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설악과 동해 가는 길)

 

서울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양평과 홍천을 지나고 인제 합강정 공원의 고갯길에서 잠시 휴식한 다음 오른쪽으로 인북천을 끼고 내려가노라면 멀리 앞에 삼각형 모양의 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가 개천을 통과하는 다리, 한계교를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 길은 동해의 고성과 미시령으로 가는 46번 도로이고 오른 쪽은 한계령을 넘는 44번 도로이다.

 

멀리 삼각형의 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제 곧 동해를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부풀기 시작하고 급기야 산 바로 앞 개천의 다리를 건너 왼쪽 길 미시령 길로 꺾든 오른쪽의 한계령 길로 꺾든 상관없이 이제 드디어 설악을 넘어 동해로 간다는 느낌이 절정에 달한다.

 

예전에는 한계령 길을 많이 갔었다. 그런데 고개의 휴게소가 문을 닫은 뒤에는 일부러 한 번 지나간 적이 있다. 그냥 46번 미시령 길을 간다. 미시령 옛길을 넘는 게 아니라 미시령 터널을 통과한다.

 

지금껏 나 호호당은 이 길을 마흔 번 이상 갔다. 예전엔 겨울 동지에 낙산사 홍련암의 일출을 보기 위해 해마다 거르지 않고 갔었고 자연순환학 강의를 가면서 제자들과도 여러 차례 갔다. 물론 개인적인 여행으로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릴 것 없이 잘도 많이 다녀왔다.

 

홍천까지는 늘 지루하다. 그러다가 철정리, 먼 옛날 인제 원통에서 근무했던 사병들에겐 한이 서린 철정리 검문소가 있는 그곳을 지날 때면 이제 많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서히 머리가 맑아진다. 그러다가 인제 합강정 공원 고갯길을 넘으면서 급기야 각성 상태로 들어간다. 이제 곧 눈앞에 멀리 삼각형 산이 보일 것이란 생각과 함께.

 

서울에서 한계령을 넘어갈 땐 늘 기대에 부풀었다. 반대로 한계령을 넘어 돌아올 땐 고개 위에서 눈으로 멀리 동해 바다와 작별인사를 나누곤 했다. 한계령, 차가운 개울물이 내려오는 고개란 뜻이다. 그런 뜻을 알면서도 나는 늘 다르게 받아들였다. 어떤 한계를 넘어가는 고갯길이란 의미로 가슴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한계령을 넘을 때면 이제 속세 밖으로 나가서 노닌다는 느낌이었고 되돌아올 적엔 또 다시 투쟁과 노고가 있는 서울이 시작된다는 느낌에서의 어떤 限界(한계)였다. 아무튼 그렇게 받아들여졌던 한계령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대로 미시령을 꽤나 싫어했다. 한자로는 彌矢嶺, 원 우리말에 한자소리를 가져다 붙인 애매한 뜻이지만 내겐 그저 마이크로, 즉 조그맣게 들여다본다는 뜻의 微視(미시)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악을 넘으면 광활한 동해 바다가 나오건만 쪼잔하게 본다니, 이게 뭔 말인가 싶어서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휴게소가 사라진 한계령을 지나지 않고 미시령 터널을 지난다, 물론 미시령 길을 지나다 보면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늘 한계초등학교 앞에서 나뉘는 길을 가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한계초등학교가 있는 동네를 한 번 찾아가서 거닐어보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찾아보니 근처에 좋은 펜션도 제법 있는 것 같다. 언제 한 번 갈 수 있을까나.

 

초여름 이맘때가 되면 늘 44번과 46번 국도가 나뉘는 그 곳, 예쁜 삼각형 산이 있는 그 장소가 떠오른다. 나이 마흔, 한창 체력 왕성할 때부터 다니던 곳이라서 묘한 추억과 정서가 그 길에 깃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최근 그 길은 더욱 한산해졌다. 속초양양 고속도로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 길을 이용한다. 나 역시 두세 번 지나가 보니 도저히 갈 길이 아니었다. 그냥 터널 속을 간다, 졸음방지를 위한 소리만 시끄럽다. 급한 일이 아니면 이용하기 싫은 길, 멋없는 길이다. 앞으로도 갈 생각이 없다.

 

그리고 46번 국도를 그냥 따라가면 고성 화진포에 이르게 되는데 그 사이에 있는 고개가 진부령이다. 한자로 陳富嶺, 그런데 진부형 휴게소 쪽은 전망도 없고 휴게소도 그냥 너저분하다. 문자 그대로 ‘진부’하고 흥취가 없다.

 

여름이 되자 문득 기행문을 쓰고 싶어진 걸까 싶어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길과 함께 흘러가고 있는 또 흘러가버린 내 삶의 자취에 관한 아련한 추억들과 형언할 수 없는 여러 실마리들이 자꾸 속에서 치밀어 오른다. 이에 이런 글을 쓴다. 다른 글 사이에 몇 번 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