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란 제목의 스파이 소설이 있고 또 영화도 있다. 며칠 전 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다가 그만 두고 책을 꺼내 들었다. 예전에 읽었는데 큰 줄거리만 기억날 뿐, 그리고 분위기가 대단히 음울했다는 인상만 떠올라서 이참에 다시 확실하게 정리해보기로 했다.

 

추리물이나 범인을 밝혀가는 소설은 마음이 급해지면 아니 된다. 작가가 고심 끝에 만들어낸 갖은 수작과 농간, 트릭, 암시와 복선들을 즐기고 달게 받아들이면서 그냥 이끄는 대로 따라가 주어야 한다. 한 마디로 추리물은 범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낚이는’ 재미에 읽는 것이다.

 

 

불의 날에 태어난 영국 소설가, 존 르 카레

 

 

작가는 필명이 존 르 카레(John le Carré), 프랑스식 이름을 쓰는 영국 사람이다. 프랑스어에서 le carré 는 사각형 또는 광장이란 뜻이 있다고 한다.

 

1931년 10월 19일 생이다. 생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예전에 르 카레의 사진을 보고선 그가 ‘불의 날’에 태어난 사람임을 한 눈에 직감했다. 兩眉間(양미간)에 이글거리고 타오르는 기운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주 간지를 뽑아보면 辛未(신미)년 戊戌(무술)월 丁未(정미)일이다. 丁火(정화)의 날에 태어난 것이다.

 

어려서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기죄로 감옥을 간 뒤 어머니는 아이들을 버리고 가출을 했다고 할 정도이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나.

 

그러니 생시를 몰라도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입추를 금방 알 수 있다. 태어나기 전인 1927 丁卯(정묘)년이 立春(입춘) 바닥이었을 것이고 1957 丁酉(정유)년이 立秋(입추)가 되었을 것이다.

 

존 르 카레는 운세 바닥에 태어난 천덕꾸러기였던 것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어린 시절이 마치 스파이 생활과 비슷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늘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고 또 나중에 스파이 소설을 쓰게 되는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층 출신인 아버지가 허세를 부린 덕분에 작가는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이 가는 비싼 사립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작가는 늘 중산층 자녀들 사이에 잠입한 스파이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영국은 계급과 계층의 구분이 확실한 나라이다. 우리처럼 평등 지향의 나라가 아닌 영국인 것이다.

 

 

영국의 사회적 계층(Social Class) 구분에 대하여

 

 

참고로 이 대목에서 영국의 계층 구분에 대해 좀 알려드릴까 싶다. 영국을 이해함에 있어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도 같으니 말이다. 다른 책이나 글에서 이런 내용을 소개하는 것 같지 않기에 알아두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영국의 사회계층(Ssocial Class)은 2103년 영국 BBC 방송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자본만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의 보유 여부에 따라 크게 7개의 계층으로 나뉜다고 한다. 상층 계급부터 차례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상위층은 이른바 엘리트(Elite)들이다. 재산이 많고 금전적으로 넉넉하며 집안이나 사회배경, 교육 정도가 높은 영국의 최상층, 물론 영국 귀족들은 여기에 포함이 된다.

 

다음으론 Established middle class, 굳이 번역하자면 확립된 중간계층이라 하겠는데, 이미 누대에 걸쳐 받은 이어온 재산과 함께 집안 배경도 괜찮고 문화적 교양을 갖추었으며 클럽을 통한 사교 활동도 활발한 그룹이다.

 

3위는 Technical middle class, 기술적 중간계층이란 뜻인데 원래부터 배경이 있는 가문이나 계층은 아니어서 금전적 여유는 좀 있으나 사회 활동이나 문화적 교양은 다소 떨어지는 계층, 우리말로 바꾸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라 하겠다. (참고로 ‘기술적’이란 말의 의미는 전형적인 중간층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간층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다.)

 

4위는 New affluent workers, 신흥 노동자 계층이라 하겠는데 경제적으론 중간 정도이지만 사회 참여나 문화 활동에 있어 적극적인 젊은 계층.

 

5위는 Traditional working class, 전통적인 노동계층으로서 금전이나 사회, 문화적으로 열위에 있지만 빈곤한 정도는 아닌 계층.

 

6위는 Emergent service workers, 돈은 없지만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구비했으며 학력도 대졸인 젊은 도시 직장인들.

 

7위는 Precariat(or precarious proletariat), 생활이 불안정한 빈곤 계층으로서 돈도 없고 집안 배경도 없으며 문화적 수준도 낮은 최하위층.

 

이처럼 7개의 사회적 계층으로 나뉘는 영국 사회이지만 실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 30개 이상의 계층이 존재한다는 글도 읽은 적이 있다.

 

 

계층 차별에서 오는 열등감에 시달렸던 존 르 카레

 

 

다시 르 카레 얘기로 돌아온다. 존 르 카레는 따라서 그 출신 성분 즉 사회적 계층에 있어 가장 하위의 빈곤층 출신이라 하겠는데 그럼에도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허세 덕분에 제2위나 제3위 계층이 다니는 학교를 다녔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마음이 불편했을 것은 당연지사. 개밥에 도토리.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교육열이 높고 입시경쟁이 치열하다. 우리의 경우 6.25 전쟁으로 인해 사회적 계급(Social Class)이 사라진 터라, 집안 배경이나 문화적 자본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고 그저 돈만 있으면 귀족 비슷하게 될 수 있는 것이고 또 돈을 버는 제1차적 관문은 교육에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 스카이 캐슬의 나라가 된다. (모든 것이 장단점이 있는 법이라 여긴다.)

 

르 카레의 경우 중산층 학교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교육 전통을 싫어했다, 가진 자들 특유의 가식에 넌더리가 났던 탓도 있다. 이에 그는 대학입시를 치르기 전인 16세 때인 1947 丁亥(정해)년에 뜻한 바 있어 스위스의 베른에 있는 대학에 유학해서 독일어를 공부했다.

 

태어난 날이 불인 사람, 특히 日干(일간)이 丁火(정화)인 사람은 외국어 학습에 남달리 뛰어난 데가 있는데 르 카레 역시 丁未(정미)일이었다.

 

독일어를 익힌 바람에 나중에 그는 독일을 자주 방문했고 그의 소설 또한 독일이 주 무대가 된다. 소설의 내용 역시 독일의 이른바 ‘성장소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덧붙이면 나 호호당도 정화 일간이라 외국어에 강한 편이다.)

 

 

운세 바닥에서 20년, 망종의 운에 뜻을 굳히면

 

 

1947년은 정해년이었고 그의 운세 상으로 바닥에서 20년이 경과한 때, 망종의 운이었다. 사람은 대부분 망종의 운에 진로를 결심하면 실패하는 법이 없다. 그렇기에 그가 나중에 소설가가 된 것 역시 이 무렵의 경험이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고 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그는 학업 성적이 좋아서 옥스퍼드의 링컨 컬리지에 입학했고 언어학을 전공했다. 1956년 졸업 당시 성적이 우등생이었기에 명문의 사립학교인 ‘이튼 컬리지’에서 2년 간 프랑스어와 독일어 교사를 했다.

 

이튼 학교에서 또 다시 귀족과 상층 사람들의 계급의식에 열등감을 느꼈던 모양인지, 사직한 뒤 영국 외무부에 들어가 스파이 일을 경험했다. 이 무렵 그는 이미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1963년에 발표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가 이른바 대박이 났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 소설은 정말 걸작이다, 젊은 날 읽었는데 진한 감동과 여운이 지금도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을 정도이다.

 

1957 丁酉(정유)년이 운세 상 立秋(입추)였으니 1963년은 이른바 황금의 官運(관운), 즉 명성이 생기는 때였다. 어쩌면 모든 이가 이처럼 자연순환의 법칙 또는 공식(formula)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일까! 신기하기도 하지.

 

다음 해 1964년부터 전업 작가로 전향한 뒤 꾸준히 미소 냉전 시대를 다룬 첩보 소설을 써오고 있는 존 르 카레이다.

 

글머리에서 소개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1974년 그러니까 甲寅(갑인)년에 발표한 걸작이다. 그의 운세 상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小雪(소설)의 운이었기에 내용 면에서 가장 원숙하고 깊이가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또 다시 찾아온 운세의 바닥

 

 

그의 운세에 있어 1987 丁卯(정묘)년은 또 한 번의 입춘 바닥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1989년 말, 동서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고 1991년 말엔 소련 자체가 붕괴해버리고 말았다.

 

앞에서 얘기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란 소설이 바로 그 붕괴한 베를린 장벽을 둘러싼 소설이었다. 냉전이 끝났기에 사람들은 이제 르 카레의 첩보 소설도 끝이 났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핵심 소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참으로 묘하다, 르 카레에게 있어 1989년 무렵은 운세가 바닥이었는데 마침 전이란 거대한 시대 배경도 동시에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세상엔 평화가 찾아왔는데 그게 오히려 르 카레라는 작가에겐 거꾸로 힘든 시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뒤로도 르 카레는 뛰어난 작품을 많이 썼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히트작은 나오지 않고 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같은 걸작은 역시 시대배경과 맞물렸기 때문이라 하겠다.

 

현재 그는 나이가 87세이고 영국 콘월의 조용한 마을에서 편히 살고 있다. 2017년이 또 한 번의 입추였기에 몇 년 전엔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수여받았으며 기타 여러 상을 수상하고 있다. 운세가 아직 좋기에 어쩌면 꽤나 장수할 것으로 본다.

 

 

公式(공식)에 맞추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태어난 생년월일시에 운명의 입춘과 입추가 정해져 있으니 그 나머지는 그냥 자연순환의 공식에 따라 살다가는 우리들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