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발생으로부터 무려 50일이나 놀고 있었던 중국 당국



우한폐렴은 초기 대응의 실패가 불러온 사태이자 문제이다. 당초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는 최초 감염을 12월 12일로 추정했는데 얼마 후 다른 연구진의 연구에 의해 최초 감염은 12월 1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그 밝혀진 날은 한참 뒤인 1월 24일 영국 의료 학술지인 ‘랜싯’에 발표한 논문에서였으니 엄청나게 늦었다. 


무려 50일 이상 대응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초기 대응이 엄청나게 늦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고 이런 늑장 대응 때문에 지금과 같은 대규모 글로벌 비상사태를 야기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 본다. 


그 결과 최초 발생으로부터 30일이 경과한 12월 31일이 되자 27명의 원인미상 폐렴 발병 사실이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되었고 그 중 7명이 위중한 상태였다. 그 대부분이 우한 수산물 시장의 상인들이었다. 여전히 중국 당국은 여전히 제대로 된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1월 10일 최초의 사망자가 나왔고 12일에는 무한으로부터 남쪽으로 거의 1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홍콩 북쪽의 선전 시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당황한 중국 당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즉 우한 폐렴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그 또한 안일한 대응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우한 폐렴 사태는 중국 체제의 문제점, 공산당 1당 통치 나아가서 시진핑 1인 체제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들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건이라고 나 호호당은 단언한다. 



자연순환운명학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왜 이렇게까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과 자연에는 數(수)가 있는데 이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실증한 것이 바로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다. 


예컨대 2015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메르스 사태의 경우 처음 환자가 발생한 이후 감염자가 급증했지만 18일이 지날 무렵부턴 환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잘 마무리되었다. 언론이 떠들어대면서 정부 당국이 비교적 초기부터 총력을 경주하면서 그렇게 잘 끝낼 수가 있었다.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관문들을 프리 패스시킨 중국 당국



자연의 수는 처음 시작으로부터 18이란 숫자가 확산으로 가느냐 아니면 종식으로 가느냐의 제1차 관문인 까닭이다. 우리의 경우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을 잘 지켰던 셈이다. 


하지만 중국은 12월 1일 최초 발생으로부터 11일이나 경과한 12월 12일을 최초 발생으로 추정했고 추정한 날자 역시 한참 뒤였다. 그러니 그 사이에 우한 폐렴은 무방비 상태에서 마구 번져갔던 것이고 그러자 최초 발생으로부터 30일이 경과한 12월 31일이 되자 27명이 감염되는 대량 확산 사태가 시작되었음에도 역시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니 18일에 맞이하는 제1차 관문은 그야말로 프리 패스로 통과되었다. 


12월 1일의 최초 발생으로부터 40일이 지난 1월 10일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42일엔 우한 이외의 먼 지역인 선전에서 감염자가 발생했다. 그러니 이 역시 중국 당국의 안일한 대응 때문에 우한 폐렴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42일이란 숫자는 30일과 12일을 더한 숫자로서 30일이 지나면 이제 광범위한 지역으로 번져가는 숫자이고 거기에 또 다시 12일이 지났기에 먼 타지에서도 환자가 발생한 것인데 그 또한 아니라고 했으니 중국 당국의 대응이 지극히 무능하고 안일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 가지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치고 말았지만 실은 최초 발생으로부터 18일에 이어 찾아오는 두 번째 관문이 있었으니 그는 36일이다. 그런데 42일만에 타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36일차의 브레이크, 관문 역시도 무사통과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 이런 글을 쓰는 까닭은 어제 30일이 12월 1일의 최초 발생으로부터 만 60일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2월 1일은 壬申(임신)일이었고 어제 30일 역시 壬申(임신)이란 얘기이다. 


60이란 날자는 이제 우한폐렴이 중국 각지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본격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때마침 어제 대한항공 전세기가 우한 거주 우리 국민들을 싣고 온 것은 그런 면에서 나름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그런데도 체면 때문에 이중 플레이를 하는 중국



그런데 참으로 실망스럽게도 중국 당국은 최초 발생으로부터 무려 50일이 넘은 1월 21일에야 우한 폐렴에 대해 사스와 메르스와 같은 등급의 ‘을류(2급)’ 전염병으로 지정했다. 이를 지켜보던 나 호호당은 솔직히 말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발생 50일이나 지난 뒤에야 비상경보를 울렸으니 그 51일 사이에 바이러스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확산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참고로 얘기하면 홍콩대학의 모 미생물학 교수는 같은 날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이 이미 전면적 확산 단계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런데 중국의 대응이 더욱 한심한 점은 발생 50일이나 지나서야 국가비상사태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한 단계 더더욱 한심한 것은 지정은 을류 전염병으로 하고 대응은 갑류 갑류 전염병으로 한다는 점이다. 체면 때문에 보여주고 있는 이중 플레이라 하겠고, 1인 통치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웃기지 않는가! 1급 비상상황이건만 명목은 2급이라 우기고 있으니. 



세계보건기구의 수상한 협조



그런데 한 가지 더 웃기는 일은 23일 있었던 WHO(세계보건기구)의 중국 당국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협조였다. 


세계보건기구는 23일 우한폐렴이 중국 내에서만 크게 유행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는 사람 간 전염 증거가 없으며 사망자 대부분이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고 대다수의 건강한 성인에게는 가벼운 증상만을 유발한다며 이번 사태가 아직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세계보건기구의 이런 이상한 협조는 중국이 이 기구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의심을 들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라 본다. 


그래서 뉴스를 살피다 보니 역시나 하는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1월 2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의하면 2017년 중국이 WHO에 600억 위안(약 10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투자하기로 협약을 했기에 WHO가 시진핑 주석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역시 약발이 듣고 있구나 싶다. 


그러면서 중국은 24일 춘절이 시작되자 나름 특단의 조치를 내렸으니 우한시의 폐쇄는 물론이고 우한시를 에워싼 후베이성 전체를 폐쇄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이 많이 든다, 인구 1100만의 대도시인 우한시를 과연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후베이 성 전체를 봉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고. 



2월 11일의 세 번째 관문마저 뚫리면



이제 마지막 남은 관문은 2월11일 甲申(갑신)일이다. 작년 12월 1일 최초 발생으로부터 72일이 되는 날인 까닭이다. 이 관문에서 막히면서 수그러드는 기미가 없을 것 같으면 그야말로 골 때리는 일이 발생한다. 


그 지점에서 방어가 효과적이지 않을 경우 이번 사태는 72일의 두 배인 144일에 걸쳐 이어지는 글로벌 역병 사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2월 1일로부터 144일 후를 달력에서 찾아보자. 4월 23일 丙申(병신)일이 나온다. 


그때까지 이어질 경우 예상되는 인명 피해-물론 경제적 피해는 당연한 것이고-는 실로 엄청날 것이란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우한시는 양자강 중류에 있기에 상류 쪽의 인구밀집 지역인 쓰촨의 청뚜라든가 하류인 난징 그리고 상하이에 이르는 양자강 라인을 따라 퍼질 것이 명백하니 그야말로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그거야 강 건너 바다 건너 일이고 우리가 문제인데 하루에만도 수만의 여행객이 중국을 오가고 있다는 점, 게다가 증상이 없어도 정말로 감염이 가능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대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말이다. 


평소 미세먼지 때문에 중국을 탓했는데 이제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상황으로 더 커져가고 있으니 솔직히 두려움이 앞선다.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 게다가 1인 체제에서 오는 취약점이 이번 우한 폐렴 사태를 글로벌 국면으로 만들어놓았다. 전혀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웃이 좋아야 편한 법인데 그렇지가 않다. 



이 모두 따지면 중국의 國運(국운) 탓인 것이니



이제 글을 정리할 겸 좀 더 대국적인 그림을 하나 보여드린다. 


우리와 중국은 국운의 흐름이 불과 4년 차이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4년 앞서간다. 우리는 2024년이 국운의 입춘 바닥이고 중국은 2028년이 국운의 입춘 바닥이다. 두 나라 모두 현재 맹렬히 기울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2015년 유독 우리나라에서 피해가 심했던 메르스 사태로부터 4년 후인 2019년 말에 중국에선 우한 폐렴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쨌거나 민주주의 체제이고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두 나라의 피해 규모는 큰 차이가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런 역병만이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올 해 말 또는 내년 초 중국에선 거품 경제의 붕괴가 발생한다는데 대해 나 호호당은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함께 알려드린다. 그로 인한 악영향 역시 우리가 가장 많이 받을 것 같다.



예측의 한계



미국 농구의 전설이었던 코비 브라이언트가 자가용 헬기를 탔다가 추락사했다. 생년월일을 찾아보니 1978년 8월 23일, 생시는 오후 3시로 추정된다. 


사주는 戊午(무오)년 庚申(경신)월 丁巳(정사)일 戊申(무신)시, 따라서 입춘 바닥은 2017 丁酉(정유)년이었다. 사망한 일자는 2020년 1월 26일 아침 9시 45분, 巳時(사시)였다. 운세가 극히 저조한 때라 갑작스런 사고에 대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하지만 사전에 그의 사망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하고 묻는다면 ‘전혀 알 수 없다’이다. 운세가 나쁘다는 것 정도야 자연순환운명학의 견지에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만 사고사와 같은 문제는 사전에 예측할 수가 없다. 60년에 걸쳐 雨水(우수)의 운이니 이런 운엔 무리한 이동이나 변화는 무리라고 능히 예측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사망을 미리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형 사고의 경우



사고 당일 비와 심한 안개로 인해 대부분의 헬기들은 이륙을 하지 못 했는데 코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이륙을 감행했고 결과 산언덕에 충돌하는 바람에 사망했다. 동승했던 딸과 헬기 조종사, 동료 등 9명도 함께 사망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9명의 사람들도 운이 나빴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 10년 전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해본 적이 있었다. 연구 결과 자료 부족 등등의 이유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예전의 사례로서 2015년 저먼윙스 여객기가 프랑스 남부 산악에서 충돌하면서 150명이 사망하는 초대형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행기 기장의 운세가 최악이었다는 점이다. 사고 후의 분석 결과도 그렇지만 기장의 운세로 볼 때 우울증 등으로 인한 자살 비행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종류의 사고는 데이터는 많으나 사망자의 신원 특히 생년월일을 알 수 없는 관계로 연구를 포기했다. 다만 당시 연구 결과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운세가 나쁜 사람 곁에 있으면 문자 그대로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코비와 함께 죽은 사람들의 운세까지 나빴다기보다는 코비 자신의 나쁜 운세가 동승자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생각이다. 


개인의 사주나 운세 흐름, 즉 命(명)과 運(운)만으론 사망을 포함해서 특정한 일을 사전에 투시해낼 수 없다는 얘기이고, 나아가서 운명학이란 것이 미래를 透視(투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를 하기 위해 앞의 예를 들었다. 



미래를 투시할 순 없지만



자연순환운명학에 의하면 60년에 걸쳐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 크게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좋은 호시절과 어려운 때를 분명하게 구분해낼 수 있다. 대충 거칠게 알아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2년 반을 단위로 해서 맞이하게 될 흐름의 특징과 상세한 변화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떤 이가 상담을 왔다고 햇을 때 그 사람의 사주를 알고 또 찾아온 시점의 운세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심리적 상태에 있는가 하는 점도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 



생각이 팔자라는 말



결국 어떤 사람의 향후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사람의 심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사자는 자신의 심리나 심경의 변화가 장차 스스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생각의 변화는 많은 요인과 요소들로 인해 생겨나겠지만 결국 생각의 변화가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기에 단적으로 말하면 ‘생각이 팔자이고 운명’이라 말해도 된다. 


그러나 다시 얘기하는 바, 미래를 그림처럼 투시해낼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어린 시절의 호기심



어려서 나 호호당이 궁금해 했던 것은 이른바 점을 치거나 사주를 본다는 사람에게 미래 투시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점을 치는 사람이나 사주보는 사람이 미리 알아서 땅이나 주택, 주식 등을 사놓아서 절로 돈을 벌 일이지 왜 상담객들에게 돈을 받고 생활하는 것일까? 하는 천진스런 생각도 했던 것이다. 


그런 호기심이 처음 생긴 것은 아홉 살 무렵이었다. 그 이후 그런 호기심에서 사주명리란 것을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접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한문을 독해할 수 있었기에 관련 서적이란 서적은 모조리 구해서 읽었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무당이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는 것에 이끌려 한동안 틈을 내어 무당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뭐가 보이시는데요? 진짜 보입니까요? 하고 노골적으로 물었다가 면박을 당한 적도 있고 도대체 당신이 느끼고 본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고 약간은 부드럽게 접근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神病(신병)이 나는 바람에 무속인이 되었다는 일반적인 말, 항간의 믿음에 대해서도 과연 그런가? 하고 따져 묻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무속인의 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들 역시 미래를 투시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결론을 얻었다. 순간순간 스쳐가는 그들만의 靈感(영감)이 무속인의 특별한 능력이란 정도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 



살인범과의 인연



사주를 연구하면서 예를 들면 돈을 엄청 많이 벌었다는 사람을 포함해서 나름 특별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흘러온 과정과 시간들에 대해 사주와 연관 지어 물어본 적도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86년의 서진 룸 살롱 집단 살인 사건의 주범이었던 사람과의 인연이다.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그 양반, 이제는 고인이 된 사람을 찾아가서 면회를 신청하고 만났다. 그 양반은 모르는 사람이 왜 찾아왔냐고 물었고 이에 나는 (살인을 한) 당신의 사주가 궁금해서 찾아왔다는 답을 했더니 그야말로 노발대발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어쩌다 보니 사형이 확정된 뒤에도 직장에서 휴가를 내어 몇 차례 지방 교도소로 이송된 그를 찾아가 면회를 하고 영치금도 넣어주다 보니 정이 들었는데 어느 날 찾아갔더니 형이 집행되었다는 말을 듣고 명복을 빌어준 일도 있다.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사람의 사주는 일반인과 어떤 점이 다를까? 하는 호기심에 끌려 그런 인연도 맺게 되었던 셈이다. 



術士(술사)들을 찾아서



관상이나 수상 이런 것들 역시 과연 신빙성이 있는 걸까 궁금해서 나름 대가로 알려진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1993년 겨울엔 훗날 허영만 만화로 인해 유명해진 관상가인 신기원 씨를 찾아가서 만난 적도 있다. 


내 얼굴을 한 번 슥 보더니 蒼鷹搏兎(창응박토)의 相(상)이란 말을 해주었다. 푸른 매가 겨울 하늘 상공을 날면서 사냥감인 토끼를 찾고 있다는 말이었다. 꽤 수긍이 갔다. 



결국은 自然(자연)에서 답을 얻었으니



그러다가 2007년 경 문득 자연순환의 원리와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이를 다듬어서 2014년엔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것이 만들어졌다고 글로 쓰기도 했다. 실은 1983년부터 착안한 아이디어를 무수히 검증한 끝에 확립한 결과였다. 


결정적인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인터넷, 특히 위키피디어와 구글의 도움이었다. 그를 통해 8만명 이상의 사람들에 대해 그 생애와 운명을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명리학, 중국에서 전해져온 이론으로선 결코 알 수 없었던 운의 정확한 흐름을 예측해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명리학을 바탕으로 하고는 있지만 적당히 꿰맞추는 식의 이론이 아니라 운의 흐름에 대해서만큼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한 이론체계인 자연순환운명학은 그 근본 원리가 만물은 자연을 흉내 낸다는 것이다. 자연의 행로를 따라서 간다는 것, 이게 근본 이론이다. 



어쩌다보니 인생 전체가



운명학이란 것과 인연이 된 것은 열일곱의 나이였던 1971년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2001년 나이 마흔 일곱에 상담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다시 30년이 흘러 2031년, 인연 맺은 때로부터 60년이 흐른 시점, 내 나이 일흔 일곱이 되면 나 호호당은 운명학에 대해 어떤 경지에 가 있게 될까? 


나 호호당 역시 궁금할 따름이다. 미래를 투시할 순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냥 길을 따라서 가볼 작정이다. 그 끝에서 무엇을 보게 되고 만나게 될 지 그 누군들 알겠는가.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갖지 않을 생각이다. 



길을 가면서 노래한다.



이 대목에서 얘기 하나 들려드린다. 


오래 전의 중국 영화 邊走邊唱(변주변창), 우리말로 하면 ‘길을 가면서 노래한다’가 되겠다. 국내 개봉은 1992년이었다. 


옛날 중국 어느 곳에 눈먼 소년이 있었는데 사부로부터 줄악기를 배웠다. 사부는 눈을 뜰 수 있는 비방을 악기 통속에 넣어주면서 악기의 줄이 천 번 끊어졌을 때 열어야만 효과가 있을 것이란 얘기를 해주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노인이 된 장님 소년은 그 사이에 줄을 무수히 끊어먹었고 그 바람에 연주의 대가가 되었다. 연주가 너무나도 신통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게 된다. 


하지만 맹인 악사의 소원은 줄이 천 번 끊어져서 그 비방을 펼쳐보는 것이었다. 마침내 어느 날 천 번째 줄이 끊어졌다. 흥분한 악사는 악기 통속에 있던 비방을 꺼내들어 펼쳐보지만 그 비방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냥 종이쪽지였다. 맹인 악사의 평생소원은 물거품이 되었고 이에 실망한 나머지 제자의 품에 안겨 숨진다. 


오랫동안 인상에 남아있는 영화이다. 그러니 나 호호당 역시 인연을 맺은 지 60년이 흘러 2031년이 되었을 때, 사실상 다 살았을 때 그곳 그 시점에서 무언가를 만나게 되리란 기대도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자제할 생각이다. 


그저 분명한 것은 내후년인 2022년쯤엔 그간의 연구를 집대성해서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다.


18년과 4개월의 세월

 

 

자정 지난 지 30분이 넘었으니 24일이 되었고 이로서 설날이다. 절기의 이름이 가장 춥다는 大寒(대한)인데 기온이 10도라 하니 그 이름이 무색하다. 봄인지 겨울인지 분별이 되지 않는다. 우한 폐렴이 국내로 전파될 까봐 그게 걱정이다. 이미 춘절(중국의 음력설) 연휴가 시작되고 있어 무려 10억의 사람이 이동한다고 하니 무사할는지. 그러니 올 해에도 독자님들 모두 몸과 마음 건강하시길 바란다.

 

나 호호당으로선 이 달 丁丑(정축)월은 2020년의 첫 번째 달이자 2024년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60개월의 순환이 시작되는 때이기도 한 탓에 평소보다 신체적 활동은 적고 생각은 많다. 沈潛(침잠)해있는 것이다.

 

2001년 10월부터 사람의 운과 명이란 것을 연구하고 또 상담해주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 그간에 18년하고도 4개월이 흘렀다. 그땐 마흔 일곱이었고 지금은 이제 예순 여섯이 되었다. 그러니 짧지 않은 세월이다.

 

 

나 호호당은 사전에 운명상담을 업으로 하리란 것을 몰랐었으니

 

 

나 호호당은 운명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사전에 이 일을 하게 될 것으로 미리 내다보았을까? 하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이다. 나는 내가 이 일을 하게 될 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운명을 연구하고 앞날을 내다본다는 사람이 자신의 일도 몰랐단 말인가? 하고 누군가 힐난하거나 지적한다면 그저 ‘네, 하지만 그게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할 뿐이다.

 

그런데 나 호호당은 운명의 이치에 대해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깊숙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나 호호당이 연구해낸 자연순환운명학은 기존에 전해져오던 어떤 운명학보다 사람의 명과 운을 예측함에 있어 비교할 바 없이 정교한 이론 체계라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의 말과 뒤의 말은 모순이 아니다. 운명학이란 사람의 미래를 透視(투시)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미래나 과거를 투시할 수 있는 대단히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그런 특별한 사람들도 모든 시점들을 마치 비디오 클립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리듯이 투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미래를 투시할 순 없는 일이어서

 

 

이처럼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그림 보듯이 그려낼 순 없다면 과연 자연순환운명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인지 그 점에 대해 얘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른바 사주팔자라 하는 것은 사람의 태어난 생년과 생월, 생일, 생시를 60개의 干支(간지)조합으로 표기한 것을 말한다. 가령 오늘 설에 태어났다면 생년은 己亥(기해)년이 되고 생월은 丁丑(정축)월, 생일은 丁卯(정묘)일, 생시는 이제 새벽 두 시가 가까우니 辛丑(신축)이 된다. 글자 수로 치면 여덟 자이니 八字(팔자)인 것이고 두 글자로 이루어진 각 항은 네 개가 되니 그것을 세로로 쓰면 네 기둥과 같다고 해서 四柱(사주)가 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사주팔자의 총합은 60*12*60*12가 되어 518,400개의 조합이 나온다. 따라서 사주학이란 사람을 518,400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파악하는 기술이다.

 

사주팔자로 이루어진 518,400개의 유형을 그 사람의 命(명)이라 부른다. 왜 명이라 하는 것일까? 하면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받은 명령, 즉 受命(수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넌 이렇게 명을 받았으니 그 받은 명대로 살다 가거라 하는 얘기이다.

 

재미있는 얘기이다. 하늘이 그렇게 명했다는 논리가 말이다. 과연 그럴까? 하고 따지고 들면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얘기이다. 이걸 따지자면 과연 하늘이란 것이 무엇이며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하는 점부터 해명되어야 하니 그렇다.

 

유교에선 하늘 즉 天(천)을 얘기한다. 하지만 그건 유교가 종교이기에 그런 것이고 기독교로 친다면 하느님이 될 것이니 이런 논의는 이미 형이상학적 차원 또는 神學(신학)의 문제로 넘어간다. 그러니 더 이상 얘기하진 않겠다. 다만 나 호호당은 개개인의 사주에 대해 그 사람이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적 성향과 자질이란 생각을 한다.

 

 

命(명)를 확실하게 감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까닭에

 

 

518,400개나 되는 각각의 사주를 보고 읽어서 그 사람의 고유한 성향과 자질을 알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나 호호당이 직접 대면해서 그 사람의 사주를 읽고 상담해준 사람이라 해야 다 합쳐서 기껏 2만 명 정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적은 숫자가 아니지만 그 정도 경험을 가지고 감히 518,400 가지 유형의 사주에 대해 그 사람 고유의 성향과 특징을 통찰해낼 수 있다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간 연구해오는 과정에서 구글이나 위키피디어를 통해 고금동서에 걸쳐 대략 8만 명 이상의 인물에 대해 자료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구해본 적은 있지만 그를 감안해도 해도 10만에 불과하다. 전체를 다 겪어보지 않은 마당에 전체를 다 안다고 말할 순 없다.

 

10만에 달하는 케이스에 대해 직간접으로 경험해왔기에 이른바 ‘통밥’이라 하는 것만큼은 고도로 발달해있다. 사람을 처음 대면하면 사주를 보지 않아도 생긴 모습만으로도 순식간에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感(감)은 역시 감인 것이고 객관적이라 말할 순 없다.

 

사주보는 법에 대해 이렇게 제법 장황하게 얘기하는 것은 사람마다의 命(명) 즉 518,400개에 달하는 다양한 사주 유형에 대해 통달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런 까닭에 명을 보는 것은 상당 부분 그것을 보고 판별하는 사람의 역량과 실제 경험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아트(art) 또는 術(술)의 영역에 속한다 하겠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나 호호당은 평소 글에서 어떤 이의 운과 명을 얘기할 때 주로 운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 사람의 명에 대해선 많은 언급을 하지 않는다. 사주의 명을 감별하는 데 있어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여전히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의 변화에 대해선 단정적으로 얘기한다. 왜냐면 운의 변화란 것은 거의 법칙이라 할 정도로 기계론적 또는 물리학적 정확성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이 아니라 법칙이라 해도 좋다. 이는 앞서 명의 판단이 아트의 영역이라 한 것과 크게 다른 점이다.

 

 

명은 보는 것은 아트이고 운을 살피는 것은 법칙이다.

 

 

이 대목에서 글의 앞부분에서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은 없다는 말을 했는데 어째서 운의 변화를 살피는 것은 물리학적 정확성을 가지고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하시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그 점에 대해 조금 얘기하면 이렇다. 운을 살피는 것은 사실 미래를 투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부터 얘기해둔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어떤 시점에서 일이나 사업을 시작한다고 가정해보자. 생년월일을 알아서 사주를 알면 그 사람이 미래 어떤 시점에 가서 그 일 혹은 사업이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성공과 실패가 어떤 경로를 밟아서 어떤 요인으로 인해서 성공하고 실패할 것인지 그 모든 상황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림으로 그려낼 순 없다.

 

사람의 일만이 아니다 크게는 나라의 일도 정확하게 성패를 사전에 정확하게 성패를 가려낼 수 있다. 가령 과거 1941년 12월 7일 일본 항공모함 전단이 하와이 진주만을 현지시간으로 아침 시간에 기습 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일본 국운의 코드가 乙酉(을유)를 立春(입춘)으로 한다는 점을 알고 있고 더불어 1941년 12월 7일이 辛巳(신사)년 庚子(경자)월 己丑(기축)일이다. 이 정보 만으로서 나 호호당은 당시 그 시점에 살고 있었다 할 경우 일본 제국의 참패를 능히 자신있게 예측할 수 있다.

 

 

운을 살피고 예측하는 것이 미래를 투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뿐만 아니라 참패에 이르는 대강의 경로와 흐름까지도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래를 그림으로 보듯이 투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점에서 운의 예측이란 것은 투시능력과는 차이가 있다.

 

나 호호당이 쓰고 또 올리는 글들은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에 세밀한 영역까지 설명할 수 없어서 대강의 내용만을 소개하고 있긴 하지만 실은 독자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세밀한 변화까지 예측해낼 수 있다는 것만 알려드린다.

 

글이 제법 길어졌기에 다음 글에서 이어간다.

30년 전의 일이 기억나서

 

 

1월이 술술 흘러가고 있다. 벌써 19일이고 다음 주면 설, 그러면 2월로 넘어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도 빠르다.

 

사나흘 전의 일이다. 밤 11시 경, 늘 하던 대로 강아지들 데리고 아들과 함께 뒷산에 올랐는데 남쪽 하늘에 왕별 시리우스가 빛나고 있었다. 무심코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정확하게 30년 전 그러니까 1990년 1월의 어느 날 밤 한강 둔치 즉 반포한강공원에서 저 별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 것이다.

 

차이라곤 그땐 반포한강공원이었고 이번엔 그로부터 약 2 킬로미터 떨어진 동작동 뒷산이란 점이 전부. 별은 30년 전 1월의 겨울밤이나 30년 후 1월의 동작동 뒷산 공원에서나 아무런 변함없이 빛을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서른여섯의 청년이었고 지금은 예순여섯의 반늙은이.

 

 

나 호호당의 몰락이 시작된 1990년 5월

 

 

그러자 1990년 5월이 떠올랐다. 30년 전의 일인데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다. 1990년 5월 직장에서 제법 나름 공을 세운 바람에 그 포상으로 20일에 걸쳐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왔다. 문자 그대로 세계일주( tour round the world)를 했다. 유럽으로 날아가서 돌아다니다가 영국으로 건너갔고 다시 미국으로 갔다가 태평양을 건너 서울로 돌아왔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 자체가 흔치 않던 시절에 지구를 빙 둘러 왔으니 얼마나 흥겨웠겠는가. 그런데 훗날 알고 보니 바로 그 포상 여행이 나 호호당에겐 몰락의 시작점이었다. 1990년 1월은 나 호호당의 60년 운명 순환에 있어 冬至(동지)의 때였던 것이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고 또 질시도 샀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구렁텅이로 내려갔다, 따지고 보면 내 스스로 찾아간 길이었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러 2005년 여름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작업실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운명상담 일을 하면서 동시에 과거 내 삶의 태도와 자세에 대해 깊은 반성을 했다. 바로 그 무렵이 운명 순환에 있어 春分(춘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잘도 흘러가더니 이제 2020년이 되었다. 나 호호당은 이제 夏至(하지)의 운을 맞이하고 있다. 금년 5월 나 호호당은 또 하나의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기간은 아주 짧지만 그게 나로선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란 것을 문득 알게 되었다.

 

1990년 5월의 거창한 세계일주 여행과 이번 5월에 계획된 여행 간에는 정확하게 30년의 시차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약간 시건방을 떨었더니 그 결과가

 

 

1990년 당시 서른여섯 살이었는데 그 이후 많은 풍파를 거치더니 어언 예순여섯이 되었다. 우리가 살다보면 때론 인생이 너무 길게 느껴질 때도 있기 마련인데 당시 나 호호당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긴 인생 지루해서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천만의 말씀,

 

그 이후 우당탕 정신없이 가는 세월 이제 좀 멈추고 숨을 돌려보니 벌써 예순여섯이다. 紅顔(홍안)의 청년이 어쩌고저쩌고 숨 한 번 돌리는 사이에 白髮(백발)이 반도 더 되는 반늙은이가 되어있다. 그야말로 허 하고 또 참이다. 허-참!

 

시간이란 참으로 묘한 것,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것은 30초만 해도 지루한 데 30년 세월은 무엇에 홀린 듯 쏜살같이 날아갔으니. 하지만 겨울 하늘의 시리우스는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이 겨울 밤하늘을 밝히고 있다.

 

30년 전 1990년의 冬至(동지)의 운을 맞이하여 처음엔 서서히 내리막을 타다가 어느 순간부터 속도를 내며 잘도 미끄러져 내리더니 15년이 흘러 2005년 밑바닥에서 이르러 반성과 성찰 좀 했고 이제 다시 힘겹게 오르막길을 기어올라 2020년 이제 간신히 夏至(하지)의 운을 맞이하고 있다.

 

사실 1990년부터 내리막을 탔다고 했지만 나중 일이야 알 리 없었던 나로선 처음에 아주 즐거웠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92년부터였다. 1992년은 내게 있어 小寒(소한)의 운이었다. 소한이라 하면 해마다 양력 1월 5일경에 찾아드는 절기를 말한다.

 

가파른 내리막은 바로 소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소한이란 말이 나왔으니 우리 경제에 대해 얘기를 좀 할까 싶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작년 10월부터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소한을 맞이했기에 그렇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지금부터 본격 내리막을 탄다고 보면 되겠다.

 

 

우리 대한민국의 본격 시련은 이제 시작

 

 

그러다가 2022년 4월이 되면 한 해를 통해 가장 춥다는 大寒(대한)의 때가 된다. 최근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무성하지만 그래도 아직 나름 희망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2022년 4월이 되어서도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될는지.

 

돌이켜보면 2008년에 터진 미국 금융위기는 우리 경제의 명맥을 연장시켜주었다는 사실이다. 그 덕을 우리가 보았다는 얘기이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다음과 같다.

 

2008년 말 가계부채는 723조였는데 작년 2019년 3/4분기엔 1572조로 그 사이에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부채가 저처럼 늘어났으니 원리금 부담이 커져서 소비에 많은 부담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서 유럽과 일본이 돈을 마구 풀어대는 바람에 글로벌 금리가 거의 제로금리 수준까지 내려갔고 그 바람에 우리 역시 금리를 대폭 낮출 수 있었다.

 

2008년 말 4.25%이던 기준금리가 지금 1.25%로 대폭 인하될 수 있었던 것은 주요 선진국들의 금리가 낮아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시 말해서 2008년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우리 역시 금리를 4% 선에서 유지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그랬을 경우 지금과 같이 가계부채가 1500조 선까지 늘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령 1000조 정도만 되었다 해도 4% 이상의 금리를 부담하긴 너무나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랬을 경우 이미 우리 경제는 가계부채로 인한 부담으로 내수 경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2008년의 금융위기야말로 우리 경제의 명맥을 10년 이상 더 연장시켜 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계부채가 극에 달하자 문재인 정부는 소위 ‘수퍼예산’이란 것을 편성해가면서 재정투입을 통해 경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결국 정부 부채의 증가를 뜻한다. 이제 국가부채가 가계부채를 대신해서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바람에 국가부채는 2008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났으며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니 이제 통제불능이라 본다.

 

이른바 경제주체라고 하면 기업과 가계 그리고 정부이다.

 

기업부터 얘기하면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좀비 기업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나름 건전한 기업들은 투자에 있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가계는 엄청난 가계부채로 인해 사실상 소비를 늘릴 수가 없고 이제 정부마저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재정건전성까지 무시해가면서 부채를 늘려가고 있는 오늘이다.

 

그러니 멀지 않은 시점에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더불어서 수출에 이상이 생기거나 외국인 자금 이탈이라든가 중국의 거품 붕괴 또는 북한의 급작스러운 변고 등이 있을 경우 우리 경제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한 편으로 지금의 글로벌 저금리 추이가 벌써 오랫동안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이 이대로 이어지기 보다는 다른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세상 변화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다. 이에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려야 할 경우 즉각적인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금년부터 경제활동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대학 정원에 비해 학생 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상황은 더 암울해진다.

 

이런 얘기들이 지금은 우려라 하겠으나 2년 뒤인 2022년이 되면 눈앞의 현실이 되어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마등처럼 스쳐간 30년 세월

 

 

다시 돌아와서 얘기이다.

 

2020년 1월이 어느새 다 지나가고 있다. 시간은 잘도 간다, 술술.

 

그러는 가운데 30년 전 1990년 1월의 어느 날 밤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던 기억을 시작으로 지난 3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빠른 속도로 눈앞을 스쳐간다. 기억의 필름들이다.

 

그 사이에 청년은 늙은이가 되었다. 기력은 당연히 많이 떨어졌지만 생각하는 힘은 오히려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렇게 억울하진 않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고 그 반대도 그렇다.

 

살아갈 날이 이젠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으니 앞으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하고 다짐을 해본다. 앞으로도 어려운 고비 많을 것이고 그 사이에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니 어려울 적엔 굴하지 않고 좋을 적엔 解弛(해이)해지지 않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다.

영화 ‘미드웨이’가 제법 화제를 모은다고 해서



최근 태평양 전쟁 당시의 해전을 다룬 ‘미드웨이’란 미국 영화가 제법 화제, 광고 영상을 보니 일종의 ‘국뽕’ 스타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오늘은 미드웨이 해전 당시의 두 영웅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싶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먼저 1942년 6월의 ‘미드웨이 해전’에 대해 약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미드웨이 해전의 배경



1941년 12월 일본 항공모함들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국 태평양 함대 기지를 기습공격해서 엄청난 타격을 입히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일본군은 신속하게 홍콩과 말레이반도, 싱가포르 필리핀 등을 침략 점령해나갔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일본 육해군이었다. 


미국은 진주만 기지 습격으로 주력함대가 거의 와해되다시피 했기에 일단은 수세에 몰려 방어전을 펼치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일본 해군이 최정예 항모군단을 동원해서 미 해군의 잔존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나섰다가 오히려 미 해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받고 패배한 해전이 바로 1942년 6월의 미드웨이 해전이었다. 흔히 태평양 전쟁의 전환점이라 일컫는다.

 

미드웨이(Midway)는 하와이 제도의 서북쪽으로 대략 2200 킬로미터 떨어진 망망대해에 위치한 아주 작은 섬이다. 명칭 그대로 ‘길의 중간’이란 뜻인데 북미 대륙과 아시아 대륙의 중간에 위치한 산호초로 이루어진 섬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으나 태평양 전쟁 직전엔 미국의 군사기지가 되어 있었다. 


일본 해군은 이 섬을 기습 점령할 경우 미 해군이 총력을 기울여 반격해올 것으로 보았고 이 경우 미리 매복해놓은 정예 항공모함 군단들로 하여금 모조리 소탕해버리자는 야심찬 전략을 세웠다. 당시 일본은 미국이 가용할 수 있는 항공모함이 2척에 불과하다고 여겼기에 일본 측에서 4척을 투입하면 능히 승리할 수 있으리란 심산이었다. (하지만 미군은 3척을 투입했다.)



하지만 일본의 비밀 작전은 사전에 간파당하고 말았으니



그런데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던 일본의 미드웨이 공격 작전은 미 해군 정보요원들에 의해 사전에 간파당하고 말았다. 당초 미드웨이를 미끼로 함정을 파놓고 미 해군을 유인해서 일망타진하려던 일본 해군이었는데 사전에 간파당하는 바람에 거꾸로 미 해군이 설치한 함정에 일본 해군이 빠져들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참패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일본 해군의 미드웨이 공략 작전을 사전에 알아낸 미 해군 정보팀은 미드웨이 해전 승리의 1등 공신이라 하겠다. 



또 한 명의 영웅이 필요했으니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절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드웨이 인근에 미 해군 항모전단이 숨어있으리라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던 일본 해군 항공모함 전단은 불시에 미 해군 항공모함으로부터 출격한 미 해군 전투기의 기습을 받게 되자 엄청나게 당황했다. 


하지만 일본 항공모함들의 공격에 나선 당시 미 해군 조종사들의 실력과 기량, 아울러 장비까지도 일본의 그것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었기에 여러 차례 이어진 미군 함재기의 공격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일본 항공모함들에게 피해를 입히기는 고사하고 출격한 일본 전투기들에 의해 사실상 전멸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자칫 미군의 전략적 우위가 일본 해군 전투기들의 전술적 우위로 인해 무위로 돌아갈 판국이었다. 게다가 당시엔 전투기나 폭격기엔 적을 찾는 레이더가 없던 시절이라 출동하기 전 미리 일본 해군의 추정 위치를 전해 듣고 그 방향으로 날아가면서 고공에서 육안으로 찾아내는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출격을 나가도 적 함댈ㄹ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공격부대 간의 협동작전 같은 것은 시도하지도 못했다. 


특히 미군 뇌격기, 수면 근처로 낮게 비행하면서 어뢰를 공중에서 투하하는 공격기들은 속도가 느리고 어뢰 또한 목표에 맞아도 터지지 않는 불발탄이 무려 90%나 되는 바람에 거의 소용이 없었고 요격에 나선 일본 함재기들에 의해 거의 전멸당하고 말았다. 뇌격기의 공격은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뇌격기 조종사들은 용감하게 돌진해갔고 또 죽어갔다.

 

영화 미드웨이를 두고 앞에서 국뽕 스타일이라 했는데 그만큼 당시 미 해군 조종사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실로 대단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영화로 만들어질 법도 한 것이다. 


이처럼 거의 미국은 백 수십 대를 출격시켜 일본 항공모함들을 공격했으나 거의 전멸 당했고 반면에 상대방에겐 사실상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선제공격의 효과가 전혀 없을 뿐더러 미군만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의 미 해군 조종사가 엄청난 반전을 이끌어내었다. 


급강하 폭격기를 이끌고 일본 항공모함을 찾아 망망대해를 떠돌던 지휘관은 연료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과감한 결단으로 끈질기게 적을 찾아 나선 결과 일본 항공모함 전단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때마침 일본 전투기들은 주로 저공으로 접근해오는 미군 뇌격기들을 소탕하느라 낮은 고도에 머물고 있었던 터라 수천 미터의 고공에서 내리 꽂는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에 대해 대응할 수 없었고, 그 결과 불과 5분 만에 4척의 일본 항공모함 중에서 3척이 치명타를 입고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나머지 한 척의 항공모함 역시 격침되고 말았다. 



그런데 두 명의 영웅은 같은 운명의 궤도를 그리고 있었으니



자 이제 그렇다면 두 명의 1등 공신에 대해 알아볼 차례가 되었다. 


일본 해군의 작전을 사전에 간파해낸 이는 조셉 로쉬포트 대령이었고 끈질기게 적을 찾아 고공 폭격을 성공시킨 지휘관은 클라랜스 맥클러스키 중령이었다. 


아주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의 운세 흐름이 정확하게 동일했다는 점이다. 


정보장교 로쉬포트는 1900년 5월 12일 생이었기에 사주는 庚子년 辛巳월 乙酉일이 된다. 운세 흐름 상 입추의 운은 1935 乙亥(을해)년이 된다. 


그리고 적을 찾는데 성공해서 공격을 성공시킨 맥클러스키는 1902년 6월 1일 생으로서 사주는 壬寅년 乙巳월 乙卯일이고 입추의 운은 역시 1935 乙亥(을해)년이었다. 


두 사람 모두 초여름 생이고 태어난 날이 같은 乙木(을목)이란 점 그리고 운세 흐름이 모두 1935년이 입추였고 따라서 이른바 두각을 나타내는 추분의 운은 1942 壬午(임오)년이 된다. 그렇기에 두 사람 모두 1942년 6월에 펼쳐진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을 승리로 이끄는데 있어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던 것이다.

 

수세에 몰려 고전하던 미 해군이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 몰랐지만 같은 운명 공동체였으니



그런데 그 두 사람은 1942년이 빛을 보는 때에 해당되었고 이에 1942년 6월의 미드웨이 해전은 사실상 그들의 기량을 한껏 보여주고 빛낼 수 있었던 최고의 무대였던 것이다. 


같은 운세였던 탓일까 나중에 보면 두 사람은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는 점도 있다. 정보장교 로쉬포트는 1976년 7월20일에 사망했고 공격부대 지휘관이었던 맥클러스키는 1976년 6월 27일에 사망했다. 사망시점이 한 달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태어나기는 2년의 차이가 있었으나 같은 운세였기에 미드웨이 해전의 1등 공신이 되었으며 세상을 뜬 것 역시 1976년 여름이었다. 


한 명은 하와이 기지에서 일했던 정보장교였고 또 한 명은 항공모함의 폭격기 지휘관이었기에 두 사람이 만날 기회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공동의 운명체였던 것이다. 



일본이 입증해준 항공모함의 가치



태평양 전쟁을 시작할 당시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해군 전략가들은 큰 대포를 가진 전함을 주력으로 여겼을 뿐 비행기를 실어 나르는 항공모함의 파괴력에 대해선 그다지 주의를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해군이 6척의 정예 항공모함 전단을 통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항공모함이 얼마나 대단한 무기인가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바다에서 펼쳐지는 해전은 얼마 가지 않아 수백 킬로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양쪽 해군의 항공모함 전투로 변하고 말았다. 


그런데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최정예 항공모함 4척은 물론이고 고도로 숙련된 정예 전투기 조종사들을 모조리 잃고 말았기에 그 이후 일본 해군은 더 이상 미 해군과 전면전을 펼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미국은 그 이후 항공모함을 빠른 속도로 찍어내기 시작해서 태평양 전쟁이 끝날 무렵엔 근 백 척에 달하는 항공모함이 바다를 누비고 다녔다. 반면 생산력이 약한 일본은 더 이상 항공모함을 제조하지도 못했고 기존의 항공모함은 남김없이 침몰당하고 말았다. 



같이 뜨고 같이 저문 두 명의 스타



그런 면에서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 전쟁의 진정한 전환점이었고 그 전환점엔 태어난 날이 乙木(을목)이고 운세 순환 상 빛을 내는 시점이 1942년이었던 두 사람의 영웅이 있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같은 해 여름에 함께 세상을 떠났다. 묘한 일이다. 운명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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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60개월의 순환



절기가 한 해를 통해 가장 춥다는 小寒(소한)인데 비가 내린다. 잘도 내린다. 다행이긴 하다, 눈이 내리면 성가실 터인데. 丑月(축월), 丁丑(정축)월이 시작되었다.

 

나 호호당의 경우 60개월마다 되풀이되는 작은 순환이 바로 이번 정축월부터 시작된다. 새로운 5년 60개월의 작은 순환 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처럼 운의 순환은 60년 주기만이 아니라 60개월짜리 작은 주기도 있다.)


그런 탓일까? 나 호호당은 초근 열흘 사이 깊은 沈潛(침잠)에 빠져들어 있다. 글도 잘 올리지 않게 되고 그저 이런저런 생각에 몰두해있다. 깊은 밤이면 머리가 더 없이 맑아져서 잠들기 참으로 어렵다. 


지나간 60개월의 순환, 2015년 1월부터 이어져온 기간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모저모 돌이켜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희망과 구상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때론 특별한 생각 없이 들숨과 날숨을 느끼면서 그냥 沒我(몰아)의 상태에서 앉아 있기도 한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앞으로 25년을 더 살고자 한다. 2045년 1월 19일 무렵에 세상을 뜬다는 계획을 거지고 있다. 그러면 세는 나이로 91세가 되고 만으론 89년 6개월 정도가 된다. 5년의 순환을 앞으로 다섯 번 거듭하는 기간이다. 올해 66세가 되었지만 혈압이나 당뇨 전혀 없다, 물론 몸을 잘 아껴가며 살아야만 가능하겠지만 그때까진 맑은 정신으로 지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저번 60개월간의 순환을 결산해보니



흘러간 5년의 세월 동안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잃은 것은 물론 삶의 시간들이었으니 그를 빼면 남는 장사였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은 인연을 맺었으니 고마울 따름이고 또 그 사이에 그런대로 큰 탈 없이 잘 먹고 살았으며 자연순환의 이치에 대해서도 나름 장족의 진전이 있었다. 특히 年運(연운)과 月運(월운) 그리고 日運(일운)의 복잡미묘한 상관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앞의 시간들까지 거슬러 가보니 동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지 이번 달 말 31일면 만 10년의 세월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할머니 고양이의 처량한 죽음을 계기로 해서 내 살아있는 날까지 내가 사는 곳이 어디일지라도 매일 저녁이면 밥을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작정을 했으니 오늘날까지 어기지 않고 매일 밤 산책 시간에 고양이 사료를 가져다주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가 출타한 날이면 아들 녀석이 주고 있다. 고양이 세계에선 날 보살로 여길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상도 수시로 해본다, 훗날 내가 죽어서 삼도천을 건너갈 때 내게서 밥을 얻어먹은 모든 고양이들이 연도에 나와서 아옹, 아웅, 냐옹 하고 반갑게 맞이해주는 공상. 얼마나 반가울까! 저승길 외롭지 않을 터이니. 


그러다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2011년 겨울부터는 뒷산 새들에게도 월동 모이를 가져다주고 있다. 11월 하순부터 이듬해 5월 하순까지 6개월간 새들에게 모이를 준다. 쌀에다가 땅콩과 잡곡을 섞어서 준다. 그 바람에 겨울 아침이면 새들이 무려 수백마리가 모여든다. 


10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는 점에 스스로 마음이 뿌듯하고 대견하다. 언젠가 이사를 가게 되겠지만 되는 날까진 할 것이고 이사를 가면 또 그곳에서도 이어갈 생각이다. 앞으로도 25년 동안 말이다. 


이 세상을 잠시라도 살다가는 모든 생명들, 살고자 몸부림치는 모든 존재들, 불교 용어론 有情(유정)이라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나 역시 정이 動(동)하는 유정이기에 측은한 마음을 갖는다. 同病相憐(동병상련). 


밉기로 말하면 사람이 가장 밉다 하겠으나 그거야 나 역시 욕망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런 것일 뿐 돌아서면 미움은 없다. 미움과 증오의 감정을 갖는 거야말로 삶을 깎아내리는 자해행위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증오의 마음이다. 



세상살이는 사랑과 전쟁이어서



전에도 얘기한 바, 세상살이란 사랑과 전쟁이다.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했고 불교에선 慈悲(자비)를 말하지만 이 세상이 어쩔 수 없는 싸움터란 점은 얘기하지 않는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몸 자체가 세포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제국이어서 갖은 병균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삶의 바탕에서부터가 싸움인 것이니 먹고 살려면 싸워야 하고 죽여야 하는 까닭에 가는 곳마다 투쟁이고 싸움이고 전쟁이다. 그러니 세상 끝나는 날까지 사랑과 전쟁은 다하는 법이 없을 것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미국이 이란 장군을 죽이자 이란은 피의 복수를 외치고 있다. 솔레이마니, 생년월일을 보니 1957년 3월 11일이다. 丁酉(정유)년 癸卯(계묘)월 壬午(임오)일 생이다. 생시를 몰라도 경력이 있으니 금방 운세를 알 수 있다. 2022년 壬寅(임인)년이 입춘 바닥이 된다. 게릴라전을 지휘하던 탁월한 군인이었으니 저 정도면 죽을 운에 죽었구나 싶다. 


사망한 날이 1월 3일, 따라서 己亥(기해)년 丙子(병자)월 乙巳(을사)일이니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바닥 2년 전이고 월도 그렇고 죽은 날은 더 그렇다. 을사일은 일진이 바닥인 壬寅(임인)일 사흘 뒤, 노리는 자가 있다면 모면하기 어려운 운에 죽었다. 


우리가 흔히 중동이라 부르는 지역, 서남아시아는 우리에게 그냥 늘 전쟁하는 곳이고 게릴라와 자살공격의 땅이다. 이슬람과 석유 말고는 달리 있지도 없는 저 땅은 언제쯤이나 조용해지고 고용해질까. 


하기야 우리 또한 그렇다. 우리의 반쪽인 북녘의 북한은 김정은과 그 일당들 그리고 평양에 사는 수십만의 특권층들이 저들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나머지 대다수 주민들은 도외시한 채 세상의 변화와 발전도 무시한 채 오로지 핵과 미사일로 自衛(자위)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저렇게 한심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언제까지 저럴까? 싶지만 어쩌면 그 변화의 때는 이미 코앞에 와있을 지도 모르겠다. 


먹고 사는 싸움, 북한까지 갈 것도 없다. 바로 우리 주변만 봐도 치열한 투쟁이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이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은 1965년생 지점장 112명에게 재택근무를 명했다고 한다. 


대개 정리 대상이 되면 검사부라든가 여타 지원 부서에 배치되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런 부서에 가면 딱히 할 일은 없어서 일종의 수용소와 비슷하다. 그런데 그런 자리마저도 포화 상태라서 임시적이나마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한다. 비극이고 코미디이다. 



노인은 늘고 젊은이는 줄어드는 이상한 시대



1959년생부터 1968년까지의 세대를 말하는 586 세대의 퇴진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세대 중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저 세대가 사회적 정리 단계에 들어선 것이고 향후 4년 정도면 저 작업이 거의 마무리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6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속도 또한 엄청나게 빠르다. 이는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을 예고하고 있다. 은퇴한 노령인구가 많으면 저절로 소비가 억제될 것이니 디플레이션을 피하기란 실로 難望(난망)이다. 



새해의 구상과 각오



글을 쓰다가 멈추고 다시 한 시간 여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바깥은 아직 비가 내리는 것 같고 기온을 보니 무려 7도라고 한다. 


윈디 닷컴에 들어가 한반도 주변의 온도 분포를 보니 현재 시각 타이완으로부터 따뜻한 공기가 계속 유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렇게 더운 공기가 남쪽 바다에 있으면 올 겨울 춥기란 다 틀렸다. 해수 온도가 워낙 높아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한 해를 통해 가장 춥다는 小寒(소한)과 大寒(대한)의 기간 중에 이런 온도는 처음인 것 같다. 확실히 기상이변이다. 


올 해엔 새로운 구상이 적지 않다. 전에 오랫동안 하다가 멈추었던 교양강좌를 다음 달 정도에 가서 다시 시작해볼 생각도 하고 있다. 최근 좀 쉬고 있지만 그림도 열심히 그릴 것이고 신경을 많이 쓰는 일이라서 근 10년간 쉬었던 주식투자도 재개해볼 생각이다. 이제 슬슬 돈을 좀 만들어볼 생각이다. 


혹시라도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죽기 전에 문화사업과 어려운 자 돕는데 깡그리 다 쓰고 갈 생각이다. 내 개인적으론 돈을 쓸 데가 별로 없으니 그렇고 아들 녀석 하는 일을 보니 제 밥벌이는 그런대로 할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한다. 


올해로서 나 호호당의 운세는 60년 순환에 있어 夏至(하지)의 운이다. 하지에 시도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음을 알기에 그를 믿고 나서볼 생각이다. 이제 슬슬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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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은 늘 애매모호한 법이어서

 

 

새해는 새 해, 새로운 해란 말이다. 하지만 12월 31일 저녁에 저문 해와 1월 1일 아침에 뜬 해는 거의 차이가 없다. 진짜 새 해는 작년 12월 23일, 동지 다음 날 아침에 뜬 해였고 그로서 해가 更新(갱신)되었다. 그렇기에 1월 1일은 다만 새 달력을 보게 된 날이다.

 

새해부터 이런 너저분한 얘기를 하는 까닭은 모든 사물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애매하고 모호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정현종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처음과 끝은 항상 아무 것도 없다”면서 그게 바로 “시간의 비밀”이란 말을 했다. 삶의 시작인 탄생과 그 끝인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니 그 중간 혹은 途中(도중)의 시간들, 즉 삶의 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전부란 말이기도 하다.

 

 

새해를 맞이할 땐 일종의 종교적 감성을 느낀다.

 

 

이처럼 사람은 태어난 때가 시작이고 죽을 때가 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해 즉 年(년)을 단위로 해서 갱신되는 시간들을 통해 1년에 한 번씩 시작과 끝을 체험한다. 연말이 되면 어떤 끝을 감지하고 또 새해가 되면 작년의 나와 별 다른 것이 없음에도 뭔가 새로운 시작을 느낀다. 새해엔 보다 나은 날들이 이어지고 더 의미 있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 까닭에 헌 달력을 내리고 새 달력을 벽에 매달아 펼치면서 우리들은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게 되고 또 그로서 새 삶인 것이니 헌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면 우리 모두 일종의 종교적 감성을 갖게 된다. 작년은 지난 생 前生(전생)이고 새해 첫날은 이번 생 現生(현생)의 새로운 시작이니 그렇다.

 

이번엔 약간 색다른 감이 든다. 20년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새해만이 아니라 새로운 10년이란 생각도 함께 드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지 양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한 해를 기준으로 해서 붙여지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국운의 맹동 추위가 한창 진행 중이니

 

 

올해 2020년은 庚子(경자)년이고 우리 대한민국의 國運(국운)에 있어 새로운 60년의 순환이 시작되는 2024 甲辰(갑진)년으로부터 4년 전이다. 60년의 순환에 있어 거의 끝자락에 해당된다. 60년을 1년의 기간으로 본다면 올해 2020년은 양력 1월 초의 小寒(소한) 즉 땅은 이미 차갑게 식었고 거기에 차가운 북풍이 불어와 아주 추운 한겨울이라 하겠다. (정확히 말하면 소한의 추위가 본격 시작된 것은 작년 2019년 10월부터였다.)

 

국운의 맹추위는 2022년 壬寅(임인)년 4월에 가서 절정에 달할 것이며 그때로부터 추위가 가시려면 또 다시 5년이 걸릴 것이니 2027년 4월, 국운의 雨水(우수)가 되어야 어느 정도 국운의 봄 느낌이 들 것이다. 작년 10월부터 계산하면 7년 반에 걸친 기간이다.

 

표현 상 국운의 추위라 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활력은 바닥에 떨어졌는데

 

 

간단히 말해서 어떤 역동성 즉 활력이 없는 기간이다. 게다가 이번 우리 국운의 겨울은 글로벌 상황과도 맞물려서 더욱 힘들 전망이다. 안팎으로 활력을 찾기 힘들 것이란 얘기이다.

 

나 호호당은 중국 경제가 올 하반기부터 그간의 무리가 불거지면서 내년 2021년엔 크게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붕괴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그럴 경우 우리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관심사가 있으니 북한 문제이다. 우리와 북한은 1948년 가을에 각각 분리 독립했다. 따라서 올해 가을이면 그 때로부터 만 72년이 된다는 점이다. 72년은 60년 더하기 12년의 기간으로서 하나의 커다란 關門(관문)이 된다. 따라서 올 해 하반기로서 북한 내부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북한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은 비핵화 협상이었다. 미국은 확실하게 비핵화를 할 경우 살려줄 것이라 약속했지만 북한은 그 말을 신뢰하지 않았고 그로서 마지막 가능성을 날려버렸다. 비핵화 협상은 실패했고 동시에 북한 체제의 명줄은 사실상 끊어졌다. 이에 금년 하반기에 체제 붕괴로 가는 흐름이 시작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또한 우리로선 그야말로 큰 문제이고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더불어 내년에 가서 중국 경제가 붕괴하진 않더라도 크게 난관에 부딪칠 경우 우리로선 그간에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닥칠 것이란 점이다.

 

우리 내부의 활력은 바닥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마당에 바깥에서 저처럼 엄청난 변수까지 발생한다면 과연 우리가 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우려가 든다. 우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국가적 偶發債務(우발채무)가 한꺼번에 다 터져 나올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 경제의 생산성이 떨어져서 2022년이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금이 본격 이탈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런 외생변수까지 생길 경우 그야말로 그냥 아득해진다.

 

 

2008년에 썼던 글

 

 

사실 이 모든 악성 변수는 이미 오래 전인 2008년 11월 17일자로 “김태규 명리학” 코너에 실린 “다섯 개의 겨울 설산”이란 글을 통해 얘기했던 내용들이다. (티스토리 블로그엔 김태규의 명리학 글이 올라가 있지 않다. 보시고자 한다면 원래 블로그인 www.hohodang.com 에 가보시기 바란다.)

 

다섯 개의 겨울 설산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디플레이션.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 국내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경제 불황. (이는 2022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3. 중국 경제의 거품 소멸에 따른 문제. (이는 내년 2021년의 일이라 여긴다.)

 

4. 김정일 이후 북한의 붕괴 등 그에 따른 통일비용. (김정일은 죽었고 그 아들이 시도한 비핵화 협상의 실패로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5. 우리 산업의 노후화와 수출 경쟁력 저하.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2008년 말 글을 쓴 이래 12년이 흐르는 동안 위의 다섯 개의 문제는 해결된 것이 전혀 없고 이제 보다 구체화될 참이니 그야말로 걱정이다.

 

 

이제 각오를 단단히 하자.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국운의 제2기 즉 1964년부터 2024년에 이르는 60년 사이에 우리는 r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기에 어렵긴 하겠지만 끝내 버텨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다. 우리에겐 이미 높은 수준의 기술력도 있고 삼성전자를 비롯해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이미 수많은 인재들이 활약하고 있어 때가 되면 더욱 역량을 발휘하고 빛을 내기 시작할 것이란 점이다.

 

어차피 우리 대한민국은 자원이 없는 나라, 따라서 사람이 국력인 나라이기에 萬難(만난)이 닥치더라도 버텨내고 마침내 뚫고 나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사이에 좀 어려울 뿐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견뎌낼 각오를 단단히 하자.

 

새해가 되면 좋은 德談(덕담)을 드려야 하건만 그렇지를 못해서 많이 망설였다. 이 짧은 글 하나 쓰는데 무려 닷새나 걸렸다. 그 사이에 무던히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그냥 이런 초라한 글로 새해 인사를 드린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떠오르는 시 구절

 

 

오늘은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하면 으레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으로 시작하는 고 김종삼 시인의 짤막한 시 “북치는 소년”이 그것이다. 워낙 짧은 시이기에 소개해본다.

 

“북치는 소년”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크리스마스가 되면 으레 저 시 구절들이 생각난다. 북치는 소년은 크리스마스 카드 앞면의 삽화이리라. 이런 시는 기본적으로 그 내용을 해석하거나 해설하는 일은 무용한 일이라 여긴다. 해석하자고 할 것 같으면 너무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지니 말이다. 또 한편으론 그냥 직관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상상해보면 6.25 전쟁 직후의 빈곤 속에서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어느 가난한 아이가 받게 된 크리스마드 카드인 것 같다. 그 카드는 우리와는 비할 바 없이 풍요로운 미국이나 서양의 어느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여러분들, 우리 모두 전쟁의 참화를 겪은 코리아라고 하는 가난한 나라의 친구 아이들에게 위문의 카드를 보냅시다’ 해서 보내게 된 수신자 무작위의 크리스마스 카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5년생인 나 호호당의 어린 시절엔 앞에서처럼 미국에서 보내온 카드를 본 적이 있다. 눈 덮인 설원 저쪽에 교회가 있고 그 배경엔 반쯤 눈에 덮여있는 전나무 숲이 그려진 아름다운 성탄 카드가 기억난다.

 

그림의 아랫부분엔 금가루와 은가루가 붙어있는 성탄절 트리가 있는 카드. 그 가루가 혹시 금이나 은이 아닐까 싶어 손톱으로 긁어서 햇빛에 비춰보았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엔 빛나고 반짝이는 것은 죄다 한 번쯤 금이나 은이 아닐까 의심 또는 기대했던 나였다. 혹시 금이라면 그야말로 수지맞는 일일 터이니 말이다.)

 

 

풍요의 나라에 대한 환상

 

 

1960년대 초반 우리에게 있어 미국이란 나라는 지상의 천국이자 풍요의 낙원이었다. 어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게 여겼다. 무한히 풍요로운 나라로서의 미국이었다.

 

그런 나라의 어린이들은 성탄절이 되면 칠면조 고기와 함께 달고 맛있는 푸딩과 케이크를 배터지도록 먹고 즐긴다는 얘기, 가족들과 함께 트리를 가져다가 방울을 달고 전구도 달고 기타 여러 가지 물건들을 달아놓고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즐긴다는 얘기도 들었다.

 

부산 용두산 계단 입구에 가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영어로 된 책이나 잡지를 파는 간판대가 있었다. 호기심에 자주 그곳에 들러 그림이 많은 책이면 사다가 한참동안 구경하기도 했다. 잡지의 갈피를 넘기다 보면 만나게 되는 코카콜라 광고 또한 환상이었다. 검은 액체를 둘러싸고 있는 붉은 색 마크는 ‘영원의 맛’일 것으로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라는 가난했지만 나 호호당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가끔 어머니는 국제시장의 미제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 허시라든가 M&M 초콜릿을 사다 주시곤 했는데 엄청나게 비쌌다. 하지만 그야말로 원 세상에 이렇게 기가 막힌 맛이 다 있을까 싶어서 끔찍하게 아껴 먹곤 했다. 감히 씹어 먹질 못했다, 입안에 넣고 혀로 핥아서 먹을 정도였다. 시험 성적이 좋으면 초콜릿이 절로 연상되곤 했다.

 

그렇기에 나 호호당은 김종삼 시인의 저 시를 연상할 때마다 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냥 어떤 아픔과 아련함을 느낀다.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는 내가 보았던 미국 발 크리스마스 카드에 묻어있던 금가루 은가루의 인상과 뒤섞여버린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란 저 도발적인 구절, 말이 될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은 저 아리송한 저 구절, 저 구절이야말로 김종삼 시인의 시세계를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열쇠란 생각을 해본다, 내일이면 저 시를 다시 망각할 것이고 또 내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다시 떠올릴 것이다, 저 시를.

 

 

우리 사회도 분명 풍요로워졌건만

 

 

이제 분명 우리 대한민국은 특별히 다른 나라의 풍요와 소비 수준을 마냥 부러워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 미국에 대한 환상, 무한 풍요의 나라란 환상은 분명 가시고 없다.

 

그런데 또 다른 이상한 결핍의 감정이 생겨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까칠하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식과 위선으로 도배되어가고 있는 사회가 된 까닭이 아닐까 싶다.

 

이번 염수정 추기경의 성탄 메시지 중에 나와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자들을 사랑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떠오른 생각, 우리 사회가 참으로 어지간히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모양이구나 싶다.

 

풍요의 세상은 바다 먼 저편에 있었던 우리는 모두 흙수저였는데 저 세월 사이에 금수저가 생겨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엔 동화책을 통해 금도끼 쇠도끼 얘기는 들었어도 저런 말 자체가 없었는데 말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헬 조선이란 용어가 들리더니 문송이란 말도 알게 되었고 그러더니 곧바로 N포 세대란 말도 듣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땐 나름 제법 심각하게 여겼는데 그 또한 이젠 으레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의 젊은 20-30대 세대들은 많이 까칠하다. 게다가 외톨이로 지내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 같다. 스스로 고독감을 느낀다거나 외톨이란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 오히려 정상인 것이다.

 

 

내용 없는 풍요로움의 사회

 

 

우리 사회가 그간에 엄청 발전했고 풍요로워진 것이 사실이지만 이 또한 김종삼 시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내용 없는 풍요로움의 사회’가 된 것은 아닐까 싶다. 포장만 과다한 사회 같은 거 말이다.

 

슬퍼져서 더 이상 무슨 말을 이어가지 못하겠다. 그만 마친다.

 

이 글은 간밤 아니 새벽에 쓴 글이다.


우리의 지구는 우주 속을 초당 30 킬로미터씩이나 날아간다.



오늘은 冬至(동지), 해가 가장 짧은 날. 정확한 시각은 오늘 22일 오후 1시 19분 26초였다.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이 1년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의 길이는 9억4천만 킬로미터, 그런 멀고 먼 길을 지구는 하루에 평균 258만 킬로미터를 날아간다. 대단히 빠른 속도, 초로 계산하면 1초에 30킬로미터의 우주 허공을 날아간다. 음속의 88배, 무지막지한 속도이다. 


그런 지구가 오늘 오후 1시 19분 26초에 공전궤도상의 冬至點(동지점)을 통과했다. 지금 시각이 오후 4시 41분이니 동지시각으로부터 3시간 23분이 지났고 그 사이에 벌써 지구는 동지점으로부터 36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날아가고 있다. 


오늘 동지의 일몰시각은 서울의 경우 오후 5시 17분, 그러니 이제 다시 해가 서서히 조금씩 길어져갈 것이다. 


오늘의 세계는 그레고리력을 사실상 세계 표준 달력으로 채택하면서 양력의 1월 1일을 새 날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양력 1월 1일은 그야말로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는 너저분한 달력이다. 정말이다. 오로지 많이 쓰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과거의 최강국 대영제국에 이어 오늘날의 글로벌 최강국 미국이 채택하고 있기에 편의상 그냥 그렇게 받아들일 뿐이다. 



세 번에 걸친 새해 첫날



이에 오늘은 가장 합리적인 견지이자 나 호호당이 연구해낸 자연순환의 이치에 근거하여 새해의 기준에 대해 일단 얘기해볼 까 한다. 오늘의 얘기는 자연순환운명학의 핵심 이론이기도 하다. 


天地人(천지인) 三才(삼재)의 기준이다. 


冬至(동지)는 하늘의 새해 첫날이고 내년 1월 20일의 大寒(대한)으로서 땅의 새해 첫날이 되며 이어서 내년 2월 19일의 雨水(우수)로서 사람의 새해 첫날이 된다. 


세 번에 걸친 새해 첫날이 있다는 얘기이다. 


동지가 하늘의 새해 첫날이 되는 것은 오늘로서 빛이 다시 길어지는 까닭이고, 1월 20일 경의 大寒(대한)이 땅의 첫날이 되는 것은 그 날로서 얼었던 땅의 온도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는 까닭이며, 雨水(우수)가 사람과 모든 생명의 첫날이 되는 것은 그 날로서 땅속의 얼었던 물이 위로 올라와 허공으로 증발해가는 까닭이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물이 없인 살지 못한다. 이에 땅속의 물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첫날인 雨水(우수)로부터 생명의 약동이 시작되니 그를 생명의 첫날이라 하는 것이다. 


해마다 2월 20일경의 우수가 되면 겨울잠에 들었던 동물들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하고 나무들도 밑동에서 물을 빨아올리기 시작한다. 사람 또한 예외가 아니다, 겨우내 ‘슬립 모드’에 들어가 있던 우리의 몸 전체가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생리의 리듬이 다시 빨라지고 기초 대사량이 늘어난다. 


(봄철 나른해지는 춘곤증이란 증세가 있다. 그 원인은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슬립 모드에 들어가 있던 우리 몸이 우수를 맞이하여 기초 대사량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피로를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동지로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얼어만 가던 땅이 다시 데워지기 시작한다. 바로 대한이다. 땅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해서 다시 한 달이 지나면 드디어 땅속에서 얼음 형태로 존재하던 물이 해빙되기 시작한다. 우수인 것이고 그로부터 생명이 꿈틀거린다. 



天地人(천지인) 三才(삼재)에 따른 새해 첫 날



빛은 하늘로부터 오기에 동지로부터 하늘의 첫날이라 하는 것이고 열은 땅이 데워지면서 시작되기에 대한을 땅의 첫날이라 한다. 다시 땅속의 물이 녹으면서 그 물이 오르고 증발하게 되니 생명이 약동한다. 이에 우수를 사람의 첫날이라 한다. 天地人(천지인)의 원리이다. 


천지인을 달리 표현하면 빛과 熱(열)과 濕(습)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한 해의 운행을 살펴볼 때 빛이 열로 전환되기까진 1달이 걸리고 열이 다시 얼음을 녹여 습기로 전환되려면 다시 1달이 걸린다. 時差(시차)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時差(시차)



60년의 순환 역시 그 내용을 보면 우리가 해마다 경험하는 한 해의 운행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자연은 같은 것을 다른 시간 주기에 맞추어 고스란히 반복 재생한다는 한다는 말이다. 좀 더 쉽게 얘기하면 1년에 걸쳐 나타나는 변화의 모습이 60년에 걸쳐서도 동일하게 전개된다는 말이다. (순환의 동형 반복 원리라 하겠는데 이 또한 자연순환운명학의 중추적인 이론이다.)


앞에서 빛과 열과 습이 움직이는 것은 1년에 걸쳐 각각 1달의 시차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60년의 순환에 대입해보면 각각 5년의 시차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빛에서 열을 거쳐 물의 움직임이 나타나려면 10년의 시차가 있다는 말도 된다.

 

그렇기에 오늘의 일이 원인이 되어 10년 후 오늘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고 오늘의 일은 10년 전에 그 원인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를 나 호호당은 “10년의 因果(인과)”라 말하기도 하고 “10년의 法則(법칙)”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고 사람의 모든 일이 그렇다. 10년의 법칙이 존재한다. 


예컨대 오늘 당신이 오랜 노력 끝에 어떤 일에서 성취를 보았다면 그 시작은 10년 전에 있었던 일의 결실이라 봐도 된다. 반대로 당신이 오늘 크게 난처한 경지에 몰렸다면 그 또한 10년 전에 그 원인이 존재했다고 보면 정확하다는 말이다. 



因果(인과)를 통해 맞물리는 6개의 사슬



뿐만 아니라 오늘의 결과는 또 다시 10년 뒤에 있을 결과의 원인이 된다. 원인이 결과로 변하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꼬리를 물면서 세상과 사람의 일은 끊임없이 이어져가는 사슬을 만들어낸다. 


이를 60년의 순환에서 보면 10년을 하나의 단위로 해서 인과의 사슬이 만들어져간다. 즉 6개의 과정이 因果(인과)를 이루면서 사슬을 만들어간다는 말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 다소 추상적인 얘기라서 좀 더 쉽게 가장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1년을 6개의 과정으로 나누어보면 농부가 볍씨를 뿌리는 때는 4월 하순의 때가 된다. 이에 볍씨가 땅껍질을 뚫고 나와서 6월 하순이 되면 벼가 거의 다 자란다. 여기까지가 하나의 과정으로서 볍씨를 뿌린 것이 원인이고 거의 다 자란 벼는 결과가 된다.

거의 다 자란 벼는 뜨거운 땅의 열기와 물을 이용해서 8월 하순이면 쌀이 되는 이삭이 매달린다. 벼의 성장은 끝이 나고 자손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 자란 벼가 원인이고 이삭이 결과인 셈이다. 


8월 하순에 생겨난 이삭은 한낮의 열기와 밤의 냉기를 이용해서 10월 하순이 되면 아주 굵은 쌀알이 된다. 이삭이 원인이고 다 익어 실해진 쌀알이 결과가 된다. 


그러면 10월 하순부터 추수가 시작되어 곳간으로 들어가 저장되거나 시장에 내다팔아서 돈으로 바꾸고 그 돈으로 빚이 있으면 갚게 되고 그러고도 남는 쌀은 겨울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먹게 될 곡식이 된다. 그러면 12월 20일 경의 동지이다. 秋收(추수)가 원인이고 곳간에 쌓인 쌀이나 통장에 입금된 돈은 결과가 된다. 


12월 하순부터는 농한기라서 가을 수확이 푸짐했던 농가는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일손을 놓고 소비를 하게 되니 다음 해의 2월 20일 경의 雨水(우수)까지이다. 푸짐한 수확이 원인이고 한가로운 생활이 결과가 된다. 


그런데 2월 20일경의 우수가 되면 쌀독의 쌀이 점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니 은근히 걱정이 생겨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새해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또는 어쩔 수 없이 논도 갈고 밭고 갈게 된다. 식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 4월 하순에 가면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볍씨를 뿌리게 되니 그 역시 결과가 된다. 


벼농사는 이것의 끊임없는 연속이고 반복이다. 한 해를 통해 두 달 단위로 인과를 이루면서 변화해간다. 


글이 다소 길어질 것 같으니 오늘 글은 이 정도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다음 글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60년에 걸친 순환의 내용은 물론이고 사람의 일 즉 그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도 오늘의 논리를 활용해서 설명해볼 생각이다. 


해가 떠있던 오후 무렵 시작한 글을 멈추었다가 늦은 밤이 되자 다시 시작했다. 지금 시각은 23일 새벽 1시 30분, 동지점을 떠나온 지 벌써 12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삶의 시간이 12시간 더 짧아진 것이고 그만큼의 미세한 노화 과정이 더 진행된 셈이다. 


인생이 달리 무엇이겠는가, 지금처럼 내 눈앞을 흘러가는 시간들의 집합인 것이니 말이다. 12월 22일의 동짓날을 살았고 이제 23일의 새날을 살기 시작했다. 


(이번 자연순환운명학 강좌는 연말 분위기라 그런지 수강 신청에 아직 여유가 있다. 관심 있으신 분의 신청이 있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먼저 알려드릴 것은 이번 강좌는 그간 저로부터 자연순환운명학 강의를 이수하신 분들만 대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강의 뒤풀이 자리에서 우연히 나온 얘기가 발단이 되어 개최하는 강의입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작전주 혹은 테마주 투자 필승 기법.

 

둘째. 증시 전체 혹은 특정 종목의 상승 시에 정확하게 상승목표가를 예측하는 방법.

 

오랫동안 증권투자를 해오는 과정에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적지 않은 기법들을 터득했지만, 이번에 공개하는 기법은 정확도가 거의 100%라 할 수 있으며 이해나 터득하기에도 너무나 쉬운 투자기법입니다.

 

그러나 묘한 점은 확실한 방법을 안다고 해서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오랜 경험으로 볼 때 투자는 기법의 문제라기보다도 투자를 행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운세와 더 깊은 연관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식을 비롯해서 모든 투기는 세력이 관여하게끔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세력이 주식을 끌어올리는 방법이란 것이 알고 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메카니즘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강좌는 그 메카니즘이 뭔가 하는 점에 대해 이해하게 됨은 물론이고 그를 이용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강좌는 그간 저로부터 강의를 수강하신 분들에 대한 연말 선물이라 저는 여깁니다.

 

다시 말하지만 확실한 방법을 안다고 해서 그게 자동적으로 돈을 벌 게 되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시야가 된다는 점에서 참강을 바라는 바입니다.

 

재차  알려드립니다. 이번 강좌는 기 수강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폐쇄 강좌이기에 일반인의 신청을 받지 않습니다. 

 

강좌 개요:

 

강좌 개최: 2019 년 12월 30일 월요일 오후 7시 30 분부터 10시까지.

 

참강료: 25만원

 

강의 장소: 강남역 근처 CNN the Biz 강남교육연수센터 강의실

(Tel. 02-564-4172)

 

신청 방법: 제 메일(1tgkim@hanmail.net)로 신청을 하시면 제가 확인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2019.12.18. 호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