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체력이 달려서 쉽게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고 좀 더 깉은 가을 분위기로 그렸다. 동강 물은 지금도 그대로 흐르고 있으려니 사람은 한 해  한 해 쇠해가는구나. 즐겨주시길... 아, 그러고 보니 무서리 내린다는 상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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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장자)의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

 

 

井底之蛙(정저지와),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 있다. 통찰과 역설로 가득한 莊子(장자)의 외편 秋水(추수)에 나오는 얘기이다.

 

가을비가 많이 내려 黃河(황하)의 물이 마구 불어나자 황하의 신인 河伯(하백)은 야, 내가 정말 대단하구나, 내 물이 빵빵해서 물가가 저 멀리 아득한 것이 그야말로 내가 최고가 아니겠어! 하고 득의양양했다.

 

이에 황하는 호호탕탕하게 흐르고 흘러 마침내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바다에 이르러보니 물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야말로 끝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하백은 깜짝 놀랐다. 온 천지에 물밖에 없다니 이건 또 뭐냐? 나보다 훨씬 크네, 어쩜 이럴 수가! 하고 감탄했다.

 

이에 하백은 흠모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자 바다의 신 若(약)이 나타나서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겐 말이지 바다가 크다는 것을 설명해줄 수가 없다네, 자기 주변의 좁은 공간이 세상 전부인 줄 알잖아, 그런 놈에게 바다의 크기를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겠어! 허 참!”

 

그러면서 우물 안 개구리 얘기가 나온다. 개구리가 바다거북을 만나게 되자 우쭐대며 자랑질을 늘어놓는다.

 

내 사는 게 즐거워, 우물가 위로 뛰어올라 놀기도 하고, 피곤하면 깨어진 벽 틈으로 들어가 쉬기도 해, 물에 뛰어들면 양편 겨드랑이를 수면에 대고 턱을 물 위에 받치기도 해, 우물 바닥의 진흙을 발로 차보면 발등까지만 빠질 뿐 위험한 일도 없어. 장구벌레나 게나 올챙이 이런 놈들을 보면 나보다 못해, 그냥 우물 하나를 오롯이 차지하고 지배하는 이 즐거움이야말로 최고야, 야, 거북아 너도 한 번 들어와 보지 않을래?

 

이에 바다거북은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냥 헐! 한다.

 

 

세상 좀 알고 보니 오히려 우물 안 개구리가 부럽구나!

 

 

세상 넓은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寓話(우화)이다. 나 호호당은 고등학교 시절 장자의 글을 읽으면서 그래, 모름지기 넓고 큰 세상을 눈으로 보고 느껴봐야지 했다.

 

그로부터 50년이 흘렀다. 세상을 다 보진 않았으나 그게 넓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 세상을 좀 돌아다니다보니 이젠 굳이 가보지 않아도 세상천지가 넓고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저 좁은 식견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어리석음만 경계하면 사실 우물 안 개구리도 괜찮겠다 싶다.

 

물론 그게 어렵다, 보지 않고 겪지 않아도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의 이치와 도리를 깨달은 자일 것이니 말이다. 멀리 나가지 않고 집안 뜨락의 나무에서 이파리 하나 떨어지는 걸 보고 천지에 가을이 온 것을 아는 경지이니 그게 쉽겠는가!

 

하지만 그를 떠나서 우물 안 개구리가 망망대해를 돌아다니는 바다거북보다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라, 바다거북이가 산란을 위해 먼 바다에서 해안까지 와서 모래펄을 기어서 알을 낳고 다시 돌아가는 영상, 분명히 보셨을 것이다. 새들이 알들을 다 쪼아서 먹어치우고 그럼에도 부화에 성공한 새끼거북들이 엉금엄금 기어서 파도치는 바다로 들어간다. 동물의 세계, 개고생이다.

 

개구리는 훨씬 편하다. 우물 안에서 짝만 찾을 수 있으면 번식할 수도 있고 그러면 나머진 어려울 게 없다. 바다거북에 비하면 말이다. 그러니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좋지 않은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만 해도 너무 고맙지만 그게 또 그렇네! 

 

 

이제 우리들의 얘기로 와 보자.

 

우리 인간이란 존재, 이른바 human being 이란 동물의 신세는 분명 자연 속의 동물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삶을 누린다. 나 호호당은 정말이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것만 해도 엄청나게 고맙다. 가령 방글라데시라든가 파키스탄, 더 멀리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만 해도 무진장 고맙다.

 

몇 년 전 이게 나라냐? 하면서 나라다운 나라를 원한다고 사람들이 투덜댄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어떤 나라, 혹시 미국?, 그건 아니지, 이 정도면 感泣(감읍)할 따름인데 했다. 미국도 미국 나름이지, 경찰들에게 툭 하면 구타당하는 ‘블랙 피플’로 태어났다면 어쩔 뻔 했어!

 

그런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으로서 충분하고도 남는 장사인가? 하고 만족하자니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이게 문제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먹고 사는 게 얼마나 빡빡한가 말이다.

 

우리나라 자영업 비중은 2019년 24.6%로서 OECD 국가 중에서 6위로 높다. 우리보다 더 높은 나라를 보면 더 한심해진다. 1위는 콜롬비아(51.3%), 2위는 멕시코(31.9%), 3위 그리스(31.9%), 4위 터키(30.2%), 5위 코스타리카(26.6%)인데 그 다음이 우리다. OECD 국가에 속하긴 해도 저 나라들 전부 못 사는 나라들인데 그 다음이 우리란 사실이다. 대학 나와서 직장 구하지 못하면 벤처인지 스타트업인지 하다가 40대 되면 치킨집하고 그러다가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우리 사회 아닌가.

 

학력과 스펙이 좀 된다 싶은 청년들은 애오라지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그러니 수도권에 아파트만 지으면 대박이 난다. 천화동인이고 화천대유가 그래서 가능하다. 몰라서 그렇지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과 그 언저리 사람들이 해먹었겠는가! 이에 10년 만 지나면 지방은 통으로 자연 친화적인 국립공원이 될 판이다. 지방대학 건물은 세월이 흘러 고고학 발굴의 대상이 될 터이고 말이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피라미드 구조

 

 

다시 돌아가서 얘기이다. 인간은 그 자체가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울려서 살아간다. 어울려 살다보니 도저히 우물 안 개구리로 남을 수가 없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주변의 정보가 순식간에 퍼진다. 누가 잘 살고 누가 잘 해먹고 있으며 누가 어떤 짓을 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우리 정치판의 경우 프레임이란 것을 짜서 서로 비방하면서 해먹는 곳이다. 그러니 더더욱 우울 안 개구리로 남아서 살기가 정말 어렵다.

 

모두들 사회란 기본적으로 피라미드 구조란 사실을 알고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계층 구조이다.

 

그러니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어도 도저히 될 수가 없다. 앞의 개구리 말처럼 “내 사는 게 즐거워, 우물가 위로 뛰어올라 놀기도 하고, 피곤하면 깨어진 벽 틈으로 들어가 쉬기도 해.” 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 우물 안 개구리야말로 세상 뭘 모르는 덕분에 安分(안분)하고 自足(자족)하면서 편히 살 수 있건만 말이다.

 

오늘날 사람들 특히 우리 사회는 저마다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分數(분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分數(분수), 자기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즉 주어진 몫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없다고 여긴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대통령 스스로가 말할 정도이니 가히 지금 우리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時代精神(시대정신)이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요한 헤르더가 언명한 바 Zeitgeist, 차이트가이스트이다.

 

냉철히 따져보면 기회가 평등하면 과정이 공정치 않거나 결과가 정의롭지 않을 수 있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평등, 공정, 정의 등의 단어들은 모두 추상적인 말들이라서 그것 자체의 뜻도 대단히 복잡하다. 그러니 앞서의 시대정신은 그냥 이 시대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안분자족할 수 없는 시대, 스스로의 분수와 그릇을 인정하지 못 하는 시대, 피라미드의 정점은 더 높아가고 중간 허리는 더욱 슬림해지는 시대, 밑은 더욱 커져가는 시대, 극단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린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순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얘기를 해본다.

 

 

저마다의 分數(분수)가 있건만 

 

 

오랜 상담을 통해 사람들 각각의 분수와 그릇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사주를 봐도 그렇고 상담객의 몇 마디 말만 들어도 알 수 있다.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지했다 해도 찾아온 이에게 내 속내를 얘기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어디까지나 感(감)인 탓에 그렇기도 하지만 그걸 말해주어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 사람의 運(운)에 대해서만 주로 말을 해준다. 命(명)이라 하는 것, 즉 타고난 분수와 그릇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얼마 전 밤에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의 생애를 사주와 관련해서 좀 더 소상하게 살펴보았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실로 어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미적분과 만유인력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그의 운세 흐름에 있어 거의 바닥 무렵이었다는 사실, 1660년이 입춘 바닥이었는데 그가 그 주제들에 대해 골몰히 생각하면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1665년 경이란 사실.

 

조심성이 많았던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란 책을 통해 만유인력과 뉴턴의 3가지 운동법칙을 밝힌 것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운세가 입추(1690년) 직전인 1687년이었다.

 

천재의 命(명)은 이렇다. 물론 뉴턴 역시 어린 시절 적지 않은 辛苦(신고)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운이 그랬기 때문일 뿐 위대한 발상들은 바로 그 무렵에 이미 다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냥 우물 안에서 편히 살고 싶은데...

 

 

이런 경우들을 보면서 늘 생각하게 된다. 세상과 역사는 특별한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보통의 우리들은 그냥 우물 안 개구리로 살 수만 있다면 최고로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우물 안에서 조금은 우쭐하고 自慢(자만)하면서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시대는 그런 것을 용납하질 않는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만이고 젊어선 짝을 만나서 연애도 하고 운이 좋으면 자식까지 낳고 살 수만 있다면 최고인 삶인데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 시대는. 그냥 온 세상이 “오징어게임”이다.

포털에서 본 이미지를 만났다. 순간 확 당겼다. 팔레트를 열어젖히고 이런저런 노랑을 풀어서 종이 위에 거칠게 칠하고 약간 톤을 정리하고 음영을 조금 넣고 원근감을 위해 멀리 사람을 표시한 뒤 앞의 두 사람을 그렸다. 급하게 칠하느라 조금 번진 곳도 있지만 뭐 좋다. 스케치란 이런 것이니. 계절을 즐겨야지. 독자들도 즐겨주시길... (어깨가 아파서 키보드를 조금만 치면 통증이 온다. 그 바람에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곧 좋아지겠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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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출품을 위해 안국동 액자가게에 들렀다. 22개의 그림이다. 맡기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길을 건너 덕성여고 골목길로 해서 정독도서관 근처를 걸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북촌 한옥마을이 나온다. 언덕길에서 보니 카페가 멋있어 보였다. 흐린 가을하늘 아래 카페 불빛이 스며나오고 남녀 커플이 마스크를 하고 커피를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림 구도로도 좋겠다 싶어서 사진을 찍은 후 그렸다. 아래는 원 사진이다. 비교해보면서 봐도 재미가 있겠다 싶어 올린다. 그림이 사진보다 좀 더 그레이하고 블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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