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의 榮華(영화)와 15년의 역경
앞글에서 60년에 걸친 순환이 있기에 그 중 길게는 15년, 짧게는 10년 정도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란 말을 했다.
사실 이 말은 삶에 있어 길게는 15년, 짧게는 10년의 榮華(영화) 또한 있다는 말도 된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가 워낙 경쟁이 치열한 탓에 우리 모두 위만 바라보지 밑은 보지 않도록 길들여져 있는 게 문제, 이에 15년에서 10년에 이르는 영화의 때를 보내고 있어도 그게 그런 줄 알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란 점이다.
가령 당신이 ‘보통의 사람’이라면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게 영화의 때이고 한 때인 것인데,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위 더 높은 곳만 바라보다가 나중엔 더 낮은 곳으로 쓸려들게 되니 안타깝다.
이제 주제로 돌아가자.
슈퍼스타 감사용
예전에 “슈퍼스타 감사용”이란 영화가 있었다. 2004년 영화로서 흥행엔 실패했으나 나름 의미가 있는 영화였다고 여긴다. 영화는 프로야구 초창기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의 감사용 투수를 소재로 한 영화였다.
(참고로 삼미 슈퍼스타즈는 모 기업의 해체로 인해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에 이어 오늘날 SK 와이번스로 변천해왔다.)
즉 감사용 투수는 실존 인물이란 얘기이고 지금도 진해 리틀야구단의 감독 일을 잘 하고 있다. 그 양반이 겪은 인생의 역경을 소재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957년생인 감사용 씨는 1994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따라서 그를 전후한 15년의 세월이 역경의 기간이었다는 말이 된다.
아마추어 쪽에선 무척 뛰어난 투수였던 그는 1982년 삼미 슈퍼스타스의 투수로 발탁되었다. 입춘 바닥으로부터 12년 전이니 사실 그 때가 야구선수로선 최절정의 때였다. 입단 당시가 최고의 시절이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열심히 던지고 많이 던졌으나 성적은 영 아니었다, 겨우 1승만을 거두었다. 물론 삼미 슈퍼스타스 자체가 약팀인 이유도 일부 있었다.
그 바람에 그는 1986년을 끝으로 5년간의 프로야구 투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슈퍼스타의 흑역사
1994년이 입춘 바닥이니 그로부터 7.5년 전을 계산해보면 대략 그 무렵이 된다. 즉 감사용 씨는 그때부터 역경의 세월을 만난 셈이다. 그 이후 구체적인 것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그가 다시 야구에 복귀한 것은 2006년이었다. 즉 1986년 이후 근 20년의 세월 동안 과연 감사용 씨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생계를 이어갔을까? 야구하던 사람이 야구를 떠났으니 힘들게 살았을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1994년을 전후한 15년의 삶은 그야말로 그에게 黑歷史(흑역사)였을 것이 분명하다. 본인과 가까운 이가 아니면 전혀 모른다, 어둠에 덮여있다. 그 15년의 기간은 1957년인 그 분에게 서른 살에서 마흔 중반까지의 세월이었을 것이니 좋은 세월 어둠 속에 모두 묻었다 하리라.
마침내 길을 열은 감사용
2006년에 그는 국제디지털대학교 야구팀의 감독을 맡았지만, 그 역시 현역 시절처럼 단 1승만 거두고 1년도 채 안 되어 팀이 해체되었다. 또 다시 얼마나 좌절했을까나!
하지만 그에겐 또 다시 좋은 기회가 주어졌으니 2007년부터 고향인 진해시의 리틀야구단 감독을 맡아서 지금까지 줄곧 야구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되살아난 것이다. 길고 긴 어둠의 세월을 보낸 뒤 또 다시 살아난 것이다. 또 다시 힘차게 야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감사용 투수이고 감독이다.
야구를 지망했던 사람이 평생 야구를 하면서 살아간다. 이게 바로 성공이고 사실은 대성공이다. 그 분 스스로도 더 이상 바람이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밥을 먹고 살 수 있으니, 최근 젊은이들이 일컫는 바 德業一致(덕업일치)의 길을 걷고 있다, 대성공이다.
감사용 그 분의 命(명)은 야구였고 運(운)은 1986년부터 근 20년, 이면을 보면 정확하게 15년 동안 어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성공했다. 다시 살아났다.
1987년부터 추운 겨울을 보낸 셈이고 1994년 초봄을 맞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삶’을 보낸 끝에 2006년엔 야구로 되돌아오는데 성공한 감사용 씨.
짐작컨대 그 사이에 이런저런 일을 해보았지만 모두 신통치 않았을 것이고 이에 마침내 어쨌거나 야구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노력한 결과 야구로 되돌아오는데 성공한 감사용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역경의 세월에서 신속하게 벗어나는 신통한 방법은 없다고 앞글에서 얘기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세월 속에서 열심히 길을 찾다 보면 이에 세월이 가서 연수가 채워지면, 겪을 것을 다 겪고 나면 희한하게도 살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삶과 운명의 이치라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이제 길은 찾았지만 더 이상 그 길을 갈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우리 프로야구에 있어 영원한 전설의 투수 최동원의 경우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 최동원
최동원은 나 호호당의 고등학교 3년 후배이고 훗날 그가 암흑의 약사를 쓰고 있을 시절인 2000년대 초중반 무렵 우연한 계기에 만나서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많은 정을 나누었다.
1958년생인 최동원은 1971년이 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였고 1984년엔 코리언시리즈 4승의 성적으로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하는데 있어 大功(대공)을 세웠다. 그는 현역인 류현진 투수와 함께 우리 프로야구 스타 중의 대스타였다.
최동원의 흑역사
그런 그가 1971년 입추의 운으로부터 30년이 흘러 2001년엔 입춘의 운을 맞이했다. 따라서 그 역시 2001년을 전후한 15년의 세월이 암흑기가 되었다.
1991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퇴를 한 그는 이후 그간에 모은 적지 않은 자금으로 의류사업가로 나섰다가 크게 털어 먹었으며 또 무리하게 정치에 입문하여 출마했지만 낙선하면서 바닥으로 떨어져갔다. 그러자 방송인으로 데뷔하기도 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급기야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01년 입춘 바닥의 해에 스타 출신을 인정받아 한화의 투수 코치를 맡게 되었으나 곧 그만 두게 된다. 나중에 내게 솔직히 털어놓길 후배 선수들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건 자네가 아직 스타 시절을 잊지 못한 탓이 크다고 지적하자 발끈-하고 화를 내는 최동원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어서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처럼 최동원의 문제는 현역 시절 너무나도 대스타였다는 점이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과거의 엄청난 영광이 오히려 그의 발길을 묶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동원은 너무나도 괴로워했다. 괴로울 땐 나를 찾아와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연신 들이키곤 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自虐(자학)의 시절을 보냈던 최동원이었다. 그러자 대장암에 걸렸다. 병을 부른 셈이고, 눈앞의 세월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라 여긴다.
2006년 이후 그를 보지 못했다. 그저 신문지상을 통해 그가 암투병 중이란 소식만 접했다. 그리고 2011년 그는 53세의 나이로 他界(타계)했다. 소식을 접한 나는 혼자서 그를 추억하고 또 추모하면서 많은 눈물을 쏟았다.
감사용과 최동원
프로야구 전적 ‘꼴랑’ 1승의 투수 감사용, 최고의 전설 최동원, 나는 늘 이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본다.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했지만 스타가 될 수 없었던 감사용,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로서 승승장구했던 최동원,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오늘날에도 잘 살고 있는 감사용, 인생 중년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최동원.
굳이 승자를 가리진 않겠다.
하지만 역경에 처했을 때 감사용은 살고자 애써 길을 찾았고 마침내 살 길을 열었다. 최동원은 역경을 견뎌내지 못했다, 이에 몸을 다치고 세상을 떠야 했다.
역경이란 것 긴 인생 살다 보면 으레 만나게끔 되어있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살게 되어 있고 나중엔 잘 살 수 있는 인생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책만 하면 그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역경에 처해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긴다면
정리하면 스스로를 아끼고 소중히 하는 자는 긴 역경의 세월을 보내고 더 단단하고 튼튼해져서 힘차게 좋은 인생을 열어가게 된다는 얘기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 逆境(역경)의 때로 들어서고 있다. 2024년이 입춘 바닥이니 이제 初入(초입)이고 시작인 셈이다. 나라가 어려우면 정도의 차이야 있겠으나 그 안에 몸을 담은 우리들 모두 어려워질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2024년을 전후한 15년의 힘든 세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휩쓸려가게 될 지.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충동적으로 나서거나 겁에 질려하지만 말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면서 굳은 의지를 다져나간다면 또 다시 좋은 세월 맞이한다는 얘기를 하고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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