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처럼 생긴 ‘듣보잡’ 감독의 놀라운 능력

 

 

저 감독은 생긴 게 꼭 아줌마네 아줌마, 크로아티아 시합을 관전하면서 아들에게 건넨 말이었다. 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그래, 아빠. 아들의 변이었다. 그런데 그 아줌마처럼 생긴 ‘듣보잡’ 감독이야말로 결승에 진출한 크로아티아의 진정한 비밀병기였다는 사실.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게임이지만 축구는 그야말로 감독의 역량에 달려있다. 축구에 관심 있는 팬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크로아티아하면 일단 모드리치가 떠오른다. 그런데 저 모드리치가 저렇게나 체력이 좋았던가! 저 놈 약 먹은 거 아냐? 역시 아들에게 건넨 멘트였다.

 

 

전 선수들을 죽도록 뛰게 만든 놀라운 리더십

 

 

기억하기로 모드리치가 대단한 선수인 것은 확실하지만 저렇게 악착같이 뛰어다니는 모습은 이번 월드컵이 처음이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모드리치만이 아니라 전 크로아티아 선수들을 죽도록 뛰게 만든 이는 바로 저 아줌마처럼 생긴 무명의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목요일 새벽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시합을 지켜보던 나는 전반 후반을 1대1로 끝내고 연장전에 들어갈 무렵이 되자 크로아티아가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전까지도 나는 잉글랜드가 이길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연장전에 들어가자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더 살아서 생생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앞의 두 게임 모두 연장전을 치르고 승부차기를 거치면서 올라온 크로아티아였고 평균 연령도 크로아티아가 많다고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는 1명의 선수도 교체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장전에 들어간 마당에 모든 선수가 더욱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지, 저 괴력은?

 

역시 ‘국뽕’이 마약보다 더 센 거 같다는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기다렸다가 승부수를 띄운 감독의 놀라운 전략

 

 

그런데 크로아티아 감독은 연장전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교체선수들을 차례로 투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주키치의 역전골이 터졌다. 그 순간 아, 그렇구나, 저 아줌마 감독이 연장전까지 예상하고 교체선수들을 아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반면 영국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교체 선수가 다 써버린 탓에 부상 선수를 교체할 수가 없었다.)

 

크로아티아의 진정한 비밀병기는 감독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진정한 비밀병기는 모드리치나 만주키치같은 선수들이 아니라 엄청난 조직력을 이끌어내었을 뿐 아니라 저들을 정말 죽도록 달리게 만든 저 아줌마 감독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간만에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가 이탈리아에게 역전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경기가 크로아티아의 승리로 끝나자 강렬한 감동이 내 가슴을 강타했다.

 

우와 저건 감독이네, 감독, 그렇지 아들? 아들 답하길 응, 맞아. 영웅 감독이 그렇게 탄생하고 있었다.

 

야, 아들 저 감독 생년월일 검색해봐, 빨리. 아들이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줄라트코 달리치의 운세 분석

 

 

즐라트코 달리치, 참 이상한 이름의 이 사나이는 1966년 10월 26일생이었다. 丙午(병오)년 戊戌(무술)월 戊午(무오)일.

 

생시를 모르니 올 해 2018 무술년이 立秋(입추) 아니면 立春(입춘)이 된다. 그래서 위키에 올라온 달리치의 캐리어를 검색해보니 금방 알 수 있었다. 올 해 2018년으로서 저 친구는 立秋(입추)의 운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직 결승전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크로아티아의 우승 여부를 떠나서 최고의 스타는 바로 저 달리치 감독이다. 스타 탄생.

 

세 번의 게임을 모두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올라온 팀이니 선수들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났을 터, 당연히 프랑스의 우승 가능성을 점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지금부터는 나 호호당을 완전히 매료시킨 저 크로아티아 선수들과 달리치 감독에 대해 베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데가 어린 나이에 못된 버릇부터 배운 얄미운 움바페를 생각하면 더욱 크로아티아를 응원하게 된다.)

 

 

크로아티아를 응원한다 그리고 베팅한다.

 

 

이미 합리성이나 이성 따윈 접어두기로 했다. 그저 저 멋진 크로아티아와 감독의 기적적인 우승을 기원한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에 베팅한다. 돈을 걸라고 해도 기꺼이 걸겠다. 잃어도 좋다, 이럴 때 질러야지 언제 지르겠는가!

 

기껏해야 축구의 변방인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의 프로팀 감독직이나 맡아봤던 사람이다. 유럽 축구계에서 볼 때 잘 해야 C 클래스의 무명 감독 경력이 전부인 그가 인구 4백만의 작은 나라 선수들을 이끌고 세계 축구의 최정상 결전장인 월드컵에 나와 결승에까지 진출시켰다.

 

물론 크로아티아, 월드컵 4강의 경력을 지닌 나라이다. 선수들도 유럽 프로팀에서 뛰고 있기에 수준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번에 크로아티아가 결승에까지 오를 것을 예상한 전문가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었으랴. 기껏 16강이나 8강 언저리에서 탈락하면 그래 그 정도면 잘 했어 하는 평가를 받았을 크로아티아였다.

 

역시 축구는 감독의 게임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줄라트코 달리치, 그의 운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제 세계 축구의 주 무대에 등장한 셈이고 앞으로 18년 정도는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갈 대스타 감독의 데뷔 무대가 바로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이었다.

한 해의 반환점에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

 

 

저번 주 7일은 小暑(소서)이었고 이로서 한 해의 절반, 즉 반환점을 통과했다. 그런데 좋지 않은 소식, 미국과 중국이 결국 무역전쟁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역전쟁 개시와 동시에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이 중국과 대만 사이의 바다인 ‘대만해협’을 (강행) 통과했다, 무력시위인 셈이다.

 

1988년 미국 의회는 일본으로부터의 무역 적자를 시정하기 위해 이른바 ‘슈퍼 301조’를 통과시킨 뒤 일본 자동차 수출에 대해 법을 발동했다. 그러니 이번 일은 그로부터 30년만의 일이다.

 

당시는 일본이 위협이었던 것이고 이번엔 중국이 미국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일본과는 달리 글로벌 패권까지 넘보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갈등 국면은 당시보다 훨씬 강도가 세다고 할 수 있다.

 

 

30년 만에 다시 시작된 패권 전쟁

 

 

흥미로운 점은 이번 무역전쟁은 1988년으로부터 30년만의 일, 30년은 60년 순환의 절반에 해당되는 때란 점에서 글로벌 형세는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하겠다.

 

이번 미국의 관세 조치를 전쟁으로 치면 일종의 前哨戰(전초전) 성격이 짙다. 일단 중국 제품 340억 달러에 대해서만 25% 관세부과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 주 뒤에 추기로 160 억 달러에 관세를 부가할 방침이라 하는데 그렇게 될 경우 중국의 전체 대미 수출액의 10%에 해당된다. 그렇기에 전초전이란 말을 한다.

 

중국의 대미 수출은 2017년의 경우 5,055억 달러였기에 이번에 일단 그 1/10에 대해서만 관세조치를 취한 것이고 향후 중국이 계속 버티면 중국의 대미 수출 전체에 대해 관세조치를 취하겠다는 트럼프이다.

 

반대로 중국의 미국으로부터 수입액은 2017년 1,299억 달러였다. 중국이 미국과 동일한 25%의 관세율을 적용할 경우 액수만 놓고 보면 훨씬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중국은 관세 보복에 더하여 또 다른 방법, 즉 비관세 장벽을 최대한 가동할 가능성이 크다.

 

비관세 장벽이란 간단히 말해서 중국에 진출해있는 미국 기업들을 상대로 골탕을 먹이거나 통관 지연 등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는 것을 말한다.

 

이미 당장 중국 당국은 관영 미디어를 동원해서 미국 여행이 무척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되풀이해서 내놓고 있다. 이는 보나마나 중국 당국이 자국 중국 관광객의 미국 여행 금지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는 일종의 협박이라 하겠다.

 

(참고로 얘기하면 중국 관광객들이 미국 여행에서 지출하고 있는 비용은 연간 332억 달러, 일본인들이 미국에서 지출하는 160억 달러의 두 배에 달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우려되나니

 

 

문제는 우리 경제이다. 우리의 수출 구조는 미국에 대한 직접 수출도 크지만 부품이나 중간재를 중국으로 수출하고 그곳에서 완성된 완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되는 비중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치고 받는 무역전쟁은 우리 경제에 막대한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경제는 온통 惡材(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판국에 미중 무역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비롯해서 여러 방면에서 대응책을 내놓음으로서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이번의 미중 무역전쟁처럼 우리로선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환경 즉 글로벌적인 환경변수들은 예전보다 더 나빠지고 있다.

 

이제 너그럽던 개방형의 글로벌 리더 미국은 더 이상 없다는 사실, 트럼프의 표현처럼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인의 돼지 저금통’이 되진 않겠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 전쟁,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

 

 

해마다 양력 7월에 있는 小暑(소서)와 大暑(대서) 무렵이면 그 해의 行路(행로)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법인데, 이번 소서엔 등장한 일은 미중 무역 전쟁이었으니 올 한 해는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되고 있다.

 

일단 일이 터진 이상 미중 양국이 쉽사리 타협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 본다. 타협이 실패했기에 무역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두 나라 모두 단단히 각오를 하고 시작했을 것이니 그렇다.

 

예전 일본의 경우 군사적으로 미국의 보호국이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군말 하지 않고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일본 경제의 파국을 초래했고 그로서 기세등등하던 일본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니 중국은 이번 미국의 공세에 대해 나름으로 끝까지 해보겠다는 결의를 단단히 벼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중국은 1당 체제 나아가서 사실상 1인 독재 체제란 점에서 어지간한 어려움 정도는 통제할 수 있으니 능히 버텨나갈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미중 무역전쟁은 시작된 이상 꽤나 오래 이어질 공산이 크다.

 

 

어려운 우리 경제에 대한 또 하나의 외부 악재

 

 

물론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우리만의 경우는 아니다.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의 피해가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수출은 우리 경제의 제1차적인 버팀목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일이 장기화될 경우 우리에게 미칠 악영향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란 점이다.

 

이미 일부 경제연구소에선 올 하반기부터 급격한 내수경기 불황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경기 후퇴 국면을 넘어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얘기이다.

 

신규 취업 부진, 기업의 투자 부진, 가계 부채로 인한 소비 위축, 반도체를 제외한 전반적인 산업 경기 부진 등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악재들이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미중간의 무역 전쟁까지 터졌으니 갈수록 첩첩산중의 형국이 아닐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어려워질 것으로 예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나 호호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경제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예측은 예측인 것이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 또한 해오고 있었다.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란 다름 아니라 올 해 7월까지 기다려보자는 것이었다.

 

올 해 7월 己未(기미)월은 2017년 4월 甲辰(갑진)월부터 시작된 60개월의 순환 과정에 있어 15개월이 경과하는 때이다. 그렇기에 7월의 상황이 파악되면 그로서 향후 45개월 즉 2022년 4월까지의 흐름을 무난히 읽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7월 小暑(소서)가 되자마자 결국 미중 무역 전쟁이 발발했다. 미중 간의 타협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내수 경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더욱 수출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한중 교류와 교역의 축소 가능성

 

 

게다가 이번 무역 전쟁은 통상과 교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란 거대 세력이 글로벌 雌雄(자웅)을 가리는 거대한 투쟁의 일부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 마당이라 현재 미국은 우리에게 보다 더 확실하게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밝힐 것을 요구해오고 있다.

 

그런 면에서 현 정부 들어 추진되기 시작한 이른바 ‘신 남방정책’이란 것 그리고 이번에 문 대통령이 인도와 싱가포르 두 나라를 방문하는 것 역시 미국의 대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참고로 얘기하면 미국이 과거 수십년간 쳐다보지도 않던 인도를 끌어당기기 시작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새롭게 시작된 일로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란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기업들이 기존에 투자했던 중국 내 비즈니스는 향후 급속도로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 하겠다. (심하게 얘기하면 추가 투자는 물론이고 기존에 있던 것도 다 때려치우고 나와야 할 판이다.)

 

다시 말해서 1992년 우리가 중국과 수교한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온 한중 교류와 교역이 이제 축소 쪽으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말이고 나아가서 향후 우리 경제 구조에 또 한 번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번 미중 간의 무역 전쟁은 그 자체로서 그치는 일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一波萬波(일파만파)의 파급 효과를 가져 올 것이란 점이다.

 

 

호호당의 향후 예측

 

 

마지막으로 향후 우리 경제의 향방에 대해 언급하면 올 10월 壬戌(임술)월부터 좀 더 구체적인 어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내년 5월 己巳(기사)월, 즉 지금으로부터 10개월 뒤가 되면 상당히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산이 된다.

옴 진리회 교주 처형

 

 

1995년 3월에 발생했던 도쿄 지하철 살인가스 사건, 출근길의 도쿄 지하철 5개 차량에 맹독 가스를 뿌린 결과 13명을 숨지게 하고 6천명 이상을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게 만든 엄청난 테러였다. 그 주범인 邪敎(사교) 옴 진리교의 교주였던 ‘아사하라 쇼코’가 오늘 7월 6일 아침에 처형되었다. 가담자 6명도 함께 처형되었다.

 

점심 무렵 뉴스를 듣고 나서 아, 그래 그 미친 놈, 인상도 더럽게 생긴 놈이 아직도 살아있었다니, 이제야 처형이라, 일본의 행정도 어지간히 느리구나 싶었다. (일본은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이다.)

 

 

아사하라 쇼코의 사주와 운세 분석

 

 

그 사악한 놈의 사주가 궁금해졌고 이에 알아보았다.

 

아사하라 쇼코, 생년월일은 1955년 3월 2일이고 생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생시를 모르니 정확한 성격 분석은 어렵다. 그러나 그간의 경력이 알려져 있으니 운세 흐름 정도는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乙未(을미)년 戊寅(무인)월 壬戌(임술)일이다. 3월 2일 초봄에 태어난 壬水(임수)이니 환타지가 꽤나 강한 자로서 사주 구성 상 충동적이고 격한 데가 있는 자임을 말해준다.

 

운세 순환을 보면 1962년과 2022년이 立春(입춘) 바닥이고 1992년이 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였다.

 

1955년에 태어났으니 운세가 한창 기울 때 태어났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왼쪽 눈은 볼 수가 없고 오른 쪽 눈은 시력 1.0 정도였다고 한다.

입증된 바는 없지만 부친이 실명한 것은 수은 중독으로 인한 ‘미나마타 병’ 때문인 것 같고 그로 인해 큰 형 역시 맹인이었던 것을 보면 아사하라 역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이 된다.

 

먼저 간단하게 그의 운명 사계절부터 알아보자.

 

1955-1962: 운명의 겨울

1962-1977: 운명의 봄

1977-1992: 운명의 여름

1992-2007: 운명의 가을

2007-2022: 운명의 겨울

 

 

비뚤어진 심성과 종교의 잘못된 만남

 

 

아사하라의 경우를 보면 장애를 안고 태어나 청년기까지 풀리는 일이라곤 하나 없던 불우한 젊은이였다. 그러다가 1977년 운세 흐름이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 도가의 신선술과 인도의 요가 그리고 불교 등을 통해 정신적 만족을 얻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결국 과대망상이 발동한 나머지 동양의 여러 종교와 철학을 자기 멋대로 종합해낸 결과 새로운 邪敎(사교)를 창시하게 되었다.

 

이에 1987년 아사하라의 운세가 한창 뻗어가던 小暑(소서)의 운, 한 해로 치면 7월 초와 같은 때에 ‘옴 진리회’라는 사교단체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악인도 운을 만나면 상황이 좋아지는 법이니

 

 

이처럼 악인이나 미친놈도 운을 만나면 상황이 좋아지고 발전하는 법, 교세도 날로 커져갔다. 여름철이 되면 논의 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농사에 해가 되는 잡풀도 함께 무성해지는 이치라 보면 된다.

 

이후 아사하라는 활발히 포교활동을 전개했고 달라이 라마를 만난 것을 자신의 포교활동에 최대한 활용하는 마케팅 능력도 보여주었다. (물론 얼마 안 가서 아사하라가 이상한 또라이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티벳 불교의 일본 주재 대표는 옴 진리회와의 관계를 일체 단절했다.)

 

교세가 성장하자 급기야 일본 국회의원인 중의원 선거에도 출마했던 아사하라는 선거에서 참패한 뒤 썩은 세상을 청소할 필요가 있다면서 무장투쟁노선을 천명했다.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썩은 세상을 싹 쓸어버리고 자신은 정화된 맑은 세상을 다스리는 법황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늘 대량의 LSD을 투약하며 지냈던 아사하라는 40-50명 정도의 젊은 여성 신도들로 이루어진 하렘(harem)을 만들어 놓고 즐겼다. 아사하라 본인은 ‘최종의 해탈자’인 까닭에 얼마든지 복수의 여성신도들과 즐겨도 관계가 없다, 젊은 여성들과의 성행위는 그들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최종 해탈자로서의 의무라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 과대망상이 부른 참극

 

 

아사하라는 종말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었고 그러다가 마침내 실행에 옮긴 대형 사건이 1995년 3월 20일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이었다.

 

사린(sarin)은 독극물인 시안화물보다 100배 이상 독성이 강한 물질로서 액체나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 중추신경계 특히 시신경을 마비시키며 계속 되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극독 물질이다. (아트로핀 주사,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기억이 날 것이다. 바로 이 주사가 사린 가스 중독에 대한 응급 처치약이다.)

 

대형 독가스 테러를 일으킨 아사하라는 사건 즉시 여러 가담자들과 함께 신속하게 체포되었지만 일부는 2012년이 되어서야 모두 검거되었다.

사형수는 모두 13명인데 이번에 아사하라를 포함해서 7명이 교수형으로 집행당했고 아직 6명이 남아있다.

 

 

사형 집행이 20년 이상 지연된 이유

 

 

그런데 일본 정부는 사형 제도가 유효한 데 왜 그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것이 꽤나 궁금했다. 이에 나무위키에 실린 글을 보니 제법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유가 나름 흥미롭다. 아사하라의 사형을 빨리 집행하면 나머지 신도들에게 있어 그는 순교자가 될 것이고 사형장소는 聖地(성지)가 되어버릴 것이니 그럴 바엔 살려둬서 욕보이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사형집행 전까지도 옴진리교 신도들이 구치소 주변을 맴돌고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 된다. 게다가 아사하라의 사형이 집행될 것 같은 기미가 있을 때마다 또 다른 신도가 자수를 해서 사형 집행을 미루는 식으로 20년 넘게 집행을 질질 끌어왔는데 이제 더 이상 범행 가담자가 없다는 판단 끝에 이번에 집행을 했다는 것이다.

 

선천성 장애로 태어나 세상과 사회에 적대감을 품은 한 젊은이가 종교의 신비함에 빠져들었고 그러다가 제 멋대로 이상한 종교를 만들어내었다. 운이 따르다 보니 열심히 포교를 한 결과 적지 않은 신도들이 생겨났고 그로서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

 

마약에 빠져 현실감각을 상실한 아사하라는 마침내 자신의 미친 망상을 실천에 옮겼고 그로서 대형 테러 사건의 장본인이 되었다.

 

 

악의 씨앗이 뿌려지면 악의 열매를 맺게 되니

 

 

도쿄 지하철 테러는 그의 운세가 한창이던 시절에 발생했다. 1962년이 입춘 바닥이었으니 1992년이 입추였고 그 3년 뒤인 1995년의 일이었으니 한 해로 치면 8월 하순, 즉 處暑(처서) 무렵과 같다.

 

처서는 벼꽃이 피고 그로서 쌀알이 매달리는 때, 따라서 아사하라라는 독성 잡초가 때가 되어 꽃을 피워 올리고 그로서 악의 열매를 매달기 시작했던 때가 바로 1995년 3월의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이었던 셈이다.

 

2022년이 아사하라에게 있어 또 한 번의 입춘 바닥이 되는데, 결국 그 4년 전인 올 해 사형 집행을 당했다. 인간 세상은 언제나 이런 미친 또라이가 있기 마련이고 또 그런 미친놈의 말이 귀에 솔깃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아사하라의 사주와 그간의 일들을 살펴보면서 떠오른 사람이 있다. 중국 청나라 말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켜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갔던 신흥종교의 교주 홍수전과 유사한 케이스란 생각이 든다. 물론 스케일은 다르지만 사건의 본질은 동일하다.

 

홍수전 역시 과거에 낙방하고 암울한 시절 계시를 받아 신흥 종교 운동을 일으켰던 것이고 아사하라 역시 마찬가지. 다만 태평천국의 난은 중국 내부의 모순이 첨예한 때였기에 보다 대형 사고로 비화되었을 뿐이다.

 

 

일본의 국운이 기울 때 터진 사건, 과연 우연이었을까?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는 공교롭게도 일본이 경제 거품 붕괴로 사회 전체가 암울한 때 일어났다. 게다가 사건 발생 두 달 전엔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으니 당시 일본의 국운은 2005년 입춘 바닥을 향해 한창 속도가 기울고 있던 때였다. 나라의 운이 기울면 이런 이상한 사고가 빈발하는 법이다.

 

오랜 상담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으니

 

 

오랫동안 상담을 해오면서 그리고 인생을 60년 이상 살아오다보니 예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운은 30년에 걸쳐 상승하고 30년에 걸쳐 하강한다. 합치면 60년에 걸쳐 오르고 내린다. 그런데 그간의 무수한 상담을 통해 느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운이 상승하는 사람을 상담할 때면 그 사람에게서 어떤 간절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반대로 운이 하강하는 사람에게선 그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경험이 누적된 결과 오늘에 이르러 굳이 그 사람의 사주를 물어보지 않고 그냥 단순히 몇 마디 말만 들어보아도 그 사람의 운세를 거의 틀림없이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경험이란 것이 그런 법인가 보다.

 

간절한 마음을 가진 자는 운세가 상승하는 자이고 때가 되면 나름으로 무언가를 얻거나 이루게 될 것이다. 반대로 간절함이 없는 자는 지금 당장은 무난하고 좋아보여도 때가 되면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것. 이게 바로 오랜 세월 동안의 운명 상담을 통해 나 호호당이 깨닫게 된 것, 즉 일종의 心得(심득)이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마음을 쓰고 또 고생하는 과정이다. 가진 자라 하더라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苦衷(고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누구에게나 바람이 있고 소망이 있다.

 

이에 나 호호당이 몇 마디 말만 듣고도 사람의 운세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어떤 이의 바람이 간절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바라고만 있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간절한 바람인지 그냥 안일한 바람인지를 구분하려면

 

 

이에 어떤 이에게 간절함이 있는지 아닌지를 그렇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조금 얘기해보고자 한다.

 

세상만사 얻고자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代價(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

 

따라서 간절한 자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기꺼이 비용이나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 자라고 보면 된다. 크게 얻고자 하는 이는 비싸게 가격을 지불할 用意(용의)가 있어야 하는 법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용이나 代價(대가)란 꼭 금전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팔려고 내놓은 상품이야 돈을 주면 살 수 있는 것이지만 사람마다의 소망이나 꿈, 목표, 이런 것은 상품이 아니기에 돈을 주고 살 수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불하는 가장 큰 비용은 바로 삶 자체이다. 달리 말하면 저마다의 삶에 주어진 시간 혹은 세월이다. 사실 그게 가장 비싼 것이다.

 

 

천리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마음이 곧 간절함인 것이니

 

 

가령 어떤 이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 인생 전체를 다 바쳐도 전혀 아깝거나 억울하지 않다고 마음을 먹고 그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면 그 어떤 이는 간절함을 품은 자이다. 자신의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千里(천리)길이라도 달려가겠다는 마음 즉 不遠千里(불원천리)의 용의가 있다면 그 자는 간절함을 지닌 자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천리만리의 험한 길을 가다보면 갖은 노고와 어려움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이치인 바, 그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바로 간절함이라 하겠다.

 

 

첩첩한 산을 넘으려는 의지

 

 

얻고자 하는 무엇을 위해 길을 찾을 것이고 길을 찾다가도 끝내 길이 없으면 스스로 길을 내거나 또는 험준한 산과 고개를 넘어서라도 그곳으로 가겠다는 마음이 바로 간절함인 것이다. 이에 나 호호당은 간절함을 두고 ‘산을 넘는 마음’이라 표현한다. 문학적으로 과정하면 ‘첩첩한 산을 넘으려는 의지’가 간절함이라 여긴다.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간절함이란 어떤 거창한 것에 대한 마음이라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코 거창한 소망을 이루기 위한 마음은 아니다.

 

 

어느 아주머니의 인생 이야기

 

 

실례를 들어보자. 상담을 통해 경험했던 어느 아주머니의 인생 이야기이다.

 

어려서 부친이 집안을 돌보지 않고 늘 바깥으로 나도는 바람에 빈곤하고 우울한 십대 시절을 보낸 분이었다. 이에 그 아주머니는 결심을 했고 다짐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의 간절한 소망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서 자녀들에게만은 그런 슬픔과 아픔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래서 결혼할 적에도 상대 남성의 능력이나 재력, 용모나 매력이 아니라 가정적이고 건실한 사람인가를 최우선적으로 살펴서 결혼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가리고 골라서 결혼을 했음에도 상황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남편이 전혀 생각지도 않게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져 힘든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그 아주머니는 최대한 인내해가면서 자녀들을 지키고 돌보는 데 전력을 다했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 바람에 부족한 생활비를 이런저런 일을 통해 메워야 했고 그런 와중에도 자녀들의 일에 대해선 늘 최선을 다해 보살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평생 고생만 하며 살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남편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지만 그 아주머니는 일손을 놓지 않았고 그 바람에 두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성장시켰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변호사가 되어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둘째인 딸 역시 유학을 다녀와서 외국계 금융회사의 전문직업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언 나이 일흔을 훌쩍 넘겨 손자를 셋이나 둔 할머니가 된 그 아주머니는 긴 인생 살아오면서 돌이켜보니 자신의 삶은 그냥 전쟁터였다는 회고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기에 이젠 그냥 남은 삶을 건강이나 돌보면서 살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내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더 이상 제겐 어떤 간절한 마음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소망하는 바를 이루었으니 말입니다. 사랑받으며 살아온 인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제 인생은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는 크게 성공했습니다. 먼저 간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 하긴 그렇지만 그래도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답니다. 내가 미쳤나 봅니다.”

 

그 아주머니의 사주팔자를 살펴보니 스무 살 시절이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었다. 이십대 후반에 결혼을 했는데 바람을 피우며 애를 태우던 남편을 잃은 것은 아주머니가 40대 후반이었던 때였다. 하지만 평생 일을 해왔고 나중에 재래시장 거리에서 어렵게 얻은 가게가 잘 되는 바람에 자녀들 학비도 댈 수 있었고 또 재산도 좀 불릴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의 운세는 또 다시 입춘 바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소원을 이루었으니 사실 아쉬울 것도 없다는 말에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저 ‘잘 살아오셨네요, 훌륭하십니다, 성공하셨습니다.’가 전부였다.

 

위로의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여겼다. 비록 남편이 외도를 하고 또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말하긴 어렵겠으나 그 아주머니는 긴 세월 간절한 마음을 잃지 않고 인생의 산과 물을 수없이 넘고 건너왔기에 그렇다.

 

아주머니의 인생사에 대해 언젠가 약간 각색해서 글로 쓰고 싶다는 말을 드렸더니 그래도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간 잊고 지내다가 오늘 문득 간절함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나서 사례로 소개하게 되었다.

 

 

운의 상승과 하강, 그 진정한 의미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른 관점의 얘기로 글을 정리해가자. 이른바 운이 상승 중이란 말은 일이 쉽게 풀려나가거나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드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운이 상승한다는 것은 간절함을 간직한 상태에서 소망을 이룰 때까지 기꺼이 어려운 길을 가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으로 정리하면 되리라. 고생을 하더라도 열정을 가지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운이 상승 중이라는 얘기이다.

 

운이 하강한다는 말은 원하는 바를 성취했거나 또 그로 인해 이젠 더 이상 천리길을 마다할 이유가 없거나 열정이 없다면 그게 바로 운이 하강 중인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 노력하는 마음, 그건 간절함에서 온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흔히 貴人(귀인)을 찾기도 하지만 귀인 역시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 법이란 점이다.

 

 

간절한 소망과 헛된 바람의 차이

 

 

소망을 가지고 있고 그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치를 용의가 있다면 그건 간절함인 것이고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치를 용의가 없다면 그건 그저 헛된 바람인 셈이다.

 

百年河淸(백년하청)이란 말이 있다. 어느 세월에 일이 이루어지겠느냐는 뜻으로 쓰이지만 간절함을 가진 자는 백 년이 걸려서라도 일이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그를 희망으로 삼아 노력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이야말로 진실로 誠意(성의)와 懇切(간절)함을 가진 자가 아니겠는가.

 

기분이 울적할 때 이 표를 보시지요, 웃음이 나올 것입니다.

 

(가위로) 오려서 간직했다가 기분이 울적할 때 보면 웃음이 나올 것입니다.

 

"cut out and keep to make you smile when you're feeling low.", 영국의 대표적인 황색언론인 ‘더 썬’에 실린 기사이다. 꼴찌를 한 독일의 실상을 보여주는 월드컵 F조의 순위표 밑에 붙은 말이다.

 

우리 대표 팀이 초대형 사고를 쳤다. 이에 영국만이 아니라 독일을 제외한 전 유럽이 축제 분위기이다. 그야말로 이른바 정의구현이고 적폐청산인 셈이다.

 

독일은 무려 80년 만에 16강 탈락이라 한다. 아무리 죽을 쒀도 8강까진 가던 독일이었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 꼴이다.

 

 

예견된 조짐

 

 

사실 조짐은 충분히 있었다. 98 프랑스 월드컵 우승국인 프랑스와 06 독일 월드컵 우승국인 이탈리아, 10 남아공 월드컵 우승국 스페인, 이 세 나라는 모두 그 직후의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망신을 당했다.

 

그랬으니 독일 역시 혹시나 이번에 조별 예선 탈락? 이런 생각은 어지간한 축구팬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약체인 우리가 독일하고 최종전을 치르게 되니 아무래도 독일이 조 예선 정도는 그래도 통과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이 조 예선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생각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은 성적을 올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급속도로 기울고 있던 요아힘 뢰프의 운세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감독인 요아힘 뢰프의 운세 흐름이 작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바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아힘 뢰프, 1960년 2월 3일 점심 때인 12시 45분에 태어났다.

 

사주를 뽑아보면 己亥(기해)년 丁丑(정축)월 辛酉(신유)일 甲午(갑오)시가 된다.

 

따라서 운세 바닥인 立春(입춘)은 2021 辛丑(신축)년이 된다. 3년 뒤가 운세 바닥이란 얘기이다.

 

저번 2014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공을 세운 뢰프였지만 실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2014년은 갑오년, 따라서 그에게는 재운이 최절정에 이르렀던 때였고 2015년부터는 모든 재운이 급격하게 소멸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감독직을 맡고 있었으니 비극은 예고된 셈이었다.

 

그런 운세를 두고 나 호호당은 財(재)가 消滅(소멸)하는 운이라 부른다. 운세 흐름에 있어 2015년을 기점으로 財數(재수)가 급격하게 사라지거나 떨어지는 운세이기에 그렇게 부른다.

 

 

박수 받을 때 떠났어야 했는데!

 

 

그렇기에 나 호호당은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말처럼 뢰프 역시 2014년 월드컵 우승과 함께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면 두고두고 박수를 받을 것이요 더 하면 비난을 받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뢰프는 조 예선 탈락이라는 독일 축구로선 역대급 사고를 치고 떠나게 생겼으니 딱한 일이다.

 

책임질 일 없는 히딩크 감독도 편하게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으레 16강이야 진출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던 독일은 그간 거만하기까지 했는데 이번에 벌 받은 셈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번 월드컵에 네델란드는 아예 나오지도 못 했으니 히딩크 감독 역시 속으로 독일을 미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클리스만과 대비되는 요아힘 뢰프

 

 

결국 전 독일 대표팀 감독 ‘클린스만’이 현명했다. 그 역시 2010년이 입춘 바닥인 데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3위의 성적을 올린 다음 미련 없이 감독직을 뢰프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클린스만은 2006년 월드컵 직전까지도 계속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3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그러자 비난 여론이 일제히 우호적으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직을 떠났으니 더더욱 이번의 뢰프와 대비가 된다.

 

내 생각에 만일 월드컵이 올 해 2018년이 아니라 작년 2016 정도에 개최되었다면 뢰프의 독일 팀도 그런대로 체면은 살렸을 것이라 본다. 그로부터 겨우 2년 사이에 독일의 경기 운영 방식과 전술은 이미 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실력이 없는 독일의 플레이

 

 

어젯밤 우리 대표팀과의 시합을 지켜보면서 전반 20분이 지날 무렵 갑자기 이거 좀 이상한데? 싶었다. 점유율은 당연히 독일이 높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독일은 내가 그간 보아오던 독일이 아닌데 싶었기 때문이다.

 

전반이 끝난 뒤 이거 잘 하면 비기거나 더 나아가서 이길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전반 내내 내 눈엔 우리 팀이 못 하는 장면보다도 독일이 못 하는 장면이 압도적으로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독일 저 놈들 ‘뻘짓’하고 있구나 싶었다.

 

조현우의 빛나는 선방이 단연코 눈에 들어왔지만 독일 선수들의 헤딩 슛, 예각으로 꺾는 슛이 아니라 공중으로 봉-하고 부드럽게 뜨는 헤딩을 보면서 아니 저 거 우리 대표팀이 원래 하던 슛인데 싶었다.

 

독일이 넣었다 싶은 순간의 반은 조현우가 막았고 반은 독일의 헛발질로 마무리되고 있었으니 저건 독일이 아닌데 했다. 쟤들 저러다가 우리에게 덜미를 잡힌다 하는 말이 연신 입에서 나왔고 독일의 역대급 똥플레이! 하는 말도 튀어나왔다.

 

천억 짜리 선수로 알려진 토니 크로스가 여러 차례 날린 슛 역시 익히 보던 우리 대표팀의 슛이었다. 골대 위로 붕-뜨면서 관중석으로 날아가는 슛 말이다. 쟤들이 우리가 하던 짓 하고 있잖아? 그러면 니나 내나 차이가 없단 말씀.

 

독일이 하는 플레이 어느 하나 잘 하네 싶은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냥 패스만 많았다. 단조로운 전술, 마치 고장 난 시계의 바늘이 계속 해서 같은 장소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고 있는 모습과도 같았다.

 

내 살다 살다 별 일 다 보게 되네 하는 생각에 빠져 보고 있던 중 난데없이 문전 혼전 중에 마침내 우리가 골을 넣고 나니 이게 도대체 뭔 조화속인가 싶었다.

 

뢰프, 컨그러츄레이션! 하는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다.

 

뢰프야, 직접 말은 전하지 못했지만 저번 브라질에서 우승했을 때 곱게 그만두라고 내가 얘기했었지, 봐라, 넌 이제 독일 축구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기게 되었으니 이를 어쩐담! 아무튼 추카 또 추카.

 

 

자만에 빠져 변화하지 못했던 독일 축구

 

 

이른바 텐백 축구의 유행으로 인해 오늘날 축구는 이렇다 할 스트라이커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다. 브라질 월드컵이 있었던 4년 전과 비교해도 너무 달라졌다. 독일 역시 이렇다 할 스트라이커가 없긴 마찬가지.

 

영국 팬들은 신이 났다. 독일이 러시아로 들어가선 되는 일이 없다는 말, 러시아 전선에서 실패를 했던 히틀러보다도 더 못 했다는 말 등등 조롱과 야유의 잔치, 홈에서 7-1로 대패한 바람에 독일에 대한 원한 가득한 브라질 팬들도 빠질 세라 한 몫 거들고 나섰다.

 

아무튼 우리로선 기념비적인 승리의 날이었다. 우리 팀은 투지와 열정으로 뭉쳐 열심히 했다. 물론 여전히 실력은 떨어지지만 독일을 월드컵에서 손을 봐줬으니 그게 어딘가.

 

 

축구나 정치나

 

 

시합이 끝나자 갑자기 우리 정치가 생각이 났다.

 

정권을 잡고 10년이 흐르면 응징을 당하는 것이 정치판의 법칙이다. 민주주의란 한 마디로 변덕의 정치. 그렇기에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은 7.5년이 흐르면 유권자들은 정권을 잡은 여당에 대해 피로를 느끼고 또 싫증을 내기 마련이다.

 

2008년 총선에서 대패를 했던 민주당이었다. 136석의 의석이 81석이 되었으니 사실상 절반이 날아갔던 민주당이었다. 그리고 2016년 총선에선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이 승리했고 이번 지방선거에선 보수 야당이 역대급 참패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6년 무렵 가히 선거의 여왕이었는데, 10년이 흘러 진박 논쟁이나 하더니 졸지에 2016년 총선에선 무참하게 무너졌다. 게다가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결국은 자신을 지켜줄 울타리이자 같은 배를 탄 김무성 의원을 박대한 결과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까지 당했다. 편을 너무 갈랐던 박근혜의 잘못이지 달리 무엇이겠는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여당에선 ‘뼈문’이란 말이 나왔고 문돌이란 표현도 등장했다. 그러니 기분이 쌔하다. 진박이나 뼈문이나 같은 말이지 않는가 말이다. 정권 잡은 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은 여당 내에서 벌써 치열한 편 가르기 혹은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로만 들린다. 그런가 하면 또 다시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부상하고 있으니 정치란 참 골치 아픈 세계이다.

 

정리하자.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강자가 너무 오래 군림하면 그 자체로서 미움과 질시의 대상이 된다. 민심은 그런 것이다.

 

독일은 월드컵에서 2002년엔 준우승, 2006년엔 3위, 2010년에 또 3위, 그러더니 2014년엔 우승을 했다. 그간 4번의 피파 월드컵에서 우승 1회, 준우승 1회, 그리고 두 번의 3위를 했다는 말이다. 그런 절대강자 독일이 이번에 조 예선 탈락을 했으니 대단한 일이다.

 

 

독일 축구의 일대 서비스

 

 

독일에게 당한 나라들이 어디 한 두 나라이랴. 늘 억하심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니 이번 독일의 탈락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사실상 정의구현 혹은 적폐청산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으니 참 좋은 서비스를 베푼 셈이다. 강자라 하더라도 가끔은 이런 모습도 보여주어야 오래 해먹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두고두고 축구 팬들 사이에 기억될 이번 일에 대해 마지막으로 할 말은 딱 하나, 독일 졌지만 질만 했다. 지지리 못 하더라. 그러니 뢰프, 당신의 너그러운 지도력에 대해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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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찾아가는 여수 밤바다

 

 

여수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었으니 2012년 여수 엑스포 때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빠지지 않고 여수를 한 두 차례 다녀온다.

 

서울에서 여수까진 KTX 기차로 3시간이고 큰 스트레스 없이 담배를 참을 수 있는 시간이 3시간이니 다닐 만하다. 해마다 기차 시간도 10분씩 줄어들고 있는데 노선이 조금씩 정비가 되는 모양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드센 동해바다를 보고 자란 나에게 여수의 바다는 그냥 호수로만 느껴진다. 여수에서 흰 파도를 본 적이 없다. 바깥 멀리까지 섬들로 둘러져있는 여수 바다는 그저 얌전하다.

 

여수에 가면 으레 여수 후배의 세컨하우스에 머문다. 돌산 평사리의 바닷가 낮은 경사지에 있어 밤이면 먼 불빛 어리는 가막만과 마주할 수 있다.

 

 

여수 가만만 앞에 앉아

 

 

세컨하우스답게 가막만 쪽으로 데크가 나 있어 밤이면 그곳 테이블에서 술자리를 펼쳐놓고 얘기하며 노는 것이 여수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여기저기 모기향 피워놓고 선풍기도 틀어놓고 그래도 모기가 달라붙으면 손으로 밀쳐가면서 술과 안주 그리고 실없이 오가는 담소를 즐긴다.

 

가막만의 ‘가막’은 과연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만의 한 가운데 있는 ‘까막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여수 일대의 섬들은 대부분 나무가 잘 자라지 않았는데 섬 하나가 이상하게도 숲이 ‘까맣게’ 울창하게 덮여있다고 해서 까막섬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그 바람에 가막만이란 명칭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가막만 물가까지 150미터 정도 되려나. 경사면이라 빤히 내려다볼 수 있다. 가막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포종점’ 가사가 떠오른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하는 구절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 둘 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이란 구절이다.

영등포나 당인리 발전소, 그리고 마포 종점을 가막만 건너편의 현지 지명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느껴지는 情趣(정취)는 그야말로 동일하다.

 

늦은 밤 시각 돌산 별장의 데크에 나와 앉아 우두커니 가막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 적이 이미 십 수 차례. 물결 없이 그저 잔잔한 가막만과 건너편의 여수 시내 불빛을 바라보며 서늘한 밤공기 속으로 담배 연기를 흘려보내면서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때론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바다만 마주하고 앉았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검은 바다가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은 채 내 등을 슬어주고 또 도닥거려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번 여수 여행에선 가막만에 내리는 새벽녘의 빗소리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건물 지붕과 데크 위 판재 위로 떨어지는 후두득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한참 동안 그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누워 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여수 사람들은 정이 많고 마음이 여리다. 허세를 부리는 모습 또한 세련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귀엽게 여겨진다. 확장해서 얘기하면 전라남도 남해안 쪽 사람들이 대부분 좀 그렇다.

 

 

夏至(하지)에 바라본 2018 무술년의 글로벌

 

 

기차를 타고 내려가고 다시 올라오면서 이번 여행은 夏至(하지) 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여러 차례 떠올랐다.

 

夏至(하지)는 해마다 한 번 오는 빛의 축제. 한 해를 통해 빛이 가장 많은 때, 밝은 빛이 많고 강하면 멀리까지 眺望(조망)할 수 있으니 올 2018년의 일들도 하지로서 뚜렷해지고 있다.

 

정치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 여당의 압승으로 나타났고 수십 년간 웅크리던 북한이 바깥으로 나왔다. 시진핑은 북한이 친미쪽으로 급속하게 기울 것을 우려해 김정은 위원장을 극진히 대접하고 있는 오늘이다.

 

그런가 하면 미중간의 무역전쟁이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1년이면 승패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유로존이 표풀리즘과 난민문제 등으로 흔들리자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결국 프랑스 마크롱의 제안에 동의해주었다. 마크롱은 그간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선 유로존 공동예산을 창설하고 유로통화기금(EMF)을 확대해서 재정위기가 발생한 나라의 문제를 카버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고 독일은 반대 입장이었다.

 

독일은 유로존 공동예산이나 기금 확대가 결국 독일인의 돈으로 재정 위기국을 무상 지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비판해오다가 이번에 결국 받아들인 것이다. 이탈리아의 이탈을 걱정한 모양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기만 한 유럽연합이다.

 

그런가 하면 영국 의회는 메이 정부가 제출한 유럽연합(EU) 탈퇴(일명 브렉시트) 법안을 승인했다.

 

영국 의회는 지난해 9월부터 무려 1만2000개의 유럽연합(EU)법과 규정을 국내법으로 전환하는 법안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으나 반대의 목소리가 엄청나서 지금까지 난항을 겪었는데 이번에 그를 위한 기본 법안이 결국 통과되었다. 2016년 국민투표로 결정된 영국의 브렉시트가 이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결정적인 고비를 넘어선 셈이다.

 

 

남북한의 통일을 전망해보니

 

 

뭐니 해도 올 해 무술년의 가장 큰 일은 북한이 결국 살 길을 찾아 바깥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이처럼 세상은 길게 보면 순리대로 흘러간다, 핵무기가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는 단순 명백한 이치가 마침내 통한 셈이다.

 

이번 비핵화 협상은 이전의 협상과는 차원이 분명 다르다. 무엇보다 북한 스스로의 의지 정확히 말하면 김정은 위원장의 자발적인 의지가 결정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번 일로서 남북한 통일의 물꼬가 열렸다. 그러니 장차 남북한의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하게 말하면 2018 무술년에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30년 즉 2048년인 무진년에 남북의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 본다. 60년 순환이기에 그 절반이 지나면 통일이 될 것이란 얘기이다.

 

길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게 가장 부담이 적은 코스가 아닌가 싶다. 북한은 그간 폐쇄되었던 곳이라 여전히 조선왕조의 유교적 통념이 강한 곳이고 개방의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너무나도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그렇다.

 

통일로 가는 도중에 험한 고비도 여러 차례 있을 것이라 본다. 특히 12년 뒤인 2030년 庚戌(경술)년에 일차적인 고비가 있을 것이며, 2036 丙辰(병진)년에는 남북 간에 커다란 갈등이 야기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일단 남북 간의 긴장이야 사라지겠으나 북한은 여전히 1인 지배의 독재를 유지해갈 것이고 그로 인한 갈등 또한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북한 내부에 민권 운동이나 반체제 운동이 발생할 경우 북한 당국은 그를 탄압하려 들 것이고 이에 우리 남쪽에선 북한의 그런 움직임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남북한 당국이 그 갈등을 봉합 또는 정리해가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니 그렇다.

 

멀고 험한 통일의 길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길이라 여긴다. 그렇기에 남북한의 통일은 향후 30년 한 세대의 세월을 보낸 2048년이 될 것이라 본다.

 

 

미중 대결의 전망

 

 

올 해로서 또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이제 미국이 중국을 더 이상 그냥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중국이 글로벌 패권의 도전장을 내밀었고 이에 미국은 대응하기로 했다.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이기에 물론 정권이 바뀔 수도 있겠으나 그런다 해도 미국이 중국을 대하는 기본 방향, 더 이상 중국을 그냥 둘 순 없다는 정책의 근본은 바뀌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올 해 미국이 시작한 무역전쟁은 물론이고 이번 북한과의 협상 역시 큰 틀에서 보면 북한을 중국의 영향권으로부터 분리해내려는 커다란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너무 순진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의 주변국과의 관계를 보면 파키스탄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친중 국가들이 거의 없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금년부터 본격화된 미중 대결이기에 장차 6년이 지나면 승패가 확연해질 것이라 본다. 즉 2024년이 되면 중국은 이미 엎어져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또 한 가지 이번 미국과 북한 간의 협상이 가져올 영향으로서 일본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사라지고 더 나아가서 북한이 미국 쪽으로 기울게 되고 아울러 중국의 미국에 대한 도전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일본은 더 이상 군비를 강화할 이유도 명분도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남북한의 대치와 중국의 도전으로 인해 사실 우리가 위치한 동북아 지역이야말로 가장 군사적 긴장도가 높은 곳이었는데, 이제 그 판도가 변하고 있다. 올 해 무술년은 그 결정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

 

해가 하늘 한 가운데에 오는 天中(천중)의 때인 夏至(하지)에 여수를 다녀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의 강렬한 햇빛이 먼 세월 저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나 호호당은 시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그 이미지를 포착해보고자 했다.

 

이에 이번 夏至(하지) 紀行(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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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 사장님, 자영업의 대명사

 

 

앞글에서 서울의 평균 근로자 가구의 연간 소득은 6천만원 정도였다는 말을 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점은 근로자 가구란 말은 정기적으로 급여를 받는 가구란 뜻이 된다. 따라서 근로자 외 가구도 있으니 대표적으로 자영업자가 있고 여기에 기업가나 프리랜서 그리고 무직자 등이 포함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자의 대명사는 바로 치킨집 사장님이라 하겠다.

 

 

근로자 가구와 근로자 외 가구의 엄청난 소득 차이

 

 

최근 통계청과 한국은행 등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2인 이상 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558만 원이었고 근로자 외 가구의 월평균은 356만원이었다. 무려 200만 원씩이나 차이가 난다.

 

이는 실로 엄청난 차이라고 하겠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근로자만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크고, 비정규직 역시 그 내부를 들여다볼 것 같으면 급여의 차이가 크다. 그런데 그 밑에는 급여가 아니라 그냥 벌어서 먹어야 하는 자영업자들도 무진장 많은 오늘의 현실이다.

 

 

자영업을 한다는 것은 지옥행 열차를 탄다는 뜻

 

 

그러니 직장 다니다가 자영업을 하게 되면 소득이 왕창 줄어든다고 보면 되겠고 좀 심하게 말하면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소득의 격차만이 아니라 근로자 외 가구의 소득 증가율 자체가 근로자 가구에 비해 갈수록 더 떨어지고 있다.

 

15년 전인 2003년과 올 해 2018년을 비교하면 근로자 가구의 월소득은 96%가 증가한 것에 비해 근로자 외 가구의 월소득은 89% 증가했으니 소득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영업자 달리 말하면 소상공인들, 또 달리 말하면 치킨집 사장님들의 소득이 임금근로자에 훨씬 못 미친다는 얘기이고 그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돈이 벌리지 않으니 홀로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정 일손이 부족하면 가족이 들러붙어 사업을 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어 더더욱 영세해지고 있다. 그 바람에 알바 채용도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자영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지옥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비임금 근로자 즉 치킨집 사장님으로 대표되는 자영업자는 683만 명이라 하는데 상당수가 고용원이 없는 영세 사업자들이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극단적이라 할 정도로 높다. 대략 30%라 보면 되는데 OECD 평균의 근 2배에 달한다.

 

따라서 자영업자간의 경쟁이 극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그 결과 근로자에 비해 소득이 늘어날 가망성이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 서비스와 편리함의 천국 그리고 그 이면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며칠이라도 지내본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이 있으니 24시간 뭐든 주문이 가능하고 주문하기만 하면 금방 배달이 된다는 점이다. 새벽 3시에 치킨이든 뭐든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가 있다는 사실에 외국인들은 찬탄하고 서비스 천국이란 칭찬까지 한다.

 

돈만 있으면 천국이네 하는 말은 거꾸로 말해서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새벽 3시에도 주문이 들어오면 음식을 만들고 또 그것을 배달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배달의민족’이란 서비스는 다름 아니라 지옥불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1인 가게 주인들과 밤낮 없이 오토바이를 몰고 달려가는 택배기사들이 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즈니스였던 것이다.

 

 

독일 여행에서 얻은 강렬한 인상

 

 

오래 전 독일의 대도시인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오후 6시가 되자 그 거대한 도시가 돌연 사람이 없는 유령도시로 변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퇴근하고 식당이나 마트, 상점들도 일제히 문을 닫은 뒤 그저 쇼윈도의 불빛만 반짝거리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베드타운인 마인츠의 밤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리엔 희부연 저녁 안개가 서렸고 희미한 등불 빛만 주택 창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퇴근하면 오로지 집으로 돌아갈 뿐 친구나 사람을 만나서 회식을 하거나 술자리를 즐기는 광경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독일이란 나라는 나와 같은 한국 사람이 살 기 어려운 지옥이구나 싶었는데, 우리나라 서울은 그와 정반대되는 측면에서 또 다른 지옥이 아닌가 싶다. 배달의 천국이자 자영업자의 지옥인 대한민국 서울 그리고 지방의 대도시들.

 

독일을 경험한 뒤 때때로 생각을 하게 된다. 독일 사람들이 만일 우리처럼 밤늦게까지 먹고 마시면 내수경기가 폭발해서 GDP가 왕창 상승하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반대로 친한 이들과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놀다 보면 이런 헛소리를 하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을 해쳐가면서까지 마셔주고 먹어주지 않으면 우리 내수 경제는 폭삭 주저앉고 자영업 사장님들은 망하고 말거야.

 

우리는 정말이지 죽을 만큼 열심히 일하고 무리해가면서까지 놀면서 1인당 GDP 3만 달러인 것이고 독일은 오후 6시면 경제 전체가 스톱되는 가운데 1인당 4만 5천 달러의 소득을 올리고 있구나 싶다.

 

 

주52시간 근무에서 소외되는 사람들

 

 

치킨집 사장님이 자영업자의 대명사라 했는데 이번에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는 바람에 주목받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사실은 자영업자나 진배없다. 그들 역시 근로시간 규제나 휴가, 퇴직금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냥 밤낮 없이 뛰어야 하는 것이고 그에 반해 소득은 일반 근로자에 비해 현저히 낮다.

 

며칠 전 택시를 탔는데 주52시간 이야기가 나왔다. 우린 그냥 하루에 12시간 도로를 달리고 한 달에 4번 쉬는 거죠 뭐, 달리 수가 없잖아요, 다만 취업하긴 쉬워요, 늙어도 언제든 취업이 가능한 곳이 바로 택시회사잖아요. 익히 알고 있는 얘기였지만 주52시간 근무가 시행되다 보니 새삼 明暗(명함)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돈만 있으면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24시간 연중무휴의 그 엄청나고 무리한 서비스를 지탱하고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자영업자들이고 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인 것이다.

 

 

편의와 서비스를 떠받치는 사람들은 죽을 지경인데

 

 

편의점 얘기를 좀 해보자.

 

24시간을 메우는데 있어 알바가 8시간이고 남편이 10시간, 아내는 애들을 돌보느라 6시간 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 들어 알바에게 주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고, 최저임금 주지 않는 편의점도 꽤나 많은 모양이다.

 

편의점은 영어의 convenient store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고객이 편리하게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인데 점주 입장에선 그런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우리 사회는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너무나도 많다. 그 바람에 그 편리함을 제공하느라 또 감당하느라 고달프고 힘든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편의점 주인만이 아니라 택시기사나 대리기사를 포함해서 실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있다는 말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도

 

 

사실 나 호호당이 걱정하는 것은 현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자영업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중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너무 높다. 따라서 줄어들 필요가 있다 하겠는데 그것이 우리 현실에서 좋은 일자리 증가를 통해 흡수되기보다는 그냥 도태되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40-50대에 직장을 그만 두면 어쩔 수 없이 치킨집 사장님 즉 자영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현실이다. 더 이상의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계의 소득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해도 그 소비가 자영업자들의 소득증가로 이어지기보다는 해외여행이나 여타 고급취향의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간단히 말해서 가계소득이 늘어도 치맥을 더 많이 먹을 것 같진 않다는 말이다.

 

시내 중심가는 물론이고 일반 동네 역시 길가는 물론이고 이면 도로까지 한 건물 지나면 치킨집이 있고 편의점이 있고 커피점이 있다. 모두 자영업자들이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 수 있겠는가 의문이다. 손님이 찾지 않는 한산한 ‘먹자 골목’도 너무나 많다.

 

 

주52시간 근무 역시 양극화를 심화할 수도 있어

 

 

이런 걱정도 든다. 주52시간 근로제가 그런대로 정착된다고 가상해보자. 주52시간 근로하는 임금노동자가 있을 것이고 주야간 일해야 하는 자영업자가 있을 것이다. 그 또한 너무 심한 명암 대조가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서 근로시간에 의해 또 다시 양극화가 이루어지는 결과가 될 것 같다는 말이다.

 

주52시간 일하면서 인간적인 삶을 누리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그 밑에서 그들에게 봉사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근무시간이란 개념조차 없는 자영업자들이 있는 환경으로 나눠질 것 같은 이 불안한 느낌, 그런가 하면 취업을 포기하고 그냥 무직으로 지내는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오늘의 현실이다.

 

이미 미국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다. 조만간 우리도 따라가야 할 것이다. 치킨집 사장님, 사업 차리느라 대출도 받았을 것이니 부담스러울 것이다. 여기에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운 임대료의 압박, 인상된 최저임금의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자영업자들이다.

 

최근에 만난 젊은 40대 중반의 치킨집 사장님 왈, 워라벨? 쳇 우린 정말 죽을 지경이요, 새벽부터 준비해서 늦은 밤까지 닭을 튀기고 있다 보니 닭 비린내도 문제지만 가만 보니 나 역시 한 마리의 닭이 아닌가 싶으니 말이요.

 

2박3일로 여수를 다녀왔다. 이에 여수 돌산에서 바라본 얌전한 가막만의 모습을 대문에 올린다.

 

 

동지 지난 우리 國運(국운)

 

 

나라의 운이 본격 겨울로 접어들었다. 60년에 걸쳐 순환하는 운의 흐름을 한 해에 비견해볼 것 같으면 작년 2017년은 해마다 12월 20일 경에 맞이하는 冬至(동지)와 같다.

 

대개 동지가 지나면 겨울 추위가 본격화된다. 이에 내년 2019년부터는 동장군이 본격 찾아올 것이다. 추위가 상징하는 것은 열에너지가 없다는 뜻이니,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성장 에너지가 사실 상 고갈되었음을 뜻한다.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통해 사라져가는 성장 에너지를 어떻게 해서든 되살려보자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번 글은 거창한 담론을 늘어놓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2018년 오늘의 모습, 특히 먹고 사는 모습에 대해 그냥 평이한 어투로 얘기하고자 한다. 먹고 사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한 것이니 말이다.

 

 

서울의 보통 근로자 가구가 저축만으로 보통의 아파트를 마련하긴 불가능

 

 

서울에 사는 보통 직장인의 경우 대출 없이 그냥 저축만으로는 평생을 살아도 주택이나 아파트를 마련할 수 없다. 異論(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이 대목에서 소득대비 집값을 나타내는 PIR 이란 지표도 있지만 그냥 단순하게 얘기해본다.

 

서울에 사는 일반 근로자 가구의 평균 연간 소득은 6천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부부가 같이 벌면 그 정도가 될 것이다. 서울의 33평 아파트 시세는 평균이 6억4천이고 강남구는 평균이 12억 8천이라 한다.

 

따라서 서울 근로자 가구의 경우 소득을 몽땅 저축한다 했을 때 33평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10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강남구에 내 집을 장만하는 것은 일단 포기하기로 하자.)

 

하지만 저축이란 것이 아무리 독하게 한다 해도 소득의 1/3 정도면 한껏이다. 연간 6천을 번다고 할 때 2천을 저축할 수 있다면 그게 최대치란 얘기이다.

 

따라서 2천씩 저축해갈 경우 평균 6억4천하는 서울의 33평형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32년이 걸린다. 그냥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겠다.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따라서 집을 사려면 대출이 필수. 일단 15년간 연간 2천씩 저축하면 3억이 될 것이고 이에 나머지 3억4천은 금리 3.5%에 20년 만기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의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다고 하자. 서른에 취업했다면 마흔 중반이 되겠다.

 

대출을 받고 원리금 균등상환을 하게 되면 월평균 180만원, 연간 2,160만원 정도를 갚아야 한다. 그간에 연간 2천만 정도 저축을 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그냥 그런 식으로 향후 20년간 계속 저축해간다고 보면 되겠다.

 

이제 집이 생겼으니 전세금 마련이나 월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다만 재산세가 있긴 하다.

 

따라서 15년간 저축하고 대출을 받아 다시 20년간 갚아야 하니 전체 기간은 35년이 되어야 서울의 평균 아파트 한 채를 온전히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지분 100%의 아파트 말이다.

 

그 사이에 급여가 오르겠지만 그보다는 어느 시점에서 외벌이가 될 가능성은 더 크다고 하겠다. 또 직장에서 35년씩이나 충실히 잘 다닌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취업을 30세에 했다고 할 경우 65세까지 근무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공직이나 공기업이 아닌 이상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얘기는 대충 그렇다는 것이고 지금 시행되는 신 DTI(총부채상환비율)와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에 따라 실제 상황은 또 달라질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를 사는 대한민국

 

 

만기가 20년 또는 30년에 이르는 주택담보대출이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차주의 소득이 그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공직이 아닌 이상 우리 사회의 직업 불안정성은 대단히 높은 편이다, 그러니 그게 가능한 얘기인지부터 의문이다.

 

 

서울시민권자와 서울시민 그리고 類似(유사) 서울시민

 

 

서울에 살면서 자신과 가족이 살 집을 마련한 자, 즉 주택이나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한 자를 일러 나 호호당은 서울 시민권이 있는 자, 줄여서 ‘서울 시민권자’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서울 시민권자의 상당수는 거액의 빚을 지고 있다는 점도 있다.

 

나 호호당은 전월세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서울 시민권자’가 아니라 그냥 ‘서울 시민’이다. B급 서울시민인 셈이지만 그래도 서울 안에 살고 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젊은 부부들은 깨끗하고 편리한 주거환경에 더 비중을 두다보니 서울 근처에 집을 마련한 뒤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 B급 서울시민이 되느니 서울까지의 출퇴근에 3시간 이상 걸릴지라도 그 길을 택한 것이다. 물론 교통비는 장난이 아닐 것이다.

 

 

주택 문제로 결혼을 포기해버린 젊은이들

 

 

그런데 저처럼 애쓰는 젊은 부부들도 있지만 최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아예 결혼 자체를 포기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하면 같이 벌이를 하면서 집도 마련해야 하고 육아나 양육도 해야 하며 서울 변두리로 나가 힘들게 출퇴근을 해야 하니 그게 너무 힘들어서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인 결혼 자체를 기피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젊은 남성의 경우 결혼할 것 같으면 서울 변두리에 나가 살면서 독한 마음으로 저축을 해야 하니 사실상 삶을 즐길 여유가 없다. 여성의 경우 출산과 육아 그리고 직장을 동시에 감당하기가 너무나도 벅차다.

 

특히 여성의 경우 미혼 시절엔 용모를 가꾸느라 적지 않은 돈을 쓰는 탓에 직장에 다닌다 해도 결혼 전에 착실히 저축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냥 해외여행 같은 거 많이 다닌다. 집은 남편 될 사람이 당연히 마련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실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는 결혼한 뒤에 아기를 낳지 않는 것보다도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 바람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구와는 다른 이유에서 욜로(YOLO)

 

 

이에 최근 젊은이들은 그냥 연애만 하며 즐기고 지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 사회에도 욜로(YOLO)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고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욜로는 서구의 욜로와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

 

서구의 경우 놀다가도 다시 취업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일정한 연령대를 넘기면 사실상 취업이 불가능해진다. 그냥 무직자로 지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반면 가령 미국의 경우 대도시만 아니라면 집값도 저렴하고 생활비도 저렴하기에 그냥 태어난 고장에서 적당히 벌면서 살아갈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경우 취업한 뒤에도 무려 7개월 짜리 인도순례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직장에 다닌 것 역시 2년도 되지 않았고 애플을 창립했다. 벤처를 해보다가 실패하면 다시 직장에 들어가면 그만인 까닭이었다. 우리의 경우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최근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의 욜로는 그 내용을 보면 열심히 살아봐야 큰 미래가 없다, 따라서 지금 내게 혼자서 즐길 돈이 있다면 저축하지 않고 즐기겠다는 식이다. 이에 나는 우리 젊은이들의 욜로를 보면 ‘절망에 바탕을 둔 욜로’라는 생각을 한다. 딱한 마음이다.

 

어느 젊은이로부터 들은 얘기인 즉 연수 3천에 1년에 한 번 해외여행 다녀올 수 있으면 럭셔리 인생이란 것이었다. 들어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부모님 집에 얹혀서 살고 또 직장 다니면서 버는 3천의 돈은 약간만 저축하고 모두 소비한다는 심산이다. 가령 50만원 저축하고 남는 200만원으로 소비를 즐긴다는 계산이다.

 

사실 그 정도면 충분히 럭셔리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사실상 무직 또는 알바로 지내고 있다. 취준생은 겉포장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그들에게 연수 3천에 미혼으로 지내면서 즐기는 삶이 어떤 면에서 럭셔리라고 충분히 인정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유교적 풍토의 부정적 영향

 

 

또 어떤 젊은이, 알바로 가끔 용돈 벌이를 하면서 지내는 한 젊은 여성의 말도 인상이 깊었다. 알바 역시 연령 제한이 있어서 커피집이나 식당에서 알바로 일하는 것도 나이가 서른에 가까워지면 알바 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식당이나 커피집 매니저의 나이는 스물일곱인데 서른 난 처녀가 알바로 일하려면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얘길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문화적으로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든 사람을 아래 직원으로 일을 시키기가 피차간에 어려운 점이 있다. 유교적 풍토 때문이다. 그 바람에 젊은이들이 대학을 마친 후 또는 대학원을 마친 후 바로 취업하지 못하고 조금 세월을 보낼 것 같으면 취업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일본도 그렇다는 말을 듣긴 했다.)

 

 

꿈을 꿀 수 없는 우리 젊은이들

 

 

그런가 하면 몇 년 전부터 재산이 다소 있는 중상층 이상의 부모를 둔 젊은 남성들 중에는 힘든 사회생활을 피해 셰프의 길을 지망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 바람에 툭 하면 듣게 되는 얘기가 있으니 바로 프랑스 요리 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이다. 지원자가 적지 않아서 그런지 프랑스까지 갈 것 없이 그냥 한국 지사도 있고 국내 분교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요리사의 길을 가겠다는 것 자체를 비판적으로 본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고생하지 않고 유복하게 자란 젊은 친구가 일류 요리학교를 나온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전혀 아니란 얘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큰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큰 꿈을 꿀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출구가 막혀버린 것이다.

 

그런대로 있는 집의 젊은이들은 적당히 즐기면서 살 생각을 하는 것 같고, 보통의 젊은이들은 그런대로 벌어서 즐기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없는 집 젊은이들은 당장 벌어야 하기에 갖은 갑질을 감내하면서 고생을 할 뿐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은 국운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주로 얘기했는데, 다음 글에선 치킨 집 사장님 얘기로부터 이야기를 이어갈 볼 생각이다.

 

CVID란 말은 당초부터 무리한 요구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란 말이 이번 합의문에서 빠졌다는 점에 대해 여러 매체와 전문가들의 우려도 있고 비난도 있다.

 

하지만 당초부터 이 용어는 북한을 절대의 악 즉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아들 부시 대통령이 썼던 표현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CVID란 표현에 담긴 진정한 의미인 즉 못된 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 위험천만한 불장난 따위는 두 번 다시 용납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나 호호당은 당초부터 북한이 그런 굴욕적인 용어를 합의문에 넣는데 있어 동의하긴 어려울 것으로 여겨왔다. 두 나라 정상이 처음 만난 자리, 수 십 년에 걸친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이제부터는 서로 간에 잘 해보자고 악수를 하고 조심스럽게 친교를 모색해보자는 자리에서 ‘너 무릎 꿇어!’ 하는 요구를 하기는 어려운 법 아니겠는가.

 

 

김정은의 진정성이 충분히 엿보였던 회담

 

 

다만 두 정상의 회동을 지켜보니 김정은의 표정이나 동작에서 트럼프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감정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비핵화를 통해 관계개선을 하고 또 그를 통해 나라의 번영을 이끌어내려는 진정성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회담이 끝난 후 트럼프는 무척이나 만족스런 표정이었는데 그 역시 김정은의 진정성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트럼프를 일단 비판부터 해야 하는 미국의 민주당 입장도 있을 것이고 또 트럼프라 하면 어떤 면에서 핵을 든 북한보다 더 한 敵(적)으로 여기는 미국의 주요언론들도 있을 것이고 또 공화당 주류 강경파의 비판 등도 있겠다.

 

뿐만 아니라 민주정치란 것이 으레 그렇듯이 국내 야당의 입장 역시 이번 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공을 세웠다는 점에 대해 작은 흠집이라도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또는 우려를 할 법도 하다고 본다. 그거야 모두 입장이 있기에 능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싱가포르 회담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성공이고 역사의 긍정적인 進展(진전)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과거 수 십 년간 적대관계를 이어온 우리 겨레의 앞날에 대해 그야말로 다행한 일이라 여긴다.

 

이는 나 호호당이 그냥 감격해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북한이 또 다시 생떼를 부릴까? 하는 염려에 대해

 

 

이번 회담의 성과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시각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이 다시 과거처럼 약속을 했다가 번복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우려에 대해 먼저 얘기해본다. 그간 북한의 떼쓰기 또는 이른바 ‘벼랑끝 외교’가 어떻게 가능했었던가 하는 점부터 따져보면 이해가 간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자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간 북한이 보여준 위력과 공포는 바로 이 점이었다. 남한 너희들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거 다 알아, 하지만 우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으니 어디 한 번 같이 죽어보자고 하는 식으로 나왔기에 그간 우리는 북한의 변덕과 생떼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부자는 몸조심이 우선인 까닭이다.

 

 

북한이 더 이상 과거의 떼쓰기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은둔의 독재자 김정은은 국제무대에 정식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게다가 북한을 번영으로 이끌고 싶다는 생각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다. 즉 북한과 김정은 역시 번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 잘 살고 싶고 잘 되고 싶다는 욕망을 정식으로 노출시켰다.

 

희망이야말로 사람이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기에

 

 

따라서 이제 북한의 위협과 공포는 급속도로 줄어들 수밖에 없고 약속 번복도 결정적인 제약 요인이 생겼다.

 

희망을 가진 자는 그 희망으로 인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가 아니게 된다. 희망이야말로 우리가 살면서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 북한과 김정은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벼랑끝 외교라든가 약속을 번복하는 행태로 돌아가긴 어렵다고 본다. 그간 신용도가 빵점이었기에 막무가내로 행동할 수 있었지만 이제 잘 살려고 하는 희망을 가졌기에 앞으로는 신용도를 착실하게 높여가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김정은 위원장의 어려운 결단

 

 

김정은이 트럼프 앞에서 마치 선생님 앞의 어린 학생처럼 행동한 것 역시 그런 이유였을 것으로 여긴다. 본인 스스로도 그런 행동이 ‘최고 존엄’에 손상이 가는 것임을 왜 몰랐겠는가.

 

김정은은 이번 회담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 차례 최고 존엄을 깎아내리는 행동들을 보여주었다.

 

먼저 3명의 미국시민을 풀어준 것이라든가 풍계리 핵 시험장을 파괴한 것, 또 트럼프가 회담 취소를 발표하자마자 체면 불구하고 문 대통령에게 구원요청을 한 것, 회담이 끝난 후 미사일 엔지 시험장을 없애기로 한 조치 등등 최고 존엄을 깎아내리면서 성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이미 북한과 김정은은 과거와 같은 무책임한 행동, 생떼를 쓰거나 벼랑끝 외교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을 지나쳐왔다고 하겠다.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다.

 

나 호호당은 그렇기에 이번 회담 성사에 있어 트럼프의 협상술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노력도 물론 컸다 보지만 결정적인 것은 김정은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이었다고 본다.

 

최고 존엄이란 말은 달리 표현하면 절대자란 뜻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神(신)적인 존재란 해석도 가능하다. 김정은은 조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에 이어 그간 북한 내에서만큼은 바로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회담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사실 눈여겨보지 못한 대목이 바로 그 점이라 하겠다. 김정은 스스로 그런 신적인 존재의 위치에서 내려와서 초라한 후진국이자 빈곤국인 북한의 지도자 신분이 되어야 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 단지 자존심의 문제를 넘어 자칫 통치권위에 손상이 올 수 있는 그런 결정을 김정은의 입장에서 내리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그렇기에 이는 핵미사일이 인민들의 밥을 먹여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김정은이 초라하고 빈곤한 북한을 책임진 지도자로서의 용단이었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생각이다.

 

이 대목에서 참고로 하는 얘기지만 나 호호당은 친북이나 종북과는 거리가 천리만리 먼 사람이란 점이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서 나 호호당의 개인적 성향은 철저하게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이란 점을 밝혀둔다.

 

 

성공적인 회담으로 평가하는 이유

 

 

그런 나 호호당이 지금 김정은의 결단을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또 이번 싱가포르 회담에 대해 큰 성공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서구문화의 미국인들은 계약서 문구를 대단히 중하게 여긴다. 반면에 동아시아 문화의 사람들은 문구에 앞서 사람 그 자체를 더 중하게 여긴다. 그런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회담은 두 정상이 서로를 신뢰하고 인정하게 되는 좋은 계기였다고 본다.

 

물론 실무 협의 과정에선 무수한 안건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오고 그에 따라 격론과 갈등을 겪으면서 진행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내용들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합의문은 달랑 문장 몇 개가 고작이었다. 속 시원하게 해주는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연히 실망이다.

 

하지만 비핵화란 작업이 그냥 물리적인 조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말하면 핵과 미사일을 제조하고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광범위한 인프라를 제거하는 작업이란 얘기이고 그 인프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적 인프라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비핵화를 위해선 미국의 요원들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간 금단의 영역이었던 북한 내부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관련 물질과 시설 또 재료를 폐기하거나 반출하는 과정에서 북한 사람들의 동향도 고려되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란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 요원들의 출입이 북한 주민들에게 마치 점령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김정은의 권위가 급격히 약화될 우려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그 무수히 많은 것들을 단기간에 합의하고 문서화한다는 것이 가능할 턱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비핵화 로드맵도 중요하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김정은의 성의 그리고 미국의 북한에 대해 태도나 자세라고 하겠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은 진짜 핵심 내용

 

 

이번 싱가포르 회담에서 서로 간에 주고받은 것이 과연 무엇인지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미국이 준 것은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이었다. 북한이 내놓은 것은 비핵화와 함께 유해 발굴 송환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주고받은 것은 서로간의 성의와 진정성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얻은 것은 더 거대한 것들이라 본다.

 

먼저 북한이 얻은 것부터 얘기하자. 북한은 미국과 수교할 길을 열었고 그로서 이른바 ‘글로벌 달러 체제’에 편입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받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번영으로 갈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의 창을 열었다는 것이 북한이 얻은 성과인 것이다.

 

미국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북한까지 미국의 세력권 안으로 당겨놓는 계기를 포착했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당장은 애매한 시기가 있겠으나 결국 북한은 중국보다는 미국에 붙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열리기 시작한 역사의 거대한 물꼬

 

 

이번 회담으로 물꼬가 열리기 시작했다는 생각이다. 동북아의 세력균형 판도는 물론이고 우리 대한민국과 북한 주민들에겐 엄청난 기회의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크게 보면 남북한의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디어들의 평은 어떨까?

 

이번 회담의 결과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김정은의 승리라고 했고, 타임과 뉴욕타임즈는 북한과 중국의 승리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인터넷 미디어 복스(VOX)는 한국의 패배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 미디어들도 처한 입장과 이해에 따라 평가가 다르다.

 

저처럼 저마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에 북한도 어서 빨리 최고 존엄을 자유롭게 놀리고 조롱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원해본다. 한 30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나 호호당은 오래 전부터 기대해왔다. 1948년부터 남북한이 다른 길을 갔으니 72년이 흐르기 전 즉 2020년 전에는 통합의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해왔다. 자연순환운명학의 이치이다. 작은 물꼬이지만 때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거대한 흐름이 생겨날 것이다. 황폐했던 거대한 대지에 논물 철철하게 흘러갈 날이 올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잘 되는 사업의 경우

 

우연한 계기에 사업을 시작했더니 의외로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경우가 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전혀 생각지도 않은 큰돈을 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 또 질투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그 사람의 운세 순환에 있어 최절정의 운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봐도 절대 무방하다.

 

하지만 이 경우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큰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된다. 최초 사업을 시작했을 때로부터 최종적인 실패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세월은 대개 18년에서 22년 정도가 된다.

 

나 호호당은 그간의 상당 경험을 통해 이런 경우를 실로 많이 목격해왔다. 몇 차례 정도가 아니라 수백 번도 더 넘는다.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 사업해가는 경우

 

 

보통의 경우 사업을 시작하면 두어 차례 실패를 겪기 마련이다. 실은 이것이 더 정상이다. 시쳇말로 두어 번 말아먹어야 이제 슬슬 기초 내공이 생긴다.

 

이런 경우 나이가 들어서 취업하기도 늦었고 해서 더는 물러설 곳도 없게 된다. 이에 필사의 각오로 또 다시 사업을 시작해간다. 이런 경우 그 사람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마침내 탄탄한 기반을 쌓게 된다.

 

최초 사업에 뛰어든 때로부터 탄탄한 기반을 쌓을 때까지 대개 18년에서 22년 정도가 걸린다. 뿐만 아니라 다시 10년이 흐르면 크게 성공하게 된다.

 

지금 나 호호당이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의 일이며 나 호호당은 이런 경우들을 그간 무수히 목도해왔다.

 

 

처음이 쉬우면 끝이 좋지 않고 처음이 어려우면 끝이 좋은 법이니

 

 

어렵게 시작하면 세월 속에서 단련되는 법이고 운세도 상승하다 보면 마침내 때가 되어 성공한다. 시작이 쉬울 경우 운이 한창일 때 시작한 것이니 세월 속에서 해이해지기도 하고 또 운세가 하강하는 바람에 때가 되면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다시 하는 얘기하는 얘기지만 이는 도덕적인 얘기도 아니고 종교적인 설화도 아니다. 철저하게 현실의 얘기이다.

 

 

자연순환운명학의 견지에서 설명하면

 

 

이를 자연순환운명학의 경지에서 설명해보면 사실 간단하다. 처음부터 쉽게 성공한 이는 그 사람의 운세 순환에 있어 절정의 때에 사업에 뛰어든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 사람의 운세 순환 상 좋지 못할 때, 주로 운세 바닥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세월 속에서 다져지면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사실 적절한 때에 시작한 것이고 세월 속에서 내공이 다져지고 경험이 쌓이면서 성장해가는 경우라 하겠다. 가장 정상적인 케이스라 하겠다.

 

이런 케이스 중에 크게 성공한 사례로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라든가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들 수 있다.

 

 

가장 좋은 사업의 케이스

 

 

정상적인 케이스보다 좀 더 나은 케이스에 대해 얘기해본다. 그 사람의 운세가 서서히 상승할 무렵 어떤 분야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면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뒤 운세가 이제 막 상승하기 직전에 우연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자신의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가장 좋은 경우가 된다.

 

이런 경우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크게 성공하거나 또 큰 부자가 된다. 아마존닷컴의 창립자인 제프 베조스라든가 국내의 경우 엔씨소프트의 창업주 김택진 씨가 바로 그와 같은 경우이다.

 

김택진 씨의 경우 엔씨소프트를 창립한 것은 1997년이고 불과 수 년 만에 크게 성공했지만 사실 그 이전인 1989년 한메소프트를 창업했다가 다시 기업에 들어가 경험을 쌓는 과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모두 실제 상담을 통해 얻은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개인의 신상에 관한 것이라 밝히긴 그렇지만 오랜 기간 상담을 해오는 과정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기업 회장님이라든가 유명한 기업인들, 자신의 방면에서 일가를 이룬 명사들의 상담도 무척 많았다. 그런가 하면 한 때 크게 성공했으나 끝이 좋지 않았던 인물들도 많았다.

 

(다만 개인의 신상에 관한 일이라 나름의 직업윤리 상 이름을 밝힐 순 없다는 점을 알려드린다.)

 

오늘 쓰고 있는 이 글은 저명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간에 상담을 통해 만났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축적된 경험에서 우러난 얘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고 있다. (2001년부터 운명 상담을 시작했으니 이제 17년이 되었다.)

 

 

상담 경험이 축적된 결과 이제 그냥 봐도 감이 올 정도라서

 

 

그러다보니 이젠 통달한 느낌도 든다. 찾아온 이의 생년월일시를 물어보고 다시 사업이나 일을 시작한 연도만 알고 나면 앞으로의 흐름을 순식간에 계산해낼 수 있게 되었다.

 

타고난 팔자를 따지기에 앞서 사람을 대하는 순간 직감이 온다. 얼굴이나 목소리, 자세만 봐도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흐름을 절로 알게 된다. 이는 무슨 神氣(신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간의 무수한 경험을 통해 축적된 감각이 발동되는 것이라 하겠다.

 

나 호호당의 작은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찾아온 이의 불과 몇 걸음 되지 않는 자세 속에서 그 사람의 많은 것이 느껴진다.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에 대해 알리고 있는 법

 

 

다소 우쭐대며 들어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풍파에 시달린 나머지 절로 어깨가 위축된 분도 있다. 걸음걸이에 힘이 실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조용히 걸음을 내딛는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시선을 돌리면서 들어오는 이도 있고 그냥 곧장 들어오는 이도 있다.

 

들어와서 테이블 건너편의 의자에 앉는 자세도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힘차게 의자를 끌어당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얌전히 의자를 당겨서 앉는 이도 있다. 허리를 쭉 펴고 앉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다소곳이 앉는 이도 있으며 의자 깊숙이 앉기도 하고 살짝 끝부분에 앉기도 한다.

 

작업실에 들어선 뒤 몇 걸음 걸어와 의자에 앉을 때까지의 시간은 불과 15초 안팎이지만 그 짧은 사이에도 사람은 자신에 대해 무수한 것을 알린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 짧은 시간 속에 찾아온 이의 타고난 천성과 살아온 세월 전부가 오롯이 담겨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기에 생년월일시를 물어보기에 앞서 이미 많은 것을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나 호호당은 이제 통달한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마저 든다는 말을 하게 된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얘기하면 대기업의 계열사 사장이나 등기임원 정도 되는 분들의 자세나 매너야말로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가장 세련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정도까지 출세를 했으면 다소 뽐을 내거나 약간은 거들먹거릴 법도 한데 전혀 그런 티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고 마냥 겸손한 것도 아니요 그냥 상황에 맞게 적절히 처신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급 공무원의 자세는 그런 면에서 대기업에서 성공한 이와는 또 다른 점이 있다. 겸손한 것 같지만 순간순간 강한 엘리트 의식이 풍겨난다.

 

그렇기에 대기업의 임원이나 사장을 대할 때면 나 호호당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거대한 조직 속에서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스스로를 성장시켜온 사람의 매너는 이처럼 훌륭하구나 싶은 것이다.

 

조직 속에서 성공한 사람의 자세나 매너는 자신의 사업을 키워서 성공한 이의 자세나 매너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오늘의 글은 어떤 면에서 두서가 없다. 사업하는 시기를 운명과 연결 지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그간 상담을 통해 얻은 경험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소 두서가 없는 얘기였기에 양해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냥 이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두 가지 얘기였지만 그런대로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며칠 사이 감기로 시작한 것이 기관지 염증이 되어 고생 좀 하고 있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더니 효과는 있는데 졸음이 밀려오는 바람에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래서 쉬는 참에 좀 더 쉬기로 마음을 먹고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도 자제하고 있다. 이제 나 호호당도 나이가 들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싶기도 하다. 아직도 마음은 넓은 평원을 달리는 준마의 기상이건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