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처럼 생긴 ‘듣보잡’ 감독의 놀라운 능력
저 감독은 생긴 게 꼭 아줌마네 아줌마, 크로아티아 시합을 관전하면서 아들에게 건넨 말이었다. 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그래, 아빠. 아들의 변이었다. 그런데 그 아줌마처럼 생긴 ‘듣보잡’ 감독이야말로 결승에 진출한 크로아티아의 진정한 비밀병기였다는 사실.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게임이지만 축구는 그야말로 감독의 역량에 달려있다. 축구에 관심 있는 팬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크로아티아하면 일단 모드리치가 떠오른다. 그런데 저 모드리치가 저렇게나 체력이 좋았던가! 저 놈 약 먹은 거 아냐? 역시 아들에게 건넨 멘트였다.
전 선수들을 죽도록 뛰게 만든 놀라운 리더십
기억하기로 모드리치가 대단한 선수인 것은 확실하지만 저렇게 악착같이 뛰어다니는 모습은 이번 월드컵이 처음이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모드리치만이 아니라 전 크로아티아 선수들을 죽도록 뛰게 만든 이는 바로 저 아줌마처럼 생긴 무명의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목요일 새벽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시합을 지켜보던 나는 전반 후반을 1대1로 끝내고 연장전에 들어갈 무렵이 되자 크로아티아가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전까지도 나는 잉글랜드가 이길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연장전에 들어가자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더 살아서 생생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앞의 두 게임 모두 연장전을 치르고 승부차기를 거치면서 올라온 크로아티아였고 평균 연령도 크로아티아가 많다고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는 1명의 선수도 교체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장전에 들어간 마당에 모든 선수가 더욱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지, 저 괴력은?
역시 ‘국뽕’이 마약보다 더 센 거 같다는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기다렸다가 승부수를 띄운 감독의 놀라운 전략
그런데 크로아티아 감독은 연장전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교체선수들을 차례로 투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주키치의 역전골이 터졌다. 그 순간 아, 그렇구나, 저 아줌마 감독이 연장전까지 예상하고 교체선수들을 아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반면 영국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교체 선수가 다 써버린 탓에 부상 선수를 교체할 수가 없었다.)
크로아티아의 진정한 비밀병기는 감독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진정한 비밀병기는 모드리치나 만주키치같은 선수들이 아니라 엄청난 조직력을 이끌어내었을 뿐 아니라 저들을 정말 죽도록 달리게 만든 저 아줌마 감독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간만에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가 이탈리아에게 역전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경기가 크로아티아의 승리로 끝나자 강렬한 감동이 내 가슴을 강타했다.
우와 저건 감독이네, 감독, 그렇지 아들? 아들 답하길 응, 맞아. 영웅 감독이 그렇게 탄생하고 있었다.
야, 아들 저 감독 생년월일 검색해봐, 빨리. 아들이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줄라트코 달리치의 운세 분석
즐라트코 달리치, 참 이상한 이름의 이 사나이는 1966년 10월 26일생이었다. 丙午(병오)년 戊戌(무술)월 戊午(무오)일.
생시를 모르니 올 해 2018 무술년이 立秋(입추) 아니면 立春(입춘)이 된다. 그래서 위키에 올라온 달리치의 캐리어를 검색해보니 금방 알 수 있었다. 올 해 2018년으로서 저 친구는 立秋(입추)의 운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직 결승전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크로아티아의 우승 여부를 떠나서 최고의 스타는 바로 저 달리치 감독이다. 스타 탄생.
세 번의 게임을 모두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올라온 팀이니 선수들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났을 터, 당연히 프랑스의 우승 가능성을 점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지금부터는 나 호호당을 완전히 매료시킨 저 크로아티아 선수들과 달리치 감독에 대해 베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데가 어린 나이에 못된 버릇부터 배운 얄미운 움바페를 생각하면 더욱 크로아티아를 응원하게 된다.)
크로아티아를 응원한다 그리고 베팅한다.
이미 합리성이나 이성 따윈 접어두기로 했다. 그저 저 멋진 크로아티아와 감독의 기적적인 우승을 기원한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에 베팅한다. 돈을 걸라고 해도 기꺼이 걸겠다. 잃어도 좋다, 이럴 때 질러야지 언제 지르겠는가!
기껏해야 축구의 변방인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의 프로팀 감독직이나 맡아봤던 사람이다. 유럽 축구계에서 볼 때 잘 해야 C 클래스의 무명 감독 경력이 전부인 그가 인구 4백만의 작은 나라 선수들을 이끌고 세계 축구의 최정상 결전장인 월드컵에 나와 결승에까지 진출시켰다.
물론 크로아티아, 월드컵 4강의 경력을 지닌 나라이다. 선수들도 유럽 프로팀에서 뛰고 있기에 수준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번에 크로아티아가 결승에까지 오를 것을 예상한 전문가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었으랴. 기껏 16강이나 8강 언저리에서 탈락하면 그래 그 정도면 잘 했어 하는 평가를 받았을 크로아티아였다.
역시 축구는 감독의 게임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줄라트코 달리치, 그의 운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제 세계 축구의 주 무대에 등장한 셈이고 앞으로 18년 정도는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갈 대스타 감독의 데뷔 무대가 바로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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