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동맹이란 장애물

 

 

최근 소득주도성장의 타당성을 놓고 말이 무성하다. 이에 나는 작년 여름쯤이었나, 당시에 읽은 기사 내용이 문득 생각이 났다. 경향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젊은 경제학자 홍기빈 씨의 글인데 다시 검색해보았다. 보니 작년 6월의 기사였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설령 정부가 나서서 큰돈을 푼다고 해봐야 기존의 분배 구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 분배 동맹의 배만 불릴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존의 분배 동맹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 한 ‘소득주도성장’이 실현될 리는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분배동맹이란 말은 영어로 ‘distributional coaltion’ 인 바, 지금은 작고한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멘서 올슨이 창안해낸 용어이다. 좀 더 쉬운 말로는 ‘기득권 집단’이라 하겠다.

 

올슨은 1982년에 출간된 The Rise and Decline of Nations 이란 제목의 책을 통해 ‘다수를 희생하고 자신의 이익을 좇는 이익집단이 많아질수록 국가는 쇠퇴하게 될 것’이라 말했는데, 지금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정말 그렇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의 가장 큰 장애물

 

 

분배동맹의 문제는 지금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논란의 핵심에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년에 읽었던 홍기빈 씨의 기사가 생각이 났다.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자들은 기득권 집단이 아니다. 그렇기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주52시간 근무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반면에 우리 사회의 노동계층 중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대기업 노조, 즉 강력한 분배동맹을 구축한 집단에게 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홍기빈 씨의 우려였던 것이다.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정부는 한시적으로 자영업자의 세무조사를 면제 또는 유예를 포함해서 각종 보완 지원책을 부랴부랴 쏟아내고 있다.

 

 

들먹이는 부동산 시장, 원인제공은 정부

 

 

게다가 부동산 시장이 다시 움직이고 있는데 이 역시 현 정부의 정책과 무곤하지 않다. 작년 정부 출범과 함께 도심재생 사업이 발표되었을 때 나 호호당은 즉각적으로 저 역시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뉴 타운이나 도심 재생이나 같은 말이지 싶었다.

 

무엇보다 수년간 지속된 저금리로 인해 시중엔 엄청난 양의 부동자금이 갈 곳을 찾고 있는 판국이 아닌가 말이다. 정작 불씨가 된 것은 박원순 시장의 ‘여의도 용산 통개발론’이었지만 그 이전에 도심재생이란 부동산 부양의 명분을 바탕에 깔아놓은 것은 정부였던 것이다.

 

 

펭귄이나 사람이나 집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집값이 오르면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못한다. 둥지를 틀 돈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가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남극의 펭귄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모여서 알을 낳고 새끼들을 부양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또 너른 바다 바위섬 벼랑에 무수히 많은 새들이 작은 둥지에 알을 낳고 키우느라 서로 다툼을 하는 장면도 보곤 한다.

 

보면서 쓴 웃음을 짓곤 한다. 남극이나 대양의 외딴 섬이나 대한민국의 서울이나 집을 구하기 어렵긴 마찬가지구나.

 

 

출발부터 잘못된 우리의 DTI 규제

 

 

애당초 2005년 DTI라는 제도가 도입될 당시부터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비율만 적용했더라도 오늘날 가계부채 1500조는 없었을 것이고 그로 인한 소비여력 고갈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잡겠다고 했는데, 당시 나는 저 분의 뜻이야 알겠으나 높은 DTI 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일반 선진국들의 DTI는 통상적으로 28-36% 선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간 50-60% 대를 유지해왔다. 대출 원리금 상환이 소득의 50-60%까지

되어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없을 까닭이 없다. 오로지 대출을 많이 받게 하고 편하게 받게 하기 위해 비율을 엄청나게 높게 잡아놓은 것이다.

 

몇 년 전인가 IMF 가 우리나라의 DTI가 너무 높다는 경고를 보내왔지만 당시 금융위원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높은 DTI 비율로 인해 가계대출이 폭증했고 그만큼의 통화량이 늘어났으며 여기에 지속된 저금리로 인해 시중엔 무지막지한 유동자금이 꿈틀대고 있는 현실이다.

 

그 결과 청년들은 남극의 펭귄들 마냥 둥지를 틀지 못하고 있다. 그 바람에 저출산이 대세로 정착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인구절벽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2000년대의 과소비가 원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10년에 걸쳐 우리 사회는 감당할 수 없는 소비를 해온 셈이고 오늘에 이르러 모든 지표들이 악화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인 것이다.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가 한 것이 없고 무능했다는 인식을 하고 있지만 사실 처음엔 경제혁신3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구조 조정하려는 계획을 추진했었다. 어려운 작업을 시도했던 박 정부였다.

 

하지만 기득권 노조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궁지에 몰린 박 정권은 부동산 부양으로 경제 수치들을 만들어내는 악수를 두고 말았다.

 

이번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들고 나와 분배 구조의 개선을 도모하고자 한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현 정권의 지지기반이 대기업 노조라고 하는 강력한 분배 동맹 세력이란 점에서 한계를 안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걱정

 

 

최근 경향신문에서 재미난 글을 읽었다. ‘촛불 다중의 균열’이란 제목의 글이다. 임현백 교수가 기고한 글이다.

 

(어쩌다 보니 자꾸 경향신문에 대해 두 번이나 언급하게 되는데, 나 호호당은 두루두루 신문을 읽어보는 편이다. 다만 경향신문의 오피니언 칼럼은 다양한 생각이 골고루 반영되고 있는 좋은 코너란 생각을 한다.)

 

직접 옮긴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키고 지탱해온 다중연대는 왜 정점의 순간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가? 다중연대는 정체성이 다른 이질적 집단이기 때문이다. (중략) 문재인 정부는 이질적인 다중들의 다양한 요구를 맞춤형으로 수용하고 실현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다중연대를 구성하고 있는 집단들의 분리주의적 이탈을 초래하고 있다.”

 

약간 달리 설명해보면 현 정부가 처음에 지지율이 대단히 높았으나 그 지지층의 성격이 다양한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지지층이 이탈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편하게 얘기해보면 지지층 상호간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고 서로 상충되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가 되겠고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기득권인 민노총의 이해와 20-30대 청년들의 이해가 상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걱정을 했었다. 처음에 대통령 지지율이 무려 80%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소름이 끼쳤다.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지한다는 것은 크건 작건 뭔가를 바란다는 얘기인데, 나중에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 저건 더 문제인 데 하는 걱정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처럼 지나친 지지율은 지나친 非(비)지지율로 바뀌거나 아니면 냉소적으로 변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대중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법’이 현 정부의 나름 큰 강점이지만 그게 나중엔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으리란 우려가 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 이번 개각에 대한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의 논평, “여성가족부 장관은 '페미 대통령'을 부각하지 못한 책임을 지운 것이거나 탁현민 행정관을 지키기 위해 경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이 바로 그런 대목이다.

 

정권과 정책을 좌우 성향에 따라 바라보는 것은 선입견에 매몰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늘 해오고 있다. 그건 미리부터 답을 정해놓고 바라보게 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역대 정권들은 물론 정권을 유지하고 창출해야 하는 것이 우선적이긴 했으나 주어진 한계 안에서 나라를 발전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강한 의지도 갖고 있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모든 정권들이 잘 해보려고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2012년부터 우리 사회는 내부의 이익 갈등이 엄청나게 첨예화되고 증폭된 반면 성장동력은 상실 일로를 걷게 되면서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여지가 급속도로 축소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은 어렵지만 아무튼 잘 되어야 할 터인데

 

 

8월 초에 나온 KDI 경제동향 보고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투자 감소, 건설경기 하락, 실업률 상승이었다. 며칠 후면 9월 동향이 나올 터인데 그 역시 궁금하다.

 

정부는 이번 개각으로 보완할 것은 보완해가면서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더욱 신속 과감하게 집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정말이지 나름 성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간 들어보지 못한 정책, 하지만 나름 개성이 있고 의미가 있는 정부의 이번 소득주도성장정책이 만일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야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국면이 우리 전체를 짓눌러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자꾸만 걱정이 앞선다. 그 바람에 이런 글을 쓰게 된다. 당분간 자제할 생각을 해본다.

기준금리는 곧 국가의 경제 활력을 대표한다.



한국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는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경제의 활력이라 봐도 무방하다. 지금의 기준금리 1.50%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초저금리인 바 이는 현재 우리 경제의 활력이 그간에 엄청나게 떨어져왔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변화 추이


1978년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무려 34%였다. 급격하게 발전하는 개발도상국들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당시 시중금리는 50%를 상회했다.) 


그러다가 우리 경제가 도약하기 시작하던 1980년대 중반의 경우 17%였다. 금리가 높다는 것은 돈이 흘러갈 곳이 많다는 얘기이고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이다. 이른바 투자만 하면 돈이 되던 시절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니라의 기준금리는 4-5% 대를 오르내리게 되었다. 사실상 우리 경제의 활력이 위축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금리가 2%대까지 내렸다가 2011년 3월 글로벌 경제 회복의 기대감으로 인해 잠시 3.25%까지 올랐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는 심한 불경기와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렸다. 비록 미국을 필두로 양적완화라고 하는 유례가 없는 돈풀기 정책으로 그런대로 견뎌왔지만 1980-2000년대 사이의 글로벌 호황은 이제 추억 속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2014년에 들어와 종전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일이 우리 경제 내부로부터 발생했다. 글로벌 경제라는 외생 변수가 아니라 우리 자체의 성장 탄력이 죽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종전 최저였던 2.00% 이하로 인하해야만 했다. 



2014년부터 정착된 초저금리 흐름



2014년 이후로는 이제 2.00%대의 기준금리를 감히 생각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초저금리 시대가 정착되었다. 


그간 한은은 글로벌 불황을 이유로 초저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그 이유를 들먹일 수 있었지만 2017년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런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는 외부변수가 아니라 우리 자체의 문제



아시다시피 미국은 이미 금리 인상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바람에 미국 연준 금리가 우리 기준금리보다 더 높은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그렇기에 2014년부터의 초저금리 기조는 더 이상 글로벌 불황에서 오는 외생 변수라기보다는 우리 자체의 요인, 다시 말해서 우리 경제의 탄력이 급속도로 죽기 시작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작년부터 미국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전체가 회복세를 보이자 한은은 작년 2017년 11월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으로 한 번 올렸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한은은 금리인상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분명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기준 역할을 하는 미국 연준의 금리는 이미 단계적 인상의 길을 밟고 있는데 우리 경제는 전혀 살아날 기미가 없으니 올릴 수도 없고 그대로 유지하자니 부작용이 걱정된다. 


이는 2014년부터 우리 경제 자체의 탄력이 크게 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작년 말에서 올해 초에 이르러 우리 경제가 장기 침체의 초입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말해준다. 



난데없는 부동산 상승과 그 원인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경기가 부진하거만 최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난데없이 일부 부분적이긴 하지만 서울의 부동산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즉각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국세청이 나서서 자금출처 조사에 진력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일단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이 발단이었다. 싱가포르 선언인가 뭔가 하면서 용산과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하겠다는 발표가 그것이었다. 이제 슬슬 차기 대권을 준비하기 위해 뭔가 가시적인 사업을 한 번 해보겠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불을 붙였다. 


박 시장의 발언이 부동산 상승의 빌미를 제공하긴 했지만 그 바탕에는 그럴만한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게 뭐였을까? 


이번 부동산 시세가 들먹이게 된 근본 요인은 다름 아니라 한은이 지속적으로 초저금리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한은은 초저금리를 통해 시중에 지속적으로 돈을 풀고 있지만, 문제는 통화의 유통속도가 종전에 비해 엄청나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돈이란 것은 여러 사람의 손을 많이 거쳐야만 제 몫을 한다. 돈의 주인이 자주 바뀌면 그 과정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이 활발해지고 그로서 경제가 활발하게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한은이 지속적으로 시중에 돈을 많이 풀고 있어도 그 풀려난 돈들이 마땅하게 갈 곳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를 두고 시중에선 ‘돈맥경화’라고 한다. 돈이 원활하게 돌지 않는다는 뜻이다. 


돈이 돌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경제 전체적으로 투자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소비는 막대한 가계부채 부담으로 인해 소비할 여력이 없어졌고 기업의 투자마저 부진하니 사실상 현 우리 경제는 정부의 재정지출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돈이 갈 곳이 마땅하지 않다는 말은 수익성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돈은 돈이 되는 곳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될 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통화의 유통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그러자 투자처를 찾는 돈들이 박 시장의 발언을 빌미로 해서 부동산 시장 쪽으로 몰려들었고 그 결과 부동산 시세 상승을 불렀다. 박시장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처음엔 경제혁신3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원래 그런 정책은 인기를 얻기 어렵다.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좌절했다. 그러자 최경환 부총리를 내세워 결국은 통화 공급을 통해 본의든 본의 아니든 부동산 시세만 올려놓는 식으로 경기부양을 했다. 



결국은 부동산일 것이란 시장의 왜곡된 기대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경험이 쌓인 부동산 시장이다. 이번 정부 역시 지금은 소득주도성장이다 뭐다 하고 있지만 어차피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이번 정부 역시 나중에 가선 SOC 사업의 확대라든가 부동산 부양 쪽을 택하게 될 것이란 판단을 하는 모양이다.

 

갈 곳을 찾고 있는 시중의 유동자금들이 부동산 쪽으로 몰리게 된 것에는 정부의 잘못도 없지 않다. 박 시장의 발언만이 아니라 현 정부의 정책인 구도심 재개발 사업이라든가 최근 대통령이 복지형 SOC 확대를 주문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저금리로 인해 쌓인 돈들이 갈 곳을 모색하던 차, 나름 길을 그 방면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정책이란 이래서 참으로 어렵다. 이번 부동산 가격 상승의 빌미는 사실 서울시장 그리고 정부가 제공한 셈인데 박시장이나 정부는 당연히 그런 결과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이에 부랴부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까지 선포하고 나섰다. 


구도심을 재개발할지언정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안 되는 것이고 여의도와 용산을 통으로 개발해도 부동산 시세가 오르면 안 된다는 것이니 사실 참 어렵다. 이에 박 시장은 발언을 철회했다, 그런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면서. 


정부가 조기에 적극 진화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라 본다. 하지만 이미 탄력이 붙은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가 진정되려면 약간의 시일이 걸릴 것이라 본다. 



참으로 어려운 정부의 입장과 정책 시행



어쨌거나 정부의 입장이 실로 어렵다. 


최저임금인상 역시 시행해놓고 보니 자영업자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더불어 주52시간까지 더해지자 기업들은 부담이 너무 커져서 못해먹겠다고 울상이다. 이에 정부는 열심히 재정 지출을 통한 보완책 마련에 급급하다. 내년엔 무지막지한 규모의 재정지출을 단행하겠다는 정부이다. (사실 재정지출 확대는 나중에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란 점에서 그렇다.) 


정부는 대기업 재벌 위주의 경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소기업과 스타트업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고 있다. 다양한 지원정책과 예산 편성을 통해 신규창업을 지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참으로 어렵다. 이게 꼭 돈이나 정부 지원만으로 해결되기엔 현실의 두꺼운 벽 앞에서 역부족인 감이 든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중국으로부터 왔다.



우리가 이렇게 어렵게 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결국은 글로벌 경제에 있어 중국의 비중이 커진 결과라고 본다. 


그 바람에 우리 경제는 여러 방면에서 탄력을 잃기 시작했다. 모든 방면에서 우리의 주력상품과 중국의 그것이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점으로 인해 다양한 경로로 대두되기 시작한 부정적인 영향이라 여긴다.



존 매케인, 미국의 전쟁영웅 세상을 뜨다.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이 세상을 떴다. 평소 베트남전의 전쟁 영웅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별세했다는 뉴스를 듣고 생년월일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운명학적으로 흥미로운 것이 눈에 띄었고 이에 글로 쓰게 되었다. 


매체인 상원의원은 미국의 귀족이었다. 미국은 신분이나 계급이 없는 나라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노블 클래스(Noble Class)는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돈만 많으면 귀족 행세를 할 수 있는 나라지만 미국은 그렇지가 않다. 적어도 3대에 걸쳐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면 귀족 대우를 받지 못한다. 



매케인은 미국 노블 클래스의 일원이었다.



매케인의 경우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해군에서 4성 장군을 지낸 군인 명문 집안이었다는 점, 더불어 매케인 역시 월남전에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도중에 격추되어 5년 반 동안 전쟁포로가 되었으며 1973년 파리 협정으로 풀려난 후에야 비로소 귀족으로 인정을 받았다. 3대가 국가에 공헌을 한 것이다. 


귀족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판별하는 명시적인 룰은 없지만 미국 사회는 귀족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이는 서구 문명의 원형인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래된 오랜 문화의 뿌리에서 비롯되었다. 


존 매케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바가 컸기에 1973년 귀국한 뒤 9년 뒤인 1982년 하원 의원이 되었고 다시 경험을 쌓은 뒤 1986년엔 무난하게 상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뒤로 매케인은 이번에 사망할 때까지 32년 동안 줄곧 상원 의원직을 지켰다. 



미국에서 상원 의원은 미국 사회의 제1시민이다.



잠깐 얘기하면 우리는 국회가 단원제이지만 미국은 양원제의 나라이다. 上院(상원)과 下院(하원)이 있다. 상원을 영어로 세너트, senate 라 하는데 이 용어는 고대 로마의 원로원을 뜻하는 라틴어 세나투스(senatus)에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상원은 고대 로마의 원로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원로원이란 사회의 지배계급 중에서 나이가 많고 현명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협의체인 바, 미국 상원 역시 그런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고대 로마의 원로원에 해당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상원 의원이기에 선출직이고 때가 되면 선거를 하지만 한 번 상원이 되고 나면 유권자들이 계속해서 찍어주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사실상 종신직이다. 


따라서 미국의 상원 의원은 미국이란 나라와 사회의 제1등 시민인 것이고 국가의 정치적 안정성과 통합성을 유지함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존 매케인의 命運(명운)



그러면 이제 매케인의 명과 운에 관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 드리겠다. 


이름이 John Sidney McCain 3세이다. 줄여서 그냥 매케인이라 하겠다. 


1936년 8월 29일 저녁 6시25분생이다. 사주로 변환하면 이렇다. 


丙子(병자)년 丙申(병신)월 癸未(계미)일 辛酉(신유)시. 


사주만 봐도 부귀를 타고 났는데 운세 순환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운세 순환의 시작점인 立春(입춘)은 癸卯(계묘)이고 氣(기)의 절정인 立秋(입추)는 癸酉(계유)의 해가 된다. 



존 매케인의 운세 순환 차트



이에 매케인의 운세순환 차트를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1936-1948: 운명의 가을

1948-1963: 운명의 겨울

1963-1978: 운명의 봄

1978-1993: 운명의 여름

1993-2008: 운명의 가을

2008-2023: 운명의 겨울 (올 해 2018년 운명 절기상으로 추위가 본격화되는 사망했다.)


운명의 가을에 태어나 겨울과 봄, 다시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깊어갈 무렵에 세상을 떠난 셈이다. 



존 매케인의 시련기



매케인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항공모함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1967년 작전 도중 격추되어 5년 반 동안 전쟁포로가 되었으며 이후 1973년 파리 협정으로 풀려났다. 


참고로 얘기하면 1973년 1월에 조인된 파리 협정 또는 베트남 평화협정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그리고 미국 사이의 협정으로서 베트남 전쟁 종결을 약속한 협정을 말한다.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고 남베트남에서 철수한 뒤 북베트남 군대가 남쪽으로 밀고 내려와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의 대통령궁까지 점령하면서 베트남 전쟁이 끝났다.)


매케인은 북베트남 폭격 작전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던 중 1967년 10월 26일 소련제 대공미사일에 피격되었다. 간신히 낙하산으로 탈출했으나 두 팔이 골절되고 다리에 파편을 맞아 중상을 당한 상태에서 하노이 근처의 호수로 낙하한 후 기절했다. 


운이 좋게도 익사를 면했으나 포로로 체포된 다음 미국 전쟁 포로들 사이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심한 구타와 고문을 받았다. 체중은 물론이고 머리카락 전체가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이듬해 7월 매케인의 부친이자 해군 제독인 맥 매케인이 태평양 사령관이 되자 북베트남은 선전 목적으로 매케인의 조기 석방을 제안했다. 선심을 베풀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부친이자 해군 사령관인 잭 매케인은 자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을 순 없다며 북베트남의 제안을 강직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대목에서 미국이란 나라가 참 부러워진다.)


결국 매케인은 1973년 파리 협정이 체결된 직후인 1973년 3월 14일이 되어서야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5년 반의 모진 포로 생활을 견뎌야 했던 그였다. 


흥미롭다고 느끼는 대목은 여기까지이다. 



격추될 당시와 생환 당시의 운세 해설



그가 하노이 상공에서 피격되어 포로가 된 때부터 살펴보자. 


1967년 10월 26일인 바, 丁未(정미)년 庚戌(경술)월 癸亥(계해)일이다. 매케인의 경우 1963년이 입춘 바닥이니 1967년은 60년에 걸쳐 가장 재수가 없는 때, 나 호호당이 ‘재운 바닥’이라 부르는 때에 발생했다. 


달을 보면 庚戌(경술)월이니 60개월에 걸친 단기 운세 흐름이 최저점에 있을 때였고 날을 보면 癸亥(계해)일이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나마 날이 좋아서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한다. 


1967년 10월 26일 그가 격추되어 포로가 된 것은 그의 운세 흐름 상 평생에 걸쳐 가장 최악의 사건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가 석방되어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된 날은 1973년 3월 14일의 일이었다. 癸丑(계축)년 乙卯(을묘)월 己酉(기유)일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석방되어 살아 돌아온 해가 1973년이었다는 점이다. 


입춘에서 10년은 생불여사의 세월이 되는 것이니



내가 강의를 할 때 입춘 바닥에서 10년 동안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존재해도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세월을 보내게 된다는 설명을 해주곤 한다. 그런데 매케인 역시 입춘 바닥이 1963년이었기에 1973년은 10년의 세월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 역시 포로수용소에 ‘생불여사’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사람마다 입춘의 때를 맞이하는 시점이 다르다. 그리고 입춘을 지나 10년의 세월 사이에 그 사람은 사실상 재창조된다. 


매케인의 경우 1963-1973년의 10년 사이에 해군 전투기 조종사에서 미국의 전쟁 영웅으로 復活(부활)한 것이고 그로서 미국의 노블 클래스의 일원이 되는 길을 닦았다. 평생을 미국의 제1시민이라 할 수 있는 상원 의원이 될 수 있었던 발판은 바로 그가 평생에 걸쳐 재수가 없을 때, 운세가 가장 좋지 않을 때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가장 어렵고 험난한 시기를 보내기 마련이다. 


그 기간 동안 문자 그대로 죽지만 않고 목숨을 건져 살아나온다면 사실 그 기간이야말로 그 사람이 나머지 삶을 살아감에 있어 더 없이 귀중한 그 무엇인가를 얻게 되는 시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시련은 사람을 단련시켜서 새로운 삶으로 재탄생시킨다.



큰 시련을 사람을 鍛鍊(단련)시킨다. 그 과정은 마치 원광을 불에 녹여서 불순물을 걸러내고 다시 맹렬한 담금질을 거쳐 보검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입춘 바닥에서 10년의 세월, 말이 쉽지 1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자 누구나 어차피 이 시기를 한 번은 겪도록 되어있다. 


물론 어떤 이는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는 자라면 누구나 능히 이 시련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다는 말도 드린다.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마침내 살아서 귀국할 수 있었던 매케인이 아니었다면 훗날의 종신 상원 의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이다. 


運(운)이란 것은 참으로 만인에게 공평하다. 60년의 순환에 있어 최악의 세월이 10년이라면 최상의 세월 또한 10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장 눈앞의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자신을 너무 심하게 책망하거나 세상을 탓할 일은 아니란 얘기이다.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 반드시 그에 합당하는 보상이 주어지도록 세상은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매케인의 일화는 운명학적으로도 대단히 흥미롭지만 동시에 오늘날 세계 최강국인 미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은 역시 명예로운 일을 한 자에게 명예가 돌아간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날씨도 괴롭히고 경제도 부진하고



8월 하순에 밤 1시가 다 되도록 기온이 31도씩이나 되는 더위는 정말이지 머리털 나고 처음 겪는 일이다. 지금 시각은 8월 23일 새벽 1시이고 오늘로서 더위가 멈춘다는 절기인 處暑(처서)이건만 초열대야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올 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열폭탄을 맞았다. 사람은 모두 곯았고 온 산천초목이 불에 그슬리고 데었다. 


7월 고용 발표를 접하고 나서 맥이 풀리고 기가 빠졌다.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걱정하고 우려하던 그 이상의 나쁜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했던 현 정부 역시 크게 놀란 모양이다. 며칠 사이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여러 대책과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8월 6일자 글에서 얘기했듯이 올 7월은 향후 45개월의 흐름과 방향을 처음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달이었다. 2017년 4월부터 2022년 3월에 이르는 60개월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복잡한 심사



이에 일요일 새벽 블로그에 글을 올린 이래 지금 목요일 새벽 이 시각까지 머리가 복잡해서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을 정도이다. 공연한 얘기가 절대 아니다. 나 호호당의 아들 녀석 역시 작은 벤처 사업을 막 시작하고 있는 터라 나라 전체가 어려워지면 조금치도 좋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걱정 끼칠 내용이 되어버리니 지워버리고 다시 쓰고 이러기를 사흘째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다. 기분 전환을 위해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도중에 죄다 찢어버렸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지적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 기사를 보니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 모델을 바꿀 때가 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었다. 일본 등을 통해 빠른 속도로 기술을 흡수하고 학습해서 성장 발전해온 방식이 중국의 등장으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체, 그게 너만 알고 있는 줄 아니? 당사자인 우리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알고 있어 임마, 하고 대꾸한다.) 


물론 맞는 지적이다. 그 말이 틀리진 않다. 하지만 새로운 모델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대해선 그야말로 막막하기만 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우리나라가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출산율 저하와 노령화로 2016년부터 노동가능인구가 줄기 시작했으니 글로벌화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어려운 구조개혁



구조개혁은 결국 생산성을 높이라는 얘기인데 이게 당장은 일자리 문제와 충돌하게 될 것이고 글로벌화란 해외로부터의 인력 유입과 산업시설의 해외이전을 의미하는 것 같긴 한데 그게 우리 입장에서 여러 모로 쉬울 까닭이 없다. 


사실 전 정권인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것이 바로 구조개혁이었으니 ‘경제혁신3개년 계획’이 그것이었다. 시장원리를 더 도입해서 사회 각 부문의 생산성을 높여보자는 것이었지만 이는 당연히 국민들의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고 특히 노조의 반발로 지지를 얻어내긴 어려운 정책이었다. 



양날의 칼과도 같은 소득주도성장론



탄핵 이후 들어선 현 문재인 정부는 사실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참신하다고 평할 수도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과 주52시간 근무가 주 내용이다. 물론 현 정부 역시 혁신성장을 얘기하고는 있지만 본질에 있어 主(주)가 아니라 副(부)일 수밖에 없다. 


나 호호당의 개인적인 견지에서 말을 하자면 ‘소득주도성장론’이란 것을 처음 접했을 때, 경제의 주류 이론이 아닌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란 관점, 게다가 날로 탄력이 죽어가는 우리의 처지를 놓고 볼 때 다소 모험적이긴 하지만 한 번 시도해봄직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가 그다지 크게 부정적이지만 않다면 그리고 나아가서 잘 되기만 한다면 굳이 파이낸셜타임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현재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있고 장차 어쨌거나 우리가 만들어내어야 할 숙제인 새로운 경제 모델의 한 原型(원형) 즉 프로토타입(prototype)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커져가는 소득주도성장론



물론 7월의 고용 수치가 저처럼 나쁘게 나온 것이 야당의 주장처럼 소득주도성장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소득주도성장론이 먹혀들고 있는 것일까를 자문해보면 결코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볼 때 현재의 경제 흐름이 다소 완만할지언정 경기가 확장 국면이었다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부르는 부작용이야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경기의 선순환을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달리 말하면 경기확장 국면에서 임금이 다소 빠르게 그리고 큰 폭으로 올라도 전체 경제가 그를 받아낼 수만 있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수출을 제외한 모든 지표가 하락하면서 장기 경제침체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선 오히려 충격만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경제의 그간 운용 방식에 있어 대단히 극적인 변화였다. 그간에 역대 정부가 흔히 해오던 SOC 투자를 통한 일자리 유지 또는 확충을 지양하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예산상의 여유를 복지와 일자리 확충을 위한 지원 자금으로 돌렸으니 말이다. 


일각에선 현 정부의 이런 정책을 좌파이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지만 나 호호당이 보기엔 그런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여긴다. (더불어서 좌파든 우파든 국민이 잘 먹고 잘 살 수만 있다면 그게 무슨 문제이랴!) 


나 호호당이 진짜로 우려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기대하기도 하는 것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간에 시도해보지 않았고 따라서 꽤나 급진적인 정책조합(policy mix)이란 점이다.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기에 우려가 되는 것이고 반대로 잘 먹혀들기만 하면 그거야말로 최상이란 점에서 기대를 했었다는 말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통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대박인 것이고 반대로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건 무모한 도박이었다는 지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렇기에 가보지 않은 길은 누구나 두려운 바가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시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한편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정책을 우리가 만일 2000년대 초중반에 시도했었다면 충분히 먹혀들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움도 든다. 


당시만 해도 우리 경제의 양극화가 막 시작되던 초기였고 경기 역시 글로벌 호황에 편승해서 순항하던 때였기에 최저임금인상을 통한 전체적인 인금상승이 경제에 대해 부작용을 주기 보다는 경제의 선순환을 자극하고 양극화 해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참신한 정책이었을 것 같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그간 우리가 걸어온 길은



물론 역사에 있어 가정법은 쓸모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되돌아보자. 


우리 경제는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를 벗어난 이후 시중으로 끊임없이 돈이 공급되었고 그 돈들은 오로지 대거 아파트와 부동산으로 흘러들었다. 여기에 자극받은 중산층까지 대거 빚을 내어 아파트 매수 대열에 동참했다. 


그 바람에 엄청난 유동성으로 인해 경기는 흥청망청 잘 돌아갔지만 그 대가로 오늘날 막대한 가계부채를 떠안게 되었고 또 그 결과 소비여력이 고갈되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측면은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 나서는 과정에서 수지타산 즉 이른바 자산대비수익률(ROA)라든가 자본대비수익율(ROE)같은 것에만 매달린 결과 인력의 지속적인 정리와 구조조정에만 매진해왔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들은 노조와 결탁해서 이익을 나누었고 그로 인한 부담은 협력업체 내지는 하청기업들에게 떠넘기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양극화를 엄청난 속도로 확대 심화시켰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긴 했으나 사실 그때만 해도 우리 경제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위기극복이란 명분을 내세워 시중에 대폭의 통화 공급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에 매달렸고 그 이후 박근혜 정부는 처음엔 구조개혁을 시도했으나 노조의 반대와 경기 침체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대출 증가를 통한 부동산 부양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이에 상황이 더욱 엄중해진 우리 경제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 지금의 문재인 정부이고 방법론은 소득주도성장이다. 


나 호호당은 우리 국운의 흐름으로 볼 때 향후 지속적으로 더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어려워진다 해도 어느 정도냐의 문제가 있다. 이에 어쩌면 소득주도성장이란 새로운 시도가 그런 흐름을 다소 완화시켜주지 않겠느냐는 기대 또한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 그리고 7월의 고용 동향을 접하고 나니 기대는 저리 가고 수많은 걱정과 우려가 일제히 몰려든다. 나 같은 보통사람도 그러니 모든 책임을 짊어진 대통령이야 얼마나 걱정이 되겠는가. 며칠 전 實事求是(실사구시)란 말을 강조했는데 이는 소득주도성장을 밀고 나가되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잘 대처해야 하겠다는 뜻의 말일 것이다. 



어쨌거나 잘 되어야 할 텐데...



나 호호당의 나이도 이제 예순하고도 넷이다. 젊은 날의 稚氣(치기)나 客氣(객기)는 이제 많이 사라졌다. 그렇기에 보수 진보와 같은 단순구분법에 별 흥취가 없다. 그저 현실만 바라보게 된다.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돌이켜 볼 때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책이 비록 일반적이지 않고 다소 모험적이긴 하지만 현 우리 상황을 볼 때 그렇다고 해서 구태의연한 정책만 답습할 순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부터 결정적인 시기로 보고 있던 7월의 수치가 무척이나 부정적으로 나온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현 시점에서 대통령이 그간의 정책을 접을 순 없을 것이라 본다. 다소 수정할지언정 포기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렇기에 어찌 되었건 잘 되어서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어야 할 터인데 하는 마음, 또 만일 현 정부의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 데미지는 미처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하는 생각 등등 대단히 복잡하고 착잡한 심사로 해서 이번 주 내내 울적하기만 한 나 호호당이다. 


어렵사리 글을 마치고 나니 새벽 3시 25분이다. 기온을 보니 여전히 30도, 그 사이에 겨우 1도 내렸다. 정말 욕이 나온다. 제발 원하건대 이번 태풍 솔릭이시여, 그간의 무더위를 한 방에 쓸어가소서! 비나이다.


15년의 榮華(영화)와 15년의 역경

 

 

앞글에서 60년에 걸친 순환이 있기에 그 중 길게는 15년, 짧게는 10년 정도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란 말을 했다.

 

사실 이 말은 삶에 있어 길게는 15년, 짧게는 10년의 榮華(영화) 또한 있다는 말도 된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가 워낙 경쟁이 치열한 탓에 우리 모두 위만 바라보지 밑은 보지 않도록 길들여져 있는 게 문제, 이에 15년에서 10년에 이르는 영화의 때를 보내고 있어도 그게 그런 줄 알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란 점이다.

 

가령 당신이 ‘보통의 사람’이라면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게 영화의 때이고 한 때인 것인데,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위 더 높은 곳만 바라보다가 나중엔 더 낮은 곳으로 쓸려들게 되니 안타깝다.

 

이제 주제로 돌아가자.

 

 

슈퍼스타 감사용

 

 

예전에 “슈퍼스타 감사용”이란 영화가 있었다. 2004년 영화로서 흥행엔 실패했으나 나름 의미가 있는 영화였다고 여긴다. 영화는 프로야구 초창기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의 감사용 투수를 소재로 한 영화였다.

 

(참고로 삼미 슈퍼스타즈는 모 기업의 해체로 인해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에 이어 오늘날 SK 와이번스로 변천해왔다.)

 

즉 감사용 투수는 실존 인물이란 얘기이고 지금도 진해 리틀야구단의 감독 일을 잘 하고 있다. 그 양반이 겪은 인생의 역경을 소재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957년생인 감사용 씨는 1994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따라서 그를 전후한 15년의 세월이 역경의 기간이었다는 말이 된다.

 

아마추어 쪽에선 무척 뛰어난 투수였던 그는 1982년 삼미 슈퍼스타스의 투수로 발탁되었다. 입춘 바닥으로부터 12년 전이니 사실 그 때가 야구선수로선 최절정의 때였다. 입단 당시가 최고의 시절이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열심히 던지고 많이 던졌으나 성적은 영 아니었다, 겨우 1승만을 거두었다. 물론 삼미 슈퍼스타스 자체가 약팀인 이유도 일부 있었다.

 

그 바람에 그는 1986년을 끝으로 5년간의 프로야구 투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슈퍼스타의 흑역사

 

 

1994년이 입춘 바닥이니 그로부터 7.5년 전을 계산해보면 대략 그 무렵이 된다. 즉 감사용 씨는 그때부터 역경의 세월을 만난 셈이다. 그 이후 구체적인 것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그가 다시 야구에 복귀한 것은 2006년이었다. 즉 1986년 이후 근 20년의 세월 동안 과연 감사용 씨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생계를 이어갔을까? 야구하던 사람이 야구를 떠났으니 힘들게 살았을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1994년을 전후한 15년의 삶은 그야말로 그에게 黑歷史(흑역사)였을 것이 분명하다. 본인과 가까운 이가 아니면 전혀 모른다, 어둠에 덮여있다. 그 15년의 기간은 1957년인 그 분에게 서른 살에서 마흔 중반까지의 세월이었을 것이니 좋은 세월 어둠 속에 모두 묻었다 하리라.

 

 

마침내 길을 열은 감사용

 

 

2006년에 그는 국제디지털대학교 야구팀의 감독을 맡았지만, 그 역시 현역 시절처럼 단 1승만 거두고 1년도 채 안 되어 팀이 해체되었다. 또 다시 얼마나 좌절했을까나!

 

하지만 그에겐 또 다시 좋은 기회가 주어졌으니 2007년부터 고향인 진해시의 리틀야구단 감독을 맡아서 지금까지 줄곧 야구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되살아난 것이다. 길고 긴 어둠의 세월을 보낸 뒤 또 다시 살아난 것이다. 또 다시 힘차게 야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감사용 투수이고 감독이다.

 

야구를 지망했던 사람이 평생 야구를 하면서 살아간다. 이게 바로 성공이고 사실은 대성공이다. 그 분 스스로도 더 이상 바람이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밥을 먹고 살 수 있으니, 최근 젊은이들이 일컫는 바 德業一致(덕업일치)의 길을 걷고 있다, 대성공이다.

 

감사용 그 분의 命(명)은 야구였고 運(운)은 1986년부터 근 20년, 이면을 보면 정확하게 15년 동안 어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성공했다. 다시 살아났다.

 

1987년부터 추운 겨울을 보낸 셈이고 1994년 초봄을 맞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삶’을 보낸 끝에 2006년엔 야구로 되돌아오는데 성공한 감사용 씨.

 

짐작컨대 그 사이에 이런저런 일을 해보았지만 모두 신통치 않았을 것이고 이에 마침내 어쨌거나 야구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노력한 결과 야구로 되돌아오는데 성공한 감사용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역경의 세월에서 신속하게 벗어나는 신통한 방법은 없다고 앞글에서 얘기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세월 속에서 열심히 길을 찾다 보면 이에 세월이 가서 연수가 채워지면, 겪을 것을 다 겪고 나면 희한하게도 살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삶과 운명의 이치라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이제 길은 찾았지만 더 이상 그 길을 갈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우리 프로야구에 있어 영원한 전설의 투수 최동원의 경우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 최동원

 

 

최동원은 나 호호당의 고등학교 3년 후배이고 훗날 그가 암흑의 약사를 쓰고 있을 시절인 2000년대 초중반 무렵 우연한 계기에 만나서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많은 정을 나누었다.

 

1958년생인 최동원은 1971년이 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였고 1984년엔 코리언시리즈 4승의 성적으로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하는데 있어 大功(대공)을 세웠다. 그는 현역인 류현진 투수와 함께 우리 프로야구 스타 중의 대스타였다.

 

 

최동원의 흑역사

 

 

그런 그가 1971년 입추의 운으로부터 30년이 흘러 2001년엔 입춘의 운을 맞이했다. 따라서 그 역시 2001년을 전후한 15년의 세월이 암흑기가 되었다.

 

1991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퇴를 한 그는 이후 그간에 모은 적지 않은 자금으로 의류사업가로 나섰다가 크게 털어 먹었으며 또 무리하게 정치에 입문하여 출마했지만 낙선하면서 바닥으로 떨어져갔다. 그러자 방송인으로 데뷔하기도 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급기야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01년 입춘 바닥의 해에 스타 출신을 인정받아 한화의 투수 코치를 맡게 되었으나 곧 그만 두게 된다. 나중에 내게 솔직히 털어놓길 후배 선수들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건 자네가 아직 스타 시절을 잊지 못한 탓이 크다고 지적하자 발끈-하고 화를 내는 최동원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어서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처럼 최동원의 문제는 현역 시절 너무나도 대스타였다는 점이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과거의 엄청난 영광이 오히려 그의 발길을 묶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동원은 너무나도 괴로워했다. 괴로울 땐 나를 찾아와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연신 들이키곤 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自虐(자학)의 시절을 보냈던 최동원이었다. 그러자 대장암에 걸렸다. 병을 부른 셈이고, 눈앞의 세월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라 여긴다.

 

2006년 이후 그를 보지 못했다. 그저 신문지상을 통해 그가 암투병 중이란 소식만 접했다. 그리고 2011년 그는 53세의 나이로 他界(타계)했다. 소식을 접한 나는 혼자서 그를 추억하고 또 추모하면서 많은 눈물을 쏟았다.

 

 

감사용과 최동원

 

 

프로야구 전적 ‘꼴랑’ 1승의 투수 감사용, 최고의 전설 최동원, 나는 늘 이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본다.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했지만 스타가 될 수 없었던 감사용,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로서 승승장구했던 최동원,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오늘날에도 잘 살고 있는 감사용, 인생 중년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최동원.

 

굳이 승자를 가리진 않겠다.

 

하지만 역경에 처했을 때 감사용은 살고자 애써 길을 찾았고 마침내 살 길을 열었다. 최동원은 역경을 견뎌내지 못했다, 이에 몸을 다치고 세상을 떠야 했다.

 

역경이란 것 긴 인생 살다 보면 으레 만나게끔 되어있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살게 되어 있고 나중엔 잘 살 수 있는 인생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책만 하면 그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역경에 처해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긴다면

 

 

정리하면 스스로를 아끼고 소중히 하는 자는 긴 역경의 세월을 보내고 더 단단하고 튼튼해져서 힘차게 좋은 인생을 열어가게 된다는 얘기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 逆境(역경)의 때로 들어서고 있다. 2024년이 입춘 바닥이니 이제 初入(초입)이고 시작인 셈이다. 나라가 어려우면 정도의 차이야 있겠으나 그 안에 몸을 담은 우리들 모두 어려워질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2024년을 전후한 15년의 힘든 세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휩쓸려가게 될 지.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충동적으로 나서거나 겁에 질려하지만 말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면서 굳은 의지를 다져나간다면 또 다시 좋은 세월 맞이한다는 얘기를 하고파서였다.

긴 인생 살다보면 큰 역경도 있기 마련이니



우리가 살다보면 浮沈(부침)은 늘 있기 마련이다. 잘 되다가도 어려워지고 어려워졌다가도 의외로 잘 풀린다. 이는 운의 短期(단기) 사이클 즉 60개월에 걸쳐 순환하는 운의 작용이다. 


하지만 긴 인생 살아가다 보면 정말로 큰 逆境(역경)에 처해서 장기간에 걸쳐 힘든 시기를 보낼 때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때를 겪게 된다. 물론 이 역시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야 있지만 말이다. 


이는 60년에 걸쳐 순환하는 운의 작용 때문이다. 


표층 해류와 심해 해류



바다에는 이른바 海流(해류)가 있는데 이는 주로 바람의 영향으로 생겨나는 흐름,즉 물의 윗부분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표층 해류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해류도 존재한다. 대양의 해저 밑바닥엔 바닷물의 밀도에 의해 생겨나는 심층 해류가 있다. 심층 해류는 대단히 느리게 움직여 가는데 학자들은 이를 심층 순환이라 부른다. 


심층 순환은 표층 순환과 더불어 지구상의 저위도와 고위도 간의 열에너지 교류를 통해 전 지구 차원의 에너지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5년 60개월에 걸친 단기 운세 순환을 표층 해류라 한다면 60년에 걸친 순환은 일종의 심층 순환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심층 순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는 60년에 걸친 장기적 운의 순환이 존재한다는 것을 현대인들이 모르는 것과 같다. 



60년에 걸친 에너지의 유출과 유입



60년에 걸친 운의 순환이기에 운세가 상승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30년에 걸쳐 유입되는 과정이라 하겠고 운세가 하강한다는 것은 반대로 30년에 걸쳐 에너지가 유출되는 과정이라 봐도 무방하다. 


진정한 역경은 에너지 유출의 마지막과 유입의 초기 부분이다.



그렇기에 늘 있기 마련인 단기적인 부침이나 호운 불운이 아니라 60년에 걸친 장기 운세 순환에 있어 에너지가 거의 다 빠져나간 마무리 시기, 그리고 에너지 레벨 바닥을 치고 다시 유입되기 시작하는 초입 부분의 시기가 바로 오늘 글의 주제라 하겠다. 바로 이때가 삶의 진정한 역경이라 부를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그 시간은 사실 놀랍게도 엄격할 정도로 확정되어 있다. 에너지 유출의 마지막 시기는 7.5년이고 다시 유입이 시작되면 그로부터 다시 7.5년, 합하면 15년의 시기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해도 결국 누구나 겪게 되는 길고 험한 역경의 때를 이룬다. 



운세 순환은 한 해의 순환으로도 설명이 된다.



운세의 하강과 상승을 에너지의 유출과 유입으로 설명했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가장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한 방법이며 나 호호당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운세 순환을 한 해 사시사철에 비유하는 것이다. 


운세 하강의 마지막 국면은 양력으로 12월 20일경의 동지로부터 2월 4일경의 입춘에 이르는 1.5개월이고 상승의 초기 힘든 국면은 2월 4일의 입춘으로부터 3월 22일경의 춘분에 이르는 1.5개월이라 보면 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나라의 60년 운세 주기를 예로 들 것 같으면 2017년 4월은 우리 국운의 동지였기에 그로부터 7.5년에 걸쳐 우리의 모든 상황은 날로 어려워질 것이고, 이에 2024년 10월부터 7.5년에 걸치는 기간은 바닥을 친 다음 또 다시 일어서기 위해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시련을 겪게 된다는 말이다. 합치면 15년에 걸친 길고 긴 역경의 때가 된다. 


이처럼 역경의 기간은 15년이라 했지만 그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것 같으면 그 한 가운데에 존재하는 10년의 시기야말로 역경 중의 역경에 해당이 된다. 



10년의 암흑기 혹은 흑역사



그렇기에 긴 인생 살아가려면 누구나 최소한 10년의 기간은 암흑기, 이른바 黑歷史(흑역사)를 거치게끔 되어있다. 그 암흑기는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다 하겠지만 어떤 이는 그 기간 중에 그만 몹쓸 병에 걸려서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 호호당은 인생 중년에 암이나 여타 불치병에 걸려 세상을 등진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흑역사의 세월을 잘 극복한 결과 지금에 와선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을 구가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정말 무수히 기억한다. 


나 호호당 역시 인생의 암흑기를 거쳤다. 그리고 그간 무수히 많은 간접 경험과 연구를 해왔다. 


호호당, 이젠 최고전문가가 된 셈이라



이에 어떻게 하면 逆境(역경)의 시기가 어떤 것이며 또 그로부터 어떻게 하면 잘 벗어나서 또 다시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 방면의 최고 전문가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 많이 민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말은 절대 아니다.)


역경으로부터 헤쳐 나오는 것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 자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만 하면 된다는 식의 무슨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말 또한 절대 아니다. 



역경을 헤쳐 나오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미리 얘기하는 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속하게 빠져나오는 방법은 없다. 오래된 책인 淮南子(회남자)에 이르길 ‘울창한 숲에서 빠져나옴에 있어 처음부터 가장 빠른 길을 알고 있는 이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참으로 옮은 말이다. 出林者不得直道(출림자부득직도). 


어려움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처음엔 당연히 막연하지만 그냥 있을 순 없고 해서 이리저리 헤치다 보면 결과적으로 어떻게 용케 빠져나오는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역경에서 빠져나옴에 있어 비록 ‘좋은 원칙’은 있을 수 있겠으나 ‘절대의 방법론’은 없다는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삶의 큰 역경에 처한 당신이 어떻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본다. 



역경이 장기 흐름인지 단기 흐름인지부터 분별해야



먼저 얘기할 것은 지금의 어려움이 단기적인 흐름인지 즉 60개월에 걸친 단기 사이클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흐름 즉 60년에 걸친 장기 사이클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不振(부진) 혹은 不調(부조)의 기간이 40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면 당신의 운세는 장기 흐름이 꺾인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서 이제 15년 짧게는 10년에 걸친 역경의 初入(초입)이라 봐도 된다는 말이다. 


증시로 말하면 그건 상승세 속에 나타나기 마련인 하락 조정이 아니라 기본 흐름이 하락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과 같다. 


증시하시는 분들은 장세가 오르다 꺾이면 그것이 단기 하락 조정인지 아니면 대세 하락인지를 판별하지 못해서 낭패를 볼 때가 있다. 한다. 사실 그게 쉽지 않은데 이처럼 운세 흐름 또한 이 글을 읽었다고 해도 쉽게 판별하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 


아무튼 이제 운명의 큰 흐름이 하강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하자. 이에 조급한 나머지 신속하게 벗어나고자 하는 억지 또는 무리수를 감행하는 수도 많다. 이 경우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역시 증시로 비유해보면 주가가 많이 하락했다고 해서 섣불리 바닥을 점치고 주식을 대거 매수하거나 ‘물타기’한 결과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일반 투자자들 사이에 허다한 경우와도 같다. 



장기적인 운세의 어려움은 증시가 바닥을 기는 것과 같다.



基調(기조)적으로 하락하는 주식이나 증시는 결국 매도할 사람이나 펀드가 다 털고 나간 다음에도 한참 동안 바닥을 긴 다음에야 서서히 새로운 재료가 생겨나고 그로서 또 다시 길고 긴 굽이굽이 상승세로 돌아선다. 


이처럼 한 번 장기 역경에 처한 사람의 경우도 그 과정이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거칠 것은 다 거쳐야 하고 겪을 것이 있으면 다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이 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런데 어느덧 분량이 되었기에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 이런 글을 마련하게 된 것은 최근의 우리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최근 들어 급속하게 탄력이 죽어가는 우리 경제인 것이고 그 바람에 비록 당장은 일자리가 있고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도 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장래 혹은 미래에 대해 많은 불안감을 가진 채 살아가는 현실이다. 이에 혹시나 최악의 경우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그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준비했다. 


이어지는 글을 기대하셔도 좋다.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며 살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우리 사회의 보통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장래에 대해 적지 않은 걱정과 우려를 하면서 살고 있다. 거의 예외가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진 것 같다.

 

중년의 가장들은 직장에서 언제 잘릴 지 걱정이고 이에 혹시 그만 두고 나면 뭐를 해서 생계를 꾸릴 수 있을까에 대해 내심 많은 걱정을 한다. 그만 두고 나면 받아줄 곳이 없으니 선택지는 자영업이다.

 

자영업의 경우 최근엔 취업에 실패한 젊은 청년들도 자영업에 많이 뛰어들었다. 이에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27% 정도로서 대단히 높은 편이다. OECD 평균은 15.4%이고 좀 괜찮다 싶은 나라들은 대부분 10% 초반이다.

 

자영업 비중이 높다는 말은 경제구조가 불안정하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조금 더 얘기해보면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보다 자영업 비율이 더 높은 나라는 그리스 터키 멕시코 브라질 정도이다. 모두 문제가 있는 나라들이다, 네 나라 모두 경제위기가 발생했거나 발생 중인 나라들이다.

 

청년들은 학교를 마친 뒤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할 확률이 대단히 낮다. 청년 실업률도 대단히 높은 편이고 개선될 조짐도 잘 보이지 않고 있다.

 

나름 괜찮은 직장에 들어간 청년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래봐야 마흔 중반까지 다니는 거죠, 그 다음에 창업이죠 뭐’ 하는 얘기를 예사로 듣게 된다. 실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청년들의 인식이 그렇다는 것은 미래에 대해 낙관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어쩔 수 없이 창업하게 되는 청년들도 상당수이고 대부분 3년 안에 실직자가 된다.

 

50대 후반을 넘긴 장년층들 역시 걱정이 태산이다. 어쩔 수 없어서 그냥 놀고 있는 서른이 넘은 자녀를 여전히 부양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고 노후 대책 역시 부실하기 때문이다. 잘못되면 독거노인이 되어 쪽방에서 죽어가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은근히 하며 지낸다.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우리 청년들

 

 

결혼에 대해 청년들과 얘기해보면 몇 년 사이에 아예 풍조가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나 호호당이 만나본 대다수 청년들의 경우 최근 들어 꼭 결혼하겠다는 젊은이를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젊은 여성들의 경우 결혼했으면 하는 마음은 있으나 과연 제가 결혼할 수 있을까요? 하고 반문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정말이지 60대인 나로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나 싶다. 자유롭게 살고픈 마음도 예전에 비해 많아졌지만 기본적으론 돈 그리고 수입의 문제라 여겨진다. 결혼을 하지 못하니 애를 낳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출산율이 저 모양일 수밖에.

 

(참고로 얘기하면 유교적인 통념이 강한 우리 사회인 탓에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다. 최근 OECD 국가들의 비혼 출산율이 상상 이상으로 높은 것에 반해서 그렇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오늘에 이르러 결혼 제도 자체가 붕괴해가고 있는 현실이다.)

 

 

國運(국운)의 겨울, 불임의 시대

 

 

가히 우리 대한민국의 國運(국운)이 한 겨울에 들어섰음이 분명하다. 겨울은 生産(생산)의 계절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우리는 不姙(불임)의 때를 보내고 있음이 확실하다.

 

청년층은 아니지만 내가 만나는 대다수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우리가 올 만큼 온 것 같다, 앞으로 올라가기 보다는 내려갈 공산이 더 큰 것 같다, 현 위치라도 지킬 수 있다면 다행이란 말을 흔히 한다.

 

 

행복하지 않은 2018년의 우리 사회, 원인은?

 

 

선뜻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운 사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들 녀석은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하는 기술이 나 호호당보다 훨씬 뛰어나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온 세상을 들쑤시고 돌아다닌다.

 

얼마 전 아들에게 우리 사회가 많이 불행해진 것 같아,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하는 질문을 던졌더니 “아빠, OECD Better Life Index 란 게 있어, 그 자료들을 살펴보면 나름 설득력이 있어” 하는 것이었다.

 

아, 그래? 하고 즉각 구글로 검색했다.

 

 

OECD Better Life Index

 

 

충분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에 대해 나름 일리가 있는 자료를 발견할 수 있었다.

 

OECD 국가는 현재 38개국이다. 11개 항목에 대한 지표가 있고 나라별 순위가 표시되어 있었다. 주거, 소득, 직업, 공동체, 교육, 환경, 시민참여, 건강, 삶의 만족도, 안전, 일과 생활의 균형(이른바 워라벨)이었다.

 

대다수 항목에 있어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게 나쁘거나 뒤처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가 유난히 뒤처지는 항목들이 3개 눈에 띄었다.

 

환경 지표에서 우리가 38개국 중에서 36등이었고, 워라벨이 35등이었다. 환경이 나쁘다고 되어있는 것은 사실 뜻밖이었다. 환경 항목은 수질과 공기오염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공기오염도가 38개국 중 꼴찌였다.

 

이런? 했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그래, 우리가 중국 옆에 붙어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구나 싶었다. (참고로 중국은 OECD 국가가 아니다.)

 

워라벨이 열악하다, 뭐 이건 당연히 인정한다. 지금 정부가 주52시간을 시행하고는 있지만 공직이나 대기업을 제외하면 현실은 무진장 열악한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면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는 직장이 허다하다. 게임 만드는 회사들이 특히 그렇다고 아들이 일러주었다.

 

그러니 우리 사회가 우울하고 사생활이 없다는 말을 들을 법도 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결정적인 항목이 하나 있다는 사실. 이제 공개하겠다.

 

바로 공동체(community) 항목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공동체라서 38개국 중에서 꼴찌 하는가 싶어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공동체란 항목 지표는 ‘Quality Of support network’이라 되어있다. 그래서 그게 또 무슨 말인가 해서 읽어보았다.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원문을 옮겨본다.

 

Percentage of people who believe they can rely on their friends in case of need.

 

우리말로 옮기면 ‘필요시 친구나 친지에게 의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백분율’이다.

 

 

인정이 메말라버린 2018년의 대한민국

 

 

바로 이 대목이 38개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였다. 처음엔 선뜻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에겐 오래 전부터 유교적 풍조로 인해 상부상조하는 전통이 있어왔건만 아니 이게 꼴찌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75.9%로서 꼴찌였다.

 

1위 국가는 아이슬란드(Iceland)로서 98.3%였다. 하기야 그 나라는 인구가 겨우 32만에 고립된 섬나라이다 보니 사실상 모두가 친족 관계인 나라이다. 그러니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 싶다. 그런 작은 나라가 이번 월드컵 본선에 나올 수 있었던 것 역시 전 국민이 남이 아니라 형제라서 팀워크가 좋을 수밖에 없다 싶었던 바로 그 나라 말이다.

 

중간에 위치한 수치를 눈짐작으로 보니 90%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는 75.9%였다. 이 정도면 나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 4명 중 1명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여기고 있으니 이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란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5천만 인구인 우리나라인데 그 중 1250만 명이 유사시 의지할 데가 없다는 말이 되니 사실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가 어느새 인정이 메마른 사회가 되고 만 셈이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인심이 사나운 나라 대한민국인 것이다.

 

며칠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처럼 건조하고 강팍한 사회가 되었지? 하는 질문을 놓고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우리나라는 대단히 급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친인척들이 모여 사는 고향을 떠나 오로지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면서 사실상 친척이나 친지와의 관계가 형식적인 것으로 남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설이나 추석 명절이면 아직도 열심히 고향으로 내려가긴 하지만 사실 이는 정이 있어서라기보다 체면과 눈치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 며느리들이 명절 스트레스가 많은 것 역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또 하나 드는 생각으론 우리가 그간 혈연이나 학연, 지연 등에 대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으로 여기고 배척해온 결과 결과 지나치게 緣(연)을 끊으며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촌이라 하면 사실 가까운 사이이지만 1년에 한 번 보기 어렵고 조카라 하면 명절 때나 얼굴 한 번 보는 정도로 우리 사회의 끈이 허약해진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니 유사시 의지할 데가 없다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한편으로 서양의 개인주의 성향을 우리가 무조건 추종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사회안전망 확충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최근에 툭 하면 사회안전망을 들먹이고 있지만 사실 이 문제는 정권이 바뀌거나 새로운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려워지면 믿을 놈은 나 자신밖에 없다 한다면 우리 모두 얼마나 외로운 사람들인가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6.25 전쟁 이후 나라를 건설해오는 과정에서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오늘은 8.15 광복절 새벽이다. 나 호호당은 이 시각 오전 4시 30분까지 그림을 한 장 그리고 또 이 글을 쓰고 있다. 2018년의 대한민국은 행복하지가 않다.

나자빠지기 직전에 이른 터키 경제

 

 

터키가 조만간 한 바탕 곤욕을 치를 모양이다. 발버둥을 쳐보지만 더더욱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여기에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더욱 주리를 틀자 터키 통화인 리라가 거하게 폭락했다.

 

사정을 좀 알아본다.

 

터키의 대외 부채는 4667억 달러이고 GDP 대비 55 퍼센트 정도이다. 주로 터키의 대기업들이 해외로부터 차입한 것인데 그 바람에 터키 기업들은 차입금 만기도래와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해마다 2천억 달러 정도를 지속적으로 조달해야만 한다.

 

그런데 불안을 느낀 해외은행들이 차환을 해주지 않거나 신규 대출을 해주지 않게 되면 즉각 외환위기 상태로 돌입할 판국이다. 해외로부터의 돈줄이 막히면 터키 경제는 그 즉시 마비된다는 얘기이다.

 

터키 중앙은행의 외환보유라도 충분하면 모를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외환보유고는 2013년 1,151억 달러에서 지금은 780억 달러로 대폭 줄어든 상태이고 갈수록 더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무역 수지는 어떨까? 알아보면 매년 4백억 달러 정도가 적자라서 정상적인 방법으론 외환보유를 늘릴 수 없다. 게다가 터키는 에너지 수입국이라서 적자를 벗어날 길이 현재로선 전혀 없다.

 

터키는 실업률이 11%이고 게다가 인플레이션은 최근 15%에 달하고 있다.

 

 

독재자 에르도안 때문에 금리인상의 시기를 놓쳤으니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진작부터 정책금리를 인상하려고 했지만 현 에르도안 대통령, 사실상의 독재자가 지지기반 상실을 우려한 나머지 그간 금리인상을 극력 막아온 바람에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의 사위를 재무장관에 앉힌 뒤 금리인상을 봉쇄해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사정이 더 악화되자 어쩔 수 없이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상을 허용했다. 이에 터키 중앙은행은 비로소 얼마 전 정책금리를 기존의 8%에서 17.75%로 인상했다. 그래야만 연간 인플레이션을 5% 정도에서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터키는 2003년부터 총리를 지낸 에르도안이 2014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세속국가라는 헌법조항을 위배해가면서 이슬람주의를 강화해왔고 이에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쿠데타 실패 이후 악화일로를 걷는 터키 경제

 

 

이에 나라의 장래를 걱정한 군부가 2016년 7월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불발에 그치면서 사정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엎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군부는 물론이고 지식인들을 대거 숙청하면서 이슬람 민족주의를 더욱 강화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금년 5월의 대통령 재선 과정에서 헌법까지 개헌했다. 15년간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이다.

 

이슬람에 바탕을 둔 민족주의 독재, 민중독재의 길을 가는 에르도안이다.

 

 

엉터리 경제성장으로 인해 이제 청구서가 날아들다

 

 

에르도안은 총리 시절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엉터리 성장이었다. 기업들로 하여금 대외 차입을 적극 독려해서 부채로 이루어진 엉터리 양적 성장이었으니 모래 위에 누각을 지은 셈이었다.

 

일자리 창출도 다분히 억지였다. 그는 2016년 5월 상공회의소에 나가 기업주들을 모아놓은 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직원을 최소 한명을 더 고용하라고 주장했다. 모든 기업이나 단체가 한명씩만 더 고용하면 대거 일자리를 창출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을 더 고용한다고 기업이 파산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기업의 규모를 늘리는 것이 이익을 더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독재국가답게 기업들은 대거 직원을 추가로 채용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가 급성장했고 대중들도 환호를 했지만 겨우 2년 만에 이처럼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대폭락한 터키 리라, 참담한 지경

 

 

그러니 터키 통화인 리라가 대폭락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문제는 하락도 어지간한 정도가 아니라 실로 엄청난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10년 전인 2008년 한 때 1 달러를 살려면 1.18 리라가 필요했으나 최근엔 무려 6.43 리라가 필요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달러의 값이 상대적으로 550% 오른 셈이고 거꾸로 터키 리라의 가치는 무려 82%나 하락한 셈이다. 한 나라 통화의 가치는 사실상 그 나라의 가치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터키의 값어치는 국제시장에서 82%나 하락한 것이다.

 

실감이 잘 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경우로 바꿔보면 된다. 금방 이해가 간다. 지금 1 달러는 대략 1,130원인데 이것이 무려 6,200원으로 오른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게 되면 휘발유 값도 그 비율대로 오를 것이니 지금 1600원대인데 이것이 8700원으로 오를 것이고 수입물가 전체가 그 비율만큼 인상될 것이다. 감당이 되겠는가.

 

터키 국민들의 생활고도 문제지만 기업들은 더 문제이다. 이제 기존의 대외부채를 연장하거나 대환만 한다 하더라도 환율 즉 달러 가격이 무려 근 6배 정도까지 올랐으니 터기 기업들에겐 그냥 환율 상승만으로도 부채가 6배 많아진 셈이다. 견딜 재간이 없다.

 

그러자 기업들의 부실도 엄청 늘어나고 있다. 터키 은행들의 기업 여신은 무수익 여신 비율이 무려 7%에 달할 정도이니 한계기업들이 속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빚으로 만들어낸 고속 성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일러주고 있는 터키이고 대중의 지지만으로 유지되는 권력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말해주는 전형적인 케이스라 하겠다.

 

 

맛이 간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면 이렇게 되나니

 

 

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줄여서 에르도안은 1954년생으로서 앞으로 5년 뒤인 2023 癸卯(계묘)년이 입춘 바닥이 된다. 따라서 현재의 운세를 한 해에 비유하면 양력 1월 초, 즉 小寒(소한)의 때라 보면 되겠다.

 

이처럼 맛이 간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니 터키 전체가 고생을 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유권자들이 에르도안을 선출했으니 심한 고생을 하더라도 그 또한 그들의 몫이라 하겠다. 自業自得(자업자득).

 

에르도안의 운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13년이 大雪(대설)이었기에 그쯤에서 물러날 생각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칠 줄 모르는 욕심으로 인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이 되었으니 모든 비극은 그 시점에서 시작된 셈이다.

 

터키의 경우 2001년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 이후 나름 개혁을 시도했으나 에르도안이라고 하는 포퓰리스트의 등장으로 또 다시 경제의 원천을 다 망가뜨리고 말았다.

 

 

난민 문제, 터키가 가진 비장의 카드

 

 

현재 터키가 믿는 구석은 난민 캠프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피난해온 난민이 무려 3백만 명이나 터키에 머물고 있다. 만일 대출해준 은행들, 주로 스페인과 프랑스 은행들인데 그들이 계속 대출을 연장해주거나 추가로 여신을 제공해주지 않을 것 같으면 난민 캠프를 치워버리고 국경을 개방해서 그들이 유럽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방치하겠다는 으름장의 터키이다.

 

유럽은 그 바람에 전전긍긍이다. 3백만의 난민이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 등으로 유입될 것 같으면 도저히 감당이 불가능한 일인 까닭이다. 사실 이런 카드가 없었다면 터키는 진작 디폴트를 선언했을 것이다.

 

 

호호당의 추산

 

 

하지만 나 호호당의 계산, 터키의 국운으로 볼 때 내년 2019년 정도에 터키는 큰 나리가 날 것이라 본다. 에르도안 정권 역시 올해까진 버틸지 몰라도 내년 정도면 무너질 것으로 판단한다.

서울만 이렇게 덥다니 이거야 원

 

 

오후 4시 현재 서울은 34도이고 도쿄는 32도, 베이징은 27도이다. 우리가 제일 덥다. 어째 이런 일이. 그뿐 아니다, 남쪽의 타이베이는 33도, 베트남의 하노이는 32도, 방콕은 30도이니 우리나라가 동아시아 일대에서 가장 뜨겁다는 사실. 아니 이런!

 

올해 우리나라 여름 기후는 정말이지 사실상의 재앙 수준이다. 뜨거운 공기가 유독 우리나라만 에워싸고 있다. 한 밤에도 30도이니 에어컨을 틀고는 있지만 한편으로 전기요금 걱정을 한다.

 

간밤 뒷산에 강아지들을 데리고 올랐더니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습하고 더운 공기로 해서 금방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매일 밤 지켜보는 화성과 토성도 구름이 껴서 보이지가 않았다.

 

무심결에 이건 팔열지옥이다!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불교의 八熱(팔열)지옥. 여덟 가지 뜨거움이 있어 그 단계가 점점 더 치열해진다고 해서 팔열지옥인데 올 여름 우리나라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大焦熱地獄(대초열지옥), 온몸이 새까맣게 불타서 재 가루로 변하는 와중에도 의식은 있어서 엄청난 고통을 받는 지옥, 그리고 阿鼻焦熱地獄(아비초열지옥), 다른 말로는 無間地獄(무간지옥)인데 이 지옥이 우리 한반도로 옮겨온 것이 아닌가 싶다.

 

無間地獄(무간지옥)이란 말이 과장도 아닌 것이, 한낮에 달구어진 보도 위를 걷노라면 뜨거운 열풍에 몸을 데이고 기관지가 막힐 것 같고 새벽에 가장 서늘한 때가 28도의 열대야이니 정말 올 여름이야말로 조금치도 휴식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니 그렇다.

 

이제 이틀 후면 立秋(입추), 가을 기운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는 때이다. 夏至(하지)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났으니 해도 좀 짧아지고 있으나 그 사이에 잔뜩 데워진 땅이 식으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이번 더위는 역시 8월 23일의 處暑(처서)는 지나야 하겠다. 과연 가을이 올까? 그래도 오겠지 뭐.

 

 

유달리 더운 것도 역시 나라의 운인 것이니

 

 

그래 이 또한 나라의 운이구나 싶다. 運(운)이란 움직인다는 뜻도 있지만 원래는 되돌아온다는 의미이다. 돌이켜보면 1994년 여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너무 더웠다. 그런데 올 해는 더한 것 같다.

 

운을 영어로는 찬스, chance 라고 한다. 기회라는 뜻도 있지만 원래는 運(운)이란 더 강하다. 찬스는 기본적으로 50 대 50 이다. 그러니 뜨거운 여름도 있고 서늘한 여름도 있기 마련이다. 다만 이번엔 뜨거운 여름이 되었는데 이 또한 우리의 운인 것이다. 지구온난화? 그런 거창한 것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먹고 살기 힘든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데 저 엄청난 무더위까지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다. 無心(무심)한 하늘이 아니라 뭔가 有心(유심)한 것도 같다.

 

 

본 게임으로 들어서고 있는 북한 문제

 

 

6월에 있었던 트럼프 김정은 회담 이후 비핵화 문제가 이제 서서히 본 게임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미 김정은을 불러 몇 번 환대해주었던 중국이 우리도 당연히 종전선언에 참여하겠다면서 극력 나서고 있다. 중국도 이 게임에 持分(지분)이 있다는 얘기이다.

 

중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반도에서의 미군 철수와 함께 한미 동맹을 와해시켜보자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북한과 우리 모두 그들의 세력권 안으로 끌어들여 복속시키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지면 다양한 루트를 통해 북한을 발전시켜주면서 미국의 세력 범위 안으로 넣고 그로서 중국에 가하는 전략적 포위망을 좀 더 밀도 있게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북한 아니 김정은의 가장 큰 어려움이자 걱정은 비핵화와 그 이후 경제발전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게 김정은 자신의 독재체제 유지에 문제가 없겠는가 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어려움 또한 적지 않다. 일단 군사적 긴장 국면에선 벗어날 수 있었다 해도 지금부터가 더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할 독자적 역량은 아직 어림도 없다 하겠고, 어떻게 해서든 독재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북한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어가면서 민족적 동질성을 만들어내는 일 역시 대단히 난감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크게 다행한 일이 있었던 것만큼은 사실이라 하겠다. 은둔의 독재자 김정은이 더 이상 정신 나간 비정상의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북한 주민들의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정상적인 인간이란 점을 이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앞으로 또 다시 일이 꼬여서 갈등이 생긴다 해도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막가파식의 벼랑끝 전술을 사용하기란 어렵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번 북미 회담에의 가장 큰 성과는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김정은 스스로가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라 여긴다.

 

제가 여차하면 내 책상 위에 있는 핵미사일 버튼을 확 눌러버리고 까짓 거 죽어버리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 역시 잘 살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했던 김정은이었다.

 

이에 앞에서 얘기한 미국과 중국, 우리와 북한, 이렇게 4자간의 복잡한 요구와 셈법이 상당히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는 결국 시간과 세월이 해결해줄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된다.

 

특히 멀지 않아 중국이 내부로부터 거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니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정말로 좋은 계기가 생겨날 것이라 본다. 올 해 들어 1인 체제로 돌변한 중국은 독재의 명분을 확보하고 과시하기 위해 계속 무리를 할 수밖에 없고 결국 탈이 날 것으로 본다.

 

 

몹시 궁금한 7월의 설비투자와 고용동향

 

 

말머리를 돌린다. 통계청이 곧 발표하게 될 저번 7월의 고용동향이 정말 궁금하다. 설비투자 동향도 궁금하다. 설비투자와 고용은 함께 움직이는 지표인 까닭이다.

 

그리고 특히 운의 흐름을 살피는 나 호호당의 입장에선 7월의 내용이 중요하다. 戊戌(무술)년 己未(기미)월인데 그 내용을 알면 장차 이어질 45개월의 흐름을 내 나름 예측하고 짚어내는 기초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그동안 SOC 투자를 줄일 예정이었는데 오늘 뉴스에 보니 여름휴가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혁신을 강조하면서 “생활 SOC에 대한 과감한 투자도 주문하고자 한다”면서 결국 SOC 지출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생각인 것 같다. 수개월째 이어진 고용 부진과 최저임금 문제에 대한 보완책이라 본다.

 

또 문 대통령이 말하길 “경제 침체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모든 경제팀들이 힘을 모아 더욱 분발해 달라”고 당부한 것을 보면 시중 경제연구소들이 제기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장기 침체론에 대해 상당히 우려가 많은 모양이다.

 

이 대목에 대해 나 호호당의 생각을 말하면 이렇다. 앞에서 언급한 바, 지난 7월의 수치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실은 같은 맥락이다.

 

 

장기침체냐 아니냐의 여부는 곧 결정이 난다.

 

 

우리 경제가 장기침체로 가느냐 아니면 그런대로 이어가느냐 하는 문제는 7월부터 10월 사이에 결정된다는 생각이고 늦어도 올 11월이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나 호호당도 사실 걱정이 많다.

 

복잡다단한 정치게임

 

또 오늘은 흥미로운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딴지일보의 김어준 씨가 한 말이 재미있다. 이재명 지사를 ‘절대 악’으로 만들어서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까지 연결하려는 작업이 진행 중이란 말이 그것이다.

 

사실 꽤나 궁금하다, 이재명 지사를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작업의 주체가 현 정권 내부에 있는지 아니면 야당 쪽에 있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여권 내의 차기 대선을 놓고 벌어지는 경쟁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김어준의 말처럼 야당 쪽인지 아리송하다는 얘기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아무튼 2018년 立秋(입추), 한 해의 반환점을 눈앞에 둔 현 시점에서 좋고 반가운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그저 바라건대 전기료 누진세라도 좀 더 신경을 써서 적절하게 경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35년 전에 시작된 旅程(여정)

 

 

워낙 오래 전의 일이다. 1982년 12월 또는 1983년 1월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35년 전의 일이었다. 한창 추울 때였는데 그 날은 아주 포근해서 아파트 주변을 따라 산책을 하던 나는 약간 땀이 나서 벤치에 앉아 잠깐 쉬기로 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으레 사색에 잠기게 되는데 그때 나는 이른바 운명학이란 것의 진위 여부를 놓고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 쉽사리 결론을 얻을 수 없었다.

 

사실 그 문제는 그날따라 생각이 났던 것이 아니었다. 나 호호당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1971년이었다, 사주보는 책을 한 권 구입해서 읽은 것이 인연이 되어 이미 10년 이상 운명학에 대해 나름 많은 공부와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게다가 직장에 들어간 뒤 책을 사볼 여력이 생긴 나는 중국에서 나온 운명학 방면의 原典(원전)들을 전부 사서 읽어본 터였다. 중국 청나라 시절 건륭제의 명으로 편찬된 四庫全書(사고전서)에 포함된 이 방면의 방대한 서적들이 影印本(영인본)으로 출판되어 있었기에 거금을 들여 그 책 전부를 통으로 구입해서 읽기도 했다.

 

출처를 정확히 말할 것 같으면 사고전서 子部(자부) 術數類(술수류)에 속한 수백 권의 책들이다. 구입처는 당시 인사동 거리에 있던 동문선 출판사가 운영하던 동양학 서점이었다. (그 책방은 장사가 지지리도 되지 않아서 얼마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하기야 옛 한문으로 된 책들이 잘 팔릴 까닭이 없었다.)

 

 

긴가민가, 마치 鷄肋(계륵)과도 같았던 운명학

 

 

책을 모조리 열심히 읽어보았지만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긴가민가했다. 거짓이라고 하기엔 나름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 그렇다고 전적으로 신뢰하기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즉 耳懸鈴鼻懸鈴(이현령비현령)격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었기에 아리송할 따름이었다.

 

버리자니 아쉽고 가지자니 미심쩍은 바가 많아서 몇 달에 걸쳐 시간이 날 때마다 숙고를 했으나 여전히 단안을 내릴 수가 없던 문제였다.

 

그렇기에 그 겨울의 포근했던 날 산책을 하면서도 그 문제 아니 숙제를 머릿속으로 열심히 궁리하고 있었던 나였다.

 

운명학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사주를 보러 갔었는데 지난 과거의 일은 잘 맞히는데 다가올 미래에 대해선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틀린 경우가 많더라는 말이 그것이다.

 

나 호호당 역시 그런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럴 바엔 그건 믿을 수 없는 것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운명학의 전 방면에 걸쳐 소상하게 구석구석 잘 숙지하고 있던 내 생각에도 그렇다면 그건 아니다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전적으로 믿을 수 없어서 버리기엔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런데 그 날 벤치에 앉아있던 나는 문제를 새롭게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운명학의 기본 전제는 틀린 것이 아니라 해도 오랜 세월 속에서 여전히 이론적으로 검증이 충분치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나아가서 아직 미처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학문과 이론은 꾸준히 발전하는 것이니 말이다.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심한 오한을 느낀 나머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집에까지 몸을 덥히기 위해 뛰어갔다. 아차, 이거 이러다가 감기 걸린 거 아닐까 하는 걱정과 함께.

 

다행히도 감기에 걸리진 않았다. 그 날 밤 나는 그게 그렇다면 여태껏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운명의 이치에 대해 내 스스로 한 번 밝혀보리라 하는 마음을 굳혔다.

 

 

가보지 않은 여정에 나서다

 

 

1982년 말인지 1983년 초인지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게 되었다.

 

원래 이런 術數(술수)에 관한 학문은 고대 천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동서양의 천문학이 발전해온 경로에 대해 일단 연구하고 고찰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전혀 다른 방면의 책을 읽던 중에 묘한 단어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은행에 다니던 나는 아르바이트로 외국 서적 번역 일을 좀 하고 있었다. (그 결과 내 이름으로 번역된 책이 네 권이고 유명교수의 이름으로 번역된 책은 좀 더 된다.)

 

 

프톨레마이오스와의 만남

 

 

모 출판사를 통해 책 한 권의 번역을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터라 우선 그 책을 읽고 있던 중 그 단어를 발견했다.

 

'에피사이클'이란 단어였다. 영어로 epicycle. 처음 접한 단어라 이게 뭔가 싶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周轉圓(주전원)이라고만 나와 있었다. 한자를 통해 대충의 의미는 알 수 있었으나 충분히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공도서관에까지 찾아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졌더니 제법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 뜻인 즉 어떤 큰 원의 圓周(원주)위를 따라서 굴러가는 圓(원)이며 고대 천문학과 지리학의 대가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天動說(천동설)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개념이라 되어 있었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기 이전 시절의 최고 천문학자였던 그 양반 말이지! 생전 처음 접한 단어이자 개념이며 동시에 천재 천문학자가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것을 주장할 때 사용한 것이라니 나로선 정말 참신하게만 느껴졌다.

 

사람들은 천동설이 틀렸다는 것만 알고 있지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말 얼마나 대단한 천재였는지는 잘 모른다. 이데아를 주장한 플라톤이나 서양 학문의 시조인 아리스토텔레스 급의 천재였던 프톨레마이오스이다.

 

알아보니 에피사이클이란 개념이 들어가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책은 그 제목이 ‘알마게스트’라고 하는 것이었다. 저 건 또 무슨 뜻이지 싶어 알아보니 ‘위대한 논문’이란 뜻의 그리스어 명칭에 대해 이슬람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참고로 얘기하면 중세 시절 이슬람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학문을 가져가서 더 발전시켰고 그것이 다시 서양으로 유입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고대 그리스 철학과 사상 그리고 그 서적들은 서양의 경우 중세 암흑기를 거치면서 거의 멸실했다가 그 이후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통해 이슬람 세계로부터 역수입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역시 그랬었다.)

 

더 알아보니 알마게스트란 책의 영문판이 미국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얼마 전에 발간되었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고 이에 교보문고 외국서적 구매 서비스를 통해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너무나 편한 세상이다. 인터넷에 가서 구글이나 아마존, 위키 등을 검색하면 불과 몇 분 안에 거의 모든 정보를 알아볼 수 있고 책 역시 주문하면 1-2주면 입수할 수 있는 세상이다. 1980년대 초반 당시 내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에피사이클이란 단어를 만난 뒤 알마게스트란 책이 있으며 그 책을 주문해서 손에 넣을 때까지 무려 몇 달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좋은 세상이다.

 

아무튼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에피사이클’이란 개념을 통해 여태껏 밝혀지지 않은 운명학의 이치를 탐구하는데 있어 하나의 돌파구를 얻을 수 있었다.

 

 

본의 아닌 생고생을 하게 되다.

 

 

하지만 고생 좀 많이 했다. 알마게스트를 읽다 보니 히파르코스라고 하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지리학자, 수학자가 남긴 기하학 이론과 접하게 되었고 또 그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결국엔 흔히 유클리드의 기학학 원론, 정확히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까지 생고생하며 읽고 또 공부해야 했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사실 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나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철학자와 수학자, 기하학자들에 대해 엄청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정말 천재였다!

 

지금 나는 1971년에 운명학과 인연이 닿는 바람에 1983-1984년 무렵부터 시작된 나 호호당의 탐구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이지 그건 참으로 여행이자 旅程(여정)이었다. 직장에선 남들처럼 충실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퇴근하고 나면 내 영혼은 자유롭게 고대 학자들의 세계는 물론이고 앞 사람이 밟아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었으니 그건 진정 여행이자 여정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얘기이다.

 

 

주식투자의 세계와 연이 닿는 바람에

 

 

1983년 후반기였다. 당시 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주식투자 또는 투기였다.

 

이에 어떤 고수 선생으로부터 한 수 배우게 되었는데 매일 매일 주식 시가 변동을 그래프로 직접 그려보면 실력이 크게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1980년 초반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클릭하면 볼 수 있는 주식 차트 따윈 아예 없던 시절이었다.)

 

이에 나는 그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서 매일 밤 방안지에 시세변동을 연필로 그려보고 있다가 갑자기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쩌면 주가변동이야말로 운세의 변화가 수치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 역시 에피사이클로서 설명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갑자기 신이 났다. 잘 하면 운명의 이치도 알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식 시세를 잘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돈도 잘 벌 것이고 그러면 직장 때려치우고 연구에 전적으로 몰두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달콤한 생각이었다. 당시 내 나이 서른이었으니 능히 그런 욕심이 들 법도 했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 어떤 경로를 밟아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간단히 써볼 생각으로 시작한 글이었는데 정작 쓰다 보니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어쩌면 몇 번에 걸쳐 써야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의 제목을 글을 다 쓰고 나서 붙이는데 이번 글엔 제목을 ‘굽이굽이 걸어온 호호당의 탐구 여정“이라 붙인다. 진정으로 그건 나 호호당의 평생에 걸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지금 시각은 8월 6일 새벽 4시 28분, 날이 밝아오고 있다.

 

(알리는 말씀: 오는 토요일 11일 자연순환운명학 기초반 강좌가 시작된다. 아직 기한이 남았기에 지적 호기심이 있으신 분들의 많은 신청 기다린다. 구체적인 내용은 강좌안내 란에 있으니 참조하시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