아가는 한,

결국 잃게 될 것을 ‘갖고자 울’ 것이며,

 

 

인간, 양면적인 존재

 

 

전후 맥락 없이 인용했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렵겠다. 거두절미하고 나 호호당이 감동을 받은 대목에 대해 얘기해보면 이렇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가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이상 원하는 무엇을 잠시 소유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잃게 될 터인데 그럼에도 우리들은 좀 더 가져보고자 울고 소리치며 살아간다는 저 대목, “weep to have”, 즉 “갖고자 울” 것이란 저 시구이다. 이에 반해 그 앞에 있는 “불멸의 우리 존재”란 말은 우리 속에 깃든 神聖(신성)을 말하고 있다.

 

워즈워스의 이런 시각은 인간이 양면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 속에 영원불멸의 신성이 깃들어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땅의 아이들이기도 하기에 언젠가 죽어서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좀 더 가져보고자 울고 소리치면서 안간힘을 쓰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앞에 인용한 시구는 서곡 5권, The Prelude. Book.5 중에 있음을 밝혀둔다.)

 

워즈워스의 말이 실로 맞다. 우리들은 무얼 조금이라도 더 가져보고자 울어대고 소리치고 때론 악다구니까지 하며 살아가고 있다.

 

 

치열한 승부

 

 

엊저녁 시간 부산에서 열린 BMW LPGA 대회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컵을 거머쥐는 모습을 녹화로 보았다. 교포 선수인 다니엘 강이 앞서 가다가 끝내 동점이 되었고 연장전 결과 운은 장하나 편이었다.

 

다니엘 강과 장하나 두 선수는 절친이란 해설자의 멘트가 있어서 두 사람 운세를 체크해보았더니 역시-였다. 서로 바빠서 특별히 따로 만나보진 못해도 시합이 끝나면 함께 아이스크림 사먹고 쇼핑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장하나는 작년 2018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추였고 다니엘 강은 올 해가 입추의 운이었다. 게다가 장하나는 태어난 날이 戊土(무토)이고 다니엘은 己土(기토), 같은 土(토)의 사람들이라 두 사람은 친한 것은 당연지사.

 

입추라 하면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고 향후 15년간은 흐름이 더 좋다는 뜻이 된다. 장하나는 또 한 사람의 박인비인 셈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향후가 더 기대되는 선수들인 것이다.

 

최종 라운드가 펼쳐진 어제 27일은 기해년 갑술월 정유일이었다. 다니엘 강은 어제 64타를 쳤고 장하나는 65타를 쳤다, 두 사람 모두 엄청난 호조의 날이었는데 그럼에도 장하나가 우승한 이유는 날이 丁酉(정유)였기 때문이다. 丁酉(정유)일은 이른바 ‘운발’ 싸움에서 장하나에게 아주 미세하나마 조금은 더 유리했던 까닭이다.

 

밤에 워즈워스의 시를 읽고 있는데 저녁에 본 장하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퍼트를 성공시키고 주먹을 불끈 쥐는 장면이었다. 그래 저것 역시 소리 없는 울음이지 싶었다. 우승 시상식장에 가려고 카트를 타고 떠나는 장하나 뒤로 다니엘 강은 쿨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 저 역시 승부에 단련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일거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만 날인가 또 기회가 오겠지 하는 모습, 보기에 좋았다.

 

스포츠가 좋은 점은 정해진 룰 안에서 승부가 가려진다는 점이다. 특히 골프와 같은 스포츠는 시비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승패가 깔끔하다. 비디오 판독이 필요치 않은 담백한 스포츠.

 

 

이 세상이 스포츠만큼 깔끔하진 않아서

 

 

욕망과 욕망이 서로 맞부딪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 모든 투쟁을 법이나 룰로 깔끔 명확하게 판단하거나 가려낼 순 없다. 정말 그렇다, 현실의 세상은 욕망이 치열하게 갈등을 빚어내고 부딪치고 있지만 깔끔한 판결은 어렵다.

 

특히 정치의 장으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이전투구의 양상이 되기 마련인데, 정치가 이전투구가 되는 것은 그만큼 욕망의 總合(총합)이 큰 까닭일 것이다. 달리 말해서 승패에 따라 걸린 몫이 엄청나게 크다는 얘기이다.

 

정치 또한 깔끔하게 승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지는 않다. 5년마다 있는 대통령 선거와 4년에 한 번 있는 국회의원 총선과 지방선거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적 간격이 꽤나 길어서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상호간의 치열한 공방전 또는 이전투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운의 순환에는 기초적 욕구를 충족하는 시기가 있으니

 

 

다시 돌아와서 얘기이다.

 

모두가 소유해보고자 울어대는 세상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개인적으로 보나 국가 전체적으로나 보나 운의 순환이 존재하기에 모두 다 때가 되면 어느 정도는 그 욕망을 충족하는 때가 온다는 점이다.

 

60년 순환에 있어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추게 되는 때는 입춘 바닥으로부터 25년이 경과할 무렵이다. 60년을 한 해로 치면 7월 초의 小暑(소서) 무렵이 되는데 이때가 되면 이제 기초 욕구인 먹고 사는 것 즉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우리나라는 1989년으로서 기초적인 욕구를 달성했으나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1964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25년이 흐른 1989년이 국운의 소서였다. 그때부터는 당장 급한 먹고 사는 문제가 많이 좋아졌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대충 해결이 되자 정부는 바로 그 해 1989년에 해외여행자유화를 단행했다. 그 이전만 해도 일반인의 해외여행은 피같이 귀한 달러를 소비하고 온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엄격하게 통제를 했다. 그러자 드디어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도 해외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누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해외여행 자유화는 우리가 기초적 욕망 충족 단계에서 그 다음 단계 즉 질적인 욕망 추구로 넘어갔음을 상징하고 있다.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닌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던 셈이다.

 

 

2000년대부터 또 다른 투쟁 양상

 

 

1989년으로서 기초적인 욕구를 해결하긴 했으나 가지기 위해 울고 싸우는 투쟁은 조금의 양보도 없이 진행되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 것인데 이 싸움은 다시 10년이 흘러 2000년대로 들어서자 또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었으니 양극화와 함께 럭셔리 투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입시나 교육, 취업도 이젠 이른바 돈이 많이 드는 “스펙 쌓기” 싸움으로 변했고 대학진학은 한 판의 시험으로 승부를 보는 정시보다 학생부 종합 전형, 줄여서 학종을 통한 수시 싸움으로 변해갔다. 정시보다 돈도 더 많이 들고 부모들의 부담도 훨씬 큰 저 학종 전쟁판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변해도 또 어떤 룰을 적용해도 경쟁이 치열한 이상 변칙과 반칙은 막을 길이 없는 법, 양보할 까닭이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1989년으로서 기본 생활 욕구는 해결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갖고자 울어대는 이 싸움은 조금치도 변함이 없다.

 

 

2010년대가 되자 더욱 각박해지기 시작했으니

 

 

그런데 2010년대로 들어서자 게임의 양상은 또 변해갔다. 국운이 내리막길을 타면서 그 어딜 가도 모든 방면에서 ‘기회의 문’은 좁아져가고 닫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석박사를 취득해도 취업이 되질 않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어도 마찬가지, 그러자 학생들은 공시족으로 변했고 그 쪽 전장에서 박 터지게 싸우고 있다.

 

일자리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직장을 두고 기득권 대기업 노조는 맹렬하게 기득권을 지키려는 태세를 보였다. 그 바람에 한 때 나름 사회 정의를 내세우며 큰소리치던 노조들은 비정규직을 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조용히 입을 닫았다. 2000년 초반 한 때 바람을 일으켰던 민노당이 2011년으로서 해체된 일이 상징적이다. ‘노동의 시대’도 사실 그로서 끝이 났다.

 

 

운이란 것은 상승의 흐름도 있지만 반대로 하강의 흐름도 있다. 1989년 기초 욕구를 달성했던 우리 대한민국이었는데 그게 올 해로서 30년이 흘렀다. 이젠 더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그 반대의 흐름이 시작되는 올 해인 것이다.

 

이에 2020년대는 그야말로 처절한 투쟁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또 다시 1960년대의 빈곤으로 되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진 않아도 흐름은 되풀이된다는 사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도전과 시련의 문턱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제 가지려면 더 많이 울어야 하겠고 또 악을 쓰면서 울다 보면 가지게 되는 날도 언젠가 올 것이다.


따뜻한 때가 끝나고 차가운 때가 찾아드니



오늘은 霜降(상강)이었다. 대기 속의 수증기가 새벽녘 살짝 얼어서 무서리가 되어 내린다는 날이다. 며칠 사이 동풍이 불어 낮으론 약간 덥기도 했는데 이제 기온이 다시 한 단계 내릴 것이다. 


1년 사계절이지만 크게 여름과 겨울로만 나눌 것 같으면 지금이 바로 교절점이다. 4월 20일 경의 곡우부터 6개월 동안 따뜻한 날이 이어지고 지금 10월 24일 상강으로서 6개월 동안 찬 날씨가 이어진다. 그러니 따뜻한 때 끝나고 추운 때 시작되고 있다. 서풍과 북풍이 주로 불 것이고 중국 발 미세먼지로 매캐한 때가 시작되고 있다. 


날이 차가워지니 生産(생산)이 끝난다. 생산에는 열기 즉 열에너지가 필요하기에 그렇다. 



우리 국운의 차가운 계절은 2007년부터 시작되었으니



돌이켜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60년 국운 순환에 있어 생산의 시기는 1977년부터 30년간 이어져서 2006년 말로서 끝이 났다. 그로부터 차가운 계절이 시작되었던 셈이다. 


국가에게 있어 생산이란 이른바 그 안의 사람들이 먹고 살면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먹거리 산업”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 무렵부터 우리는 중화학 공업 육성을 통한 수출 증대에 나섰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먹고 사는 주력산업들이 만들어졌고 또 그 바람에 나름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요즘 사람들을 보면 활력이 죽었다. 왜 그럴까? 사람은 예측하는 동물이고 앞날을 감지하는 존재인 까닭이다. 앞으로의 일이 영 시원치 않을 것 같아서이다. 


2007년부터는 사실상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지 않고 있고 그 결과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전기차라든가 2차 전지, 바이오 등등의 미래 산업들 역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해가고 있을 뿐이다. 


생산의 때가 끝나고 나니 희한하게도 신생아 수도 덩달아 줄어들고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생산은 뭐니 해도 출산이기에 사실 희한하다고 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40만명 대에서 오르내리더니 2010년 이후론 30만명 수준이 되었고 금년 혹은 내년엔 30만 이하로 떨어질 공산도 크다.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 또한 솔직히 말해서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김영삼과 김대중, 양김으로 대변되는 시대야말로 뜨거운 정치의 계절이었다. 그 이후를 보면 민주화 운동권 세대 이른바 586세대 이후로는 정치 방면에 있어서도 신인이 등장하지 않고 있으니 그렇다. 586 세대가 기득권이 되어 아랫세대의 등장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정치 또한 생산적이지 않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노무현과 이명박 이후론 사실 기득권 정치가 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았고 현 문재인 대통령 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 모두 정치적 상속을 받은 기득권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현 우리나라를 보면 모든 면에서 기득권이 철저하게 아성을 굳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득권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자한당이나 민주당이나 그런 점에서 동일하다는 면에서 볼 때 우리 정치 역시 생산성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모두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 모든 면에서 생산적적이지 않은 나라, 늙어가는 국가가 되어버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번 10월로서 국운의 맹추위가 찾아들 것이니



이번 상강은 나름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금년 10월로서 우리의 국운이 60년 순환에 있어 본격 추위가 시작되는 小寒(소한)의 때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소한은 양력 1월 5일 경에 찾아오는 절기로서 맹추위가 시작되는 때이다. 그렇기에 이번 달부터 우리의 앞길에는 국운의 冬將軍(동장군)이 찾아온다고 보면 되는 까닭에 이번 상강이 각별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10월 초에 “비핵화 엔드게임”이란 글을 올렸다. 이달로서 비핵화 협상이 좌초되느냐 아니면 길을 여느냐가 결정되는 機樞(기추)의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상강까지도 그 어떤 극적인 진전의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평양에서 있었던 축구 시합만 봐도 그 얼마나 냉랭했던가, 실질적인 진척이 있었을 것 같으면 그랬겠는가. 


따라서 비핵화 협상은 결국 무위로 끝날 것이라 여긴다.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고 더러 아직도 계속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겠으나 나 호호당의 눈엔 이번 달로서 ‘실패’라는 계산서가 나왔다. 


10월 초 한 차례 스웨덴에서 한 차례 실무협상이 무위로 끝나더니 그만 그대로 김이 빠지고 말았다. 북한은 비핵화를 할 생각이 없는 것이고 미국은 그런 북한을 상대로 제재 완화를 해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 바람에 우리 정부는 그 사이에서 이도저도 할 것이 없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도 미국의 트럼프는 내년 재선 때문에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협상을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서로 간에 마음이 없는 어설픈 시늉에 그칠 것이라 본다. 


트럼프에겐 기껏해야 미국 내 대선용일 것이고 북한 또한 이번 협상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확실한 약속을 얻어낸 마당이라 더 이상의 긍정적인 조치는 취할 마음이 없다고 보면 되리라. (미국에게 붙을 것처럼 행동한 결과 중국으로부터 체제유지비용을 확약 받고 다짐을 받은 북한이라 보면 된다.)


앞에서 얘기했다. 이번 10월로서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小寒(소한)의 때로서 이제 국운의 맹추위가 시작된다고. 


올 상반기 2% 대 성장이 어려울 것 같다는 전망이 나왔을 때 나 호호당은 2%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단정을 지었다. 이유는 더 이상 우리에게 열에너지, 즉 힘이 없기에 잠재성장률의 하락과 함께 플러스(+) 성장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을 했다. 


현 정부가 2018년부터 연이어 팽창 예산 또는 수퍼 예산을 편성해서 재정투입을 늘리고는 있어도 내년엔 1% 성장률도 만들어내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그 바람에 2017년의 3.2% 성장률이 마지막 불꽃놀이였던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모두 이번 10월로서 국운의 맹추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2022년이면 외국인 자금들이 우리로부터 떠나갈 것이니 그때가 되면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가장 혹독한 추위인 大寒(대한)의 때가 찾아들기 때문이다. 



길고 긴 지지부진한 시기를 맞이하여



계산해보면 2007년부터 30년간 무기력하게 이어지다가 2037년이 되어야 되살아나게 될 우리의 활력이다. 2007년부터 2022년까지 15년은 계속해서 활력을 잃어가는 기간이고 이에 2022년 바닥을 친 뒤 다시 15년에 걸쳐 서서히 힘들게 활력을 되찾아갈 15년이다. 


그러나 이 고통의 기간이 의미가 없는 기간은 아닐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미 쓸모가 없고 생산성도 없이 그저 권력만 쥐고 있는 기득권들이 무너지고 사라져갈 것이며 그 자리를 새로운 신인들이 서서히 때론 급격하게 자리를 메워갈 것이다. 


그 사이에 실로 많은 것들이 변해갈 것이다. 10년 뒤만 해도 그 때 가서 지금을 되돌아보면 桑田(상전)이 碧海(벽해)가 되었네 하는 탄식이 나올 것이라 여긴다. 


오늘 이 글은 평소보다 약간 짧게 마무리한다. 하지만 이 글은 나 호호당 스스로에게도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는 기념이 될 것이라 여긴다. 10년 뒤에 가서 다시 이 글을 불러서 읽어보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참으로 많은 감회가 일어 어허! 하고 탄식하게 되진 않을까. 


글을 마치니 벌써 10월 25일 새벽 3시가 넘고 있다.


금리를 내리긴 했으나



한은이 기준금리를 1.25%로 내렸긴 하지만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이주열 총재는 최근 기준금리 정상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진짜 어려울 때 쓸 수 있는 카드가 있어야 된다는 말을 했다. 이번에 금리를 내리긴 했어도 그게 영 불편하다는 얘기이다.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장기 불황 더 나아가서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 한은은 그런 것에 대비하기 위해선 금리인하 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어렵다고 금리를 자꾸 내리다 보면 정작 심한 불황이 닥칠 경우 대응수단이 없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더 금리를 내려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금리의 실효하한에 대한 논의도 무성하다. (최근 기사를 보니 우리의 경우 더 이상 금리인하로 인한 약발이 먹히지 않는 금리수준을 놓고 전문가들은 0.75%로 보고 있다.) 



불황인데 부동산 시세는 더 오르고 있으니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는 불황이고 성장력은 고갈되고 있는데 부동산 시세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가 낮다 보니 돈은 많이 풀렸는데 그 돈들이 갈 곳이라곤 오로지 부동산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에 대해 일본식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 그리고 일본식 장기불황의 가능성이 있다는 논의가 많았다. 그러나 불황은 지속되는데 부동산 시세가 높다는 것을 보면 장차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위기는 일본식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1990년에 시작된 일본 거품 붕괴는 금리인상이 부동산 시세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시작되었고, 그 이후의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에 대해선 여러 주장이 제기되긴 했어도 아직까지도 그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닥칠 위기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양상일 것이니



나 호호당의 경우 우리에게 닥칠 경제위기는 일본 스타일과는 전혀 다를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 있어 위기를 촉발시킬 요인은 단 하나, 우리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때,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촉발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때 발생될 것이라 보고 있다. 


아무튼 그 요인이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해선 예단할 수 없지만 다만 그 시기는 2022년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게 되면 한은은 금리(또는 환율)를 인상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비정상적으로 높은 부동산 시세에 즉각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럴 것 같으면 모든 이들이 늘 얘기해오던 우리 경제의 뇌관, 즉 가계부채 문제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장기불황이 먼저 시작되고-현재 이미 시작되었다는 지적도 많지만- 부동산 붕괴와 가계부채 문제는 그 다음에 올 수 있다는 얘기이다. 


외국인 자금이 우리 금융시장에서 이탈할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가 예상된다. 비핵화 협상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미국과 북한 간에 험한 대치국면이 발생하거나 또 우리와 미국 사이의 동맹관계에 중요한 균열이 발생할 경우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또 생각해볼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가능성은 역시 외부요인에서 오는 충격이다. 



글로벌 불황이건만 사실상 아무런 대책이 없는 글로벌 경제



며칠 전 IMF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8개국에서 채무 불이행(디폴트) 위험이 있는 기업부채가 2021년이면 전체 기업부채의 40%가 되고 그 액수는 19조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대변되는 세계 중앙은행들의 통화 완화 정책이 기업들의 과도한 차입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최근의 글로벌 불경기는 이미 금리가 사상 최저로 떨어진 상황, 즉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이 이미 한계에 봉착한 마당이라 사실상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시나리오는



하지만 나 속으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대응책이다. 미국이 현재 관세 문제를 가지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금융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은행들이 직접 중국으로 빌려준 대출 액수, 즉 중국에 대한 대출 익스포져(Loan Exposure)는 사실 그다지 크지 않다. 미국 은행들의 전체 해외 대출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 미만이다. 미국 투자자들의 중국에 대한 투자 액수 역시 전체 포트폴리오의 1.5%에 불과하다. 


하지만 싱가포르나 홍콩 등지의 은행들이 중계하는 방식으로 중국에 흘러들어간 대출 액수는 어마어마하다. 액수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다. 그저 추정치만 있을 뿐이다. 


2013-2016년 기간 중에 미친 듯이 부채를 늘린 중국



국제결제은행(BIS)이 수시로 발표하는 보고서 중에 보면 ‘신용-GDP 갭’이란 항목이 있는데, 이는 경제 성장과 민간 부채 증가의 비율을 장기적으로 살필 때 그 차이 즉 갭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BIS는 이 갭이 10%를 넘어서면 경제위기의 징후로서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시진핑이 주석이 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20% 이상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특히 2015년엔 무려 28%까지 치솟았었다. 거의 미친 짓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위기 징후를 감지한 중국 당국은 2017년부터 이 비율을 10% 이하로 떨어뜨리고 2018년 이후론 10% 미만의 정상 비율로 되돌아왔지만 이미 풀려나간 대출 즉 돈은 이미 너무 많다는 점이다. 


2013-2016년까지 4년간 지속된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무리한 신용 확장, 그 내용을 보면 대부분 국영기업에 대한 엄청난 대출이고 또 그 중에는 수익성 없는 SOC 건설 관련 대출이 엄청나게 많아서 장차 그 후유증을 모면하긴 어려운 것이다. 


최근 중국의 성장률이 지속 하락하는 것 역시 중국 당국이 이 비율을 크게 낮추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출이 줄어들자 성장률을 만들어낼 수 없는 중국인 것이다. 



미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지금 중국이 위기관리에 나서고는 있지만 그간의 누적액수로 보면 실로 엄청난 대출이 풀려나가 있는 중국인 셈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은행들을 통해 약간의 대출 회수에 나서기만 해도 중국은 즉각적으로 신용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대출회수에 나설 경우 물론 미국은행들도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미국 은행들은 주로 미국 민주당 편인 까닭에 차기 대선에서 어느 당 후보가 승리할 것인가에 따라 이 위기는 생겨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고 이어서 중국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금융을 통해 중국을 옥죄는 카드를 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경우 중국은 즉각 신용위기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고, 중국의 신용위기는 그 자체만으로 한정되지 않고 지금보다 더 험한 세계적인 경기악화와 불황을 촉발할 것이 명백하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국내 금융시장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자금에 대해서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줄여 말하면 전쟁을 치를 수 없는 미중간의 패권 경쟁이기에 현재의 무역전쟁과 환율 전쟁으로 여의치 않으면 금융이란 무기를 동원할 수도 있는 미국이란 점이다.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며칠 전 어느 독자가 부동산 전망에 대해 질문해왔다. 이에 나는 그 문제는 그간에 글을 통해 여러 차례 밝혀왔다는 점, 특히 금년 5월 13일자 “2022년부터 우리 증시의 외국인 투자가 줄어들 것이니”란 글을 올렸는데 그렇게 되면 부동산 시세가 견딜 수 있겠느냐는 답변을 했다. 


1992년 자본시장 개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외국인 자금이기에 30년 즉 60년 순환의 절반이 흐른 시점이 되면 反轉(반전)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인에서 그렇게 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일이 있으면 우리 금융시장에 긴축이 발생할 것이고 이에 환율 상승과 금리인상이 불가피해질 것이니 그러면 당연히 부동산 시세도 하락할 수밖에. 


그런 면에서 최근 들어 젊은 층들이 전세로 지내느니 차라리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려는 경향이 상당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어쩌면 최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으리란 걱정도 든다.



급증하는 국가부채



현 정부 들어 역대 경제 관료들이 그동안 지켜오던 국가부채비율에 대한 기본 룰이 깨어졌다. 국가부채비율에 여유가 있다는 판단 하에 정부는 지속적으로 초대형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특히 내년엔 총선이 있는 관계로 더할 것이다.

 

금리 수단은 이번 인하를 통해 사실상 여력이 줄어든 마당에 정부는 재정투입을 너무 쉽게 늘리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내부 요인이든 외부 상황이든 그 어떤 변수에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앞에서 이주열 총재가 비상시에 대비한 금리정상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으니 걱정이다. 멀지 않아 비바람이 불어 닥칠 판국인데 말이다. 올 가을 유난히 태풍이 많은 것을 지켜보면서 이 또한 하나의 징조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정직성 화가의 전시회를 보기 위해 오후 2시 조금 넘은 시각 집을 나섰다. 평창동이라 ‘길찾기’로 검색해보니 동작동 집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면 되는 코스였고 소요시간은 1시간 20분이었다. 이 정도면 나로선 도시 안의 여행이지 싶었다. 날도 좋고 해서 택시를 타지 않고 그냥 버스를 탔다. (택시요금은 2만3천 원 정도라 하니 2만원은 굳은 셈이다.)


동작대교를 건너 삼각지 쪽으로 해서 숙대입구 정류장에서 갈아탔다. 모처럼의 강북 행이고 특히 평창동 쪽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밝고 화창한 가을 날씨라서 눈이 즐거웠다. 자하문터널을 지날 무렵엔 遠征(원정)을 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눈에 익은 세검정 정자와 개울 저쪽 산언덕의 가을색도 고왔다. 버스가 평창동 고갯길로 접어들자 “야, 진짜 오랜만이네!” 하고 탄성이 나왔다. 평창동 쪽은 거의 20년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언덕길을 올랐다. 허리 교정을 받고 있어 약간 자신감도 생겼던 터라 성능(?)을 시험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택시를 탔겠지만 버스를 택한 이유도 이런 까닭에서였다. 


북한산 자락을 올려다보면서 걷다보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하늘의 구름 보는 재미가 즐거웠다. 뭉게구름 위로 비늘구름이 깔렸고 더 위로는 새털구름이 실오라기처럼 풀어져가고 있었다. 주택가의 길이었지만 산도 가깝고 해서 혼자만의 소풍에 나선 기분이었다. 


목적지는 누크 갤러리였다. 정직성 작가의 수물 두 번 째 전시전이라 한다. 정직성 작가는 자연순환운명학 강좌에서 만나 인연이 되었지만 나 호호당이 그림에 관심이 큰 터라 더 각별하게 느끼는 인생 후배이다. 


도록에서 작품의 이미지를 이미 보았지만 역시 실물은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이번에 작가는 특별히 나전칠기로 된 작품, 옷칠과 영롱한 빛깔의 자개를 박아서 만든 작품들을 소개했는데 실물을 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훕-하고 숨을 들이켜야 했다. 


가장 큰 작품은 흑단색의 옻칠 바탕 위로 은하수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자잘한 자개 조각들이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작품 전체는 굽이치는 파도의 형상이었다. 큰 자개는 파도였고 작은 자개조각은 파도 위로 튀어 오르는 泡沫(포말)이었다. 


사진을 아무리 잘 찍어도 원작의 실물감과 디테일을 살려낼 순 없는 법. 작품 앞에 서면 작가가 느껴지지만 이미지 앞에선 그럴 수가 없다. 와보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프랑스 오르세이 미술관을 찾아갔을 때 알게 되었다. 고흐나 세잔, 드가, 로트렉 등의 작품을 접하는 순간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잘 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그건 착각이고 환상이었겠지만 말이다. 


나전칠기 작품을 본 뒤 작가의 통상적인 작품,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로 된 그림 중에 한 작품이 오랫동안 내 눈길을 끌었다. 이른 봄의 매화 그림이었다. 바탕칠은 블루였고 그 위에 연분홍의 매화가 검은 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날리고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꽃과 푸른 허공 사이에 슬쩍슬쩍 회색조의 그린, 풀색이 자리하고 있었다. 꽃과 가지 사이로 비치는 바탕은 블루와 그린이었던 것이다. 초봄 찬바람을 견디는 쑥이나 냉이가 떠올랐다. 초봄이면 냉잇국이 절로 당기는데. 


몇 년 전 강원도 작은 절의 주지로 지내는 스님을 찾아갔더니 스님이 냉이차를 내놓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며칠 동안 눈이 맑아졌다. 혈압을 내리고 눈에 좋다더니 헛말이 아니었다. 언젠가 인도 고산지대에서 나는 오리지널 다즐링을 마셨을 때도 눈이 맑았는데 냉이차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손님들이 몇 찾아왔다. 작가와 관장님이 그분들을 응대해야 했기에 잠시 한 대 피울 겸 해서 갤러리 바깥으로 나왔다. 다시 하늘 구경. 


나이 들면서 호호당의 즐거움 중에 가장 큰 것이 매일 매일의 하늘 구경이다. 운명 순환의 입춘을 지나면서부터 더욱 그렇다. 늘 변하는 터라 같은 하늘은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날을 제외하면 말이다. 오늘은 맑았지만 구름도 적지 않았다. 몇 년 전 서양 과학자가 쓴 구름에 관한 책도 읽었기에 제법 구름을 볼 줄도 안다. 


떠가는 구름이고 빛은 시시각각 변한다. 빛이 순간순간 변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지낸다. 하지만 야외에 나가서 그림 한 장을 그려보면 충분히 알게 된다. 야외 사생은 빨라야 한 시간은 걸리는데 그 사이에 빛의 상태는 변해도 너무 심하게 변한다. 


가령 대상의 배경을 짙은 블루 그레이로 칠했는데 어느새 붉은 그레이로 변해있다. 주인공이 되는 대상의 빛나는 얼굴이 금방 어둡게 변해있어 당황할 때도 있다. 그런 까닭에 야외 사생은 처음 그리기 시작할 때의 기억에 의지해서 그리게 된다. 빛의 상태가 심하게 변해가기 때문이다. 야외 사생은 스피드 작업일 수밖에 없고 바쁘다. 


동일한 하늘과 구름을 본 적이 없다. 비슷하긴 하지만 모두가 다르다. 그러니 물리지가 않는다. 마냥 하늘을 보고 있어도 즐겁다. 이런 날엔 버스를 타도 책을 들고 나서지 않는다. 하늘 구경하느라 바쁘다. 


북한산 자락에 서있다 보니 멀리 서울 시내 건물들의 실루엣이 연한 보랏빛으로 보였고 그 위로 뭉게구름 한 뭉치가 크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름다웠다. 나는 無常(무상)한 것들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은 무상한 것들이다. 늘 같지 않고 늘 변해가며 시간이 지나면 있던 그곳에 없는 것들을 사랑한다. 산과 바위 역시 그러하다. 늘 거기에 떡 하니 버티고 섰는 것 같지만 시간 속에서 계절 속에서 늘 변해간다. 그래도 그것들은 오래 그곳에 머문다. 


그러나 생명을 가진 것들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순간에 변해가고 흩어져가는 구름들보다야 오래 머물지만 시간에 대한 느낌은 상대적인 것, 늘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도 어느새 멀어져가고 떨어져간다. 


문득 9년 전에 이별한 강아지가 생각났다. 말티즈였는데 이름은 가을이, 날이 가을이라서 떠올랐나 싶기도 하다. 산책 갔을 때 쾌활하게 웃던 모습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꼬리를 한 번 쳐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을이가 죽던 날 일 때문에 외출하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꼬리를 한 번 털썩- 쳐주던 모습이 생각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흰 뭉게구름 사이로 놈의 웃는 모습이 보였다. 


이럴 땐 늘 해주는 말이 있다. 가을아, 잘 있지? 그곳은 편안하지? 아빠도 잘 지내고 있어. 


내가 그 놈을 기억하는 한 그 놈은 죽었긴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 모두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생명이란 기억해주는 이가 없을 때 비로소 사라지고 소멸한다. 


맑은 바람을 쏘이며 피우는 담배는 유난히 맛이 있다. 평창동 주택가, 지나가는 이도 없으니 더욱 좋다. 하늘을 보다가 생각나는 것이 또 있었다. 앞에 보았던 나전칠기로 된 파도그림과 포말 때문이었으리라. 


강원도 홍련암 앞의 거센 파도, 겨울이면 거센 파도가 친다. 거대한 물거품과 포말이 검은 바위를 뒤덮는 광경을 보면서 개체로서의 생명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 또는 깨달음을 얻었던 기억이 났다. 


바위에 부딪친 파도는 무수한 포말을 만들어내고 그 하나하나는 물방울이 되어 잠시 허공을 나른다. 그 순간 그 물방울들은 하나의 생명이 된다. 개체이니 하나의 생명이라 간주해도 된다. 그러다가 잠시 후 바위 위로 떨어져서 물로 흘러들어가고 어떤 놈은 바로 물로 들어간다. 저건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하나로서의 물에 합쳐지면 그건 그냥 물이지 개체가 아니다. 생명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저 커다랗게 하나로서의 물은 무어라 할 수 있을까? 죽음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 無(무)라 할 수도 없다. 그냥 근원이라고 해야 할까. 생명의 근원, 커다란 수수께끼. 


나 호호당은 1955년, 지금으로부터 64년 전에 물방울이 되어 하늘을 비상하기 시작한 셈이다. 지금은 방향이 오르는 쪽이 아니라 떨어지는 쪽이다. 언젠가 떨어질 것이니 그 순간을 죽음이라 한다면 허공을 날고 있는 이 시간은 삶인 것이다. 


그 사이를 두고 긴 시간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은 앞에서처럼 상대적이다. 길다 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홍련암 앞의 물방울이 허공에 떠있는 시간도 마찬가지. 니나 내나. 


가을 하늘에 떠있는 구름의 시간도 마찬가지,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미세한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진 새털구름은 금방 생겨나고 금방 사라진다. 높은 창공에서 실타래처럼 풀어져서 순식간에 허공 속으로 녹아버린다. 


찾아왔던 손님들이 떠나가자 갤러리는 마감을 했고 정직성 작가는 나를 차로 태워다 주었다. 헤어진 뒤 작업실로 들어가면서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었구나 싶었다. 좋은 작품을 감상했고 10월 중순의 하늘을 메우고 있는 구름들과 투명한 하늘의 푸른 저 빛을 한껏 즐겼으니 무얼 더 바라랴! 오늘 하루 또한 일생을 통해 절정의 하루였던 것이다. 


가을 소풍이었다. 일생 또한 소풍과 같으리라.


 

미중 간의 대결로 인해 생겨난 어려운 상황

 

 

한 주 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다. 조국 장관 일이 뭐라고, 그게 내 일도 아니건만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오늘은 조금 무거운 얘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글로벌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도 험악해졌다는 점, 특히 중국과 미국의 대결구도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상황은 향후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이 금융위기로 인해 힘들어졌고 반면 중국은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중국의 패권 추구와 미국의 대응 전략

 

 

이에 2012년 새로운 중국공산당 영수로 등장한 시진핑은 취임 일성으로 ‘중국몽’을 주장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였다. 그러면서 시진핑은 이제 서태평양과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물러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미국이 떠난 아시아 지역은 당연히 중국이 패권을 잡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즉각 ‘피봇 투 아시아(Asia To Asia)’ 전략을 채택했고 이에 두 강대국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 전략은 중국의 부상과 도전에 대비해서 인도양과 동아시아 그리고 태평양을 연결하는 거대한 중국 포위망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의도는 우리 대한민국을 포함해서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를 연결하고 베트남과 싱가포르, 필리핀 등의 기지를 활용하는 포위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은 기존의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확대 개편하고 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안보대화를 제도화해가고 있다. 명칭은 Quad(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이와 관련해서 우리의 입장을 좀 얘기하면 중국이 경제 문제에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비중이 큰 존재이기에 그동안 우리는 엉거주춤할 수밖에 없었는데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미국의 노력에 동참할 것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바람에 중국과는 더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미중 대결 구도에 북핵 변수까지 본격화되니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맞서는 판국에 또 하나의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으니 김정은의 등장과 핵 공격 위협이다.

 

김정은은 부친 김정일의 사망 이후 권력을 이어 받은 뒤 연이은 핵 실험을 통해 2017년엔 공식 발표를 통해 대륙간탄도탄(ICBM)에 탑재 가능한 수소폭탄 실험에 완전 성공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핵을 운반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 실험도 이어가면서 북핵 위협은 구체화되었다. 우리에게만 위협이 아니라 이젠 미국까지도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사드 도입과 중국의 보복 조치

 

 

북핵 위협이 갈수록 노골화되어가자 미국은 2014년 6월부터 한국 내 사드 배치를 박근혜 정부에게 요구해왔다. 미국으로선 주한미군이 북핵 위협의 사정권에 들어간다는 차원에서 사드 배치를 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도 검토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었기에 결국 그 해 7월 들어 배치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드 배치는 북한의 위협에만 대비하는 용도가 아니었기에 중국은 극력 반발로 나왔다. 사드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1천 킬로미터로서 중국이 우리가 만주라고 부르는 곳인 중국 요녕성 심양에 배치한 중국 중거리 전략 미사일 핵심 전력의 탐지와 요격도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중국은 우리 경제 특히 수출에 있어 중요한 파트너인 까닭에 중국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핵심 동맹국인 미국을 등한시할 순 없는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해 당시 야당과 국내 좌파 세력이 맹렬히 반대하고 나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내 정치 투쟁을 위한 용도였을 뿐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사드 반대 투쟁은 봄눈 녹듯이 사르륵 소멸되고 말았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드 배치 이후에도 북한은 핵 실험을 계속했고 핵탄두를 모든 운반수단에 탑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해군은 서해에서 랴오닝호 항공모함과 수십 척의 함대가 사상 최초로 실탄 사격훈련을 실시하면서 우리에 대해 무력시위를 펼쳤으며 그밖에도 연이어 우리에 대해 갖은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더니 사드가 실제 배치된 2017년 3월부터는 이른바 ‘사드 보복’을 시행했다.

 

하지만 대중 포위망 구축을 위해 미국 오바마 정권은 당시 박근혜 정부에게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이른바 지소미아)을 체결할 것을 주문해왔고 이 또한 2016년 11월에 체결되었다.

 

이로써 2015년 중국의 천안문 전승행사 참석과 삼성전자 서안 공장 건 등의 친중 정책을 통해 북한 핵을 억제시키려던 박근혜 정부의 모든 대북 정책은 사드 배치와 지소미아 체결로 인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미국의 요구 또는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더욱 어려워진 우리의 입장

 

2017년 미국엔 트럼프 정권이 들어섰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의 대 중국 포위망 구축 전략을 가일층 강화해가는 한편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전의 글로벌 리더 미국의 대통령들이 취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미국과의 장사에서 흑자를 보이고 있는 나라들을 옥조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우리와 일본, 독일에 대해서도 조속히 균형을 맞출 것을 요구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일본 독일에 대해 방위비 현실화를 서슴없이 주장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냉전 이후 유지되어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근간이 흔들거리고 있다. 여기에 영국마저 브렉시트로 빠져나가면 유럽의 안보지형은 대단히 취약해진다. 트럼프는 세계무역기구(WTO)도 전혀 쓸 모 없다면서 맹비난하고 있기에 우리 역시 조만간 농산물 시장에 대한 개도국 지위의 특혜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F-35를 구매해야만 미국의 동맹국 자격을 얻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국 포위망 구축에 있어 F-35 스텔스 전폭기를 최대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전폭기는 일종의 殺手(살수) 무기라고 하겠다.

 

얼마 전 미국의 태평양 공군사령관은 2025년까지 한국, 일본 등 인도와 태평양 지역에 F-35 전폭기를 220여대를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그 중 75%는 미국이 아닌 동맹국들이 보유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상호운영 능력(interoperability)을 갖추게 될 것이라 강조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만 비용을 대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들도 공동 분담하고 공동으로 작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겠다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인 셈이다. 반대로 말하면 F-35 전폭기를 갖추지 않는 나라는 동맹국의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선포나 다름이 없다 하겠다. 이에 따라 우리 역시 당초 40대 도입에서 60대로 추가 구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한다.

 

F-35 스텔스 전폭기가 국내에 배치될 경우 북한 전역은 물론이고 중국의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바다에 면한 주요 도시들과 전략시설까지 타격 범위 안에 모두 들어간다는 점에서 중국은 긴장하고 있다. 얼마 전 북한이 이 전투기의 도입에 대해 강하게 항의한 것 역시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

 

 

또 하나 트럼프가 들고 나온 안건이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이다.

 

사실 이 조약은 미국과 옛 소련 간에 체결한 조약으로서 이를 통해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을 전량 폐기했었다. 그런데 중국이 중거리 핵미사일을 다량 실전 배치하고 러시아도 다시 실전 배치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의 경우 ICBM은 그 숫자가 80기에 불과하지만 중거리 미사일은 무려 1,150기에 달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중거리 미사일을 빠른 시간 안에 재배치하기로 결정하고 배치 장소로서 아시아의 경우 우리나 일본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니 이 문제 또한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사드 보복을 생각해보라.

 

 

일본의 재무장을 지원하는 미국

 

 

미국의 대 중국 포위망 구축에 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안이 일본의 개헌 문제이다. 징병제도가 실시되면 군대갈 것을 우려하는 일본 젊은 층의 반대가 강력하긴 하지만 미국 정부는 장차 중국을 견제하고 동시에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점에 대해 중국과 북한, 물론 우리도 반발하고 있다.

 

 

중차대한 고비에 들어선 비핵화 협상

 

이제 북한 문제를 얘기해보자.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모두 준비 완료한 상태에서 작년 3월부터 시작한 미북간의 비핵화 협상이다. 우리에게는 더 없이 중요한 사안이다. 얼마 전의 글 “비핵화 엔드게임”을 통해 이번 협상이 사실상의 마지막 국면이란 점을 대해 얘기했다. 11월 8일 입동 전까지 어떤 돌파구가 열리지 않으면 비핵화 협상은 사실상 물 건너가는 형국이란 얘기였다.

 

다음 달 입동이 얼마 남지도 않은 터라 이제 정말로 막판에 온 셈인데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니 나 호호당은 혼자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번 비핵화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한반도를 평화 국면으로 이끌려는 문재인 정부의 노고 역시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협상이 결렬되고 나중에 혹시라도 북한 체제가 무너질 경우 남북이 온전히 통일되는 길보다는 다른 흉흉한 시나리오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일례로서 중국은 즉각적으로 군대를 투입해서 원산을 점령하는 비상 계획을 준비해놓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현재 서해 바다로 막혀있는 중국이기에 원산을 차지할 경우 동해로 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을 노리고 있는 중국인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이 어떤 식으로 중국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도 아직 모른다. 자칫 미중간의 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한 우리의 주변 안보 환경

 

 

이처럼 우리 대한민국은 시진핑이 들어선 2012년부터 여러 모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중국의 패권 추구와 그를 막으려는 미국의 전략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로 변해버린 것이다.

 

여기에 일본의 재무장, 북한의 핵 위협, 또 기회만 있으면 숟가락을 얹어보고자 기회를 엿보는 러시아. 게다가 금년 여름부터 우리와 일본은 관계가 대단히 나빠졌고 미국은 한미일 공조 체제 복원을 위해 지소미아를 원상회복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오고 있으며 또 한편으론 방위비 증액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또 중거리 미사일 배치 건도 조만간 대두될 것이다.

 

다시 얘기지만 이 모든 것이 2012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대로 상황이 지속될 경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2년이 되면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力學(역학)관계가 가일층 험악해질 것 같아서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저 바라건대 이번에 결렬된 미북 실무 협상이 11월 8일 입동 전까지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꽤나 긴 글이고 무거운 글이었지만 우리 모두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썼다.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걱정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

 

 

간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에 아들이 운동한다고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일진을 체크해보니 그다지 좋지가 않아서 살짝 걱정이 되었다. 나갈 때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 시간이 넘어가자 왜 안 오지? 하고 은근히 신경을 쓰였다. 10분 정도 지나서 현관 쪽에서 자전거 들었다 놓는 소리가 들려와 마음을 놓았다. 걱정아, 이제 좀 저리 떨어져!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수시로 걱정을 머리에 달고 산다. 이런저런 소소한 걱정 때론 골머리를 앓을 정도의 걱정 등등 우리의 생활에서 걱정은 줄곧 우리와 함께 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며칠 전 상담에서의 얘기이다. 직장을 잃을 것 같은데 그러면 앞으로 남은 세월 도대체 뭘 먹고 살지요? 하는 푸념이었다. 늘 듣게 되는 너무나도 익숙한 얘기.

 

그럼요, 걱정되시겠어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삶은 이어지는 법이니 말입니다. 이 또한 자주 해주는 말이다.

앞의 말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고 내 말 역시 그저 위로일 뿐이다.

 

 

근심 걱정의 좋은 점 또 나쁜 점

 

모르는 길 그리고 미래의 시간에 대해 우리는 걱정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걱정할 때마다 매번 그것이 현재의 삶을 너무 무겁게 짓눌러선 아니 된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그리고 당장 큰 문제가 없다면 앞날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현재의 삶까지 망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근심 걱정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실은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도 많다. 우리가 살면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중요한 動力(동력)인 까닭이다. 근심 걱정을 하면서 궁리를 하기 마련이고 궁리 끝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이럴 때의 근심 걱정은 긍정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런데 근심 걱정은 때로 아주 부정적인 작용을 할 때도 있다. 걱정 근심을 하면서 궁리하고 또 궁리해 봐도 좋은 답을 얻지 못할 때도 있기 마련인데 이 경우 근심 걱정이 심해져서 비관적이 될 경우 현재의 삶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정도껏 걱정하는 삶의 기술, 中庸(중용)

 

 

그렇기에 근심을 하고 걱정을 하는 것 역시 잘 해야 하는 법이기에 어느 선까지 하고 어느 선에서 그칠 지 하는 문제는 삶의 중요한 ‘기술’이란 얘기를 하게 된다. 나는 이런 마음가짐을 일종의 中庸(중용)이라 여긴다. 걱정하면서도 너무 걱정하지는 않는 마음 자세.

 

그런데 이 기술 즉 중용의 마음가짐, 근심하고 걱정하다가도 어느 선에선 멈출 수 있는 요령 또는 기술은 역시 어느 정도 삶의 연륜이 쌓여야 가능해진다. 염려해봐야 더 이상 안 되는 선이 어느 정도이고 어느 선에서 멈출 것인지 하는 요령은 살아보면서 조금씩 대강 어림짐작이 들기에 그렇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는 재미난 제목의 책이 있다. 서점에서 책을 펼쳐서 내용을 조금 살펴보았다. 40대 초반의 젊은이다운 재치가 느껴지는 흥미로운 글이었다. 그런데 말이지,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 역시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내려놓았다. 젊은이들에게 그런대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략 20대까지인 것이고 마흔 근처가 되면 스스로 자신의 역량이 가진 한계를 어느 정도 가늠하게 된다. 앞의 책도 딱 그 정도 나이의 작가가 쓴 글이다.

 

그런데 더 나이가 들어가면 열심히 사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살 지 않을 도리 또한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근심 걱정을 떨쳐내고 싶지만 억지로 그렇게 해봐야 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된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떠날 땐 미리 준비할 것은 준비하게 되겠지만 인생길 여행은 뭘 준비해야 할는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뭘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길에 나서서 겪어보지 않은 이상 알 수가 없다면 미리 근심하고 걱정해봐야 나중에 겪게 될 상황은 떠나기 전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들과 만나게 되니 그렇다.

 

 

사람은 예측하려는 동물이기에 걱정을 떨칠 순 없다.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미래의 상황을 예측해보고자 노력하는 동물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사람은 늘 근심과 걱정을 머리에 달고 산다. 하는 일이 조금 어려워지면 더 어려워질 것 같아 근심하고 반대로 잘 풀린다 해도 혹시나 다시 어려워질까 걱정하고 조심한다. 모두 장차의 상황 전개에 대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미래의 상황 전개를 예측해보고자 애를 쓰고 노력해보지만 실은 그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는 矛盾(모순)이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 예측에 대한 노력이 실패하게 되는 까닭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 모두 사람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결국 살아가면서 조우하게 되는 타인과의 만남과 교류 속에서 인연이 생겨나고 또 그로 인해 인생길이 정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은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삶의 방향이 정해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 호호당이 아끼는 인생 후배이자 화가의 얘기인데 어린 시절 서구의 어느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고 나서 난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이런 경우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역시 서양 화가와의 작품을 통한 간접적인 만남이 있었다 할 수 있다.

 

그 이후 화가가 될 마음을 굳혔어도 그 자체만으로 화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령 좋은 그림 선생님과의 만남이 있었을 것이고 도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점차적으로 화가의 길을 밟아오게 되었을 것이란 얘기이다.

 

물론 그림에 대한 소질과 열정이 당연히 있었기에 작품을 보고 그런 마음을 가졌겠지만 그 이후 화가가 될 때까지의 과정은 모든 것이 사람과의 만남과교류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물론 본인 스스로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되었을 것은 당연한 얘기이고.

 

예를 들어 얘기했듯이 우리의 미래는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생겨나고 변화하고 발전해간다. 그러나 우리는 현 시점에서 앞으로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될 지 사전에 전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의 미래를 예측해보고자 하는 노력이나 의지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그려내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불가능하다.

 

우리의 근심과 걱정은 장차의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인데 장차 또는 미래의 상황은 앞에서처럼 사전에 그려볼 수가 없으니 우리가 갖는 대부분의 걱정과 근심은 사실 대부분이 불필요한 것이 된다.

 

 

준비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심 걱정을 하면서 살아간다. 대부분이 불필요한 일이고 감정 소모이자 知力(지력) 소모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의 일, 스스로 준비한다든가 노력한다든가 또는 가고자 하는 방향을 신중하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아니 그렇다면 당신 호호당이란 사람이 상담 고객에게 해주는 조언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고 의아해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래에 그 사람이 만나게 될 환경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그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지 본인도 모르고 나 호호당 역시 모르는 이상 미래의 일을 그려낼 순 없지만 그 사람의 장차 흐름이 순탄할 것인지 역경을 만날 것인지 하는 점은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다는 말이다.

 

나머지 하나는 찾아와 묻는 그 사람이 궁금해 하는 일에 대해 그간의 경과와 시간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일의 성사 여부를 정확하게 예단해줄 수가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어떤 인연을 만나서 성사가 되는지 구체적인 과정을 얘기해줄 순 없지만 성사 여부는 대단히 정확하게 추산해볼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가끔은 판단 착오로 간혹 실수할 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오늘의 글은 근심과 걱정에 대한 얘기였다. 근심 걱정은 우리의 삶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도 많이 하고 있기에 전혀 불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어느 선까지 할 것인지 또 어느 선에서 그걸 내려놓을 것인지 하는 요령은 삶의 중요한 기술이자 나아가서 일종의 中庸(중용)에 속한다는 얘기를 했다.

 

미래에 만날 사람을 알 수 없는 우리이기에 우리의 끈질긴 애착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그려낼 순 없는 일이란 점 역시 얘기해보았다.

 

창밖에 조금씩 비가 내린다. 유난히 비가 많은 올 가을이다. 이젠 따뜻한 것이 반가운 계절이 왔다. 내일 8일이면 찬 이슬이 내린다는 뜻의 寒露(한로)절이다. 한 해가 이제 식어가고 있음이다.

이번 10월의 실무 협상이야말로 엔드게임이다.



10월 5일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실무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협상이야말로 비핵화에 관한 사실상의 최종적 협상이란 점이다. 이번에 안 되면 한동안 옥신각신하다가 다음에 또 하겠지 정도가 아니란 점이다. 따라서 이번 실무협상이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엔드게임인 것이고 이로서 판가름이 난다는 얘기이다. 


현재로선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에 응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미국 역시 구체적인 진전이 없다면 적극적으로 제재 완화를 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이번 협상은 대단히 좁은 마진(margin)을 놓고 다투는 그야말로 치열한 협상이 될 것 같다는 정도이다.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전략은 미국의 비핵화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미국은 어쨌거나 비핵화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어야만 되겠다는 것이고 현 정부의 목표는 미국과 북한 간 그리고 남북 간의 긴장 관계를 해소한 다음에 시간을 통해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해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사이가 좋아지고 신뢰가 쌓이면 굳이 북한이 핵을 없애지 않아도 해결은 된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북한이 직접 미국 영토를 핵으로 위협할 수 있는 우려를 없애자는 점에서도 차이가 난다. (물론 미국이 주한미군에 대한 핵 위협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점은 대단히 까다롭고 예민한 문제점이긴 하다.)


기본적으로 이번의 비핵화 협상 자체가 김정은이가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통해 미국을 위협하면서 시작된 것이란 점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남한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으로 인해 시작된 협상이 아니란 사실이다. 


그런데 김정은이가 작년 3월 돌연 비핵화를 할 수 있다는 제안을 미국에 통보하면서 시작된 협상이다. 비핵화란 말을 먼저 꺼낸 것은 북한 측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북한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거머쥔 다음에 최종적으로 단행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기에 북한이 먼저 실질적으로 화끈하게 비핵화를 할 것 같으면 미국은 북한 체제를 인정할 뿐 아니라 북한의 경제발전까지도 적극 도와줄 수 있다는 미국의 당초 발상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와 같은 미북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최대한 살려서 북한과의 신뢰관계를 형성해가면서 망설이는 북한 즉 김정은의 마음을 움직여보자는 발상이다. 즉 미국과 북한의 협상에 있어 촉진자 역할을 해보자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번 실무협상이야말로 최종 협상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번 판이 여의치 않게 되면 그 이후 또 다시 협상을 하네 마네 하는 말이야 오가겠지만 사실상 별 의미가 없을 것이란 얘기이다. 


어떻게 해서 이번 협상이 최종적인 것이라 보느냐, 그 근거가 뭐냐? 하는 얘기가 있을 수 있겠다. 



자연순환의 법칙에 따른 호호당의 전망



그 근거는 자연순환에 따른 법칙이 있기 때문이라 답하겠다.

 

작년 3월 초 김정은은 비밀리에 비핵화를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 이에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으로 날아가 김정은을 만나서 그 진의를 확인해보았고 이에 급기야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이에 작년 6월 미북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선언적 의미를 떠나 사실상 아무런 실질적인 합의엔 도달하지 못했다. 이어서 금년 초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정상회담이 있었으나 그 역시 쌍방이 원하는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사실상의 난관에 봉착한 셈이었다. 북한은 영변 폐기를 제시했으나 미국은 그건 핵 시설의 지극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거부하면서 결렬되었다. 


자연순환의 법칙에 따르면 일이 시작된 이래 18개월에서 20개월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성사의 숨어있는 핵심 관건이 된다. 따라서 작년 3월 초에 시작된 일이니 그로부터 18개월은 금년 9월 초가 되는 것이고 20개월은 금년 11월 초가 된다. 


이에 나 호호당은 금년 1월 협상 결렬 이후 상호 비방전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으레 9-10월 경에 진짜 마지막 최종 협상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 북한은 열심히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판을 키웠고 미국 역시 상당한 대응 조치를 취했으니 이 모두 조만간 있을 최종협상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양측의 시도로 보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10월 5일부터 시작되는 실무협상에서 실질적인 진척이 있느냐 마느냐가 비핵화 협상의 마지막 고비가 된다는 점이다. 11월 초면 시작으로부터 20개월이 되는 시점인 까닭이다. 


트럼프가 강경파 볼턴을 내치면서 협상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선히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 보긴 어렵다.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정상회담을 해본들 그게 미국 의회나 유권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내긴 어려울 것이니 말이다. 


사실 정상회담은 극적인 연출을 노리긴 하지만 사실상 정상회담 자리에서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이전 실무자간에 만나서 상호 요구를 제시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그간에 두 번의 정상회담이 의미 없이 끝났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나 호호당은 이번 실무협상의 결과에 대해 감히 함부로 예단하진 않겠다. 다만 이번 10월 5일부터 시작되는 실무협상에 따라 비핵화 협상이 실패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의미있는 성과를 볼 것인지 그 여부가 사실상 확정된다는 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이번에 다행히도 좋은 진전이 있을 것 같으면 그 이후 일이 순조롭게 풀려서 내년 3월, 2018년 시작으로부터 24개월이 지난 시점에 가서 우리 전체에게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달라진 인생길



“옛날엔 스물여덟 살에 시집가고 골프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벌써 2년 남았더라.” 올해 ANA 인스퍼레이션과 에비앙 마스터스, 두 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고 세계 여자골프 랭킹 1위에 오른 고진영 선수의 말이다. 기사에서 읽었다. 


고진영 선수는 올해 우리나이로 스물여섯이니 당초 생각엔 내후년 쯤 은퇴한 디 결혼할 생각이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올해 메이저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하게 되자 생각이 바뀔 만도 하다. 또 그게 당연하다. 


인터넷을 통해 고 선수의 생년월일을 검색해서 사주를 뽑아본 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995년 7월 7일, 80년대 중반 이후론 거의 다 양력이기에 사주를 뽑아보면 乙亥(을해)년 癸未(계미)월 己亥(기해)일이 된다.


2009년이 운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였고 올해 2019년은 60년 운세 흐름을 통해 모든 것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寒露(한로)의 운이다. 



절정의 운세를 맞이하고 있는 고진영 선수



寒露(한로)란 해마다 10월 8일 경에 맞이하는 절기이다. 차가운 이슬이란 말인데, 이 무렵이면 높은 산에선 단풍이 물들고 가을 벌판에 누렇게 익은 벼가 추수를 앞두고 있다. 하늘은 푸르고 맑으며 공기는 선선하다. 한 해 농사를 거의 마쳤으니 나들이하기에 그야말로 좋은 때가 바로 한로 무렵이다. 


지금 고진영 선수의 60년 운세 흐름이 바로 그런 때이다. 오랜 단련을 거쳐 2013년에 프로 데뷔했고 이제 그 결실을 보기 시작한 셈이다. 2017년은 秋分(추분)의 운이었으니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인데 그 해 처음 LPGA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화려한 운은 추분에 시작해서 10년간, 그러니 2027년까지라 보면 되겠다. 


우리 인생은 각자 나름으로 화려한 때가 반드시 있다, 그런데 그 화려함의 본질은 가을 단풍이라 보면 된다. 늦가을 온 산과 들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은 그야말로 계절의 극치이다. 


그런데 단풍이란 것은 나무의 잎이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게 되면 잎의 엽록소가 파괴되고 스스로 분해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서 나무가 단풍 드는 것은 나무가 더 이상 생산을 하지 않으려 할 때의 현상이란 사실이다. 


고진영 선수 역시 이젠 기량을 닦는 단계가 아니라 그간에 갈고 닦은 기량을 펼치고 보여주는 단계로 들어왔다는 말이다. 프로 선수로선 좋은 기량을 펼치고 성적을 올리면서 돈도 벌고 명성도 날리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었을 것이니 이제 그 목적을 달성하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런 세월이 앞으로 7-8년 정도 이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치열한 승부 세계인 탓에 늘 우승하면서 랭킹 1위를 고수할 수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고 높은 랭킹을 유지하게 될 것이란 의미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라서



이처럼 프로 골퍼로선 대성공을 한 셈이지만 그 대가로서 잃는 것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운명인 까닭이다. 


남녀 공히 좋은 짝을 만나서 결혼 생활에 성공하려면 60년 순환에 있어 늦어도 추분에는 해야 한다. 좋은 결혼이란 결혼할 당시에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느냐 하는 것보다도 길게 원만하게 오래 이어질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고진영 선수는 좋은 혼기를 놓치고 있다. 


고진영 선수의 경우 추분의 운은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2017년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골퍼로서 좋은 성적을 내고 또 내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 방면에 집중을 하게 되어있지 그 사이에 결혼 문제에 대해선 등한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고진영 선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랭킹 1위라는 빛나는 영광과 좋은 결혼이라고 하는 삶의 중요한 하나를 맞교환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다 누릴 순 없다는 얘기를 한다. 치열한 경쟁의 세상이다. 그렇기에 어떤 분야에서 누군가가 최고가 된다는 것은 이면에 가려져서 그렇지 그 누군가란 사람은 삶의 중요한 많은 것을 잃게 된다. 


그런 면에서 고진영 선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선택을 했던 셈이다. 2017년에 우승을 하면서 말이다. 아울러 그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것 또한 절대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선택도 많아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실은 자신도 모르게 선택을 하고 길을 정하는 경우가 실은 더 많다는 얘기를 지금 나는 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때 그게 미처 선택이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말이다. 


이에 사람들은 우연한 계기에 평생 하게 될 직업을 정하기도 하고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선택을 하고 나면 그 선택에 따라 얻는 것과 잃는 것 즉 득실 또한 달라지기 마련이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만 사람들은 자신이 성취한 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선 많이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게 사람의 자연스런 마음이다. 



그 어떤 선택도 잘못된 선택은 없기에



나 호호당은 그 어떤 선택도 선택 자체가 틀린 경우는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 순간에 분명히 그런 선택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선택이란 것은 이미 그 단어의 뜻 자체처럼 이것을 택하고 저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다만 나중에 가서 그 선택을 통해 얻은 것은 대단하지 않게 되고 반면 포기한 것에 대해선 미련이 남을 뿐이란 생각이다. 


나 호호당은 그간 무수히 많은 사람을 상대로 상담을 해왔다. 그런 까닭에 모든 것을 다 얻고 누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또 당연시한다. 


그렇기에 타인의 겉보기 삶만 보고 그를 마냥 부러워할 일도 아니란 점도 잘 알고 있다. 어떤 면에서 당신이 부러워하는 그 타인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한 까닭에 역으로 당신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오늘 고진영 선수의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다른 이가 떠올랐다. 예전에 상담을 왔던 분인데 여성 프로 골퍼였다. 열심히 기량을 닦던 중 생각하지도 않게 좋은 남자를 만나서 급기야 결혼을 하고 또 아기도 생기다 보니 결국 본격 선수로서의 길을 접어야 했던 분이었다. 


그 분 역시 추분 직전에 결혼을 한 경우였다. 만일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프로로서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란 얘기이다. 그러니 과연 어떤 선택이 더 나았을까 하고 곱씹어 보게 된다. 아마도 어떤 선택을 했든 간에 어차피 미련은 남지 않을까 싶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된다, 아니 어쩌면 큰 것 하나를 얻다 보면 그 무게에 상응하는 많은 것들을 잃을 수도 있다. 오늘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삶의 이런 점에 대해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훗날에 가서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것, 따라서 불필요한 미련은 덜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나무가 가장 건강한 때는 언제일까요?



추분이 지났다. 이제 낮이 밤보다 짧아질 것이다. 한 해를 하루로 본다면 이제 날이 저무는 저녁이 되었다. 이로서 한 해의 생산이 사실상 끝이 났고 다음 달 이맘때에 가서 수확하는 일만 남았다. 


나뭇잎들은 이미 마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나무에 대한 이야기로서 시작해본다. 나무가 가장 건강한 때는 한 해를 통해 어느 때일까요?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 신록이 나온 뒤 나뭇잎이 날로 무성해지는 초여름 혹은 여름이라 답할 것이다.


하지만 정답이 아니다. 나무가 가장 건강한 때, 영양분을 가장 많이 비축하고 있을 때는 낙엽이 진 직후인 11월 초가 된다. 이 무렵 나무는 여름내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한껏 비축해둔 상태이고 뿌리로부터 끌어올린 양분도 최대치에 달한다. 그래서 가장 영양상태가 좋다.

 

엽록소 역시 일종의 양분이기에 더 이상 광합성을 할 필요가 없어지면 그 또한 잎사귀에서 자신의 몸속으로 거두어들인다. 그러면 나뭇잎도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바로 단풍의 시작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무의 영양상태가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는 바로 낙엽 직후인 11월 초의 立冬(입동) 무렵이다. 


이는 농부들이 10월 하순 상강에 시작한 수확을 11월 초 입동으로서 거의 끝내고 곳간에 쌀을 잔뜩 쌓게 되는 것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물론 오늘날엔 곳간에 쌓아놓지 않고 즉각 시장에 내다팔고 그 대금을 통장에 입금시킨다. 



나무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이 11월 초로서 가장 건강한 법이니



나무가 가장 부유한 때가 11월 초의 입동인 것이고 농부 역시 같은 때에 가장 부유하다. 산과 들의 새는 물론이고 겨울을 나는 모든 생명들이 이 무렵에 가장 영양이 풍부하고 건강하다. 


낙엽이 진 나무는 보기엔 앙상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이다. 바로 그 때가 한 해를 통틀어 나무가 가장 부자란 사실. 나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젠 나 일 안 해, 일 할 필요가 없고 그간에 실컷 벌었으니 이제 당분간 그러니까 봄이 와서 다시 새 잎사귀를 만들 때까진 놀고 먹을 거야”하고 얘기할 것이다. 


천지만물, 당연히 우리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추분으로서 생산이 결정되고 그로서 서서히 수확을 준비하는 것이고 이것이 11월 초의 입동이 되면 가장 부유한 상태에 도달한다. 이게 바로 自然循環(자연순환)의 원리이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국운의 입동인 2009년에 가장 풍요로웠으니



우리 대한민국은 2009년으로서 60년 순환에 있어 立冬(입동)을 맞이했다. 그때가 입동이었기에 바로 그 무렵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부유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개개인의 운명 또한 그러하다. 입동으로서 그간에 생산한 모든 것을 수납한 상태에 되기에 가장 풍요롭고 부유하다. 꼭 돈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세와 명망 등등 모든 것을 포함해서 그렇다. 



그렇다면 나무가 가장 빈곤한 때는 언제?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나무가 한 해를 통해 가장 부실한 때는 언제일까? 하는 질문이다. 


정답은 앞의 얘기와 반대로 답하시면 된다. 11월 입동 무렵 낙엽 졌을 때가 가장 부유했다면 그로부터 6개월 전 혹은 후, 즉 5월 초의 立夏(입하)가 정답이다. 


초겨울 무렵에 가장 영양상태가 양호했던 나무는 이제 더 이상 양분을 만들지 않고 쉬면서 겨울에서 이듬해 늦은 봄까지 비축한 양분으로 살아간다. 소비로 일관하는 것이다. 


초봄을 알리는 立春(입춘), 양력으로 2월 초가 되면 양분 비축분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그런데 이 무렵에 갑자기 어떤 위기를 감지한다. 비축된 영양분을 마냥 다 소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늦은 봄에 새 순을 만들고 새싹을 틔워내고자 하면 그 또한 별도의 영양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정량의 비축분은 소비하면 안 되고 끝까지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늦은 봄과 초여름의 위기



당장 힘이 빠져 가는 판국에 일정량의 영양분은 새 잎사귀를 만들어 생산용으로 투입하기 위해 남겨 두어야 하니 당연히 갈등도 생길 것이다. 이에 5월 초의 입하 무렵이면 나무의 내적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는 마치 예전에 5월 초에서 중순 무렵이면 곡식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맞이했던 이른바 ‘보릿고개’와도 같다 하겠다. 


우리들은 초여름이 되어 나무들이 일제히 신록을 가지에 매달게 되면 아, 푸르다, 싱그럽다, 아름답다는 탄성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때 나무는 가장 허약한 체질인 것이고 그야말로 이판사판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배고픈 권투선수 즉 ‘헝그리 복서’의 때라고 나 호호당은 수시로 얘기한다. 올 해 7월 2일자로 올린 글 “立夏(입하), 물질적으로 가장 빈한한 때”란 글을 찾아서 다시 읽어보셔도 좋을 것이다. 


입하는 생산을 시작하는 때이자 가장 배고픈 때이다. 생산을 시작했다고 해서 당장 배부르게 되진 않는다. 나무로 말하면 광합성을 통해 생산된 양분 그리고 뿌리로부터 올린 양분을 최소한으로 소비하고 최대한 비축하기에 바쁘다. 나중에 잘 살려면 아껴야 하는 것이니. 


우리 대한민국 국운에 있어 입하는 1979년이었다. 그러니 그 무렵 우리는 그야말로 가장 가난했던 것이고 동시에 안간힘을 다해 생산에 매진했었다. 그리고 30년이 흘러 2009년 국운의 입동이 되어 최대치의 풍요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실질적인 생산과 성장이 멈춘 지 10년이 흘렀으니



立冬(입동)으로서 영양비축이 최대치에 달한 나무는 이제 소비를 통해 겨울을 보낸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2009년 국운의 입동이 되어 생산이 아니라 소비 체제로 들어갔으니 이제 올 해 2019년으로서 10년이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열심히 GDP 증가율을 따지고 있지만 사실 저 모든 것은 부채와 재정 투입을 통한 虛數(허수) 성장일 뿐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더 이상 영양분을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달리 표현할 것 같으면 신 성장동력, 즉 미래 먹거리 산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대외 교역환경도 부쩍 나빠졌다. 무엇보다도 미중무역전쟁으로 시작된 불경기 흐름이 글로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독일 역시 대단히 부진한데 이는 중국의 경기부진이 영향을 미친 까닭이라 한다. 연못에 던져진 돌멩이가 무수한 동심원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줄여 말하면 우리에게 그간 더 없이 은혜롭던 글로벌 교역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그간의 비축분은 이 시각에도 어김없이 줄어들고 있다. 재정 투입이 늘어나면서 국가 재정 수치도 악화되고 있고 가계부채 또한 어김없이 늘어나고 있다. 산업 경쟁력 역시 떨어져가고 있고 말이다. 


엄밀히 따진다면 글로벌 경제 전체의 실질 성장은 이미 90년대 후반으로서 끝이 났던 셈이고 그 이후 부채를 통한 허수성장이 이어지다가 그 또한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서 엉터리였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통화당국자들은 더 특별한 재간을 부렸으니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였다. 


그것이 처음엔 먹히는 것 같았다. 일단 파국은 면했고 그 이후 그런대로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러질 않았다.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그런대로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중국의 무제한적인 부채 증가였고 그것으로서 글로벌 전체 성장률이 그런대로 플러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그런데 중국의 무지막지한 부채증가에도 불구하고 중국 또한 더 이상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기 시작했고 마침 이 무렵에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되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이탈리아의 재정 악화, 그리스 부채위기 등등 그 사이에도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말이다. 


본원통화를 일시에 무려 7배로 늘려놓은 미국 연준(Fed)이었다. (통화승수이론대로라면 무려 700%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을 것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간의 금융경제이론이 엉터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연준은 속으로 겁이 났던 모양이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급작스럽게 인플레이션이 닥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으로 해서 통화량을 줄이고 금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제상황을 보니 그 또한 아니구나 싶었던 모양이다. 이에 미국 연준은 작년부터 또 다시 금리인하 모드로 돌아섰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는 더 화끈하게 노골적으로 ‘지적질’을 하고 나섰고 말이다. 



길고 긴 경기침체의 터널로 우리는 들어섰다.



옆으로 새지는 말자. 다시 돌아가자. 올 해로서 우리 대한민국의 영양상태가 가장 양호했던 2009년으로부터 10년이 흘렀다. 2012년부터 우리 경제는 경기불황 또는 스태그네이션 즉 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해왔고 이에 오늘날엔 글로벌 평균 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빠르면 올해 어쩌면 내년부터 1% 대 성장률 시대로 진입할 참이다. 


경기악화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이전 박근혜 정부는 가계부채를 늘리도록 했고 현 정부는 국가부채를 늘리는 재정수단을 쓰고 있을 뿐 큰 차이점은 없다. 동시에 성장률 둔화를 막지 못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경제의 절대 버팀목인 수출 대기업들은 세계적인 수요 둔화로 인해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2009년 국운이 입동까지 쌓아올린 것으로서 2039년까지 버텨야 할 것인데 산업경쟁력은 떨어져가고 총제적인 부채는 날로 증가해가고 있다. 미래 먹거리 산업은 이미 전 세계가 출혈경쟁 중이다. 게다가 미중 무역 전쟁은 휴전과 정전을 반복하면서 길게 이어질 참이다. 


글머리에서 나무에 대한 얘기로 시작했다. 그 나무는 입동이 되면 생산을 끝내고 그간 한껏 비축한 자양분으로 내년 봄까지 편히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운영하는 경제는 이미 그간에 부채를 잔뜩 당겨다 쓴 입장이라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이다. 


추분이 지나면서 나뭇잎 마르고 또 하나 둘씩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 내용의 일부를 오늘 이렇게 글로 옮겨 보았다. 


그저 변함이 없는 것은 자연순환의 이치이고 원리인 것 같다.



인도 마누법전이 제시하는 삶의 4단계



인도에는 마누 법전이란 것이 있다. 기원 전 2백년에서 기원 후 2백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법전은 힌두인이 지켜야 할 법(‘다르마’라 한다)과 규범을 규정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인도인들에게도 여전히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마누 법전 안엔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나치는 삶의 4 단계(stage)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나 호호당이 알아낸 60년에 걸친 삶의 사계절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이다.


먼저 힌두에서 주장하는 삶의 4 단계-각 단계를 아쉬라마(ashrama)라 한다-가 어떤 내용인지부터 알아보자. 


學生期(학생기): 생후 24세까지는 힘써 배우는 시기로서 삶의 규범은 물론이고 장차 먹고 살아갈 직업에 관한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시기이다. 徒弟(도제)의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世俗期(새속기):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활동 하면서 돈도 벌고 출세도 하며 삶의 다양한 감각적인 향락을 누리는 기간으로서 25-48세까지의 기간이다. 


隱退期(은퇴기): 인도 말로는 ‘숲에서 사는 기간’이란 뜻인 바, 이제 영화를 누렸고 체력도 떨어지고 있으니 서서히 물러날 준비를 하는 기간, 49-72세까지의 기간이다. 


脫世俗期(탈세속기): 72세 이후 삶을 마칠 때까지의 시기로서 이제 세속을 완전히 떠나게 되니 갖은 물질적 욕망을 내려놓게 되며 집을 떠나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면서 정신적 평화와 해탈을 추구하는 시기. 



힌두철학에서의 삶의 4단계는 본질적으로 운명 순환과 같은 것



이처럼 힌두철학은 4 단계(아쉬라마)를 통해 일종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바, 이것은 사실 나 호호당이 주장하는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해당된다. 


봄은 힘써 논밭을 갈고 씨 뿌리는 시기이니 힘들고 고되다. 여름은 농사를 열심히 짓는 시기로서 그야말로 전투적인 시기이며 그 와중에 집안일도 돌보는 한편 즐길 수 있는 것은 틈을 내어 즐기는 시기이다. 일도 하고 놀 것 놀면서 말이다. 


가을은 그간의 힘든 농사가 결실을 맺었으니 이제 더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얻은 것에 만족하고 그간의 삶을 서서히 정리해가면서 다가올 겨울에 대비하는 시기이다. 겨울은 모든 생산 활동이 마무리되었기에 한가롭게 쉬면서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는 때이다. 되돌아보다 보면 어떤 깨달음도 얻게 된다. 


따라서 힌두 철학의 인생 4단계와 나 호호당의 60년 운세순환에 따른 운명의 사계절이 본질에 있어 같은 것이라 하겠다. 



힌두철학과 자연순환운명학의 차이점



그러나 차이가 있다. 그게 중요하기에 지금부터 얘기해본다. 


힌두철학의 인생 4단계는 일종의 모델이고 定型(정형)이란 점이다. 동시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들을 4단계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규범이자 권고 사항이란 점이다. 


하지만 나 호호당이 말하는 인생의 사계절은 태어난 이후 맞이하는 삶의 단계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일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태어난 때가 여름이어서 그 이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을 맞이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겨울에 태어나서 시련의 봄을 맞이하고 그 이후 여름과 가을 그리고 또 다시 겨울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공교롭게도 태어난 때가 봄이어서 그 이후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을 맞이하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연순환운명학에선 삶의 계절을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으니



자연순환운명학에선 어떤 이의 생년월일을 알면 즉각적으로 그 사람이 출생한 때가 운세 순환에 따른 60년을 1년으로 치환할 경우 어떤 계절, 나아가서 몇 월에 태어났는지? 더 정확하게는 태어난 때가 몇 월 며칠에 태어났는지까지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태어난 날의 시각까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나 호호당은 1955년 7월 25일 오전 4시 5분에 출생했다. 이를 60년을 한 해로 치환해서 태어난 운명의 계절과 월과 일 그리고 시까지 알아보자. 


태어나기 18년 전인 1937년 7월 7일 밤 10시로서 60년 순환이 시작되는 입춘 시점이었다. 따라서 나 호호당이 출생한 1955년 7월 25일 새벽 4시 5분은 그 때로부터 18년과 17일 16시간이 경과한 때였다. 이에 60년 순환을 1년으로 치환해서 계산해보면 5월 24일 아침 7시 경에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60:1로 축약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계산하는 방법이 독자들에겐 다소 낯이 설 수 있겠지만 몇 번 해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 


다시 말해서 나 호호당이 태어났을 무렵은 60년을 1년으로 하는 운명의 계절로 바꾸면 5월 24일 아침 7시였다는 말이다. 운명의 계절로 싱그러운 초여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셈이다. 


도중에 1997년 7월 7일로서 생후 처음으로 운명의 입춘 바닥을 맞이했으며 그로부터 또 다시 22년을 조금 더 보냈기에 지금은 운명의 계절에 있어 6월 20일 무렵을 지나가고 있다. 내년 1월 초가 되면 운명 순환에 있어 夏至(하지)가 된다. 


앞에서 말한 힌두의 인생 4단계에 적용해볼 것 같으면 두 번째 단계인 것이니 세속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1997년부터 15년 동안이 학생기였던 셈이고 2012년부터 2027년까지가 세속기가 된다. 


60년의 운명 순환에 있어 봄 15년이 가장 힘들다. 힌두 철학으로 말하자면 배우는 시기, 즉 학생의 기간이라서 배울 것도 많고 또 배우는 것은 원래 어렵다. 그러니 웃긴다. 1997년은 내 나이 42살이었는데 그 때부터 57세까지 이른바 ‘배우는 시기’였으니 흔히 말하는 중년의 좋은 시절을 고생하면서 배우느라 보낸 것이다. 나 호호당은 인생 재수생이었던 것이다. 


운명의 계절상으로 여름에 태어나 풍족한 가을을 멋모르고 우쭐대며 지내다가 겨울이 되어 풍상을 맞으면서 추운 유랑의 시기를 보냈고 이에 1997년으로서 다시 봄을 맞이한 셈이다. 기초에서부터 새롭게 또 어렵사리 배웠으니 57세가 되어서야 겨우 세속의 길로 들어선 것이 나 호호당의 그간 운명길이었고 삶의 흐름이었다. 



젊은 스타들의 경우 일찍 운명의 가을을 맞이한 것이어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20-30대 무렵 빛나는 스타가 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바로 그 무렵에 운명의 가을을 맞이한 경우라 보면 정확하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한 때 우리의 호프였던 메이저 리거 박찬호 선수를 볼 것 같으면 1973년생인데 12세인 1985년이 운명의 입추였다. 가을이 되었던 것이고 이에 가을의 한 가운데인 추분은 1993년경이 되는데 바로 이 무렵 메이저 리그의 스카우터들에게 발탁이 되어 다음 해인 1994년 엘에이 다저스에 입단했다. 


그 이후 2000년이 운세상 입동이었기에 절정의 시기가 되었으니 바로 그 해 18승 10패라고 하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운세에 있어 입동 무렵이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화려한 때가 된다.) 


그러다가 서서히 내리막으로 접어들어 운명의 동지 무렵엔 뉴욕 메츠로 옮겼으나 0승 1패의 초라한 성적을 보였을 뿐이고 그 이후로도 별다른 성적을 보이지 못했다. 2015년이 입춘 바닥이었는데 그 이전인 2012년 말에 한화 이글스에서 은퇴를 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계절 60년을 보내고 또 새로운 사이클로 접어드는데 이를 운의 순환이라 한다. 運(운)이란 움직여간다는 의미이기에 그렇다. 



알면서도 연결 짓지 못하고 있었으니



나 호호당은 힌두 철학에서 제시했던 삶의 4단계에 대해 비교적 이른 시기인 서른 살 초반에 인도철학사 책을 통해 접했었다. 대략 3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이상적인 삶, 세속의 가치와 탈세속의 가치 모두를 긍정한다는 점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을 뿐이었다. 


이에 그것이 훗날 운명의 순환에 관해 내가 알아낸 이론 즉 “자연순환운명학”의 본질과 동일한 것이란 사실에 대해선 전혀 몰랐었다. 그러다가 앗, 그게 그거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사실 힌두철학에서만이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도 360년을 大年(대년), 즉 그레이트 이어(great year)라고 규정하고 그 순환을 다루는 내용이 있었으며 더 멀리는 그 보다 더 오랜 바빌로니아 문명에서도 시간의 순환을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역시 그 점을 알고 있었고 가깝게는 종교철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 역시 그렇다. 


다만 나 호호당은 그 주기가 막연한 것이 아니라 60년 단위로 시계처럼 움직여간다는 사실, 즉 하나의 시계(chronometer of life)를 발견해냄과 동시에 그 규칙을 밝혔다는 점에서 意義(의의)가 있다 하겠다. 


언젠가 이 주제와 관련해서 더 많은 얘기들을 들려드릴 것을 약속하면서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