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호호당이 세상 살아가는 가장 큰 재미는 눈앞의 풍경을 구경하는 데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風流(풍류)라고 하겠다.
하루하루 해가 들고 나고 밤이 되고 불빛이 비치고 계절이 바뀌고 나무 잎사귀가 무성해지고 또 시들해지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 불고 하는 그런 광경들을 지켜보고 감상해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즐거움이란 것을 나이가 들수록 더 확연하게 느낀다.
평생에 걸쳐 사진을 즐겨 찍고 풍경을 수채로 그리는 것 모두 그런 흥취에서 비롯된다.
살아야 할 의무도 이유도 없는 삶이기에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한 톨의 먼지에 불과하다. 내가 이 세상에 있고 또 없고 하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것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사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 또한 실은 전혀 없다. 사람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체는 일단 만들어지고 태어났으면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록 만들어졌기에 그럴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는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가면서 산다. 아주 그럴싸하게 논리와 철학을 만들어낸다.
올 해 현재로서 나 호호당은 태어난 지 69년하고도 9개월이 지났다. 참 오래도 살았다. 살아오는 과정에서 지친 것도 좀 있고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런 까닭에 때론 사는 게 좀 싫을 때도 있다.
그랬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본 질문이 “야 자네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바락바락 살고 있지?” 하는 것이다. 물론 알고 있다,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답을 정리하자니 사는 게 마치 큰 짐을 진 것도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시 물어본다, 야 자네는 무슨 재미로 이렇게 살고 있지? 하고. 그러면 나오는 답이 글머리의 얘기이다. 경치를 구경하는 재미로 산다고.
예전엔 재미가 더 다양했었는데
사실 사는 재미는 예전에 훨씬 다양했다.
언어에 대해 궁리하고 운명의 이치에 대해 연구하는 재미, 아울러 주식의 오르내림에 대해 연구하는 재미가 방금 말한 경치구경보다 훨씬 더 컸다.
2000년대 초반, 나이 오십대 초반의 나 호호당은 생활이 몹시 곤궁했음에도 앞의 세 가지 취미, 언어와 운명, 그리고 주식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갖고 몰두할 수 있었기에 전혀 기죽지 않고 활기차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호기심과 연구가 이제 어느 정도 충족되었고 아울러 일정한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첫 번째 재미였던 언어연구부터 얘기해본다.
2000년대의 몇 년 동안 그간에 연구한 것들을 200자 원고지로 무려 2만매 이상의 분량을 원고지에 手記(수기)로 그리고 컴퓨터 워드로 썼다.
그러다가 2008년 무렵 문득 알게 되었다. 언어의 생성과 소멸에 관해 나름 앞의 그 누구도 들어가 보지 못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이에 원고를 작성했지만 과연 어느 누구가 읽어줄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물어보니 답이 없었다.
하지만 미련 때문에 그 막대한 분량의 종이 원고지 뭉치와 컴퓨터 파일을 혹시나 해서 보관해오다가 재작년에 폐기처분해버렸다.
두 번째 흥미였던 운명학은 마침내 2014년에 이르러 “자연순환운명학”이란 명칭을 붙여서 세상에 내보냈다. 그 이후로도 상담과 연구를 통해 더욱 다듬어졌다. 숨겨져 있던 운명의 엄청난 비밀을 풀어냈기에 신이 났지만 동시에 흥미와 재미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세 번째 관심사였던 주식에 대한 연구 또한 마찬가지이다. 1983년 처음 주식을 시작하면서 가진 호기심이 무려 40년 이상의 연구와 실전을 통한 검증작업 끝에 마침내 독창적인 이론과 기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몇 년 전부터 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전수해주고는 있지만 이 내용을 책으로 남길 생각은 없다. 이 기법이 널리 퍼지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연 되는 자들에게만 넘겨주고 갈 생각이다.
이처럼 세 가지 호기심과 재미는 이제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나 호호당이 살아가는 재미는 이제 앞서와 같이 경치 구경하는데 있다.
더 오래 전엔 역사에 대한 연구가 큰 훙취였는데
50대 이전까지는 앞서의 재미만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엄청난 흥취를 가지고 실로 수많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지식은 나중에 자연순환의 이치를 연구하는데 있어 훌륭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한 때 내 머릿속엔 동서양의 수많은 일들에 대한 역사연표가 수 천 개나 암기되어 있었다.
예컨대 이성계의 조선 건국 13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1492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1454년, 페리 제독의 일본 개항 1854년 등등 이런 것들이 나 호호당의 머릿속에서 수 천 개가 굴러다녔다. 데구륵 데구륵, 하면서.
그런데 이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상기하는 일이 적어지다 보니 대부분이 망각되고 이젠 겨우 몇 백 개 정도만 남은 것 같다.
소장하고 있던 책도 다 정리했으니
뿐만 아니라 재작년 그러니까 2023년에 작업실에 소장하고 있던 천 권 정도 분량의 책들도 신논현역 근처 사무실을 떠나면서 지인에게 죄다 넘겨주었다. 사실 다 버릴 생각이었는데 다행히도 그 친구가 책을 가져가서 라이브러리를 만들어서 잘 보관하고 있다.
그와 함께 집에 있던 책들도 대거 내다버렸다.
그 때 나는 이제 책과 지식의 세계를 떠나갑니다, 하고 작별인사도 했다.
당초 재작년 신논현역 근처 작업실을 떠나올 때의 계획은 자연순환운명학 개론과 각론을 저술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몸이 많이 불편해져서 원고를 제대로 쓰지도 못했고 또 그 바람에 우울증까지 생겼다. (장기간 몸이 아프면 으레 우울한 증세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년 6월 하순부터 무려 여섯 차례에 걸쳐 “길을 따라 삶도 흘러갔으니”란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 연재했고 이어 “덧없기에 아름다운 이 세상”이란 글도 올렸는데 그건 사실 나 호호당이 삶을 정리하는 글 또는 辭世(사세)의 글이기도 했다.
크게 한 번 정리했으니 다시 잘 놀아보자는 다짐
삶을 정리한다고 하니 이제 그만 살겠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천만의 말씀, 크게 한 번 정리하고 매듭을 지어놓고 이제부터 다시 새롭게 맘 편하게 놀아보자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작년 7월말 새롭게 작업실을 얻어 상담도 재개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뭘 하면서 즐겁게 놀지?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또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경치구경하는 재미로 즐겁게 놀아보자는 것이다.
올 해 중으로 아픈 발바닥, 소위 족저근막염만 좋아지면 그러니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내 발로 여기저기 끌리는 곳을 구경 다닐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정말이지 숨을 거두기 한 달 전까진 내 두 발로 걸어 다녀야지 한다.
연휴의 일요일 오늘은 강의도 없고 상담 일정도 없다. 그냥 마음 한가롭게 있다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독자님들에게 들려주는 얘기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정리하고 다짐하는 글이었다.
'호호당의 雜學잡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월의 생각 (0) | 2024.10.12 |
---|---|
이번 증시 폭락과 향후 전망 (0) | 2024.08.14 |
길을 따라 삶도 흘러갔으니#6(종결) (0) | 2024.07.16 |
길을 따라 삶도 흘러갔으니#5 (0) | 2024.07.12 |
니나 내나 사회 (0) | 2024.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