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서산과 태안 그리고 안면도)

 

저번에 동해 바다를 갔으니 이번엔 서해바다. 가장 좋아하는 곳은 안면도 방면이다. 안면도를 포함하여 태안군과 서산시, 이 일대의 땅은 나름 확연하게 다른 정취를 갖고 있다.

 

동쪽의 높은 태백과 소백에서 갈라져 나온 산들이 바다로 들어가는 지형의 끝부분에 해당되는 곳이어서 산이 있지만 높지가 않고 언덕이 있지만 가파르지 않다. 여기저기에 적당히 숲이 있고 나무가 있어 가릴 것은 가리고 보일 것은 보여준다. 거칠고 험한 느낌이 없으니 점잖고 고상한 면모가 느껴진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서산IC로 빠져서 마애삼존불과 보원사 절터가 있는 618번 지방도로나 開心寺(개심사)로 가는 647번 도로를 가보시길 권한다. 길 양쪽의 완만한 언덕 위로 서산 한우목장을 비롯해서 여타 목장들이 이어지는데 그 모습이 우리나라의 여느 산과 들과는 달라도 많이 달라서 異國(이국)의 정취를 안겨준다. 우와, 이런 데가 다 있네, 하고 탄성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홍성IC로 나가서 간월암 가는 길, 나지막한 산 속으로 뚫린 갈산터널을 나서면 갑자기 툭-하고 시야가 터진다. 오른 쪽으로 끝없이 너른 벌판이 펼쳐진다. 1980년대 시절 간척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농경지, 폭이 6킬로미터에 깊이가 무려 15 킬로미터의 광대한 평지를 오른 쪽에 끼고 달리게 된다. 눈이 절로 시원해진다.

 

조금 더 가면 바다를 가로막은 긴 방조제가 나오고 看月庵(간월암)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달을 바라보는 암자, 간월암, 이름 자체만으로도 낭만적이다.

 

간월암은 물이 들면 섬이고 물이 빠지면 육지와 연결된다, 예전엔 물이 들면 줄배를 타고 건너곤 했다. 사실 이게 이 절의 매력이다.

 

태조 이성계의 왕사이던 무학대사가 이 섬에 들어와 움막을 짓고 수도를 하던 중에 어느 날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것이 간월암의 시작이란 설이 있지만 분명하진 않다. 분명한 것은 무학대사가 이 근처에서 출생했다는 점과 현대 선불교의 큰 스승인 만공선사가 낡은 암자를 중창했다는 점이다.

 

2003년 여름 자연순환운명학 강좌를 시작하면서 수강생들과 처음 이곳에 들렀고 그 이후 안면도를 오가면서 으레 찾곤 했다. 재미난 점은 이 절엔 법당 관음전의 맞은 편 바다 쪽에 용신을 모신 해신각이 있고 오른 쪽으론 산신각이 있다는 점이다. 산과 바다의 신이 모두 있다.

 

간월암을 보았다면 이젠 안면도로 가야 한다. 길을 나서면 부석면 남쪽의 또 하나의 광활한 간척지 논을 만난다. 다시 B 방조제를 지나면 태안이다. 가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고 그곳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안면도 쪽이다. 금방 다리가 나오고 거기를 통과하면 안면도로 들어선다.

 

일단은 안면도로 가고 있지만 그 반대쪽 부석면 중앙의 낮은 산 위에 있는 부석사 또한 기가 막힌 서해바다 절경을 선사해준다. 절로 올라가는 길도 정겹고 절도 예쁘다. 눈을 부릅뜬 금강역사 또한 유머가 있다. 게다가 절에서 낙조를 만나면 그야말로 황홀하다. (참고로 부석사 근처에 가면 서산 생강 유과를 파는 집이 많은데 정말 맛이 있다.)

 

안면도로 들어서서 그냥 직진하면 좋은 경치 다 놓친다. 오른쪽 해안관광도로로 들어가야 한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사실 그곳이 안면도 松林(송림) 길이다. 해수욕장이 연이어 나오는데 나 호호당이 가장 애호하는 곳은 안면해수욕장이다.

 

여름 시즌을 지나면 늘 텅 비어 있는 백사장, 갈 때마다 헤아려보지만 그 넓은 백사장에 많아야 스물, 심지어 아예 사람이 없을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한적하다, 자동차 도로와 송림, 그리고 백사장, 안면도 왼쪽 해안도로의 모습이다. 하지만 꽃지 해수욕장에 가면 사람도 많고 숙박과 횟집도 많다.

 

이처럼 서산과 태안을 나 호호당이 애호하는 것은 특정한 장소나 관광지 때문이 아니다. 땅 자체가 매력적이다. 신두리의 모래언덕, 청포대 일대의 길고 긴 백사장, 더불어서 천수만과 간척을 통해 생겨난 부남호와 간월호 일대의 경치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천수만에 날아드는 철새들도 장관이고 겨울이 지날 무렵 철새들이 북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리를 지어 비행훈련을 하는 모습과  이윽고 떠나는 모습 또한 장관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간다.

 

언젠가의 겨울이 기억난다, 안면도의 펜션에서 하룻밤 자고 돌아오는데 아침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눈부신 천수만 위로 무수히 많은 철새들이 빼곡하게 떠있던 광경.

 

안면도 해안도로의 끝없이 이어지는 松林(송림)도 장관이고 광활하고 정갈한 백사장도 볼거리이다. 이번 연재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니 나 호호당은 우리나라의 군데군데 참 잘도 많이 돌아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여전히 많고 가볼 곳도 많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세월이 갔다, 시간만 흐르는 줄 알았더니 삶도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어허, 어쩔거나!

 

여전히 90까지는 살아볼 생각인데 최근엔 죽기 석 달 전까지 내 발로 걸어 다녀야지 하는 새로운 의욕이 추가되었다. 최대한 애를 써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