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태백을 넘어 동해 바다 7번국도)

 

동해 바다 7번 국도

 

명승과 고적들로 가득한 소백과 태백의 사이, 즉 양백지간에서 노니는 것도 좋지만 다시 동쪽으로 넘으면 그야말로 멋진 동해 바다가 나온다.

 

동해라 하면 좀 그렇고 동해 바다라고 해야 역시 입에 붙는다.

 

동해 바다를 둘러볼 것 같으면 먼저 고성에서 부산까지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7번 국도, 정식명칭 국도 제7호선을 자동차나 시외버스로 한 번 달려보는 것이 좋다. 사이사이로 멋진 바다 뷰(view)들을 조망할 수 있어 동해 바다가 어떻구나 하는 것을 느껴볼 수 있다.

 

풀 코스로 가지 않더라도 특히 삼척과 울진 사이의 고갯길을 가보면 그 맛을 알 수 있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기도 하고 굽은 해안선과 백사장, 그리고 가파른 단애들로 해서 그야말로 절경을 즐길 수 있다.

 

 

동해 바다의 정취

 

 

그러나 동해안의 멋진 풍경과 독특한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고자 한다면 7번 국도로 빠르게 달려가는데 있지 않다. 7번 국도를 가다가 중간에 빠져서 지방도로로 들어가서 해안 도로를 달리기도 하고 작은 어항과 해수욕장을 둘러보았다가 다시 7번 국도로 되돌아오는 방법이다.

 

바람을 막기 위해 심어진 소나무 숲 너머로 하얀 백사장이 비치고 좀 더 다가가면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그 사이로 갈매기 울음소리가 파고든다. 숲을 지나 백사장으로 들어서면 눈부신 모래 위에 조개껍데기들과 해초들이 널브러져있다, 물가로 다가서면 제법 높은 파도가 밀려오고 또 나간다, 신발을 벗어들고 방금 파도가 곱게 쓸고 나간 젖은 모래 위를 걸어본다, 발자국이 패고 조금 있으면 다시 파도가 지운다, 다시 파도소리 감매기 울음 소리 들려오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고요해진다. 걸으면서 상념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동해바다는 파도소리로 늘 시끄럽지만 동시에 대단히 고요하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면 시원한 또는 차갑고 시린 바람이 얼굴을 쓸고 지난다.

 

해수욕장 이름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그저 가장 위쪽 고성의 화진포로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해수욕장의 이름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작은 어항과 그곳의 등대들, 밤이면 멀리 등불을 밝힌 어선들의 기억, 아침이면 절로 눈을 뜨게 만드는 강렬한 햇살, 그러곤 바닷가 누각과 정자들의 이름과 광경이 떠오른다. 누각이나 정자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낙산사 홍련암 입구에 있는 義湘臺(의상대)이고 다음으론 울진의 望洋亭(망양정), 너른 대양을 바라보는 정자이다.

 

 

낙산사와 홍련암, 세상 끝에 있던 곳이었는데

 

 

낙산사와 홍련암,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 해마다 석탄일이 지나면 스님 한 분이 방문하셔서 하룻밤을 묵고 가시곤 했다. 바로 낙산사에 계시는 스님이었는데 내게 저 멀고 먼 강원도 끄트머리 바닷가에 있는 절이라고 얘기해주셨다. 그저 막연히 아스라이 먼 곳에 있는 절이구나 하고 여겼다. 1960년대 시절 강원도는 너무나도 먼 곳이었다.

 

그게 인연이었는지 몰라도 나이 40 넘을 무렵, 나 호호당의 운세가 입춘 바닥을 기고 있을 무렵 우연히 동지 때 홍련암을 찾아갔고 그게 시작이 되어 해마다 그곳에서 동지 아침을 맞이했다, 그러길 무려 열 네 차례나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해부터인가 동지기도란 것이 유행하면서 보살님들이 대거 밀려들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동지의 홍련암 행을 멈추게 되었다.

 

 

대관령, 웅장한 이름

 

 

그리고 대관령, 이름부터가 벌써 웅장하지 않은가! 그런 대관령을 나 호호당은 먼 옛날 연인을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넘어갔다.

 

당시 영동고속도로는 지금처럼 직선으로 뻗은 정비된 길이 아니었고 그야말로 굽이굽이 九折羊腸(구절양장)의 꼬부랑길이었다. 마침 그 날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고속버스가 커브를 돌 때마다 천 길의 낭떠러지가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제 그 길은 지방도로가 되었거나 그 또한 정비가 많이 되었을 것이다.)

 

나 호호당은 1955년생인데 1997 丁丑(정축)년에 입춘 바닥을 맞이했다. 42세, 세는 나이로 마흔 넷이었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나 호호당은 소백과 태백사이는 물론이고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서 여기저기 참으로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 지난 여행의 기억과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좀 놀다보니 어느새 70이네, 허 참!

 

 

세월은 앞으로도 많이 남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길을 오가는 사이 어느새 세월이 가서 정신을 좀 차리고 보니 세는 나이 일흔, 70이다.

 

저번 글에서 얘기했다, 여정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면 더 애틋해진다는 말.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더 미련이 없다, 훌훌 털고 가야겠다, 전혀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번에 건강을 잘 회복해서 남은 세월 더더욱 열심히 즐겁게 살아가야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된다. 나 호호당에게 이 세상은 여전히 매력덩어리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