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강박증에 빠진 우리 대한민국

 

 

처음 글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과거의 우리 전통과 단절된 나라란 사실에 대해 얘기했다. 다음 글에선 우리 사회가 전통과 단절된 결과 겪게 되는 갈등이 너무나도 크다는 점에 대해서, 다시 말하면 전통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애기했다.

 

이제 이번 주제를 마무리하는 글을 시작해보자.

 

우리 대한민국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면에선 변화에 중독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사회는 뭐든 늘 새롭게 더 좋게 바꾸고 변화시켜 가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것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잡은 게 아닌가 싶다는 얘기이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하는 말이 연일 들려오는 사회, 정치인들 그리고 사회운동가들, 여타 학식과 비전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선거 때마다 그리고 평소에도 책과 저술을 통해 부단히 토해내는 말들이다.

 

1945년 해방 이후 그리고 6.25 전쟁 이후, 1987년 민주화 이후 등등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를 바꾸어왔다. 물론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고 많은 방면에서 좋아졌고 나아졌다. 사실이다.

 

오늘의 글로벌 삼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 역시 고 이건희 회장이 1997년 책을 통해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자고 혁신을 주문한 끝에 만들어진 것 분명 인정한다. 선거 때마다 무지막지한 혁신과 개혁을 하내겠다는 대선 주자들의 약속도 물론 대부분이 빈말이었으나 그럼에도 우리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 역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언젠가 이정현이란 여가수가 부른 ‘바꿔’란 제목의 노래가 생각난다. 검색해보니 1999년이었다. 꽤나 히트를 친 노래였다. “바꿔 바꿔 바꿔 모든걸 다 바꿔” 하고 절규하듯 노래하던 기억이 난다.

 

 

변화란 힘든 것인데 그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 

 

 

그런데 말이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과거 수십 년 동안 그렇게나 많이 바꾸고 뒤집고 엎어버리고 변화하고 변신해왔는데 아직도 ‘빛의 속도’로 바꾸어야 할 것들이 그렇게나 많이 남아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는 얘기이다.

 

나날이 껍질을 벗지 않으면 정말이지 평범하게 밥 먹고 살기도 어려운 우리 현실이고 실정인가 싶다.

 

바꾼다는 것은 기존의 틀이나 루틴이 현실에 잘 적용되지 않을 때 하는 행동이다. 바꾼다는 것은 새롭게 길을 찾아가고 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그건 그야말로 고생길이다.

 

그런 까닭에 이제 나 호호당의 귀에 뭔가 바꾸자는 얘기는 계속해서 고생을 해보자는 얘기로까지 들린다.

 

과거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트로츠키의 주장 중에 유명한 것으로서 “영구혁명론”이란 것이 있다. 영어 제목으론 ‘Permanent revolution’이다. 젊은 시절엔 그게 뭔지 잘 몰라도 말 자체만으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진정한 무엇이 이루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혁명을 지속해가야 한다는 그 패기에 크하! 하고 감탄을 했다.

 

어린 시절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만 이룩하면 정말이지 잘 살게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의 문제점과 불만에 대해 최장집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란 제목의 책을 발간했을 때 나 호호당은 지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 끝이 없구나! 엔드리스(endless)이구나! 했다.

 

 

툭 하면 바꾸자고 하니 몸살이 날 지경인데 

 

 

민주화가 이루어진 1987년 이후로도 정권이 바뀌면 으레 한 번쯤은 개헌설이 흘러나온다. 헌법이란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인데 그걸 정권 교체기마다 나온다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5년마다 근본을 바꾸어야 할 정도로 우리에겐 문제가 많은 걸까?

 

헌법이란 그 정신부터가 최상의 이성과 지성을 담았기에 한 번 제정되면 기본적으로 변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헌법의 정신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란 얘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헌법 개정 즉 개헌을 툭 하면 일반 법률 조항 바꾸듯이 바꾸려고 한다.

 

문재인 현 정부가 시작할 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얘기를 했다. 아연실색했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었던가? 크고 작은 문제야 어느 나라나 있는 법인데 우리 대한민국은 그래도 글로벌리 전 세계적으로 반열에 드는 나라가 아니던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그야말로 ‘꿈의 나라’여야 한다는 말인가, 아직도 우리나라가 나라다운 요소가 그렇게나 많이 부족한가 싶었기 때문이다.

 

과거 한 때 텔레비전 방송에서 MC가 ‘어떤 남성을 이상형으로 생각하시나요?’ 하고 여성 연예인에게 질문하면 ‘저는 남자다운 남자를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하는 대답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남자다운 남자가 어떤 남자를 말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듯이, 나라다운 나라 역시 어떤 나라인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이 말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자는 얘기도 아니다. 그래봐야 멋 좀 부려본 정치 레토릭에 불과하니 말이다. 다만 우리 모두에게 깃든 변화강박증 혹은 중독 현상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오리지널인 영국은 아예 헌법, 즉 명문화된 헌법이 없다. 성문헌법이 없어도 될 정도로 잘 확립된 정치적 사회적 전통이 견실 확고하게 자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미국, 글로벌 최강국이자 우리의 모델인 미국의 경우 헌법은 원래의 초기헌법 조항이 7개, 즉 7개조가 있고 추가로 수정된 조항 27개조가 전부이다. 27개의 수정 조항 역시 건국 초기에 수정된 것이 대부분이고 합중국이 쪼개질 뻔 했던 남북 전쟁을 거치면서 일부 수정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론 몇 개 되지도 않는다.

 

이웃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헌법이 만들어졌을 때 영원히 마모되지 않는 최고의 법적 틀이란 의미에서 不磨(불마)의 헌법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제2차 대전 패망 이후 수정이 있었을 뿐이다. 소위 평화헌법이 그것이다.

 

헌법과 관련해서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영국이나 미국, 일본이 우리보다 더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바꿔서 좋다면 당연히 바꿔야 할 것이다.

 

 

전통의 단절이 바람직한 면도 있었지만 

 

 

어떤 면에선 우리가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이처럼 급격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보면 전통이 없어진 바람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었던 점이 있다. 우리야말로 6.25 전쟁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된 상태, 본의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과거 1950-1980년대까지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모질고 억척이고 독한 악바리였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 정도까지 발전하고 성장할 수 없었지 않을까 싶기에 그렇다.

 

하지만 언제까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뒤집고 엎고 바꾸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革新(혁신), 수레에 씌운 가죽을 바꾼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 생각엔 이제 바꿀 가죽이 남긴 남은 걸까 싶다, 우리 모두 한 번뿐인 인생인데 2-3년 쓰면 버리는 스마트폰처럼 계속해서 바꿔가기엔 너무나도 지치고 힘들다는 말을 지금 나 호호당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지나치게 각성된 우리 대한민국

 

 

어린 시절부터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들은 얘기들을 상기해본다.

 

과거엔 만주 땅까지 호령하던 고구려는 외세를 끌어들인 비겁한 신라에게 망했다는 얘기, 고려 시대엔 문신들이 무인들을 하인 부리듯 부리다가 떼죽음 당했다는 얘기. 몽골에 대해 끝까지 항쟁하는 삼별초를 고려 조정까지 합세해서 없애버렸다는 얘기.

 

조선시대는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탐관오리들이 다 해먹은 나라였다, 충신이 바른말 하면 잘리거나 귀양 갔다는 얘기, 이순신 장군의 억울한 얘기, 선조란 임금은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애진작에 도성 한양을 비우고 튀었다는 얘기, 학정에 들고 일어난 민초들의 동학운동은 외세의 힘을 빌려 진압 당했다는 얘기, 나라밖의 새로운 문물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문을 닫고 우물 안 개구리 하다가 폭삭 망했다는 얘기, 해방과 건국 이후에도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는 바람에 여전히 어렵다는 얘기 등등 부끄러운 역사로 가득하다.

 

물론 각성을 촉구하고 앞으론 잘 되자고 한 선생님들의 가르침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 대한 自虐(자학)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우리 모두 지나치게 각성된 것 같기도 하다.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을 가질 법도 하다. 전통은 일단 사그리(?) 버리고 볼 그 무엇으로 치부해야만 개념이 있는 현대 한국 시민 자격이 있을 것도 같다.

 

 

변화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시점에 이른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언제까지? 바꾸고 엎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바꿔왔건만 양극화는 왜 더 심해지는 걸까. 변화 자체에 대해 이젠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을 더 해봐야 하는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이제 어느 정도 틀이 잡혔으니 상호 타협해가면서 조금씩 수정하고 양보해가는 것이 경상도 방언으로 ‘확 다 바까삐리’ 하는 것보다도 실은 더 나은 방식이 되는 건 아닐까. 조금씩 수정하고 양보하고 다듬어 가다보면 그게 전통이 될 것이고 이후에 자리를 잡으면 훨씬 더 편안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3회에 걸쳐 적지 않은 얘기들을 했지만 머릿속에는 미처 꺼내지 못한 말과 생각들이 더 많다. 그래서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던 주제였고 역시 꺼내다 보니 이 정도 분량의 글로선 어림도 없음을 알 게 된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마무리해야겠다. 다만 너무 줄이다 보니 원래의 의도가 과연 조금이라도 전달이 될까 싶은 염려도 많다. 아무튼 오늘 글로서 마무리한 것에 대해 스스로 안도할 뿐이다. 긴 한 숨, 휴-.

 

다시 원래 하던 ‘운명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야지 싶다.

 

쉽지도 않고 머리도 무거운 글 읽어주신 독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 드린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또 새벽이다. 바깥은 무지막지한 한파가 몰아쳐 오고 있다. 제발 마지막 동장군의 행차이시길...

 

우리는 정말로 전통과 단절되었는가? 

 

 

앞의 글에서 우리 민족은 예전의 전통을 상실했고 단절했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이 여전히 전통이라고 인식하고 여기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도 들 것이다.

 

여전히 유교적인 효와 충의 관념도 남아있는 것은 무엇이며 절을 찾는 수백만 신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싶을 것이다.

당연한 질문이다. 그래서 답을 해야 하겠다, 그건 전통이 아니라 전통의 잔재라고 말이다.

 

먼저 유교부터 살펴보면 예전 시절에 유교는 그야말로 나라의 가르침, 즉 國敎(국교)였으니 오늘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국가이념으로 삼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유교는 사라지고 그저 묵은 동양철학의 일부로서 일부 대학의 인문학부에서 남아있다. 일종의 문화유적, 심하게 말하면 문화적 殘在(잔재)라 하겠다.

 

따라서 유교적 가치인 효라든가 충에 관한 관념은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강도와 정도는 예전과는 비할 바가 없다. 그저 遺風(유풍)에 불과하다.

 

불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불교는 이미 조선시대를 통해 일종의 하위문화 정도로 격하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엔 심한 통제를 받았다. 현재 우리 불교의 주류인 조계종만 해도 그 명칭이 생겨난 것은 고려 시대이지만 그로부터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것이 아니다. 1962년에 박정희 정권이 모든 절을 통폐합하고 나서 ‘대한불교조계종’이라고 새롭게 붙였다. (그 뒤에 대처승의 심한 반발과 법정 투정을 통해 태고종이나 천태종 등도 인정을 받았다.)

 

불교의 경우 종교이자 국가통치이념인 유교가 사라지면서 오히려 새롭게 중흥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시아를 통틀어 기독교가 뿌리를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유일한 나라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한 가지만 지적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수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아시아 지역의 무수히 많은 나라들 중에 기독교(로마가톨릭과 개신교)가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필리핀의 경우 기존의 토속 신앙 위에 로마가톨릭이 덧씌워졌을 뿐이다. 일본에서 교회는 이국적 취향의 결혼식 장소로나 이용될 뿐이고 사회주의 이념의 중국은 기독교가 거의 없다, 다만 도교적인 관념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중국이다.

 

왜 우리 대한민국만 기독교가 오늘날처럼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종교에 관해선 그다지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는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겠지만 그건 절대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전통의 종교가 지녔던 가치와 권위가 사실상 사라져버렸고 여기에 6.25 전쟁을 거친 뒤 우리가 세계 최강국이자 선진국인 미국을 모델로 하는 발전해가는 과정, 즉 美國化(미국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종교가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슬람이 주류인 서남아시아 지역에 기독교가 들어갈 수 있었던가? 어림도 없는 얘기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인도 사상과 혼합된 이슬람이 들어가서 불교와 섞이긴 했으나 새로운 종교가 우리처럼 단시간 내에 들어와 자리를 확실하게 잡은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이전의 전통과 엄청난 단절을 겪었음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모든 면에서 미국을 모델로 미국화되고 있는 우리

 

 

우리 대한민국이야말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미국화(Americanization)되고 있는 나라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젊은이들이 우스갯말로 미국을 ‘천조국’이라 부르고 反美(반미)운동권하던 이들이 기득권이 되면서 자녀들을 대거 미국 유학을 시키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미국의 일개 주로 편입되지 않는 이상 완전히 미국화되진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방면에서 미국적 요소들이 가득 듬뿍 들어차가고 있을 뿐이다. 마치 수학의 微分(미분)처럼 미국 쪽으로 무한히 수렴한다고 할까!

 

섹스는 인간의 기본적이고도 엄청나게 강한 욕구, 즉 본능의 하나로서 모든 문화와 전통의 뿌리에 자리한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시티”가 방영된 이래 우리의 성윤리는 사실상 미국과 별 차이가 없어졌다.

 

예전에 ‘혼전 성관계’란 말은 입에 올리기만 해도 가십거리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녀가 혼전에 섹스를 하면 이른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섹스와 결혼은 별 관련이 없게 되었다. 성 모럴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뀐 셈이다.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나날이 엄청난 변화 속에서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긍정적인 변화라면 좋은 게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변화는 그 자체로서 우리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변화 스트레스에 대해 이젠 만성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일상이 평범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일상으로 느낀다 해서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만성이 되었을 뿐인데 이는 우리의 멘탈이 그렇다는 것이고 우리 몸은 정직하게 그 고통과 갈등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이번에 전통과 단절된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꺼내게 된 배경 역시 바로 이 대목이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과거에 비해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고 소비도 과거와는 비할 바 없이 윤택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구성원이 힘들어하고 갈등의 총량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까닭이라고 나 호호당은 보고 있다.

 

자고 나면 변화해있고 또 변화에 따라가고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회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겪는 갈등의 근원적인 이유는 

 

 

빈부의 격차와 양극화 문제, 어려운 취업, 좋은 일자리의 절대 부족, 무지막지한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 상승, 정치적으론 극심한 진영 갈등과 투쟁 등등 당면한 문제점들이 태산과도 같이 산적해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어려움과 갈등으로 인해 힘들어하기 보다는 그 바탕에 깔린 전통의 부재와 단절이 있기 때문이라 본다.

 

그런데 말이다, 전통의 부재와 전통의 단절로 인해 우리가 심한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 어쩌면 독자들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나 호호당 또한 이 대목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가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오래 전부터 이 주제에 대해 말하길 망설였다.

 

 

전통이란 결국 세월 속에서 잘 다듬어진 루틴(routine)이기에 

 

 

앞의 글에서 전통의 의미에 대해 사전적 의미를 얘기한 바 있지만 다시 한 번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해보자.

 

전통이란 것이 생기려면 그 이전에 모범적이고 준거가 되는 틀이나 式(식)이 있어야 한다.

 

틀이나 식은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령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가장 적합하다 싶은 방법이 제시될 것이고 그게 나중에 틀이 되고 式(식)이 된다. 즉 어떤 문제에 대해 대처하는 기준이자 표준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 번 틀이나 식이 정해졌다고 해서 그게 영구적으로 반복되고 답습되지 않는다. 새로운 상황이 생겨나면 다시 그에 걸맞게 수정이 가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처음에 어렵사리 정해진 틀이나 식이라 해도 그것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새로운 요소가 가미되면서 세월의 경과와 함께 더욱 세련되어진다. 결국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어지다 보면 그게 훗날에 가서 전통적인 틀 또는 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니 그를 줄여서 전통이라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국가나 사회가 질서 있게 유지되려면 법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법치국가인 것이다. 그런데 법이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이전 오랜 세월 동안에 생겨난 전통적인 처리방법과 절차 등에 대해 그 국가나 사회가 명문화된 룰(rule)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것도 실은 기본적으로 전통문화란 사실이다. 새로운 풍속이나 유행이 생겨나면 그를 문화라 부르진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과 세월이 흘러서 그게 나름 정착이 되면 新(신)문화라 부르고 그게 나중에 더 오래 되면 수식어 없이 그냥 문화라 한다. 이에 더 오래 되면 전통문화가 된다. (전통문화가 반드시 자생적으로 사회 내부에서 생겨나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롭게 해법을 모색하다 보니 힘들기만 한 우리 대한민국

 

 

지금까지 전통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을 했는데 그렇게 한 까닭은 전통이 없다면 다시 말해서 전통이 없거나 단절된 사회일 경우 생겨나는 모든 새로운 문제와 상황에 대해 준거가 되는 틀이나 식이 없다는 얘기가 되고, 그 결과 늘 새롭게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찾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변화가 생길 때마다 문제가 주어질 때마다 나름의 루틴(routine)이나 방법론이 없다면 그 사회는 그를 해결하기 위해 늘 엄청난 갈등과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또 누적될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사회이다. 전통이 없다는 말, 전통과 단절되었다는 말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검증되고 다듬어지고 확립된 좋은 루틴이 없다는 뜻이기에 그 결과 전 구성원이 더 많은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말이 된다. 바로 우리가 그렇다.

 

다음 글에서 최종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전통문화가 사실상 없는 나라, 우리 대한민국

 

 

역사는 있지만 傳統(전통)은 거의 사라져 없는 나라가 있다. 바로 우리가 그렇다, 대한민국. 전통이란 것이 거의 사라지다 보니 이젠 그 단어의 뜻마저 실은 모르고 사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너무 심한 말이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물론 전통이란 말의 의미나 뜻에 대해 모두들 대충 대강 알고들 있다. 하지만 왜 전통이 있어야 했는지 왜 그걸 지켜가야 했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어제가 설날이었다. 몇 년 전부터 설이나 명절에 관한 뉴스를 볼 것 같으면 가족이나 친지간에 화기애애한 모습에 관한 것보다는 갈등에 대한 것이 더 많다. 고향집을 찾아야 하는 남편과 가기 싫은 아내 간의 갈등, 고향에 내려가면 취업이나 결혼 등등 답하기 싫은 질문을 받느라 스트레스만 받는다는 청년들의 이야기.

 

 

전통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은 전통과 관련해서 한 번 생각해봄직한 얘기들을 해보겠다. 사실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지만 꽤나 무거운 주제인지라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이번 설을 계기로 힘을 내어본다.

 

먼저 전통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부터 한 번 살펴본다.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가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라 되어 있다.

 

사전의 풀이는 4개의 의미 요소로 구성되고 있다. 집단이나 공동체라고 하는 전통의 주체가 있다. 다음으론 과거로부터 이어져온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이란 뜻이 있고 마지막으론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다는 말이 들어있다.

 

뜻을 알았으니 이제 이를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에 대해 적용해보자.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은 별개의 주체이다. 

 

 

주체인 집단이나 공동체란 측면부터 본다. 우리의 전통이라 하면 우리 민족이 가진 전통이 대상일 수도 있고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가진 전통이 될 수도 있다. 한민족과 대한민국은 사실 다른 주체인 까닭이다.

 

우리 민족이라 하면 나름 유구한 역사 흐름을 가진 집단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란 주체는 1948년에 헌법이라고 하는 새로운 국가의 이념과 틀을 가지고 출발했기에 이제 겨우 72년을 조금 넘긴 신생의 주체이다.

 

우리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란 말인데 그 이전엔 사실 그랬던 적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였다.

 

엄밀히 말하면 헌법이 제정된 1948년 이전과 이후 사이엔 엄청난 단절이 존재한다.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한 지 겨우 72년 남짓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심지어 노비 또는 머슴 신분인 사람들도 있었다, 1910년 일제 강점으로 인해 법적으론 사라졌으나 완전히 없어진 것은 1950년 6.25 전쟁 이후였다.

 

게다가 우리 헌법, 즉 대한민국의 지도이념이자 나라를 이끌어가는 기본 틀이라 할 수 있는 헌법만 해도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에 걸쳐 주체적으로 창안하고 다듬어낸 것이 아니라 서구로부터 수입되었다는 점이다.

 

서구민주주의를 기본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헌법이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적 전통이란 것이 있다면 그 가장 오랜 淵源(연원)이라 해봐야 겨우 72년 6개월에 불과하다.

 

 

우리 겨레의 전통은 이어져왔지만 

 

 

물론 우리 겨레의 전통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어릴 적엔 반만년 역사에 빛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란 말을 들었는데 최근엔 반만년이란 말마저 우리 헌법엔 빠져있다, 아마도 단군의 존재와 개국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지적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 겨레의 전통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나 호호당의 개인적 견해론 676년 통일신라의 출현을 우리 겨레의 시발점으로 본다.

 

이처럼 통일신라 시절부터 따진다 해도 지금까지 1345년이나 되었으니 오래된 민족이고 겨레라 봐도 절대 무리가 아니다. (민족과 언어의 관계에 대해선 이 글에선 논의를 생략하기로 하자.)

 

그러니 그 긴 세월 사이에 많은 전통이 생겨났을 것이고 또 이어져왔을 것이 틀림없다.

 

통일신라 이후 중국의 여러 사상이 유입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유교와 불교, 도교 사상, 음양오행 사상들이 그것이다. 이런 외래 문물들이 그 이전부터 이어져오던 우리 겨레 고유의 사상이나 풍습과 섞이고 혼합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을 빚으면서 시간을 두고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져왔을 것이다.

 

 

우리 고유의 것은 많지도 않고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란 점

 

 

관련해서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게 과연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하고 알아보면 약간 변형이 되긴 했지만 그 출처는 기원 전 200년경에 저술된 중국의 회남자란 책이다.

 

(그런데 최근 10년 사이엔 이 속담이 거의 귓전에 들리지 않는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이는 최근 10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여성의 권리 문제에 대해 엄청나게 변화해가고 있음을 반영한다.)

 

회남자란 책이 어느 시점에 우리 쪽으로 들어왔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통일신라 이후의 어느 시점이 아닐까 싶다.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앞의 속담이 우리의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이른바 우리 것, 우리 쪽 ‘오리지널’로 알고 있는 수많은 금언과 속담들도 알고 보면 외래 사상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것이 대단히 많다. 수많은 전설 또한 그 원형을 살펴보면 시골이나 지방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중국이 오리지널이 경우가 압도적이다. 그만큼 우리 겨레는 이웃의 강국이자 대국인 중국 쪽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전통이라 해서 그것이 우리 고유의 자생적인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점 또한 밝혀둔다.)

 

예전에 대중 인기가 엄청나게 많았던 고우영이란 만화작가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남긴 유작으로 ‘일지매’란 연재만화가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일지매가 우리 쪽 그러니까 조선 시대의 오리지널 설화로 알고 계셨다.

 

하지만 중국 것이다. 일지매 이야기는 임진왜란 이후 중국 소설이 조선시대 양반 계층 사이에서 그리고 나중엔 일반 常民(상민)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그 시절에 국내로 유입되었다. 제목부터 一枝梅(일지매)이고 매화 한 가지란 뜻이다. 저자는 중국 명나라 말기 베스트셀러 작가인 ‘능몽초’란 사람이고 그가 지은 단편소설 모음집인 이각박안경기(二刻拍案驚奇)란 책의 제39장에 일지매 얘기가 나온다.

 

이런 얘기들을 늘어놓는 것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대한민국이 아닌 우리 겨레 또는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에 그 사이에 수많은 방면에서 수많은 전통들이 만들어져왔고 이어져 왔다는 점이 중요할 뿐 그 중에 순수 우리 것이 어느 정도냐를 따지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는 말이 있긴 하지만 순수 우리 것이라고 해서 꼭 좋은 것만도 아니란 점, 따라서 꼭 우리 고유의 것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바람직하고 좋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를 바탕으로 전통으로 만들어 가면 되는 일이라 본다.

 

 

사실상 모든 전통이 사라지고 단절되었으니 

 

 

그런데 말이다. (이제부터가 이 글의 핵심 대목이다.) 우리 민족 혹은 겨레의 전통이란 것이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실상 거의 파괴되고 단절되었다는 점이다.

 

파괴되고 단절된 이유를 찾자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6.25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단절

 

 

첫 번째로 한국전쟁을 계기로 해서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사실상 몰락하거나 해체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특히 전쟁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남쪽의 대표적 기득권 계층이었던 전라도 지주계층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토지개혁이 그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그 또한 복잡다단하고 문제도 많았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지주계층이 사라져버렸다.)

 

한국 전쟁 직후만 해도 우리 경제는 농업경제였기에 지주계층의 해체는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했다. 지금으로 치면 대기업 재벌 그룹이 일시에 사라진 것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되겠다.

 

부를 가진 계층이 사라지면 그들이 누리고 즐기던 취향이나 문화도 사라진다. 대표적으로 판소리나 창을 포함해서 우리가 國樂(국악)이라 부르는 것이 그렇다. 오늘에 이르러 국가 보조금이나 지원이 없다면 벌써 자취를 감췄을 것이다. 대중의 수요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국악 하는 예술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대중의 수요를 만들어보고자 갖은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전통예술인 문인 수묵화 역시 실은 마찬가지이다.

 

그런 고급의 취향이나 문화는 과거의 엘리트 층, 즉 지주계층이나 벼슬을 하던 양반 계층이 누리고 소비하던 것이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과거의 엘리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까닭이다.

 

 

경제구조가 단시간에 모조리 변했으니. 

 

 

두 번째 이유를 들어보면 우리 경제 구조가 불과 수십 년 사이에 획기적으로 변해버렸다는 점이다. 1960년대 초반의 농업경제에서 겨우 20년 만에 공업경제로 변했고 다시 20년 만에 정보 디지털 경제로 전환해왔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엄청난 변화를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경험한 나라나 민족 혹은 겨레는 보기 드물다. 그야말로 桑田碧海(상전벽해).

 

근대화를 이룩한 서구 국가들은 적어도 수백 년에 걸쳐 변화해왔고 미국 또한 200년에 걸쳐 변화했다. 이웃의 일본이 상당히 단기간이었지만 그 역시 우리에 비하면 훨씬 길고 아울러 저들 고유의 것을 포기한 게 그다지 크지 않다. 이웃의 중국은 청나라 말기부터 이미 상업경제가 꽤나 고도화되어가고 있었다.

 

경제는 먹고 사는 일이고 따라서 돈과 이익에 관한 일인데 우리는 그게 불과 수십 년 만에 송두리째 몽땅 변해버렸다는 점에서 전통과의 단절은 어쩔 수 없었다.

 

 

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기에 

 

 

이제 마지막 요인을 얘기해보자. 바로 신생 대한민국, 1948년에 서구 모델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전혀 새로운 국가 이념인 헌법의 제정으로 그 이전의 통치나 지도 이념과는 철저하게 이별을 고했다. 이 점에 대해선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이 정도에서 일단 오늘의 글은 마무리한다. 생각은 두 번으로 나눌 예정인데 어쩌면 그 이상까지 이어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설인데 이런 글을 올리게 되니 독자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묘한 것은 설을 쇠다 보니 이런 글을 써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새해의 윤곽은 아직...

 

 

봄의 시작이자 한 해의 시작인 立春(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봄은 시작되지 않았고 여전히 겨울이다. 우리가 체감하는 봄은 2월 3일의 입춘으로부터 15일이 지난 2월 18일 雨水(우수)가 되어야 시작된다. 그러니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다.

 

다시 얘기지만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이번 새해가 어떤 해가 될 것인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그냥 좋은 해가 되길 바랄 뿐이다. 새해에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지를 전망하려면 가장 빨라야 4월 하순의 穀雨(곡우)는 되어야 한다.

 

왜 새해가 되었지만 한 해를 전망할 수 없다는 걸까? 그 이유를 알아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밤 12시 자정이 넘으면 새 날이 시작된다. 하지만 새 날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즉시 활동하진 않는다. 자정 넘긴 시각이면 대다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 밥도 먹고 이런저런 준비를 마친 뒤 일터로 나간다.

 

여기서 잠깐, 일터란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가보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싸움터 즉 戰場(전장)이라 보면 정확하다. 우리가 새해가 되고 그 새해를 예상해본다는 것은 새해의 전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측해보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새 날의 전망은 일터에 나가봐야만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좋은 하루가 될 것인지 아니면 힘든 하루가 될 것인지는 일터에 나가봐야만 윤곽이 그려진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터로 나가서 일을 시작하는 시각은 대부분 오전 9시 경이다.

 

한 해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새 해가 밝았지만 아직은 한밤중과 같다. 4월 하순이 되어야만 하루로 치면 8시 반 정도와 같다. 8시 반 경이면 아직 업무가 시작되진 않았어도 하루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듯이 새해의 일도 4월 하순은 되어야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전망

 

 

뭐니 해도 올 한 해의 가장 큰 궁금증은 코로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백신이 제대로 들어올 지, 들어온다면 언제쯤일지, 효과는 충분할지, 그리고 그 결과 우리 모두 바라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가 가장 궁금하다.

 

앞날을 예측함에 있어 자연순환운명학이란 날카로운 도구를 갖고 있는 나 호호당도 새 해 벽두부터 이렇다 하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굳이 해본다면 이렇다.

 

팬데믹 선언이 작년 3월 12일 무렵에 있었으니 그로부터 18개월이 경과한 금년 9월 12일 경이면 급기야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 한다. 18은 변화의 수인 까닭이다. 그리고 20개월이 흐른 11월이면 어느 정도 코로나 종식에 대한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가 사실상 끝이 난거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는 때는 2년이 흐른 2022년 3월 11일 경은 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뒤가 어떤 면에선 더 두렵다. 

 

 

그런데 설령 코로나가 끝이 난다 해도 그 이후가 어떤 면에선 더 두렵다.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이제 망했거나 거의 거덜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란 점, 그리고 올 해 중에 상당히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그러니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경제가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무진장 돈을 풀었으니 돈의 가치는 엄청나게 떨어진 마당에 소득은 늘긴 고사하고 줄어들고 있으니 이미 사람들의 실질적인 소비생활 무지막지하게 많이 위축되었으며 빈부 격차는 극도로 벌어진 판국이다. 그런데 그런 흐름이 코로나 이후에 어쩌면 더 본격화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보복소비가 있을 거란 전망도 있지만 그거야 잠시 반짝이일 것이고 그 이후론 그야말로 시름시름 앓게 될 경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어쩌면 시름시름 앓는 게 최상일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를 포함해서 글로벌 경제가 혼절 상태로 들어갈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 나아가서 글로벌 경제, 이런 얘기는 이쯤으로 접어두고 오늘은 다른 얘기 하나 드린다.

 

 

꿈과 희망, 그리고 비전이란 것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최근과 같이 어려운 시대엔 꿈과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미래에 대한 비전(vision)이 없다는 말도 그렇다.

 

그런데 말이다, 꿈과 희망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인생을 한 50년 이상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지만 대다수의 삶은 꿈과 희망보다는 현실의 무게를 견디는 것만 해도 바쁘고 힘들다. 부유하게 사는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먹고 사는 것만 해도 대단히 힘들다는 사실, 그렇기에 그렇게 먹고 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는 점을 중년을 지내보면 절로 알게 된다.

 

가만히 서있으면 뒤처진다. 나름 힘껏 달리고 있어야만 옆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다. 모두가 힘껏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속도 운동만으론 앞서가기가 어렵다. 가속을 더 붙일 수 있어야만 주변보다 앞설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주변과 함께 가고 있다면 그건 등속도 운동이라 하겠는데 그게 바로 대다수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먹고 살고 있는 모습이다.

 

등속도 운동은 꿈과 희망을 동력으로 하지 않는다. 그냥 현실을 견디는 것이 등속도 운동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 또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현실을 견디고 버티는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의욕과 탐욕, 운의 상승과 하강

 

 

또 하나의 얘기를 드린다.

 

갖고 싶은 게 있다고 하자. 그냥 갖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로 가지고 싶은 것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상이 현재 서 있는 곳으로부터 첩첩한 산을 무수히 넘어가야만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로서 그것을 갖고픈 마음의 진실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비용을 치러서라도 가지고 싶은 물건인지 아니면 그렇게 비싼 비용을 치를 것이라면 그건 아니다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앞의 마음을 意慾(의욕)이라 한다. 욕심과 함께 거기에 意志(의지)가 함께 실린 것이다. 뒤의 것을 貪慾(탐욕)이라 한다. 탐하는 욕구만 있을 뿐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의욕과 탐욕, 꿈과 희망, 미래에 대한 비전, 이런 얘기는 나름의 깊은 연관성이 있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째, 의욕을 가진 자라면 運(운)이 상승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탐욕만 있다면 그건 이제 운이 하강하는 사람이다.

 

둘째, 꿈과 희망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고 버티다 보면 그로서 어느 순간 꿈과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꿈과 희망은 所定(소정)의 힘든 과정을 겪은 자만이 가져볼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셋째,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실은 더 일반적이고 정상이다. 마래에 대한 비전은 의욕을 가지고 오랫동안 노력해온 사람만이 어느 순간에 가서 그 빛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한 때 블루오션 전략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그 블루오션이란 것이 바로 그렇다.

 

꿈과 희망은 역경을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 상태가 더 지속되면서 의욕을 가지고 발전해가다 보면 마침내 미래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따라서 의욕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만이 어느 때에 이르러 꿈과 희망을 품게 되고 그게 더 이어지면 환한 비전이 그 사람의 망막에 홀연히 비쳐오고 그려진다.

 

오랜 세월 운명에 대해 연구해오다 보니 어느 날 운과 명의 이치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알게 된 사실이 바로 노력하는 것이 운의 상승이고 시쳇말로 거저 먹으려들기 시작하면 운이 맹렬히 하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그래서 세상은 사실 공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