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가송리, 이퇴계가 거닐던 그림 속 경치)

 

옛사람의 길을 따라서 거닐어 보았으니 

 

 

안동에 가면 가송리라고 하는 동네가 있다. 그야말로 名勝(명승), 경치가 기가 막히게 좋다. 청량산에서 흘러오는 물줄기가 가송리에 이르러 굽이굽이 돌아가고 양쪽의 우뚝한 산은 군데군데 암벽으로 된 斷崖(단애)가 내려다보고 있어 그야말로 絶景(절경)이다.

 

청량산과 가송리를 지나온 물길은 마침내 안동호에 모여들고 그로서 비로소 강다운 강, 즉 낙동강이 본격화된다.

 

(궁금하면 유튜브에 가서 ‘미스터션샤인 안동 고산정’이라 쳐보면 경치 일부가 나온다.)

 

나 호호당을 가송리를 소개한 이는 안동 사람인 안상학이란 시인이다. 오래 전 일이다, 아마도 15년 전 정도. 안상학 시인이 내게 자연순환운명학을 배우러 왔고 그 바람에 친해져서 제자들과 함께 어느 가을날 가송리를 찾아갔다.

 

“미스터션샤인” 드라마에 보면 강 건너편에 작은 정자 하나가 나온다. 고산정이란 정자이다. 외로운 산, 孤山(고산)이란 이름을 붙인 정자. 산이 외로웠을까 아니면 정자를 지은 주인이 외로웠을까? 처음 찾았을 때 어느 쪽일까? 하고 궁리했던 기억이 난다.

 

가송리 일대는 고산정만 멋진 곳이 아니다. 농암종택 건너 편의 수직 단애는 이름이 霹靂巖(벽력암)인데 예전 시절 태백에서 떠내려온 뗏목들이 절벽에 부딪혀 우레 같은 소리를 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농압종택 쪽에서 물이 한 번 더 굽어 왼쪽으로 나가는 곳엔 하얀 모래톱이 있고 그 뒤편에 맹개마을이라는 멋진 곳이 또 있다.

 

 

퇴계 이황의 길

 

 

가송리 강변을 끼고 걷는 길은 안동호 쪽의 도산서원으로 이어지는데 이 길을 사람들은 퇴계오솔길이라 부른다. 퇴계 이황은 예순이 가까워지자 고향인 안동으로 내려와 서당을 열고 후학들을 양성했는데 이 무렵 퇴계는 북쪽의 청량산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이에 도산서당에서 청량산을 오갈 때의 길을 “녀던길”이라 부르는데 ‘다니던 길’이란 뜻이다. 그 녀던길의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가송리 일대이며 이를 두고 퇴계는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을 남겼다.

 

참고로 퇴계가 지은 것은 조촐한 도산서당이었다. 그 모습이 궁금하다면 천 원 권 지폐의 뒷면 그림에 나온다. 정선이 그린 ‘溪上靜居圖(계상정거도)’가 그것인데 이는 이황의 호 退溪(퇴계)와 직접 관련이 있다. 퇴계는 退居溪上(퇴거계상)의 줄임말인 바 이를 다시 조금 변용한 畵題(화제)인 까닭이다.

 

退居溪上(퇴거계상)은 물러나서 물가에 머문다는 말인데, 여기서 물가란 바로 도산서당이 있던 자리, 즉 가송리 일대를 포함하는 안동호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다가 퇴계가 죽고 4년 뒤, 도산서당은 임금이 편액을 내리면서 규모가 큰 서원이 되었다.

 

안상학 시인과의 인연으로 알게 되고 찾아갔던 가송리를 그 이후 한 번 더 가서 농암종택에서 하룻밤 민박을 한 적이 있다.

 

예전엔 그곳이 어디든 특히 국내의 장소일 경우 마음 내키면 언제든 또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 일흔이 되니 생각이 바뀌고 있다.

 

 

미리미리 작별인사를 하면서 다니네

 

 

올 가을 날 선선해지면 가송리를 한 번 더 찾을 생각이고 안상학 시인에게도 전화로 그런 말을 했다. 그런데 이번 가을에 찾아가서 퇴계의 녀던길을 밟게 되면 그냥 즐기는 게 아니라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거니 하고 작별인사도 해둘 생각이다.

 

찾아가서 작별인사를 해둔다, 이런 생각?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하지 않았다. 이젠 나 호호당의 남은 세월, 즉 餘生(여생)이 얼마나 될 지, 언제 그칠 지 모르는 까닭에 원해서 어떤 곳을 찾을 때면 작별인사를 해둔다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 나중에 또 가게 되면 물론 좋은 일이고 말이다.

 

안상학 시인은 시를 통해 이 세상 모든 슬픔의 원인은 사랑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유행가 가사와 정확하게 동일하다. 나 호호당은 주어진 삶을 사랑해왔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늘 즐겁고 편안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렇다. 그런 까닭에 언젠가 이 삶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때론 슬픈 마음이 든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너무 고통스럽지만 않다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혼자서 해본다.

 

 

여정이 끝날 무렵이면 애틋해지는 것이니

 

 

이 연재 글은 어떤 장소를 돌아다닌 기행문이 아니라 나 호호당이 살아온 삶 전체에 대한 기행문이다. 삶이란 이 멋진 곳에 놀러왔다가 남기게 되는 기행문, 언젠가 원래의 자리, 無(무)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황을 이제 뚜렷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나 호호당의 소감을 담은 기행문인 것이다.

 

길을 가노라면 시간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 삶도 함께 흘러간다는 것을 예전에 전혀 몰랐었다, 삶이 무한정 이어진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이제 마무리되어 간다는 생각을 하니 삶을 사랑하게 된다, 애틋해진다. 사랑하는 이에게 쓴 글을 우리는 戀書(연서)라 부른다, 따라서 이 글은 기행문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연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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